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성도 편지] 심장에 새겨진 진리를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2026. 3)

여기 북조선에서 살아있는 자체가 걱정거리입니다. 배고픔의 항시적인 체험 상태에서 육체 보존의 최저 상태를 유지하려고 오직 살기 위한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얼마나 많은 여인들이 남편과 아이들의 한 끼 식사를 위해 법관들과 경비대의 탄압을 무릅쓰고 위험한 밀수의 길을 걷다가 맞아 죽고 물에 빠져 죽고 벼랑에서 떨어져 죽고 또 법 기관의 조사와 단련대의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이것은 오늘 나 아니면, 내 주위의 형제, 친척, 친우들 속에서 항시적으로 보고 느끼는 현상입니다.
또 일하러 나가도 한 끼 벌이는 고사하고 빚 만지며 직장에 나가지 않으면 “무직”이란 죄를 씌워 형벌을 가합니다.

오늘 우리는 모순에 빠져 우리 사회를 분석해 봅니다.
“행복”이란 말은 “지옥의 세상”이라는 말이 되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한 투쟁으로 살아온 우리에게도 드디여 진정한 사랑과 생활의 지침을 받았습니다.
이 사상과 사랑은 저의 신념으로 되였고 삶의 보람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여 준 고마운 분들, 그들의 진정한 눈물과 마음은 얼어붙었던, 의심 많던 우리의 마음을 녹이고 진정으로 행복과 사랑을 느끼게 했으며 삶의 보람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알게 된 그날부터 오늘까지 시간이 흐를수록 이것은 사상의 신념으로 되었으며 처음에는 두려움 속에 있었으나 오늘에는 그 무엇도 바꿀 수 없는 진리로 저의 심장에 새겨졌습니다.
그 어떤 광풍이 불어와도 진리를 바꾸지 않을 것이요, 또 진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만이 아닌, 수많은 우리 동포들에게도 비치며 그들도 인생의 행복을 찾고, 인간의 가치를 찾고, 신념으로 느끼였으면, 그날이 반드시 오리라고 확신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을 축복해 주십시오.
우리의 해방이 되여 주고 신념이 되여 준 00교회의 부흥을 원합니다.
또 성심성의로 진정으로 불쌍한 북의 형제들을 도와주는 한국교회의 부흥을 축원하며 한국의 형제들에게 진심의 인사를 올립니다.

북에서 00

SNS로 공유하기:

[카타콤특집] 북한 선교, 북중 접경 1334km를 가다(2026. 3)

202603catacombSC01

12주 과정의 북한선교훈련 강의를 들은 훈련생들이 지난 1월, 북중 접경 지역으로 현장학습을 떠났다.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에 있는 북한을 지척에서 바라보며, 황폐한 그 땅을 향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갔다. 캐리어에는 몰래 숨겨온 성경책을 넣고 1334km 국경을 따라 이동하며 긴장과 떨림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달하고, 변방의 길목에 포진해 있는 사역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도전받는 시간을 가졌다.

“나도 그들 때문에 울고 있다”는 하나님의 음성 때문에 북한을 위해 헌신한 사역자, 직접 북한에 들어갈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을 동원해 일을 이루고 계심을 고백한 선교사,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북한에 예수를 증거하려는 마음과 용기가 충만했던 성도 등 북한 선교 사역의 최전방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자리를 지키고 계신 귀한 분들이었다.

뻗으면 닿을 듯한 저곳에 북한이 있다

중국에 도착해 입국 심사대 앞에 서니 신경이 곤두섰다. 성경책이 짐 검사를 통과할는지, 곤란한 질문을 받으면 뭐라고 대답할지, 혹여라도 성경책이 발각돼 입국이 거절되지는 않을지,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그러나 최대한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며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다. 다행히 별 탈 없이 일행 모두 입국 도장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제 수화물 수취대에서 짐을 찾아가려는데 아뿔싸, 또 하나의 관문이 남아 있었다. 짐을 한 번 더 엑스레이 기계에 넣어 세관을 통관하는 절차였다.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 이번에도 무사 통과였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출국장을 빠져나온 우리는 국경 쪽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 입구로 향했다. 그런데 조금 전에 검사를 끝낸 가방을 또 엑스레이 검색대에 올려놓으라고 했다. 이 과정은 기차로 갈아탈 때도 반복됐는데, 탈북자들이 국경을 넘어 중국에 오는 데 성공한다 해도, 공공 교통 수단을 이용할 수 없고, 곳곳에 설치된 안면 인식 보안 카메라 감시망 때문에 숨을 곳이 없을 것 같았다.
장시간의 이동 끝에 북한과 국경을 맞댄 중국의 접경 도시 T에 도착했다. 그날은 최고 기온이 영하 16도인 강추위가 몰아 닥친 날이었다.

정신을 번뜩 들게 만드는 차가운 대기 속으로 하얀 입김이 흩어졌다 사라졌다. 저 멀리 북한과 중국을 잇는 대교와 철교, 그리고 희끗희끗하게 눈이 내려앉은 북한의 산야와 건물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방향으로 걷고 있는데 갑자기 제복을 입은 공안이 나타났다. 그는 우리 모두의 여권을 요구했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사진을 찍고는, 우리가 그곳을 떠날 때까지 따라다니며 기념 사진을 찍지 못하게 막았다. 우리를 안내한 현지인은 한국 관광객들이 이 도시에서 찍은 사진을 북한을 헐뜯는 글과 함께 인터넷에 올려 문제가 됐고, 비교적 최근에 이루어진 한국 대통령의 방중으로 긴장도가 높아진 탓이라고 귀띔했다.
좀 더 가까이에서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으신 그 땅을 보고자 강변으로 내려갔다. 날카로운 가시가 촘촘히 박힌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김일성·김정일의 대형 초상화와 ‘경외하는 최고지도자 김정은 동지 만세!’,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 만세!’ 같은 구호가 나붙은 건물이 보였다. 수십 년 전에 죽은 김씨 부자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현실이 서글프게 다가왔다. 북한을 지배하는 김씨 일가의 통치 이념이 무너지고 복음으로 자유케 되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하며 그 자리를 떠났다.

202603CatacombCS012

높다란 철책이 도열한 변방의 강가에서

T시에서 충분히 머물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하나님이 이번 여정에 허락하신 하이라이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굽이굽이 난 강변 도로를 따라가는 일정이었다. 차 안에서 우리를 안내하던 현지인이 길 왼편을 가리키며 “저기가 다 북한 땅입니다.”라고 했다. 북한은 겹겹의 철조망에 가로막혀 있었다. 중국의 이중 철책, 강, 그리고 북한 쪽 철책을 지나야 비로소 북한 땅이었다.
현지인은 설명을 이어갔다. “몇 년 전 도로 쪽으로 철조망을 하나 더 세웠습니다. 북한에서는 군인들이 강변에 지뢰를 심었다는 소문이 돕니다. 이래저래 중국에서도 북한에서도 강을 건너기가 어렵게 됐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니 한층 견고해지고 높아진 중국과 북한의 철조망이 더욱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지지대로 보강한 철책 틈으로 산기슭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집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강은 허옇게 질린 듯 꽁꽁 얼어붙어 있었고, 제대로 눈이 덮이지 않은 헐벗은 산등성이들이 적막한 풍경을 연출했다. 20~30분 동안 북한 쪽을 바라봤지만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다들 말없이 차창을 응시하는데 도로 옆으로 차가 섰다. 강 너머 북한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장소였다. 앙상한 나뭇가지와 뾰족뾰족한 철조망으로 조금 가려진 것 외에는 시야가 거칠 것이 없었다. 가지런히 놓여 있는 하모니카 집들에선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렇게 추운데 연기를 피워 올리는 굴뚝 하나 없었다. 코끝이 찡하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뭐라도 땟거리가 있기를, 차디찬 그곳에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이 생명과 온기로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랐다.
하지만 감흥에 젖는 것도 잠시, 출발하기 전에 카메라 셔터를 누르려는데, 차 안에 있던 현지인이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영문을 몰라 하는 내게 일행은 손짓으로 위를 가리켰다. 손가락 끝에는 직경이 50cm는 될 법한 감시 카메라가 이리저리 눈을 굴리고 찍고 있었다. 우리가 서 있는 곳 반대 편으로 카메라가 회전해서 돌아갔을 때에야 겨우 한 장을 도촬할 수 있었다.

202603CatacombCS0145

지금도 쉬지 않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선교 현장을 만나다

출발부터 도착까지, 현장학습 기간 내내 하나님의 큰 그림을 본 것 같다. 각국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북한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보았다. 일정 중에 만난 사역자들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뇌리에 강하게 박혀 있다. “나도 그들 때문에 울고 있다”는 하나님의 음성 때문에 북한을 위해 헌신하신 분, 본인은 직접 북한에 들어갈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을 동원해 일을 이루고 계심을 고백하신 분,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북한에 예수를 증거하려는 마음과 용기가 충만했던 그래서 너무나 부러웠던 분 등 사역의 최전방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귀한 사역자들이었다. 그들의 간증을 글로 읽은 것이 아니라 내가 듣고 만났기에 그 감동은 크고 생생했다.
그뿐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북한의 풍경과 사람, 구호 등이 그저 들은 정보가 아니라 나의 경험이 되었기에 차원이 달랐다. 

202603CatacombCS013

저렇게 가까이에 있는데 왜 우리 민족은 이렇게 떨어져 있어야 하지? 소리쳐서 부르고 싶은데 왜 못 외치지? 지나가는 북한 사람의 손을 한 번이라도 잡아주고 싶은데 왜 못 잡지? 이럴 때 우리 주님의 마음은 어떠실까? 현장학습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복잡한 생각과 감정들일 것이다. 또한 북한선교훈련 강의 시간에 들은 성경 배달을 직접 해 볼 수 있는 것도 현장학습의 백미였다. 이삭 목사님이 성경을 가져 가실 때도 나처럼 이렇게 긴장하셨을까?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저 관광객으로 왔는데도 검사를 한다니 이렇게 떨리는데 목숨을 걸고 탈북한 북한 사람들은 어떨까? 그런 마음들을 만 분의 일이라도 느낄 수 있었다. 뒤돌아보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섬세한 지휘 아래 얻어진 너무나 소중한 선교 경험이었다. 김애리

국경의 끝자락, 눈이 아닌 가슴으로 담다

202603CatacombCS016

서둘러 차에 올라 강변 드라이브를 이어갔다. 차창 밖으로 중국 쪽은 녹색, 북한 쪽은 무채색의 철책이 끝 간 데 없이 흘러갔다. 쌩쌩 속도를 내던 차가 서서히 한 철책 앞에 멈춰 섰다. 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 세관과 북한 세관이 마주한 곳이었다. 이곳을 구경하려는 사람이 많은지 중국 쪽 철조망에는 “망원경 3원”이라고 적힌 팻말이 걸려 있었다.
우리는 미리 준비해 간 망원경을 철책의 날카로운 단면을 피해 최대한 붙였다. 육안으로 보이지 않던 세밀한 풍경이 렌즈를 투과해서 펼쳐졌다. 지은 지 얼마 안 된 듯한 건물 앞에 버스 한 대가 정차해 있고, 경비병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포착됐다. 10여 분 정도 관찰했지만 중국이나 북한의 세관을 통과해 진입하는 차량은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그러나 보이는 것과는 다른지 현지인은 “물자가 여기를 통해 많이 들락날락합니다. 시내에 가면 조선 물건만 취급하는 상점도 있습니다. 다 여기서 온 물건들입니다.”라고 했다.
우리는 계속 차를 몰아 P 지역으로 향했다. 도중에 초소를 통과해야 했는데 어김없이 검문을 받았다. 공안은 우리 모두의 얼굴을 안면 인식 카메라에 인식시킨 다음 신분증을 검사했다.

어스름이 내려앉는 오후 시간, 사람이 많이 몰리는 P시 유명 접경 관광지의 전망대에 올랐다. 강의 표면이 군데 군데 얼어붙어 있었다. 언뜻 아무런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그러나 엄연히 함부로 넘나들 수 없는 세 나라의 국경이 꼭지점으로 만나는 지역이었다. 이런 사실을 대변하듯 “국경 너머로 도발하거나 촬영을 하지 마시오”라거나 “변경 지역에서는 무인항공기 등 공중부양체를 띄우지 못합니다”라고 쓴 경고판이 붙어 있었다.
산기슭의 북한 마을에서 매서운 바람이 불어왔다. 관광객을 의식한 탓인지 북한 마을의 중앙에는 “새로운 승리를 향하여!”라고 적힌 붉은색 구호판이 큼지막하게 서 있었다. 카메라를 당겨 보니 국경을 연결하는 철교에서 용접하는 인부, 그리고 하얀 모래산 같은 황량한 풍경 속을 걸어가는 사람이 보였다.
코앞의 북한을 비행기와 차를 타고 멀리 돌아서 타국의 영토에서 봐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80년 분단의 아픔이 끝나고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으로 그 땅이 자유케 되기를 소망했다.

202603CatacombCS0145

사역의 실제를 보고 들으며 북한을 향한 기도의 지경이 넓어지다

열방을 위한 기도를 10년 정도 이어오던 중 북한이 열려야 한반도가 준비되고 열방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북한에 대한 관심을 구체적으로 갖기 시작했다. 2024년 봄에 교회에서 하는 북한 선교 강의를 두 번 듣고, 더 알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 모퉁이돌선교회 북한선교훈련 과정을 신청하고 현장학습까지 참여했다.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시작한 현장학습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북한 땅을 최대한 눈에 많이 담아가려고 산등성이를 보고 또 봤다. 현장에서는 기독교 용어를 사용하지 못하고 나눌 때 목소리를 최대한 작게 내야 했는데 그런 것들이 나에게는 커다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아무 장소에서나 큰 소리로 찬양하고 기도하고 예배할 수 있음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체감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기도에 대한 여러 깨달음들이 있었다. 먼저 북한을 위해 기도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북한을 향해 사역하시는 분들이 많음을 알 수 있었다.

202603CatacombCS017

중국 내에서 북한 지하교회를 돕고 계신 분을 포함해서 국적은 다양하지만 북한 선교라는 한 목적을 위해 헌신하시는 선교사님들, 특히 북한 내 학생들에게 빵과 우유를 공급하고 계신 선교사님의 이야기는 정말 감동이었다. 또 하나의 소득은 북한을 향한 나의 기도가 확장되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안방에 걸려 있는 세계지도를 보며 북중 국경의 모든 철조망이 주님의 권세로 무너지게 해 달라는 선포 기도를 했는데, 이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내가 만난 분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더 구체적으로 기도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영적 무장의 중요성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생각해 보면, 여행 내내 나는 약간 눌린 상태로 지냈던 것 같다. 영적으로 무장되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었다. 다음에는 준비 기도를 많이 심고, 북중 접경 지역을 돌며 기도하는 일에 집중해 보고 싶다. 정행복

누구나 성경을 배달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간절히 기다리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선교 현장에 성경을 배달할 때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성경 배달 단기 선교에 참여하기 원하는 분들을 지체하지 말로 연락 주십시오.

문의) 모퉁이돌선교회 02-796-8846

SNS로 공유하기:

[OKCN 방송] 광야의 소리로 ‘하나님의 나팔’을 불고… (2026. 2)

202602catacombSC03

모퉁이돌선교회는 1993년 ‘희망의 소리’로 출발한 라디오 대북방송을 2007년 10월 28일부터 ‘광야의 소리’로 명칭을 변경해 중파, 단파 라디오를 통해 북녘을 향하여 하나님의 나팔을 불며, OKCN 통일의 소리 방송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여 왔다. 신앙의 박해와 핍박 속에서도 모든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여전히 북한 땅을 붙들고 계시기에, 남과 북, 그리고 해외 성도들이 함께 깨어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였다. 여기에 소개하는 몇몇 주요 프로그램들은 모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귀한 통로이다. 이 세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도와 참여로 더욱 선명한 하나님의 소리가 선포되길 소원하며, 각 프로그램의의 방송 사역을 소개한다.

<들리십니까?>

북한의 정치·군사적 긴장, 신앙의 박해, 경제적 어려움 등의 이슈를 남한과 해외에 있는 성도들로 하여금 믿음의 눈으로 분별하여 보고 깨어 기도케 하며, 북한 땅에서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로 하여금 북한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여전히 신실하게 그 땅 가운데 일하고 계신 하나님께로 시선을 향하게 하는 외침이다. ( 서재넷 간사 )

<남과 북 우리는 한 가족>

탈북민들의 간증을 통해 남과 북이 하나님의 사랑 으로 한 가족임을 고백하는 프로그램이다. 믿음으로 성장해 가고 있는 탈북민 성도 그리고 탈북민 목회자, 사업가들을 초대하여 절망과 고통 가운데서 손잡아 이끌어 오신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와 대한민국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주와 동행하는 복된 삶의 간증을 통해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어 감을 나누고 있다.
이 방송이 북한 땅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소리 없이 외치는 성도들에게 위로가 되고, 그 땅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다시금 힘을 얻게 되는 통로가 되기를 소망한다. ( 박릴리 간사 )

<비파와 수금>

450회가 넘는 골방 예배를 이어온 <비파와 수금>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 한 분을 청취자로 삼아 드려지는 진실한 예배이다. 기억에 남는 예배자들이 있다. 아이를 유산한 아픔을 커튼 뒤에 숨어 흐느끼며 ‘광야를 지나며’를 불렀던 임영경 목사님, 오랜 기다림 끝에 ‘요게벳의 노래’를 고백해 준 김선미 집사님이다.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 진실한 고백을 들으시고 두 분 모두에게 쌍둥이를 선물하셨다. 골방에 들어와 아버지 품에 안기면 비로소 진실한 고백이 터져 나와 치유와 회복의 힘이 된다. 하나님을 향한 이 뜨거운 울림이 북한 선교의 소중한 도구로 쓰이길 간절히 소망한다. ( 금명도 목사 )

<원어로 풀어보는 말씀 보따리>

하나님의 마음을 성경 시대의 첫 청취자에게 알려주기 위해 사용한 히브리어와 헬라어 같은 성경 원어(原語)에 대한 이해와 역사적 상황과 지리적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동원하여 하나님 마음을 청취자들에게 배달하는 프로그램이다. 하나님의 진정한 소리가 이 세대 청취자들에게 들려지게 하시 길 간절히 기도한다. ( 보아스 목사 )

<북녘 성도와 함께 드리는 예배>

북한 지하성도들이 매일 정오에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는 시간에 맞춰 매주 목요일 정오에 남북한의 성도들이 함께 모여 예배한다. 이 예배는 녹음되어 방송으로 중파 1566KHZ(주일 새벽 4:00-5:00)와 단파 9365KHZ(주일 밤 11:00-12:30)로 북녘 성도들에게 송출된다.

<하나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모든 세대의 간증· 찬양· 간구와 선포가 릴레이처럼 이어지는 신앙 다큐형 챌린지 참여 프로그램으로, 북녘 지하 성도들에게도 송출된다. 가정과 교회와 직장, 캠퍼스 등에 보냄 받은 남한에서의 삶과 선교 현장에서 이사야, 다니엘, 느헤미야의 고백처럼 이 세대에서 찾으시는 하나님의 부름 앞에 “하나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응답하며 결단하는 삶을 나누고자 한다.

<하나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모든 세대의 간증· 찬양· 간구와 선포가 릴레이처럼 이어지는 신앙 다큐형 챌린지 참여 프로그램으로, 북녘 지하 성도들에게도 송출된다. 가정과 교회와 직장, 캠퍼스 등에 보냄 받은 남한에서의 삶과 선교 현장에서 이사야, 다니엘, 느헤미야의 고백처럼 이 세대에서 찾으시는 하나님의 부름 앞에 “하나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응답하며 결단하는 삶을 나누고자 한다.

방송 사역은 단순한 미디어 활동이 아니라 복음의 최전선에서 이루어지는 영적 전쟁이다. 통일의 소리와 광야의 소리는 모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하나님의 나팔이다. 성령님의 기름부으심 가운데 여러분의 기도와 참여가 없다면 이 사역은 온전히 세워질 수 없다. 방송을 통해 흘러가는 말씀과 찬양과 기도가 북녘 땅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고, 절망 가운데 있는 영혼에게 소망을 심으며, 황폐케 된 이 땅에 주의 얼굴 빛을 비추시는 역사를 이루게 될 것을 기도한다.

SNS로 공유하기:

[사역자 간증] 아내가 감옥에 갇힌 지 한 달이 되었습니다 (2026. 2)

202602catacombSC02

2018년 9월 북경의 시온교회는 중국 당국의 핍박으로 폐쇄되었다.
이후 전국으로 흩어져 소그룹으로 모여 온라인으로 예배하며 100개 교회, 4천 명 이상으로 놀랍게 성장하고 부흥했다. 이를 주시하고 있던 당국에 의해 2025년 10월 9일 중국 시온교회를 담임하는 김명일 목사를 비롯한 사역자 18여 명이 ‘정보 네트워크 불법 이용 죄’로 체포되어 수감 중이다.
그들 중 시온교회에서 대학생 사역을 감당하던 왕준 목사의 아내도 잡혀갔다. 10·9 사건 이후, 한 달째 부재 중인 아내의 상황을 담담히 기술한 양준 목사의 간증이다.

저는 2001년 베이징대학 화학·분자공학대학에 입학했고, 2005년 대학원에서 고고학·문화재대학 과학고고학을 전공했습니다. 과학과 인문학의 영역을 오가며 탐구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영혼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러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간을 구원할 분이심을 알고 예수를 믿었으며, 저는 북경 시온교회 전임 목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저와 사역하는 분들이 현재 형사 구속되어 심문과 판결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 중 한 명이 북경대 07학번 생명과학대학 후배이자 제 아내입니다.

원래 아내가 아닌 제가 감옥에 들어갈 줄 알았습니다. 항상 제가 더 ‘위험’했기 때문입니다.
반 년 전, 주변 교회분들이 경찰서에 불려가서 심문을 받았습니다. 주로 저에 관해 질문했다고 합니다. “누구에게 돈을 송금했나요?”, “그 사람이 집을 샀는데 돈이 어디서 났나요? 당신이 보낸 돈으로 산 것 아닌가요?” 이런 질문들 때문에 그들은 상당한 압박을 느꼈고, 심지어 직장을 잃을 수도 있다는 위협까지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심을 저버리지 않고, 모두 부인했습니다.

교우들은 자신들이 조사받은 내용을 저에게 전해주면서, 동시에 경찰들이 저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증거를 수집 중임을 말해 주었습니다. “사기죄”는 새로운 범죄가 아닙니다. 제가 존경하는 많은 선배들이 이 죄명으로 감옥에 갔습니다. 그래서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일이 마무리되면 곧 행동에 나설 것이라는 것을. 다만 시기가 언제인지를 모를 뿐입니다.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해외로 도피할까? 부모님과 아이들은 어떻게 하지? 오직 기도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호하셔서 악한 자들의 계략이 성공하지 못하게 해 달라고.

그럼에도 저는 더 나쁜 상황이 닥칠 경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반 농담 조로 말했습니다. 만약 내가 감옥에 간다면 나는 걱정하지 말라고. 거기는 숙식 제공이 되니 당신과 아이들이 잘 살아가면 된다라고. 심지어 아내에게 ‘겨울을 위한 비축’이는 제목의 꽤 긴 내용의 편지를 써서 몇 가지 일을 미리 당부해 두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나서 아내의 기억력이 안 좋아져서, 제 글을 언제든지 찾아볼 수 있게 말입니다.

제가 맞닥뜨릴 위험이 어떤 건지 모르지만,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었습니다. 다만 제가 아닌 아내가 끌려가서 갇히게 될 것은 준비가 안 되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둘 다 주시받는 명단에 올라가 있기에, 언제든지 끌려갈 수가 있었습니다.
2025년 10월 9일, 사역자들이 체포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저는 국내에 있지 않아 간신히 피할 수 있었습니다. 아내가 수감된 후 가족들로부터 아내가 연행될 때의 정황을 자세히 들었습니다. 아내의 손을 뒤로 해서 수갑을 채우고 휴대폰과 컴퓨터를 압수해 갔습니다. 세 살도 안 된 두 아이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둘째는 침대에서 펄쩍펄쩍 뛰며 어리둥절했고 엄마 품에 안기려 했지만, 손이 수갑에 묶여 있는 아내는 아이를 안아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둘째는 침대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할머니가 재빨리 달려가 아이를 안아 올렸습니다. 큰 아이는 어렴풋이 상황을 알아차린 듯 엄마의 다리를 붙잡고, 엄마의 등 뒤에 있는 수갑을 풀려고 했습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찢어지는 장면입니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아내가 약을 매일 복용해야 하는 상황인 점입니다. 

가족의 거듭된 요청과 설명 끝에 경찰은 진료 기록 사진을 찍은 뒤 약을 조금 가져갔습니다.
얼마 전 변호사가 아내를 만났을 때, 아이들이 무척 그립다고 말했답니다. 또 저에게는 “여기 환경이 나에게 더 적합해. 난 근시가 없는데, 안에서 안경을 쓸 수 없거든.”이라고 전해 달라고 했답니다. 아내는 안에서 기도할 때 성도들이 기도하는 것이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또 기도하며, 성경 구절과 찬송가를 떠올린다고 했습니다. 감방 안에 있는 사람들과 잘 지내고 있지만, 모두 그녀가 너무 예의 발라서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답니다.
제가 공개적으로 이 내용을 공유하는 것을 미뤄왔던 것은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안에 있는 사람에게 더 나은 방법일지 고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모두가 주목하고 있으니, 우리 가운데 일어나는 진실한 이야기들을 세상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기도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에 순종하여 행동해 주시길 부탁합니다.

SNS로 공유하기:

[카타콤 특집] 들불처럼 일어나는 북한의 지하교회 (2026. 2)

202602CatacombCS013

지난해에도 북한 내부의 어려운 사람들, 특별히 고난에도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을 찾아서 위로하고 돕는 사역이 은밀히 진행되었다. 비록 잠깐씩밖에 통화할 수 없고, 인편으로 모든 것을 전달하고 전달받기에 오가는 정보들이 더디고 단편적이지만, 그럼에도 북한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들은 멈추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 이 사역에 작년에만 약 2백 명의 북한 사람이 연결되었는데, 그중 두 성도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들을 통해 북한 지하교회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역동적으로 개척되고 성장하고 있으며 어려운 중에도 성도들이 주께 순종하여 믿음의 길을 걷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버지의 자손들이 많이 늘었다!

“저쪽이랑 연결됐습니다. 빨리 빨리 받아보라요.”

수화기 너머에서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거친 남자의 음성이 들렸다. 그는 얼마 전, 선교사가 사람을 찾기 위해 북한에 들여보낸 일꾼이었다.

“지금은 곤란합니다. 이따 받겠습니다.”
때마침 병원 침대에 누워있던 선교사가 힘없이 대꾸했다.
“아니 되오. 한 시간 후에는 나도 여기를 떠야 한다 말이요. 빨리 받으라요.”
일말의 여지도 주지 않고 일꾼이 선교사를 재촉했다.

“알겠습니다. … 여보세요. …(지지지직)… 제 말 들리십니까?”
“… 나요 ….”
비록 음질이 좋지 않고 툭툭 끊어졌지만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선교사는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태 전, 요한복음 말씀을 손으로 쓴 쪽지를 보내준 북한 성도였다. 중국에서 짧은 기간 동안 머물며 배운 하나님의 말씀을 앉은 자리에서 거침없이 써내려 갈 수 있을 정도로, 20여년간 마음에 간직하고 암송하며 믿음을 지켜온 그였기에 선교사에게는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성도였다. 그때 받은 감격의 물결이 되살아나 선교사는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이게 얼마 만입니까? 연락이 안 돼 얼마나 답답했는지 모릅니다.”
“이사를 했소. 그러니 예전 주소로 사람을 보내지 마오. 지난번에 동생을 도와줘서 정말 고마웠소. 그럼… (지지직)…”
북한 성도는 용건만 간단히 말하고는 총총 사라졌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애타게 불러 보았지만 더 이상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간만에 어렵게 전화가 연결되었는데 감동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끊긴 너무나 짧은 통화였다.
“방금 그 사람과 조금만 더 이야기하게 해 주십시오.”
일꾼에게 다시 전화를 건 선교사가 간청했다.
“아니 되오. 너무 위험하단 말이요. 아, 잠깐 기다려 보시오. 이게 뭐이지?”
일꾼은 주춤하는가 싶더니 선교사에게 사진 한 장을 전송했다. 언뜻 보기에 작은 글씨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게 신문에 낙서가 찍힌 것 같았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가늘고 연한 연필로 겹쳐 쓴 글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김ㅇㅇ, 박ㅇㅇ, 이ㅇㅇ. 사람들의 이름이 빽빽하게 쓰여 있었다. ‘암호인가?’ 선교사는 중얼거리며 이리 보고 저리 뜯어보았지만 무엇인지 알 재간이 없었다.

“이걸 주면서 ‘아버지의 자손들이 생각보다 많소’라고 했시오.”
일꾼의 첨언에 선교사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의문의 사진은 다름아닌 성도들의 명단이었다. 세어 보니 모두 열한 명이었다. 2년 전 연결이 되었을 때 그는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이 있다는 것을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열한 명 성도들의 이름을 통해 지하교회가 개척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그뿐인가? “아버지의 자손들이 많다. 아버지의 자손들이 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며 중국에서 들었던 한두 마디의 성경 말씀을 문자 그대로 믿고 복된 소식을 전파해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음을 증명했다.

네가 있을 때 하던 거 계속한다

“아버지, 제 친구 김 씨가 아픈 거 아시지요? 건강하게 해 주세요. 거기서 잘 살게 해 주세요.”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한 여인이 방안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기도에 집중하느라 미간까지 잔뜩 찡그렸는데, 별안간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누구세요!”
화들짝 놀라 밖으로 뛰어나간 여인의 눈앞에 생전 처음 보는 남자가 서 있었다.

“김 씨가 보내서 왔습니다.”
“네? 김 씨가요??”
방금 전까지 김 씨를 위해 기도했는데 그가 보낸 사람이 나타나니, 여인은 놀라움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나 그보다는 친구에 대한 반가움이 더 컸기에 순순히 일꾼을 집안에 들였다.

“김 씨가 아주머니에게 이걸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아주머니가 어렵게 사시고 병이 있다면서 이만저만 근심하는 게 아닙니다.”
일꾼은 고생을 많이 해서 옹이 박히고 쪼글쪼글해진 여인의 손에 김 씨의 사진과 사역비를 건네 주었다. 여인의 친구인 김 씨는 몇 해 전 심각한 질병에 걸려 생사를 오가는 몸으로 탈북을 감행했다. 김 씨는 하나님의 은혜로 한국에 무사히 도착했고, 그 후 병세가 차도를 보여 건강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김 씨와 여인은 한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이번에 일꾼을 통해 연결되었다. 예전의 병색 짙은 모습이 아닌 환하게 웃고 있는 김 씨의 사진 표면을 여인은 거듭거듭 매만지고 쓸어내렸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여인은 아까 기도할 때처럼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내가 너를 위해 매일 빈다. 우리 김 씨가 건강하기를 내가 매일 빈다. 네 일이 다 잘 되기를, 거기서 앓지 말고 일이 잘 되라고 빈다. 그거 이상 없다. 사진을 보니까 마음이 놓인다. 보고파 죽겠구나.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까 더 보고프구나….”
일꾼을 의식해서인지 여인은 기도라는 말 대신 빈다라는 표현을 썼다. 친구에 대한 그리움에 목이 메여 여인은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친구분이 얼마 전에 병이 도져 병원에 입원했었는데 지금은 회복되었습니다. 아들은 대학 다니고, 이제 직장도 좋은 데 간답니다.”
일꾼이 여인을 위로하듯 김 씨의 근황을 일러주었다. 일꾼은 마지막으로 김 씨에게 전할 말이 없는지 물었다.

“김 씨야, 난 일없다. 나 사는 거 하나도 일없다. 보내지 말라. 너희 쪽에 도와줄 사람 도와줘라. 나는 아무 일 없다. 걱정하지 말라. 내가 너를 위해 매일 빈다.”
가재도구도 변변치 않고 행색도 초라하기 짝이 없는데 여인은 일없다(괜찮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다 잠시 머뭇대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우리 네가 가기 전에 하던 거 계속한다. 한번씩 모여서 밥 먹으며 계속한다.”
여인이 말하는 ‘네가 가기 전에 하던 거’는 예배를 뜻했다. 북한에 있을 때 김 씨는 여인의 전도를 받아 여인의 집에서 모이는 주일 예배에 참석했다. 그 신앙 공동체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험한 세파와 감시에 무너지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다. 다함이 없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이 북한 지하교회와 성도들을 덮어 친히 인도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북한에 살아 계시고 성도들 안에서 오늘도 말씀으로 역사하고 계신다.

202601catacombSC04

SNS로 공유하기:

[성경 배달 이야기] 남북한병행성경 두 권이 보내졌습니다 (2026. 1)

202601catacombSC03

“저희가 배달하는 북한어 성경 중에서 가장 큰 것이 남북한병행성경이지 않습니까? 북한어와 남한어가 나란히 배열되어 있고, 세로 길이만 23cm가 되는 두껍고 무거운 성경책 말입니다. 그 성경 2권이 북한 ○○ 지역 지하교회 지도자들에게 보내졌습니다. 그 지도자들이 얼마 전에 새해를 준비하는 모임을 깊은 산 속에서 가졌는데 그 자리에 25명이 모였습니다. 그 모임에 저희가 보낸 성경책 2권을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지도자들 2명에게 성경을 나눠주자 받지 못한 나머지 23명이 그 자리에서 ‘우리도 성경이 필요하니 23권을 속히 더 보내달라’라고 요청하지 않았겠습니까.”

성경 배달 사역을 감당하는 일꾼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기쁨에 찬 목소리로 전해준 소식이다. 일꾼이 설명한 것처럼 남북한병행성경은 크기가 크고 무게가 있어서 북한 내부로 들어갈 때 가장 큰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성경이다. 그런데 이번에 하나님의 은혜로 국경수비대의 눈이 가려져 남북한병행성경 2권이 한 번에 철의 장막을 뚫고 북한 지하교회 지도자들의 손에 배달되게 역사하셨다.
지하교회 지도자들이 요청한 23권이 빠른 시간 내 북한에 보내질 수 있기를 기도한다. 영하 20~30도를 넘나드는 혹한의 추위에도 하나님을 갈망하여 산에서 굴에서 들에서 바다에서 예배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북한 지하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이다. 다시 한번 그들의 손에 남북한병행성경이 한 권씩 들리는 놀라운 기적을 수일 내에 행하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한다.

SNS로 공유하기:

[북한 성도 편지]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2026. 1)

할아버지께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저는 소정이에요. 제 동생은 유정이에요.
저는 열두 살이고 제 동생은 여덟 살이에요.
할아버지께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어 언니에게 이야기했어요.
우리에게 성경을 보내주셔서 감사해요.
우리집 밑에서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데 우리 모두 할아버지가 보내주신 성경을 보고 있어요.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나, 동생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예배해요.
할아버지가 보내준 성경을 읽고 찬송도 해요.
보위부가 언제 와서 우리를 잡아갈지 모르지만 예배드릴 때 너무 행복해요.
하나님을 알게 해 주시고 성경을 보내 주셔서 감사해요.
고마워요, 할아버지!
나중에 천국에서 만나요!

이삭 목사를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북한의 열두 살 꼬마 성도가 쓴 편지이다.
한국에서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그곳에서는 위험한 일,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예배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담겼다.

SNS로 공유하기:

[카타콤특집] 북한에서 42명이 복음을 받았다는 사실

카타콤 특집

202601CatacombCS01
202601CatacombCS02

그분이 널 보고 싶어하셔

“잘 지내셨습니까?”
“편안하겠어? 잘 알잖아.”
인정이라고는 눈꼽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말투였다. 퉁명스러운 할머니의 첫 마디에 선교사는 적잖이 당황했다. ‘나한테 뭐 서운한 게 있나?’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치를 살피던 선교사는 슬슬 부아가 났다. 자그마치 2년 반이나 요청하는 물건을 꼬박꼬박 다 해 주었는데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언제 가십니까?”
“내일 저녁. 그런데 마지막으로 줄 게 있어.”

할머니는 허리춤에서 종이를 꺼내 들고 방바닥에 바짝 엎드려서는 무언가를 거침없이 써 내려갔다. 선교사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흘끔 흘끔 곁눈질로 내려다보니 ‘1번 김○○ 32세 2번 박○○ 68세’ 등 이름과 나이, 주소와 직업을 적는 게 보였다. 42번까지 쓴 종이를 선교사에게 내밀며 할머니는 쏘아붙이듯 말했다.

“여태까지 나한테 준 거 나 혼자 안 먹었어. 이게 열매야.”
“이게 뭡니까?”
“성도들 명단.”

할머니는 그간 다양한 품목의 물건을 선교사에게 구해 달라고 부탁했다. 흑백 중고 텔레비전부터 재봉틀, 자전거, 하다못해 아기 기저귀와 장난감, 그림책까지,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여러 가지의 것들을 요구했다. 물자가 부족한 북한의 사정을 생각하면 한편으론 이해가 갔지만 그래도 너무 많은 것들을 가져가니 선교사는 의심의 눈초리로 볼 수밖에 없었다. 가끔 선교사가 “이걸로 뭐 하시게요?”라고 물어보아도 할머니는 “다 쓸 데가 있어.”라며 말을 얼버무리기 일쑤였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 모든 것이 전도에 필요한 도구들이었다. 할머니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나눠주며 하나님을 전해 2년 반 만에 42명의 생명을 얻은 것이었다.

“전도를 어떻게 하셨습니까?”
한 영혼 얻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북한에서 42명이 복음을 받았다는 사실이 놀라워 선교사는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피죽도 못 먹은 얼굴이었지. 새댁이 배는 불렀는데 너무 안됐어. 그래서 불렀지….”
특유의 무뚝뚝한 목소리로 할머니가 새댁 성도의 이야기를 꺼냈다.

“‘뭐 먹었어?’
‘예.’
새댁에게 물으니 힘없이 대답해. 거짓말이지. 집에 데려 가서 하얀 쌀밥을 차려 주니까 못 먹고 내 얼굴만 쳐다봐. 남편도 시댁도 친정도 능력이 없어서 못 주는 밥을 길 건너 사는 할머니가 해 주니까.
‘먹어.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를 위해서.’

그랬더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서 먹다가 울다가 그래.
‘이거 신어. 안 추워.’
밥 공기를 비운 새댁 손에 따뜻한 양말 한 켤레 들려서 돌려보냈지. 그러고 며칠이 지나서 또 불러다가 밥 한 그릇 먹이고 내의 한 벌 주고. 그게 세 번째 반복되니까 나한테 물어.
‘왜 오마니는 저에게 잘해 주십니까? 신랑도 시어머니도 친정어머니도 관심도 없고 못 해 주는데…’
‘그분이 사랑하시니까.’
우리는 사랑이라는 말을 안 써. 처음 듣는 말이라 그런지 한참을 생각하더군.
‘저를요?’
‘그래, 나보다 더 너를 먼저 알고 사랑해 주는 분이 계셔.’
‘그분이 누군대요?’
‘있어. 그분이 널 보고 싶어하셔.’
‘진짜예요?’
‘그럼. 그분에게 뭐든지 말하면 들어주셔. 만나고 싶어?’
‘예!!!’
‘배 아프니까 무릎 꿇지 말고 눈만 감아. 손 이렇게 잡고 따라서 해.’
‘주님, 만나 주세요. 마음 문을 열고 주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모십니다. 나를 용서하시고 나의 아버지가 되어 주세요. 지금부터 영원히 저와 함께 계셔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나도 그곳에 가고 싶소

“기도할 때 성령님이 오셔서 믿게 하시지.”
할머니는 전도의 과정을 설명하며 잊지 못할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이건 진짜 쉽고 재미있는 일이야.”
선교사는 두 귀를 의심했다. 신앙의 자유가 있는 한국도 아닌, 기독교를 극렬히 박해하는 북한에서 전도가 쉬울 뿐만 아니라 재미있다는 말에 그저 “와” 하고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나온 할머니의 말은 입을 더 벌어지게 만들었다.
“이건 그냥 작은 일이야. 우리 애들이 직장에서, 동료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나보다 열매가 더 많아. 생명의 열매. 그게 큰일이지.”
“일터에서 말입니까? 위험하지 않습니까?”
“아픈 환자 방문해서 주사 놔주는 일을 하는 애가 있는데 하루는 와서 그래. ’어머니, 오늘 두 사람에게 아버지 말을 했습니다. 자꾸 말해야 한다는 마음이 우러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환자인데 주사를 놔주며 슬쩍 말을 흘렸습니다.’”.
할머니는 자식에게 들은 이야기를 선교사에게 옮기기 시작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죽어도 딴 나라에 가서 살 수 있는데…’
어머니, 제가 그렇게 말하니까 가늘게 뜨고 있던 환자의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나도 살려 주시오. 당신 사는 데가 어디요?’
‘여기와는 딴 동네입니다.’
제가 간단하게 대답하자 환자가 사정했습니다.
‘나도 거기로 데려가 주시오.’
이제 원래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사실, 저는 하나님을 믿고 삽니다. 하나님께 나의 죄를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죽어도 하늘나라에 가고,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납니다.’

환자는 무슨 말인지 통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풀어서 설명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데, 하나님을 믿고 자기 죄를 회개해야만 우리는 구원받고 죽어서도 영원히 죽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갈 수 있습니다.’
‘나도 그곳에 가고 싶소’
저는 노인에게 저를 따라서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도를 하게 했습니다.’”
“우리 애가 해 준 많은 이야기 중 하나야. 얼마나 전도에 열심인지 2년 반 만에 나를 앞질렀지. 전도하기 참 좋은 것이 환자들과 단둘이서 만나고, 환자들이 아프니까 복음을 잘 받아들여. 우리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집집마다 직장마다 전도하고 있어!”
이 말을 하는 할머니의 얼굴이 천사처럼 환하게 빛났다. 북한 성도들이 성령을 따라 삶의 자리에서 전도의 직무에 최선을 다한다는 사실에 선교사는 가슴이 벅차고 감동이 되어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북한에서 전도를 받고 신자가 된 탈북민 김광석 목사는 북한에서의 전도를 ‘자신의 생명, 존재 자체를 내어주는 행위’라고 했다. 전도자에게 따르는 박해와 고난이 극심함에도 북한 성도들은 자신의 전부를 걸고 이웃과, 동료에게 하나님을 은밀히 전하며 그들을 생명 길로 인도한다. 그렇게 전도된 한 영혼 한 영혼이 모여 북한 지하교회를 이룬다.
목숨을 불사하는 북한 성도들의 전도 이야기가 2026년 새해를 맞는 우리에게도 전도의 열정을 불어넣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생명을 걸고 전도하는 그들처럼, 북한에 문이 열렸을 때 우리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수행하는 특공대로 설 수 있도록, 집중적으로 준비되고 훈련되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202601CatacombCS05

SNS로 공유하기:

[40년을 돌아보며 ⑫] 성탄절, 바람을 타고 오는 북한 성도의 기도 (2025.12)

“오마니, 밖을 보시라요! 눈이 쎄게 옵네다.”
“올해도 아바지 은덕을 기리느라 저리 눈이 오누만….”
“그렇디요. 날이 어둡기 전에 산에 좀 올라가야 갔시오.”
“내래 웬만큼 거동할 수 있으면 같이 갔으면 좋갔는디….”
“오마니, 날 좋은 날 모시고 갈 테니 오늘은 섭섭해도 참으시라요. 대신 오마니는 내래
올 때까지 집에서 아바지 생각하시라요.”
어머니와 딸은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리는 눈이 싫지 않은지 딸은 흥얼거리며
산으로 걸어갔다.

사람들이 들을까 봐 북한에서 즐겨 부르는 멜로디에 노래 가사를 바꾼 찬양이었다.
딸은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 부르고 또 불렀다. 마치 흰 눈송이가 아기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을 축하하는 춤추는 나비처럼 느껴졌다.
“하나님 아버지, 내래 평생 어찌 오늘을 잊을 수 있갔시요. 내년에는 오마니와 함께 산에 올라 마음껏 기도할 수 있게 해 주시라요.”
기도하며 산을 향해 가노라니 어느새 정상에 우뚝 올라와 있었다. 잠시 말 없이 앉아 있던 딸은 구름에 가려진 둥근 달이 얼굴을 내미는 것을 보며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찬양을 부르노라니 하염없이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려왔다. 딸은 일 년에 단 한 번
12월 24일, 김정숙이 태어난 것을 기념하느라 떠들썩한 분위기에 젖어 있는 틈을 타서
예수님의 오심을 감사하고, 그 사랑을 알지 못하고 죽어가는 동족들에게 복음이 전해져 조선 민족 모두가 천국에 가기를 소망하며 기도했다. 그의 입에서 또 다른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딸은 지난밤 꿈속에서 보았던 장면을 떠올리며 목자 되신 예수님의 품에 안긴
어린양이 되어 찬양하고 또 찬양했다.

SNS로 공유하기:

[카타콤특집] 천국 가면 우리 아들 만나볼 수 있겠지! (2025. 12)

202512catacomb011

2025년 10월 14일

“2주 전에 에스더가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2년 전부터 괴사가 발병해 치료해 왔으나 증상이 더 심해졌습니다. 한 달을 넘게 버티다가 결국 수술에 필요한 비용을 보내주어 무릎 밑으로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했습니다.” 선교사를 통해 북한 지하교회 일꾼인 에스더의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2025년 11월 6일

“에스더가 세상을 떠나 하나님 품에 안겼습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수술받았다고 하지 않았나요?”
갑작스러운 비보에 선교사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수술하고 치료받다가 병실에서 감염되어 패혈증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병원이 형편없는 곳이었는지 벼룩이 기어다니는 열악한 환경에서 부위가 감염되어 지난 10월 25일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소식을 전해주는 선교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마지막에 에스더 자매의 곁에 누가 있었나요?”
“같이 믿음을 지키던 지하교회 성도가 돌봐주었는데 통증으로 많이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본인이 알았을 텐데 남긴 말이 있었을까요?”
‘이제 가면 아들 만나볼 수 있겠지….’라며 고통 중에도 아들을 만나 볼 수 있다는 소망에 찬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한번도 주변 사람들에게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어서 다들 아들이 있었는지 몰랐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제게 고맙다고 전해 달라고 했답니다.”
전화로 이야기하던 선교사는 끝내 말을 흐리며 울먹였다.

짧은 통화가 끝나고 오래전 에스더 자매를 만나서 들었던 담대한 믿음의 고백이 생각났다. “죽으면 죽으리다!” 꼭 그 말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갔던 에스더의 신앙행전을 떠올려 본다.

복음에 매인 하나님의 일꾼으로

2007년 12월 19일, 중국의 한 처소에서 당시 47세였던 에스더를 만났다. 자강도가 고향인 그녀는 자그마한 키에 예쁘고 복음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였다. 그녀는 1999년 남편과 아이 3명을 데리고 중국으로 건너와 교회의 도움을 받으며 처음으로 복음을 듣게 되었다. 예수를 믿고 성경을 읽는데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들려주셨던 예수님의 탄생과 십자가에 죽으심, 살아나심과 다시 오심에 대한 이야기들이 쓰여 있어서 놀랐다고 했다. 하루는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다면 우리 식구들이 머물 수 있는 집을 주세요.”라고 기도했는데 정말 집이 생겼단다. 이러한 응답의 체험을 거듭하며 그녀는 복음을 위해 살 것을 결심하였다.
그녀는 북한에서 나와 인신매매로 팔려 중국인과 결혼해 어렵게 살며 상처받은 북한 여인 12명을 사랑과 말씀으로 돌보며, 그들에게 사명을 불러 일으키는 일을 열심으로 감당했다. 12명 중 6명은 정말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믿음 생활을 했다. 그녀는 그들에게 그런 마음을 계속 갖도록 도전하고 사명을 갖도록 담금질하는 역할을 자처하였다. 교회 이름은 에스더교회로 정했으며, 조국의 복음화를 위해 죽으면 죽으리라는 일사각오로 북한에 복음 전하러 가려고 금식하며 기도하였다. 그녀는 많은 어려움과 힘든 일들이 있지만 불평하지 않고 오직 믿음과 사명으로 주님 앞에 서 있는 모습이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중국에서 예수를 믿고 1년 정도 지났을 때, 그녀의 딸과 아들이 한 여자 선교사가 사역하는 곳에 가서 성경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해서 보내주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딸이 공부하던 장소가 발각되어 북한으로 잡혀갔다. 딸이 북송될 때 마음이 무너지고 너무 아파서 자신도 북한으로 잡혀가 딸을 다시 데려오겠다고 하니 아들이 만류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하였다.
그 일이 있은 후에 아들은 중국에서 성경 공부를 마치고 “북한에 하나님 아버지 나라를 일으켜 세울 사람으로 헌신할 것이니 어머니가 기도해 달라.”라는 편지를 집으로 보내왔다. 아들의 편지를 받고 에스더는 일주일 금식을 작정하고 기도하였다. 그러고 북한에 복음을 전하러 갔던 아들은 잡혀서 감옥에 들어갔다. 2년 후에 다 죽게 되어 병 보석으로 나왔으나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자 다시 복음을 전하다가 잡혀 감옥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에스더 자매는 아들이 다시 구류됐다는 말을 듣고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였다고 한다.

“하나님, 내 아들을 살려 달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그 아이가 순교를 해야 한다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당당하게 순교할 수 있게 하시고, 살아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일이 있다면 감당하게 해 주십시오.”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에스더 자매는 그렇게 기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북한에 있는 동생에게 인편으로 성경 한 권을 보내며 다음과 같이 썼다.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을 믿어야 우리가 한 형제이다.
감사기도.
회개기도.
구할 것을 기도해라.
하나님 꼭 믿어라.
너네뿐만 아니라 동생들에게 꼭 전하라.
내 동생들이라도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내 동생들이 아니다.
암송할 정도로 읽어라. 100번 읽어라.”

얼마 후 동생에게 심부름하러 북한에 들어간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성경을 전달했느냐고 물었더니 “주지 못했습니다. 남동생도 잡혀갔는데 이것까지 주면 더 어려움을 당할 것입니다.”라며 머뭇거리길래 올케를 바꿔 달라고 했다.
“형님….”
올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울기만 하였다. 에스더가 담대하게 이야기했다.
“그 사람이 책을 줄 것이다. 거기에 필요한 것이 다 있다. 매일 아침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다 써 있다.”
“형님, 걱정 마시오. 형님이 어떤 일을 하고, 형님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무슨 뜻인지 다 압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그 책을 받을 것입니다.“
올케의 말에 에스더는 안심하고 전화를 끊었다. 딸이, 아들이, 그리고 남동생이 복음으로 인해 감옥에 갇혀서 고난받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옴에도 중국에 남아서 탈북한 여인들을 북한에 복음 전할 일꾼으로 훈련시키는 그녀의 사역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계속되었다.

옥에 갇히고 매를 맞으나 죽임을 당하지 않고

2009년 어느 날 “에스더가 잡혀 북송되었습니다. 기도해 주세요.”라는 다급한 기도 부탁이 선교사로부터 전해졌다. 북한에 복음 전하러 가겠다며 북한에서 팔려 온 여인들을 훈련시키던 에스더는 잡혀서 북송이 되었으며 감옥에 들어갔다는 것까지가 전부였다. 에스더의 소식을 더 알기 위해 수소문해 보았지만 전혀 알 길이 없었다.
11년이 지난 2020년 또 다른 북한 지하교회 지도자를 통해 그녀가 00교화소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갇혀 있는 에스더에게 선교사가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니 계속 울기만 하더라고 전해주었다. 11년이나 돌봐 주는 이 없이 정치범수용소에 있던 자그마한 여인의 생명을 하나님께서 보존하고 계셨다.
그 다음해 에스더가 숨진 소식을 듣고 그녀의 이야기들을 정리한 노트를 살펴보니 이렇게 적혀 있었다.
“2021년 11월 4일, 병 보석으로 나와 6일째 돌보고 있다. 00 지역 외곽 성도의 집에 있으며 몸조리를 하고 있다. 오랜 감옥 생활로 몸이 많이 아프고, 뼈하고 가죽밖에 없다. 너무 가슴이 아프다.”

감옥에서 나와 완전히 망가진 몸이 회복되는 과정에서도 에스더 자매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복음 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같은 지하교회 공동체 성도들이 염려할 정도로 복음 전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예수를 믿고 북한에 복음 전하러 간 아들과 딸이 감옥에서 순교하였다.
그녀가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했던 남동생도 순교하였다.
그리고 11년의 감옥 생활을 마치고 복음을 전하던 그녀도 순교하였다.
이제 에스더 자매는 죽음을 앞두고 먼저 천국에 간 아들을 만나볼 것을 소망한 그대로 주님 품에서 안식을 누릴 것이다.
죽은 자 같으나 죽임당하지 않는 복음의 능력이 오늘도 북한 땅에 채워지고 있다.
성도들의 순교의 피가 생명으로 충만하여 구원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가득하기를 기도한다.

모퉁이돌선교회는 북한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로 감옥에 갇혀 신음하는 성도들과 북한 감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 전도인들을 돕고 있다. 갇힌 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지원하는 사역에 참여할 수 있다.

SNS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