[이삭칼럼] 북한에도 중국에도 한 권씩이었습니다

아랍권에서 사역하시는 분이 아랍어 성경을 요청했습니다.
우편으로 보내면 100% 거부당한답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한국 방문하고 현지로 돌아가는 길에 한 권씩 가지고 가야 한답니다.
1983년 선교 정탐을 위해 중국에 갔을 때 상해에 한 권, 하얼빈에 한 권, 요녕성에도 한 권이었습니다.
몇 권을 가지고 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지켜 주셨으니 250권도 지켜 주시리라 믿었습니다.
그때부터 횟수를 늘리고 동행할 사람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에는 없어서 재미 동포를 동원하고 저희 아이들과 친구와 가족들을 데려갔습니다.
백팩을 메고 가방을 끌면서 중국 땅을 밟았습니다.

하지만 강 건너 북한 땅에 들어갈 때는 쌀자루에 한 권씩이었습니다.
자전거 안장 밑에 파이프 속에 꼬마 성경을 구겨 넣어서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여 성도들의 가발 밑에 허벅지에 신발 바닥에 성경을 펴서 깔고 조심스럽게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한 권씩이었습니다.
몇 달씩 지나서야 연락이 오고는 했습니다.
“잘 왔시오”라는 말속에 숨겨진 의미는 “성경을 무사히 가지고 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두워서…”라고 흘리는 말속에는 “다음에는 글자가큰 것을” 요청하는 뜻이 담겼습니다.
북한에서는 큰 글자를 원했지만 실제로는 큰 성경이 가지고 가기가 어려웠습니다.
성경 한 권씩, 한 달에 성경 한 권씩만 보낼 수 없을까요?
일 년에 한 권씩이라도….

방송을 더 활용할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비용이 너무 들기 때문이지만 찬양과 함께 하나님 말씀만 여러 사람의 음성으로 읽어서라도 보내고 싶습니다.
젊은이의 음성으로, 어린아이의 음성으로, 노인의 음성으로, 북한인의 음성으로….
베들레헴 방송 타워에서는 중국어와 북한어 방송이 여전히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북한과 남한을 향해 온종일 하나님의 말씀과 찬양 “할렐루야”를 방송하고 싶네요.
한 권씩.
한 시간씩.

무익한 종 이 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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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영혼을 살리는 성경이 보내지고 있습니다!

“너는 얼마나 배달하려고 생각해? 인구가 13억이야.”
“흠… 최소한 1억 권은 있어야 하겠네.”
1985년에 했던 대화입니다.

러시아 성경 3천 권을 부탁받아 이스라엘로 보낸 일이 있었습니다.
러시아 고어 성경 386권을 찾아내 연해주로 보내기도 했었습니다.
성경 한 권을 갖기 위해 7년을 기도한 아주머니에게 성경을 드린 적도 있었습니다.
뉴톰슨 주석성경을 숨겨 북한으로 들어가신 할머니를 기억합니다.
고기준 목사님께 전했던 75권의 뉴톰슨 주석 성경을 배달한 것은 1989년이었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카톡이 들어옵니다.
인도차이나 지역에 최소한 중국어 만화 성경 《메시야》 1,000세트가 필요합니다.
방콕은 《메시야》 1,000권, 전질 100세트가 가능한 한 빨리 와야 합니다.
이 외에도 여러 곳에서 어린이 병음성경, 중영 병음성경을 요청합니다.

이것들을 모른 체할까요?
무릎을 꿇어 하나님께 아뢰 주십시오.
저도 기도하고 기다리며 준비된 《메시야》 만화 성경을 전달하겠습니다.
중국어 병음 성경도 배달할 것입니다.
배달하는 일은 저희가 감당할 것이지만 기도와 후원에 동참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일꾼인 여러분의 몫입니다.

술집에 들어간 성경이 생명을 건집니다.
도박장에 흘러들어간 전도지 하나가 영혼을 건집니다.
노숙자가 주는 종이 쪽지가 하나님 나라를 세울 줄 누가 알았을까요?
경찰서에 들어간 발걸음이 탈북민을 살려냅니다.
제가 버린 4영리 한 권이 한 사람을 탈북케 했고 목사로 만들었습니다.

북한에, 중국에, 인도차이나의 중국인들에게, 소수민족과 아랍과 이스라엘에서도, 각 나라의 언어로 된 성경을 보내달라고 요청합니다.
오늘도 창고에 성경이 들어오고, 그 성경이 선교지로 보내지는 일들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금년 부활절에 비무장지대에서 군복무 중인 장병 400명에게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도지로 나누며 부활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젊은 청년들이 예수를 믿고 복음의 군사들로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헌금으로 영혼을 살리는 성경이 보내지고 있습니다.
그 일에 저와 모퉁이돌의 선교사들와 일꾼들이 심부름꾼으로 사용되고 있음이 감사할 뿐입니다.

무익한 종 이 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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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그 말 한 마디가 30년 넘게 복음 풍선을 띄우게 했습니다

리처드 웜브란트 목사님이 14년간 감옥에서
받아 든 쪽지가 주기철 목사님의 영문 간증이었다고 합니다.
그 쪽지를 읽으신 것을 지금도 기억한다며 위로하셨던 일이 있었습니다.
“자네가 그 나라에서 온 목사이지?”라며 제게 고맙다고 하시던 목사님이
복음 풍선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1993년이었습니다.
그 일을 알려주시려고 사람을 보내고 인쇄된 복음 풍선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 후로 우리는 기회를 따라 풍선을 띄웠습니다.
30년도 더 된 일입니다.
이곳저곳에서 풍선을 띄우다 모기에 물려 고생하기도 했습니다.
경찰에 끌려가는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감당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잊혀진 줄 알았는데….”라는 한 마디를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북한 어디에선가 주황색 복음 풍선이 싸리 울타리에 걸린 것을 한 아이가 보았습니다.
아이는 엄마에게, 엄마는 시어머니에게 풍선을 주었고
아이의 할머니는 “잊혀진 줄 알았는데”라는 말을 했습니다.
바로 그 말 한 마디가 저로 하여금 30년 넘게 복음 풍선을 띄우게 했습니다.
복음 풍선 한 장에 쓰인 하나님 말씀을 받아든 이의 감격이 얼마나 컸기에…
흔한 한 번의 설교가 아닙니다.
흔한 한 권의 성경이 아닙니다.
영생을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신 할머니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 풍선을 띄운 이들을 감사로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30년간 여러 정권 아래서 제재를 받기도 했고 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풍선 띄우지 말라고 강요당한 일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 백성입니다.
주님도 때로는 비밀스럽게 행동하셨습니다.
우리도 때로는 이렇듯 비밀스러운 일을 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잊히지 않기 위한 일입니다.
이번 해는 방해받지 않고 북한의 붕괴를 볼 수 있는 자리까지 허락하실런지…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준비하라”는 급한 음성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 이상 풍선을 띄우거나 몰래 성경을 밀수하지 않아도 될 날이 오는 것일까요?
그날이 오기 전까지 모퉁이돌선교회는 또 북한 땅을 향해 복음 풍선을 띄울 것입니다.
어두운 밤 한 영혼을 위로할 풍선을.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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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가리었다고 북한에 성도가 없는 건 아니잖아요

1985년, 저는 마흔이었습니다.
선교를 하기에 늦은 나이라고들 했습니다.
더구나 북한 선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뿐이었습니다.
그때부터 40년이 되는 지금까지 해 놓은 일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북한과 중국에 성경을 날랐지만 어디에 가 있는지 모릅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다는 사실만 압니다.
성경을 배달하다가 북한에서 왔다가는 성도들을 만났습니다.
신학교에서 그들을 가르치고 중국에 와 있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으신 성도들이 있음을 알리고자 했으나 “말도 안 돼!”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북한에 교회를 세우는 일을 했다면 믿으시겠어요?
중국 현장에 가서 보여주어도 믿지 않는 분들이 많습니다.

오랜 세월, 한 사람씩 만나고 나누고 성경을 읽게 하고 가져가게 했습니다.
탈북자들을 돕고 먹이고 재우고 훈련시켜 북한 땅으로 보냈습니다.
선교사로 파송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40년 동안 보이지 않는 일들을 해야 했습니다.
몽골과 러시아, 중국과 미국에서 함께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고 시작한 일이기에 시행착오가 많았습니다.
아내와 어린아이들과 미국 시민권자들을 동원해야 했습니다.
한글 성경은 국내에서 인쇄된 것을, 중국어 성경은 일본에서 준비된 것을 보냈습니다.
유럽과 캐나다와 미국에서 성경 공급하는 일을 도왔지만 실제로 성경 배달은 한국 교회 일꾼들이 맡았습니다.
북한 땅을 향해 앉았습니다만 보이지가 않습니다.
아주 짙은 안개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저 건너편의 북한 땅을 보고 있습니다.
가리었다고 북한이 없는 것은 아니잖아요.
보이지 않는다고 북한에 성도가 없는 것은 아니잖아요.
저는 그곳에서 성도들을 만났고 그중에 여러 분들이 순교당했습니다.
예수 이름을 부르며, 저 천국에 가면 기쁨으로 주님을 만날 것을 의심치 않는 이들입니다.
하나님의 도움과 여러분들의 기도와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지금껏 진행되어 왔습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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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눈이 내리는 걸 보고 밀가루였으면…

“여기는 너무 따뜻한데 거기 남아있는 우리 모퉁이돌 북한 제자들은 어쩌지요?”
짐을 싸서 영하 20 도의 선교 현장을 떠나 서울로 돌아온 선교사님의 한 마디에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
추위와 폭설과 배고픔의 고통 속에 놓인 북녘 땅을 외면할 수가 없어 부르짖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아룁니다.
하나님 저 땅을 버리지 마셔요.
그 땅에 은혜 입은 자들이 있잖아요.
‘눈이 내리는 걸 보고 밀가루였으면…’ 하고 기대하는 갸날픈 저 백성, 제 이웃을
하나님이 저버리시면 어떻게 하나요?
저를 용서하시기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피흘리게 하신 하나님.
저를 사랑하시고 오늘까지 지키신 하나님.
회원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비웃음 속에서도 가난함 가운데에서도 비난과 거짓말로 욕하는 상황 속에서도 일하게 하신 하나님.
저들에게 먹거리를 손에 쥐어주도록 돌보셨던 하나님.
하나님!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버리겠냐’라며 순종하여 그 땅으로 돌아간 백성들을 하나님이 아시잖아요.
저들은 하나님 외에 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은 백성들입니다.
이제 배고파 울며 말씀을 기다리며 주님을 향하는 당신의 백성입니다.
지하에서 “아바지… 아바지…”소리를 죽여가며 부르짖는 이들입니다.
제 손바닥에 십자가를 그려주며 울던 그 청년의 눈을 아십니다.

하나님.
저들을 불쌍히 여겨 주세요.
그들로 자유로이 주님 이름 부를 날을 주세요.
하나님,
그렇게 하기 위해 수고하는 주의 일꾼들도 이 혹한 가운데서 위로해 주세요.
하나님,
저 북녘 땅에 은혜입은 자들을 기억해 주세요.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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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무엇을 드리시렵니까?

40년째에 들어섰습니다.
편하게 쉴 날이 없이 여전히 나그네 길을 갑니다.
불평 없이 시작한 길이었고 여전히 감사한 마음으로 광야 나그네 길을 걸어갑니다.
아니 마땅히 걸어야 할 나그네 길이었습니다.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동안 선교지에서 보내온 사진 한 장을 꺼내 봅니다.
난민들이 모퉁이돌선교회에서 보낸 성경과 후원한 일을 감사하며 보낸 것입니다.
사진을 보며 77년 전 공산주의자들을 피해 월남했던 일을 기억해 냅니다.
이란을 떠난 난민들에게, 전쟁 중인 팔레스타인들에게 언젠가는 저처럼 고향으로 돌아가
복음을 전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선교지 난민들에게도 네가 만난 예수가 소망임을 전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 주어야 되겠지요?
이북 땅에서 태어난 피난민이었던 제가 북한 선교를 하게 된 것이 은혜 아닐까요?
저에게 어릴 때 북한으로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말씀해 주신 어머님을 기억합니다.
아들을 이북 땅으로 보내려는 그 뜻을 제가 감당하게 된 것이 축복이라고 믿습니다.
이북 땅에 전쟁의 기운이 극심한 상황을 보면서 마음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혹시 이런 상황에서 이북 땅을 회복하시려는 것은 아닐까 여쭈며….

그토록 기도해 왔던 평양에서의 예배.
그냥 교회와 교단의 모임이 아닌 북한 지하성도를 위해 애태우며 기도한 분들이 모인 예배.
건물이 없다면 천막이라도 좋습니다.
강변이라도 좋습니다.
뜻이 있어 기도한 성도들이 예배다운 예배를 드릴 자리에서 하나님을 높여 드릴 것입니다.
왜 지금 이런 생각을 하게 될까요?
전쟁이 터질 것 같은 상황인데 오히려 저는 평양에서의 예배를 그리고 있습니다.
1945년에 해방이 오듯 그런 갑작스러운 상황이 올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뭘까요?
어렸을 때부터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늘 경험했습니다.
여전히 그 하나님은 귀 기울여 듣고 계십니다.
전국의 한국 교회가 주일이면 이북의 무너진 상황을 놓고 통일을 위해 기도해 왔습니다.
이제 그 일이 일어나려는 것일까요?
준비되셨습니까?
준비하셔야 합니다.
무엇을 드리시렵니까?
주님께 그리고 북한 성도들에게.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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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이런 것이 사역을 중단할 이유가 되지 않았습니다!

1983년 11월, 정탐 여행에서 지하성도들을 만나고 미국의 추수감사절 즈음에 집으로 돌아간 저는 편안함을 잃었습니다.
제 가슴과 제 영혼에는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 이국에서 살아간 조선족들이 들어와 머물렀습니다.
그들의 짓밟힘과 차별과 경제적인 어려움, 부모 혹은 할아버지 때 이전에 떠나온 고향을 잃은 서러움만이 아니었습니다.
북한 땅에 남아서 고생하는 이들에 대한 아픔과 돕지 못한 동포로서의 죄송함, 그리고 신앙 생활에 도움을 주지 못한 고통이 통증으로 남았습니다.
돈을 들여서 홀로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중국 선교를 하는 이들을 만났습니다.
밤이면 텅 빈 교회에 가서 밤을 새워가며 하나님께 아우성을 쳤습니다.
중국에서 돌아온 지 20개월 만인 1985년 9월에 아버님을 뵙고 사역하던 교회를 사임하려 함을 의논드렸습니다.
“사표를 냈니?”
“써 놨는데요.”
“목사는 사표를 내면 흥정하는 게 아니다.”
마치 이 길을 갈 것을 알고 계셨다는 듯이 말씀하신 아버님이셨습니다.
한 달 후인 10월 28일에 중국을 향해 떠났습니다.
돕는 이 없이 철저히 빈 손으로 시작한 것이 모퉁이돌선교회였습니다.”=

배고픔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옷 한 벌 제대로 입히지 못했습니다.
아내에게도 충분한 생활비를 줄 수 없었던 기간이 오래 이어졌습니다.
그런 와중에 북한 영혼을 위한 성경 번역이 이뤄져야 했습니다.
사역하는 모든 선교지마다 사역비가 공급되어야 했습니다.
때때로 아프고 중단하고 싶은 충동이 있었습니다.
심장과 허리의 통증으로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사역을 중단할 이유가 되지 않았습니다.
40년째의 사역을 이어갈 뿐입니다.
나 한 사람의 눈물이 저 지하 성도들을 자유케 할 날을 기다립니다.
오늘까지 아파한 아픔은 북한 지하성도들의 아픔입니다.
그것을 나누기 원했습니다.
이제라도 그 아픔을 함께할 7천 명을 얻기 위해 엎드립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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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여전히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다

“저 책들을 다 누가 갖다준 게요?”
“이 사람 저 사람이…”
“이삭이라는 사람이 보내온 건 어느 거요?”
“누구요?”
“모르시는군요? 이삭 목사라는 사람이 이 책을 가져다준 거라고 하던데…”

그렇게 지낸 세월이 40년째 들어갑니다.
책에다 모퉁이돌 도장을 찍은 것도 아니고, 누가 가져오긴 했는데 흔적이 없습니다.
중국에서도 북한에서도 성경책을 받은 사람은 누가 가져다주었는지 모릅니다.
신학교를 뒤에서 후원하고 가르친 사람은 사라져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을 키워서 교회를 시작했지만 아무도 누가 했는지 말하지 않았습니다.

전화를 받았습니다.
27년 전 중국 한 구석에서 사역을 하며 성경을 받아서 보급했던 분이랍니다.
지금은 중국에서 쫓겨나 시골 구석에서 목회를 하는데 유튜브를 보고 연락을 하셨습니다.
“제가 하던 일, 계속해야 했던 일을 저는 중단했는데 여전히 일하고 계시네요.”
당시 보냈던 성경의 흔적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데…
북한 땅에 세워지고 있는 숨어 있는 교회들은 보이지 않는데…
흔적 없는 사역.
모퉁이돌선교회의 처음 사역이 그랬고 여전히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만 확장되는 것이 우리에게 뜻하신 바였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가 조용히 온 세상에 아니, 저 북한 땅에 세워지는 것만이 꿈입니다.
흔적 없이 사라져가도 됩니다.
평양에 가도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도 우리는 모퉁이돌의 흔적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다 잊을 것입니다.
잊히기 위해 일해온 모퉁이돌선교회의 발걸음입니다.
모퉁이돌선교회는 복음이 북녘 땅에 전해지는 데 초점을 맞추었기에 헌금이 모두 사역에 쓰이기를 바라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흔적을 찾지 않고 후원하고 기도하고 축복해 준 모퉁이돌 회원 모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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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40년째 들어가는 하나님 나라 사역입니다

길이 없는데 북한 선교가 가능하냐?
지하교회가 있다고?
당시 성도들은 다 월남하지 않았나?
남아 있던 사람들은 다 죽었고.

그러면 그들을 다시 세워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중국의 조선족을 통해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려인, 재일 동포, 재미 동포들이 동원되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 호주 주변의 오세아니아 사람들이 길을 열어갔습니다.
유럽 여러 국가에서 모퉁이돌과 함께 사역을 진행 중입니다.
일본과 동남아 국가들의 비밀 루트를 열어 주셨습니다.
중앙아시아에서도 북한어 성경을 요청합니다.
배달을 하겠다고요.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의 나라를 포기하지 않고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북한 성도들의 피난처이십니다.
비록 어렵고 힘들기는 해도 소망 중에 믿음으로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이들이 있습니다.
십일조 한번 해 보는 것이 소원인 사람들.
성찬식의 떡과 포도주 잔을 만져 보고자 기도하는 성도들.
교회 문고리라도 만져 보며 무릎을 꿇어 엎드리고자 하는 백성들.
“이 귀한 것(하나님 말씀)을 내 손에 쥐어 주다니….”
성경을 받아 들고 쓰다듬으며 우는 아주머니를 중국에서도 북한에서도 만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라며 돌아간 그 79세 할아버지와 성도들.
모두 주의 나라로 이끌림받아 영원한 삶을 살아가는 주의 백성들.

길이 막혀 방법이 없는 줄 알고 있었는데…
전에는 생각하지도 않고 방문하지도 않았던 지역의 길이 열리고 있습니다.
1985년 ”나는 그 땅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땅에 내 백성이 살아 있다“ 하시던 음성.
여전히 그 음성을 기억합니다.
40년째로 들어가는 사역입니다.
강화선교훈련센터에 찾아드는 성도들이 북한을 바라보며 가슴에 새기고 기도하며 돌아갑니다.
바로 그 기도하는 자들을 위해 이 훈련 센터가 세워졌기에 주님을 찬양합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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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39년의 여정이 다 헛수고였을까요?

밤에 두세 번 깨서 일어났습니다.
몸이 불편하고 마음이 편하지 않네요.
“지쳐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이곳저곳을 다녀야 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성경 배달을 위해 외국에 나와 있고 토요일 새벽에는 서울로 돌아갑니다.
주일 새벽에는 강화 다락방을 떠나 천안으로, 밀양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고는 다시 한 번 해외의 중국인 교회에 초청이 있어 주말을 보내야 합니다.
주어진 삶을 지금까지 감당케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큽니다.
이렇게 39년째 살아가는 것이 은혜일 뿐입니다.

북한 땅에 영적 인프라를 깔아보겠다고 중국을 드나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북한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지키실까요?
그 땅 하나님의 백성을 어떻게 하시려는 것일까요?

한국의 하나님의 교회는 어찌하시려는지
해외에 성경 배달을 위해 나와 있으면서도 여전히 뉴스를 보며 주님께 아뢰어 봅니다.
온 세상을 다니며 북한 땅을 위해 기도를 부탁해 왔는데
성경을 북한 땅에 들여보내면서 그 땅에 들어가 은밀하게 일을 진행해 왔는데
이 39년의 여정이 다 헛수고였을까요?
아버지~ 아버지~ 하는 북한 성도의 울부짖음을 하나님은 외면하시려는 것일까요?
그래도 또 일어나 주어진 일을 해야 하겠지요?
이제 다시 하나님만 의지하며 감당해 보려 합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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