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콤 특집1] 성경 배달, 하나님 언약궤를 배달하는 사역 (2024.6)

“어제 갖다 놓은 성경이 모두 배달되었습니다.”
“벌써요? 그 많은 성경을 어떻게 다 배달했어요?”
“○○ 지역에서 오신 사역자 50명이 모임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가면서 다 들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벌써부터 추가 요청이 줄을 잇습니다. 여기저기서 성경이 필요하다는 연락이 계속 들어옵니다.”
선교사는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우리 일행에게 보여주며 성경책을 요청하는 문자들을 가리켰습니다. 교회명, 목회자 이름, 전화번호, 주소 등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전화가 울렸습니다.
“성경이 필요한 사람들의 명단을 정리 중에 있는데, 우선 급한대로 20박스를 먼저 주실 수 있습니까?
어제 주신 중국어 성경 2천여 권은 국경 너머 ㅇㅇ 지역 교회들에 전달됐습니다.”
불과 하루 사이에 성경이 보내졌다는 소식에 선교사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많은 성경을 한 권도 남김없이 소진했다니 제가 다 감격스럽습니다. 내일 바로 갖다 드리겠습니다. 원하는 만큼 드릴 테니 대신 요청하는 교회 정보와 권 수를 빠짐없이 저에게 알려 주십시오.”
선교사는 다음날 사역 일정이 꽉 찼음에도 시간을 쪼개 성경 배달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즉, 하나님을 배달하는 영광스러운 사역에 참여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선교사의 휴대폰이 다시 울렸습니다. 바닷가에 밀물이 밀려오듯 성경을 보내 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음을 보며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 거기서 중국어 성경을 주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며칠 후 고향에 가는데 혹시 몇 권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저희 집은 ○○ 지역에서도 산이 높고 골이 깊은 동네에 있습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버스도 다니지 않는 궁벽한 산촌입니다. 자주 갈 수 없는 곳이라 여러 가지 물건을 챙기고 있는데 설령 쌀을 덜어 내더라도 성경만은 꼭 가져 가서 부모님과 친지분들께 선물하고 싶습니다.”
생명의 양식을 육신의 양식보다 우선시하여, 가족과 친척이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바라는 애틋한 마음이 전해졌습니다.

우리는 곧바로 성경 포장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몸을 바쁘게 움직여 일하는 동안 더 많은 성경을 배달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세밀하게 인도하시고, 꼬리에 꼬리를 물 듯 성경 배달의 수문을 활짝 열어 주시는 것이 그저 감사하고 기뻤습니다.

다음날 우리는 선교사와 함께 성경을 차에 잔뜩 싣고 길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이시고, 성경책을 넣은 상자가 언약궤와 다를 바 없기에, 언약궤를 운반하는 심정으로 일꾼은 구불구불 난 도로를 4시간 이상 조심스레 운전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어제 선교사와 통화한 현지 사역자가 문 앞에 나와 있었습니다.
“이렇게 한걸음에 달려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지역 전도사님들과 성경 공부를 하면서 그곳에 성경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두세 명이 한 권을 나눠 보는 상황이라더군요. 안타까워만 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선생님을 보내셔서 많은 성경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앞으로도 선생님을 통해 ○○ 지역 교회들에 성경이 꾸준히 보급될 것을 생각하니 너무 기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목마른 ○○ 지역 성도들에게 성경책이 보내져 가뭄에 단비가 되었다는 현지 사역자의 말은 우리 일행에게 큰 기쁨과 보람과 격려가 되었습니다.

“성경을 받으신 전도사님 중 한 분은 본인 친척이 수십 년 전에 중국어 성경을 배달하다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순교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누구보다 성경 배달의 귀중함을 잘 안다고, 값진 하나님의 말씀을 배달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연거푸 하셨습니다. 그분을 보면서 성경 배달 사역에 동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에게 성경을 공급해 주시면 ○○ 지역과 인접한 국경까지 배달하겠습니다. 국경부터는 ○○ 지역의 전도사가 맡아서 감당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놀라운 방법으로 필요한 성도들에게 보내지고 있음을 직접 보고 확인했습니다. 마치 구슬이 꿰어지듯 하나하나 맞춰지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경이로웠습니다. 성경을 달라는 현지 전도사의 요청에 ‘직접 원하는 곳까지’ 배달해 주라는 성령의 감동을 지체함 없이 순종한 발걸음이 ○○ 지역 교회들과 연결하고, 현장 배달 사역자들과 함께할 수 있는 기회로 이끄신 완전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성경 배달은 하나님이 직접 길을 열어 가시는 하나님의 사역임을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 지역으로의 성경 배달이 본격화되려면 아직 준비할 것들이 많습니다. 더 많은 성경과 신실하고 충성된 더 많은 현지 일꾼이 세워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풀어지고 해결될 것을 믿기에 감사함으로 기도합니다.
이번 성경 배달이 신호탄이 되어 성경 배달이 더욱 활발히 일어나고 놀라운 구원의 열매로 맺혀 하나님의 나라가 평양에서 예루살렘까지 충만하기를 소망합니다.

성경이 더 많이 준비되어 신속히 보낼 수 있게 하옵소서!
“북한어 성경이 필요하니 보내주십시오.”
“중국어 주석성경과 일반 성경이 필요하니 보내주십시오.”
“어린이들이 많습니다. 만화 성경을 보내주십시오.”
“아랍어 성경 천 권을 인쇄해 배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로 성경을 보내주십시오.”
선교 현장의 일꾼들이 보내오는 계속된 요청입니다.
성경이 준비되어 신속하게 보내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성경을 배달할 신실한 일꾼들이 준비되게 하옵소서!
“추수할 영혼들이 희어져 가득한데 일꾼들이 없습니다.
현지 언어가 가능한 선교사가 있으면 훨씬 더 많은 성경을 배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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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 특집2] 94개 마을이 예수님께로 나아왔습니다! (2024.6)

꼼짝없이 자리에 누워 있기를 4일째, 아버지는 여전히 약을 구하러 백방으로 다니셨습니다. 그러나 뾰족한 수가 있을 리 만무했습니다. 빈 손으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시던 아버지의 눈에 마을 입구를 서성이는 웬 낯선 남자가 들어왔습니다.
“저희 마을에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혹시 의사이십니까?”
아버지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남자에게 물었습니다.
“네. 저는 예수님의 의사입니다.”
아버지는 두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토록 찾던 의사가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었습니다.
“뭐라고요? 정말이십니까? 예수님이 누구신지는 모르지만 분명 훌륭한 분일 겁니다. 선생님, 지금 제 아들이 죽어갑니다. 부디 오셔서 제 아들을 살려주십시오.”
아버지는 간청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그분을 모시고 집에 오셨을 때 저는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숨도 못 쉬고 맥박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몸만은 차가워지지 않고 따뜻했습니다. 그분은 저를 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아드님을 치료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도우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려면 여기 있는 분들이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믿으시겠습니까?”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장례식을 준비하던 친척들이 일제히 믿겠노라고 앞다투어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기도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오른손으로 제 손을 잡고 왼손으로는 제 발을 잡고 5~10분 가량 기도했는데, 말을 하거나 움직일 수 없었음에도 그분이 저를 잡고 기도하는 것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제 상황을 보다 정확하게 묘사하자면, 저는 이미 호흡이 끊어졌고, 제 영은 몸을 빠져나가 위에서 저를 보는 동시에 어떤 존재를 만났습니다. 그 존재는 저에게 너는 아직 여기 올 시간이 안 되었고 이 길은 네가 갈 길이 아니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많은 사람이 너를 필요로 하니 돌아가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곳이 어디었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그 존재와의 대화가 끝나고 저는 살아났습니다.
제가 눈을 뜨고 말을 하자,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았던 제가 일어나 움직이는 걸 본 마을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신 분도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그분은 저를 물끄러미 보시더니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너를 살리셨구나. 너는 이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저는 예수님을 믿을 거예요. 예수님을 따르고 전할 거예요. 저는 예수님의 일을 할 거예요.”
저는 그분과 마을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사실, 그분은 복음 전도자로 저희 마을을 돌아다니며 전도하고 계셨는데 아무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거의 4일간 죽었던 제가 다시 살아나자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기적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제 이야기가 마을에서 마을로 퍼지면서 수많은 이웃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나아왔습니다.

은혜의 파동이 주변으로 번져가고 있을 때 경찰이 나타났습니다. 저희 나라는 기독교를 박해합니다. 경찰은 아버지를 포함해서 마을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예수를 안 믿겠다는 사인을 하지 않으면 감옥에 가두겠다고 협박했습니다.
“하나님이 제 아들을 살리셨습니다. 나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을 배신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는 끝까지 믿음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희 가족을 뺀 마을 사람 전부가 경찰의 탄압과 회유에 굴복했고, 아버지와 할아버지만 경찰서에 끌려갔습니다. 경찰은 예수를 믿지 않겠다는 서류에 사인을 하면 바로 풀어주겠다고 집요하게 설득했지만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타협하지 않으셨고 1년 후에 옥사하셨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어머니는 아들을 살려 주신 하나님을 향한 감사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와 저는 정말 어렵게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온갖 일을 겪으며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텼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아버지가 생전에 해 주신 말을 떠올리며 되새겼습니다.

저는 다니던 직장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일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저희 마을에 와서 복음을 전해준 전도자처럼 산에 흩어진 마을들을 다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주셔서 산에 사는 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지금까지 94개 산골에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저를 중국어 성경을 배달하는 길로 이끄셨습니다. 끝없는 핍박과 어려움이 따르지만 죽을 병에서 저를 건지신 하나님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저의 생명을 다해 끝까지 달려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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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 특집 1] 하나님을 바라며 기도하는 우리에게 북한을 주소서 (2024. 5)

북한으로 가는 첫 번째 여행이 긴장과 동경, 기대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단동을 거쳐 신의주로 들어가 북측 입국심사소 앞에 서니, 1980년대 소련 군복 비슷한 옷을 걸치고 북한 지도자의 얼굴이 새겨진 배지를 가슴에 착용한 직원들이 우리를 맞았습니다.
신의주 일정에는 유치원 아이들의 공연을 관람하는 시간이 포함되었습니다. 공연은 제가 예상한 것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완전히 전문적이었고, 아이들이 보여준 특기는 그들의 나이에 맞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입학한 지 채 한 달도 안 된 유치원 아이들이 이런 공연을 하기 위해서 어떤 훈련을 받았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다운 천진난만한 미소와 순수한 눈빛을 잃어버리고 똑같은 표정, 똑같은 눈빛, 똑같은 미소, 똑같은 몸짓을 하는 꼭두각시들 같았습니다.

공연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작은 첩보병’이라는 촌극이었습니다. 네 명의 조선 첩보병과 한 명의 미국인, 한 명의 일본인이 나왔는데, 미국인은 족제비 미행 복장을 하고, 일본인은 개 복장으로 무대에 등장했습니다. 그 어린 마음에 이미 교육을 통해 증오심의 씨앗이 뿌리내려 있었습니다.
북한은 우상 숭배를 강요할 뿐만 아니라 문화, 사상, 가치관까지 통제했습니다. 순수하고 밝아야 할 아이들이 특수부대원 같은 표정과 눈빛을 한 걸 보면서, 이런 교육을 받는 아이들을 하나님께서 변화시키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일으켜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은 북한 당국에 의해 배치된 사람들이었는데 어떤 결핍도 느끼지 못하는 듯했습니다. 오히려 강한 행복감을 표출하는 것을 보며 도리어 마음이 아팠습니다. 환자는 고통을 느낄 때 의사에게 도움을 구합니다. 그러나 궁핍하고 무력한 북한 주민은 부족함이 없다고 세뇌당한 모습이었습니다. 거짓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눈을 열어 주시고 수령을 숭배하는 사상에 물든 모든 주민이 어린아이로부터 시작되어 하나님의 아름다운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모습으로 회복되어 하나님을 높이고 예배하는 백성이 되기를 간구하였습니다.
하루 일정으로 북한 기도 여행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동일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기도하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3박4일의 기도여행을 준비했습니다.

신의주를 당일치기로 다녀온 이후, 북한 사람을 더 가까이에서 접촉하고 북한 땅을 더 선명하게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평양을 가보기로 했습니다. 단동에 있는 여행사에 막상 평양 여행을 신청하고 나니 입국 승인이 날 수 있을지, 무사히 평양 땅을 밟을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렇지만 주권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결심하고, 주님께서 주시는 것은 무엇이든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하나님이 행하실 일들이 기대되었습니다. 문득 북한이 건너다 보이는 단동에서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변은 관광객으로 붐비지 않았습니다. 대신 북한과 중국을 오가는 화물차들이 한 대씩 다리를 건너가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때 저는 다리를 통해 운송되는 것이 단지 그 땅 사람들의 육체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는 물자뿐만이 아니라, 그곳 영혼을 살찌우는 생명의 양식이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했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여행 허가가 나왔습니다. 단동을 떠나 신의주 국경에서 보안 검사를 받았습니다. 2시간 30분 동안 세면도구를 포함한 모든 여행 물품을 하나하나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검사가 진행되는 동안 승객들은 자리에 착석해 있어야 했습니다. 기차에서 내리거나 객차 내에서 이동할 수 없었는데 일반적인 보안 검색임에도 긴장된 분위기가 승객들을 감쌌습니다.


북한을 여행하는 승객들은 예전의 중국을 추억하며 그 시절을 다시 느끼고 싶어하는 중년층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호기심 많은 젊은 사람들이 섞여 있었는데, 대학원 진학을 앞둔 한 청년과 잠깐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는 북한을 여행하는 이유에 대해 이 나라가 언제 망할지 모르니 빨리 보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기차를 타고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는 사람들의 마음과 시선이 무척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과 여기에 사는 사람들을 어떤 눈, 어떤 마음가짐으로 바라보고 계실지가 궁금했습니다.

드디어 검색이 끝나고 기차가 출발했습니다. 창밖으로 간간이 몸을 굽혀 바쁘게 일하는 농부들과 쟁기를 끌며 밭을 가는 소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기차는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며 멈췄다가 다시 출발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지나가는 역마다 상징적인 흰색 건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건물 중앙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화가 붙어 있고, 초상화 양쪽으로 ‘위대한 수령님’이라는 찬양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높게 솟은 영생탑과 김일성의 초상화, 김일성을 찬양하는 슬로건들은 평양 시내 곳곳에서도 발견되었습니다. 평양에서 가장 활기찬 곳, 저녁 10시 이후에 불빛이 빛나지 않는 평양 거리에서 유일하게 밝은 곳은 바로 이런 곳 주변이었습니다. 여행객들은 사진을 지정된 장소와 시간에만 찍을 수 있었습니다. 규정을 조금이라도 어기면 북한 측 안내원이 주저없이 카메라를 빼앗아 사진을 삭제해 버렸습니다.
평양에서 보낸 며칠은 자유가 없고 김일성을 숭배하는 분위기가 더해져 압박감이 심했습니다. 그곳 사람들을 보는 제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하나님이 없어 사망의 그늘에 앉아 있는 그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간구했습니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는 성경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들이 좇아가는 길은 결코 행복이나 만족을 주지 못함을 그들이 알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에게 의로운 해가 떠오르게 해서 치료의 광선을 발하게 하는 분이시기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있는 그들에게 빛을 비추어 하나님의 큰 빛을 보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저들의 모습은 저의 옛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저도 그들과 다를 바 없이 죄악 속에서 죽어 갔을 것입니다. 여행 중에 북한 사람들과 직접적인 대화를 하지는 못했지만, 그 땅 사람들의 공허함이 깊이 전해졌고 그들의 표정과 행동에서 혼란함과 불확실함이 묻어났습니다.
그들은 입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자랑했습니다. 주택이나 교육, 의료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인데 주택이 무료여도 나눠줄 집이 충분치가 않고, 모든 사람이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의약품 역시 턱없이 부족한 상황인데도 말입니다.

평양을 다녀오고 나니 그 땅과 더 가까워진 것을 느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얼마나 간절히 열망하고 계신지, 또 중국 교회로 왜 기도하게 하시는지를 깨닫고 돌아서는 시간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2020년 코로나 상황이 발생하자 바로 북한 국경이 봉쇄돼 북한에 들어가는 기도 사역이 막혔습니다. 최근 북한 여행이 가능해졌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다시 중국 성도들이 북한에 들어가 북한에 하나님의 나라가 충만하도록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과거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북한이 회복되기까지 그 땅을 밟으며 주님의 사랑으로 기도하고, 성경을 배달하고 구제하는 선교를 충성되게 감당하도록 여러분도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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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 특집 2] 북한, 길 위에서 드려진 예배 (2024. 5)

“이틀 동안 쉬지 않고 안내하다 보니까 제가 목이 좋지 않습니다. 내일은 이동 중에 버스 안에서 노래를 하든지 이야기를 나누든지 자유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북측 안내원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우리 일행은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금요일부터 시작된 북한 여행 둘째 날 오후, 관광객인 우리더러 다음날 무엇을 할지 결정하라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습니다. 속사정은 알 수 없지만 그동안 그들의 눈치를 보느라 마음껏 소리 높여 기도하고 찬양할 수 없었던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절호의 기회를 버스 안에서 예배하기로 했습니다. 마침 그날은 주일이기도 했습니다.

셩밍 디 허 씨러 디 허 (생명의 강 기쁨의 강)
환환 류진 워 디 씬워 (내 마음에 잔잔히 흐르네)
워 야오 창 나 이 쇼우 거 (나 그 노래를 부를 때)
창 이 쇼우 티엔 샹 디 거 (하늘 노래를 부를 때)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관광버스에서 중국어 찬양이 흘러나왔습니다. 하나님이나 기독교를 암시하는 직접적인 단어는 가사에 없지만, 분명 하나님의 은혜를 되새기는 찬양이었습니다. 여행 3일 차에 접어든 우리 일행은 북한 한복판에서 하나님을 소리 높여 예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자, 다음 노래는 제 뒷자리에 앉으신 장민님에게 청해 듣겠습니다. 장민님, 마이크 받아 주세요.”
가벼운 어깨춤을 곁들이며 좌중과 함께 경쾌하게 찬양한 첫 번째 예배자가 두 번째 사람을 지목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일요일은 저에게 특별한 날입니다. 왜냐하면 저희 가족이 매주 일요일 오후에 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오늘 저희 가족 생각이 많이 나네요.
그중에서도 특별히 남편이 무척이나 보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그러신가요? 우리 ‘그 이름’을 남편으로 생각하며 노래합시다. 저는 ‘구름 위의 태양’이란 곡을 부르겠습니다. 아시는 분은 함께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북한 보위원, 안내원의 감시 때문에 ‘가족’, ‘남편’, ‘그 이름’이란 단어로 두루뭉술하게 표현했지만 그것이 무엇이며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명확했습니다. 일요일 오후마다 모이는 가정교회, 그래서 지금도 모이고 있을 교회 성도들이 그립다는 것과 하나님의 임재를 깊이 갈망하며 하나님의 성호를 높이고 싶다는 의미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단번에 알아차렸습니다. ‘구름 위의 태양’인 ‘그 이름’을 장민 형제가 노래했습니다.

아름다운 높은 산에 살지라도
어두운 골짜기에 누울지라도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면
주님이 우릴 위해 예비하신 것이 보이네
구름 위의 태양은 절대로 변하지 않아
비록 빗줄기가 내 얼굴에 흩뿌려도
구름 위의 태양은 절대로 변하지 않아
아하, 절대 변치 않네

부드럽고 아늑한 선율에 담담하게 믿음을 고백하는 가사를 실어, 모두가 함께 찬양했습니다. 개중에 몇은 손을 들고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찬양이 지속되는 동안, 차창 밖으로 눈부신 초록이 넘실대는 논과 맑은 강이 흐르는 들판, 뜨거운 태양 아래 익어가는 강냉이 밭 등이 지나갔습니다. 여느 나라와 별다르지 않는 편안한 풍경에서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이 전해졌습니다. 세 번째로 마이크를 잡은 자매는 창조주의 은혜를 중국어로 노래했습니다.

캄캄한 밤이 이어질 때
별빛으로 당신을 그려 봅니다
당신의 은혜는 새벽 별처럼
진실로 당신을 보게 합니다
당신의 아름다움은 내 일생 찬양할 제목
내 일생 가장 아름다운 축복은
주 예수 당신을 알게 된 것
내 일생 가장 아름다운 축복은
주 예수 당신을 신뢰할 수 있는 것
험한 산과 깊은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그분은 나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이것이 내 일생 가장 아름다운 축복임을 나는 압니다

한 사람씩 나와서 찬양하고 예배하는 동안 2시간이 훌쩍 흘렀습니다. 그 사이 풍광은 푸른빛의 나무와 풀에서 회색빛의 도심 건물들로 변해 있었습니다. 시민들은 무심한 표정으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가로질렀고, 한 쪽에서는 단체 훈련 중인 듯한 학생들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눈으로, 사진으로 그 순간을 포착하며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죽어가는 이 땅 백성이 주께로 돌아오기를 간구하며 선포했습니다. 겉모습은 평범한 관광객이지만 어둠에 잠겨 고통하는 북한에 하늘의 빛이 임하도록 영적 전쟁을 치르는 군사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두 발로 딛고 선 곳이 거룩한 예배처이고, 두 손 들고 찬양하고 기도한 곳이 기도처였습니다. 우리의 발걸음과 예배를 북한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통로로 사용해 주심을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oo단체 대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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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소식] 두 렙돈을 북한 선교 헌금으로 드립니다! (2024. 5)

“<내가 매일 기쁘게> 방송에서 봤어요. 북한에서 핍박을 받으면서도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얼마나 가슴이 뜨거워졌는지 몰라요. 성경이 없어 기도하는 북한의 성도들이야말로 정말 하나님을 믿고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제 자신이 부끄러웠어요. 방송 내용을 보고 또 보면서 기도했습니다. 이거 드리려고 여기에 왔어요.”

휠체어를 타고 불편한 몸으로 오신 연로한 권사님이 가방에서 꺼낸 구겨진 헌금 봉투에는 ‘우리 아버지 고맙고 감사합니다 우리 아버지 내 아버지 부활 축하드립니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간사님, 저는 심장이 많이 아파서 움직이는 것이 힘듭니다. 그래도 꼭 만나서 전해주려고 왔어요.”

따뜻한 손길로 헌금을 건네시는 권사님은 예수님께서 가진 전부를 드렸다고 칭찬하신 과부의 모습이었습니다. 가쁜 호흡을 마다하지 않고 자신의 전부를 드린 권사님의 기도를 기뻐 받으신 하나님께서 북한의 굳게 닫힌 문을 여시고 자유케 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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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 특집] 지금도 역사하는 하나님의 복음 행전 (2024. 4)

모퉁이돌선교회는 평양에서 예루살렘까지의 지역에서 성경배달, 신학교배달, 선교사배달, 교회배달, 구제배달의 5가지 사역에 집중하며, 통일 이후의 북한 교회 재건을 위해서도 대비해 왔다. 복음을 대적하는 체제 하에 살아온 사람들을 향한 전도와 교회 개척은 실제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본회는 공산주의 체제를 경험하고 북한과 유사한 5호담당제 형태로 주민을 감시하는 인도차이나에서의 전도 훈련과 교회 개척을 통해 통일 시와 통일 이후에 활동할 일꾼들을 준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암 환자와 빈민층 전도에 많은 열매가 맺히고 있으며, 매주 40여 명이 주께로 돌아오는 놀라운 복음행전이 쓰여지고 있다.

8년 만에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C국 최남단 산간오지 지역에 8년 전, 전도팀이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방문했다. 토양이 오염되어 마실 물도, 화장실도 없는 데다가 공안의 감시와 핍박까지 심해서 교회가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다. 예수의 ‘예’자도 들어보지 못한 가난한 마을, 가는 데만 9시간 이상이 걸리는 그곳에 매주 전도팀이 찾아가 복음을 전했다. 이들의 수고와 열심으로 수개월 만에 교회를 건축하게 되었다. 그러나 8년이 지나도록 정부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아 교회는 예배를 드릴 수 없는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C국에서 교회 허가를 받으려면 종교국에 30명의 성도를 교인으로 등록한 서명 명부를 제출해야 한다. 일단 교인으로 이름을 올리면 정부가 제공하는 모든 사회보장 혜택에서 제외된다. 의료보험은 물론 공무원이나 대기업 취업, 재난 구호까지도 박탈당하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교회 건립에 30명 이상이 뜻을 모아 교회를 개척할 수 있게 되었다.

만약 종교국의 승인이 나기 전에 교회를 사용하면 건물이 철거될 위험이 있어서 성도들은 한 번도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목회자와 성도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 현실과 타협하는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했다.
그 사이 교회는 점점 폐허로 변해갔다. 건물 여러 곳이 금이 가고 깨져서 비가 오면 새고, 바닥도 푹푹 꺼졌다. 건물을 새로 지어야 할 만큼 모든 곳이 심각하게 파손되었다. 그럼에도 교회는 동네 빈민에게 식량을 공급하고 어린이들을 보호하며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적적으로 종교국의 승인이 떨어졌다. 단, 조건이 하나 붙었는데 2개월 안에 수리해서 들어가지 않으면 허가를 취소한다는 것이었다.
빠른 시일 내에 공사를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라 급하게 알아보니 수리에 필요한 비용만 2천6백만 원(미화 2만 불)이었다. 교인들이 모은 돈은 2백60만 원(미화 2천 불)에 불과했다. 

약 2천3백만 원(미화 1만 8천 불)이 부족했지만, 건축일에 종사하는 분의 도움을 받아 훗날 갚기로 하고 우선 보수부터 들어갔다.
바라볼 곳이 하나님밖에 없는 성도들은 전심으로 기도했다. 그러던 중 선교사의 고향 교회 목사님이 연락을 해 왔다. 이유인즉슨, 교회를 세우는 일에 2천만 원을 헌금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C국 시골 마을 교회 공사에 필요한 비용이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정확한 시간에 완벽하게 채우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선교사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드디어 지난 주일, 모든 공사가 완공되어 헌당예배가 드려졌다. 마치 지진을 맞은 듯했던 교회가 예쁘게 새단장을 하고 성도들을 맞았다. 교회 지붕 꼭대기에 세워진 십자가를 보는 선교사는 감개무량했다. 척박하고 복음의 불모지 같은 이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교회를 세우도록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께 눈물로 감사의 찬양을 올려드렸다.

병원에서 하루에 40명씩

예수를 영접합니다!

“전도를 나가면 한 번에 수십 명이 믿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병원 전도는 그야말로 희어진 밭이 아닐 수 없습니다.”
B국 병원 전도팀에서 전해온 놀라운 소식이다. 매주 이루어지는 전도 사역에서 하루에만 40명, 50명의 결신자가 생겨나고 있다. 지난해에는 모두 1,720명의 환자와 보호자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 병으로 인해 마음이 가난해진 사람들에게 복음이 진짜 복음으로, 주님이 진짜 구원자로 다가가고 있다.
병원 안에는 외부인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서, 전도 대원들은 병원 주변 여인숙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한다. 치료받는 기간에 지방에서 온 환자와 보호자들이 주로 그곳에 투숙하기 때문이다. 대개는 싸구려 여관을 전전하지만 그마저도 돈이 없는 사람들은 땅바닥에서 잠을 청한다.
L 선교사는 이전부터 싸구려 여관은커녕 길바닥에서 자는 환자와 보호자, 그 외 노숙자들을 위해 쉼터 겸 교회를 세우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인력, 재정 등 넘어야 하는 여러 난관이 있기에 기도만 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최근 병원 인근 교회에 대한 공안의 감시가 강화되면서 새신자들을 교회에 등록시키는 사역에 빨간 불이 켜졌다.
갑자기 많은 인원이 교회로 몰리는 상황을 이상히 여긴 공안의 주시로 주변 교회에서 이들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L 선교사에게 전달했다.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선교사는 잠이 오지 않았다. 밤새 뒤척이다가 새벽녘에 P 일꾼에게 문자를 보냈다.

‘병원 옆에 교회를 세우는 문제를 놓고 기도해 보면 좋겠어. 00이 만약 교회를 하겠다고 하면 분명히 하나님의 뜻일 테니까 아무리 거금이 들어도 어떻게든 모금을 해서 개척이 될 거야.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언제든지 들어와서 기도하고, 예배도 드리고, 마음껏 성경 공부도 하고, 목사님께 상담하고 기도도 받고, 그들을 천국으로 잘 인도해 줄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를 만드는 것이 소원이야.’
며칠 후 “저에게도 동일한 마음을 주셨습니다.”라는 회신이 왔다. L 선교사는 곧바로 암 환자와 보호자를 위한 교회 및 양육센터를 현지 일꾼이 직접 운영하는 방안과 이를 위한 적당한 장소 마련이 필요함을 나누기 위해 현지사역자들을 만났다.
아직까지 재정이나 사역자, 공안의 핍박 등 어떤 것도 해결될 기미가 없지만 최소한 야외에서 잠을 자야 하는 암 환자와 보호자들이 마음이라도 편하게 쉬면서 말씀으로 양육받는 공간을 마련해 보고자 한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가장 낮은 자들이 있는 그곳에 주님의 거룩한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선교사는 사역을 추진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들이 드리는 기도를 통해 예비한 당신의 백성이 씨앗 헌금을 드리고 헌신하는 일을 친히 이뤄가고 계신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증거라고 하신 말씀처럼 믿음의 사람들을 동원하여 두려움과 절망에 빠진 암 환자들과 가족들을 구원하고 위로하는 교회와 양육센터를 예비하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대한다.

기도와 참여

양육센터 건립을 위해

기도하고 참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암 병원 인근 교회와 양육센터, 전체를

총괄해서 책임지고 운영이 가능한 신실한 전임 사역자와 섬길 동역자들을 보내 주옵소서.

둘째, 현재 주중에 1회 진행되는 병원 전도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5일로 확대되어 수많은 영혼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복음 전하는 사역이 활발하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셋째, 예수님을 영접한 암 환자와 가족들이

지속적으로 양육 받을 교회와 센터가 마련되어 돌봄을 받고 믿음이 지속적으로 자라나게 하옵소서.  

넷째, 양육받은 환자들의 믿음이 자라나 고향에 돌아가서도 예배가 이어지게 하옵소서. 


다섯째, 금년 내로 교회와 양육센터 건물이 준

비되게 하시고 현재도 건물 사용료, 공과금 등 매달 들어가는 많은 재정을 주께서 공급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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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선교이야기] 11명의 북한인 선교사를 파송케하신 하나님 (2024. 4)

북한에서 당 간부로 일하다가 탈북해서 한국에 온 S 선교사는 지난날 자신이 그러했듯 노동당에 충성을 다하고 있는 수많은 간부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하고 있다. 김영호(가명)도 그 대상 중 한 명이다. S 선교사는 김영호와 한 달 가까이 교제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사실, 두 사람은 북한에서 이미 간부 강습회 등으로 눈인사를 한 적이 있고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같은 조직에서 근무한 적도 있어서, 속 깊은 대화를 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탈북하면서 더욱 확고히 노동당 정치에서 하나님 정치로 완전히 돌아섰네.”
중국 모처에서 김영호를 만난 S 선교사는 가족이나 자녀 문제, 먹고 사는 이야기 같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경계심을 푼 다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 자넨 어떻게 그때 탈북할 생각을 했나? 조선이 이렇게 될 걸 예상한 건가?
심각한 표정으로 김영호가 말문을 열었다.
“나한테 미래를 내다보는 식견이 있을 리가 있겠나. 그러나 나는 이 성경 때문에 하나님의 세계를 보았네.”
S 선교사가 가리킨 성경책에 김영호의 눈길이 쏠렸다.

S 선교사는 창세기 1장을 펴 놓고 복음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인간 창조를 기점으로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구속 계획,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는 죄사함까지 성경의 전체 개요를 훑으며, 늦은 시간까지 성경 공부를 계속했다.
“이봐! 우리 주체사상이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하지 않나. 그런데 이 하나님의 말씀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하시고, 미리 창조하신 세계 만물을 다 인간에게 주셨다고 되어 있네. 이때부터 인간이 주인이 된 거지. 물론 하나님이 원래 주인이지만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주인을 대신해서 다스리는 거야. 그래서 ‘불어나고 늘어나 땅을 가득 채우고 땅을 지배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말씀을 하신 거지. 이렇게 하나님께서 인간의 지위와 역할을 규정해 주셨는데 주체사상이 뭐라고 사람이 주인이라는 말을 또 하겠나. 이건 김일성이나 김정은이가 이러쿵저러쿵 할 게 아니라 하나님의 영역이라네.”
3주간에 걸쳐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창조와 타락, 구속, 새 창조의 말씀을 공부하는 동안 김영호는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믿었다. S 선교사는 초신자인 김영호에게 꼭 일러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이제 자네가 조선에 가면 복음을 전해야 해. 자네가 지도자 노릇을 잘해야지 지하교회답게 움직일 수 있어.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하나님을 외칠 수는 없겠지. 그건 내가 말 안 해도 네가 더 잘 알 테고. 자네 아랫사람, 동기가 많으니까 우선적으로 그들을 공략해 봐. 한 사람씩 규합해 가지고 하나님을 전할 뿐 아니라 기도를 하게 만들어. 특별히 혼자 있을 때 기도하는 운동을 벌이게.”
S 선교사의 말을 다 들은 김영호의 얼굴에 비장한 빛이 감돌았다. 중국과 비교할 수 없게 억압적인 분위기인 북한에서 복음을 전하고 기도를 한다는 건, 고난일 것임이 분명했다. 비록 많은 걸림돌이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하시기에 그 어떤 어려움도 넉넉히 이겨 승리하리라고 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누구보다 북한의 간부이며 엘리트 그룹에 속한 사람들의 사상과 이념을 장악한 것이 주체사상임을 잘 알고 있는 S 선교사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찔러 쪼갤 때 주께로 돌아오는 것을 확인했다.
김영호는 2년 과정의 성경공부를 마치고 북한 선교사로 파송을 받았다. 북한에 돌아간 그는 다수의 간부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중국으로 내보내 말씀 훈련을 받게 했다. 사상이 투철한 간부들이기에 성경을 가르칠 때 위험 부담이 크고, 성경을 받아들일 때에도 어려움이 있지만, 사상에 충성한 만큼 진리에도 충성함을 확인하고 있다. 주체사상의 진이 견고한 북한의 간부층에까지 말씀이 전파되게 하시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충만케 하심으로 11명의 북한인 선교사를 파송케 하신 놀라우신 하나님의 역사를 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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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북한에서 부활 생명의 복음을 들었습니다! (2024. 4)

저는 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도받았습니다. 박해받는 환경에서 어떻게 전도가 가능하냐고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북한의 믿는 성도들은 복음을 전할 때 받는 고난과 박해가 이루 말할 수 없음에도 자기의 생명을 내어주는 전도를 합니다. 저는 그런 복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쟁이가 되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허다한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말씀이 말씀 되게 하시고 복음이 복음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북한의 그리스도인들도 예수의 생명만을 전하는 전도를 합니다.
북한의 교회는 외형적인 모습이 없습니다.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신 예수라는 부활의 생명만이 살아 있습니다. 부활 신앙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박해를 통해서 알게 됩니다. 박해가 없으면 부활 신앙이 점점 희석되고, 박해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주 순수한 정금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박해 속에서 우리가 아름답게 포장해 놓은 복음의 가라지들이 다 날라갑니다. 아름다움이 다 벗겨지고 비참함과 처참함 속에서 살아 역사하는 생명력만 남습니다.

그래서 북한에서 이 복음을 듣고 귀한 생명을 받았을 때 저는 저에게 복음을 전하시는 분에게 보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주님을 더 깊이 알게 되었고, 저를 전도한 분의 딸과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그들과 함께 예수 믿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구제하는 일을 했습니다.

고난의 행군 시기인 1997년에 제가 알고 있는 예수 믿는 사람 중 굶어 죽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고난이 그들을 찾아가지 않은 것 아닙니다. 북한에서 가장 최하층 신분은 예수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들보다 더 낮은 사회 계층은 북한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굶어 죽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옥수수 한 줌이라도 생기면 나눠 먹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저를 전도한 분에게 물었습니다. “집에 당장 먹을 것이 없고 내일 뭘 먹어야 할지 알 수 없는데 그걸 들고 가서 나눠 먹으면 다 죽지 않겠느냐?”라고요. 그런데 그분이 뭐라 한 줄 아십니까? “공중의 새를 보라! 내일의 양식은 하나님이 준비하신다.” 여러분, 혼자만 살고자 하면 다 죽지만 예수의 이름으로 나누면 살게 됩니다. 이게 하나님 나라의 원리입니다.

시간이 흘러 저는 북한 당국에 의해 집과 재산을 몰수당하고 산골오지로 추방됐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이들과 함께 다니면서 복음을 전한다는 제보가 보위부에 들어가서입니다.
여러분은 박해를 받으면 교회가 없어지고 복음이 전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다라는 걸 주님이 저를 통해서 증언해 주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박해를 받는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정금같이 순금같이 더 단련됩니다. 가라지는 다 날라가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만이 존재해서 전도받는 사람에게 그 외에는 더 줄 수 있는 게 없게 됩니다. 그래서 그것만을 전하는데도 복음 전도가 됩니다. 북한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는 건 이런 연유에서입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성령이, 내 안에 살아 역사해서 믿을 수 있는 것이지, 그것 없이는 복음을 전해도 전도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온전히 전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소홀히 취급하지 마십시오. 영원한 부활 생명이라는 것은 이 세상이 끝나는 날, 새로운 생명으로 시작되어서 우리가 영원해지는 것입니다. 영원한 부활 생명이 지금 우리 속에 살아서 역사함을 믿고 신앙 생활을 할 때, 진정한 기쁨과 만족감을 갖게 됩니다.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북한에 전파되고 있음을 믿으며 강한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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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성도 편지] 입쌀 밥 냄새가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2024. 3)

안녕하십니까?
O월 O일날 보내주신 돈 잘 받았습니다.
저희 기도에 답해주신 하나님 정말 고맙습니다.
보내주신 돈으로 옆집 애 엄마가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돈 받자마자 식량이랑(입쌀 100kg, 강냉이쌀 100kg, 소금 80kg, 배추, 된장 30kg),
땔감을 사서 옆집이랑 나눴습니다.
급하게 필요한 약들(페니실린, 아미노산, 포도당)도 샀습니다.
입쌀 밥 냄새가 얼마나 오래간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애들이 쌀밥 먹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저절로 눈물이 납니다.
죽을 고비에 놓인 두 부부를 치료받게 해 주시고, 애들 배고픔을 달랠 수 있게 도와 주신
하나님께 정말 고맙습니다.
저와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손길이 닿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고 함께 신경 써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모두 앓지 말고 건강히 계십시오.
다시 한 번 정말로 너무 고맙고 고마운 분들께 허리 굽혀 인사 올립니다.

2024년 1월 OO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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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특집 1] 성경 배달 현장에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2024. 3)

1970년대 후반, 중국의 개혁개방이 시작되던 시기에 중국 내부에서는 성경책을 요구하는 성도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당시에는 외국인들이 중국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단체 관광밖에 없었습니다. 관광객의 일원으로 섞여서 중국을 여행하는 것만이 유일했습니다. 그리고 여행 시에는 꼭 중국인 인솔자를 대동해야 했는데, 이로써 중국 정부는 외국인 관광객을 감시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짧은 일정으로 중국을 다녀오는 것이었지만 저희는 가볍게 여행하지 않았습니다. 과연 사람이 들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무거운 가방을 들고 중국에 들어갔습니다. 물론 가방에는 성경책을 가득 채워서 말입니다.

이렇게 가져간 성경책은 현지 중국인들의 손에 직접 전달이 됐습니다. 지금처럼 휴대폰이나 문자, SNS가 있던 시절이 아니기 때문에 성경을 전달받는 사람과는 우편으로 사전에 연락을 취하는 과정이 필수였습니다. 어느 호텔 혹은 어디 커피숍에서 몇 날 몇 시에 만나자라는 약속을 미리 정하고 움직여야 했습니다.

많은 경우 성경을 배달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은 일면식이 없었습니다. 서로 만난 적이 없고 사진도 없지만 편지로 주고받은 정보만 믿고서 중국 대륙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아주 먼 거리를 이동해 성경책을 받아갔습니다. 그때는 중국에 외국인이 많지 않아서, 중국 성도들이 저희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어떤 중국인이 기독교인인지 구분할 수 없기에 상대방에게 사전에 특정 색깔의 모자를 쓰는 등의 표시를 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중국으로의 성경 배달은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진행이 되었습니다.

성경을 배달하는 중 있었던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려 합니다. 한 외국인이 성경책이 잔뜩 든 커다란 가방을 끙끙 대고 끌면서 중국 국경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그만 세관에 붙잡혀서 성경책을 몽땅 압수당했습니다. 그 외국인은 너무 상심이 되어 “하나님, 왜요! 왜죠? 왜 제가 걸려야 하나요?” 하고 탄원하는 기도를 올렸습니다.
다음날이면 성경책을 받기 위해 저 멀리 북쪽에서부터 몇 날 며칠을 기차를 타고 오는 중국 목사님을 만나야 하는데, 이제 빈손으로 그 목사님과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는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기도를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세관 직원들이 가방에서 성경책을 한 권씩 꺼내서 밖에다 쌓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는 울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왜 여기까지 애써 가져온 성경책을 빼앗겨야 하나요.”

그는 호텔에 도착해서도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엎드렸습니다. “왜, 왜,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죠?” 흐느끼며 기도하는 소리가 점점 커졌습니다. 그러기를 20여 분. 똑. 똑. 똑. 숙소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누구세요?”
눈물 자국을 훔치고 문을 연 그의 눈앞에 외국인 두 명이 서 있었습니다.
“저희는 호주에서 왔어요. 조금 전 세관에서 성경책을 빼앗기셨죠? 드릴 말씀이 있는데 잠깐 들어가도 될까요?”
방에 들어온 호주인들은 자초지종을 털어놓았습니다.

“하나님이 중국에 성경책을 배달하라는 마음을 주셔서 순종해서 왔는데 막상 중국에 도착하고 나니 누구에게 줘야 할지를 모르겠더군요. 그래서 하나님께 묻고 있었는데 당신이 성경책을 빼앗기고, 국경에 성경책들이 쌓이는 모습을 봤어요. 저희는 당신이라면 누구에게 성경책이 필요한지를 알 거라고 생각하고, 여기 호텔까지 쫓아왔어요.”

비록 한 명은 성경책을 빼앗겼지만, 하나님은 다른 두 사람이 가져온 성경책을 보존되게 하셔서, 두 배로 많은 성경을 중국에 공급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중국 성도들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성경책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성경을 보내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중국이 변화하던 그 시기는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길에는 아스팔트가 깔리지 않았고, 먼 거리를 이동할 때는 기차를 탔습니다. 저희가 중국 내에서 성경책을 운송할 때에도 기차를 이용했습니다. 가령 A 지역에서 B 지역으로 성경책을 보낸다면, 일반 짐인 양 포장한 성경을 기차에 실은 다음, 받는 측에 성경책을 적재한 짐 칸 번호를 알려주어서 직접 수령하게끔 했습니다.

한 번은 저희가 보낸 물건이 성경책이라는 사실이 공안에 노출된 적이 있었습니다. 도착해야 하는 목적지까지는 성경책이 안전하게 갔지만 아무도 찾을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성경책을 가져가면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신고하는 꼴이 되어, 감옥행을 면치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공안들은 눈에 불을 켜고 누가 짐을 찾으러 오는지 24시간을 감시했고, 성도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었습니다. 하루, 이틀, 일주일, 이주일의 시간이 야속하게 흘렀습니다. 그런데 그때 한 여자 목사님이 용감하게 나섰습니다. 그분은 성경책을 가져갔고, 공안에 붙잡혀 3년 형을 언도받았습니다.
처벌이 두렵지 않았을까요? 아닙니다. 그분은 사람들이 성경책을 읽지 못해서 영원히 지옥에 가는 것보다 자신이 감옥에 3년 동안 갇히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영생을 본인의 안위보다 소중히 여긴 것입니다. 이렇듯 성경 배달에는 언제나 난관이 따랐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은 살아서 움직이고 역사하고 계셨습니다.

성경 배달 방법은 항상 변화합니다. 환경이 매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과거 한때는 성경을 인쇄한 종이 뭉치를 해외에서 들여와서 중국 내부에서 책으로 묶는 작업을 진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완성된 성경책은 수많은 중국 성도들에게 배달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방법은 마지막 제작 공정을 중국에서 하기 때문에 발각 위험이 컸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당시에 전화 받는 게 두려웠습니다. 누가 잡혔다는 소식을 들을 것만 같아서였습니다.

몇 년 후, 우려하던 일이 결국 터졌습니다. 공안이 공장에 곧 급습할 거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희는 신속하게 가지고 있던 성경책들을 다 반출하고 공장에 있던 기계들도 모두 다른 곳으로 내보냈습니다. 다행히 빠른 의사 결정과 움직임 덕에 어느 누구도 감옥에 가지 않았고, 성경책과 기계도 유실 없이 보존되었습니다.
중국에 관련 공장을 다시 세울 수는 없게 됐지만, 중국 안에 있던 물품과 비품은 안전한 곳으로 옮겨서 사역을 재개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를 더 큰 성공으로 바꾸는 분이십니다. 모퉁이돌선교회와 동역하면서 저는 이런 경험을 여러 번 했습니다. 위험한 순간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명령에 순종하는 모퉁이돌선교회와 함께 성경을 배달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도 여전히 북한과 중국의 성도들에게 성경이 필요합니다. 2024년 통일 이후를 준비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고난 중에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에게 전해져야 합니다. 이 사역이 중단없이 평양에서 예루살렘까지 각 민족의 언어로 성경이 준비되어 보내지기를 기도하고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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