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칼럼] 북한 성도의 짐을 같이 져 주지 않겠습니까?

 

자유롭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자유가 무엇인지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을 믿지 못하니, 소리 내어 찬송을 부를 수도, 눈을 감고 머리를 숙여 기도할 수도 없었습니다. 믿음의 식구들이 모이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물론 성경을 가질 수도, 전도할 수도 없었습니다.
교회 건물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십자가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어떻게 사는지도 잘 모릅니다. 얼마나 참아야 하는지, 어떻게 섬기는지, 사랑이 무엇인지 배운 일이 없습니다. 막연하게나마 속으로 “주님”만 찾습니다.
풍족한 식탁을 마주해 본 일이 없습니다. 산다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한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수십 년을 숨죽이며 살았습니다. 그나마 중국에 다녀온 분들은 예배당을 보고 왔다는데 부러웠습니다. 그것도 죄지요?

 

아주 가까워진 후에야 터놓은 이야기입니다. 긴 한숨을 쉬며 눈 마주치기를 부끄러워했습니다. 죄송하기만 한 자세였고 살아있는 게 부끄러운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주어진 선물을 받아 들기 힘들어 하던 그는 북한 성도였습니다. 저는 그들을 어떻게 더 도울 수 없을까 오늘도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3개월 동안 집에만 있어야 했습니다. 식당이나 상점에 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산책을 하거나 뒤뜰에서 풀을 깎고 청소는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2주 자가격리 기간 동안 집 밖으로 일절 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여러 분들이 준비해 주신 음식도 있고, 추운 날씨도 아닙니다. 성경, 인터넷, 책도 있습니다. 밖으로 나갈 자유가 없을 뿐입니다. 감사할 조건이 이렇게나 많은데 자유가 없는 것이 이렇게나 힘들다면 북한 성도는 어땠을까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두 주도 아니고 몇 년을, 아니 수십 년을 숨죽이고 살면서 믿음을 지키다가 끌려가서 죽임을 당하는 그들.

 

갈라디아서 6장 2절은 짐을 나누어 지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법이라고 가르쳐 주셨는데, 우리는 북한 성도의 짐을 나누어 지지 못했습니다. 어쩌지요?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이제라도 기회를 주시기를 바라 봅니다.
이런 와중에 우리의 할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헌금으로 북한어 성경 만 권 이상을 인쇄했습니다. 보낼 길이 열리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몽골 성도들에게 공급하려고 성경을 보냈습니다. 미얀마 성도들에게 보낼 전도용 만화도 제작 중입니다.
이제 터키가 문을 열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문도 열릴 것을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할 기회를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짐을 나누어 지라고 하셨기에, 있는 것 중에서 나눌 것으로 짐을 지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자가격리하는 동안 사흘치 먹거리를 공급받았는데 너무 좋은 것들이었습니다. 38선이 무너지면 요긴하게 쓰일 것들이라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에는 수건이나 비누, 칫솔, 양말, 속내의, 약간의 소화제와 두통제 들도 준비되어야 하겠지요? 선교지에 들어가지 못하고 서울에 머물고 있는 선교사님들에게도 필요한 것이 많습니다.

 

저는 전염병이 퍼지기 전까지 성경을 배달할 수 있도록 모퉁이돌을 인도하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제 다시 한 번 허락하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함께 기도하시겠어요? 35년 동안 도전받은 많은 분들이 짐을 서로 나누어 지기를 기도합니다. 감옥에서 콩 하나를 반으로 쪼개 나누어 먹었다는 성도의 이야기가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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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한 사람의 순종을 기다리십니다!

 

 

37년 전인 1983년, 선교 훈련을 마친 저는 10월 말에 홍콩으로 떠났습니다. 상해로 북경으로 하얼빈으로 갔습니다. 그렇게 정탐 여행을 끝내고 중국을 위한 사역을 18개월 준비했습니다. 1985년 9월 말에 섬기던 교회를 떠나고 10월에 모퉁이돌선교회를 한국에서 시작했습니다. 올해로 35년째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중국어를 모르고 그들은 영어를 잘 못했습니다. 텐진이나 북경으로 가서 기차를 바꿔 타야 하는데, 국내선 비행기 표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외국인이 사용하는 돈과 현지인이 사용하는 돈이 달랐습니다. 기차는 한 번 타면 14시간 가량 이동했습니다. 성경으로 가득한 짐은 늘 몇 개씩 됐습니다. 한국인은 중국 여행이 가능하지 않아 싱가포르와 홍콩에 있는 형제들에게 조선족을 위한 성경을 배달하도록 요청했습니다. 호주와 뉴질랜드 형제들이 많이 도왔습니다. 고마운 하늘 나라 형제들을 하나님이 만나게 하셨습니다.

 

성경 배달이 끝나면 바로 다음 떠날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성경 배달을 도울 사람들을 모으고 비용을 하나님이 주시도록 기도해야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 바로 여권을 바꿨습니다. 보안을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이름도 바꾸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여권을 새로 받아 들고 다시 떠났습니다.
한편으론 초청하는 곳마다 가야 했습니다. 북미와 남미의 한인 교회들, 유럽과 아시아 등지였습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콰테말라, 이태리, 스페인, 영국, 불란서, 독일, 핀란드, 터키, 홍콩, 일본, 싱가폴, 대만, 몽골, 러시아, 말레이시아와 이스라엘…. 부르는 곳마다 갔고, 해외 동포들은 북한 선교를 위해 기도하고 헌금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성경 배달과 그 외 하나님 나라의 일을 배웠습니다.

 

한국이 복 받는 일을 하는 것이 저의 꿈이었습니다. 그러려면 하나님 나라의 일을 기쁘게 감당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 백성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것이 나와 내 민족에게 복이 됨을 믿었습니다. 복음을 전해 주는 것이 복 받을 일임을 믿었습니다. 그것은 순종이었고 기쁨이었습니다.
이 일에 재정으로 동참한 회원들도 더 많은 복을 받는 줄 믿습니다. 처음에 만났던 많은 중국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고 몇몇은 살아 있습니다. 그들이 고마워하는 마음을 전해주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제가 하는 일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중국에서나 몽골 또는 러시아와 이스라엘에서 제가 하는 일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아시는 것으로 족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를수록 제가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밤이면 성경을 배달하고 낮에는 관광객으로 행동했습니다. 의심을 피하기 위해 같은 숙소를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배달이 끝나면 곧바로 떠났습니다. 개미들이 한 마리씩 모래를 물고 나르듯, 당나귀들이 짐을 나르듯 성경을 들고 날랐습니다.
지금 바이러스로 인해 여행이 막힌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더 많은 사람이 이런 기회에 성경을 가까이 하고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미 중국에서는 전화기와 컴퓨터로 교회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더 지혜로운 방법을 만들고 계십니다. 대중 집회만 최선인 줄 알았는데 보다 더 개인적이면서 묵상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 상황을 잘 이용할 수 있도록 지혜를 구합니다. 러시아, 몽골어, 중국어로도 가능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북한은 중국이나 몽골만큼 쉽지 않습니다. 북한의 문이 열리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들의 기도가 장벽을 넘어 복음이 전해지게 합니다. 바이러스와 장애물을 하나님이 제거하시도록 기도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간절히 기도할 때 베드로의 손에 묶인 수갑을 풀어 주셨습니다. 홍해를 갈라서 마른 땅으로 건너가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요단강의 물을 막아 걸어서 건너가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여리고 성을 돌던 주의 백성들의 순종함으로 그 성을 무너지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사울을 거두시고 다윗을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한 권의 하나님 말씀이 생명을 살립니다. 한 사람의 순종이 나라와 민족을 구합니다. 여러분 한 사람의 순종을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순종으로 복을 받을 나라가 이뤄질 것입니다. 오늘 순종할 분을 찾습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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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복음이 전염병처럼 확산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가 언제부터 교회에서의 집단적인 모임을 예배의 상징으로 삼았을까요. 새벽예배, 수요예배, 금요예배, 주일예배, 구역예배 등등 예배라는 단어가 붙은 모임이 어느 시점부터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성도들이 모여서 찬송하고 기도하고 설교를 듣고 헌금하고 축도 받고 흩어지는 상황도 점점 거대해져 갔습니다. 백여 명이 모이던 것이 수백 명, 수천 명, 수만 명으로 확대됐습니다. 그리고 대형 교회를 부러워하고 거기에 속했다는 만족감을 느끼기에 이르렀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그런 대형 교회가 나쁘다 혹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게 꼭 성도의 삶의 기준이어야 할까요? 또 하나, 그런 대형 교회에서의 모임이라야만 예배가 이뤄진 것일까요? 예배는 하나님과 나와의 분명한 의식과 관계에서 하나님만 높임을 받으시는 것이라야 된다고 믿어 왔습니다.

 

저는 35년 넘게 그런 집단적인 장소와 시간을 들여 예배하지 못하고 사는 지하성도들의 필요를 채우려고 세월을 보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없이 방송을 듣는 것만으로, 어르신네들이 들려준 것만으로, 중국에 가서 만나게 된 성도들의 가르침을 기억하는 것만으로 세월을 보낸 이들입니다. 그들은 숨어야 했습니다. 기도는 물론 소리 내어 주님을 부르지 못했고 속으로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찬송도 공산당의 노래에다 가사를 꿰맞춰 불렀습니다. 십일조를 드리지 못해 도둑질했다며 울면서 헌금을 넘겨 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주일에 따로 시간을 내거나 모임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저 조용히 주님을 높여 드렸습니다.
그분들은 예배당의 문고리라도 만져 보고 싶어 했습니다. 목사님과 악수 한 번 나누고 싶어 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직접 듣고 싶어 했습니다. 깨끗하게 준비된 헌금을 드리고 싶어 했습니다. 축도 소리에 감격해서 울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환경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입술로는 소리 내지 못할지언정 주님을 알게 된 것을 기뻐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감옥에서 흥얼거리며 주님을 노래했습니다. 바울이나 사도들도 그렇게 하지 않았나요? 북한과 중국의 많은 사람들이 그 상황을 오랫동안 경험했습니다. 그들은 성경 한 권 갖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들의 필요를 채워드리는 것이 제게 주어진 사역이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했습니다.

 

카톡 하나를 받았습니다. “… 빨리 끝나야 하겠습니다. 성경도 보낼 곳이 많은데 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도 지난 번 보낸 것 다 떨어져서 보내야 하는데 모든 것이 막혀 보낼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경을 받아야 할 사람을 위해 배달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깔린 짧은 글입니다. 성경을 배달하는 일은 바른 예배 즉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도록 돕는 사역입니다.

 

저는 이번 기회에 성도들의 삶에 진정한 예배에 대한 이해가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일상적인 예배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받아 든 이들이 고마워하는 모습을 저는 오랫동안 보았습니다. 그 성경으로 인해 매를 맞기도 하고 투옥되며 죽음에 이름에도 불구하고 그 성경책 갖기를 소원하는 이들의 간절함을 아시나요?
집단적인 대형 교회 예배에서 벗어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자리에서도 같은 은혜 입기를 바랄 뿐입니다. 한편 굴속에서 숨어서 드리는 개인적인 혹은 소규모 예배에도 강력한 은혜가 채워지기를 소원합니다.

 

일상적으로 드렸던 예배가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 진정한 의미의 예배가 우리 속에 새롭게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배할 수 있었던 모든 일을 감사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성경이 배달될 수 있기를 위하여 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끝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역이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 이 전염병이 확산되듯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염병처럼 확산되기를 소원합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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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전도지를 읽은 이는 울고 있었습니다!

 

 

입이 있다고 아무런 말이나 해도 되는 게 아닙니다. 글을 쓸 줄 안다고 함부로 글을 써도 합당하지 않습니다. 돈이 있다고, 건강하다고, 권력이 있다고, 지식이 있다고 아무렇게나 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법대로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법을 따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애틀랜타에 몇 사람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개척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 목사님 댁에 며칠 머물렀습니다. 강화훈련원에 필요한 대로 쓰라며 헌금을 해 주셨습니다. 이제 막 시작한 조그마한 교회에 몇 안되는 성도와 목사님이 하나님께 구별하여 헌금한 것입니다. 주어진 기회와 재정을 옳게 쓰려는 마음씨를 축복하고 싶습니다.

 

은퇴와 동시에 선교지로 떠나는 분들을 보면 가슴이 찡해집니다. 청년 시절부터 하나님 나라에 헌신하는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법대로 순종하며 가르치는 이들이 있습니다. 선교지, 주어진 자리에서 말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립니다.
이런 와중에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나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뜻을 찾으려고 기회를 따라 교회에 가서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미국에 한 유학생이 왔습니다. 출석하는 교회 목사님을 설득하여 집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집회를 취소하게 되었습니다. 이 유학생은 “몇몇 학생들이 모여서 예배드리는데 무슨 이유로 취소하느냐?”며 속상해 했습니다. 이렇듯 예배하는 일에 말씀을 듣고 전하는 일에 열심을 내는 이들이 살아 있습니다.

 

젊었을 때부터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을 배운 아름다운 이들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열심을 내느냐고 물었습니다. 궁금하잖아요? 하는 말이 “목사님이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쳤잖아요!” 가르친 대로 행하는 세대, 저는 이것이 우리 다음 세대의 소망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고 배웠다면서 코로나 바이러스도 두려워하지 않는 한 소녀의 순종함이 아름답게 봄꽃처럼 피어 오릅니다.

 

저는 20대 어린 시절에 미국으로 이민을 왔습니다. 목적은 미국 시민권이었습니다. 시민권을 받으면 북한 선교에 사용하도록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 일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어려운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냉소 속에서도 저에게 주어진 일임을 보여주셨고 저는 그대로 그 길을 갔을 뿐입니다.

 

어머님의 말씀만으로 이 길을 간 것은 아닙니다. 아버님도 복된 길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내도 형제들도 한결같이 옳은 길이라고 응원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갈 만한 길임을 보여 주셨고 저는 확신하며 감당했을 뿐입니다.

 

전도지를 읽은 이는 울고 있었습니다. 그는 끝내 예수를 영접했습니다. 담배를 한 손에 들고 있던 이가 성경을 받아 들고 읽어 내려가다가 후일 전도인이 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토마스 목사를 참수했던 이가 예수를 믿게 됩니다. 마펫 목사님에게 돌을 던졌던 이가 후일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됩니다. 저를 고문했던 이가 목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주저 앉을 뻔했습니다. 하나님의 그 큰 손이 저로 미워하지 않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데까지로 이끄시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성경이 생명을 빛과 진리를 보여 주었습니다. 저는 말씀이 빛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의심해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을 누구에게든지 전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어느 나라든지 요구하는 이들에게 전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코로나 바이러스 속에서도 살아 역사하십니다. 그 하나님이 당신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십니까?
그 말씀대로 살기로 결심하십니까?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 아들을 내어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셨습니다. 죄 없는 아들의 피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은 왕이십니다. 우리는 마땅히 주의 뜻에 순종할 종일 뿐입니다.

 

무익한 종 이삭

 

[2020년 4월 ‘카타콤소식’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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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선교현장으로 떠나는 기쁨으로 오늘을 예배합니다!

 

 

군인은 전쟁터에
농부는 밭에
경기하는 자는 경기하는 곳에
종은 주인이 부릴 수 있는 자리에
머무르는 게 합당하겠지요?
그래서인지 저는 사역지에서 보람을 느낍니다.

 

선교지와 설교를 요청하는 곳에서 보내게 될 그 시간을 긴장하며 준비하게 됩니다.
군인이 전쟁터에 있지 않으면 전쟁을 준비하여야 하고
농부도 파종과 김매는 일, 추수하고 보관하는 일에 늘 대비하여야 하며
경기하는 자는 승리를 얻기 위해 단련하고 준비되어야 하고
종은 주인의 눈에 가까이에 머무르며 언제든지 응할 준비를 해야만 합니다.

 

이제 곧 떠납니다. 선교지로 떠납니다.
두 달 넘게 선교 현장에서 설교하고 전하고 나누고 섬길 것입니다.

 

사도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주님의 인도하심과 이끌림에 힘입고, 때로는 쫓기고 도망하고 숨고
하지만 잡혀서 매맞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도 여전히 편지를 써서 바로 갈 길을 제시하는.
바울은 30년 넘게 그 길을 가야 했습니다.
그러고도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편히 가라!’고 말하지 않으십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비장한 말로 마지막 서신을 띄웁니다.

 

그에게도 육신의 연약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마음도 지쳤을 그는 순교하기까지 당당했습니다.
때때로 저는 육신의 연약함만이 아닌 영혼의 연약함으로 아파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에 힘입어 다시 다짐합니다.
바울이 기록한 서신서들에 나타난 구체적인 예정과 재림에 기꺼이 감동하며
‘이랬어야 했어!’라고 외칠 수 있어서 기쁩니다.
그리고 잠언에서 시편에 이르는 시를 낭독하며 울고 웃고 어깨를 들썩이며 좋아합니다.
모세오경에서 느껴지는 모세의 진지함과
선지서의 글에서 오싹하게 만드는 경고로 인해 움츠렸다가 펴며 일어서는 감격이 저를 다스립니다.

 

내일 선교 현장으로 떠나는 기쁨을 안고 오늘을 예배함으로 준비합니다.

 

무익한 종 이삭

 

[2020년 3월 ‘카타콤소식’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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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누군가 잊혀진 영혼을 비추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한 교회에서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바로 강화도로 들어왔습니다. 방에 앉아서 불을 끄고 건너편을 바라보았습니다. 빛을 전혀 찾을 수 없는 어두움이 건너편에 깔려 있었습니다.
설교를 하면서 한국교회가 너무 무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북한 지하 성도 이야기를 생전 처음 들었다는군요. 그럴 수가…
북한에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있음을 몰랐다네요. 그들을 위해 기도할 제목을 생각해 본 일도 없다네요.

 

자신들의 필요는 수십 년 동안 아뢰었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북한 땅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 본 일이 없다고 합니다. 다만 통일이 오면 무슨 사업을 할지는 생각해 봤답니다. 토목공사, 아파트 건축 등등이 통일 이후의 관심거리라는군요.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는 것에는 관심이 있다는 말입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생각은 하는데, 다른 곳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내 가족이라는 생각은 안 합니다. 흑인이나 백인 가운데도 하나님의 백성이 있고, 중국이나 일본에도 제 형제가 있습니다. 유대인 중에도 제 형제가 있습니다.

 

당연히 북한에도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 있습니다. 용서받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이들이 그들 중에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우리의 형제입니다. 그들이 어려워하고 괴로움당하고 있는 걸 몰랐다고 말하시겠습니까?

 

지난 35년 동안 중국으로 북한으로 몽골과 러시아로 중동으로 다니며 주님께 구했습니다.
‘함께 기도하고 마음을 같이할 하나님의 백성들을 주세요!’하고 울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아직도 북녘 땅에 하나님의 백성, 우리의 형제들이 죽어가는 걸 모르고 사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북녘 땅에 복음으로 인해 고통 당하는 그러나 그 일을 오히려 기뻐하는 주의 백성들이 그 땅에 살아 있습니다.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손에 성경 한 권을 들려 주기 원하는 이들을 찾습니다. 어두운 저 땅에 잊혀진 하나님의 백성을 형제로 알고 기도할 분들을 찾습니다.
그 기도 속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 주십시오. 저 백성들을 위해 여러분이 무엇을 할지를 여쭤 주십시오. 그리고 마음에 찔리는 대로 행하십시오.

 

통일 후에 무슨 일을 하겠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오늘 하나님께 내가 할 일이 무엇이냐고 물어 주십시오. 우리 북한 사역자들의 손에 무엇이 들려져야 하는지를 물어주십시오.
그리고 행하십시오. 하나님이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모퉁이돌선교회는 여러분이 잊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열심히 땀 흘리며 뛰고 있습니다. 모퉁이돌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하나님께 여쭤보십시오. 하나님은 오늘도 자기 백성을 놓지 않으시고 포기하지 않으시고 일하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다른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아버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감당하는 것이 기쁨이 될 것입니다.

 

저 건너편은 여전히 어둡습니다.
그런데 그 누군가가 잊혀진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혼이 밝게 비춰지도록 일하고 있습니다.

 

무익한 종 이삭

 

[2020년 2월 ‘카타콤소식’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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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바로 오늘 이곳에서, 광야의 외치는 소리가 되길…

종일 차에 실려서 도착한 숙소의 이름이 ‘천천히’였습니다.
우리말로 ‘느긋이!’라고 옮겨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마치 저를 보고 “얘야! 이젠 좀 천천히 해라!”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서였을까요?
전기도 천천히 켜지고 또 천천히 꺼졌습니다.
손이 닿기가 무섭게 꺼지고 켜지는 데 익숙한 저는 좀 당황했습니다.
설교 중에 이런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나네요.
부친이 이민 초기에 타신 차가 10분이나 걸려서 발동이 걸렸다고요.
그 덕분에 영화 회사에 가게 됐고 이민 가는 특별한 기회를 얻었다고요.
그 차는 저의 첫 미국 이민 차였고 그 차로 운전 면허를 받았습니다.

 

제가 마음이 좀 급한 편이지만 행동은 굉장히 느린 편입니다.
그런 제가 35년을 달려 온 과정이 느리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되었습니다.
그리 바쁘게 다닌 것 같지 않은데 기록을 찾아보니 2019년에 234번 강단에서 설교를 했네요.
적지 않은 횟수이지만 문제는 바른 소리를 냈느냐는 것입니다.
사역을 시작할 때 파수꾼이 나팔을 제대로 부는지에 관한 말씀인 에스겔 33장을 기억나게 하셨습니다.
오늘 그 말씀을 다시 읽게 하십니다.
설교를 몇 번 했느냐보다 설교를 바로 했느냐는 질문을 스스로 하게 하십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역합니다.
한국 땅도 예외가 아닙니다.
한국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저도 예외가 아닙니다. 바로 오늘, 저 또한 예외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이 험악한 한국 교회와 북한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북한의 상황이나 알렸고 개인적인 간증에 치중했음을 회개합니다.
나팔수가 나팔을 제대로 불지 못했습니다.
파수꾼의 자리를 지키지 못한 죄를 회개합니다.
세례자 요한이 광야의 소리를 낸 것은 순종이었고 결과적으로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이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그의 순종이 여러분과 나의 죄를 대속하기에 이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뾰족한 교회의 십자가가 동네마다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진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기 위해 피 흘려야 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과 그 종들의 흔적이 살아나기를 기도합니다.
나팔수로서 파수꾼으로서의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제 자신이 죽음에 이르더라도 마땅히 불어야 할 나팔 소리를 내게 되기를 원합니다.
파수꾼으로서 광야의 소리를 외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바로 오늘.
바로 이곳에서 이 시간에 순종하기를 소망합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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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심을 기뻐하는 성탄예배

 

 

구세주 예수님은 메시아 그리스도이십니다.
기름 부음 받으셨습니다. 예언대로, 언약대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예언의 성취입니다. 예수님은 성육신하셨으며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셨고 사흘 후에 부활하셨습니다. 승천하신 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을 기뻐하며 찬양하는 시간이 크리스마스입니다.
다만 슬퍼지는 이유는 뭐냐,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내어 놓는 순간의 그 아픔과 괴로움을 우리는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의 마음! 크리스마스 하면 뭐가 떠오르십니까? 산타클로스, 빨간색, 선물 나누기. 그리고 또요? 예수 그리스도가 빠졌습니다.

 

우리는 그를 구주로만 여깁니다. 아닙니다. 엄연히 만왕의 왕이십니다. 그 왕이 오신 날을
우리가 기념하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크리스마스의 주인은 목자가 아닙니다. 동방박사가 아닙니다. 마리아, 요셉이 주인공이어서도 안됩니다.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이 구주이시고 왕이신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그 예수를 보내신 아버지, 언약을 이루시는 그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 대상입니다. 예수를 보내신 하나님과 순종하여 보내신 바 된 예수를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매해 지나가는행사로 끝나 버리고 마는, 핵심을 놓치는 우리의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서 제가 슬프다는 말을 썼습니다.

 

천사들이 “구주가 나셨다”라고 했을 때 찾아갔던 목자들, 동방박사들, 좋습니다.
그러나 더 나아갑시다! 누가 오셨는지를 기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모퉁이돌선교회는 올해도 북녘의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탄예배를 12월 17일 저녁 7시에 서울 역삼동에 위치한 충현교회에서 드립니다. 남북한의 성도들이 함께 모여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심을 높이고 경배하는 성탄 예배는 녹음되어 성탄절에 북한 성도들이 들을 수 있게 방송됩니다. 주님이 왕이시라면 여러분과 저는 종의 자리에 있어야 함을 잊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종의 자리에서 왕을 왕으로 섬기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익한 종 이삭

 

[2019년 12월 ‘카타콤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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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마지막까지 예수 닮는 그 사람을 찾으십니다

 

 

“다 이루었다!” 요한복음 19장 30절의 기록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하실 일을 다 채우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와 닿습니다.
그 완전함. 그 완벽함. 빈틈이라고는 하나 보이지 않는 예수의 그 모습을 우리는 닮아갈 수 없을까요?
비단 골고다에서만의 일이 아닙니다.
시초부터 나같은 죄인 살리려고 완벽하게 일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표현된 사건이 바로 성경 전체의 기록입니다.
내가 바라고 기대하는 시간에 맞춰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시간에 행하셨고 이루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이 1800년대 후반 들어서야 한국 땅에 복음을 든 선교사들이 오게 하십니다.
우리 땅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백성들로 하나님을 찬양케 하십니다.
죄로 인하여 영원히 벌 받을 수밖에 없던 나와 우리를 위해 아들을 기꺼이 내놓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바로 나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다 이루었다.” 십자가 고통 중에서 쏟아 낸 한 마디.
끝났다고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을 텐데 굳이 그 상황에서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완벽하게 이루십니다.
우리는 그를 닮지 않았습니다. 그들 닮아야 한다는 것을 앎에도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 사랑을 본받아 닮음의 삶을 살려고 애쓰는 주의 백성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중국에서 저는 그런 이들을 만났습니다. 북한에서도 만났습니다.
심지어 미국에서도 그런 닮음을 추구하는 미국인 형제와 자매들을 만났습니다.
지독한 핍박과 학대 속에서도 여전히 ‘주님의’ 이름을 기뻐하며 매 맞는 백성들이 있습니다.
바로 주의 백성들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환영해 주실 천국을 기다립니다.
소망합니다. 더 나은 본향을 그들은 믿음의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기뻐합니다.
마땅한 일로 여깁니다. 지극히 당연한 일로 생각합니다.
어린 손녀가 당할 것을 알면서도 그 닮음을 지켜가는 북한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천국에서 우리를 만나게 되기를 소원할 것입니다. 우리는 완벽한 주님을 닮지 못하겠지요?

 

“목사님 닮고 싶어요.” 이런 젊은이들을 최근 자주 만납니다.
“나를 닮겠다고? 아닐세! 주님을 닮아가게!”라고 충고하고 축복하며 헤어집니다.
예수를 닮으셨습니까? 오늘 주님을 닮은 종들을 주님이 찾고 계십니다.
마지막 순간에 십자가에 달려서도 외치면서 마지막을 채우시는 예수를 닮은 일꾼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이 한반도에서 온 열방을 향해 나아갈 예수 닮은 종들을 찾고 계십니다.

이 땅의 장래는 은과 금에 있지 않습니다.
경제에 있지 않습니다. 정치에 있지 않습니다.
이 땅의 장래와 미래는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닮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무익한 종 이삭

 

[2019. 11. 카타콤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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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한 사람의 사죄로 자유케 되었습니다!

 

 

저는 50년 동안 일본을 미워하고 증오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1945년부터 1995년까지였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일본이 조선 땅을 짓밟았고 모든 자유와 권리와 경제력을 앗아갔기 때문이고 또 인권을 말살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조부께서 일본인들에게 매맞고 병들어 세상을 떠나셨던 아픔이 아버님에게로 또 저에게로 전이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아오던 저에게 1995년 5월 폴 아리가 목사님이 일본이라는 나라를 대신하여 공개적인 자리에서 사죄를 하셨습니다. 저는 그 사죄를 받아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용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서 있던 제게 하나님이 속삭이셨습니다.
“내가 용서한 사람을 너는 용서할 수 없니?”
저는 당황했습니다.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강단에 올라와 그저 사죄하고 용서하며 울고 서 있던 36명의 사람들을 바라봤습니다. 하나님이 용서한 아리가 목사를 저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아리가 목사님을 용서하는 것은 일본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용서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사죄가 저로 일본을 용서하는 자리까지 가게 이끌었습니다. 5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미움이라는 울타리 속에 갇혀 있던 저를 자유케 한 것입니다. 한 사람의 사죄가 한 사람을 자유케 한 것입니다.

 

1991년 11월 어느 날 저는 중국의 한 도시에서 체포되었습니다. 밤중에 들이닥친 경찰에 의해 수갑이 채워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 끌려갔습니다. 네 시간의 심문 후에도 저는 석방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며칠 동안 고문을 당했습니다. 전기 고문으로 인한 충격에서 비롯된 기억상실증은 약 4주 만에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나 고문 후유증은 10년 넘게 저의 육체를 괴롭혔습니다. 매일 같이 쏟아지는 하혈로 화장실에 들어가 앉는 것이 큰 고통이었습니다.

 

10년 후 하나님이 제게 다시 그 도시로 가라고 말씀하셨을 때 저는 거부했습니다. 3년 동안 계속하여 거부했습니다. 그러다 13년 후인 2004년 그 도시의 길거리에 서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알아보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 때 한 여인이 제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은 자기가 예수 믿은 지 13년이 되었다고 전해 주었습니다. 남편이 자기를 예배당에 데려갔다고 말했습니다. 그 남편이 바로 저를 고문한 사람이라고 알려주면서 저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했습니다. 그 고문한 사람으로 인해 자신이 예수를 믿게 된 것이 고마운 사건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고문한 사람이 지난 13년 동안 교회에 갔고 신앙 생활을 하며 지금은 목사가 된 것이었습니다. 여인의 감사하는 말 한 마디가 저로 하여금 그들을 용서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오히려 용서하고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한 마디 말.
한 마디로 용서와 사랑이 회복되었습니다.
비록 제가 중국에 다시 갈 수 없게 중국 정부가 막아도 저는 중국을 사랑합니다. 일본 교회가 저에게 관심을 갖지 않아도 저는 일본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저는 북한의 어용 교회 목사님을 하나님께로 이끌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나를 용서하신 하나님이 당신을 용서하실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여러 해 후에 저는 그가 용서받은 삶을 사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비록 북한 땅에 살고 있지만 자유한 몸으로 살고 계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셨습니다. 로마서 10장 4절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와 사랑을 받는 나와 여러분의 입에서 용서가 표현되고 감사의 표현이 되살아나기를 기원합니다. 북한 땅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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