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자편지] 기도해야만 하는 삶입니다

성경 배달과 선교 보고가 주 사역이었습니다.
더 많이 가져다 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현장의 조선족들을 만나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보며 울었습니다.
믿음을 지켜온 그들의 모습을 보며 부끄러워서 아파했습니다.
중국에 나와 땅굴을 파고 숨어 사는 북한주민들로 인해 괴로워했습니다.
강을 건너왔다 돌아간 북한 주민의 발자국을 보며 부르르 떨기도 했습니다.
북한 땅에서 만난 자들을 위해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북한 복음화를 위해 일하는 주의 종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들과 그 가족, 후원하는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기도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북한만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기도의 영역이 넓혀졌습니다.
조선족으로, 소수민족으로, 몽골과 이스라엘, 아랍권과 불교권까지 확대되었습니다.
선교사들과 가족과 후원하는 교회들을 위한 기도도 빠뜨릴 수 없었습니다.
이런 기도가 종일 저를 쉬지 못하게 만듭니다.
어린 시절, 어떻게 쉬지 않고 기도하느냐고 물었건만 이제는 기도를 쉴 수가 없습니다.
저 자신의 모습을 놓고 기도합니다.
두 딸과 사위, 사위의 가족, 손녀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선교회 간사들과 선교사들, 선교사들의 이웃 선교사들, 그 가족들까지도 저의 기도 제목입니다.
회원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합니다.
훈련원의 필요를 조목조목 아침마다 매일같이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설교에 대한 기도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말이 어쭙잖은데다 지혜가 부족하기에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하나님 외에는, 일할 방법도 재정적인 도움을 얻을 방법도 모릅니다.
기도는 눈물로, 울음으로 이어집니다.
무능하거든요.
코로나로 인해 더 기도하게 됩니다.
부족하기 때문에 기도해야 합니다.
채워야 할 것들이 많기에 하나님께 아뢸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해야만 하는 삶으로 이어져 갈 뿐입니다.
늘 그래 왔지만 한국 교회와 성도들을 잊지 않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기를 눈물로 기도합니다.
남북한병행성경이 더 인쇄되어 더 보급되기를 기도합니다.
강화훈련원에 기도굴을 만드는 일을 위해 기도합니다.
북한 성도들에게 쌀과 밀가루와 의약품을 공급하는 데 차질이 없도록 기도합니다.
라디오를 보내야 합니다. 컴퓨터와 구명복을 보내야 합니다.
제가 기도를 쉴 수 있겠습니까?
무익해서 기도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함께 기도할 분을 찾습니다.

2021년 8월 15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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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역자편지] 예수 이름 외에 타협할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를 그 땅에 주시기를…

단동에 도착하여 하룻밤을 지내고 압록강 강변을 따라서 가 봅니다.
오른쪽으로 북한 땅을 바라보며 수풍댐까지 가노라면 조선족이 운영하는 식당을 만납니다.
강에서 잡은 고기들로 매운탕을 하는 집이라 가끔 들리는 곳입니다.
사실 음식 맛보다는 그 건너편에 보이는 북한 땅 때문에 가곤 합니다.
그렇게라도 북한을 보고 싶은 애타는 마음을 가진 제가 그곳에 가지 못한 지가 벌써 몇 년이 되었습니다.
현장 성도들의 안전을 위해 방문을 자제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서였습니다.
지금은 코로나로 발이 묶여 단동에서 강변을 바라보는 것마저 중단된 상황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강화도에 폐교가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거기에서 바다 건너 북한 땅과 북한의 예성강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폐교에서 강을 향해 걸어가 철조망 너머로 북한을 바라보았을 때의 그 설렘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2018년에 훈련원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하고 재정을 위해 기도해 왔습니다.
3년이 지난 지금은 수리가 거의 끝나갑니다.
너무 오래 걸렸지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재정으로 조금씩 조금씩 고쳐야만 했습니다.
감당할 일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이제는 북한이 바라보이는 옥상에 인조잔디를 놓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안전을 위한 정리를 마쳤고 오르내릴 계단을 만들었습니다.
단풍나무가 있는 곳에는 자갈돌을 깔려고 합니다.
뜻있는 성도들이 와서 북한 땅에 잊힌 성도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택함 받은 주의 백성들의 기도가 하나님께 올려지기를 구합니다.
건물 안에는 강의실과 사무실과 방송실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의자, 책상, 방송 기자재들이 준비되는 일을 기도 중입니다. 하나 하나 기도로만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필요한 것은 주의 백성들의 기도와 훈련입니다.
예수 이름 외에 타협할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그리고 북한 땅에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하나님께 아뢰고 여러분과 나눌 것입니다.
또 훈련받아야 할 주의 종들을 만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도, 압록강이 아닌 바다 건너 북한 땅과 예성강을 바라보며 주님께 아룁니다.
저는 무능하고 소심하기에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과 타협할 수 없는 진리의 복음이 저 땅과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간구합니다.
뜻있는 분들이 저와 함께 이 훈련원을 위해 모여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아룁니다.

2021년 7월 16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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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역자편지] 오늘, 이 시간에도 그 뜻을 이뤄 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이 구좌가 맞지요?”
은퇴하신 목사님에게서 카톡이 왔습니다. “네”라고 하니 “적은 헌금을 보냅니다.”라고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은퇴하셔서 어려우실 텐데 모퉁이돌선교회 강화훈련원으로 헌금을 보내셨습니다.

강화훈련원 수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저도 은퇴 후 선교회에 부담이 되지 않기 위해 조금씩 저축했던 것에서 얼마를 헌금해야겠다 마음 먹고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다 드려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대답을 못 하고 우물쭈물하니 “아까우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아내더러 그 이야기를 하니 “다 드려야지요. 지금까지 먹이고 입히고 지켜 주셨는데…”라고 말했습니다. 다 드리고 나니 기뻤습니다.

지난 3월 중순에 털썩 주저앉는 일이 있었습니다. 허리 통증으로 인해 병원을 드나들기 시작했습니다. 전문의를 찾아가 X-Ray와 MRI를 찍었지만 아픔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다친 부분에 변화가 없는 걸 보니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의사가 일러 주었습니다.

평생 통증을 안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걸을 수 있고 식사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아니, 사역하는 36년 동안 보호하여 주셨음에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감옥에서도 지키셨고, 10년간 하혈할 때에도, 그리고 오늘까지도 긍휼을 입히셨습니다. 은혜일 뿐입니다. 연약한 몸을 이끌고 코피를 쏟는 중에도 외치게 하셨습니다. 300만 마일이라는 엄청난 비행기 타는 여정을 감당하게 하신 이가 하나님이십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신 그 사랑이 놀랍기만 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지금입니다. 그런데 사역이 더 확장되고 있습니다. 북한은 그 어느 때 보다 지금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해 복음이 전해지는 소식들이 들려옵니다. 중국 또한 정부의 핍박이 엄청나지만 하나님께서는 주의 백성들을 통해 믿는 자들이 늘어나 교회가 개척되는 역사를 이뤄가고 계십니다. 그뿐인가요? 중국내 소수민족들 가운데도 탄압으로 무너져 가난해진 영혼들이 복음을 듣고 주께로 돌아온다는 일꾼들의 기뻐하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미얀마로, 터키로, 아랍 국가와, 이스라엘로… 더 놀라운 것은 북한어 성경 번역을 끝내고 애쓰던 중에 최근 『남북한 병행성경』이 인쇄되도록 하나님이 인도하셨습니다. 할렐루야!

“다 드려!” 하신 말씀에 순종하고 나니 저금통장이 비었습니다. 그런데 강력한 기쁨이 통장을 채우고도 남음을 숨길 수 없습니다. 강화훈련원에 창문이 달리고 지붕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완성되고 교실과 화장실이 만들어집니다. 나무가 촘촘히 심기고 꽃들이 색깔을 더해 갑니다. 주변의 땅과 작은 개인 주택들이 하나씩 준비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적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음을 성경에서 보았습니다. 먼저는 믿음이 있어야 하고 부르짖음이 따르고 끝까지 신뢰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강화훈련원은 그런 부르짖음과 믿음과 신뢰와 순종으로 세워져 갑니다. 평양에서 예배할 날을 준비시키시는 하나님의 시간표를 보고 계신가요?
오늘, 이 시간에도 그 뜻을 이뤄 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2021년 6월 15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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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역자 편지] “이웃”이 있었습니다

제가 18세였던 1963년 아버지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셨습니다. 몇 달 후 어머니는 막내를 낳으시고 심장마비로 40세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저와 갓난아기, 열두 살과 일곱 살 난 세 동생을 세상에 남겨놓은 채로.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저는 갑자기 가장 아닌 가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 보니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에게는 “이웃”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개척한 교회와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쌀을 가져다 주고 김치를 담가 주시던 권사님들이 계셨습니다.

그러고 3년 반이 지난 1967년 아버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우리 네 형제가 미국에 갈 수 있는 여권과 비자 그리고 비행기표까지도 모두 해결되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존 F 케네디가 자신의 대통령 출마 홍보물로 미국의 이민 역사를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드는데 저희 가정을 그 영상에 넣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미국 법무부 장관 로버트 케네디가 정일권 국무총리에게 여권을 내주도록 요청했고, 비행기표는 팬암(Pan Am Airline)이라는 비행기에서 내리는 장면을 찍는 조건으로 제공되었습니다.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진 겁니다.

어머님이 미국 시민권을 가져야 북한선교를 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이런 방법으로 실현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 뜻을 이루시려고 “이웃”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머님을 통해 저에게 북한선교를 가르치셨습니다. 어머님은 한국에서는 북한선교를 할 수 없으니 미국으로 가라고 권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버님을 한 선교사님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보내셨습니다. 폐결핵을 앓고 있던 제가 교환학생으로서 미국 시민권을 갖게 될 수 없음을 아시고 아버님을 미국에 먼저 보내셨습니다. 우리로 미국 시민권을 얻게 하시려고 아버님을 동원하신 것입니다.

이민 생활은 쉽지 않았습니다. 2년 후 미국 병무청에 가서야 미군에 입대해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민권을 받고 나서 저는 북한선교를 위한 준비를 하게 됩니다. 제대 후에는 사업을 시작했고 사업은 번창했습니다. 그때 저는 북한선교를 잊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게는 “이웃”이 있었습니다. 어머님과의 약속을 상기시켜 준 미국인 목사님이 저를 신학을 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신학을 하는 동안에도 “이웃”이 있었습니다. 제가 동남아 선교 정탐 여행을 하도록 배려해 준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또 다른 한 분은 제가 중국에 다녀오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후 1985년 모퉁이돌선교회를 시작할 때 데일 킷즈만, 브라더 데이빗, 브라더 앤드류, 죠나단 챠오 박사, 그리고 빌리 그래함의 가족과도 만납니다. 이분들이 모퉁이돌 선교회를 응원했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북한 선교를 시작하고 진행할 수 있도록 도운 “이웃”이었습니다.

북한선교를 일깨워 주신 어머니, 중단 없이 끝까지 가도록 권해 주신 아버지, 심지어는 로버트 케네디, 정일권 국무총리, 팬암 항공사, 중국에 처음 발을 내딛도록 해 준 담임 목사님, 데일 킷즈만 박사, 부라더 데이빗, 부라더 앤드류, 죠나단 챠오 박사, 지금까지도 흔들리지 않고 밀어주는 아내와 두 딸, 나의 친형제들과 모퉁이돌 간사들, 끝없는 사랑과 헌신으로 동역하시는 회원 여러분들이 바로 저의 “이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어려운 현실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과 어머님과의 약속을 잊지 않게 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방해꾼 같은 사람이 옆에 있던 것도 나를 키우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일 수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적인 경제적인 난관 속에서도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가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의지할 우리 모습을 기대하십니다.

1967년 5월 어느 날 저는 김포비행장을 떠났습니다. 그날부터 북한선교를 위한 모든 준비를 하게 하셨습니다. 평양에 갈 일꾼들을 키우고, 북한을 바라보며 눈물로 기도할 여기 강화훈련원에서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가 강도 만난 북한 성도의 이웃이 되어 이곳 강화훈련원에서 기도하며,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해 다음 세대들이 선한 이웃으로 일어나 평양과 중국과 아랍과 이스라엘까지 복음 들고 달려가는 선교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꿈꾸며 기도합니다. 여러분이 북한 성도들의 “이웃”이었음을 하나님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2021년 5월 15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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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역자편지] 성경으로 인해 한 생명이 살아나고 있습니다

성경 한 권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성경이 전해지는 곳에 생명이 살아납니다.
말씀으로 인해 용서와 사랑이 일어납니다.
한국 땅에 복음이 전해지기까지 수고한 선교사들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많은 선교사들 또한 복음을 듣지 못한 민족에게 그들의 언어로 된 성경을 번역해서 주기 위해 수고하고 있습니다. 과거 존 로스 선교사가 우리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수고를 하였고, 그 번역된 성경을 배달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역 초기에 중국에서 만난 조선족 성도들은 성경 한 권을 갖기 위해 7년 또는 15년씩 기도한 분들이었습니다.
북한의 한 아주머니는 생명을 걸고 주석성경을 가지고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제가 1987년에 만났고 2004년 4월 22일까지 북한 땅에 살아 계셨습니다. 성경을 소유한 기쁨을 누리던 그들은 골방에서 혼자서 예배하고 땅굴에서 예배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혼자 예배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우리는 주님을 잃어버리지 않았나 묻고 싶습니다. 예배당에 자유롭게 가지 못하니 주일 예배를 아니, 하나님을 아예 잊지는 않았느냐 말입니다.
모퉁이돌 선교회는 사역 초기부터 지금까지 성경을 가져다 주고 가르쳐 왔습니다. 놀라운 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생명을 살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역사가 오늘도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역사를 이루기 위해 성경을 배달합니다. 안타깝게도 코로나로 인해 배달이 지연되고 늦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 다른 지역으로 성경을 배달할 길을 열고 계십니다.

아십니까?
북한어로 번역된 성경이 코로나 상황에도 배달되고 있습니다.
한 쪽이 아니고 신구약 합본이 북한 땅에 배달되었습니다.
과거에도 지금도 여전히 배달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성경 한 권을 배달하지 않으시렵니까?
직접 갈 수 없다면 갈 수 있는 이들에게 맡기면 됩니다.
중국어 일반 성경과 만화성경, 아랍어 만화 성경, 히브리어 만화 성경 등 1,500여 권의 성경이 이스라엘로 배달되었습니다. 왜 중국어 성경을 이스라엘로 보내느냐고 하시겠지요? 이스라엘에 노동하러 온 중국 근로자들이 있습니다. 복음을 모르는 그들에게 성경이 전해집니다. 중국 밖에서 중국인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공간을 초월하여 확장되고 있습니다.

당신 한 사람을 살리려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용서받은 줄 모르고 그냥 살아가는 인생들에게 복음이 전해졌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평양에서 저는 보았습니다. “나도 용서받을 수 있갔소?” 라고 말하며 눈물 씻던 한 사람을 위해 하나님이 저를 평양에 보내셨습니다. 그 한 사람을 위해…
한 사람,
한 권의 성경,
한 번의 말씀 선포로 한 영혼이 돌아서서 주님을 영접하는 그 감격을 놓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헌금이 북한과 중국 그리고 이스라엘에 있는 중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성경을 배달하는 일에 쓰여지고 있습니다. 아랍권 나라들로도 배달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한 생명이 살아나고 있습니다.

2021년 4월 15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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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역자편지] 북조선에도 성도들이 있다구요!

“당신은 정말 아무것도 몰라!”
아내가 한 말입니다. 맞습니다. 저는 좋은 옷이 무엇인지, 잘 사는 게 무엇인지,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하는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옳은지 모릅니다. 세상의 정치나 권력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 제가 성경 없이 살아가는 조선족을 알게 됩니다. 그들에게 성경을 갖다 줘야겠다는 생각으로 한 권, 열 권, 백 권을 배달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발걸음만으로는 수요를 감당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차후에 하나님은 북한 안에서 믿음을 지키는 이들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들과 이야기하면서 제가 배달한 성경이 도시에서 시골로, 지방으로 전달됐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받아 든 이들은 “나만 읽기에 미안하다!”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누구에게 주고 싶으냐고 조용히 물었습니다. “북조선에도 성도들이 있다구요! 쬐그만 성경이라도 갖다 주시라요!”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북한에서도 성경을 요구하고 있음을 즉시로 알아차렸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 눈치 없는 나를 하나님은 성경 배달 사역으로 이끌림 받게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저의 보고를 듣고 성경 밀수 사역을 후원했습니다. 함께 그 지역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무거운 성경 가방을 들고 메고, 끙끙거리며 가다가 넘어져 피 흘리면서 하나님 나라 백성의 필요를 채웠습니다.
배달할 때마다 “더 갖고 올 걸. 더 많은 이들을 데리고 올 걸.”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안고 배달에서 돌아온 저에게 선교 보고를 요청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유년부 학생들과 교사들, 학부형들이 듣고는 울며 헌금을 했습니다. 수십 번, 수백 번, 수천 번의 보고와 설교가 지난 35년 넘는 동안에 있었습니다. 모두는 아니었지만 몇 사람 때로는 수십 명, 천여 명이 일어나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때 도전 받은 분들을 베트남, 터키, 호주, 남미, 마케도니아, 영국, 독일, 불란서, 이스라엘에서 만났습니다.

그저 북한과 중국에서 믿음을 지킨 이들의 이야기를 전했을 뿐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실력이 부족하며 지혜가 없는 제가 교회 주일 낮 예배와 오후 예배, 수요 예배, 금요 철야 혹은 청소년 모임과 훈련에 불려 갔습니다. 그래서 더 성경을 읽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유대인의 생활 습관이나 예수님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고 연구하려고 애썼습니다. 그 말씀을 오늘날 어떻게 적용할지를 고민했습니다. 그것이 제 설교 내용이 되었습니다.

35년이란 긴긴 세월이 훌쩍 지났습니다. 탈진했다고 하지요? 제가 지금 그런 형편인 듯합니다. 지쳤습니다. 지금 미국에서 자가격리와 다를 바 없는 상태로 집에 머물고 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저이기에 창밖을 내다보며 축 처진 채로 말씀을 소리 내어 읽고 묵상하고 기도합니다. 아무것도 몰라서 하나님께 앞으로의 삶을 여쭙습니다. 만일을 위해 묘지를 구하러 나가 보았습니다. 장례 비용도 알아보았습니다. 가족에게 폐가 되지 않기 위해 미리 준비하려 합니다. 지혜가 없는 저이지만 평양에서 복음을 전할 기회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르기에 왕이신 주님께 순종할 뿐입니다.

“예 하나님” 이것이 제가 해야 할 답입니다.

2021년 3월 15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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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역자 편지] 선교사와 현장의 필요를 위해 주님께 아룁니다

선교 훈련을 받을 때 알게 된 이야기입니다. 한국은 아주 특별한 사람들만 자가용을 타던 때였습니다. 인도네시아 선교사가 보트를 구입해야 한다고 파송한 교회에 요청했습니다. 교회의 반응은 ‘우리는 자동차도 없는데 무슨 보트를…’이었습니다. 선교사는 걸어서 갈 수 없는 섬까지 사역을 확장할 수 없었습니다.
후일 교회의 몇몇 장로님들이 선교지를 방문해서 빗물이 새는 숙소에 머물렀습니다. 보트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장로님들은 교회로 돌아와 며칠씩 비 오는 그 지역의 사진을 보여 주며 보트를 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반응은 현장에 가지 않았던 목사님과 장로님들의 반응과 같았습니다. ‘우리는 자가용도 없는데 무슨 보트를…’ 선교사님은 하나님께 계속 기도했고 몇 해가 지나서 보트가 공급되었습니다.
선교지에서는 최첨단의 장비로 적진에서의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특별히 지금 같은 경우는 더욱 그런 상황입니다. 군인이 전쟁터에서 필요한 것들이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저는 처음 모퉁이돌에서 작은 봉고 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기차와 버스로 설교나 간증하러 이동하기도 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현지 목사님이 차를 가지고 와서 데려가고는 했습니다. 교회의 한 구석에서 잔 일도 종종 있었습니다. 초청하는 교회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멀어도 아무리 작아도 초청하면 간다는 말을 듣고 저를 초청한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만난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지금 선교회의 찬양 담당 금 목사의 아내입니다. 그 학생의 아빠 목사님이 오산리기도원에 왔다가 제 설교를 듣고 카세트 테이프 하나를 사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때 저는 봉고차를 타고 오산리기도원에 설교하러 갔습니다. 기도원의 한 목사님이 “목사가 무슨 봉고차를 타고 다니느냐”라며 “그렌저는 타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 설교를 들은 참석자 중 한 분이었던 그 목사님은 10년을 선교 현장에서 사역하고 지금은 강화도훈련원에 계십니다.

1985년에 모퉁이돌선교회를 시작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부동산을 다 팔아 선교회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한국에는 친구도 선배도 후배도 아는 이도 없었습니다. 한 분 한 분의 소개로 설교를 했으니 선교회는 어려웠습니다. 유튜브나 인터넷도 없던 시대여서 북한 선교를 알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기도하면서 희생하고 헌신했던 분들이 고맙기만 합니다.
그런 형편에 봉고차는 저에게는 고마운 차량이었습니다. 서울에 오면 동생 집에 머무르며 걸어 다니거나 버스로 이동했습니다. 역에 내렸는데 아무도 마중 나오지 않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제 얼굴을 모르고 초청한 교회는 머리가 하얀 노인을 찾았다고 합니다. 카타콤 소식지에 나온 사진을 저로 생각한 모양입니다. 서로 얼굴을 알지 못하고 있다가 기차역에서 사람들이 다 사라진 후에 ‘혹시?…’ 하고 만나는 일도 자주 경험했습니다

선교지에서 중고로 구입해 10년 이상 사용한 차량을 폐차시켰습니다. 차 없이 사역하는 선교사를 위해 이동에 필요한 차량을 준비해 드려야겠습니다. 편안한 승용차보다 짐을 싣고 몇 분이 탈 수 있는 승합차가 좋겠습니다. 선교사들의 건강과 안전 유지를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선교사들의 가족을 위해 기도합니다.
북한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세워진 지하교회와 지도자들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 기도합니다. 강화도훈련원에서 훈련될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합니다.
선교사들의 활동을 위해 코로나가 중단되기를 기도합니다. 선교사들이 자유롭게 사역할 환경, 비자와 재정을 주시기 위해 기도합니다. 이스라엘과 중국 선교 현장에 승합차가 준비되기를 기도합니다. 선교사들에게 컴퓨터와 전화기를 공급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저 자신의 부족함을 인하여도 주님께 아뢰며 함께하시는 여러분에게도 기도를 부탁합니다.

2021년 2월 15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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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역자편지] “BLESS KOREA, 이 땅에 하나님의 은총이!”

한반도는 은둔의 땅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백성이 미신과 샤머니즘, 불교와 유교, 온갖 우상숭배에 젖어 사는 나라였습니다.
흑암에 잠긴 이 땅을 하나님이 기억하셨습니다.
선교사들의 아름다운 발걸음이 닿았습니다.
그때부터 조선이 구별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단의 세력이 총동원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세워지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우리는 습관대로 “이 놈의 망할 나라”라는 말을 거침없이 쏟았습니다.
심지어 교회에 적을 둔 교인들마저 우상숭배의 언저리에 머물며 오랫동안 이 땅을 저주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특별히 관심을 갖는 나라요 백성이요 민족임을 선포해야 합니다.
입술을 열어서 하나님을 송축하십시다.
그래야 우리가 사는 이 땅을 축복하십니다.

“BLESS KOREA, 이 땅에 하나님의 은총이!”

뜻 없이 하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뤄지기를 바라는 축복의 언어입니다.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 축복의 한 마디가 이뤄지는 것을 보기 원합니다.
한국 교회가 다시 돌아서서 “아버지의 뜻이 이뤄지게 하옵소서”라고 선포한다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행하실 줄 믿습니다.
회복하실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뜻대로, 아버지가 원하는 때에, 아버지의 방법으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 뜻은 별 볼 일 없습니다. 우리 생각대로 된다면 망조입니다.
우리 주님도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고백하셨습니다.
겟세마네의 기도가 바로 여러분과 저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선포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해 주시기를 원하는 말을 선포함으로
이 땅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복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 아버지의 뜻이 내게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뜻이 북녘 땅에서 이루어지이다”
“한국 땅에도 이루어지이다”
“내 가정에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내 교회에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이 사회에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우리의 선포로 하나님께서 이 땅을, 이 나라를, 이 민족을 복 주실 것입니다.
“BLESS KOREA” 라고 외칠 때 이 땅은 복 있는 땅이 될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되뇔 때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입니다.
이 기도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 믿고 선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021년 1월 15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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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역자편지]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우리 다 모였냐? 이제 더 올 사람 업디? 여기 하나씩 받으라.”
형님은 모인 사람들에게 남녀 구별 없이 공히 양말 한 켤레씩을 나눠 주었습니다.
“형님이나 신으라요! 지금 형님 양말이 찢어져서 발가락이 나오디 안아! 그러니 형님이나 신으라요.”
동생이 소리를 지르자 그곳에 모인 대여섯 명의 눈길이 일제히 형님에게로 쏠렸습니다.
“내래 우리 아바디가 갖다 주기로 했어. 그러니 념여 말고 어서 신으라야.”
양말을 건네는 형님의 얼굴은 아까워하는 기색이 없고 도리어 기뻐하는 표정이었습니다. 본인 생활이 여유가 있
어서가 아니라 자식들이 준 양식을 조금씩 모아서 장마당에서 양말과 바꿔 온 것이었음에도.
“아니, 형님 나이가 몇인데, 아버지가 돌아간 지가 얼마나 됐는데, 아버지 타령만 하요?”
동생은 한심하다는 듯 쏘아붙였습니다.
“그런 내 아버지가 있단다.”
“당 간부인기야?”
“며칠 있으면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날이 올 거야.”
이 말을 한 형님이 속으로 생각하는 듯 잠시 아무 말을 않다가 성탄절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
“12월 달이면 ‘성탄절’이라는 것을 지키는데 말이야. 이날은…”
형님은 최대한 쉬운 말로 성탄절의 복음을 풀어 갔습니다.

그 다음 주일에는 각자 음식을 조금씩 싸 가지고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눈은 안 왔지만 바람이 꽤 쌀쌀했습니다. 이런 추운 날씨에 집에 안 있고 산에 가는 사람은 형님과 그 일행 밖에 없었습니다. 형님은 간단하게 말을 했습니다. 아무도 그것이 설교인지 모를 정도의 말이었습니다. 그러고는 가져간 음식을 맛있게 나눠 먹은 형님은 옆에 떨어진 언덕에 올라가 두 손을 높이 들고 “아바지! 아바지!” 하고 외쳤습니다. 기도는 곧 이상한 소리로 바뀌어 울며 탄식하는데 주위 사람들이 “형님 완전히 돌았구나야.” “이게 뭐이가. 형님이 돌아가신 아버지랑 이야기하는 거야 뭐이가.”라고 했습니다. 20여 분이 지나고 그제서야 눈물을 닦고 다시 앉은 형님이 “사실내가 믿는 하나님이 나의 아바지야.”라고 말하며 예수님이 구주이신 것에 대해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


‘형님’이 아껴 모은 양식으로 산 양말 한 켤레.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난한 자들을 긍휼이 여긴 그 작은 사랑의 손길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영혼 구원의 통로가 되어, 동생이 중국으로 공부하러 나왔습니다. 형님이 공부한 바로 그곳으로. 중국의 현장 사역자는 동생을 만난 다음날 새벽 동이 틀 무렵, 동생을 데리고 형님이 기도하던 산골짜기로 갔습니다. “여기가 형님이 두 손 들고 눈물 흘리며 기도하던 자리야.”, “저기가 바로 형님이 무릎 꿇고 기도하던 자리야.”라고 말하니 동생이 눈물을 펑펑 흘리며 “아바지!” 하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형님이 조선에서도 똑같은 모습으로 기도했고 그 기도가 우리를 살렸다고 고백했습니다. 동생 역시 밤잠을안 자며 말씀을 공부하다가 돌아가 형님을 돕는 사역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양말로 복음을 전한 주님의 일꾼의 이야기입니다.
양말 한 켤레가 영혼을 구원할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까짓 것 가지고”라고 생각하는 그것으로….

얼어붙은 강 위에 쌓인 눈 위에 사람의 맨발 자국이 있었습니다.
중국 쪽 옥수수 밭에서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을까 해서 건너왔을 것입니다.
먹거리를 찾다가 돌아간 듯했습니다.
이번 성탄에 무엇을 보내줘야 하나 생각하던 참이었습니다.
양말이라도?
급한 마음에 중국에 양말 가격을 물어보았습니다.
우리 돈 천 원이면 어른 겨울 양말 두 개를 살 수 있다고 합니다 .
천 오십 원이면 어린이 양말 세 개를 살 수 있답니다.
커피 한 잔이면 양말 12켤레를 북한 성도의 발에 신길 수 있습니다.
이 양말을 북녘 성도의 발에 신길 사람이 없을까요?
그 양말 한 켤레가 잊혀진 생명을 살린다는데….

본인은 구멍 난 양말을 신으면서 주변에 새 양말 한 켤레씩을 나누며 복음을 전하는 북한지하교회 사역자들에게 금년 성탄절에도 성도들과 이웃들에게 나눌 것이 풍성하게 보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020년 12월 14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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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역자편지] 이 복음을 전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땅굴 속에 숨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리 내서 찬양하고 싶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예수여~ 예수여~”, “십자가~ 십자가~”마음 놓고 주님의 이름을 부를 그날이 언제냐고 눈물로 쏟아내는 이들입니다. 회복하실 날이 언제냐고 묻는 이들입니다. 성경을 두 손에 받쳐 들고 소리 내서 읽고 싶은 주의 백성들입니다.

변방에서 그들을 만났습니다. 저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없어서 하염없이 울기만 했습니다. 그들의 눈에서 흐르는 찐한 눈물은 “살아생전 주님을 마음껏 부르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성경 한 권은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이었습니다.
“자유롭게 된 날에 잘 만들어진 가죽 성경을 살 수 있겠지요?” 하고 묻는 그들의 말 속에 숨은 아픔을 저는 읽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읽을 뿐 그들을 자유롭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 땅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매 맞으며 피 흘리며 죽어가야 했습니다. 그 땅에서…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았다는 그 땅에서…
한 개의 라디오가 그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 수 없는 것을 압니다. 그들이 원하는 생명의 말씀을 오래도록 들려주기를 바랐지만 그럴 수 없어서 부족한 대로 보내야 했던 저의 35년간의 기간이 죄송하고 아파서 울부짖습니다. 방송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님이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모든 방법이 구체적으로 준비되도록 기도합니다.

메시야의 오실 날을 기대했던 유대인들의 간절함을 저는 알 듯합니다. 북한 땅 구석 구석에서 ‘주여~’ 하고 소리 죽여 부르는 주의 백성들의 아픔을, 여러분이 하나님께 호소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실제적으로 남한 성도들이 이 일을 위해 기도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만이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해 순종하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이 복음을 전해야 할 책임이 여러분과 제게 있습니다. 여러분과 나의 이웃인 북한 땅의 잊혀진 주의 백성들에게입니다. 지긋지긋한 오랜 고난과 아픔을 하나님께 울부짖는 이웃입니다. 외면하시겠습니까?

따뜻한 밥 한 끼.
발을 따뜻하게 할 양말 한 켤레.
손에 쥘 수 있는 라디오와 전화기 하나.
북한 말로 번역된 성경 한 권과 지도자를 위한 컴퓨터 한 대.
한 번의 기도.
청년 한 사람을 훈련시킬 후원자 한 사람의 헌신.
훈련원에 필요한 방 하나. 부엌 하나. 책상 하나. 의자 하나.
그리고 창고를 옮길 땅 한 평이 하나가 되어 예수의 평화적 통일을 준비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그 뜻을 이루시려고 주님은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그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이다.
이 땅에서도.
저 땅에서도…

2020년 11월 16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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