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칼럼] 평양까지 가서라도 순종할 뿐입니다!

저의 첫 평양 방문은 정탐이 목적이었습니다.

관광팀에 끼여서 사진을 찍으며 현장을 뇌리에 새기고 사람들을 살폈습니다.

관광 일정을 따라 평양의 봉수교회를 가고 옥류관 청빈관 등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방문에서는 좀 더 과감한 시도들을 했습니다.

뉴톰슨 성경 75권, 꼬마 성경 50권, 4영리 400권을 숨겨서 들어갔습니다.

라디오도 가지고 가서 남한의 극동방송을 청취했습니다.

하지만 대담한 정탐 수준이었을 뿐이지 복음을 전하지는 못했습니다.

1990년 8월 4일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하나님의 책망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지 않았다고 지적하셨습니다.

두려움과 조심스러움 속에서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일들을 했을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목사인 저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분명하게 전하라는 것이었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저의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이후 7년을 북한 땅에 못 들어가면서 회개했습니다.


목사로서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평양 방문은 1996년부터 다시 시작됐습니다.

성경은 물론이고 신학 서적과 설교집들을 준비해서 들어갔습니다.

성도들과의 만남은 갈 때마다 가능했습니다.

황해도 신천을 여러 번 방문했습니다.

김익두 목사님의 마지막 사역지이자 반미 운동 고취가 목적인 박물관이 있는 곳입니다.

개성을 방문하면 의례 판문각을 안내해 주었습니다.

사리원을 지나면서는 개발되지 않은 모습을 눈여겨 보았습니다.

평양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북한에는 없는 자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책과 비디오 테이프를 가지고 가서 만나 교제하는 이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보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넘겨 준 것입니다.

그들과 만날 때마다 성경 말씀들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가져 간 짐 가운데에는 우리가 민통선 안에서 띄우던 복음 풍선도 있었습니다.

헬륨 가스가 없어 입으로 바람을 불어 창문 밖으로 날려 보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런 것들이 어떻게 평양까지 날라오는가?’라며 수군거렸습니다.

풍선에 지문이나 침이 남지 않도록 조심해서 처리했지만 불안했습니다.

묘향산으로 일찍 가야 했기에 그 사람들 틈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저의 평양 방문은 어떻게든 말씀을 전하는 것만이 목적이었습니다.

동상이나 납 인형 앞에서 절하는 것은 주님이 기뻐하지 않으시기에 거부했습니다.

그런 일정에서 몇몇 사람들의 신앙적인 고백을 들었습니다.

모퉁이돌선교회에 대한 소문 때문에 더 이상 북한 방문을 진행하지 못하게 되자 다른 일꾼들을 평양으로 들여보냈습니다.

복음 풍선을 기회 있을 때마다 남쪽에서 띄워 보냈습니다.

중국에서 북한인들을 만나 복음 전하는 사역을 활발하게 진행했습니다.

후방인 남한에서는 선교사와 기도하는 일꾼들이 늘어났습니다.


결국 저의 고백은 이것입니다.

“일은 하나님이 하실 뿐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를 그 자리에 보내셨을 뿐이다.”

북한으로 보내진 성경을 읽고 탈북하여 모퉁이돌선교회에서 일하는 일꾼이 있습니다.

열차 밖으로 버려진 사영리를 주워 든 사람이 남한에 와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로 사영리를 줍게 하셨고 탈북하게 하셨고 목사로 만드셨습니다.

그렇기에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악하지만 선한 뜻을 심어준 분이 하나님이시고 순종하고픈 마음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일이 진행되도록 이끄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한 사람의 순종이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느냐 하는 것은 제가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순종할 뿐입니다.

평양까지 가서라도.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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