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자편지] 하나님을 날마다 경험하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과 외조부의 신앙의 삶을 보며 살았습니다. 지독하게 가난했던 1950년대와 60년대를 경험하며 살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머님은 언제나 하나님이 공급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기도가 응답되어지는 것을 실천하셨고 알려주셨고 감사케 하셨습니다. 같이 기도하고 나누고 “하나님이 오늘도 응답하셨네!”, “하나님이 이렇게 기도한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더 많은 것으로 채우셨네…”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때로는 시간적으로 기다려 보자고 하나님의 때를 말씀해 주시고는 했습니다. 사실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조급한 우리의 모습 때문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때에 우리의 방법대로 원하는 것을 채우려는 모습이 우리들이 아닌가요?

 

때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있음을 깨닫게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끝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으로 이끌어 가시고는 합니다. 그런 어린 시절이 끝나고 열여덟에 어머니를 잃고 난 후 저는 제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몸은 어머님께서 하신 것처럼 교회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세상의 뜻을 따라 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12년이 넘도록 위선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교회는 떠나지 않았고, 십일조를 드렸지만 제 속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이끌림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어머님의 하나님을 저도 경험하는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그해가 바로 40년 전인 1979년입니다. 그리고는 그해 회심한 후 신학공부를 했습니다. 그러고 3년을 울면서 신학을 배우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 1982년 목사안수를 받게 되고, 1983년 선교 훈련을 받고 중국으로 선교 정탐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하나님과의 삶을 실제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저를 이끌어 줄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고 후원하게 하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개인적인 삶 속에서 직접 경험했습니다. 선교현장의 일이나 후방에서의 삶이나 가정에서나 순간 순간이 마치 드라마를 만들어 가는 영화의 한 장면같은 일들을 지난 40년간 경험했습니다.
조지 뮬러만 응답 받는 게 아니었습니다. 엘리야나 선지자들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사도들만 응답 받는 게 아니었습니다. 초대교회에서만 역사하신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 아닌 저 자신이 하나님을 날마다 경험하며 사는 삶을 지난 40년간 살아왔습니다.

 

 

이를 위하여 제가 무엇을 했느냐고요? 저는 무엇인가를 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며 하나님을 경험하고 부르심에 순종했을 뿐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골로새서 1장 22절에서 2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바울이 골로새에 편지로 보낸 첫 장의 한 부분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시작하게 하신 이에 대한 부분입니다.
그 다음 24~27절에서는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내가 교회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하노라.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는 비밀은 바로 바울의 경험에서 쏟아져 나오는 서신에서 발견됩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의 특징은 보내심을 받은 바울의 고백과 같이 불러 내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받는 괴로움까지도 기쁨으로 감당하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고백하는 데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날마다 유지하고 싶으십니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쌀이 떨어졌네요”
“알고 있다. 하나님이 주실 게야”
그렇게 이야기를 나눈 어머니와 저는 경기 도청 앞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전차를 타고 갔습니다. 전차 표를 네 장을 구입했습니다. 어머니와 제가 갈 때 필요한 두 장과 돌아올 때 두 장이었습니다.
“이게 마지막 돈이구나” 집회에 가서 헌금을 하시길래 “마지막 돈이라고 하셨잖아요?”라고 물었더니 어머니는 “우리가 쓸 돈이 마지막이고 이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구별된 돈이지…”라고 하셨습니다.
집회가 끝나고 돌아와 있을 때 집 앞에는 쌀 한가마니가 놓여 있었고 계란 한 줄과 닭 한 마리가 묶여 있었습니다. 잠시 후 교회에서 일하시던 한 분이 봉투 하나를 어머님에게 주셨습니다.
“어느 권사님이 사모님 집회 가신 다음에 계란하고 닭 한 마리 놓구 가셨어요. 이 봉투하구요. 쌀은 다른 분이 가져다 놓으면서 다른 권사님이 보내셨대요.”
“얘야!”
“예 어머니.”
“하나님이 채워 주시는 것 보렴.”
“예 어머니.”
이런 일은 어린 시절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사역을 시작해서 사역비와 생활비는 늘 모자라는 듯 보였습니다.
“9월 2일에 올게요.” 만주에 성경을 배달하기 시작한지 10개월이 되었을 때입니다. 7월에 돌아오며 “9월
2일에 오마”라고 전하고 떠났습니다. 하지만 9월 13일이 되도록 떠나야 할 준비가 되지 못했습니다. 500만원이 필요했습니다. 성경을 구입하고 비행기 표와 숙소와 현장에 넘겨 주어야 할 비용이었지만 단 한푼도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9월 13일에 박윤선박사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이번 주일에 와서 선교보고 겸 설교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은사의 말을 거절할 형편도 아니어서 마지못해 주일예배에 설교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례비로 아니 거마비로 3만원을 주셨습니다.
그날 밤이였는데 새벽 두시까지 전화가 울렸습니다. 구좌를 달라는 것입니다. 제게는 구좌가 없다니까 옆에 있는 분의 구좌로라도 보낼테니 달라고 하여 옆에 있는 분의 번호를 얻어내어 전화한 분들에게 주었습니다. 새벽에 다 합해 보니 497만 원이 들어왔습니다.

 

준비하여 중국에 들어간 날은 9월 19일이었습니다. 현장에 도착하기 까지 국제선, 국내선을 바꿔타며 일곱 개의 가방에 성경을 채웠습니다. 국내선 비행기가 어떤 이유인지 연착이 되었고 오후 2시 반에 도착할 비행기는 밤 11시 반이 되어서야 현지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한 곳은 밤이라 당연히 어두웠지만 중국인들은 당시에 짐을 가지고 다니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제 짐 7개의 가방만 컨베이어를 통해 내려왔습니다.
짐을 밖으로 내다 놓고 보니 대중교통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저를 기다리려고 차를 갖고 나온 이도 없었습니다. 저 멀리 한 구석 주차장에 택시 아닌 차량 하나가 그곳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뭔가 잘못해서 공안직원이였던 그가 쫓겨나 처음 택시를 운영하려고 나왔답니다. 다른 운전기사를 보기가 민망해서 멀찍이 차를 주차하고 앉았다가 잠이 들었답니다. 그 운전수를 설득하여 일곱 개의 가방을 겨우 실어 목적지로 가는 동안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길목으로 들어가기에는 무리여서 차를 밖에 세우고 안으로 들어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밤 12시 반이 넘었습니다. 문을 두드리는 동안 번개가 치고 천둥이 쳐서 안에서는 제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예약된 호텔에 갔지만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호텔이 문을 닫는 조그마한 도시였습니다. 비는 내리지요, 택시는 보냈지요, 호텔 문 밖에서 기다리며 “그 성경을 감춰주는 친구가 깨여 일어나서 나를 보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들으셨습니다. 그 청년이 깨어 일어나 화장실에 가는 것을 보고 제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이렇게 늦게 오면 어떻게 하냐고 묻고는 그 날 밤 잘 수 있는 방을 내어 주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어젯밤 문을 열어주지 않은 그 집을 찾아 갔습니다. 문을 열면서 밖을 확인한 주인은 작은 소리로 “어젯밤에 왔지요?”라며 방안으로 저를 재빠르게 끌어 들였습니다. 그리고는 저를 방 한가운데 앉으라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허리가 아프다며 벽에 기대 앉겠다고 했더니 또 다시 작은 소리로 “9월 2일날 온다고 하지 않았소? 왜 이제야 왔느냐?”고 다그쳤습니다. 그리고는 “그 자리! 방 한가운데 목사님이 앉은 그 자리에 9월 2일부터 30분 전까지 매일 먹고 자고 여기 머물러 있던 게 누군 줄 알아요?”라고 물었습니다. “중국 보위부 비밀 경찰이요! 왜 이제야 왔소?” 저는 그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하나님이 이걸 아셨구나!” 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헌금이 들어오지 않은 것도, 비행기가 연착된 것도,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친 것도, 성경을 감춰주던 청년이 잠에서 깨어난 것도 모두 하나님의 주권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지난 40년, 하나님을 경험하며 지내왔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날마다 경험하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2019년 2월 15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SNS로 공유하기:

[동역자편지] 이거이 우리 생명을 위해 쓰여지지 않갔소?

제니스 혹은 지너스라 부르는 라디오를 아시나요? 저는 한때 그런 라디오를 갖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미국 이민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제니스 라디오를 잊고 살았습니다. 제가 컴퓨터를 배운 1968년 이후로 온통 컴퓨터 세상이 되어 버렸으니까요.

 

1983년 겨울 눈이 무릎까지 푹푹 빠지던 날, 흑룡강성의 한 도시에 있는 조선족 가정을 은밀하게 방문했습니다. 저는 그 곳에서 만나야 하는 한 사람을 소개 받았습니다. 약속 장소에 가면 베이지색 코트를 입은 자매가 안경을 쓰고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함박눈이 쏟아져 내리는 허름한 호텔 앞, 눈발 사이로 26세의 한 여인이 안경을 쓰고 코트를 입고 서 있었습니다. 1983년대의 중국은 안경을 쓰는 사람이 거의 없는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안경 쓴 사람을 쉽게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여인은 가볍게 눈으로 인사를 하고 따라 오라고 머릿짓을 했습니다. 가다가 제가 잘 따라오는지 확인하고는 몇 걸음 더 걷다가 길을 건너고 다시 건너왔습니다. 그러고는 골목으로 갑자기 들어가더니 다시 다른 골목으로 들어갔습니다. 눈이 쌓여 발이 푹푹 빠져 걷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습니다. 안내자는 한참 만에 조그만 골목에 위치한 가게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도 따라 들어갔습니다. 주인과 안내자의 눈짓이 오고 갔습니다. 안내인은 이러 저리 걸려있는 줄 중 하나를 잡아 당겼습니다. 다시 한 번 잡아 당겼습니다. 우리는 편의점에서 아무 것도 사지 않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저는 아까 잡아당겼던 줄이 밖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 줄 위에는 눈이 쌓여있지 않았습니다. 좀 전에 안내인이 잡아당겨서 눈이 털린 것입니다.
그 줄은 길 건너 벽돌담 지붕 밑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골목을 돌아 뒤따르는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다음 그 벽돌담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부엌과 방 사이에는 문이 없었습니다. 부엌에서 물을 끓이면 수증기가 벽으로 이어진 파이프로 들어가서 벽과 방을 따스하게 데웠습니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던 그들은 깨끗해 보이지 않는 좀 큰 헝겊을 걷어냈습니다. 그러고는 진지한 어조로 “이것이 저희 영혼의 젖줄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헝겊에 쌓인 물건은 다름 아닌 진공관 라디오였습니다. 브라운 색깔의 전형적인 제니스 라디오.

 

그들은 라디오로 극동 방송을 듣고 있었습니다. 방송을 들으며 신앙생활을 이어왔다는 식구 중 몇몇은
거기서 자고 바로 아침에 직장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이거이 우리 생명을 위해 쓰여지지 않갔소?” 안테나를 밖에 설치할 수가 없어서 방안에서 안테나 역할을 하는 줄을 이리 저리 옮겨가며 온갖 잡음을 피해 말씀을 듣노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예배당을 선택할 수 있고, 목사를 초청했다가 좇아내기도 하고, 성경은 몇 권씩 집에 있고, 그러면서 말씀을 들으려 했던가요? 성경을 읽어 내려가며 회개의 눈물을 흘린 적은 언제였나요?
참 기독교인의 삶을 찾을 수가 있었던가요?

 

저는 밤 10시가 되어서야 그들과 이야기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오는 길에 많이 울었습니다.
나는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35년하고도 한 달 전의 일입니다. 결국 그 발걸음이 오늘에 이르도록 이끌었습니다. 이상한 것은 아내도 저도 후회 없이 이 길을 걷도록 도우셨습니다. 추운 겨울에 영하 50도 지역을 수없이 여행하고 시베리아를 며칠씩 다녔습니다. 성도들에게 성경을 넘겨주고 싶어서, 그래야 했기에… 목마른 사슴처럼 헉헉거리며 생명의 물을 찾는 성도들에게 한 권의 성경을 배달하기 위해 그 길을 가야 했습니다.

 

곧 저는 그 지역을 다시 방문할 예정입니다.
교회가 어떻게 자랐는지 알고 싶어졌습니다.
이제 그 라디오를 볼 수 없겠지요? 인터넷이 그 자리를 대신했을 테니까요.
그런 집도 없을 겁니다. 아파트로 모두 이사했겠지요.
그 안경 낀 코트 입었던 자매는 어디에 있을는지…

 

그래서 모퉁이돌선교회는 오래 전부터 북한에 있는 성도들에게 방송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배달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말씀에 주린 북한성도들이 이불 속에서, 골방에서, 산과 들, 바다에 나가 방송을 들으며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2019년 새해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얻기 위해 기도하는 북한과 중국 그리고 아랍과 이스라엘의 성도들에게 성경이 보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019년 1월 15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SNS로 공유하기:

[동역자편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동역자 여러분께!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이 누가복음에 기록된 말씀이 왜 저로 슬프게 하는 것일까요?
의례 그런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영광 뒤에는 무엇인가 희생이 있었고 피 흘림이
있었던 것이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천사들은 분명 외쳤습니다.
그리고 분명 마리아와 요셉은 구유에 아기를 놓고 기쁨에 차 있었을 터입니다.
하나님은 언약과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신 것을 보고 천사들이 그렇게 큰 기쁨의 소식이라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은 그 아들을 내어놓는 아픔을 기꺼이 감당하셨습니다.
아들은 순종하여 한 여인에게서 어린 아이로 태어나셨습니다.
그 아들을 내어놓으신 하늘 아버지의 마음은 약속을 지키신 것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찼을까요?
그게 너무 슬프게 제 마음을 적십니다.
자기 백성들을 살려내시기 위해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 내놓으신 아버지의 그 고통이 생각납니다.
의와는 전혀 상관없이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저를 대신하여
죽여 피 흘리게 하시려고 아들을 내놓으시는 그 사랑을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받아 기쁜 날이라고 외치기만 하는 것이 마땅한 것일까요?
저는 오히려 성탄절이라고 상업화된 이 날이 오히려 슬퍼집니다.
빨간 모자, 하얀 수염 그리고 장식된 크리스마스 트리가 성탄의 의미일까요?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외치는 게 정말 크리스마스의 의미일까요?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희생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이 바로 성탄절의 의미입니다.
아버지는 우리를 구속하시려고 아들을 내어놓으신 무엇으로도 표현될 수 없는
그 큰 사랑이 크리스마스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천사의 노래에서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표현하는 날이 바로 크리스마스여야 합니다.

   

그래서 하염없이 아프지만 그 슬픔이 기쁨으로 승화되어 기쁜 날입니다.
그 어린 예수가 죽음에 이르러 피 흘리는 것까지 알고 계신 아버지가 우리를 위해 아들을
기꺼이 내어놓으신 그날이 크리스마스라면 당연히 기뻐하되 평화로까지 이어져야
진정한 기쁨의 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놀라운 성탄의 기쁨을 북녘의 성도들은 소리로 자유로이 표현하지 못하고 마음으로만 읊조려야만 합니다. 어떤 이는 엄동설한에 차가운 감옥 안에서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기억하며 예배하기도 합니다.
성경 구절을 잊지 않으려 되뇌고 또 되뇝입니다. 성경 한 권이 없어서지요.
금년 성탄절에도 북녘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를 수 없는 아픔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주어 피 흘려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북녘의 성도들도 자유로이 선포하고 예배할 수 있는 그 날이 속히 오기를 기대하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금년 성탄절에 북녘의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고
찬양할 수 있는 은혜를 누리게 하옵소서. 내년에는 평양에서 소리 높여 할렐루야를 부르며 남북한의 성도들이 함께 하나님을 기뻐 예배하는 은혜를 누리게 하옵소서!”

2018년 성탄절에
무익한 종 이삭 드림

SNS로 공유하기:

[동역자편지] 그런 것도 필요한 줄 몰랐네요?

공산권에 성경을 배달하는 선교를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그것도 선교냐?”라며 비웃습니다.
성경 배달이 무슨 선교냐는 겁니다. 남들의 말보다는 사실 저 스스로가 ‘이걸 선교라고 해야 하나?’ 하는 자괴감이 들 때가 자주 있습니다. 제가 배운 선교의 정의는 하나님의 말씀을 외지에 가서 살며 말로 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들이 저를 선교사라고 부를 때 괴롭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오래 전 중국의 한 도시에서 조선족들과 함께 모여 성경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초라한 방에 누군가가 찾아왔습니다. 피곤해서 지쳐 보이던 그 여인은 머뭇거리며 여기 성경을 배달하는 미국에서 온 목사님이 계시냐고 물었습니다. 우물거릴 수가 없어서 그렇다고 했더니 여인은 성경 한 권만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7년 전 살던 동네에 선교사님이 복음을 전해주어 그 후로 예수를 믿고 교회에 다니고 있지만 성경이 없노라고 했습니다. 저에게 있는 것은 성경뿐이었기에 그 아주머니에게 기꺼이 드렸습니다. 이 행위를 선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저는 성경을 드리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가르칠 사람을 보내고, 교회를 세우고, 북한 땅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이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선교가 아니라면 저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선교는 아니고 선교의 변두리에서 주춤거리고 있는 것일까요?

 

저와 함께 일하는 간사님은 성경을 선교현장으로 보낼 때마다 기도를 부탁합니다. 저는 그 일이 끝날 때까지 기도의 끈을 놓지 못합니다. 성경이 배달되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도착할 때까지 기도를 계속합니다. ‘하나님이 또 하셨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저는 식사도 하고 잠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피를 말린다는 표현은 바로 이런 경우에 쓸 수 있는 말일 것입니다.

 

성경을 배달합니다. 성경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성경을 배운 그들을 파송합니다. 그들이 돌아가 교회를 개척하고, 지하교회가 늘고 있습니다. 이들을 위한 연장 교육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선교가 아니라면 무엇이 선교일까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 밖에 없습니다.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선교 보고를 하고 보내시는 곳에서 설교를 하고 부흥회를 인도합니다. 때로는 젊은이들을 이끌고 선교지에도 가고 지난 사역들을 나눕니다. 놀라운 것은 이동 중에 잠깐씩 나눈 이야기들을 그들이 고마워한다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들려주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줄로 알고 믿는 이들이 성경을 갖고 싶어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감격하며 그대로 살아가도록 애씁니다. 성경 배달은 지난 1983년에 시작됐습니다. 1985년 선교회를 만든 이 후로는 성경배달 사역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원하는 게 성경이라면 보내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것도 필요한 줄 몰랐네요? ‘라고 방금 카톡이 왔습니다. 이스라엘에 가 있는 선교사와 그 가족들 그리고 자원봉사하는 사역자들의 필요를 공급하는 걸 알게 된 성도가 보낸 카톡입니다. 바울 사도의 사역을 돕기 위해 뵈뵈는 로마서를 배달했고, 에바브로디도는 헌금을 배달했습니다. 어떤 이는 천막 만드는 일을 함께 했고, 어떤 이는 숙소를 제공했고, 어떤 이는 식사를 정성껏 준비해 주었습니다. 교통수단이었던 말을 제공하거나 치료를 담당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전기 드릴이 필요한 줄 몰랐다며 보내겠다고 하는 성도가 있습니다. 가는 곳마다 우리를 정성스럽게 대접하고 잠자리를 제공하고 차를 빌려주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헌신과 섬김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선교가 아닐까요?

 

오늘도 성경을 배달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사역에 헌신하는 일꾼들과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하며 헌신을 아끼지 아니하는 여러분들을 통해 북한과 중국, 아랍과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기를 기도합니다.

 

2018년 11월 16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SNS로 공유하기:

[동역자편지] “예배당을 빼앗겼습니다”

동역자 여러분께!

 

“예배당을 빼앗겼습니다. 아니 그 건물은 그냥 남아 있습니다만 들어갈 수 없도록 봉쇄당했습니다. 예배에 사용됐던 모든 기물들은 어디론가 가져가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돈을 내고 찾아가라고 합니다. 담임목사인 저는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우리는 거리로 나와서 걸으며 예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핸드폰의 인터넷으로 예배하고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집도 팔아버리라고 강요했습니다. 그러나 사려는 사람이 없어서 팔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팔 수 없는 그 집에서 모여 매일 예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찬양하고 말씀을 듣고 성찬식을 하며 예배하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들과 헤어져 있습니다. 가슴 아파하는 소식들이 곳곳에서 들려오지만 예배가 중단되지는 않습니다. 여러 곳의 예배당 십자가가 불태워졌습니다. 예배당 위에 세워져 있던 십자가를 끌어내렸습니다. 예배당 안에 공산당들의 글을 붙여놓도록 강요했습니다.

 

우리는 그래도 예배할 수 있어 감사할 뿐입니다. 저 북녘 땅에서는 이렇게라도 예배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모퉁이돌선교회에서 보내준 북한언어로 된 성경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처형됩니다. 남한에서 사용하는 성경이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믿는 조선족을 만났다는 것만으로 고문당합니다. 찬양하는 것도,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일도, 모두 순교의 조건이 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달랍니다. 성경을 보내달랍니다. 북한 성도들은 구원의 확신 속에 살아갑니다. 강 건너의 빨간 십자가를 보고 위로 받고는 했다는데 이제는 그것도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의 횡포로 인해 우리의 믿음이 더 커지고 있습니다. 이삭목사님이 당했었다는 북한 카타콤과 중국의 핍박을 이제야 이해합니다. 요즘 조선족들이 북한사역을 조심스레 취소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도 북한 성도의 그 환경을 위해 더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하나님 나라 백성들-그리스도안에서 형제 된 그들의 아픔을 외면했음을 회개합니다. 한편으로 이렇게라도 예배하고 모일 수 있고 섬길 수 있음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보내 온 전화내용을 옮긴 것입니다. 중국과 북한에서 성경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연락해 왔습니다. 지금이 정말 하나님 나라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고 엎드릴 때입니다. 북한 땅을 바라보며 기도할 곳을 오랫동안 기도하던 중에 강화도에서 찾았습니다. 수리를 하는 시간을 단축시켜야 합니다. 수리가 끝나는대로 곧 모여 북한의 잊혀진 하나님 백성들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급한대로 임시 건물을 만들어 기도와 훈련이 시작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폐교 건물의 수리는 비용관계로 조금씩 하려다보니 2년이나 걸릴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은혜 베푸시기를 기도합니다. 올 겨울이라도 준비되어 기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재정이 준비되기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수리하는 모든 과정이 순적하게 진행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좋은 일꾼들과 자원 사역자들이 동원되기에 부족하지 않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수리하기에 좋은 날씨가 주어지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함께 모여 북한 땅을 사로잡고 있는 악한 세력이 무너지기를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남한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부정하는 모든 세력들이 와해되도록 기도해주십시오..
이를 위해 함께 모여 기도할 장소가 준비 되도록 기도해주십시오.

 

17개국이나 되는 외국인들과 해외 동포들이 함께 모여 북한의 복음통일을 준비하며 기도하기 위해 와서 10월 9-12일까지 모였습니다. 이들 중에서 몇 분은 북한이 바라다 보이는 강화도에 가서 보았습니다. 모두 마음에 두고 돌아가 함께 기도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민족이 복음으로 통일되기를 위해 얼마나 진심으로 기도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위해 얼마나 기도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며 그리스도의 형제가 맞습니까?
동생이 감옥에 갇혀서 매 맞고 있습니다. 매 맞고 피 흘리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모른 체하고 돈 타령이나 하고 있을 겁니까? 우리의 누이가 인신매매로 팔려서 이방 땅으로 보내지고 있으며, 그 인신매매 중 태어난 아이들이 한국 땅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일과 사람들 그리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10월 27일 전체 회원들이 모여 기도하려고 합니다. 저들을 위해 눈물 흘릴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지속적으로 함께 모일 기도할 자리가 속히 준비되기를 원합니다.

 

2018년 10월 15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SNS로 공유하기:

[동역자편지] 하나님은 자기 백성으로 예배케하십니다!

동역자님께!

 

저는 신학자가 아닙니다.
설교가도 아니고 목회자도 아닙니다.
다만 신학을 공부했고 길지 않은 동안 부목사로 지내다가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중국으로 성경을 배달했습니다. 성경배달 횟수가 늘어나고 방문지역도 넓어지면서 더 많은 신실한 성도들과의 만남이 있었고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성도들의 삶과 북한성도들의 이야기를 전하기 시작한 것이 설교로 이어졌고, 지금까지 선교현장의 성도들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제가 전하는 성도들의 이야기를 듣고 성경을 구입하라고 헌금해 주시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족들에게 옷이나 약품을 전하라고 부탁받았습니다. 저는 주어진 성경, 성경 번역, 전도지들을 만들어 배달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중국교회와 조선족교회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몽골에서도 복음이 확산되고 교회가 일어났습니다.

 

“기타 몇 개만 보내줄 수 있으세요?”
목사더러 기타를 보내달라니…이게 무슨 소리지?
기타 칠 줄도 모르는 내게 왜 이런 요청을 하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현지에서 돌아와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 인천의 한 목사님께 그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드린 이야기를 듣고 난 목사님께서 대뜸 “제가 해드릴께요.”라고 하시면서, 교회 성도 중에 기타공장을 운영하는 분이 계시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목사님께서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기타를 구입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준비된 기타를 몽골에 전달해 주었습니다. 기타를 받은 분은 한 개의 기타로 한 개 교회를 개척할 수 있다고 하시면서 기뻐했습니다. 당시 몽골의 성도는 전국에서 30명이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기타 하나로 교회 하나를 세울 수 있다고 하니 놀라웠습니다. 그런데 25년 정도 지난 지금 몽골의 교회가 두 도시에서만 100개가 넘어섰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만남은 성경 번역으로, 성경 출판으로 고어체에서 현대의 언어 사역으로 확장됐습니다.

 

저희는 기타 20여 개를 전달했을 뿐입니다.
누가 기타를 통해서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진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아니 그 기회가 의과대학 학장이 예수를 영접하고 병원을 넘겨주게 될 것을 누가 알았을까요?
100여개의 교회가 십자가를 세우고 자연스럽게 예배하게 되었음을 누가 알았을까요?
지금 현장에 있는 분들은 그 과정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만 확장되면 되는 것이지요. 저는 순종했을 뿐입니다.
영광은 하나님께 그리고 저희는 기쁨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얻어 여기까지 오게 하셨으니,
하나님은 자기 백성으로 예배케 하셨고 저희는 쓰임 받았으니,
와! 이런 일은 축복일 뿐입니다.

 

한 개의 기타만이 아니라 등사기도 보내졌고, 의료진도 동원되었으며, 농업 전문가도 동원되었습니다.
그 다음이 더 놀랄 만한 일입니다.
이제는 그들이 북한선교를 위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시작됐고 진행 중입니다.
조용히 숲속에서 골방에서 하는 기도소리를 주님이 듣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순종할 때 오는 그 결과는 하나님만 아십니다.
그러기에 한두 사람이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기를 원하셨던 것 아닐까요?

 

여기만이 아닙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북한으로 보낼 성경들을 필요로 합니다. 풍선과 전도지도 북한으로 보내주겠다는 이들이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우편물로라도 북한에 성경을 보내주겠다고 요청이 들어옵니다. 성경을 운반하실 수 있습니다. 기도하실 수 있고, 주변에 알려서 기도에 동참하도록 안내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순종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준비가 되었습니까?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2018년 9월 14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SNS로 공유하기:

[동역자편지] 지금 한 권의 성경이 그 어느 때보다 귀한 때입니다!

동역자 여러분께!

 

지난 35년 동안 성경을 배달할 기회가 모퉁이돌선교회에 주어진 것은 대단한 축복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중국에서 엄청난 교회부흥과 성도들의 성장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지금 한 권의 성경이 그 어느 때보다 귀한 때입니다.
그런데 중국은 지난 3월 30일 자로 모든 서점과 온라인에서 성경 판매를 금지했습니다. 인터넷 서점에서 ‘성경’이라는 단어를 검색하지 못하도록 차단하고, 정부가 인정한 삼자양회조차도 성경을 판매할 수 없도록 금지했습니다. 중국에서 성경을 구경하기 어렵게 되었고, 배달하려는 일꾼들도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을 받으려던 사람들조차 두려워 성경 받는 것을 거부하는 형편입니다. 지금 중국인들은 과거의 공산권 치하에서의 탄압을 잘 알고 있기에 두려워 움츠러들고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철거하고 소그룹으로 모임을 바꾸고 있습니다.

 

중국의 경제성장 뒤에 해외 기독교인들의 기도와 투자가 있었음을 중국인들이 모르고 있는 것일까요? 중국이 자신들의 지혜와 능력으로 경제발전을 이룬 것이라고 자만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중국 정부가 교만해졌습니다. 중국 공산주의가 건방져 버렸습니다. 그들이 돈 맛을 알고부터 노골적으로 악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돈이면 다 되는 줄로 아는 상식이 통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배가 부른 중국을 내버려 두실까요?
이러한 현상은 미국이나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의 교만함에서 미국을 보게 되고 한국의 모습도 보여집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더 지혜로워지고 더 헌신하며 더욱더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모습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야 합니다. 방법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 방법을 주님이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방법을 구할 자를 찾고 계십니다. 정치도 경제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심 속에 우리를 집어넣고 두루마리를 먹어 그것으로 인하여 생명을 유지할 자세를 갖춰야 할 것입니다.

 

시간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전쟁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입으로 시인하여 하나님께 속한 자의 모습으로 일어서야 할 때입니다. 빛을 발하라 하시는 말씀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일어나라고 명령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뜻을 이루시도록 순종할 사람은 나입니다. 여러분입니다. 하나님은 “예”라고 답 할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중국만이 아닙니다. 북한을 향한 우리의 모습이 더 지혜롭고, 더 헌신해야하며 세상 것보다 하나님의 나라에 관심을 쏟아야 합니다. 중국이라는 나라, 북한이라는 땅, 남한이라는 지역으로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나라로 폭을 넓히셔야 합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 나라의 부분적인 한 영역일 뿐입니다. 당신은어디에 속하셨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렵니까?

 

1991년 모퉁이돌선교회의 십일조를 이스라엘에 전달했을 때의 일입니다. 이사야 55장 5절을 인용한 한 이스라엘 장로의 말을 저는 분명하게 들었습니다.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 달려올 것은 나 여호와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라며 저를 축복해 주었습니다. 저희를 땅 끝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칭해 주었습니다. 땅 끝의 이방인이라고 여겨 말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몰랐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이 이 백성을 기억하셔서 온 나라에 온 땅에 복음을 전하는 민족으로 삼으심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중국에 기독교인이 1억이라면 아직 13억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방송을 통해서 인터넷을 통해서 성경배달을 통해서 그들 13억을 향하여 말씀을 전파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방법을 주시도록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는 또 그 땅을 밟을 것입니다. 함께 순종할 주의 일꾼들을 보내주시기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지혜롭게 하시고 길을 열어 가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이 당신을 부르셨습니다.
당신은 이제 무엇을 하시렵니까?

 

2018년 8월 16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SNS로 공유하기:

[동역자편지] 여러분의 이웃은 누구입니까?

“아빠 이름이 뭐예요?” “아빠가 없어요.”
“아빠는 없어도 아빠 이름이 있잖아요.”
“아빠 이름은 몰라요. 엄마에게 물어보니 엄마도 아빠의 이름을 모른대요. 아빠는 죽었대요.”
탈북한 한 여인이 낳은 아이의 대답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아이는 인신매매로 팔린 엄마에게서 태어난 아이입니다. 엄마는 그 아이를 한국으로 데려왔습니다. 초등학생 아이는 중국인 아버지와 북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 한국에 온 아이는 우리말도 서툴고 중국말도 잊어가고 있습니다.

 

이 아이는 서울의 모 교회가 세운 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합니다. 한 달에 한번 주말에 엄마를 만나게 됩니다. 탈북자인 엄마는 노동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엄마는 아이가 보고 싶어 만나지만 아이는 엄마를 만나는 것이 힘이 듭니다. 북한식 문화와 어정쩡한 중국문화 그리고 남한문화가 뒤엉켜 있어 소통에 어려움이 따릅니다. 어쩌다 만나는 엄마는 아이들과 소통에 어려움이 따를 때 야단을 치게 되고 그럴 때마다 엄마와 아이는 다투게 됩니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아이는 어느새 사랑을 주는 선생님으로부터 복음을 듣고 신앙생활을 이어갑니다. 선생님들은 이 아이들을 정말 사랑으로 키웁니다.

 

어느 날 저는 그런 아이들 몇 명을 불러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헤어지려는데 갑자기 한 아이가 제게 달려와 꼭 안겼습니다. 그 아이가 학교에 돌아가 자랑을 하더랍니다. 저는 이 아이들 몇 명을 데리고 미국여행을 곧 떠나려고 합니다. 미국을 원수의 나라로 배운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을 잘 키워서 하나님의 사람들로 세워가고자 하는 소망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 해 동안 탈북아이들을 데리고 미국 여행을 해 보았습니다. 그 아이들이 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직접 운전을 하며 여러 지역을 동행해야 하는 일정이 힘들지만 이런 일로 사람을 키우고 열매가 맺는 것을 볼 때마다 보람을 느낍니다.

 

최근 북한을 바라보며 기도할 장소가 결정되었습니다. 폐교이지만 수리해서 뜻하시는 분들이 모여 기도하고 머물다 갈 곳입니다. 예배하고 훈련하는 곳이 될 것입니다. 기도를 가르칠 것입니다. 탈북 청소년들을 모아놓고 함께 하나님께 아뢸 곳이 될 것입니다. 상처받은 이 아이들을 도와서 함께 이웃으로 갈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훈련원을 구입하고 수리하고 리모델링하는 일이 남아 있습니다. 벽돌 하나 유리창 하나 시멘트 한 포대를 필요로 합니다. 하루하루의 일을 위해 수고할 자원사역자도 필요합니다. 예배실과 기도실을 만들어야 합니다. 식사준비를 위한 주방시설과 식당도 만들어야 합니다. 화장실도 만들어져야 하겠지요. 예배하러 와서 머물고 갈 숙소도 만들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의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준비 과정입니다. 저는 이번 초막절(우리의 추석과 비슷한 기간)에 이스라엘 가는 일을 포기하고 노동을 하기로 했습니다. 나무를 자르고 치우고 청소하는 일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이웃들을 돌보기 위한 작업에 동참하려고 합니다. 이스라엘에 가지 못하는 것이 섭섭하기도 하지만 이웃을 돌보려는 마음입니다.

 

황해도 신천은 저의 아버님이 태어나신 곳입니다. 큰 아버님은 딸을 셋을 낳으셨다고 합니다. 저는 그 딸 중에 하나가 공산당 당원이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사촌 누님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저는 그 누님과 헤어진 후에야 그가 제 누님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님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놓쳤습니다. 저는 조선 기독교 연맹의 강영섭 목사님께 복음을 전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나도 용서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던 그 목사님은 저의 이웃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이웃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이웃을 모른 체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선한 사마리아 사람에게는 기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데나리온이 있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그 기름과 두 데나리온을 주고 약속하고 헤어집니다.
혹시 여러분에게 주어진 그 기름은 이웃을 돕기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닐까요?
저는 제가 미국에 집회를 위해 갈 때마다 제 이웃인 북한에서 온 아이들과 탈북인들을 데리고 여행을 합니다. 이것이 제가 갖고 있는 은사요 기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빠 이름을 몰라요”라고 대답하는 아이의 눈이 눈물에 젖어 붉어지는 것을 보고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었습니다. 저와 함께 이웃을 위해 기름을 준비할 선한 사마리아 사람을 찾습니다. 주님이 여러분에게 허락하신 이웃은 누구입니까?

 

2018년 7월 16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SNS로 공유하기:

[동역자편지] 그 일이 이달부터, 아니 오늘부터 변화가 시작되기를 기도합니다

1950년 6월 25일 그 날, 북쪽의 주민들은 전쟁이 시작된 후에도 혹시, 행여나 하며 머뭇거렸습니다. 가족과 함께 떠나 온 분들도 있고 자식이나 부모 그리고 처자를 남겨두고 떠나 온 분들이 많았습니다. 남아 있는 가족과 ‘곧 돌아와!’하며 헤어졌습니다. 무너지거나 텅 빈 교회를 뒤로하고 떠나야 했습니다. 1950년, 북한교회는 더 이상 자유롭게 예배하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모임도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목사님들과 장로님들도 하나님이 없다는 공산주의자들 밑에 살아남을 수 없음을 직감하고 떠나야 했습니다. 그렇게 떠나 온 분들은 오늘, 내일 하며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1951년 1월 4일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하기 시작하면서 전쟁은 최악으로 치달았습니다. 오가면서 짓밟혀 죽고 총탄에 맞아 죽었습니다. 어미와 자식을 잃었습니다. 부부가 헤어지고, 부모 잃은 아이들은 고아가 되었습니다.

 

피난민들 중에 예수 믿던 성도들을 중심으로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남한에 세워진 교회들 가운데 그런 소망을 품은 교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고향을 떠난 이들 중에 많은 이들이 1960년을 지나면서 더 이상 소망을 갖지 못하고 남미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몸은 이국 땅에 있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떠나온 고향 땅을 그리워했습니다. 일본에 머물렀던 재일동포들과 미국의 재미동포들 그리고 중국의 조선족들과 소련의 고려인들 가운데 그렇게 고향 떠난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들 중에 남한에 남아 경제적으로 성공한 이들도 있고 그렇지 못한 이들도 많습니다. 이민을 떠난 이들 가운데도 오랫동안 마음을 고향에 두고 그리워했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전후해 조선족들과 고려인들에게 고향소식을 전하면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평양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사실입니다. 봉수교회였습니다. 아니 평양 방문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을 찾아 평양을 방문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평양 봉수교회에서 예배드리며 소리 내어 우는 이들도 있었지만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더 놀라운 소식이 최근에 일어났습니다. 남한과 북한의 책임자들이 만났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이 미사일을 쏘아대며 핵을 개발해 전쟁을 불사하겠다던 북한의 책임자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통일이 오나!’하며 기대감과 우려의 마음을 함께 갖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혹시나 하면서 말입니다. 온 세상의 뉴스가 싱가포르에 맞춰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성도들은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를 알고자 합니다. 저는 온 세상의 왕이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이뤄갈 것임을 믿습니다. 물론 제가 바라는 뜻과 결과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온 우주의 흐름이 왕이신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뤄져 간다는 것입니다. 왠지 모르게 6.25가 일어났던 1950년으로부터 이제 70년이 되어가는 2020년에는 고향을 멀리하고 떠나와야 했던 그들이 돌아갈 때가 되기를 바라게 됩니다. 어쩌면 그 당시에 고향을 떠났던 분들 대부분이 세상을 떠났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녀들과 후손들을 그 축복의 자리로 되돌려 놓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습니다. 토마스목사가 순교 당한 평양의 그 자리로 돌아갈 날이 오지 않을까요?

 

그 외에도 많은 북한의 성도들이 피 흘린 그 곳으로, 아니 지금도 고난 당하고 있는 성도들이 예배할 수 없는 그 자리로 돌아가 그들과 함께 기도하기를 저는 기다립니다.

 

아니 좀 더 구체적으로 북한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김일성 독재 유일체제를 중단하고, 주체사상을 완전히 포기하여 최소한 중국과 러시아만큼이라도 북한의 모든 주민들이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아니 그것만으로는 안됩니다. 북한 땅이 완전히 자유 민주주의 형태로 탈바꿈하고 회복되어 모든 성도들이 자유롭게 하나님을 예배하고, 주의 말씀이 선포되며,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자유롭게 기도하고 찬양하며 하나님께 헌신하는 그 복을 누리기를 기대합니다.
언론의 자유! 이사할 수 있는 자유! 모임의 자유를 누리며 사는 일이 이번 기회에 일어나도록 기도합니다. 그런 일이 하루아침에 되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하나님이 하실 수 있음을 전폭적으로 믿고 순종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북한 전역에서 교회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예배 중에 찬송의 소리가 회복되도록 함께 기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제가 그 일이 가능하다고 믿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 같은 죄인이 용서받고 변하여 회심하도록 만드신 그 하나님이 북한 땅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저 같은 죄인도 용서하신 하나님은 북한 당국자도 능히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주체사상이라는 견고한 사상에 세뇌되어 있는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이 그 굴레에서 벗어나 한꺼번에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되게 하실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비록 그들이 하나님을 저버리고 주님을 떠났을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하시고 회개케 하실 수 있습니다.
2020년을 기다리는 저는 올해 2018년부터는 무슨 일이라도 결정되어 진행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그 일이 이달부터, 이 주간부터, 아니 오늘부터 변화가 시작되기를 기도합니다.
그 날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고 순종할 종들을 찾습니다.
이 일을 위해 저는 북한 땅을 바라보며 기도할 장소가 준비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2018년 6월 15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SNS로 공유하기:

[동역자편지] 오늘 말씀을 들어야 할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냥 죽어가고 있습니다

동역자님께!

 

이제는 북한선교를 중단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남북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 논의를 했으니 통일이 곧 올 것이니까요.
통일이 오면 선교할 필요가 없을까요?
그렇다면 1억이 넘는 기독교인들이 있는 중국도 선교할 필요가 없지요. 중국은 기독교인의 수가 한국의 인구보다 더 많고 우리가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으니 선교를 그만 해야 할까요?
언제라도 여행할 수 있는 자유국가 일본도 선교하면 안되는 건가요?
아프리카는 왜 선교했나요? 미국이나 캐나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유럽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중동의 아랍권을 선교하는겁니까?
인도에 교회가 있으니 선교할 필요가 없는 겁니까?
이런 생각으로 북한선교를 중단하라고 하는 건가요?

 

불순한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 정치적인 국경선에 한계를 둘 수 없습니다
정치적으로 자유국가가 되면 선교 대상에서 빠져도 되는 건가요?
미국에는 교회들이 문을 닫고 있습니다. 유럽국가들도 일반적으로 그런 추세입니다.
이란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복음이 전파되는 곳입니다.
북한 땅도 복음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한 권의 성경이 생명을 살리고 전단지 하나가 삶을 바꾸게 합니다.
방송과 인터넷을 이용한 훈련으로 북한 땅이 하나님께 속한 땅으로 회복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제 꿈은 북한 땅의 성도(진정한 의미의)와 하나님의 백성들을 훈련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서 하나님을 찬양케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통일이 되었다고 해서 북한선교를 중단할 생각이 없습니다.
지금이 오히려 북한선교를 더욱 힘차게 해야 할 일입니다.
복음풍선을 띄우지 못하고 복음방송을 하지 못하게 하는 그 정부가 하나님 편일까요?
우리는 하나님 편일까요?
저는 북한으로 다시 들어갈 길이 열리기까지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기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 일에 대가가 지불되더라도 말입니다.
제자들도 사도들도 고난 당하는 것을 오히려 기쁨으로 알았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마태복음 6장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은
통일 후에나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들어야 할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냥 죽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편에서 생각 하십니까? 아니면 자신의 안일을 먼저 생각하십니까?

 

저는 지금 피곤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북한과 중국 그리고 아랍과 예루살렘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애쓰고 있습니다.
마땅히 할 일인것 뿐입니다.

 

2018년 5월 16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SNS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