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자편지] 한 줌의 쌀, 그리고 한 줌의 흙을 위해 함께 기도할 이들을 찾습니다

한 줌의 쌀이라도 보내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한 자루, 한 가마를 자전거, 리어카, 버스, 트럭 등에 실어서 보냈습니다.
밀가루와 옥수수를 컨테이너를 동원해서 보내기도 했습니다.
의약품을 비행기와 선박에 의존해서 보낸 적도 있었습니다.
밀수라는 극단적인 방법도 사용해야 했습니다.

굶어 죽어가는 것을 듣고서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145번 중국을 드나들 때마다 조선족 성도들이 아낌없이 도와 주었습니다.
자그마한 조선족 교회와 목회자들도 외면할 수 없어서 그들에게 성경책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교회를 건축하고 신학교를 시작하고 고아원, 양로원을 세워서 후원했습니다.
할 수 있는 대로 조선족을 해외로 이끌어 내서 공부도 시켰습니다.
방송, 라디오, 컴퓨터, 핸드폰 등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찾아내야 했습니다.

일꾼들이 몽골과 러시아에서 기꺼이 자원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위해 기꺼이 삶을 드렸습니다.
그렇게 수고한 종들에게서 복음을 받아 들고 현장으로 돌아간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36년이라는 세월 동안 해외 여러 나라를 방문하며 복음이 저 북녘 땅에서 역사하고 있음을 나누었습니다.
눈물을 흘려서 호소하고 저들을 잊지 말자고 외쳤습니다.
지금도 몽골에서 러시아에서 북한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일꾼들이 일어납니다.
어떤 이들은 북한에 들어가 사역을 하다가 잡혀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중남미로, 모슬렘 권에서 사역을 했습니다.
불교 권에서 일하는 이들도 만났습니다.
현장은 다르지만 북한 성도를 기억하고 기도하는 분들입니다.
기회가 오면 평양에 가서 교회를 개척할 날을 기다리는 분들입니다.

사역을 하면서 지치고 피곤해서 쉬기도 했습니다.
연약한 몸을 이끌고 보냄 받은 곳으로 가야 했습니다.
매를 맞았습니다.
끌려가서 고문도 당했습니다.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일곱 살 때 “북한으로 가라”시던 어머님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그 때문에 고통스런 과정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받아 지금까지 감당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통일은 오지 않았습니다.
한국 교회가 모두 일어나서 기도하고 한 줌의 쌀을 보내기 위해 헌신한다면 일어날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한국 교회 성도를 위해서도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화훈련원은 한국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오는 세대를 위해 준비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입니다.
훈련원 수리가 끝나가자 또 생각에 젖었습니다.
터키의 갑바도기아에 있는 지하 성도들의 땅굴처럼 파내고 싶었습니다.
한 줌의 흙을 파내어 기도 땅굴을 만들고자 합니다.
북한 성도들의 형편을 조금이라도 기억하며 기도하고자 합니다.

저는 여전히 한 줌의 쌀과 밀가루를 북한에 보내고 있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책임이기에 이 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게 주어진 이웃이잖아요?
한 줌의 쌀, 그리고 한 줌의 흙을 위해 함께 기도할 이들을 찾습니다.

2021년 9월 15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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