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콤특집1-1] 탈북민부터 북한성도까지 성경이 보내졌습니다!(2022.02)

모퉁이돌선교회 사역의 중심에는 성경 배달이 있다. 2021년 한 해 동안 성경 배달 사역에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가 부은 바 되어 지난 6월 25일, 남북한의 언어를 한 장에서 비교하며 볼 수 있는 “남북한 병행성경”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작년 10월 중순부터 12월까지 ‘마중물 성경 배달’이라고 명명한 사역이 진행되었다.
바로 하나님께서 복음통일의 마중물로 이 땅에 보내신 3만 5천 명 탈북민의 10%에 해당하는 3천 5백 명에게 “남북한 병행성경”을 성탄 선물로 전하는 사역이었다. 시작부터 하나님의 은혜로 계획되고 진행된 ‘마중물 성경 배달’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행사를 나누고자 한다.

하나님께서 기도하며 사랑으로 준비케 하셨다

“복음통일의 마중물인 당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남북한 병행성경을 받는 탈북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귀한 자녀이고 백성임을 축복하는 사랑의 마음을 담아 본회 일꾼들이 작성한 문구이다. 뿐만 아니라 마중물 헌금을 하는 한국 성도들이 탈북민을 축복하는 짧은 글을 써서 보내왔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말씀 안에서 보이시고 충만한 기쁨으로 채우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복음통일의 마중물인 당신을 사랑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기쁜 성탄의 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함께 기뻐할 형제자매들이 있어 더욱 감사합니다. 복음통일의 마중물인 당신을 축복합니다.”, “늘 북한을 위해, 탈북 지체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어요. 소망의 하나님께서 복음의 문을 여실 때 함께 가요. 사랑합니다” 이 글들을 모아 남북한 병행성경에 동봉할 예쁜 성탄 카드를 준비하고 붙이는 작업을 영하의 추운 날씨에 창고에서 진행했다. 포장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탈북 성도 몇 명이 “우리도 그 일을 하고 싶다”는 의견을 주어 자리를 마련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과 남한 성도들의 사랑에 감격하며 기쁨으로 작업에 참여하였다.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마중물 성경 배달을 이끄셨다

“수년 동안 밤새도록 여러 권의 책을 썼지만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번에 쓴 책의 1쇄가 모두 팔려서, 연말에 400만 원이 통장에 들어왔습니다. 눈이 휘둥그레져서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하고 외쳤습니다. 그때 우연히 제 사무실에 배달된 모퉁이돌선교회의 편지를 뜯었는데 탈북민에게 남북한 병행성경을 성탄선물로 전한다는 안내가 있었습니다. 자세히 읽다가 한 권당 4만 원이라는 가격에 눈길이 꽂혔습니다. ‘어~ 10권이면 40만 원 아닌가…?’ 순간 떼어놓은 십일조를 여기에 헌금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권의 성경이 탈북민에게 전달된다니 고마웠습니다. 책을 써서 받은 인세로 성경책을 선물할 수 있다니 감사했습니다. 이 사역이 더 크게 확장되어 탈북민과 북한 선교에 주의 영광이 비춰 오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교수로 재직 중인 한 성도가 보내온 글이다. 이 밖에도 마중물 성경 배달 소식을 접하고 기꺼이 헌금하겠다는 한국 성도들의 손길이 이어졌다. 남북한 병행성경을 문광서원과 시중 서점에서 100권, 500권씩 직접 구입해서 본회에 기증한 분들이 있는가 하면 소득의 십일조와 소중하게 간직했던 패물 등을 마중물 성경 배달에 써 달라고 내놓은 분들도 있었다. 또 모 교회 북한선교회에 소속된 탈북민들은 성경을 그냥 받을 수 없다면서 십시일반으로 모은 헌금을 보내오기도 했다.

10월 중순부터 시작된 마중물 사역은 11월 마지막 주부터 매주 1천여 권의 성경이 모아졌다. 한국만이 아닌 미주 지역에서도 750여 권의 성경을 구입할 수 있는 헌금이 모아졌다. 1권부터 2권, 10권, 40권, 50권, 100권, 500권까지 성도들이 힘을 다해 마중물 성경 배달에 참여하는 놀라운 역사가 이어졌다.
“아! 하나님이 정말 마중물 사역을 기뻐하시는 것을 알겠네요.” 마중물 성경 배달이 진행되는 동안 일꾼들이 한결같이 고백한 말이다. 2021년 연말까지 애초에 목표한 3천5백권을 훌쩍 넘긴 5천4백 권의 헌금이 마중물 성경 배달에 드려졌다. 하나님께서 친히 하늘 문을 여시고 성령의 폭포수를 부어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넘치게 헌금을 채워 주심으로 탈북민 교회와 기관 등에 남북한 병행성경을 풍성하게 나눌 수 있었다.

포장 작업과 함께 마중물 성경 배달의 본격적인 막이 올랐다. ‘복음통일의 마중물인 당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라고 쓴 띠지를 두르고 한국 성도들이 남긴 축복의 말을 카드로 만들어서 동봉했다.
지난 12월 6일, 탈북민 교회 목회자들을 초청해서 예배하고 남북한 병행성경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첫 번째 마중물 성경 배달이 이루어진 셈이다. 탈북민 목회자들은 성경을 받은 즉시 뜯어서 내용을 살폈고 개교회 성도들과 선물을 나눌 기쁨을 안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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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특집1-2] 하나님께서 탈북 교회와 성도들에게 놀라운 역사를 이루셨습니다!(2022.02)

마중물 성경 배달은 2022년 1월 현재까지 약 3천2백여 권의 성경이 배달되었고, 더 필요하다는 요청이 계속되고 있어 2022년에도 배달이 지속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까지 탈북민 교회에 64%, 탈북민 사역 단체에 29%, 개인에게 7%의 비율로 남북한 병행성경이 전달되었다. 단체의 경우 탈북민 재소자들을 방문해서 말씀을 전하는 단체, 탈북민을 초청해서 매년 성탄 예배를 드리는 단체, 탈북민들과 성경 공부를 하거나 북한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단체, 탈북민 학교 및 탈북민 신학생 모임 등에 성경이 보내졌다. 다음은 성경을 받은 탈북 성도들이 보낸 다양한 감사와 기쁨의 소식들이다.

북한 말로 성경을 읽으며 하루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남북한 병행성경을 보는 순간 북한 사람이나 한국 사람이나 다 같이 애용할 수 있는 성경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단체에서는 제가 제일 먼저 성경 신청서를 작성했습니다. 남북한병행성경으로 84세 되신 저희 성도님이 예배 시간에 한 개 장을 봉독했는데 그분이 ‘진짜 우리 북한 말로 표현되어 있으니까 너무 편안하게 다가온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비교하면서 읽으니까 성경을 더 보게 된다고 다른 많은 성도님들도 좋아하셨습니다. 무엇보다 교회에서 통독을 진행하고 있는데 남북한병행성경을 받은 후로는 성경을 읽고 소감을 쓰는 글의 분량이 길어졌습니다. 이전에는 성경을 보기 힘들어 하던 분들도 매일 말씀을 읽으며 깨달은 내용을 올립니다. 텔레비전으로 시간을 보내던 분들이 하루를 하나님께 드리게 된 겁니다. 교인들 성경 읽기에 도움이 되고 최고치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정말 귀한 책입니다.” 갈릴리평강교회 김정옥 전도사의 고백이다.
마중물 성경 배달은 2021년 12월 6일 탈북민 목회자들을 본회로 초청해서 모임을 가지면서 시작되었다. 그때 하나님을 예배하고 남북한 병행성경을 각 교회가 필요한 만큼 선물로 전달했는데 김정옥 전도사도 여기에 참석했다. 모임 이후 교회 성도들과 남북한 병행성경을 나누고 함께 읽으면서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감사한 소식을 전해왔다.

비교하며 볼 수 있는 성경이 절실히필요했습니다


“교인 한 분 한 분께 나눠 드렸더니 고향의 향수가 느껴진다면서 너무 좋아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북한말이 더 나긋하게 들려옵니다. 북한 언어로 되어 있으니까 따뜻하고 감회가 새롭더군요. 성경을 처음 읽는 북한 사람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말로 들려올 것입니다. 성경에는 어려운 단어들이 있지 않습니까? 한국 언어를 이해 못 하는 성도들도 있는데 비교하면서리 말씀을 보면 도움이 될 겁니다. 이렇게 비교하며 볼 수 있게 출판된 성경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북부중앙교회를 담임하는 김강오 목사의 설명이다.
한국에 와서 정착해서 살아가지만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언어들 때문에 애태우던 중에 남북한의 언어를 한 장에서 비교해 가며 읽을 수 있는 성경이 위로가 되고 또 기쁨이 되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난해한 말씀 구절이 우리말로 풀어집니다


“남북한 병행성경은 고향에 있는 북한 사람들이 봐도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제가 처음 성경을 읽을 때 이해가 안 돼서 힘들었는데 저 같은 사람들이 보면 ‘이 말이 이 말이구나. 원래 번역한 말은 이런 뜻이구나.’ 하면서 도움을 받을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 금방 온 사람들도 개역개정을 읽기 힘들어 합니다. 북한 말은 단순하면서 풀이 식입니다. 난해한 말씀 구절을 우리말로 설명해 주니까 탈북민 초신자들에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신학생으로 탈북민 교회 개척을 앞두고 있는 김영호 전도사의 고백이다.

우리말 교과서를 보는 것 같습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탈북민들에게 남북한 병행성경을 나눴는데, 우리는 선물로 받지만 이 성경을 북한에 보낼 수 있도록 헌금하자라며 탈북민들을 독려했습니다. 기존의 남한 성경을 대하는 탈북민들은 일단 모르는 것이 많고 ‘이건 남의 것이다’라는 생각도 있고 무엇보다 감정이 틀려서 잘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런데 북조선 문화어로 된 남북한 병행성경은 ‘우리말 북한 교과서네’라며 본인들 구역 모임에서 읽고 토론하며 ‘남한 표준어는 이렇게 표현되네’ 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은혜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지구별 통일선교회 박찬섭 선교사가 탈북민들과 성경을 나누면서 기쁨으로 보낸 소식이다.

영적인 감각이 잘 안겨 옵니다


“이전에 읽던 성경과는 달리 안겨 오는 감이 좋았습니다. 영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감동이 되었습니다. 문구 하나 하나 기도를 많이 했는지 잘 안겨 오더군요. 다른 탈북민들과 이 성경책을 나누었는데 조선어 문화어로 된 성경이라고 하니까 바로 개봉해서 봤습니다. 양쪽 말이 한 장에 대비적으로 나와 있는 것을 보고는 너도나도 ‘이거 참 잘했다’고 말했습니다. 얼마 전 두 권을 북한 형제들에게 보냈습니다. 그들도 너무 좋아했습니다. 이 남북한 병행성경은 북한 안에 있는 사람들도 참 잘 읽을 것입니다. 거기는 책이 없으니까 성경의 모든 내용을 탐독해서 흡수하고 소화해 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북한 사람들은 고전적인 것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에 옆에 있는 옛날 성경(개역한글)도 열심히 읽을 것입니다.” 주경배 목사의 고백이다.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말씀의 깊이와 넓이를 깨달아 영이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자리로 이끌린 바 되었으니 어찌 기쁘지 아니할까? 무엇보다 2권의 성경을 북한 형제들에게 보냈고 그들도 너무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하루 빨리 북한 성도들에게도 준비된 남북한 병행성경이 보내질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하게 된다.

고향에서 이 성경책으로 전도할 겁니다


“북한에서 쓰는 말이 그대로 실려 있습니다. 가라사대라는 말도 없고, 깜부기나 시방 같은 북한 사람들이 다 아는 단어는 그대로 살려서 편찬했더군요. 그래서 많이 쉽고 이해가 잘 됩니다. 아마 우리 사람들은 다 저와 같은 마음일 겁니다. 저에게 7~8권의 성경이 있지만 이 성경책이 제일 귀합니다. 성경을 공부할 때면 자꾸 손이 가고 더 보려고 애씁니다. 맨 처음 여기 성경을 읽을 때 이해가 안 돼서 그냥 덮어놨습니다. 목사님은 거리감이 느껴져서 묻는 것이 부끄럽고, 붙들고 앉아서 공부할 만한 믿음은 안 되고 해서 신앙이 자라지 못했습니다. 통일이 되면 고향 사람들에게 이 성경책으로 전도할 겁니다. 저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도표를 그려서 성경을 설명하는 비전을 갖고 있는데 남북한 병행성경은 그걸 준비하기가 훨씬 쉽습니다.” 가평에서 쉼터를 섬기는 김사라 목사가 보내 온 소식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을 깨닫고 사명자로 서서 고향 사람들을 남북한 병행성경으로 전도하겠다는 결단이 일어나고 있다. 더 많은 탈북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군사들로 세워지기를 소망한다.

2021년 남북연합성탄예배에 참석한 탈북민들에게 남북한병행성경을 선물하는 마중물 성경 배달 시간을 가졌다. 탈북 성도들과 마주선 한국 성도들이 복음통일의 마중물로 온 그들을 마음껏 축복하며 위해서 기도하고 말씀 안에서 하나되는 감격을 누렸다.
띵동~ 성경 배달 왔습니다! 수도권에 위치한 탈북민 교회들을 직접 방문해서 남북한병행성경을 전달했다. 목회자들은 정성스럽게 포장된 성경을 받으며 기뻐했고 특별히 성탄절에 탈북민 성도들과 하나님의 말씀을 폭넓고 깊게 나누는 뜻 깊은 시간을 갖게 된 것에 감사했다.

탈북민들의 반응을 보면서, 마중물 성경 배달이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정말 필요한 사역이었다는 생각을 더욱 깊이 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복음 통일의 날, 북한 사람과 한국 사람 모두가 공히 사용할 수 있는 남북한병행성경을 준비하게 하시고, 남과 북이 어우러져서 하나님을 예배할 그날에 앞서 한국 성도와 탈북민들로 북한어와 남한어로 말씀을 읽으며 먼저 하나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카타콤특집 1-1] 먼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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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성도 이야기] 하루 빨리 우리 형제들에게 전해지길 바랍니다(2022.02)

몇 달 동안 남북한 병행성경을 감사한 마음으로 읽고 있습니다.
북과 남이 복음으로 하나가 되기를 바라며 많은 품을 들여 출간한 이 성경이 하루 빨리 우리 형제들에게 전해졌으면 하는 바램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남한에서 우리 북한 형제를 위해 이토록 품을 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면 복음 전도도 더 잘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성경은 한국말에 익숙되지 않은 우리 형제들에게 정말 많은 도움을 주리라 믿고 있습니다.
지난 시기 내가 성경이 리해되지 않아 부록을 찾아보던 수고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책처럼 친근감을 가지고 쉽게 읽어나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더 쉽게 리해된다는 생각이 커집니다.
한국말 성경 한 번 읽는 품이면 이 남북한 병행성경을 3~4번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출간에 동원되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2022. 1. 18. 박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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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특집 1] 2022년, 무익한 종으로 섬깁니다!(2022.01)

“무익한 종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새해 모퉁이돌선교회의 사역 전반에 걸친 핵심 주제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돌아온 이반석 총무의 대답이다. ‘무익한 종’은 본회를 이끄는 이삭 목사의 별호로 사용되어 온 단어이기도 하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선교의 방법과 형태가 새롭게 변화되고 있는 이때, 모퉁이돌선교회는 맡겨진 하나님의 사역을 ‘무익한 종’의 모습으로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본회 대표인 이삭 목사와 총무인 이반석 목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정리하였다.

Q

‘무익한 종’ 하면 이삭 목사님이 먼저 떠오릅니다.
글 말미에 쓰시는 ‘무익한 종 이삭’ 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습니까?

이삭 목사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라는 제자들의 요청에 대한 답으로 나온 이야기가 무익한 종의 비유입니다. 종에게는 주어진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일을 끝내고 돌아온 종에게 주인은 ‘수고했다. 이제 준비된 음식을 먹어라.’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네가 와서 준비해. 이것도 네 일이야.’라고 말합니다. 옆에서 시중을 드는데도 ‘고맙다’는 말조차 없습니다. 이것은 철저히 낮아진 자리입니다.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믿음이 이것입니다. 마지막 밟히는 상황에서도 ‘마땅히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나는 큰 교회를 지을 거야.’, ‘선교사 천 명을 내보낼 거야.’ 하는 것이 큰 믿음이 아니라 ‘네게 주어진 일이 있잖아. 고맙다는 말을 못 들어도 마땅히 할 일이라고 느껴야 해.’라는 성경 속 믿음의 정의를 읽으면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그 믿음, 그 무익한 종의 자리로 가고 싶다는 바람을 가졌습니다.

Q

무익한 종 이삭 목사에서 주어진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이삭 목사‘성경 배달이 무슨 선교냐’라는 핀잔을 종종 들었습니다만 제가 중국에 가서 보니 성경을 필요로 하는 성도들이 있었고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껏 셀 수 없이 중국을 오가면서 성경을 배달했는데 그것을 저에게 주어진 일로 받아들여서 순종한 것이 저에게는 무익한 종의 자리였습니다.

Q

그렇다면 모퉁이돌선교회 차원에서는 무익한 종의 고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반석 목사  ‘ 나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라는 말 속에는 순종의 개념이 녹아 있습니다. 또한 거기에는 모퉁이돌선교회의 고백인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는 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아닌 하나님이 하셨다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선교회를 운영하면서 미처 상상하지 못한 어려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작년만 해도 북한이 국경을 닫았잖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북한에 식량과 성경을 들여 보낼 문이 열렸고, 중국에 나온 북한인들을 훈련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뭐라고 하냐면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6개월도 못 받았을 훈련을 2년이나 받았다는 겁니다. 또 외부의 지원이 끊어진 북한 교회가 더 자립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 옵니다. 사람이 고의적으로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 “하나님이 하시더라.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말할 수 밖에요.

Q

모퉁이돌선교회가 올해로 37년을 맞았습니다.
사역 중에 무익한 종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을 만난 적이 있으신가요?

이삭 목사   1980년대 중국은 정말 가난했습니다. 그런데 그곳 성도들은 스스로를 가난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지키신 분이 하나님이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고백을 듣고 그만 울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어려운데, 정부에서 교회 모임을 공식적으로 허락하기까지 그렇게 큰 고초를 당하고도 자본주의가 들어와서 믿음이 변질될 것을 염려하는 그분들의 모습이 저에게는 누가복음 17장 무익한 종의 비유가 적용된 삶으로 보였습니다. 그분들을 만날 수 있음이 제게 큰 은혜이고 복이었습니다.

Q

무익한 종으로서 모퉁이돌선교회
2022년 사역이 어떻게 펼쳐질 것으로 예상하십니까?

 이반석 목사   모퉁이돌선교회가 지나온 37년을 돌아보면 저희의 전략과 관계 없이 하나님은 역사하셨습니다. 무익한 종의 개념에는 기획이란 것이 없습니다. 순종만 있습니다. 순종하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기쁨으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계획을 세우고 ‘하나님, 이거 하겠습니다’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었을 때 결과적으로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이 되었습니다. 올해 선교회를 향해 하나님이 주신 마음은 ‘지금까지 해 오던 일을 다 하고 계속 시중을 들어라’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종처럼 시중을 드는 것이 저희가 할 일이고, 그 자체가 무익한 종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Q

모퉁이돌선교회가 신년에도 시중을 들어야 할 영역이 무엇일까요?

 이반석 목사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한 북한과 중국, 아랍과 이스라엘까지 계속해서 성경을 배달하고, 복음이 제한된 핍박받는 지역에 복음을 전하고 사역할 수 있는 현지 지도자들을 훈련하는 신학교를 배달하고, 또한 그곳에서 일할 특공대와 같은 선교사들을 훈련하고, 지하교회를 개척하고, 믿는 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는 구제 사역을 감당할 것입니다. 더하여 선교회가 가진 기본 생각 중 하나는 ‘함께 일함’입니다. 회원들이 헌금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과 뜻과 계획을 알아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것이 첫째 목적입니다. 이를 위하여 그동안 북한선교, 선교적 성경 연구, 기도, 치유, 전도 등의 훈련을 진행해 왔는데 올해는 전 회원이 무익한 종이 되어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겠다라고 생각합니다. 무익한 종으로 기도하고 찬양하고 예배하고 말씀에 집중하고 순종하여서 선교 사역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실질적으로는 통일이 되어 북한 사람을 만났을 때 그들에게 겸손한 모습, 섬김의 모습, 무익한 종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2022년 모퉁이돌선교회가 가진 목양의 핵심입니다.

Q

전 회원이 무익한 종이 되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이삭 목사   말씀에 깊이 빠지라는 당부를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한 마디 한 마디를 놓치지 않고 내 삶에서 하나님이 요구하고 원하시는 바를 지키겠다는 각오를 한다면 2022년이 복된 해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무익한 종이 되어 말씀을 배달합니다

무익한 종의 정체성은 모퉁이돌선교회의 로고에 잘 반영되어 있다. 1990년 5월 《카타콤 소식지》에 처음 등장한 이 로고는 양 손에 성경 가방을 들고 복음이 제한된 지역으로 들어가는 이삭 목사를 나타낸다. 로고를 자세히 살펴 보면, 박해와 감시가 심한 선교지를 형상화한 철조망 너머로 이삭 목사가 이미 건너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 순종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핍박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성경책을 배달하기 위해 철조망 안으로 발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무익한 종의 걸음 걸음을 통해 하나님이 부정되는 그곳에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 구원이 선포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 선교 현장에서 성경책을 받고 하늘의 은혜를 맛본 성도들의 감격과 평안은 파란색 원 테두리와 대비된 순결한 흰색 여백으로 표현되었다. 2022년에도 세상의 형편과 상황에 관계없이 성경책 한 권을 간절히 기다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모퉁이돌선교회의 말씀 행진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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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특집 2] 은혜를 힘입는 믿음의 사람(2022.01)

웃사의 죽음과 오벧에돔의 복

주의 일에 최선을 다해 봉사하던 사람들이 사무엘서에 나온 웃사의 이야기를 읽다가 충격에 빠지게 된다. “거룩한 하나님의 궤에 함부로 손대서 웃사가 죽었다면, 70년 가까이 궤를 모시면서 과연 그들이 한 번도 궤에 손대지 않았을까? 그동안은 아무 일이 없었는데 왜 갑자기 이런 비극이 벌어졌을까?”
히브리어 원문을 읽다 보면 웃사의 죽음에 대한 두 가지 힌트를 발견할 수 있다. 첫째로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는 새 수레를 ‘이끌고’
‘몰고’ 언덕 위에 있는 집에서 나왔다. 그런데 하나님의 궤는 레위인 중 고핫 자손이 어깨에 메고(출25:14, 신10:8) 이동해야 한다. 그리고 이때 “거룩한 어떤 물건을 만지면 죽게 된다(민4:15)”. 웃사는 궤를 어깨에 메지 않고 이동 중에 만졌기 때문에 죽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궤가 아비나답의 집에서 떠나는 모습을 한 번 그려 보자. 소의 고삐를 잡고 ‘이끄는’ 아효와 수레에 실린 법궤를 자랑스럽게 바라보며 뒤따르는 웃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우리 아비나답 가문 말고 누가 감히 하나님의 궤를 이동할 수 있단 말이야? 70년 가까이 팽개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레위인의 법도를 따진다고? 어림도 없지….” 하는 웃사의 코웃음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웃사의 속마음을 성경 기자는 이렇게 고발한다. “나곤의 타작마당에서 소들이 비틀거리자 웃사가 ‘몸을 던져’ 하나님의 궤를 ‘움켜 잡았다’(6절)” 대부분 성경에는 ‘손을 들어’라는 구절이 포함돼 있는데 원문에는
“보내다”는 의미의 동사가 쓰일 뿐이기에 ‘몸을 던져’로 이해하는 것이 좋으며, 궤를 ‘붙들다’는 ‘소유’의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에 ‘움켜 잡았다’고 표현한 것이다. 바로 이 두 단어가 두 번째 힌트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 중 누구도 70년 가까이 관심도 기울이지 않던 여호와의 궤를 끝까지 지켜낸 웃사와 그 가족의 수고는 인정받아야 마땅하지만, 레위인이 어깨에 메고 이동해야 한다는 여호와의 명령조차 바꿀 만큼인가? 레위인들이 궤를 메고 가면 자신의 가문의 수고가 드러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워 새 수레를 만들 것을 고집하며 궤 앞뒤를 옹위하면서까지 사람들에게 인정과 칭찬을 받고 싶어한 웃사의 ‘행위’를 하나님이 치신 것은 아니었을까? 이와 대비하여 어쩔 수 없이 여호와의 궤를 모시게 된 오벧에돔과 그 집에는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셨다.

믿지 않은 모세와 믿음으로 의롭게 된 아브라함

출애굽 이후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여러 번 하나님께 불순종했다. 가데스 지역에서 물이 없어 이스라엘 백성이 분통을 터뜨릴 때,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온 회중 앞에서 지팡이를 잡고 바위에게 명령하면 그 바위가 물을 낼 것이다(민20:8)”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화가 난 모세는 소집된 백성 앞에서 “너희 반역자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해 이 바위에서 물이 나오게 해야 하겠느냐?”라고 말하며 지팡이로 두 번 바위를 내리쳤다. 이때 많은 물이 바위에서 나와 백성과 가축이 마실 수 있었지만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엄중히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믿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의 눈앞에서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으므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주는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민20:12)”라고.
수시로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온 모세의 수고보다 모세의 과오가 더 컸던 걸까? 지팡이를 잡으라고만 했지 치라는 명령은 없었는데 두 번이나 지팡이를 내리쳤기 때문에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다고 봐야 할까? 본문을 자세히 보면, 모세의 잘못에 대한 직접적이고 명확한 언급 없이 ‘너희가 나를 믿지 않았다’는 구절을 강조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 백성의 의(義)를 정하는 율법을 하나님에게서 받아 백성에게 전한 모세가 ‘믿음이 없어’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가나안 땅을 누리지 못했다. 그러나 율법이 없는 시절을 산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것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창15:6)”는 은혜를 받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경을 살펴 보면, 율법이 주어지기 전 ‘은혜’로 말미암는 믿음의 삶을 사는 것과 율법 아래에 있으면서 믿음이 부족한 ‘행위’를 구별함으로써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율법이 주어지기 전이라도 은혜를 힘입어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 백성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데 반하여, 율법이 주어진 후인데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들의 행위가 믿음이 없어서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익한 종’에 관하여 구약 성경이 묘사한 이 두 가지 사건에는 한 가지 공통된 사실이 있다. 바로 ‘율법의 행위’가 하나님 백성의 의(義)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은 믿음이 의를 이룬다는 사실이다. 율법의 준수를 통한 구원을 강조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구약 성경에 ‘행위’가 아닌 ‘은혜’를 강조하는 말씀이 많다는 사실은 구약 성경을 ‘은혜의 복음’의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쳐 준다.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들의 행위가 믿음이 없어서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아스 목사(본회 교육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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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특집 3] 이전과 다른 선교사역 2막이 시작되었습니다!(2022.01)

교활한 사탄의 공격을 받다

작년 가을, 찌르는 듯한 격렬한 복부 통증 때문에 현지 병원을 찾았다. 담당 의사는 검진을 끝내고 왜 이렇게 늦게 왔냐며 췌장암 말기 판정을 내렸다. 사형 선고와 다름없었는데 이상하게 걱정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한국에 들어가서 수술을 받아야겠기에 며칠간 밤을 새며 사역을 정리하고 비행기편을 예약했다.
떠나기 하루 전날 밤까지도 사역 정리에 매달렸다. 그런데 계속 무리한 탓인지 눈꺼풀은 감기고 몸은 축 늘어졌다. 얼른 책상에 놓인 비타민 보조제 한 웅큼을 쥐어서 입에 털어 넣었다. 삼십여 분이 지났을 때쯤, 입이 바짝바짝 타 들어가기 시작했다. 물을 들이켜고 돌아서서 앉으면 또 입이 말랐다. 심한 갈증이 지속되는 상태로 한두 시간 정도 일에 집중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포기하고 녹초가 된 몸을 침대에 뉘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침대 위에 있던 내 몸이 갑자기 붕 떠서 1m 가량을 날아가 내동댕이쳐졌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통이 밀려왔다. 그런데도 몸은 굳어져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공간이나 시간의 흐름도 제대로 지각되지 않았다. ‘주님, 이게 뭐죠?’ 하며 속으로 외치다가 겨우 몸을 추슬러 침대까지 기어갔다. 그런데 또 10여 분 후쯤, 나는 침대 다른 편으로 다시 던져졌다. 그제서야 나는 사탄의 공격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즉각적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사탄아, 물러가라.” 하며 떠날 것을 명령하였다. 그러고는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곧바로 곯아 떨어졌다.
아침에 눈을 뜬 건 휴대폰 문자 소리 때문이었다. ‘비행기 탔어요?’ 아내였다. 시계는 오전 10시 30분, 예약한 비행기가 이륙할 시간 30분 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혼비백산하여 휴대폰을 확인하니 나를 공항까지 데려다 주기로 한 동료 선교사의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다수 찍혀 있었다. 벨소리를 듣지 못하고 잔 것이었다. 황급히 침대에서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어제 일하던 책상에 놓인 약통에 눈길이 머물렀다. 안에는 진통제가 들어 있었다. 간밤에 진통제를 비타민으로 오인하고 20여 알이나 삼킨 것이었다. 타들어 가는 목마름과 정신을 차릴 수 없는 혼미함이 이것 때문이었다. 잠자는 중에 정체 모를 공격을 받고 치사량에 가까운 진통제를 먹은 것, 나는 이 두 가지 모두가 사탄의 책략이라고 생각한다.

순종의 삶으로 이끌림받다

며칠 후 나는 한국에 도착했고,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집도의는 결과적으로 췌장암은 아니나 장기간 항암제를 복용해야 하는 희귀암이라고 말했다. 선교지에서 췌장암으로 진단 받았을 때 내 안에 떠오른 성경 구절이 있었다.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히 12: 7~8)”이었다. 그리고 기도 중에 하나님은 뱃속의 혹이 암이 아니고 죽을 병도 아니라는 응답을 주셨기에 그동안 사실 내 마음에는 요동함이나 두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새롭게 삶을 결단하는 계기를 가졌다.
그동안 나는 하나님 앞에서 반쪽만 순종하는 불충성의 사람이었다. 나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일을 그저 상식 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선교사였다. 그나마도 하지 않으면 직무유기라는 일말의 양심은 있었지만 온전하게 순종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하나님은 나에게 선교사로서의 분명한 정체성과 삶을 요구하셨다.
양단 간의 결단을 내리고 나는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버렸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모든 재능과 은사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선교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앞으로 집중해야 할 사역에 대해 말씀하시기 시작하셨다. 그것은 나로부터 나올 수 없는 것이기에 오늘도 나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며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따라 하루를 살아간다. 놀라운 것은 실수가 없는 완전한 하나님께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사역 2막을 여시고 순종의 삶으로 이끌고 계시다는 것이다.
건강을 위해 체중을 감량하는 과정에서 병원 검진을 받게 하시고, 췌장암 말기라는 의사의 소견에 급히 귀국해서 수술하도록 도우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한국에 와서 검진하고 수술하면서 수많은 동역자들의 기도와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무엇보다 내 열심으로 하던 사역의 중심에서 돌이켜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과 은혜로 채워주신 크고 놀라우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리고 작년 12월 7일 새벽에 아내와 같이 기도할 때, 주님께서 “이제 OO으로 갈 준비를 시작해라. 그곳이 2기 사역의 베이스가 될 것이다. 그곳은 영적 전쟁의 최선봉이다. 그곳에서 네가 선교사들을 훈련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다. 주님의 말씀을 아내와 함께 나누고 OO에서 어떤 방법으로 주님의 뜻을 이룰 것인가를 기도하며 자료를 수집하고 사역을 준비해 가고 있다. 2022년을 시작하는 이때, 선교 사역 2막을 시작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만을 기대한다.

김화평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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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특집 1] 선교하는 중국 교회, 지도자 양성을 통해 세워지다

평양에서 예루살렘까지 복음이 제한된 지역에서 선교 사역이 이루어지고 있다.
코로나로 많은 제약이 따르지만 하나님은 쉬지 않으시고 복음이 증거되게 역사하신다. 2021년 성탄절을 맞아 하나님과 함께하는 선교사들의 소식을 모아서 나눈다.

1921년 7월 23일, 당원 50명을 대표하는 13명의 지역별 핵심 인사들이 상하이에 모여 제1차 전국대표대회를 열고 중국 공산당 창당을 선언했다. 그 후 100년이 지난 지금, 공산당원들은 9,200만 명으로 늘어나 전 중국을 장악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의 중앙집권적인 통치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다름아닌 총서기이다.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거대 중국은 중국식 공산당의 역사를 거리낌 없이 써 내려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 왕을 위시한 수많은 인물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이루고 계신다. 중국의 총서기 역시 하나님의 통치 아래 놓여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본 글에서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현 중국을 통치하는 중국 공산당의 핵심 리더인 시진핑의 통치 이념과 그가 중국 교회에 무엇을 요구하는지, 그에 따라 중국 교회는 어떠한 형편에 직면해 있으며, 어떻게 헤쳐 나가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신마오쩌둥 시대의 중국, 법으로 교회를 다스리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목표는 중국의 자본주의를 억제하고 마오쩌둥의 사회주의 비전을 따르는 것으로 최근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빅테크 및 사교육 시장에 대한 엄격한 규제들은 단순하게 말을 잘 듣지 않는 기업들에 대한 통제 강화 때문이 아니라 공산당이 돈의 흐름을 지배하고 민간 기업의 이윤 창출을 엄격히 제어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마오쩌둥의 원조 사회주의로 나아가고 있다.”
2021년 7월 21일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내용이다. 기사에서 기술했듯 시진핑은 21세기의 신마오쩌둥이 되어 빅테크 시대의 시(习)황제처럼 중국을 통치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자 야망이다. 장기적인 공산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시진핑은 국가에 속한 모든 것을 법치 하에 두고, 그간 서방 세계로부터 비난받아 온 종교 관련 사안의 법 개정을 시도하였다.
그에 따라 중국 교회는 정부가 일반 회사에 요구하는 법 규정을 그대로 적용받는 곤경에 처했다. 교회 설립과 장소 등록, 대표자 선임, 헌금 출납, 직원 채용 등을 정부에 보고하고 허락을 받아야만 중국 내에서 합법적으로 종교 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 교회가 정부의 방침과 규정을 어길 경우에는 일반 법률에 근거하여 처리됨으로 교회는 이전에 누리던 작은 자유마저 박탈당했다.
중국 정부는 건축법 위반을 빌미 삼아 십자가와 교회를 철거하고, 정부가 허락하지 않은 집회라는 명목을 내세워 그간 행해지던 예배를 불법 집회로 처리하고 불이행 시에는 벌금, 체포, 구금도 불사했다. 또 헌금 내역을 세무 보고하지 않은 교회의 예배와 행정 등에 정부가 관여하면서 교회 내에 공산당 슬로건과 성경 구절을 대치하여 걸어 놓게 함으로써 마치 문화대혁명 시기에 군중을 강당에 모아 놓고 공산당 사상을 학습하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오늘날 중국 교회는 삼자교회든 가정교회든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

공산당보다 더 위대한 분이 함께하신다


당면한 핍박에 중국 교회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한 사역자의 외침에서 찾을 수 있다. 불법 예배를 드렸다는 이유로 체포된 어떤 교회 사역자는 “우리와 함께 계신 분이 중국 공산당보다 더 위대하시다는 사실에 대해 주님께 감사드리며 우리를 핍박하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라고 말했다.
중국 공산당을 향한 중국 교회의 신앙 고백은 비단 이 한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수많은 성도들이 정부 탄압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우리가 너무 나태했어. 그동안 잘 먹고 잘 사는 데에만 신경을 쓰느라 신앙 생활은 뒷전이었지. 이건 하나님이 주신 경고야.”라고 이야기하며 체포되고 구금당하는 개인적인 희생들을 귀한 영적 훈련으로 받아들이며 교회에 대한 핍박을 넉넉한 믿음으로 이겨내고 있다.
불 같은 시험을 만나 뜨거운 용광로에서 정금으로 제련되는 중국 교회와 성도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예수의 제자로 부름 받은 영혼들을 말씀의 꼴로 먹이고 성장시킬 지도자가 아닐까? 중국 교회를 섬기는 어느 현장 사역자는 지도자 양성에 대한 목마름을 이렇게 표현했다.

“몇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문화대혁명으로 교회당 문이 닫히고 목회자가 없고 성경책이 없고 찬송가 책이 없고 정규 모임이 완전히 없어진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인도해 주셨던 것을 되새기면서 이 시대 속에서의 저의 역할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재정비함이 필요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문화대혁명 가운데서 저희 할머니는 빌려온 성경책을 이불 속에서 읽으시고 또 저에게 읽도록 하시고 늘 혼자 가사가 들리지 않도록 찬송하시고 1년에 봄가을로 최소한 두 번은 타 지역에 계시는 영적인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저희 집으로 초대하여 일주일 동안 말씀을 공부하고 교제하였습니다. 그 당시 성경책도 없고 찬송가도 없고 저희 집이 10평도 안 되는 비좁은 공간이었지만 지도자들은 일주일 내내 숙식을 같이 하면서 마음속에 새겨진 말씀을 저희 가족 식구들에게 전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꾼들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을 양육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성장하도록 하셨습니다. 어느 시대나 본질은 변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복음이 전해져서 진리의 말씀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태어나게 하는 이 사역이 지속되어야 하고 태어난 새 생명들이 진리의 말씀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성장하도록 섬겨야 하고 그리하여 매일 매일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경험하며 살도록 해야 할 사명감을 더욱더 투철하게 인지하면서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이미 세워진 주의 일꾼들이 외적인 환경의 변화에 흔들리지 말고 더욱더 사명감으로 불타오르도록 함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역 리더들을 격려하여 더욱더 사역자들 기도 모임을 잘 진행해 가도록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도자 말씀 훈련 사역이 지속되다


꺾인 꽃은 금새 시들기 마련이다. 아무리 좋은 화병에 꽂고 물을 듬뿍 준다 해도 며칠간만 아름답게 피어 있을 뿐이다. 결국 꽃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화분에 심어야 한다. 그러면 관리 여하에 따라 몇 개월, 아니 몇 년도 생명이 연장될 수 있다. 교회 지도자를 배양하는 일이 꼭 이와 같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도들이 계속 양육받고 지도자들이 양성될 때 교회는 굳건히 서고 이들을 통해 선교하는 교회로 발돋움할 수 있다. 지도자 배출 없는 중국 선교, 선교 중국은 허울 좋은 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모퉁이돌선교회는 팬데믹으로 모일 수 없는 상황에서도 특별히 중국 농촌 교회 지도자들을 훈련하는 교육을 멈추지 않았고, 온라인 소그룹 모임을 통해 가르치는 일을 지속해 왔다.
중국 교회는 왜 평안하지 않고 시련을 겪어야 할까 하는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현 상황을 설명할 수 없다. 우리는 영적인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중국 교회가 ‘선교’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신다. 이슬람권 등 미복음화된 민족에게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하나님은 천천만만의 그리스도의 군사를 일으켜서 사용하기 위해 중국 교회를 말씀으로 깨우고 훈련시키고 계신다. 어떠한 핍박과 시련이 와도 흔들림 없이 굳건한 진리의 토대 위에 성숙한 믿음으로 나아갈 중국 교회를 만들기 위해 하나님은 유한한 인간 시진핑과 곧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중국 공산당을 앞세워 뜻을 이루고 계신다.
우리는 중국 교회와 주의 사역자들이 공산당으로부터 파생되는 믿음의 훈련을 잘 받아서 더욱더 큰 사명감으로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감당하도록 이들을 향한 도고와 지도자 훈련에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특별히 팬데믹으로 많은 것이 제한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본체이셨지만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적 사랑을 전하는 선교의 불길이 평양에서 예루살렘까지 활화산처럼 타오르길 소망한다.

김베리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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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특집 2] 임마누엘의 땅 예루살렘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밝히며

예수님이 나신 땅에서 맞는 첫 번째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며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 임마누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새삼 느낀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외면하는 유대인과 아랍인의 어둠이 복음의 빛으로 밝혀지기를 소망한다.

지난 9월 28일, 길었던 1년 7개월의 기다림을 끝내고 하나님이 부르신 땅 이스라엘에 도착하였다. 부르심이 있는 땅이어서 그랬을까? 기나긴 기다림 끝에 얻은 승전보와 같았기에 더욱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항공사의 실수로 프랑스에 남겨진 짐을 찾느라 2시간을 헤매야 했다. 3일 뒤에나 짐을 보내주겠다는 서류를 받아 들고 공항에 길게 늘어선 줄 끝에 합류해 PCR 검사를 받았다. 드디어 공항 밖을 빠져 나와 인파 속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을 때의 안도감이란 감사와 함께 터져 나오는 모종의 답답함을 날리는 깊은 한숨 같았다.

마중 나온 선교사님에게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 어떻게 하셨느냐고 감히 물을 수 없었다. 그의 고통이 오늘날 내게 은혜가 되었을 뿐이다. 그 은혜가 충분하게 부어졌기에 앞으로 고생 문이 훤하다는 선교사님의 말씀을 웃어 넘겼다. 그런데 그날 이후 ‘거절의 땅’이라는 별명을 붙여도 될 정도로 나에게는 익숙지 않은 거절감이 매일 찾아왔다.

계좌를 개설하러 간 은행에서 직원은 내가 히브리어를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계좌를 열어 줄 수 없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다른 직원이 와서 도와주었지만 처음 직원과의 실랑이가 이미 나의 진을 빼놓은 상태였다. 한국 같았으면 한 시간이면 충분히 만들고도 남았을 체크카드를 일주일 후에나 찾으러 오라고 했다. 집세 자동 이체를 신청하려면 또 어떤 산들을 넘어야 할지….

운전 면허증을 발급할 때는 또 어떠했나. 예약 후에 방문해도 줄을 서야 했고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직원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으며 그 직원은 운전면허경력증명서라는 난생 처음 듣는 서류를 떼 오라고 요구했다. 서류가 없으면 다시 시험을 보라는 엄포를 놓고 유유히 사라지는 직원의 뒷모습을 나는 멍하니 바라봐야 했다.

광야 기도회를 다녀오니 11년 된 내 차의 후면이 박살 나 있었다. 블랙박스나 CCTV가 없어서 누가 그랬는지 알 길이 없었다. 사람이 다치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수리 비용을 주님께 올려드리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복음, 어둠을 밝히는 그리스도의 빛

이스라엘에 이제 갓 한 달 넘긴 어린아이와 같은 내가 고생한 것이 무엇이랴. 개척자로서 이 땅에서 몇 년을 버틴 선교사님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학교에 다녀야 비자가 나오니 사역과 학업을 병행해야 하는 그들의 노고를 어찌 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하루 아침에 비자가 거절되어 나간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한두 번 들은 것이 아니다.

외로움, 불친절, 부당한 대우, 가족의 아픔과 슬픔을 묵묵히 받아 낸 그들의 모습이 지금 이스라엘의 복음을 위한 기초석이 되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영혼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기는 선교사님들의 열심이 하늘에 쌓아 둔 귀한 보석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선교 센터에서 수요 기도회를 마치고 선교사님과 다과를 나누는 중에 예루살렘과 거리가 먼 한글어학당에 유류비와 체력 부담 때문에 교사로 보낼 사람이 없다고 탄식하셨다. 안타까워하시는 선교사님과 내 눈이 때마침 마주쳐 선교사님은 ‘네가 가라’고 하셨다. 나는 재정도 체력도 하나님이 주실 것을 믿는다며 큰소리쳤지만 내심 한글어학당 사역으로 복음이 전해질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되었다. 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역임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예루살렘에서 150km 떨어진 지역의 한글어학당에 도착했다.

그런데 사역을 감당하러 간 첫 날, 그만 심장이 멎는 듯하였다. 한 아랍 청년이 성경이 궁금하다며 가방에서 성경을 꺼내는 것이었다. 그의 담대한 행동은 언어와 문화를 통해 복음을 전달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이자 열매였다. 10년 전 제천에서 전도사로 있을 때 스리랑카 청년 7명을 모아 놓고 예배하며 한글을 가르친 경험이 나에게 있었기에 이번 사역이 가능했음을 생각할 때 인생의 어느 한 부분도 놓침 없이 정확하게 계획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이 오늘도 이스라엘의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에게 동일하게 역사하고 계심을 깨닫게 된다.

오늘 서둘러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을 하였다. 11월 초이니 빠른 감이 없지 않지만 마음이 급했다. 예수님이 나신 이 땅에서의 첫 크리스마스 맞이 준비를 하나님을 향한 신앙 고백으로 드리고 싶어서였다. 내가 그동안 경험한 완악한 이스라엘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포기하지 않으시는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깨달았다. 그들의 모습이 내 모습임을 인정하며 임마누엘의 은혜, 그 사랑의 깊이와 높이와 길이와 너비가 어떠함을 차마 가늠할 수 없다고 하나님께 이야기하는 내 고백의 행위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여전히 부인하며 외면하는 유대인과 아랍인에게 복음이 어둠을 밝히는 이 크리스마스 트리 전구처럼 전해지기를 바란다. 그들의 어두운 눈을 밝히시는 그리스도의 빛이 들어가기를, 또한 어린아이들과의 관계가 한국 문화를 통해 맺어지고 깊어져서 복음이 전해지기를, 그리고 고생과 환란으로 눈물 뿌린 선교사들의 얼굴에 그리스도의 꽃 향기가 나기를, 그래서 오직 그리스도만이 이 땅에서 존귀함을 받으시기를 원한다.

김나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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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 띄우는 편지] 북한 친구에게 보내는 성탄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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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특집 1] 북한성도, 금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입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작년 1월 북한은 국가비상방역체계를 선포하고 국경을 전면 폐쇄했다. 이에 따라 북한 내부로의 사람이나 물자의 이동, 전화 연락에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이런 와중에도 소식통을 통해 살인적인 물가 급상승, 꽃제비 및 부랑자 증가, 아사자 속출 등 경제난에 관한 소식들이 계속 들어왔기에 식량 등을 마련해서 급히 들여보냈고 기회가 될 때마다 성경과 성경 교재도 조금씩 보냈다. 그렇게 물건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놀랍게도 북한 지하교회 네트워크가 여전히 건재해 있음을 확인하고, 외부 지원이 끊긴 고립무원의 형편에서도 북한 성도들이 말씀과 예배에 집중한다는 단편적이지만 감사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지난달, 북녘에서 더 자세한 소식이 오기를 기다리던 중 북한 성도가 쓴 간증문 한 통이 인편으로 배달됐다. 간증문의 주인공은 몇 해 전 중국에서 성경을 배우고 북한으로 돌아갔다가 이번에 다시 중국에 나와 공부하며 ‘진짜 성도’가 되었는데, 이제 북한에 복음을 들고 갈 각오가 선 사람이라고 일꾼은 소개했다. 그의 말처럼 정성스럽게 써내려 간 간증문에는 거듭난 성도의 고백과 전도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환경의 어떠함에 주목하지 않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을 인정하고 기꺼이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갈 것을 헌신하는 북한 성도의 간증문을 나눈다.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는 고백의 감사

코로나 방역으로 국경이 막힌 기간 나는 여러 분들의 따뜻한 방조(도움)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학습하며 자신을 훈련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성과는 예수님의 품 안에서 날마다 기뻐하며, 기도하며, 감사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였다면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요? 나는 나의 무거운 모든 짐을 주님께 맡겨드리고 평안을 누리고 있습니다. 매일 예수님께 나의 심령을 아뢰며 기도합니다.
정말로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티끌에 불과한 나를 사랑으로 보살피고 계신다는 것이 확고한 믿음으로 안겨옵니다. 처음에는 저절로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믿고 따라야 한다고 하니까 머리로 지식적으로만 받아들이려 하였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독생자를 내놓으신 하나님의 사랑과 아버지께 순종하며 그 험난한 피의 가시밭길을 걸어가신 예수님의 사랑에 목이 메여 나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사랑하리라 마음 다졌습니다.
그러나 이때는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철저히 나의 의를 따르는 믿음이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점차적으로 저절로 믿어지는 믿음이 생겨 나를 돌아버리지 않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범사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감사

나는 지금까지 성경 말씀과 성경 강의안, 참고 서적들, 영상 설교를 많이 들었습니다. 이 기간 놀랄 만한 뚜렷한 변화는 모르겠지만 저의 마음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힘을 다해 사랑하는 것처럼 가족으로부터 시작해서 이웃들도 사랑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지난 시기 가족 앞에서도 양보를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국경을 열지 않는 문제로 화를 내곤 하였지만 이제 하나님께서 다 허락하신 문제라고 생각하니 화가 더는 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긍휼한 마음이 생겨 매일 ‘우리 원수님을 긍휼히 여기시고 하루 빨리 마음을 바꾸어 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내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문제도 모든 일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의 여유가 생깁니다. 내가 집으로 돌아가서 이웃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의 복음을 전할 준비가 아직 되지 못해서라고 생각하니 마음의 가책을 받으며 한 말씀이라도 더 가슴에 새기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합니다.

십자가 사랑에 감사

또 달라진 제 마음은 예수님께 빚진 종이라는 생각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 저의 죄가 너무 커서인 것 같습니다. 이 나이 되도록 하나님을 모르고 산 것이 너무 가슴 아프고 예수님께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는 나 같은 죄인을 살리기 위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 같은 땀방울을 흘리며 십자가의 큰 고통을 당하셨는데 나는 예수님을 위하여 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은혜로 거저 받은 선물이라고는 하지만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는 것 하나만으로 은혜의 선물, 의의 선물을 너무 많이 받은 것만 같아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나는 평생, 예수님을 만나는 그날까지 이 죄송한 마음을 항상 간직하고 예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선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여 살아가겠습니다.
바울이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지식을 배설물처럼 버린다고 한 말씀의 뜻이 이제야 좀 깨달아지는 것 같습니다. 성경을 읽으며 처음에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지식을 다 버리면 세상이 어떻게 발전하겠는가만 생각하면서 의문이 들었었는데 이제 겨우 알아졌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하나님의 지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가말리엘 출신인 바울도 자기 지식을 아낌없이 버리는데 나 같은 것이야 감히 대비할 수도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기부인과 부르심의 사명을 고백하며 감사

다음은 아직도 나를 너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회개하는 마음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자랑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나는 한참 소리치며 일하던 때를 자주 추억하면서 그래도 즐겁게 추억할 일이 있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 나에게 있어서 그 일을 추억할 것이 아니라 나의 옛 사람을 깨끗이 벗어버리고 그 자리에 예수님을 알아가는 말씀을 차곡차곡 가슴에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나를 가장 낮은 자로 여기는 겸손한 마음, 인내하는 마음의 끈을 놓지 않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그런즉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라”
(갈2:20, 남북한 병행성경 북한어)
나는 이 말씀을 항상 마음에 새기며 매일 죽노라의 삶을 살며 나를 통해서 내가 아닌 예수님이 나오도록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나를 보고 예수님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이토록 오랫동안 훈련시키시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항상 명심하고 앞으로 고향에 가서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살아갈 수 있도록 있는 힘을 다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조명하며 나아가 부르심의 사명을 분명하게 고백하는 북한 성도의 아름다운 감사의 고백이다. 일꾼은 이 성도뿐만 아니라 중국의 몇몇 처소에서 북한 성도들이 말씀으로 훈련받고 있다고 귀띔해 주었다. 팬데믹 상황에서도 북한 선교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허락된 소수 정예의 북한 사람들이 중국 땅에서 진리로 양육받고 있다.
코로나19가 종식되고 북한으로의 왕래가 자유로워질 그날,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빛으로 일어나 북한의 영적 어두움을 밝힐 선교사와 교회로 북녘 땅에 세워질 것이다. 북한 내부 성도들의 구체적인 근황을 세세히 알 수는 없지만, 지금 중국 땅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북녘 땅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믿는다.
더하여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예배당에 함께 모여 자유로이 예배 드리는 것에 제한받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분명한 것은 어떤 것에도 우리는 핑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해가 마무리되어 가는 11월에 전적인 은혜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다시 한 번 결단하는 믿음이 우리 가운데 샘솟기를 기대하고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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