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자 편지] 저는 그 사람들 중 한 명일 뿐입니다

성경을 가득히 채운 가방 몇 개씩을 들고 메고 떠났습니다.
많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현장에 도착해 보면 늘 부족하게 여겨지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비용이 좀 들어도 무거워도 더 가지고 올 걸 후회가 됐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 또 성경을 준비했고, 성경 구입 비용을 담당한 분들에게 안전하게 돌아왔다는 전화를 했습니다.
그러고 나면 수요일에 시간이 있느냐, 금요 철야 기도회에 와 줄 수 있느냐, 유년부 아이들에게 설교하러 올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렇게 36년 넘게 성경 배달과 설교와 글 쓰는 일로 집을 떠나 바쁘게 살았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여행 일정이 제한되다 보니 지난 2월과 3월에는 정말 처음으로 오랫동안 집에 머물렀습니다.
아이들과 지난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뜻밖에도 “아빠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고 있기에 고마웠다”라며 눈시울을 붉히는 것을 보게 됐습니다.
고맙기는 하지만 아빠가 없는 시간은 어쩔 수 없는 부재와 아픔이었을 것입니다.
나름대로 짧은 시간이라도 아빠의 역할을 잘 감당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이는 제가 사역 중심의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한편으로 저는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역을 잘 감당해 왔나? 질문을 해봅니다.
현장에서 만난 성도들에게 성경은 잘 나누어 주었지만 설교나 글 쓰는 일에는 늘 부족함을 느끼기에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선교 보고를 하라고 하면 가깝든 멀든 어디든지 갔습니다.
교회의 크고 작음이나 나이의 많고 어림도 구별하지 않았습니다.
청소년 집회에서 도전받은 학생들이 성장해 선교사, 목사로 헌신한 일꾼들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아프리카에서 어떤 이는 아랍권에서 사역합니다.
지난 3월 만 76세의 나이에 허리를 다쳐 불편한 상황임에도 여전히 선교 보고를 요청받고 있습니다. 아픈 허리를 매만져가며 승합자로 부산까지 가서 선교 보고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몸이 불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보고를 하는 것은 책임일 따름입니다.
어제 오늘만이 아닌 지난 기간 연약함을 안고 사역에 임했습니다.
40도의 열이 있어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현장으로 가곤 했습니다.
14시간 비행기 안에서 끙끙거리면서도 저같이 어리석고 부족한 사람이 이렇게라도 쓰임받을 수 있음이 고마웠습니다.
성경을 받아 들고 울며 고마워하는 이들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한 권의 책이 나를 살렸다고 말하는 성도의 고백이 있었습니다.
저로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습니다.
코로나가 창궐한 지금도 사역이 점점 확장되고 있음은 감사한 일입니다.
아랍권과 이스라엘, 불교권으로 사역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많은 나라의 성도들이 북한과 중국과 몽골과 러시아와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합니다.
저는 그 사람들 중 한 명일 뿐입니다.
7만 명의 한국 회원들이 확보되어 함께 이 길을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7만 명의 성도가 하나님께 읊조리며 간구하는 기도가 상달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10월 30일 북한에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임하길 선포하는 기도회가 준비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 한 사람이 되어 함께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2021년 10월 15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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