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칼럼] 지금이 복음을 전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사진) 강화훈련원에서 보이는 북한

많은 선교사들이 추방되었습니다. 그러나 선교지 밖에서 다른 방법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몇몇 선교사들은 현장에 남아서 계속 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사역은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성경 배달과 지하교회 개척, 가르치는 일이 여전히 진행 중이고 방송 사역은 오히려 확장되었습니다.
지난 35년간의 경험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포기하지 않으신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이 우리를 여기까지 이르게 인도하셨습니다. 드러내지 않고 힘들어도 조심하며 주님의 은혜를 기다리면서 감당케 하신 이가 하나님이십니다.
안팎으로 감시가 심하고 제한된 방법으로 연락할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일을 중단할 수는 없었습니다. 사탄은 이런 상황에서 사역자들과 그 가족들의 건강을 잃게 하고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하게 공격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기간에 갈급한 심령들이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을 봅니다. 적은 금액의 구제가 큰 영향을 끼치는 것 또한 봅니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복음을 전할 절호의 기회일 수 있지 않을까요?

처음 모퉁이돌 선교회를 시작했을 때, 중국 조선족들의 부르짖음을 저는 기억합니다. 북한에서 강을 건너오는 이들의 필요를 채우던 그때 한국 교회는 중국 선교에 열심을 냈습니다. 북한 주민을 돕는 조선족 교회 뒤에 한국 교회가 있었습니다.
지금이 그런 기회가 아닐까요? 북한 지하 성도들을 도울 방법이 있습니다. 중국 한족과 조선족, 몽골인과 러시아의 고려인이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 일할 일꾼을 더 보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 아뢸 기도의 용사들을 보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강화훈련원은 바로 이 일을 위해 기도하는 곳이 될 것입니다. 올바른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선교사들을 훈련하는 곳이 될 것입니다. 중국과 미국 그리고 이스라엘에서도 현장 훈련을 시킬 것입니다. 언어와 문화에 적응하도록 가르칠 것입니다. 저는 실제로 문화충격을 오랫동안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 경험을 젊은 선교사 후보생들과 나눌 것입니다. 훈련원 인근에는 선교사 후보 가정이 머물 숙소가 마련되도록 기도하는 중에 있습니다.

거의 36년 전, 문화혁명이 끝나고 개방이 시작되던 어려운 시기에 중국에 가야 하느냐고 주님께 기도로 여쭤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은 저로 미국에 오게 하셨고 준비케 하셨습니다. 나이 40이 되던 1985년에야 비로소 북한과 중국, 몽골과 러시아 사역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행동으로 옮긴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도하셨고 응답하셨고 공급하셨고 지금도 그렇게 행하고 계십니다. 고난과 아픔과 어려움, 그리고 좌절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했지만 놀라운 것은 그렇다고 제가 버려진 게 아니라 더 큰 그리고 다른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한 것입니다. 구속 사역의 큰 그림을 제가 볼 수 없었던 것일 뿐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장 20절)”
이 일을 이루기 위해 기도할 분을 찾습니다. 이 일을 위해 여러분이 감당할 것이 무엇인지 주님께 묻지 않으실래요? 하나님께 기도해 보세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말씀하시는 대로 행하셔야 하지 않나요? 이제 결단하십시오.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 가겠노라고!

무익한 종 이 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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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끝내 그 길을 가렵니다!

“전염병이 끝나면 이주해서 떠나야 하갔시오.”

코로나가 끝나면 강을 건너가겠다는 말이었습니다. 중국 땅에라도 정착해서 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답니다. 북한 땅은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던 1995년을 전후한 지금까지 하나도 변한 게 없다는 것입니다.

“낮에는 간부들이 대놓고 빼앗아 가지요. 밤에는 도둑놈들이 훔쳐 가거나 강도질 해 가지요. 배급이 끝난 게 언제인데요. 그나마 밀수라도 해서 장마당에서 이것저것 팔아 생계를 유지했는데…. 자유? 그게 뭔가요. 먹고 살아 남기도 바빠요.”

북한 성도의 하소연을 들은 일꾼은 지금이 얼마나 힘든 상태인지를 가늠하며 탄식이 나왔지만 조금만 더 견디라고 위로해야만 했습니다.

1960년대 남한에 이민 붐이 일어났습니다. 남미로 가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대부분이 월남한 사람들이었는데 고향을 떠나 살기는 마찬가지라며, 통일이 오면 그때 돌아오더라도 지금 당장은 좀 나은 외국으로 가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선족, 고려인, 재일 동포, 재미 교포 등 해외 동포의 숫자가 7-800만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들이 더 안타까운 마음으로 북한을 바라보고 있기도 합니다. 북한의 자유가 회복되기를 바라며 기도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1950년을 전후해서 북한 땅을 떠난 월남인들은 집과 땅 대신 자유를 얻고자 했습니다. 떠난 후에는 늘 고향 땅을 그리워합니다. 그런데 지금 북한 주민들이 고향을 등지고 자유를 얻으려 합니다. 이 마음을 이해하십니까? 70년이 넘었습니다.
당시 월남했던 사람들이 그리워하던 땅을, 지금 그곳에 살고 있는 백성들이 떠나고자 합니다.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그루터기인데, 믿음을 지키며 울고 기도한 이들인데,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며 떠나려는 그들의 고통을 풀어줄 수 없을까요?

찾아가서 만나고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안 되는 무엇인가가 북한 땅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악한 영의 세력이 그들을 짓밟고 있습니다. 말할 자유가, 이사와 여행의 자유가, 먹을 것이 없습니다. 전염병으로 인한 고통이 있기 이전에 70년을 그렇게 살았는데 지금은 차라리 숨어 있더라도 중국으로 떠나고 싶은 그들의 마음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런 와중에 숲속에서, 강가에서 복음을 듣는 이들이 있습니다. 자신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어야 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에 이르는 주의 백성들이 하나 둘, 주의 이름을 부릅니다. 들판과 강변이 예배당입니다. 소리내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숨어서 주님께 기도하는 그곳이 개인 예배당입니다. 때로는 땅굴과 부엌이 예배당이 됩니다. 방 안에서 김일성, 김정일 사진을 보며 예배를 드립니다. 그곳이 그들의 예배 처소입니다.

“눈을 뜨고 아버지의 이름을 부릅니다. 육체적인 고통이 끝나지 않아도 예배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간부가 괴롭히고 군인들이 총질을 하고 도둑들이 훔쳐 가고 장마당이 서지 않아도 나! 나는 예수님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 예수님이 나를 위해 생명을 버리셨으니, 나를 포기하지 않고 영생을 주셨으니, 내가 이제 살아서 주님을 끝내 붙들고 그 길을 가렵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성도들을 주께서 자유케 하시기를, 안개가 가득하여 북녘 땅이 보이지 않는 이 아침에 살아계신 하나님께 아룁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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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탄의 세력과 우리는 전쟁 중입니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그 전쟁이 계속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병사 혹은 군인이라는 말 자체가 전투가 벌어지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평양은 함락되었지만 국지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랑과 용서를 선포하며 여러분과 저는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영적인 싸움을 치루고 있습니다. 당신이 어떤 부대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싸울 능력이 없다고요? 그리스도의 병사로서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요? 여러분은 특공대원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름 받은 자리는 전쟁터로 보냄 받는 자리입니다. 영적 싸움이지요. 이미 이겨 놓은 싸움이라구요?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사탄이 싸움에 졌다고 가만히 있나요? 결코 포기하지 않고 집적거립니다. 패잔병인 사탄이 계속 괴롭힙니다,

우리 안의 영적 싸움은 계속됩니다. 마귀와, 죄악과의 싸움입니다. 욕심을 부리도록 이끌어 냅니다. 시기하고 질투하고 증오하도록 유도하는 싸움에서 이기고 계십니까? 평양에 들어가지 않았을 뿐 평양과의 영적 싸움이 있습니다. 여기 오늘 서울의 악한 세력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계십니까? 가족 사이에서 일어나는 영적 싸움이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이웃과 학교와 친구 사이에서, 나라의 정치와 경제와 사회의 모든 소용돌이 속에서 일어나는 영적 싸움은 없나요?

전쟁은 더 치열해지고 악랄해졌으며 끈질기게 유혹하고 시험합니다. 모퉁이돌선교회는 이 일을 위해 불리움 받은 특공대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런 싸움에서 하루 하루를 이기도록 배치받았습니다. 물리적인 싸움은 아닌 듯하지만 그보다는 더 어려운 싸움입니다. 그러기에 최첨단의 영적 수준을 유지해야 합니다.

매일 매 순간이 전염병과 싸우는 듯한 영적 갈등이요 싸움입니다. 포기한다고 해서 끝날 일도 아니고 후회한다고 해서 벗어날 일도 아닙니다. 용서와 사랑, 은혜와 믿음의 자리를 지키며 싸웠던 이가 있습니다. 그 사도 바울의 발걸음과 다를 바 없는 우리여야 합니다.

저는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를 제게 보낸 편지로 읽고는 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내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장 7-8절)”

제가 만났던 왕명도 목사나 원상심 목사나 모쉐 목사나 진매벡 할머니도 모두 중국 공산주의와 문화혁명의 시기를 지나며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 갇혀 몇십 년씩 고통을 당해야만 하는 그 싸움에서 승리한 분들입니다. 조선족 가운데에서도 훌륭한 싸움을 싸운 분들이 있었습니다. 저들은 전쟁 중에 승전가를 부르지 못하고 주님 품에 안겼습니다. 매일 매일을 싸울 뿐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믿음을 지켜서 전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는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앉아 있어도 서 있어도 코로나로 인해 예배당에 가지 않아도 여러분은 전쟁터에 있습니다. 싸움에 지고 계시지는 않으시지요? 힘드세요? 올바른 싸움을 싸우고 계신가요? 이미 포기하고 주저 앉은 건 아니시지요?

전쟁은 내가 아닌 내 안의 예수 그리스도가 싸워 주셔야 이길 수 있습니다. 평양에 갇힌 전쟁포로를 구할 책임을 다 하셨습니까? 특공대를 보낼 책임은 다하고 계십니까? 특공대로 보냄 받은 책임은 다 하고 계십니까? 특공대원은 최첨단의 훈련과 준비와 장비를 필요로 합니다. 강화도 훈련원은 특공대원의 전진기지 역할을 할 것입니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 하나님!” 하고 복종할 주의 종들을 찾으십니다. “예! 하나님!”이라고 선포하며 내 안의 예수님이 싸우시도록 맡길 일꾼을 찾습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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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예수 믿는 자들이 생겨났습니다!

2021년을 시작하자마자 들려온 소식은 하나님 나라가 살아 있음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의 한 지도자가 잡혀 들어갔습니다.
‘한 사람을 키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뒤집어 보면 하나님 나라의 일꾼을 공격하고 방해하는 세력이 존재하기에 발생한 사건입니다.
하나님 백성이 살아 있기에 공격당하는 것입니다.
온 세상을 끊임없이 공격하는 세력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 일꾼들이 일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또 성경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요청이 오고 있습니다. 브엘세바와 갈멜의 사역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이란에도 성경과 《메시야》 만화가 비밀리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미얀마에서도 《메시야》 만화에 대한 요청이 있더니,
이제는 교회를 건축하려는 이들의 기도 요청이 베트남에서 들어왔습니다.
2020년에 잠시 늦추게 하시더니 2021년에는 일하게 하실 모양입니다.



베트남에 예배당을 짓기 위해 모금을 진행하고 있답니다.
본인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교회를 지어 달라고 손을 내미는 게 아닙니다.
지난번에 그들에게 다리를 놓아 준 일이 있었습니다.
강을 건너가려면 배를 사야 하고 시간이 많이 든다기에 다리를 놓아 주었습니다.
그걸 본 현지 주민들 중에 예수 믿는 자들이 생겨났습니다.
전도인들이 걸어갈 수 있어서 편리하게 된 것 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마음이 활짝 열린 것입니다.
교회를 짓는 비용이 충당되면 그곳 성도들이 열심을 낼 것입니다.
교회 건축이 완성되기까지 선교사님의 수고가 뒤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그만 선교사님이 병을 얻어 귀국했고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지금은 치료 중이지만 여전히 현지 성도들을 위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평양에 교회를 짓기 시작할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예배가 이뤄질 베트남 한 구석에 예배당을 지으려고 합니다.
기도해 주실 분을 찾습니다.
기도를 통해 태국으로, 미얀마로, 라오스로, 캄보디아로, 베트남으로 복음을 확산할 것입니다.



2021년을 시작하면서 큰 복을 이루어 가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또 건너편 북한 땅을 바라보면서도,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성도들의 열심을 외면할 수가 없습니다.
선교의 열매가 맺히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무익한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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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북한 땅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오랫동안 기도해 왔습니다. 그리고 북한 주변도 서성거렸습니다. 압록강가에서 수없이 신의주와 무산을 들여다 보았습 니다. 혜산을 향하여 얼굴을 드러내 놓고 기도했습니다. 두만강가와 임진강가에서 울부짖으며 회개도 했습니다. 철원과 고성과 판문점에서도 그리했습니다.

여러 해를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평양에 들어갈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호텔 방 안에 일부러 성경책과 비디오를 남겨 놓고 그들이 보게 만들었습니다. 호텔 창문을 통 해 복음 풍선을 날려보냈습니다. 꼬마 성경 수십 권을 가져다가 여기저기에 던져 놓기도 했습니다.

00목사님께는 주석 성경을 제작하여 가져다 드렸습니 다. 몇 안되는 분들에게 직접 간접적으로 증거도 해 보 았습니다. 그렇지만 그게 무슨 역할을 얼마나 했겠습니 까? 제가 만난 그들이 과연 북한 땅을 뒤집어 놓을 변 화를 일으킬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이 그 땅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말씀을 1985년 겨 울에 들려주셨습니다. 35년이 지났지만 아무 일도 일어 난 것 같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방송은 조용 조용히 북 한 땅을 두드렸습니다. 미국과 일본과 중국과 러시아와 몽골과 호주와 뉴질랜드가 북한의 붕괴와 변화를 위해 일해 왔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극소수의 하나님의 백성 들이 누룩이 되어 북한 땅에서 부풀려졌습니다. 개미와 당나귀와 신발, 노예가 되어 그 땅을 부식시켰습니다.

하나님이라는 분이 계시다는 걸 들어본 적이 없는 백성 이 그 땅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위해 십 자가에서 피 흘려 주었다는 사실을 들어본 일이 없답니 다. 그런 그들이 한 사람씩 주님께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도자로 키워지고 있습니다. 수만의 일꾼이 훈 련을 받고 돌아가서 하나님 나라의 모퉁이돌로 1,822개의 지하교회로 든든히 세워지고 있습니다.

이들을 위한 모퉁이돌의 일이 35년간의 긴 세월이었습니다. 조선족과 고려인들이 여기에 동참했습니다. 한국 교회는 조선족이나 고려인을 돕는 역할 정도로 생각했 습니다.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북한의 회복을 위해 쓰임 받고 있었습니다.



이제 할 일은 무엇일까요? 숨어서 조용히 일할 선교사 들을 키워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올바른 신앙생활과 기도생활을 회복 하는 일도 겸해야 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하나님! 그 의 나라와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할 일꾼을 찾습니다. 그리고 이 땅과 저 땅에서 준비되도록 삶을 영문 밖으 로 드릴 사람들, 일꾼들을 찾습니다. 기도할 땅굴을 파 내어 함께 기도하려고 합니다. 북한 땅을 품어 안고 지 내 온 지난날의 기도가 대를 이어가도록 그래서 북한 땅 이 준비되도록 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 건설에는 희생이 따릅니 다. 재정으로 인한 아픔이 있고 자녀들로 인한 고통이 있습니다. 배신당하는 일도 감수해야 합니다. 감시와 제 한당하는 일이 계속됩니다.

끌려가서 매를 맞고 고문을 받았습니다. 1991년도에 그 어려운 과정을 당하고 나서 두세 달 후에야 기억이 회 복됐습니다. 그러나 그 땅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100 번도 넘게 그 땅 다른 지역에서 사역했습니다. 함께할 일꾼들을 키워서 보냈습니다. 어렵다고 중단할 일이 아 니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쫓기면 도망하고 다시 돌아와서 편지를 쓰 고 사람을 키웠습니다. 여전히 하나님 나라의 일을 진행 했습니다. 한 자리에서 밀려나면 다른 곳에서! 지금 코 로나로 일이 중단되지 않고 확장되었습니다. 여전히 북한 을 포기하지 않고 방법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북한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기 위 해 어떤 부분을 감당해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기도 할 수 있으십니까? 성경이나 라디오나 전화기를 밀수할 수 있으실까요? 말씀을 가르칠 수 있으신가요? 여행이 가능하신가요? 안 된다고요? 그럼 이웃에게 하나님 나 라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권고할 수는 있으시지요? 성 경 한 권 살 돈은 있다고요? 선교사님 신발 하나 안경 하나 사 드릴 수는 있다고요? 북한 사역을 위해서 ‘제 게 할 일 좀 맡겨 주세요’ 라는 분이 있을까요? 이런 분 들의 헌신이 모아지고 누룩이 되어서 북한 땅을 변화시 킬 것입니다.


북한 땅을 준비시켜 주어야 합니다.

북한 땅에 말씀을 받아들일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 일에 당신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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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콩 한 쪽을 나누는 성도가 북녘의 감옥에 있습니다!

중국에 머물고 있는 북한인들이 있습니다.
밀수하러 중국으로 넘어왔다가 코로나로 인해 북한에 돌아가지못한 이들입니다.
인신매매로 중국에 팔려온 이들입니다.
팔려온 이들의 버림받은 고아들입니다.
중국에 머물고는 있으나 도움이 필요한 이들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태복음 22:37~40)


이웃!
바로 그 이웃이 중국 대륙에서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겨울이 가까워오면서 추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역 현장으로 간 선교사들이 그 어려움을 알려 오고 있습니다.
저희는 수많은 북한 고아들과 과부들을 돕고 있었습니다.
대륙에 머물러 있지만 신분증이 없어 숨어야 하는 탈북 동포들입니다.
모두가 우리의 이웃입니다.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병을 고치신 주님의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음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고아와 과부를 도우라 말씀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우리를 향해 “너희는 거룩하라” 하시는 그 음성을 거부하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야고보서 1:27)


거룩하십니까?
경건하십니까?
성탄절이 가깝습니다.
연말 연초가 다가옵니다.
지금은 너나 할 것 없이 코로나로 인해 어려운 상황입니다.
세계 경제가 얼어붙었습니다.
그러나 대륙에서 방황하고, 북한 땅 안에서 병들고 지치고 굶어 죽어 가는 이웃이 있습니다.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며 옆의 죄수에게 콩 한 개를 쪼개서 나누는 북녘의 성도가 감옥에 있습니다.
매를 맞으면서 죽임을 당하면서도 여전히 미워하지 않고 축복하는 이들입니다.
선교사에게 배운 대로 성경이 가르친 대로 행하겠다는 주의 백성들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이다’ 노래하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이웃입니다.


고난의 행군보다 더 심각하고 어려운 상황입니다.
어쩌지요?
못 들은 척 외면할까요?
그들을 일으켜 세워주어야 합니다.
한 켤레의 양말이 한 조각의 빵이 저들에게 주어져야 합니다.


추수가 끝난 강화훈련원 앞의 논 건너편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 논에서 추수된 쌀이 북한 전체의 30%라고 합니다.
저 쌀은 평양으로 보내려 누군가를 살지게 하겠지요?
하지만 제 눈에는 압록강변과 두만강변의 성도들이 보입니다.
여러분과 저의 이웃 말입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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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최고로 잘한 일이었어!

“내가 잘한 일이었는지 모르겠다. 너희들도 엄마도 고생 꽤나 했는데… 선교지로 떠나고 경제적으로도 많이 어려웠고….”
“아빠! 모퉁이돌선교회를 시작하고 지금까지 달려온 건 아빠가 최고로 잘한 일이었어! 우리도 어려운 게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제는 그것이 복된 일임을 알게 됐어요. 엄지 척!”
아이들한테나 아내한테나 미안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이들은 아빠의 행동을 보람 있는 일로 생각해 주었습니다.


“목사님! OO자매가 헌금을 $10,000불 보내왔어요.”
사무실에서 온 카톡을 읽는 순간 마음이 찡해 왔습니다. 아내더러 이야기를 하니 “여보, 그 자매가 옷도 별로 안 사 입고, 화장도 별로 안 하곤 했는데… 그 돈 아껴서 헌금을 했네.” 합니다.
“그래, 고등학교 다닐 때 가르친 학생인데 이제는
50이 넘었어.”
“여보, 그 학생들 가르칠 때 당신이 지나치게 몰아붙이곤 했는데, 그 학생들 모두 잘돼서 신앙 생활을 잘하니… 잘한 일이었네!”
“북한어로 성경을 번역해요? 돈이 많이 들 텐데…”
“해야지요. 이런 기회가 아무에게나 주어지겠어요?”
“중국어로 톰슨 성경을 번역한다고요? 그 방대한 작업을….”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 하셨으니, 영혼 구하는 데 쓰임받는 일이라면 해야지요.”


“베들레헴에서 우리말 방송을 하려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해야지요. 하고 말고요. 한 영혼이 도전받아 새 삶을 살아가야 한다면!”
“목사님, 지금 북한 방송하는 것도 벅찬 걸요.”
“벅차도 해야지요.”


“어쩌다 모퉁이돌에서 일하게 됐어요?”
“성경이 필요한데 아무데서도 안 주더군요. 그런데 모퉁이돌에서 중국어 성경과 조선족을 위한 성경을 얼마든지 가져 가래요. 이런 데가 다 있나 싶었죠. 그게 인연이 돼서 지금까지 일해요.”
그 선교사의 눈이 시뻘겋게 되더니 그만 눈물이 흐릅니다.


홍콩의 한 책방에 들어갔습니다.
중국말을 몰라 두리번거리는 저를 책방 직원이 보고 있었나 봅니다.
“무슨 책을 얼마나요?”
“이거 두 박스 혹은 네 박스 정도…”.
“어디다 쓰시려고요?”
“중국에 가져다 주려고요.”
직원은 제게 돈을 받지 않고 네 박스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박스를 길에까지 들고 나와 택시에 실어 주며 택시비도 지불해 주었습니다. 그 책은 현재 중국 지도자 중 한 명인 김 모 목사에게 전달됐습니다.


“목사님! 중국에서 절판된 책을 한 번 찍었으면 하는데요.”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돈을 주시면 갖다 드릴께요.”
서울로 돌아온 저에게 사무실에서 2만 불을 넘겨 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분이 급하게 헌금하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셔서 보냈대요. 바로 북경으로 가세요. 이것 가지고.”
지금도 그때도 큰 금액이었습니다. 책을 인쇄하고 보급했지만 몇몇 분들이 신학교에서 쫓겨났습니다.
“한 영혼이라도 구원받았으면 됐지요.”
쫓겨난 교수님의 말입니다. 은혜일 뿐입니다.


35년이 긴 세월이라면 긴 세월인데, 매도 맞았고 고문도 당했지만 아직도 멀쩡하게 걸어 다닙니다. 두 딸도 신앙 생활 잘하고 아내도 건강합니다. 쫓겨 다니고 감시당하는 세월 동안 하나님이 이 길을 가게 해 주셨습니다. 선교 현장에서 내미는 손을 외면할 수가 없어서 이 길을 걸어 왔을 뿐입니다.
성경 한 권. 저는 그것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배달하기 시작했습니다. 선교회 성경 배달이 중국어 성경, 몽골 성경, 러시아 성경, 북한어 성경 번역 및 인쇄, 이스라엘과 이란으로의 『메시야』 만화 성경 배달로 이어졌습니다. 한 권의 성경이 한 영혼을 살립니다. 아니, 열 명 혹은 백 명의 영혼을 살린다면 안 하시겠습니까?


“고등학생 하나가… 도전 받더니 24년째 이란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 간증을 들으면서 구워 준 양고기를 못 먹고 울어 버렸습니다. 한 사람과의 만남이 이토록….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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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수십 년을 예배당 없이 살지 않았갔소!


이번 주일에 예배당에 가지 못했습니다.
코로나 사태를 핑계로 교회 모임을 제한했기 때문입니다.



“우린 몇십 년 동안 예배당에 가지 못했습니다.
예배당에 가지 못하고 길을 걸으면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만 합니다.
음악 없이 주님을 찬양합니다.
십자가에 아들을 못 박아 죽여야 했던 그 하나님을 높이는 마음만 올려 드립니다.
성경을 옆에 끼고 예배당을 갔다는 할머니의 옛 이야기는 뇌리에서 서서히 사라져 갑니다.
할아버지가 ‘예배당 한 번 못 가 보고 죽는구나’라고 하시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그러나 그것도 이젠 희미해진 옛날 이야기일 뿐입니다.
꼭 쓰고 다니시던 모자를 저에게 주시면서 ‘이게 내가 줄 유일한 선물이구나!’ 하셨습니다.
‘이 케케묵은 냄새 나는 모자가 뭘 그리!’ 하고 내팽개쳤습니다.
그러다 뭘까 생각하고는 모자 안을 들여다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비닐 종이에 쌓인 글귀가 보였습니다.
성경 말씀을 손으로 쓴 것이었습니다.
무서워서 감추어 두었더랬는데 지금은 어디에 두었는지 잊고 말았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주일에 가 보지 못해 안쓰러워 하시던 그 예배당.
잊혀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목사님… 그 손 좀…
예배당에 가서 기도할 때 모으던 그 손 좀 만져 보자요!
축도할 때 들었던 그 손 좀 만져 보자요!
그 눈, 하늘을 향하여 쳐다보며 우시던, 그 눈 좀 보자요!
우린 예배당 없이 살지 않았갔소!”

예배당 문고리를 사진으로라도 찍어다 달라던, 아주 조그만 목소리로 말씀하시던 그분들은 다 떠났습니다. 이젠 노인이 된 내가 그들이 가 보지 못한 예배당을 지어 볼 수 있겠는지….

강화도에 북한을 바라보며 세워진 한 교회의 목사님이 종탑을 수리해야 한다며 카톡을 보내 오셨습니다. 마음이 찡해져서 수리하는 종탑을 보러 갑니다. 예배당의 종탑. 청소년 시절 목사의 아들이었던 저는 예배당의 종을 치고는 했는데….

그 예배당에 저는 가지 못했습니다. 공산당 때문에가 아니고 코로나 때문에 아내와 함께 길고 긴 기도를 주일, 숙소에서 드려야 했습니다. 헌금은 방문하신 이웃 목사님께 드렸습니다. 그러고는 건너다 보이는 북한 땅을 향해 걷고 또 걷습니다. 주일 예배당에 가지 못한 저는 마음에 그리면서 하나님께 아룁니다.

“주일인데 예배당에 못 갔습니다. 성도들이 모이지도 못했습니다. 저 북한 땅의 성도들은 몇십 년째 예배당에 못 갔대요. 목사님을 본 적이 없어 제 얼굴을 쓰다듬던 그 할머니는 주님 앞에 계시겠지요?”

북한 땅을 바라보며 벼가 익어가는 논을 한 바퀴 돌며 또 아룁니다.

“하나님, 예배당에 못 갔어요. 그래서 성도들을 못 봤어요. 할머니들의 찬송 소리도 못 들었고요. 목사님 설교도 못 들었어요. 헌금은 그냥 목사님께 드렸어요. 목사님이 축도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어요. 아무도 없겠지만 오늘 예배당에 살짝 가서 그냥 앉아 있다 돌아올게요. 하나님, 나는 예배당에를 갈 수 있지만 저 건너편에는 예배당이 없어진 지 수십 년이에요. 회복하실 날이 언제예요?”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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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그들을 기억하며 기도할 것이다!

1980년 여름이었다. LA 북쪽의 한 수양관에서 일어난 일이다.
나는 전교인 산상수련회에서 중고등부를 맡고 있었다. 예배를 인도하던 중 43명의 학생에게 강력한 성령의 불이 임했다. 42명이 회개하고 방언과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 두 시간이 지나 나는 교사 한 분에게 맡겨놓고 쉬러 갔다. 지쳤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두세 시간이 지났을까, 아이들을 진정시켜 달라는 말을 듣고 수련회 본당으로 향했다. 아이들은 여전히 뜨거운 성령에 의해 회개하며 기도하는 중이었다. 다음날 오후 나머지 한 명도 성령을 체험했다. 모두 43명이었다. 교회는 학생들의 성령 체험을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나는 교회를 떠나야 했다. 내가 한 것도 아니었는데… 5년 동안 학생들을 보살필 수 있었던 것이 은혜였을 뿐이었다. 교회를 사임하고 나는 얼마 후 모퉁이돌선교회를 시작했다.


그때 은혜 받은 젊은이들이 이제는 중년에 들어선 지 오래되었다. 1960~1963생들이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그들을 잊고 있었다. 내게 주어진 모퉁이돌 사역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늘 새벽, 43명의 학생들을 이끌고 부흥의 불길을 경험하는 꿈을 꿨다. 1980년 그때 그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까? 그 이후 나는 그 학생들을 위해 무엇을 해 왔나? 나는 그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하지 못했다.
이제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그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어떤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그들로 기억나게 하사 바른 길을 가고 있지 못하다면 되돌아서게 하옵소서.”라고.
1985년부터 나의 간증과 설교를 들은 성도들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이 어려운 시기를 북한의 백성들과 함께 지나가게 할 수는 없었을까? 그렇게 가르치지 못한 내 잘못을 기억하며 회개하고 기도하게 하셨다.


“목사님! 제 아들이 훈련을 마치고 지금 금강산이 보이는 부대에 편성되었어요. 제가 고등학교 시절 목사님께 도전을 받고 OO지역에서 24년 동안 선교사로 사역하는 중인데 이제 제 아들이 북한을 보며 믿음을 키워가도록 기도해 주세요.”

오늘 새벽에 들어온 카톡이다. 믿음의 대를 이어가는 그 청년을 기억하며 기도할 것이다. 그리고 43명을 기억하며 기도할 것이다. 1985년부터 지금까지 도전받은 전국의 성도들을 위해 기도할 것이다. 내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그 열매들이 전국에서 홀연히 일어나 북한 성도들을 위해 함께 울고 기도하며 배고픈 자들을 위해 자기 그릇을 내 놓는 성도들이 되도록 기도한다. 저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할 성도들이 아무런 두려움 없이, 아낌없이, 일어나도록…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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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복음의 밀수꾼이 빛을 드러내야 합니다!

낮에는 불을 켜지 않습니다. 빛이 필요치 않기 때문입니다.
어두움이 오면 불을 켜야만 다닐 수 있습니다.
35년 모퉁이돌 사역은 어둠 속에서 이뤄지고는 했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어두운 밤에만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어둡지 않았더라면 사역을 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밤이면 민들레 사역이 이뤄지고는 했습니다. 성경 배달은 감시하는 공안원들이 잠을 자는 밤에만 가능했습니다. 그런 어두운 시간에 우리는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겨울엔 밤이 길었습니다. 눈이 쌓이고 얼음이 얼기에 힘들었지만, 오히려 밤이어서 안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밤에, 빛이신 하나님은 우리로 일하게 하셨습니다.
세상은 점점 더 깊은 밤이 되어갑니다. 분명 이 어두움은 전염병으로 인해 더욱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이런 어두움 속에서 우리는 일하게 됩니다. 어둡기 때문에 가능하고, 어두움이 오히려 방법을 찾는 기회로 선용됩니다. 그 세월을 35년을 보냈습니다.


남들이 쉬는 밤에 일하고는 했습니다.
지금이 일할 때입니다. 세상이 어둡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밀수꾼은 어두운 지금을 기다립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잠든 시간이 우리에게는 기회입니다.
저의 첫 성경 배달은 상해에서 이뤄졌습니다. 다음 성경은 어두운 밤 하얼빈에서 배달되었습니다.
강을 건너 북으로 들어가는 성경도 어김없이 밤에 운반되었습니다.
중국의 믿음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어쩔 수 없이 밤에 이뤄지고는 했습니다.
평양에서는 낮에 성경을 배달했습니다. 평양은 밤 시간에 이동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경우 밤을 틈타 행동해야 안전했습니다.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어두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알아내야 합니다. 이럴 때 빛의 일을 해야 합니다.
경제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어려운 상황에서 일하고는 했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말씀이십니다. 말씀은 성경입니다. 그 말씀이 밤에 배달되게 하셨습니다.
중국이 어두웠습니다. 북한은 깜깜했습니다. 그곳에 하나님이 당신의 빛을 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저는 그 빛을 전하기 위해 보냄 받았습니다.
그 빛은 밤이기에 더욱 빛나고는 했습니다. 그 빛은 생명이었습니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일깨웠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했습니다.


이 밤에, 전염병이 창궐한 이 밤에,
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이가 여러분과 저를 빛을 발하라고 보내셨습니다.
어둡지요?
빛의 사람들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하나님이 빛으로 밝히라고 보내셨습니다. 어둡기에 빛이 드러납니다.
북한 땅이 어둡습니다. 빛을 드러내기를 원하십니다.
말씀으로…


지금 이렇게 어둡기에 빛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바로 이 시간에, 세상 어두움의 세력은 빛을 막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빛은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말씀은 빛입니다. 성경 말씀으로 빛을 발합니다. 방송으로 빛을 전합니다.
작은 불꽃 하나가 세상을 태웁니다.
어디 계세요? 무엇을 갖고 계세요?
그것으로, 그곳에서, 빛을 드러낼 수는 없을까요? 저는 35년을 그 빛을 발하기 위해 이끌려 왔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빛이십니까? 빛의 자녀이십니까?
빛을 드러내셔야 합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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