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칼럼] 이웃 된 책임을 다하고 있나요? (2019.09)

 

 

제게 주어진 일을 할 뿐입니다. 중국에서 그랬고 북한에서도 그랬고 이스라엘에서도 그랬습니다. 할 수 없는 일을 찾기보다 나에게 주어진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 저는 지혜롭지 않습니다. 이렇다 할 능력도 은사도 없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아도 실제로 할 수 있는 일들을 했습니다.

 

중국의 성도들에게 성경을 보내서 지도자들을 양성했습니다. 그들이 선교지로 가도록 독려했습니다. 그리고 가정교회를 세우도록 도왔습니다. 병음 성경을 통해서는 소수 민족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도록 힘썼습니다. 중국의 조선족을 양성했고 탈북민들을 전도해서 북한으로 돌려보내 지하교회를 세웠습니다. 북한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하기 위해 성경책을 보내고 방송도 송출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선교사님들의 아내와 자녀를 돕는 일을 계속합니다. 이스라엘에 와 있는 중국인들이 볼 중국어 성경도 보급합니다. 터키와 요르단에서는 난민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메시야 만화를 보내줄 뿐 아니라 아랍권 언어 성경도 배포합니다.
일본에서는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감당하도록 독려합니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성경 배달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성경 배달과 방송 사역 후원을 추진합니다. 베트남(월남)에서는 전도 폭발이 일어납니다.
월남 가까운 나라에서도 주어진 일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파키스탄, 인도, 부탄,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중앙아시아 등에서도 활발합니다. 남미도 북한을 위한 사역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독일, 영국, 핀란드, 불란서, 스웨덴, 이태리, 스위스 등 유럽 국가들도 이 대열에서 빠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지 못하는 것들을 이웃 나라 하나님 백성들이 감당하기 원합니다. 북한과 남한 땅의 어려움을 외국 하나님의 백성들도 느끼고 알고 있습니다. 그들도 행동으로 옮기고 싶어합니다. 하나님과 영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오랫동안 이 일을 감당해 왔습니다.
그들은 묻습니다. 하나님이 북한 땅에서는 어떻게 일하시냐고. 당신은 행여라도 하나님이 북한을 포기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지요? 아니 당신은 북한을 선교해야 할 땅으로 여기지 않지 않았는지요? 북한 땅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이웃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요?

 

왜 요즈음 북한에 대한 관심이 식어지는 것일까요? 통일이 되면 자연적으로 교회가 세워질 것으로 생각하는 건 아닌지요? 교회가 세워지면 북한은 당연히 복음화가 되겠군요. 당신은 오랫동안 교회에 다녔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당신은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은사와 재물을 바로 사용하고 있으신가요? 당신은 하나님의 백성인가요? 저 자신이 주어진 일을 감당하고 있는지,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저는 이곳저곳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러 갈 것입니다. 이 일이 제게 주어진 일이기 때문입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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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성경 배달의 어리석음을 핀잔하며 욕하는 교단의 목사들을 경험했습니다. 성경 한 권을 얻기 위해 울며 기도하던 이들이 받아 든 성경이 과연 어리석음의 결과였을까요? 그들은 기뻐했고 감사했으며 결과적으로 중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 말씀이 누룩처럼 번졌습니다. 아닌가요? 중국 기독교인 수가 1억이 넘었다는 보고가 거짓인가요? 하나님의 능력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요?

 

존 로스 목사는 바보짓을 했군요. 토마스 목사는 멍청이네요. 하디, 아펜젤러, 언더우드는 미련한 사람들이었군요. 하나님의 나라는 누룩처럼 보이지도 인정받지도 못하면서 여전히 번져갑니다. 열두 명의 제자들로 인해 온 세상에 십자가 나무 이야기가 확산되었잖아요. 그 뒤를 따르는 분들이 바로 여러분이고요. 오늘날 한국 땅에 전해진 그 복음을 위해 피 흘리며 죽어간 자들 외에도 수고한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양화진에만 선교사들의 무덤이 있나요? 남한 땅 곳곳에 묻힌 선교사들은 어리석음의 극치이군요. 여러분들도 그런 어리석음의 열매이지요?

 

저는 지금 강화도 훈련원에서 북한 땅이 어두워서 보이지 않는 시간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저들 북한 땅의 성도들은 여러분과 제가 자기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알까요? 모를 테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어리석음의 극치를 걷고 있는 우리의 이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저는 궁금한 게 있어요. 그때 판문각에 앉아서 제 설교를 듣고 있던 16명 북한인들의 심령 속에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셨을까? 그 소좌(중좌) 말고 다른 이들은 제 말을 어떻게 새겨 들었을까? 평양 고려호텔 안에 있던 6명의 당원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기차 안에서 나누었던 그 한 청년은?

 

중학생 시절 저를 만난 소년이 이제는 목사가 되어 저를 초청합니다. 고등학교 시절과 대학 시절, 그리고 신학교에서 도전 받은 이들이 지금은 선교사로 일하는 것을 자주 봅니다. 구브로(사이프러스)에서도 만났습니다. 월남에서도 만났습니다. 아니 서울에서도 전국 각지에서 용기 있게 악수를 청하는 이들이 바로 이런 이들입니다.

 

제주도에서 만난 한 미국 여인은 저를 11월 하버드 대학이 있는 보스턴 자기 교회로 청하겠다고 합니다. 제가 한 일을 나누었을 뿐이었는데요. 성경 배달 말입니다. 이런 어리석음의 극치를 걷는 결과가 무엇인가요? 하나님 나라의 확장입니다.

 

하나님이 모퉁이돌과 저에게 그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기회를 주시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공산권만 아니라 아랍권에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역사가 일어나고 있음을 저는 보고 있습니다. 러시아나 몽골에서도 같은 축복(고난)의 길을 걸으며 기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제자들이 고난 받음을 영광으로 여긴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중국에서, 러시아에서, 북한에서 전했던 그 복음의 씨앗들이 열매를 맺었습니다. 뉴질랜드에서 원주민을 만나 복음을 나누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울면서 고맙다고 제 잔등을 두드려 주었습니다. 누룩처럼 온 세상에 확산될 하나님의 나라의 일이 여러분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성경 배달로, 기도로, 재정 후원으로, 선교사 섬김으로… 오늘 여러분과 제게 주어진 바보 같은 어리석은 일은 성경 한 권을 보내는 것일 수 있습니다.

 

무익한 종 이삭

 

[2019.08 카타콤소식 ‘이삭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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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그 5천 권을 누가 운반했는지 아십니까? (2019.07)

 

아들은 노란 봉투를 어머니에게 갖다 드렸습니다.
그 봉투에는 한 졸병 군인 아이가 “소좌님! 오늘 우리가 처형한 아이들이 가지고 있던 거에요.
까만 책이에요.”라고 말하며 놓고 간 책이 들어있었습니다.
“이거 엄마가 보고 싶어했던 거잖아! 까만 책!” 아들은 어머니 앞으로 다시 책을 내밀었습니다.
“어디서 났니?” 착 가라앉은 음성이었습니다.
“오늘 그 책 갖고 있던 아이 세 명을 처형했어!”,
“기다려라!”
꽤 오랜 시간 후에 어머니는 하얀 치마 저고리를 입고 나왔습니다.
“이제 네가 나를 죽일 차례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아들은 화들짝 놀랐습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어머니?”,
“네가 처형한 그 세 사람이 내 형제들이었다. 이제 네가 날 죽일 차례야!”,
“아닙니다, 어머니! 어머니가 믿는 게 예수라면 나도 믿을게요!”
무릎을 털썩 꿇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이제야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시는구나!”
라고 절규하듯 탄식했습니다.

 

그러고는 잠시 후 아들에게 당부했습니다.
“너 정말 예수 믿는다면 네가 갖고 온 이 큰 책 말고 조그만 거 2천 8백권을 인쇄해서 가지고 와라!” 아들은 황당했지만 어머니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어서 “예.”라고 우물쭈물 대답했습니다.
아침에 출근을 하니 노란 봉투를 가져 온 그 졸병이 들어왔습니다.
“소좌님! 얼굴이 환해지셨네?”,
“야! 쓸데 없는 소리 하지 말고 나가!”,
“2천 8백! 2천 8백!”,
“너 지금 뭐라고 했어? 2천 8백? 너도 한 패냐?”,
“에이, 소좌님도 한 패면서!”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들은 ‘다 드러났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2천 8백 권 구할 수 있니?”라고 자포자기하듯 물었습니다.
“허락만 해 주세요. 강 건너 갔다 올 시간만 주세요!
거기서 이삭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에게 연락하고 요청해 놓으면 될 거에요.”
졸병 아이는 소식을 들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2천 8백 권 찍어야 해!”,
“안 된다.”,
“왜 안 돼요?”
동그랗게 커진 아이의 눈을 보며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5천 권을 찍어. 어차피 한 판이야!”,
“아이!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놀라지 마십시오. 그 5천 권을 누가 운반했는지 아십니까? 북한 군인들이 북한 땅으로 밀수를 했습니다. 안 된다고 하는, 이 악한 생각이 우리 가슴 속에 얼마나 잠재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묻습니다. 여러분에게, 북한 성도들에게도 묻습니다. 안 된다고요? 버림 받았다고요? 매 맞았다고요? 넘어지고 지친 우리의 모습임에도, 여전히 살아계신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무릎 꿇게 하시고, 긍휼을 입게 하시고, 고백하게 하시고, 선포하게 하시고, 별 볼 일 없이 피 흘려 죽어가게 만들어서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것을 저는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믿습니다. 북한 땅에 있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땅에서 피 흘려간 하나님의 종들이 결코 버린 바 된 것이 아니고, 한 어머니의 기도로 그 소좌를 끝내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서라도, 5천 권의 성경을 강을 건너 밀수하게 해서라도,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이끌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들의 기도와 헌신과 눈물 또한 결코 외면되지 않을 것입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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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형제자매들이 다 내 가족이라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시편 137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바벨론으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온의 노래를 흐느끼며 부릅니다. 어떻게 남의 땅에서 자기 나라를 기억하며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느냐며 울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왜 우리의 모습처럼 느껴질까요? 명절이면 임진강변에서 북한에 계신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절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압록강 강변을 거닐면서, 두만강 강변을 지나면서, 아니 대동강 강변에서, 청천강 강가에서, 눈물짓고 있는 제게 한 안내인은 물었습니다.
“북녘에 가족들이 있소?”
“있지요. 있고말고요. 내 하나님 나라의 자녀들이 다 내 가족이라오.”
그 안내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북한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은 내 형제요 자매라고 말하는 그 속뜻을 그가 알아들었을까요? 느낌으로는 알아 들었을 터이지만 그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목사인 것을 알았기에 그는 머리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화를 끝냈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우리는 그들이 우리의 형제요 자매인 것을 포기한 채 살아오지는 않았나요?

 

고통하며 신음하는 이들을 보고 아무 일을 하지 않은 것은 죄악입니다. 죽어가는 이를 보고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는 것도 죄악입니다. 북한 땅이 무너져 버린 것을 알고, 그들이 도피해 오는 것을 뻔히 보고도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우리. 너무 오랫동안 비참한 일들이 일어난 것을 보고도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은 우리입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저 북한 땅의 2천만 주민을 위해 우리는 무엇인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들을 위한 기도라도, 편지라도, 방송이라도, 중국이든 일본이든지 가서 친척들을 찾는 일이라도, 그것도 아니면 전문적인 선교 기관을 후원하는 일이라도 말입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을 통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볼 수는 없었을까요? 러시아에서 북한에 성경을 보낼 테니 공급해 달라고 할 때 외면해야 할까요? 베트남 성도들이 북한에 가서 전도지를 뿌리고 오겠다고 하는데 모른 체 해야 할까요? 일본에서 같은 요청을 했을 때 저는 감격해서 울고 말았습니다. 성경 한 권 보내는 일이 그렇게도 어려웠나요? 아니요. 모여서 북한의 내 형제와 자매들을 위해 기도하는 게 그렇게도 어려웠나요?

 

강 건너 북한 땅을 바라보며 그저 눈물만 흘립니다. 그곳에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살아 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할 일은 무엇일까요? 기도에 동참할 하나님의 백성들을 찾습니다. 무릎을 꿇어 주십시오. 입을 열어 하나님께 아뢰어 주십시오. 주의 나라가 확장되는 역사가 일어나기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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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꿀송이보다 더 단 말씀 알맹이를 먹습니다!

 

알맹이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껍데기만 덜렁 남아 있었어요.
종이는 약간 도톰했는데 그 위에 글자 네 개가 선명하게 박혀 있더군요.
주기도문.
누군가 성경을 가지고 가다가 버린 것일까?
아니면 들킬까 봐 알맹이만 가지고 간 것일까?
주기도문과 마주한 장에는 십계명의 제5계명부터 나와 있었어요.

 

그것이 다였어요.
알맹이가 없을 따름이었죠.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다 사라지고 주기도문과 십계명 반쪽만 있었으니까요.
그거라도 발각되면 어찌될지 몰라서 숨겨 두고 가끔씩 꺼내 읽는 게 전부였어요.
다 외웠지요.
그러면서 알맹이를 구할 수가 없을까 몇 년째 주님께 아뢰고는 했어요.

 

이번에 중국에 와서 제일 먼저 구한 게 성경이야요.
제가 갖고 있는 껍데기-주기도문과 십계명 반쪽-하고 크기는 다른데, 하나 손에 넣었어요.
그 알맹이 성경을 밥 먹고 변소 가는 시간 외에는 며칠을 죽으라고 읽었어요. 며칠을요.
료해(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많지만 무조건 읽었어요.
마음이 후련해요. 알맹이를 먹어서요.
아, 죄송해요. 성경을 읽을 수 있어서요.
근데요, 제게 성경을 주신 분은 아주 근사하고 큼직한 가죽으로 된 걸 갖고 계시대요.
슬쩍 슬쩍 보다가 용기를 내서 그걸, 죄송해요 그거라고 해서요, 구할 수 있느냐고 물었어요.
새 것을 내 주시더라고요.
그러시면서 “가지고 갈 수가 있겠나?” 혼잣말처럼 하시는데…
“마지막 순간에 못 가지고 가면 그 땐 그 때고, 가는 날까지 읽을 거라요!”라고 말씀드렸어요.
“선물이랑 돈이랑도 만들어 가지고 가야 갔는데… 이걸”
아이고 내 버릇 좀 봐, 또 이거라고 했네요. 성경 읽느라고 마련을 못했네요.

 

여행비를 줄이기로 하고 5백 달러를 손에 쥐어 드렸습니다.
더 드리지 못한 것은 내 수중에 있는 게 그것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이웃들에게 부탁하여 필요하다는 선물을 모두 만들어 드렸습니다.
그분은 중국에 머무는 동안 영생을 얻었고, 그 성경은 친척에게 맡기고 북한으로 돌아갔습니다.
어찌 되었는지… 살아 있는지…
나는 그 아주머니를 위해 무엇인가를 더 할 수는 없었을까요?
내 골육인데…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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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지금이야말로 성경을 가져다주어야 할 때입니다!

 

남루한 옷에 얼굴이 쪼글쪼글한 여인이 내민 손은 떨리고 있었습니다. 눈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 붉었고, 어조는 왠지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입에서 나온 말 한 마디.
“그 성경 우리에게 주고 갈 수 없소?” 그 여인의 말에 저는 그 무언가에 끌리듯 성경을 건네 주었습니다. 1983년 우중충한 낡은 건물에서 조선족 한 분을 기다리는 동안 있었던 일입니다. 그리고 2년 후, 모퉁이돌선교회가 서울에 조직되어 성경 배달이 시작되었습니다. 2년 후 여인을 만나 그 성경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을 때 “없어요.”라고 답하더군요.
“왜요?”라고 물었더니 “그 성경을 보고 달라는데 어떻게 해, 한 선생이 또 개져다 주겠지 뭐! 그래서 주고 말았어.” 그러면서 여인은 겸연쩍은 듯 씨익 웃었습니다.
33년 전의 일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성경을 달라는데, 그것도 몇 십 년 동안 성경 없이 살았다는데, 저는 서울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데, 돈을 달라면 이유를 물어야 했을 터이지만 성경을 달라는데…

 

그 후 150번 이상 중국을 드나들며 성경을 보급하던 일이 그만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중국 교회는 십자가를 세울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저기서 부흥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저의 부친도 제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만주에 들어가서 부흥회를 인도하다가 억류되어 벌금을 물고 나오셨습니다. 부친께서는 38선을 여덟 번 넘어 다니시면서 잡혔다 풀려나고 또 잡히셨던 분이십니다. “아니 어쩌자고 중국에까지 가셔요?”라고 물었더니 “죽이기밖에 더 하겠냐?”라며 피식 웃으시던 아버님이십니다.

 

그러나 지금 저는 중국을 드나들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중국은 성경 보급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습니다. 성경 판매를 중지했습니다. 인터넷으로도 불가능합니다. 성경을 대량으로 중국 땅에 보내는 것은 정말 어렵게 되었습니다. 중국 내 한족들은 이미 배달된 성경을 받는 것조차 두려워합니다. 옛날 공산당들의 횡포 혹은 문화혁명 당시를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인가요? 1983년에 처음 성경을 요청 받은 당시와 같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정말 성경을 가져다 주어야 할 때가 된 것을 느낍니다. 상황이 어려우면 오히려 기회가 있기 마련입니다. 일이 잘 되면 열심히, 막히면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 당시의 두렵고 떨리던 마음이 제게 다시 생성되고 있습니다.
이제 성경을 다시 배달할 방법을 찾기 시작합니다. 중국어 방송을 다시 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겠습니다. 비밀리에 성경을 배달할 방법을 다르게 시도하려고 합니다. 성경을 달라는데, 성경이 필요하다는데, 말씀을 읽고 듣고 싶다는데, 이 말씀을 먹어야 산다는데, 죽음이 와도 이 길을 가야하겠다는데…
믿음을 지킨 할머니들만 성경을 요구하는 게 아닙니다. 젊은이들이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그 인구가 1억이 넘었습니다만 아직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13억이 있습니다. 이때를 위하여 하나님이 모퉁이돌로 성경을 운반하게 하신 것일까요? 이때를 위하여 신학교에서 말씀을 전하게 하신 것일까요?

 

신학교에서 자란 조선족들이 지금 중국 내 소수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때 준비되었던 주의 종들이 이제는 현장에서 일합니다. 교회는 나누어져 모이고 있습니다. 싸워서 분리된 게 아닙니다. 교회를 나누어서 더 많은 작은 교회로 탈바꿈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소위 셀 그룹 형태로 바뀌고 있기에 더 많은 교육이 필요해졌습니다. 또 더 많은 서적이 필요할 것입니다. 성경은 판매가 가능하지 않지만 다른 길은 있습니다. 지도자들은 숨어야 합니다. 일단 피해야 합니다. 인터넷으로 숨어서 일할 길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이제 우리는 숨어서 일하는 지도자들을 뒤에서 도와야 합니다. 어쩌면 지도자들을 해외에서 일하도록 만들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사실 이 일은 이미 시작되어 오랫동안 감당해 온 일이었기도 합니다.
어려운 시기마다 뱀 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온유함이 필요합니다. 표면적으로 성경 배달을 외치면서 한편으로는 다른 길로 진행하여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두 정탐꾼을 보내고 여리고가 무너질 때 라합을 구해내는 지혜를 우리는 가져야 합니다. 그 라합은 예수님의 족보에 올려집니다.

 

그 여인의 한 마디 말이 저로 모퉁이돌선교회의 성경 배달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두 데나리온이 한 사마리아 사람의 주머니에 있었고, 그의 헌신으로 한 사람이 살아났습니다. 한 사람의 가르침이 조선족의 지도자들을 배양했습니다. 북한에 재파송된 일꾼들이 일어나 주를 찬양하는 날을 여러분들은 보게 될 것입니다.

무익한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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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이제 우리가 기도해야 하지 않을가요?

 

 

1973년, 이제 막 예수를 영접한 한 청년이 미국을 떠나 홍콩과 필리핀에서 자원사역자로 온갖 일을 하다가 한국으로 와서 제주도 극동방송 안테나를 세우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안테나에 나사 못을 박는 구멍을 뚫으며 “한반도와 몽골과 러시아와 중국과 일본의 죽은 영혼들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그리고 그 지역에 갈 사람들을 보내 주옵소서. 얼굴도 다르고 언어가 다른 우리 백인들이 그 땅을 위해 일하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그러니 그 땅에서 태어나 미국 시민권자로 저들 영혼을 향한 갈급함을 가진 사람을 보내 주옵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는 제주 극동방송 안테나가 세워진 자리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중국 선교를 위해 일생을 바쳤고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1983년 겨울, 선교 훈련을 마친 한 젊은 부부가 중국 상하이에 입국했습니다. 선교 정탐 여행이었습니다. 부부는 상하이에서 모은 정보를 이용해 조선족을 찾아가 만났습니다. 성경 한 권을 얻기 위해 오랫동안 조심스레 극동방송을 들으며 신앙생활을 한 성도였습니다. 당시 중국 내륙 지방을 여행하려면 비자를 다시 받아야 했습니다. 단 27개 도시만 중국 정부가 방문을 허락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부부는 그 조선족 성도와 함께 두 주 동안 북경을 들러 중국 동북삼성을 여행하며 가는 곳곳에서 지하성도들을 만났습니다. 한 도시에서 한두 사람을 만나고 14시간 이상 기차를 탔습니다. 주로 밤에 기차로 이동한 이유는 숙박비를 줄이기 위해서였습니다. 동시에 기차 안에서 밖을 보며 사진 찍을 기회를 갖고, 기차 안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특수 카메라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해지기 전이나 이른 아침 시간에 사진을 찍었습니다.
마지막 방문지였던 흑룡강성 성도들은 가난했습니다. 몹시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해였는데 생활 형편이 어려웠습니다. 그들은 움막 같은 집에서 진공관 라디오를 통해 극동방송을 들으며 위로를 받았습니다. 백인 청년이 구멍을 뚫어 만든 안테나를 통해 들려지는 방송이었습니다.
두 주간의 여행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새로웠기 때문이었습니다. 1950년대 한국 같은 가난 속에서 믿음을 지켜 가는 분들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다만 성경 한 권 얻기를 바라는 그곳 성도들의 마음을 다 채우지 못해 안타까웠습니다. 두 번째 지역에서 만난 조선족 성도가 “선생은 살 수 있잖아”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 한 마디가 모퉁이돌선교회가 시작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탐 여행을 끝내고 미국으로 돌아온 부부가 바로 저와 아내입니다. 저는 중국과 북한 사역을 하는 기관들을 찾아 보았습니다. 그러던 1984년 여름의 어느 날, 안테나에 구멍을 뚫은 그 백인을 만났습니다. 캘리포니아의 한 커피숍이었습니다. 여행중 찍었던 사진을 그에게 넘겨 주었습니다. 그가 중국과 북한을 위해 일하는 일꾼이 된 것이 고마웠기 때문입니다.

 

정탐 선교 여행을 떠나기 전에 [중공으로 보낸 하나님의 밀수꾼]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바로 그 백인이 쓴 책이었습니다.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었는데 그게 현실로 이루어지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와 만났고, 몇 차례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책에 나와 있지 않은 내용들이었고, 안테나 구멍을 뚫으며 했다는 기도 내용도 그때 들었습니다. 그 기도가 10년 동안 지속되었으며 “당신이 바로 우리 기도의 응답이야!”라고 했습니다. “10년을 기도했다고? 나를 위한 기도였다고?”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그 기도를 제가 피할 길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제게 북한 성도 3,800명의 명단을 넘겨주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성도들의 정보가 미국 선교기관에 보관되어 있다니! 그들은 실제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또 가능한 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모퉁이돌선교회는 미국에서 태동을 시작했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아홉 살 위인 그 백인이 <Love North Korea 88>을 시작하도록 도운 브라더 데이빗입니다.
그와 그의 동역자들의 기도는 이뤄져야 했습니다. 모퉁이돌선교회가 시작됐고 올해 2019년은 미국 모퉁이돌선교회가 시작된 지 35년이 되는 해입니다. 우리, 아니 여러분은 그 기도의 응답으로 동참하게 된 분들입니다.

 

누군가 북한선교를 위한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기도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으신가요? 성경을 보내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목회자를 훈련하여 들여보내고, 풍선으로 전도지로 방송으로 복음을 전하고, 북한 내에 살아 있는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고, 성도들과 탈북민들을 먹이고 입히고 사역비를 공급하고….
여러분은 그들의 기도 응답입니다. 이제 우리가 핍박 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들이 자유롭게 찬양할 날이 여러분의 기도로 응답되지 않을까요?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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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그 한마디에 생명을 거는 북한 성도들

 

당시 한국에서 공산권 선교를 하는 이들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외국 여행 자체가 쉽지 않았을뿐더러 사회적인 분위기와 반공법으로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해외에는 공산권 선교를 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적어도 제가 만난 이들은 지역이나 이념 때문에 선교에 제한을 두지 않았습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나 미국은 일본을 통해서 혹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통해서 직간접으로 사역을 진행했습니다. 소련이나 중공 혹은 북한까지 조용히 그러나 뜻있게 선교 활동을 했습니다. 외교관과 군인들 심지어는 정보원들까지도 선교에 적극적이었습니다. 정부 주도는 아니었지만 선교 기관이나 개인이 그 일을 감당했습니다.
그 시기 서방 국가들은 방송 사역을 했습니다. 적어도 26개의 단파 방송이 중국을 향해 쏘아졌습니다. 또한 성경 배달을 했습니다. 기차, 버스나 택시, 선박까지 활용했습니다. 방송과 문서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들어갔습니다. 전도지를 바람에 날려 보낸 것은 물론이고 병 속에 전도지를 넣어 바다에 띄우기도 하고, 풍선을 이용하여 육지 내륙으로 성경이나 전도지를 보냈습니다. 원래 군인이나 첩보 기관에서 하던 방식을 선교 기관이 사용한 것입니다. 장사꾼들은 다니면서 전도지를 뿌리거나 조그마한 선물로 위장해 가지고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방법이 다양해지고 대담해졌습니다.

 

모퉁이돌선교회는 중국을 드나들면서 성경배달을 중심 사역으로 삼았습니다. 그렇다고 성경만 배달한 것은 아닙니다. 인쇄기, 녹음기, 라디오, 복사기, 등사기, 주일학교에서 사용하는 융판그림 부치기부터 교재, 찬양집과 찬송가, 달력, 그리고 가정교회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모퉁이돌선교회 일꾼들이 배달한 것들을 통해 조선족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가장 많이 요구되는 것은 성경이었습니다. 모퉁이돌선교회의 초기 우선 사역은 조선족을 위한 성경배달이었습니다. 그러다 중국인을 위한 중국어 성경배달이 시작됐습니다. 물론 북한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조선족의 북한에 대한 열정은 우리보다 현실적이었기에 그들의 요구를 외면할 수도 없었습니다. 한글 성경은 조선족에게로 그리고 북한 사람에게로 낱개로 시작해서 찢어서까지 가져갔습니다.

 

북한 성경 배달은 중국보다 훨씬 어려웠습니다. 성경을 소지한 것이 발각되면 생명이 위험했습니다. 매를 맞는다거나 감옥에 보내어 수준 이상의 심한 고문 등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그걸 각오하고 성경을 가져가는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특별 제작한 톰슨주석성경 75권을 가지고 평양에 들어갔습니다. 가져는 갔지만 정작 전달할 대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에게나 줄 형편이 아니어서 고기준 목사님께 전해 드렸습니다.
“이거이 등록하고 들어왔갔지?” 그 분의 첫 말이었습니다.
“아니요.”
“그럼 어떻게 이걸 공항에서 통과해서 가지고…” 목사님은 주변을 살폈습니다. “이걸 내 마음대로 써도 되는 건가?”라고 질문하고는 더 이상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네. 목사님께 드린 선물인데요.” 저는 한 마디로 답했습니다. 그 후로 그 책을 북한에서 찾지 못했습니다. 누군가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요? 거의 10년이 지났을 무렵 그 책의 행방을 물었지만 아무도 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 나라. 은둔의 나라. 1999년을 끝으로 저는 그 나라를 방문하지 못했습니다. 그 나라를 서방 국가들이 무어라 부르는지 아십니까? 사마리아입니다. 어떤 이는 모압이라고도 부릅니다. 미안하지만 그들이 무엇으로 부르든 간에 그때 서방 선교기관이 하던 모든 일을 지금 모퉁이돌선교회가 하고 있습니다. ‘한 영혼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북한을 바라봅니다.
한 마디 말로 한 영혼이 구원받는다는 걸 아시나요?
한 장의 종이에 쓰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걸 아십니까? 한 권의 책이 열 명의 영혼을 구하고 열 권의 성경이 한 사람의 지도자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중국에서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사마리아이든 모압이든 무엇이라 부르든 간에 그 영혼들이 깨어서 주를 바라보게 되기만 한다면 생명을 하나님께 드릴 준비가 돼 있나요? 땅 바닥에 발로 그린 십자가가 신앙 간증인 것을 아십니까?
악수하면서 힘을 주는 순간에 전해지는 전율을 느껴본 일이 있습니까? 떠나면서 조용히 “예수” 한 마디에 생명을 거는 북한 성도를 본 일이 있습니까?
저는 그 일을 위해 지난 34년을 일해 올 수 있었고, 이제는 그 자리가 축복된 자리였음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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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내가 큰 일을 행하리라!

 

새해에는 소망을 제시하고 기쁨을 나누어야겠지요?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악해지고, 더 타락한 모습만 보입니다.
이럴 때 목사는, 선지자는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일까요?
저에게 답은 하나뿐입니다.
예수님!
하지만 사람들은 그 답으로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다시 묻습니다.
하나님! 이 나라를, 이 한반도 백성을, 교회를 어떻게 하실 거예요?
남과 북, 음란과 거짓과 가난, 정치적인 갈등과 시기,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모함과
사건 사고의 연속, 음모와 싸움만이 전부인 듯 보이는 모습을 하나님 어찌하실 거예요?
아뢰고 또 아뢰며 묻고 기다리느라 제 숨소리만 들리는 깊은 밤입니다.
여호와여 이 땅을 정말 외면하시려 하시나이까? 이 백성을 버리시려 하시나이까?
의인 열 명이 없어 이 땅을 버리려 하시나이까?
73년 넘게 버려진 북한 땅을 향해 주님은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그 땅을 버리지 않았다!
그 땅에 내 백성들이 있다! 남한 백성들의 기도를 듣고 있노라!”

 

 

하나님, 이 땅엔 당신의 아들 예수가 피 흘려 죽었기에 구원에 이른 백성이 있나이다.
그들은 주님의 보혈로 의롭게 된 의인들이옵니다. 저들을 버리려 하시나이까?
그들이 입을 열어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면 행하실 수 있음을 약속하셨나이다.
감히 구하오니 이 백성을 외면하지 마옵소서. 이 백성을 버리지 마옵소서.
하나님이 피로 사신 이 백성이 버리어지면 세상 이방인들이 비웃을 것입니다.
이 백성과 이 땅과 이 땅에 있는 당신의 백성과 교회를 버리지 마옵소서.
하나님이 없다고 외치는 자들과 우상 숭배자들이 한국 땅을 사탄의 세력에 넘기도록
허락하지 마옵소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이제 보이사 교회가 회복되게 하옵소서.
한국 백성과 한국 교회에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회복하옵소서.
하나님만 의지하는 백성이 되도록 감히 구하오니 긍휼을 더하시옵소서.
2019년에 하나님의 긍휼을 입기 원하는 무익한 종의 모습으로 골방에서 아뢰고
또 아뢰는 중에 들려온 작고 세미한 음성 하나,
“내가 큰 일을 행하리라!”
그 세미한 음성을 찾으려 두리번거리나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음성이 저로 어린아이처럼 외치고 싶게 합니다.
하나님이 큰 일을 행하시겠대!
하나님이 큰 일을 행하신대!
하나님, 하나님의 방법대로 큰일을 행하시옵소서.
한반도 땅과 이 백성은 하나님 외에 소망이 없는 당신의 소유입니다.
왕이신 주여!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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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크리스마스 예배 후에

 

크리스마스라고 모두들 바쁜 요즘 제 마음은 이스라엘 갈보리 언덕에 가 있습니다. 그 언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못 박으라고 아우성쳤습니다. 우리 모두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에 이를 자가 없다는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다. 그러기에 갈보리 언덕의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보내심을 받은 세상에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시기까지 기꺼이 순종하셨습니다.

 

몇 해 전, 저는 크리스마스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한 예배당에 갔습니다. 크리스마스트리와 찬양대를 대신한 중창단, 촛불과 조명이 분위기를 돋우었습니다. 설교자는 기쁨을 주제로 설교하기 위해 야고보서 1장과 히브리서 12장 2절, 누가복음 2장 10절을 인용해서 하늘의 기쁨을 이야기했습니다. 회중은 가끔 소리 내어 웃기도 했고 미소도 지었습니다. 화려한 옷차림과 밝은 목소리와 기쁨에 찬 설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예수가 빠져 있었습니다. 십자가가 없었습니다. 정작 있어야 할 메시지는 선포되지 않았고 진정한 의미의 기쁨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그제 아침에 내린 눈은 모두 녹았고 풀밭만 하얗게 덮여 있을 뿐 숲은 초록색으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풍경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었지만 예배당 안에서는 말뿐인 임마누엘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숲과 바닷가를 지나면서 느꼈던 하나님을 향한 감사나 기쁨이 예배당 안에서는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어젯밤 저는 십자가를 묵상하기 위해 밤을 지새우며 십자가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을 찾아봤습니다. 구원 받은 강도가 있었습니다. 구원 받지 못한 강도도 있었습니다. 못 박은 사람도 거기에 있었고, 갈릴리에서 온 사람, 여인들의 이름도 있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는 십자가 곁에 있었을까요? 제자들은 모두 도망쳤습니다.
예수님의 발은 꺾이지 않은 채로 내려졌고 시체는 한 번도 사용되지 않은 무덤에 누이기 위해 빌라도의 허락을 받아 옮겨졌습니다. 몇몇 여인이 그 현장을 확인하고 향료를 준비하기 위해 떠났고, 여인들은 안식일이 지난 새벽에 무덤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빈 무덤을 발견한 후에 두 천사의 말을 듣게 된 여인들은 예수님이 갈릴리로 먼저 가실 거라는 말씀을 듣고 제자들에게로 가서 알렸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다른 제자들에게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500명의 무리가 승천 현장을 목격하고 11 제자와 120명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오순절을 경험했습니다. 이들에게 있었던 기쁨은 세상의 기쁨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 기쁨을 소유한 120명은 증인으로 온갖 핍박을 당하며 세상으로 흩어졌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유대로 사마리아로 땅끝으로…

 

하나님은 왜 그렇게 세상을 사랑하셔야 했을까요?
버리셔도 되고 포기하셔도 될 인간들을 위해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면서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라’라고 표현했습니다. 그 말 외에 다른 말로 설명이 가능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작년 모퉁이돌의 성탄예배에 모인 성도들은 하나님의 임재와 기쁨을 경험했습니다. 어떤 예배에서보다 더 깊은 확신을 갖고 돌아갔으리라 생각합니다. 올해도 성탄예배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내년 성탄예배는 평양에서 드릴 수 있을까요? 우리 모두 평양에서 성탄예배를 드리는 그 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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