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콤특집 2] 3만 4천 탈북자들과 함께 살아내는 것이 통일입니다! (2024. 3)

“통일은 탈북자들과 함께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제3국에서 수십 년간 탈북자들을 말씀으로 세우는 사역에 힘써 온 사역자의 말이다. 현장 사역자가 체감하며 바라본, 우리 곁에 이미 와 있는 통일 이야기.

제가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주제는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통일”입니다. 여러분께는 조금 생소할 수 있겠지만 제가 현장에서 탈북자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가르치고 그들과 함께 살아내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마음을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먼 거리를 돌아서 저에게 온 탈북자들에게 제가 최우선적으로 하는 사역은 성경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된 후에 말씀과 제사를 배웠듯이, 탈북자들에게 3개월 동안 성경 66권을 가르쳐서 성경대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탈북자 중에는 중국에서 신앙을 경험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고, 인생의 나이테가 겹겹이 쌓인 분들도 있기에, 그들과 3개월 만에 성경 66권을 독파하려면, 새벽 4시 반부터 밤 9시까지 스파르타식으로 교육해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숨가쁜 일정이지만 대부분 열심히 따라와 주었습니다.

탈북자들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힘든 일을 겪어서인지 많이 거칩니다. 다툼이 생기면 옆에서 지켜보기가 무서울 정도로 심하게 싸웁니다. 반나절이 멀다 하고 싸우는 그들을 말리는 것이 저의 일이었고, 그분들의 아픈 몸과 마음을 돌보고 살피는 것 또한 저의 몫이었기에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는 신변에 대한 염려와 근심으로 누구를 만나더라도 편안하게 식사하기보다는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보는 사람이 없는지 늘 경계하곤 했습니다.

이렇듯 탈북자 사역이 쉽지 않음에도 끝까지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저희가 가르치고 들여 보낸 많은 분들을 하나님께서 사명자로 세우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기 3장 8절에 “내가 내려가서 건져내고 인도하여 데려가려 하노라”라고 하신 말씀처럼 탈북자들을 친히 북한에서 건져내어, 긴 여정을 인도하시고, 이곳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그들을 이 땅에 3개월간 체류하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름아닌 탈북자들을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삼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탈북자들에게 3개월간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대로 가르치고, 배우고, 살아가게 하는 사역이 정말 중요한 사명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3개월 동안 철저히 복음을 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맛보게 해야 한다고 결심하며 가르쳤습니다.
그 즈음 성경책이 필요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셔서 모퉁이돌선교회의 북한어 성경 등을 공급받아 지속적으로 귀한 말씀을 나누고 사역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탈북자를 대상으로 하는 말씀 사역을 감당하면서, ‘하나님이 이미 시작하신 통일’의 한복판에는 ‘탈북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역을 하면 할수록 하나님께서는 이미 하나님의 카이로스의 시간에 통일을 시작하셨고, 그 통일 사역의 핵심이 다름아닌 ‘탈북자’라는 사실이 또렸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카이로스의 시간은 ’북한의 NPT(핵확산방지조약) 탈퇴 이후 김일성 주석의 사망과 흉년, 가뭄, 냉해가 이어진 고난의 행군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식량을 구하러 중국으로 넘어왔는지 모릅니다. 뿐만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북한 내에서 굶어 죽었는지 모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북한 땅에서 북한 사람을 빼낼 수도, 보낼 수도 없지만 하나님은 갑작스러운 김일성의 죽음과 자연재해를 통해 자연스럽게 탈북자들을 중국과 다른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현재 약 3만 4천 명의 탈북자가 대한한국에 와 있습니다. 1999년부터 집중적으로 오기 시작했으니 연도로 따진다면, 무려 약 25년 동안 하나님은 이미 통일을 시작하셔서 탈북자들을 한국으로 들여보내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마음을 모른 채 여전히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기도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작년이 정전 70주년이었습니다. 저는 지금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라고 믿습니다. 이때 저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은 하나님께서 이미 시작하신 통일의 한복판에 탈북자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허락하신 가장 최선의 통일 방법은 이 땅에 보내진 ‘탈북자들과 함께 미리 통일을 살아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에게 전혀 주목하지 않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제가 탈북자 사역을 하면서 철저하게 깨달은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통일을 향한 하나님의 사역의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를 알지 못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도, 뜻도 헤아리지 못하게 되어서, 다시 사역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합니다.

“왜 통일이 되어야 하는가?”라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질문을 해 보면, 저마다의 위치와 입장에서 대답을 합니다. 즉 서로의 생각이 많이 다른 것을 봅니다. 그러나 적어도 기독교인이라면 하나님께서 왜 통일을 이루시려는지에 대해 한 번쯤 반문해 봐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영혼 구원 때문입니다.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영혼 구원을 위해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혼에 관심이 없는 교회보다 더 큰 비극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세워진 이 땅의 교회가 ‘영혼 구원’에 관심이 없다면 더이상 소망이 없습니다. 이 땅의 교회가 영혼 구원의 관점에서 통일을 바라보면 하나님의 마음이 보이고, 하나님의 시선이 보이게 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완전한 통일’이 앞당겨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시작하신 통일을 위해 보내주신 탈북자들을 향해 우리는 과연 어떻게 준비되어야 할까요? 꽤 많은 수의 탈북자가 한국을 등지고 해외로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생명을 걸고 탈북해서 온 한국을 왜 떠날까요? 많은 이유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한국 교회가 탈북자에게 사랑과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입니다. 통일을 말하는 한국 교회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가지고 3만 4천의 탈북자들을 최고와 최선을 다해 섬기고 있나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아론의 두 아들이 성막에서 다른 불을 드리다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나쁜 것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분명 좋은 것을 정성을 다해 드렸을 겁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일 사역을 위해 한국 교회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최고나 최선이 아닌,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드리는 훈련입니다. 그럴 때 온전한 열매가 맺힙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든 사람들이 말씀의 칼을 예리하게 갈아야 합니다. 말씀의 칼날이 분명하게 세워져 있어야만 하나님께 드릴 것을 온전하게 드리고, 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도려낼 수 있습니다. 칼이 무뎌져서 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드리는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한국 교회가 말씀의 날카로운 칼날을 가지고 탈북자들을 지도하고 가르칠 때, 탈북자들의 영혼이 구원의 마지막 결론인, 청함이 아닌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워질 줄 믿습니다.

여러분! 통일 사역은 우리가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하십니다. 아니, 하나님은 이미 하나님의 통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러기에 깨어 있어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자가 되십시오. 하나님이 어디를 보고 계신지를 보십시오. 이 땅에 온 3만 4천 명의 탈북자들과 함께 생명을 다해 통일을 살아 내십시오. 그래서 3만 4천 명의 탈북자가 ‘청함이 아니라 택함 받은 자’로 세워질 때, 하나님의 완전한 통일은 우리가 힘쓰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직접 이뤄가실 것입니다.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인 것처럼, 북한 사람들도 주의 거룩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

늘 기도해 주시고 귀한 마음을 모아 끊임없이 성경을 보내 주시는 여러분이 있기에 주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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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 특집1] 탈북민의 길동무가 되는 통일의 시작점, 김장 전투 (2024. 2)

3년 동안 탈북민과 함께하는 김장을 진두지휘한 본회 전도 훈련 담당 세리나 간사가 들려준 이야기이다.
지난 39년 동안 북한 선교를 감당해 온 모퉁이돌선교회는 탈북민들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복음통일의 마중물로 보내주신 귀한 백성이고, 그들이 그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믿음으로 준비되어야 함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북한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인쇄하여 배달하는 한편, 남북한의 언어를 한 장에서 비교하며 볼 수 있는 『남북한 병행성경』을 출간해서 탈북민 교회와 성도들에게 보내는 데 힘써 왔다. 아울러 탈북민 사역자들로 하여금 북한 선교를 할 수 있도록 협력해 왔고, 한국에 정착해서 어려움을 겪는 탈북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위로하는 한 방편으로 김장을 해서 선물하는 사역을 감당해 왔다.

탈북민과 함께하는 김장을 지난해 11월 24일과 25일, 북한이 바라보이는 강화의 모퉁이돌선교센터에서 담궜다. 2021년과 2022년에 이어 세 번째로 진행된 이번 김장은 통일의 마중물로 이 땅에 온 탈북민들을 축복하며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를 전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었다.
추운 날씨에도 이틀 동안 김장하는 일을 위해 80여 명이 참여하고, 포장된 김치는 210여 탈북민 가정에 전해졌다. 남한 성도들과 김장을 함께 담근 탈북민들은 이구동성으로 “하나님의 사랑이었다”라고 고백하였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이런 감격스러운 말을 하게 했을까?
2021년 첫 해 김장은 고향과 부모 형제를 떠나와 고군분투하는 탈북민들을 섬기고 싶은 본회 세리나 간사의 개인적인 마음이 출발점이 되었다. 본회 전도 훈련생들과 이것을 나누는 과정에서, 그들도 탈북민들에게 사랑을 전하겠다는 뜻을 모아주어, 800 포기를 김장하는 행사가 추진되었다.
2022년 두 번째 해에는 400 포기가 늘어나 1,200 포기를 담갔고, 세 번째 해인 2023년에도 500 포기가 늘어나 1,700 포기 김장을 했다. 규모가 커져 가는 가운데 지난해에는 김장을 준비할 시간이 넉넉치 않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의 은혜로 근 한 달 만에 모든 재료가 최상품으로 완벽하게 구비되었다. 질 좋은 고춧가루며 배추, 무, 젓갈, 파 등을 다양한 경로로 구입하게 하셨다.
되짚어 보면 하나님의 세심한 손길이 김장을 담그는 전 과정에 스며들어 있었다. 작년에는 모든 재료를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다 썰었기 때문에 일손이 많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너무나도 적절한 때에 무를 세척할 사람, 파를 다듬을 사람들이 자원사역자로 왔다. 커다란 통에 든 김치 양념을 섞을 때도 7살 때부터 두부를 저었다는 탈북민을 예비하셨고, 천막과 비닐을 칠 때도 경험 많은 분의 도움을 받게 하셨다. 식사의 경우 북부중앙교회에 일임했는데 매 끼니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일마다 때마다 손발이 척척 맞았고 무엇보다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탈북민과 함께하는 김장을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신다는 것을 순간순간 느끼게 했다.
김장을 하면서 여러 형태의 감사가 있지만 세리나 간사는 생명을 걸고 이 땅에 온 귀한 분들을 만날 수 있고 이야기할 수 있고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탈북민을 대상으로 전도 훈련을 실시하면 그저 훈련으로만 끝나지만 김장은 이들과 실제로 호흡하면서 기쁨을 나누는 특별한 경험입니다. 김장 전후로 북한을 향한 제 마음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전에는 막연했다면 이제는 이분들이 제 삶에 직접적으로 들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처음에는 탈북민들을 위로하고 섬긴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김장이 남북한의 성도가 만나는 장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그래서 세리나 간사는 김장을 탈북민과의 행복한 동행이며, 그들에게 자신의 어깨를 내어주고 길동무가 되는 최단의 지름길이라고 표현한다. 또한 남과 북이 마음을 툭 터놓고 교류하는 김장이라는 소통의 장을 통해 작은 통일이 시작되기를 기대한다고 들려주었다.
무엇보다 김장은 몸과 마음이 아픈 탈북민들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는 은혜의 시간이었다. 김장을 담근 당일 이른 아침에 강화선교센터 예배실은 남북한의 성도들로 가득 찼고 이들이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찬양과 기도의 열기가 뜨거웠다. 지척에 보이는 북한을 마음에 담고 저 땅에 있는 백성들이 자유로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그날이 속히 오기를 눈물로 기도하고, 선포하는 진리의 말씀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이루실 복음통일의 날을 소망하는 예배를 하나님께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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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 특집2] 북한에 가서 김장전투하자고요 (2024. 2)

20여 명의 탈북 성도와 한국 성도들이 김장에 쓸 재료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는 찰나였다. 주방 한 쪽에선 쪽파를 다듬고, 한 쪽에선 채소를 씻고, 또 다른 한 쪽에선 무를 써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서걱서걱, 또각또각, 탁탁탁탁, 규칙적인 물 소리와 칼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누군가 「발걸음은 언제나」를 부르기 시작했다.

곱게 무를 채 썰던 한 탈북민이 선창한 「발걸음은 언제나」는 두세 소절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가사를 아는 사람들이 합류해서 다 같이 부르는 합창이 되었다. 오전부터 시작해서 밤 11시를 넘어서까지 이어진 재료 손질로 지친 기색들이 있었는데, 하나님을 향한 고백이 찬양으로 올려지자 다시금 생기와 활력이 불어넣어지는 듯했다.
“찬양을 하니까 신기하게 힘이 났어요. 처음에는 바구니에 야채가 담겨 나오면 우르르 모여들어서 다듬고, 다음 거를 또 하는 게 너무 재밌었어요. 북한 생각도 나고요. 예전에 농촌 동원 나가서 무랑 양배추를 이렇게 많이 썰었거든요. 그런데 하루 종일 같은 일을 하다 보니 지쳐있었는데 찬송을 하자 했더니 힘이 어디서 났는지 눈이 번쩍 뜨이고 신이 났지 뭐예요.”
맨 처음 「발걸음은 언제나」를 흥얼거리기 시작한 탈북민 김다연 자매의 말이다.
“맞아요. 다연 언니 찬양을 따라하면서 ‘너무 좋다’ 했어요. 북한에서 일할 때 노래하던 생각도 번뜩 났어요. 힘든 건 모르겠어요. 그냥 찬양하며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했어요.”
탈북민 김남숙 씨도 한 마디 거들었다. 물리적으로는 일을 해야 하기에 수고로움이 따르지만 서로를 돕고 웃고 이야기하며 찬양한 그 시간은 김장 전투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가 녹아든 천국 잔치의 시간이었다.

여성들이 주방에서 노동의 피곤함을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날려버리는 동안, 남자들은 바깥에서 추위와 사투를 벌이며 김장 전투를 이어갔다. 하필이면 김장 속을 준비하던 날이 기온이 전날보다 10도 이상 떨어져서 영하권을 맴돌았다. 게다가 매서운 바람까지 가세해 모퉁이돌선교센터 앞에 방한용으로 쳐 놓은 비닐 천막이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처럼 요동했다.
쓕쓕~ 휙휙~ 비닐을 비집고 들어오는 사나운 바람을 맞으며 7명의 남자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배추 박스를 뜯어내 물을 빼는 작업을 전담했다. 안에 면 장갑을 끼고 고무장갑까지 착용했지만 배추에 칼집을 내는 손가락은 추위에 얼어 감각이 없어졌고, 배추를 들었다 내렸다 하는 반복 작업으로 허리와 허벅지 통증이 가중됐다. 이러다 순교하겠다는 우스개 소리가 흘러나오는데 김갈렙 탈북민 목회자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내년에는 우리 삼천 포기 합시다!”
양념에 들어갈 재료를 챙기느라 때마침 옆에 있던 본회 세리나 간사가 화들짝 놀라 대꾸했다.
“목사님, 지금 천칠백 포기 배추만 해도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삼천 포기를 합니까?”
김갈렙 목사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간사님이 삼천 포기를 한다고 하면 우리 교회 전교인 을 다 데려오겠습니다.”
탈북 성도들이 더 온다는 말에 세리나 간사는 퍼뜩 북한을 떠올렸다. 그리고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목사님, 그럴 거면 강화도가 아니라 평양에서 삼천 포기를 해야지요.”
“좋다마다요. 내년에는 우리 다 같이 평양 가서 김장하는 겁니다.”
북한에서 김장을 한다는 상상만으로도 김갈렙 목사와 세리나 간사는 피곤함과 추위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런 기대를 품을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감사한 밤이었다.

다음날 아침 8시, 80여 명의 탈북민과 한국 성도들이 모퉁이돌선교센터에 모여 예배를 드리며 본격적인 김장 전투를 준비했다. 남자들이 주걱으로 양념을 골고루 섞어서 배추와 함께 갖다 주면, 여자들이 속을 넣어 맛있게 버무렸다. 일하기 편하게 일렬로 세운 탁자 앞뒤로 남북의 성도들이 얼굴을 마주보고 서서 김치를 담았다. 그러다 보니 말문이 자연스레 터졌다.
“북한에서도 집집마다 김장을 같이 하나요?”

평소 궁금했던 북한의 김장 문화를 곁에 있는 탈북 성도에게 물었다.
“그럼요. 동네 사람들끼리 돌아가며 품앗이를 하지요. 김장날이 되면 옥수수밥, 조강냉이죽을 해 놓고, 감자를 삶아서 김치 노란 속에 양념을 발라 가지고 먹어요. 형편이 좀 나은 집은 고춧가루며 생선, 돼지고기를 넣기도 하는데, 없는 집은 그냥 시퍼런 배추를 소금에 절여 무만 뚝뚝 썰어 가지고 섞어서 먹죠. 고추가루 없이 하는 집들이 많고 김장을 아예 못하는 집들도 있어요.”
“김치는 얼마나 담그나요?
“북한에서는 김치를 반년 식량이라고 해요. 김장을 안 하면 겨울에 먹을 반찬이 없거든요. 김치가 있어야 살 수 있기 때문에 김장 전투라고 불러요. 집집마다 평균수백 포기씩은 담그는데 식구 수대로 한 독씩은 한다고 보시면 돼요. 김치 양이 많아서 김장철이 다가오면 부모님들이 근심하시고, 또 식구들이 힘을 보태서 다 같이 준비하죠.”
“저희는 수십 포기 하는 게 고작인데, 북한에서는 정말 큰 행사네요.”
남북 성도들이 이야기 꽃을 도란도란 피우는 동안, 간이 잘된 양념에 버무려진 배추 2백여 박스가 차곡차곡 쌓였다. 사랑과 정성으로 만든 1700포기 김치가 탈북민들의 식탁에 올라갈 일만 남았다. 남북이 함께한 김장이 마무리되는 시간. 탈북민들은 남다른 감회를 느끼고 있었다.
“남과 북이 주님 안에서 함께 김치를 담근 게 너무 감사하고 행복해요. 북한에 가서 이렇게 김장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고요. 정말 2024년에는 세리나 간사님 말씀처럼 모든 탈북 성도들이 북한에 올라가서 김치를 담글 것을 기대합니다.”
“믿음 안에 사는 남북의 성도들이 북한이 바라보이는 곳에서 김장을 한다는 게 너무 감격스러워서 눈물이 났어요. 통일이 되면 강 건너 사는 북한 사람들이 이곳으로 김장하러 오겠죠? 함께 김치를 담글 생각을 하니 가슴이 뛰어요.”
북부중앙교회 김예나 전도사와 나오미찬양단 김남숙 단원이 나눠준 이야기다. 이들의 소망이 하나님의 손에 들려 아름답게 이뤄지기를 고대하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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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 특집3] 김장으로 받은 사랑, 두 배로 북한에 전할게요. (2024.2)

북한 사람들에게 김치는 사랑이에요. 북한에서 온 사람들은 사실 한국 김치를 잘 못 먹어요. 북한과 하는 방식이 다르니까요. 북한에서는 마당에 펼쳐 놓고 김장을 하는데 여기는 아파트니까 조금씩밖에 못 해서 감질나고, 또 치열하게 살다 보니까 못 할 때도 있고요. 그런데 저희가 김치를 맛있게 담가서 넉넉하게 나눠 주니까 탈북민들에게는 얼어붙은 가슴이 녹고 마음이 변화되는 진짜 사랑으로 다가가는 거예요.

개인적으로 김장에 들어가는 비용이나 노동력도 그렇고, 탈북민들에게 김치를 만들어서 퍼 준다는 게, 세상적인 기준에서는 비정상으로 보일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남과 북이 하나가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요? 저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만 탈북민들을 특별히 사랑하신다는 걸 김장을 통해서 느끼곤 해요.

본회 세리나 간사님은 김장할 때 하나라도 더 해 주려고 애쓰는 게 눈에 보여요. 아마도 제가 먹을 김치라고 해도 그렇게 못 할 거예요. 재료 하나하나 발품 팔아가며 전국에서 수소문해서 구하는 그 사랑의 깊이를 어떻게 말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요. 담그는 김치 양도 어마어마하고요. 그냥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중심에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사랑의 힘으로 감당하셔서 정말 감사할 따름이에요.

또한 탈북민들이 김치를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현장에서 동참하는 것도 모퉁이돌선교회 김장의 장점인 것 같아요. 북한은 김장철에 온 동네가 모여서 재료를 다듬고 수다를 떨면서 김치를 만들어요. 딱 저희처럼요. 탈북민들에게 마치 고향 마을에 온 것처럼 왁자지껄하게 김치를 담그는 자리를 마련해 준 것 자체가 마음을 푸근하게 하고 치유해 줘요. 김치가 아니라 힐링을 선물로 주는 셈이죠.

이번에 1700포기의 김치를 200여 박스에 담아서 나눴는데 탈북민들에게 도전이 됐을 거라 생각해요. 이 엄청난 사랑을 받은 것에 대한 책임을 느낄 거예요. 머지 않아 이들이 북한에 갔을 때 받은 사랑을 나눠서 배가가 될 날을 꿈꿔요.

박릴리 간사(본회 방송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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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 특집1] 선교 현장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성경 배달 (2024. 1)

모퉁이돌선교회의 2024년 사역은 통일 이후를 준비하는 데 중점을 두어 감당하고자 한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바로 성경 배달이다. 신앙의 자유를 빼앗기고 고통당하는 북한 성도들이 하나님을 자유롭게 예배하고 복음을 전하고 들을 수 있도록 더욱더 힘써 말씀을 배달해야 한다.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라고 한 로마서 말씀처럼 북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기에 이르기까지 성경 배달은 멈춰질 수 없다.
성경 배달을 통한 영혼 구원의 중요성은 20여 년 전 모퉁이돌선교회에서 보낸 성경을 북한에서 받고 예수를 영접한 심 목사의 일화에서 잘 드러난다. 북한군의 중좌였던 그는 성경책을 읽다가 구약의 완성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다는 구원의 진리를 깨닫고 목 놓아 울었다고 한다.
심 목사는 탈북 후 중국에 있는 현장 일꾼을 도와 모퉁이돌선교회가 보낸 성경을 운반하는 일에 동참했었다. 당시 일을 회상하며 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때 내 손에 배달된 성경이 많은 영혼들의 손에서 손으로 옮겨가며 읽힐 것입니다. 그리고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이 구원의 반열로 옮겨질 것입니다. 그렇게 옮겨진 성경이 바로 평양에 있는 나에게도 전달되었을 거라 생각하니 더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통일 이후를 준비하는 첩경이 성경 배달에 있음을 시사해 주는 고백이 아닐 수 없다.

“요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계속 배달되고 있습니다. 많은 성경이 나가는 날도 있고 몇 권만 보내지는 날도 있습니다. 이번주는 화요일부터 매일 창고에서 성경을 포장하고 사역지로 보낼 준비를 했습니다. 오늘도 다량의 성경을 포장하러 갑니다.”
“지난번 중국어 성경 수십 박스를 보냈는데 3개월 만에 또 두 배의 성경을 선교 현장에 보냅니다. 이렇게 보내는 것이 얼마만의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너무 기쁘고 감사해서 먹지 않아도 배가 부릅니다.”
“북한어 성경 4박스가 해외에 있는 북한 노동자들을 위해 배달됐습니다. 말씀이 필요한 성도들을 찾아 말씀을 보내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최근 몇 달간 성경 배달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낸 일꾼이 들려준 몇 가지 이야기를 간추린 것이다. 지난 3년간 코로나로 잠시 소강 상태를 보였던 성경 배달의 물꼬가 다시금 트이고 있다. 북한어 성경과 중국어 성경을 보낼 수 있는 새로운 길들이 열리고, 여행 제한이 완화되면서 선교지로 직접 성경책을 운반해 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모퉁이돌선교회는 지난해 ‘나라에서 민족으로’ 선교 전략을 수정했다. 그와 함께 성경을 배달하는 지역에도 변화가 생겼다. 가령 북한어 성경을 북한 내부로만 보내는 것을 나라 중심의 전략이라고 한다면 중국, 러시아, 라오스, 이란, 알제리 등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해외에서 체류하는 북한 사람들에게 성경을 보내 복음을 전하는 것은 민족 개념을 적용한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모퉁이돌선교회가 성경을 배달하는 지역이 다변화되고, 이전보다 확대되었다.

“성경책만 넣은 23kg짜리 가방과 개인짐에 5~7kg 성경책을 같이 담은 가방을 각자 지고 총 7명이서 선교지를 방문했습니다. 이번 배달에 함께한 60~70대 회원들에게는 땀이 나는 힘든 일이고 전투였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빚을 갚기 위해 기쁨으로 하였습니다.”
“북한 복음화 전략을 논의하는 국제회의에 참석한 외국인들이 북한어 성경을 배달하겠다고 성경책을 가져갔습니다. 배달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뻔한 팀을 포함해서 들고 간 성경책 전량을 현지 사역자들의 손에 잘 전달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오늘은 전라도로 성경 배달을 떠납니다. 35박스의 아랍어 성경과 중국어 성경을 싣고 갑니다. 한국에서 공부하고 일하는 아랍 사람들과 중국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생명의 주를 만나는 계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지난 9월부터 11월까지, 100일 남짓한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는 모퉁이돌선교회로 북한과 중국, 아랍과 이스라엘, 그리고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들에게 총 10여 톤에 달하는, 무려 3만7천8백여 권의 성경책을 배달할 수 있도록 역사하셨다. 여기에는 한 번에 대량으로 들어간 건도 있지만, 다수는 개인이나 소수가 소량의 성경을 들고 여행이나 사업 등을 병행하는 과정에서 배달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목마른 주의 백성이 있는 선교 현장까지 직접 성경책을 가지고 가서 말씀이 참된 양식과 음료가 되는 것을 실감하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2024년에 많은 회원들이 성경 배달에 참여하고, 복음이 제한된 곳에서 역사하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성경 배달 사역을 통해 선교 현장의 많은 영혼들이 위로받는 새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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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 특집2] 성경을 더 줄 수 있나요? (2024. 1)

작년 9월부터 11월까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많은 양의 성경이 곳곳에 배달되었다. 여러 배달 건 중에서 한 가지를 뽑아 소개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상고하며 함께 누리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선생님, 지금 OO지역에서 중국 교회 지도자를 대상으로 하는 신학 강좌가 열리고 있습니다. 내일이면 모든 과정이 끝나서 이분들이 돌아갑니다. 가실 때 지도자용 성경을 선물로 드리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톰슨 주석 성경을 중국어로 번역한 정독본 성경을 요청하는 전화였다. 정독본은 모퉁이돌선교회에서 발간한 여러 중국어 성경 중에서 지도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성경이다.

“물론입니다. 몇 권이 필요합니까? 알겠습니다. 준비해서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일꾼은 부리나케 창고로 달려갔다. 큼지막한 정독본 성경을 선반에서 꺼내 차곡차곡 박스에 담았다. 성경책으로 꽉 채운 4개의 박스의 무게는 100kg이 넘어갔다. 수레에 박스를 싣고 창고를 빠져나오려던 일꾼에게 불현듯 이왕이면 중국어 성경뿐만 아니라 북한어 성경도 같이 가져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애당초 중국어 성경만을 부탁받은 것이지만 북한어 성경을 몇 권 더 넣는다고 해서 해 될 것은 없다는 판단이 섰다. 일꾼은 얼른 북한어 성경으로만 한 상자를 더 만들어서 짐 맨 위에 얹었다.

일꾼이 OO지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 어스름이 깔리고 있었다. 혼자서 100kg이 넘는 성경을 가지고 이동하느라 힘에 부쳤을 텐데, 일꾼의 모습에서는 피곤함보다는 곧 중국인 사역자들에게 생명의 양식을 전달할 수 있다는 기쁨이 묻어났다.

마침내 모처에 마련된 강의실에 들어간 일꾼을 수십 명의 중국 교회 지도자들이 반갑게 맞이했다. 일꾼은 정독본 성경을 한 권 꺼내 보이며 말했다.

“여러분에게 드리려고 주석 성경을 가져왔습니다.”

앉아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꾼이 든 성경에 쏠렸다. 주석 성경이 어떤 성경인지 궁금해하는 표정이었다.

“모퉁이돌선교회가 이 성경을 완성하는 데 꼬박 10년이 걸렸습니다. 공안의 눈을 피해서 작업실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번역하고, 중국인 사역자 2000명에게 보내서 내용을 검증받았습니다. 공안의 급습으로 몇 번이나 편집하던 것을 빼앗겼지만 포기하지 않았기에 오늘날 이 성경책을 여러분과 중국 교회에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국 교회 지도자들이나 신학자들이 이 정독본 성경을 두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중국 교회에 한 가장 중요한 일은 병원이나 학교가 아니라 바로 이 정독본이라고. 그만큼 귀하고 요긴한 성경입니다.”

일꾼에게서 정독본이 만들어지고 배달되기까지의 과정을 들은 중국 교회 지도자들은 감격했다. 설명을 듣고 나서 책을 보니 감동이 두 배가 되었다. 고맙다고 인사하는 중국인 사역자들에게 일꾼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여러분이 가는 길에 북한어 성경을 두 권씩만 가져가기를 바랍니다. 가서 주변에 있는 조선족 교회나 북한 사역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주면 좋겠습니다.”

일꾼의 말을 경청하던 한 중국 교회 지도자가 손을 번쩍 들고 질문을 했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 북한 선교에 집중하는 분이 계십니다. 북한을 자주 드나들고 있기에 그분에게 성경책을 전해주면 북한에 배달할 수 있습니다. 북한어 성경을 더 주실 수 있습니까?”

예상치 못한 말에 일꾼은 깜짝 놀랐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인 줄 알고 감사했다.

“할렐루야! 얼마든지 요청하는 대로 드리겠습니다. 어디로 어떻게 보낼까요?”

탄압받는 중국 교회 지도자들에게 주석 성경을 보낸다는 기쁨에 100kg가 넘는 짐을 무거운 줄 모르고 한달음에 달려온 일꾼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성경책이 없어 애태우는 북한 성도들에게도 성경책을 배달할 수 있도록 중국인 사역자를 붙여 주셨다. 일꾼은 보내는 모든 성경책이 한 권도 유실되지 않고 성도들의 손에 안전하게 들어가 영혼들이 살아나기를 기도하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찬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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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의 편지] 북한 성도가 손으로 써서 보내온 성경입니다 (2024. 1)

“어떻게 오셨습니까?”
50대로 보이는 여인은 낯선 사람의 방문에 깜짝 놀라 당황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2016년 중국에서 만났던 한OO을 기억하십니까?”
“한OO이요? 아~ 기억납니다.”
“제가 평양에 올 일이 있어 출타하는데 그걸 알게 된 한 선생님이 안부를 전해 달라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여인은 긴장했던 모습을 풀고 일꾼을 집안으로 안내하였다.
“사실은 한 선생님이 아주머니의 소식을 듣고 꼭 전해달라는 것이 있어 가져왔습니다.”라며 준비해 간 사역비를 성도에게 품에서 꺼내 주었다.
일꾼이 건넨 사역비를 손에 든 여인은 깜짝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하더니 급기야 울먹울먹하며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대박, 대박입니다.”
현장에서 소식을 받은 일꾼이 감격함으로 전하는 외침이다.
“이것 좀 보세요. 북한 성도가 보낸 겁니다.”

누렇다 못해 검은 색이 도는 갱지에 ‘둥굴레, 귤껍질…’ 등의 효능과 복용법 등이 기록된 책 위에 손으로 쓴 성경 구절이 적혀 있었다. 요한복음 14장 27절, 8장 32절, 15장 13-14절, 14장 18절, 10장 9절 말씀이다.
“심부름 간 일꾼이 한 선생님에게 잘 전달했다는 증거로 보여줄 사진 한 장을 찍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그 성도가 하는 말이 사진 대신 편지를 써서 주겠다고 하더랍니다. 그러더니 바로 그 자리에 앉아서 줄줄 글을 쓰더니 주더랍니다. 심부름을 갔던 일꾼은 편지로 알고 가져왔는데 펼쳐 보니 성경 구절이 써 있어 놀라서 이상하다며 보내왔습니다.
이걸 보는데 심장이 떨리더라구요. 북한 성도가 그 자리에서 즉시 슥슥 써준 것이 성경 구절이니 모두 암송하고 있는 거잖아요. 정말 대박입니다.”

북한 성도가 보내온 편지에 감격하여 가슴에 손을 얹고 눈물을 글썽이는 일꾼의 기쁨이 곧 하나님의 기쁨이다. 새해 더 많은 성경이 북한에 보내져 성도들을 살리고 지하교회를 살리고 북한 땅을 살리게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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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 메시지] 악에게 무너지지 말고 이스라엘의 평안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2023.12)

신명기 23장 9절은 다음과 같은 전쟁 승리의 방법론을 제시합니다.
“네가 적군을 치러 출진할 때에는 모든 악을 삼가라” 하나님은 전쟁 중에라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준 높은 도덕성을 지니라고 당부하십니다.
20세기 초반, 이스라엘 군대는 자신들만의 군대 윤리를 제정합니다. 히브리어로 토하 셰, 즉 무기의 정결함이라고 부르는 윤리 조항입니다. 우리를 반대하는 자 앞에 설지라도 우리가 가진 무기가 무고한 자의 피로 더럽혀져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세기에서 인간의 마음의 계획이 악하기만 하다는 말씀을 두 번이나 하십니다. 이를 히브리어로는 예제르하라라고 하는데, 유대인들은 반복되는 전쟁에서 이 예제르하라에 맞서 의로운 싸움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자신들을 죽이는 것만이 존재의 이유라는 테러 조직의 공격 앞에서 그래도 자신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그들과 똑같이 악해지지 않겠다고 외치는 것입니다. 전쟁은 인간의 악한 성향을 더욱 자극하고 불타오르게 하지만 그 전쟁을 향해 전쟁을 선포하는 것은 우리의 영적 책임입니다. 우리의 영혼에 뿌리 내린 분열을 없애고 파괴의 멈춤을 선포하는 것이 하나님 백성이자 전사인 우리의 의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948년, 2천 년 만에 자기 나라를 갖게 된 이스라엘은 75년 동안 단 한 순간도 마음 편히 살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팔레스타인은 애초에 싸울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변 아랍 국가들이 이들을 대신해서 싸워주었습니다.
몇 번의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하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난민이 돼서 쫓겨났습니다. 그러자 우리의 존재를 알려야겠다고 생각한 팔레스타인인들이 테러를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두 민족을 번번히 무너뜨렸던 것은 테러였습니다.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은 자살 테러를 감행해서 순교자가 되거나 유대인을 희생시키고 감옥에 갇히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분노했습니다. 테러로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희생되는 것을 보면서 완고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팔레스타인과의 평화는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습니다. 두 민족이 평화에 한 발짝 다가갈 때마다 결정적으로 그 발걸음을 끊어냈던 것이 바로 테러였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을 미워하는 많은 사람들이 테러가 저항의 방식으로서 정당하다고 주장합니다. 아니요. 테러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2023년 10월 이후, 이스라엘에서 더 이상 평화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거라고 좌절합니다. 저는 여기에서 예루살렘 탈무드의 한 내용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전쟁 중에 이방인의 무리가 매복해 있다가 유대인 집단을 전부 포로로 잡은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최후 통첩을 합니다. “너희 중에 한 명만 넘겨라 그러면 전부 다 살려주겠고 안 그러면 전부 죽여버리겠다”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도 머릿속으로 산수를 하셨을 겁니다. 한 명이 희생해서 전체를 살리는 것이 아름답지 않을까?

지금 이스라엘에서 벌어지는 일은 어느 누가 개입해서 인간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로 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풀 수 있을 거라고 믿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평화를 갖고 오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을 존경하고 그들의 노력이 성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늘에 속한 자들로서 이 이야기의 결론을 알고 있습니다. 이 땅에 평화를 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이 땅에 평화를 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이 비밀을 알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선을 택하고 악을 단호히 피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절대로 악에 무너지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율법을 가진 자로서 도덕성을 잊지 않도록, 가자의 무고한 민간인들을 불쌍히 여기고 선을 베풀 수 있도록, 그래서 이 전쟁을 마무리하고 우리가 다시 한 번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도록, 그 평화가 너무 늦어지지 않도록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OKCN 《샬롬! 예루살렘》 방송을 진행하는 오주영 목사가 1월 카타콤기도회에서 이사야 2장 2~4절을 본문으로 전한 말씀입니다.
모퉁이돌선교회 유튜브 채널에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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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 특집] 하나님 말씀의 생명으로 사는 북한 성도 (2023. 12)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책을 꺼내서 보고 있어요.
읽으면서 힘을 얻어요.”


최근 북한에서 사진 한 장이 전달됐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배경으로 찍은 가족 사진이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책을 꺼내서 보고 있어요. 읽으면서 힘을 얻어요.”라는 메모도 함께 왔다. 사진(그림) 속 주인공은 본회 일꾼이 20여 년 전 만난 사람으로, 중국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복음을 전했던 이였다. 그가 중국에서 머물 수 있는 기한이 끝나 북한으로 돌아갈 무렵, 뜻밖의 제안을 일꾼에게 했다. 성경책을 가져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결국 요한복음을 떼어서 북한에 들어갔는데 그후론 소식이 끊겼다가 얼마 전 사진과 메모가 온 것이었다. 20년 넘게 북한 내부에서 쪽 복음을 읽으며 믿음을 지켜 온 북한 성도의 이야기를 정리한다.

어렴풋한 불빛에 말씀을 비춰 보고

그 안에 생명이 있었고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였다
그 빛이 어둠 가운데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요 1:4~6)

어둠이 푸른빛에 살짝 섞여 내려앉기 시작한 초저녁 무렵. 강훈은 아직 희미한 빛이 남아있는 창문에 기대서서 요한복음 1장을 읽고 있었다. 그는 행여라도 이웃집에서 볼세라 주위가 점점 어두워지는데도 불을 켜지 않고 한 자 한 자 손으로 짚으며 그 내용에 집중했다.
“형님, 안에 있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강훈은 깜짝 놀라 황급히 성경을 구들 밑에다 감췄다.
“저녁인데 불도 안 켜고 뭐 하오?”
성경책을 급하게 밀어 넣고 짐짓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연하게 앉은 강훈을 영일이 의뭉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휴~”
다른 사람이 아닌 영일이라는 걸 확인한 강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영일은 강훈이 유일하게 흉금을 터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직장에서 친하게 지내는 동생이었다.
“형님, 또 그 책 봤소?”
영일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쉿, 조용히 하라. 누가 듣겠어. 무서운 줄 모르고….”
강훈은 눈을 흘기며 영일에게 주의하라는 시늉을 했다.
“형님, 근데 있잖소. 그 책 어떻게 구했소?”
강훈은 책이란 말에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일어났다. 그는 온 촉각을 곤두세워 미세한 바람소리에도 귀를 기울였다. 아무도 없다는 걸 거듭 확인한 다음에야 그는 자리로 돌아와 입을 열었다.
“지난번 중국에 갔을 때 말이야. 어떤 선한 사람을 만났는데….”
20년 전의 일이 떠오르는지 강훈의 눈이 아득해졌다.

보석 같은 말씀을 북에서도 보고 파서

“선생님, 하나님이 살아 계십니다. 선생님이 못 사는 건 하나님을 안 믿어서 그럽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북조선은 자원이 풍부합니다. 예전처럼 하나님만 잘 믿으면 북조선도 얼마든지 강국이 될 수 있습니다.”
회상 속에서 강훈은 목사님이 하는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었다. 그는 겉으로는 평정심을 유지하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이건 무슨 소리야? 하나님이 어쩐다고?‘ 하며 마음이 요동쳤다.
“선생님, 하나님이 우리와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함께하기를 원하시지만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죄를 지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셔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이셨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고 고백하면 영원한 하늘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돌아간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우리에게는 돌아갈 곳이 있는데 거기가 바로 하늘나라입니다. 선생님, 이 땅에서 고생만 하다 죽지 말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십시오.”
목사님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들은 강훈의 심장을 흔들어 놓았다. 다 동의되거나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보통 말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강훈은 방금 들은 한 마디 한 마디를 곱씹으며 골똘히 생각했다.
“선생님, 여기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한 번 읽어 보세요.”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던 강훈에게 목사님이 성경책을 건넸다.
‘성경책? 당국이 금지한 불온 서적이 아닌가.’
오랜 기간 세뇌를 당한 강훈의 뇌는 절대로 성경책을 받아서는 안 된다라고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반짝 반짝 윤이 나는 성경책 겉 표지는 어서 펼쳐 보라는 유혹의 손짓을 보냈다. 강훈은 마치 뭐에 이끌린 듯 성경책을 받아 들었다.
숙소에 도착한 강훈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성경책을 펼치는 것이었다. 그는 일단 손가락으로 책장을 휙휙 넘기며 보이는 구절들을 훑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마태복음 2장에서 눈길이 머물렀다.

헤롯 임금 시대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태여나시자 동방에서 현인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말하기를 유대인들의 임금으로 태여나신 분이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니 헤롯임금과 온 예루살렘이 함께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마 2:1~3)

“아하,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구나.”
강훈은 무릎을 탁 쳤다. 성경 지식이 전무한 그로서는 작은 실마리를 하나 잡은 것 같았다. 강훈은 그 장을 기점 삼아 정독하며 읽기 시작했다.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에도 강훈은 손에서 성경책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말씀을 읽는 주경야독의 삶이 여러 날 계속되었다. 이윽고 강훈이 북한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짜가 되었다. 그는 인사도 할 겸 마지막으로 교회를 찾아갔다.
“저… 성경을 몇 장 가지고 돌아가도 일없겠습니까?
강훈이 쭈뼛거리며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그건 장담 못 합니다. 위험을 무릅써야 하기에 선생님이 선택하셔야 합니다. 특별히 가지고 가고 싶은 장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저 두루두루 읽어 보니까 좋은 말 같아서 집에서도 보고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요한복음을 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나와 있는 성경입니다.”
목사님은 신약 성경에서 요한복음을 뜯어내 안이 보이지 않게끔 비닐로 꽁꽁 쌌다. 강훈은 선뜻 성경책을 집지 못하고 쥐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비장한 얼굴이 되어 품속 깊이 성경을 넣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하늘의 기쁨과 소망이 가득한 성탄절이 되기를

“형님, 용케 안 걸렸소.”
중국에서 성경책을 가지고 나온 모든 과정을 들은 영일이 한 말이었다.
“하나님이 도우셨지. 만약 그때 걸릴 게 두려워서 이 귀한 걸 안 가져왔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해. 읽고 나면 얼마나 마음이 좋은지. 힘들 때 보면 힘이 생겨. 이제 곧 12월 25일인데 그날이 무슨 날인지 아나? 예수님이 태어나신 크리스마스야. 하나님을 떠나 죄를 지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아들 예수를 보내 주신 날이야. 하나님은 죄 없는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해서 우리를 구원하셨어. 그걸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자는 천국에 갈 수 있지. 이 책에 그 모든 내용이 기록돼 있어. 여기를 보라고. 예수님에 관한 증언이야.”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났으니 그로 말미암아 생겨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고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였다
그가 자신의 백성에게 오시자 그 백성이 그를 영접하지 않았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토록 사랑하사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 (요 1:3~4,11~12, 3:15~16)

강훈은 언제 꺼냈는지 어느새 성경을 손에 쥐고 있었다. 성경책은 20년 넘는 세월을 반증하듯 헤어질 대로 헤어져 있었다. 그는 영일에게 요한복음에서 인상 깊었던 몇 구절을 읽어 주며 복음을 전했다. 영일은 그 옛날 중국에서 강훈이 그랬던 것처럼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강훈은 너무 봐서 너덜너덜해진 그러나 소중하게 간직해 온 요한복음을 영일에게 내밀었다.
“읽어 봐.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이야. 너에게도 힘이 될 거야.”
“……”
영일은 말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성경책을 받았다.
“서양에서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며서 12월 25일을 기념한다고 들었어. 나는 산에서 나무를 해다가 비슷하게 흉내내 볼까 하는데 같이 갈래?”
“좋소. 형님.”
영일의 좋다는 대답이 왠지 예수님을 믿고 싶다는 말인 것 같아 강일은 흐뭇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 동지가 생긴 것도 너무 든든했다. 강훈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영일이 빙그레 웃어 보였다. 강훈은 영일과 함께 맞는 성탄절이 벌써부터 기다려졌다.

금년 성탄절에도 북녘 성도들에게 이 땅에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뻐하는 감격이 넘치기를 기도한다. 12월 19일 남한 성도들과 탈북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드리는 성탄예배에서는 북한으로 돌아갈 때를 준비하는 탈북민교회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북한으로 배달되고 있는 『남북한 병행성경』을 선물하며 축복하는 시간을 갖는다. 성탄예배가 녹음되어 12월 25일 북한에 보내질 때 숨죽여 예배하는 북녘 성도들이 깨끗한 음질로 방송 예배를 듣고 위로과 큰 기쁨이 가득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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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특집 1] 성경배달의 문이 활짝 열리고 있습니다! (2023.11)

“그의 이야기를 듣는데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북한 인접국으로 성경 배달을 다녀온 16명의 한결같은 고백이다.
북한이라는 외국에서 온 가난한 노동자를 혈족보다 더 큰 긍휼의 마음으로 품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털어서 도울뿐더러,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애쓴 한 사역자의 모습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내 동포를 돌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신하여 섬겨준 것에 대한 감사함 때문이다.
그럼에도 북한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통로가 될 수 있어서 그저 좋다고 겸손히 고백하는 사역자의 이야기를 자세히 담았다.

북한 사람 생각에
눈물을 글썽이다


“몇 해 전에 건축 일을 하는 친구를 통해서 북한에서 온 노동자들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분들이 기거하는 방에 갔었는데 짓다 만 허름한 창고 같은 건물에 11명이나 살고 있었습니다. 시멘트 바닥에 요랑 이불이 다닥다닥 놓여 있고, 벽에 옷가지 몇 개 걸린 게 전부였습니다. 그런 데서 영하 수십 도로 떨어지는 추위를 견뎌야 합니다. 뜨거운 물도 없고, 화장실도 없고, 문이나 변변한 난방 기구도 없는 곳에서 말이죠.”
선교 현장을 방문한 성경배달 단기팀에게 북한 노동자들이 살던 방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하던 현지 사역자가 갑자기 고개를 떨구었다. 그는 복받치는 감정에 한참을 말을 잇지 못하다가 왈칵 눈물을 쏟았다.
“미안합니다. 북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현지 사역자는 당시에 만난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르는지 쉽게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그는 단기팀에게 자신을 북한을 사랑하는 목사라고 소개했었는데 전혀 과장이 아닌 듯했다. 어쩌면 한국인보다도 더 애틋한 마음으로 북한 노동자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 같았다.
“여기 사진에 동그란 빨간 점이 보이시나요? 이게 이분들이 가진 유일한 온열 기구였습니다. 진짜 손바닥만 한 크기였는데 더 기가 막힌 것은 벽이 삼면만 막혔고 한 쪽이 뻥 뚫렸다는 거였습니다. 찬 바람이 숭숭 들어와서 살을 에이는데도 비닐 한 장 치고 겨울을 나야 하는 상황이 여러분은 상상이 되시나요?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지내는 곳도 그랬지만 먹는 것도 형편없었습니다. 양배추와 당근을 삶아 먹는 게 주식이었습니다.”
북한 건설 노동자들의 딱한 처지를 알게 된 현지 사역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일하고 있는 공사장으로 먹을 것을 싸 들고 가서 나눠 주었고, 한겨울에도 얇은 옷에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그들을 위해 옷과 신발을 갖다 주었다. 험한 건축 일에 종사하는 그들은 다치는 게 다반사였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등 치료가 필요한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차로 그들을 병원에 데려갔다. 또 힘들게 일했음에도 임금을 떼이는 경우가 생기면 언어가 서툴고 법적인 문제를 잘 모르는 북한 노동자들을 대신하여 싸웠다.
“저는 저를 의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제가 가진 것으로 그들을 도울 뿐입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움은 이분들이 저희 나라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진작에 알았으면 좋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랬으면 10년, 아니 20년 넘게 섬길 수 있었을 텐데, 너무 나중에 알게 되어 안타깝고 후회스럽기까지 합니다.”
북한 노동자들을 도울 때 그는 어떤 것도 묻거나 따지지 않았다. 이유나 조건을 붙이지도 않았다. 그저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들을 덮고 묵묵히 섬겼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나그네 를 환대하다


“저를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분들이 가건물에서도 살 수 없게 됐습니다. 갈 곳이 없어지자 저에게 도움을 요청해 왔습니다. 제가 ‘교회는 어떤가요?’라고 물었더니 뜻밖에도 상관이 없다고 하길래 저희 교회에다 숙소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북한 사람들이 목사를 만나거나 교회에서 살면 생명이 위태롭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이분들이 저희 교회로 온 것은 사정이 급박한 탓도 있지만 그간 저와의 관계에서 쌓인 신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분들이 처음부터 저에게 마음을 열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왜 우리를 도와주냐’, ‘왜 우리한테 잘 대해 주냐’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한결같이 자신들을 대하는 저의 모습을 보면서 저의 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도가 많지 않은 가난한 현지 교회임에도 사역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땅에 온 나그네를 환대했다. 교회 한 편에 딸린 자그마한 방을 개방해서 간이 침대와 라지에이터를 들여놓고 북한 노동자들이 따뜻하고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담임 목사가 앞장서자 교인들이 뒤따랐다. 고된 일과를 마치고 북한 노동자들이 귀가할 때면 집사님, 권사님들이 나와서 이방의 손님들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다. 비록 언어는 통하지 않아도 자신들의 아들과 손자를 대하듯 정성껏 대접했다. 그리고 이들이 하나님을 믿도록 뒤에서 간절히 기도했다. 타국 땅에서 극진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한 북한 노동자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북한분들은 절대로 내색하지 않습니다. 고맙다는 말을 하거나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태도를 취하면 나중에 불리해질 수 있으니까요. 그분들이 교회에 머무는 동안 사실 술과 담배에 절어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제가 ‘술 마시지 마세요. 담배 피지 마세요.’라고 하면 잘 따라 주었습니다. 표현은 안 해도 아마 마음속으로는 저와 성도들에게 감사했을 겁니다.”
변화의 기미가 없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품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사역자와 성도들은 북한 노동자들을 변함없이 사랑하고 위해서 기도했다. 그러는 와중에 자그마한 기회라도 생기면 예수님 이야기를 전했다. 하루는 북한 노동자들의 우두머리 격인 팀장이 사역자에게 이런 당부를 했다. 팀원들 중에는 북한 정부에 목사님이나 교회를 나쁘게 고발할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 말을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전도를 하지 말아 달라는 우회적인 표현이었다. 그 후부터 사역자는 다 같이 모여 있을 때가 아닌 한두 명씩과 따로 있을 때 “예수님이 너를 사랑한다. 예수님은 좋은 분이다.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라며 복음을 전했다.

꼬맹이성경
흔적도 없이 사라지다


“한 번은 북한분들에게 평양대부흥을 아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분들은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1907년에 엄청난 부흥이 북한을 휩쓸었으며, 평양이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렸다고 말했습니다. 그분들은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당시 북한에 대단한 역사를 일으키셨다는 사실을 알려 주며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분들은 잠자코 듣기만 했습니다. 어떤 날은 한 분이 임금을 못 받았다며 저를 찾아왔습니다. 북한 노동자들은 주로 구두 계약을 맺고 일을 하기 때문에 대금을 못 받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제가 ‘기도하겠습니다.’라고 했더니 ‘누가 들어준다고 기도합니까?’라며 반문했습니다. 며칠 후 그분이 임금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제가 ‘하나님이 도와주셨습니다.’라고 하니까 ‘하나님이 아니라 목사님이 받아 주셨습니다.’라고 웃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예수님을 안 믿었으면 저도 여러분을 도와주기는커녕 다른 사람들처럼 힘들게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여러분을 도와주고 싶은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라고 하자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만지셨을 줄 믿습니다.”
이렇듯 사역자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북한 노동자들을 보듬는 한편 그들의 영혼을 믿음으로 이끄는 일에도 힘을 쏟았다. 제대로 입지 못하고 먹지 못하는 것이 불쌍하지만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더 안타까워 그는 복음을 전할 계제가 있을 때마다 놓치지 않았다. 그런 열심 때문이었는지 사역자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분들 숙소 입구에 성경과 <예수> 영화를 볼 수 있는 비디오 기기를 갖다 놓았습니다. 심심할 때 보라는 의도였는데, 영화는 잘 모르겠지만 성경은 모두 없어졌습니다. 부피가 큰 남북한병행성경은 그대로 있었고 작은 꼬맹이성경 60권이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저희가 안 볼 때 한 권씩 가져간 것 같습니다.”
숨기기 좋고 숨어서 보기 좋은 꼬맹이성경을 몰래 읽기 위해 가져간 것이라고 사역자는 확신했다. 북한 노동자들이 복음을 듣고 하나님 알기를 원했던 사역자와 성도들의 기도가 응답된 것이라고 그는 기뻐했다.
이번에 성경배달 단기팀이 가져간 500여 권의 북한어 꼬맹이성경과 만화성경 중 일부가 사역자에게 전달되었다. 이방 땅에서 헐벗고 굶주리며 힘든 노동을 하는 북한 노동자들에게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이 전해지고 생명으로 열매 맺는 충만한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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