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칼럼] 순종하는 자에게 복음의 길이 열립니다! (2022.03)

북한 땅은 의외로 허점이 많았습니다.
그곳을 제가 찾아 침투해야 했습니다.
정보 요원은 어수룩한 사람은 거들떠 보지 않습니다.
똑똑하고 젊고 돈 있어 보이고 잘난 사람에게 접근합니다.
저는 그런 축에 속하지 않습니다.
흐리멍덩해 보이고 귀티가 나지 않으며 걸음도 빠르지 않고 이미 나이도 들었습니다.
그런 저의 모습이 그들에게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놓친 것이 있었습니다.
“복음”이었습니다.
대접한다면서 몇 사람을 식당에 모아놓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멍하니 듣고만 있었습니다.
이미 75권의 뉴톰슨 성경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50권의 꼬마 성경도 배달된 상황이었습니다.
제 방 안에 설교집과 기독교 영화 비디오를 진열해 놓고 그들이 훔쳐가게 했습니다.
이미 10개의 라디오 배달을 끝냈습니다.
제 가방 안에 있던 설교 노트를 그들이 복사해 갔음을 확인했습니다.
녹음되고 있을 바보스런 대화 속에서 “복음”을 전달했습니다.
눈물로 긍휼을 보여 주었습니다.
한번씩 가져다 주는 의약품들이 배달됐습니다.
두만강 건너에서는 밀수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제주도와 대만에서 방송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런 “틈” 속에서 “복음”이 제시됐습니다.
용서와 사랑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한 마디 말을 들었습니다.
“나도 이 목사와 함께 천국에 가게 됐네. 고맙네.”
그것이 틈 속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보냄 받은 자이십니까?
틈을 노리십시오.
“복음”은 순종하려는 자에게 길을 열어 줍니다.

무익한 종 이 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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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한 번의 순종이 일생의 발걸음이 되었습니다!

1983년 선교 훈련을 마치고 지하 성도들을 만났는데 왠지 모를 뭉클함이 가슴에 남았습니다.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한 채 고민하고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다가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사람들을 만났고
“이게 바로 나를 향하심인가?”라는 생각을 한편으로 갖게 됐습니다.
마침내 1985년 9월에 섬기던 교회를 사임하고 10월에 현장으로 갔습니다.
정확하게 따진다면 24개월 만에
지하 성도들을 위한 성경 250권을 배달했습니다.
선교회가 시작된 후로 첫 배달인 셈입니다.
그러나 250권의 성경을 받아 든 그들은
오랫동안 핍박 속에 있는 북한 성도에게 보낼 꼬마성경 100권을 요구했습니다.
“나도 필요하지만 이거이, 이것이 얼마나 귀하갔소!”라고 말하는 그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일 틈도 없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들과 같이 울고 있던 제게
“나는 그 땅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땅에 내 백성이 살아 있다.”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 백성? 하나님의 백성!

그때 저는 “예! 하나님”이라고 외쳤습니다.
열이 40도씩 오르내리는 아픈 몸을 이끌고 지하 성도들을 향해 떠났습니다.
재정적으로 가족들이 힘든 때에도 아내는 한번도
“꼭 그렇게 가야 하느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1991년에 잡혀서 고문을 받은 어려움 때문인지
2007년 1월에 저는 심장이 거의 급사 상태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2020년에는 허리를 다쳤고 2021년에는 일하다가 넘어져서 머리를 7바늘이나 꿰매야만 했습니다.
그런 일들이 계속되는 중에도 37년 동안 중단없이 성경을 배달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씩 무익한 종으로 걷게 하신
복된 기간이었습니다.
지난 20년간 북한 언어로 번역하고 인쇄한 남북한병행성경을 탈북민 3천5백 명에게 성탄절 선물로 보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3만5천 명의 탈북민들과 통일이 되었을 때
북한 사람들에게 줄 성경 권수가 채워져야 ‘모두’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한 번의 “Yes”가 여기까지 꿈을 이루어 가게 만들었습니다.
저를 구하기 위해 아들을 포기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저 한 사람의 헌신보다 훨씬 귀하고 값진 희생이었습니다.
지나 온 37년을 복되게 하신 그분 앞에
저는 오늘도 여전히 무익한 종의 자리에 있습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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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북한 성도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셨나요?

“웬일이요? 이 많은 걸 어케 갲구 왔소?
아니, 이 귀한 걸… 이 무거운 걸…”

지나간 일이지만 그 순간에는 그냥 칭찬으로 들었습니다.
감사를 표현하는 말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공산당과 짜지 않고서야 이걸 어케 갲구 오갔나라고 생각했지.
이 목사 얼굴에 피 흘린 걸 보구서야 믿게 되지 않았갔소.”라는 의미가 이면에 담겨 있었음을 알게 됐습니다.

37년 전의 일입니다.
제게서 건네 받은 성경책을 감추며 그분들은 “쬐그만 것도 있소?”라고 물으셨습니다.
북조선에 보낼 수 있다면서 손바닥을 펴 보이던 그분들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조선족과 중국에 성경과 서적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축복의 기간이었습니다.
시진핑도 코로나도 델타 변이도 오미크론도 합세하여 성경 보급을 막고 있습니다.
김정은은 국경을 완벽하게 봉쇄해 버렸습니다.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며 밀수하던 이들이 포기 상태입니다.
게다가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갇힌 사람의 수는 23만 2천여 명으로 1년 전보다 약 2만 3천 명이 늘어났습니다.
공산주의와 독재가 공공연하게 횡포를 부리며 십자가를 태우더니 교회 문을 닫게 했습니다.
“너희 하나님은 북한과 중국, 아랍 국가에서는 힘을 왜 못 쓰는가?”라고 불신자들은 조롱합니다.
과연 그 말이 옳은가요?
알곡과 쭉정이를 골라 내고 계신 것은 아닐까요?
당신이 쭉정이어서 심하지도 않은 바람에 날려 가 버린 건 아닌가요?

이제야말로 멀리 중국까지 가지 말고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자고 다짐한다는 북한 지하 성도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셨나요?
라디오와 전화기가 복음 전파의 원천이 되어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고 있습니다.
중국과 이란, 이스라엘과 북한에서 핵 폭발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갑자기 무슨 말이냐고요?
교회 하나를 문 닫게 했더니 40개로 분산되고 72개로 핵 확산이 일어났다고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시 126개로 아니, 지금은 얼마나 많은 교회가 되었는지 알지 못하는 지경입니다.
신학교가 문을 닫는 듯하더니 12개의 성경학교로 변이해서 확산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짓밟히자 온 땅으로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도들은 매 맞고 피 흘리며 죽임을 당하고 묻혔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나요?
못난 사람들을 불러 내셔서 성경을 해석하게 하시더니 분산시키고 인쇄술을 동원해서 각 나라 언어로 번역하게 하신 그 말씀을 조선 땅에도 상륙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기이한 방법들입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하나님께 여쭤 주십시오.
마지막 전투를 치르는 상황입니다.
숨어서 “아바지! 아바지!” 하고 눈물로 부르짖던 북한 성도를 기억해 주십시오.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양식을 공급하는 일을 위해 스스로가 할 일을 기억해 주십시오.
바로 오늘!
일꾼을 보내 달라고 기도해 주십시오.
일꾼을 훈련하는 일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일꾼이 사용할 무기인 하나님의 말씀이 공급되도록 도우십시오.

무익한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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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메시아가 탄생한 이때! 북한 땅의 회복을 바라봅니다

마태복음 3장 첫 줄 “그때에”라는 단어가 제 가슴을 찌릅니다.
마태는 이스라엘 400년 기간의 공허한 세월을 알았겠지요?
버림받은 듯한 느낌 속에서 그는 ‘광야의 소리’를 외칠 사람을 찾고 있었을까요?

그때에!
북한 땅에서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려고 애썼습니다.
만주 땅 조선족에게 성경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한 권을 가져다 줄 수 있게 하신다면 백 권도 가져 가게 하실 것이라 생각하며 일반 성경 250권을 열 개의 가방에 넣었습니다. 250권이면 그리 많은 양이 아닙니다.
받은 분이 두려워서였을까요?
“놓고 가라요!”
한 마디만 했습니다. 고맙다는 말, 수고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섭섭한 생각은 잠깐이었습니다.
“이거이 말고 쪼그만 거이 있지요? 손바닥만한 거… 성경 있잖아요… 100권만…”
북조선에 보낼 수 있다며 그분은 숨 죽여 귀 가까이에서 속삭였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들린 보이지 않는 분의 음성, “나는 그 땅을 포기하지 않았다!”
제게는 분명 하늘의 소리였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태평양을 지나 성경을 가져다 주는 일을 꾸준히 했습니다.
수천 권의 조그만 꼬마 성경을 나르며 넘어지고 다치고 피 흘렸지만 서운하지 않았습니다.
북한 땅에 가져가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그들에게 맡겼습니다.
강을 건너온 이들에게 전해지기도 했고, 가지고 강을 건너간 이도 있었습니다.
주석 성경을 가져간 이도 있고요.
훗날 부친의 평양신학교 동기동창이셨던 분에게 75권의 주석성경을 특별제작해서 갖다 드렸지만 행방은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물을 기회도 없었고 섭섭한 마음도 없었습니다.
수만 권의 성경이 조선족에게 북한인들에게 한족들에게로 확산되어 전해졌습니다.
그들에게 수백만 권의 성경을 갖다 주며 섭섭한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나 선지자가 없던 400년의 긴긴 세월 동안 섭섭했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몇이었을까요?
예수님 탄생 후에 예루살렘에 있던 시므온은 어린 아기 예수를 안고 찬양했습니다.
그는 메시야의 탄생을 알았습니다.
북한에도 메시야의 탄생을 기뻐하며 예배하는 성도들로 가득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숨죽이며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만 합니다.
북한 땅을 언제 회복하시려는 것일까요?
저들의 섭섭한 마음을 우리가 달래줄 수는 없을까요?
북녘 땅 하나님의 백성들이 메시아의 탄생을 기뻐하며 목소리 높여 찬양하고 예배하는 그날이 속히 오기를 고대합니다.

무익한 종 이 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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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평양까지 가서라도 순종할 뿐입니다!

저의 첫 평양 방문은 정탐이 목적이었습니다.

관광팀에 끼여서 사진을 찍으며 현장을 뇌리에 새기고 사람들을 살폈습니다.

관광 일정을 따라 평양의 봉수교회를 가고 옥류관 청빈관 등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방문에서는 좀 더 과감한 시도들을 했습니다.

뉴톰슨 성경 75권, 꼬마 성경 50권, 4영리 400권을 숨겨서 들어갔습니다.

라디오도 가지고 가서 남한의 극동방송을 청취했습니다.

하지만 대담한 정탐 수준이었을 뿐이지 복음을 전하지는 못했습니다.

1990년 8월 4일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하나님의 책망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지 않았다고 지적하셨습니다.

두려움과 조심스러움 속에서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일들을 했을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목사인 저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분명하게 전하라는 것이었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저의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이후 7년을 북한 땅에 못 들어가면서 회개했습니다.


목사로서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평양 방문은 1996년부터 다시 시작됐습니다.

성경은 물론이고 신학 서적과 설교집들을 준비해서 들어갔습니다.

성도들과의 만남은 갈 때마다 가능했습니다.

황해도 신천을 여러 번 방문했습니다.

김익두 목사님의 마지막 사역지이자 반미 운동 고취가 목적인 박물관이 있는 곳입니다.

개성을 방문하면 의례 판문각을 안내해 주었습니다.

사리원을 지나면서는 개발되지 않은 모습을 눈여겨 보았습니다.

평양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북한에는 없는 자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책과 비디오 테이프를 가지고 가서 만나 교제하는 이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보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넘겨 준 것입니다.

그들과 만날 때마다 성경 말씀들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가져 간 짐 가운데에는 우리가 민통선 안에서 띄우던 복음 풍선도 있었습니다.

헬륨 가스가 없어 입으로 바람을 불어 창문 밖으로 날려 보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런 것들이 어떻게 평양까지 날라오는가?’라며 수군거렸습니다.

풍선에 지문이나 침이 남지 않도록 조심해서 처리했지만 불안했습니다.

묘향산으로 일찍 가야 했기에 그 사람들 틈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저의 평양 방문은 어떻게든 말씀을 전하는 것만이 목적이었습니다.

동상이나 납 인형 앞에서 절하는 것은 주님이 기뻐하지 않으시기에 거부했습니다.

그런 일정에서 몇몇 사람들의 신앙적인 고백을 들었습니다.

모퉁이돌선교회에 대한 소문 때문에 더 이상 북한 방문을 진행하지 못하게 되자 다른 일꾼들을 평양으로 들여보냈습니다.

복음 풍선을 기회 있을 때마다 남쪽에서 띄워 보냈습니다.

중국에서 북한인들을 만나 복음 전하는 사역을 활발하게 진행했습니다.

후방인 남한에서는 선교사와 기도하는 일꾼들이 늘어났습니다.


결국 저의 고백은 이것입니다.

“일은 하나님이 하실 뿐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를 그 자리에 보내셨을 뿐이다.”

북한으로 보내진 성경을 읽고 탈북하여 모퉁이돌선교회에서 일하는 일꾼이 있습니다.

열차 밖으로 버려진 사영리를 주워 든 사람이 남한에 와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로 사영리를 줍게 하셨고 탈북하게 하셨고 목사로 만드셨습니다.

그렇기에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악하지만 선한 뜻을 심어준 분이 하나님이시고 순종하고픈 마음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일이 진행되도록 이끄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한 사람의 순종이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느냐 하는 것은 제가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순종할 뿐입니다.

평양까지 가서라도.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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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숨어서 신앙을 지킨 그 할머니가 그립습니다!

월남전쟁이 끝나고 보트 피플이라고 불린 이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나라를 잃은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모습 속에서 고통당하는 많은 사람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1919년부터 1945년까지의 우리나라도 그런 상황이었을까요?

주권을 잃고 언어를 빼앗기고 한국인이 아니어야 했던 우리들.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에 와서 살던 사람들, 그리고 아비규환의 아프가니스탄을 가까스로 빠져나와

한국에 입국한 사람들이 갑자기 난민이 되었습니다.

낯선 땅에서 난민으로 살아야 하는 그들의 삶이 불쌍해서 마음이 아립니다.


문득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잃은 아픔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는 하늘 나라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그런 우리가 예배를 잃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기엔 너무나 힘든 현실이 되었습니다.

마음 놓고 예배하던 자유를 잃었습니다.

우리가 이럴진대 북한에서 믿음을 행사하지 못하고

하늘의 시민권을 감추고 살아야 하는 성도들은 어떨까요?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이었는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들의 하늘 시민권 회복을 도울 수 있기를 바라서 쌓아 온 사역들이

오늘은 왠지 아무런 결과가 없어 보이는 듯해서 마음이 슬퍼집니다.


2007년에 급사 상태로 판정 받은 저는 14년을 넘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지난 3월부터는 허리가 아파서 고통스러운 5개월을 지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북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의 법과 율례를 거스르는 세력들이 판을 치는 지금을 하나님께 아뢸 뿐입니다.

몸은 연약해 있지만 영은 그리스도의 진리 안에서 깨어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북한 땅이 회복되어 마음 놓고 찬양하며 기도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중국에서 만났던 그 할머니를 다시 기억합니다.

1987년에 49세였던 그분은 2004년 4월 22일까지 사셨습니다.

1960년에 북한으로 들어가 수십 가정을 그리스도 앞으로 이끌어 냈다던

공산당 노래에다 찬송가 가사를 바꿔 붙여 찬양하고 마루 바닥이 닳도록 기도하면서

주석성경을 보석이라고 부르며 그걸 갖고 용천으로 돌아가셨던 할머니.

밟혀 가며 믿음을 지켰던 그 할머니야말로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였는데…

숨어서 신앙을 지킨 그 할머니가 그립습니다.

그분을 17년 동안 꾸준히 도울 수 있었던 것은 축복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믿음 때문에 수용소와 감옥에서 죽어가는 성도들은 언제나 자유하게 될는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조금밖에 없음으로 인해 그저 괴로워하기만 해야 하는지……


때로는 너무 힘겨워서 육신의 아버지께 투정을 부렸습니다.

뜻밖에도 아버님은 “네가 그들을 조금이라도 돕지 않으면 누가 그 일을 하겠냐? 중단하지 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후로 지금까지 애써 눈물로 감당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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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하나님께 칭찬받을 일을 해 보지 않으시렵니까?

답답합니다. 속상합니다.

하늘길과 바닷길이 완전히 열리지 않아 사역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이 중단되지 않도록 엎드려 호소하고 간구하고 기도하며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사진 몇 장이 카톡으로 왔습니다.

홍해 바다에서 사람들이 예배하고 있었습니다.

또 홍해 바다 해변에서 세례를 주는 모습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 노동자로 와서 예수를 믿게 된 중국인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지역으로 인해 제한받지 않습니다.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나라가 형성되고 완벽하게 이루어집니다.

세례주는 이 사진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퉁이돌 선교회는 이스라엘에 있는 중국인들을 위해 중국어 성경책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10년 가까이 중국에서 사역하다 이스라엘로 사역지를 옮긴 선교사님을 통해 그들의 필요를 알게 되어 성경 배달을 시작했습니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세례 베푸는 일까지 감당하게 될 줄이야!

조속히 하늘길이 열려 이스라엘을 순례하며 성경을 배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런가 하면 코로나 때문에, 저희 선교회 소속이 아닌, 이스라엘의 한인 선교사 한 분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운영하던 장소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우리는 기도했습니다. 엎드려서 아뢰었습니다.

그리고 현장을 찾아간 저희 선교사님을 통해 우리와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역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보며 주님을 찬양합니다.

얼마 전에는 호주의 오랜 형제요 친구가 급하게 연락을 해 왔습니다.

북한 특수 사역을 위해 지난 40년간 일해 온 형제인데 제게 비밀 프로젝트를 제안했습니다.

당연히 하기로 했습니다.

무엇인지 알고 싶으세요? 통일이 되어 자유롭게 될 때까지는 기다려 주셔야 합니다.

이렇듯 코로나로 인해 사역이 중단된 게 아니라 오히려 확산되고 있습니다.

할 일이 많아졌습니다.

캐나다와 미국에 있는 형제들이 북한에 보낼 성경책을 더 인쇄하기 위해 기도 중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사역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 나라 백성 맞으시지요?

두려우세요? 답답하세요? 속상하신가요? 안타까우신가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로 준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밀어 내십니다.

하나님 백성의 손으로 두 렙돈을 드리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칭찬하시고 싶어 하십니다.

오늘, 하나님께 칭찬받을 일을 해 보지 않으시렵니까?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시겠다고요?

메말라 죽어가는 영혼에게 들려 줄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여러분의 손에 있습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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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십자가의 도, 예수 그리스도의 길로 타협 없이 걸어가십시오!

어떤 노인의 집에 냉장고가 4개 있었습니다. 음식물로 가득 차 있었겠죠?
하루는 그분이 시장에 간다길래 제가 “뭐 사러 가세요?” 하고 물었습니다.
“먹을 거!” 그분의 답이었습니다. 제가 무슨 말하려는지 아실 거에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수십 년 들어왔습니다.
창세기부터 역사, 시, 사람 이야기, 지리, 예언, 창조, 타락 그리고 예언으로 가득 찬 신약의 서신들, 뿐만 아니라 회개와 비유, 십자가의 고난, 부활, 승천, 재림, 산상수훈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끊임없이 들었을 겁니다.
불행하게도 듣기는 들었어요.
마치 할머니가 냉장고에 물건을 차곡차곡 넣어 두듯, 구원과 치유와 위로의 이야기를 오늘도 듣지만, 정작 핵심을 놓치고는 좋은 거 또 사러 갑니다.
더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얻기 위해 방송, 라디오, CD, 더 나아가 말씀 전하는 분들에게 귀를 기울입니다. 선교 이야기, 순교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런데 핵심을 빠뜨렸습니다.
그게 뭐죠? 성경이 “십자가의 도”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가 걸어간 길이 바로 핵심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하고 싶었던 말,
바로 “십자가의 도”,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골방으로 들어가십시오. 말씀을 먹으십시오. 빛을 발하십시오. 행하여서 완전하십시오.
피 흘리기까지 세상을 대항하고 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썩어서 죽어야 열매를 맺는다라고 가르치십니다. 심지어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드리라고 기록되어 있건만 그저 구원 받았다는 두루뭉술한 말로 넘어가는 것이 오늘 한국 교회의 모습이고,
세상 교회의 모습입니다.
심지어 동성 연애에 대해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당연한 것처럼 말하고 용납하는 정치 판도가 오늘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타협하지 마십시오.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만 가능했던 그 구원의 역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린 피만이 보혈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타협하지 마세요! 오늘 예수를 믿었든, 20년 전에 또는 70년 전에 믿었든 타협하지 마세요! 세상과 타협해서는 방법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만이 방법인 것을 분명하게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죄를 짓고 유혹을 받고 넘어집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만이 방법이라는 사실입니다.
권력도, 돈도 타협할 것이 되지 못합니다. 북한 성도들에게는 너무 지나친 말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아니올시다.
피 흘려서 죽기까지 대항하십시오! 그것이 사는 길임을 아셔야 합니다. 차라리 순교하여 영생의 길을 택하시길 촉구합니다.
스스로 속지 마세요! 속이지 마세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보혈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걸어갈 마땅한 길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수많은 성경 속 역사 이야기, 언약 이야기, 계시의 이야기를 알지만 마치 냉장고에 음식을 집어 넣듯, 넣기만 할 뿐 십자가의 도를 빼앗긴 한국 교회와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를 다시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타협해서는 방법이 없습니다.
순종하고 그 자리에서 피 흘려 죽으십시오! 바울과 제자들은 이것을 마땅히 여겼습니다.
보혈을 따라 죽어간 하나님 백성들의 피가 오늘 우리로 하여금 여기까지 오게 했다면 이제 우리만이 아니라 우리 후손들에게도 그 십자가의 도가 마땅히 있어야 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과 20절 말씀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학자가 어디 있느냐 이 시대의 논객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의 지혜를 어리석게 만들지 않았느냐”라고 반문하는 바울 사도의 고린도 교회를 향한 메시지가 오늘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러분에게 전해지고 있음을 아멘으로 받아 끝까지 주의 나라를 위해 타협하지 않고 주 안에서 십자가만을 자랑하며 달려가는 하나님의 백성들 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

무익한 종 이삭

<제63회 컨퍼런스에서 고린도전서 1장 18~31절을 본문으로 전한 이삭 목사의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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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한 생명을 구하는 데 미쳐야지요!

“아이고, 이걸 선교 보고라고 보냈어?
겨우 몇 명 예수 믿게 했다는 말이잖아?”

수화기 너머에서 들린 말입니다.
저는 못 들은 척하고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러고는 엉엉 울었습니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신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것일까요?

한 미국인 형제가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용인을 안내해 달라고 부탁해서 간 어느 곳에서 형제는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28년 동안 선교한 티벳에서, 결국 한 사람이 예수를 믿었다지. 선교사는 세례를 베풀고 너무 기뻐서 그 사실을 전보로 알렸대. 본부에서는 직접 와서 보고해 줄 것을 요청했고 선교사는 오랜만에 사역지를 떠나 본국으로 향했어. 그런데 그 다음날 세례 받은 사람을 주민들이 돌로 때려 죽여 독수리들이 시체를 뜯어먹게 했다네.”
그 말을 한 미국인 형제는 “그 선교사가 내 아버지일세…” 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또 하루는 허드슨 테일러의 손자가 저의 누추한 홍콩 숙소를 방문했습니다. 때마침 저는 성경을 배달하기 위해 그 숙소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저의 어머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찾아왔노라던 그는 “이게 무슨 미친 짓인가 생각하고는 하지?”라며 저를 위로했습니다.
“아무도 당신이 하는 일을 인정하지도 잘하는 일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네. 나도 내 할아버지가 인정받지 못할 일을 왜 하셨을까 하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고, 하나님만 아실 일이지만 언젠가는 고마워하는 이들을 만날 걸세. 내 할아버지가 중국 선교를 한 그 일로 내게 고맙다고 말하는 중국인들을 종종 만나는 것처럼 북한의 그 누군가는 이삭 목사의 딸들이나 손녀들에게 고맙다고 하는 일들이 있을 걸세.”
악수하고 돌아서는 테일러의 손자 역시 울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이걸 선교 보고라고 했어? 북한 땅에 무슨 지하교회가 있다고 그래? 무슨 지하 성도가 있어! 뭐? 이스라엘 선교도 한다고? 말도 안 돼. 이제는 베트남 선교사까지 돕고 있다며? 이삭 목사 정말 미쳤구나? 몇 사람이 예수 믿게 됐다고… 차라리 목회를 하지 그랬어!”

하지만 이런 말도 들었습니다.
“이 목사! 내가 이삭 목사의 부친과 평양신학교 동기 동창인 거 알고 있었나?”
“네에?”
“나는 아네. 이삭 목사의 일이 어렵지만 큰일이라는 걸.”
교단 목사님 몇 분이 들려주셨던 말씀들을 기억합니다.

통일이 되면 교회건축을 하시겠지요? 자원봉사도 하고, 쌀도 나누어 주실 테고요. 하지만 오늘 바로 해야 할 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코로나로 어려운 선교사님들께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고, 이스라엘의 선교사님과 가족들과 현지인들을 돕고, 북한에 가려고 준비하는 몽골인들과 러시아에 있는 고려인들도 키워야 하고요. 태국 근방의 소수민족을 위해 선교사들이 일할 수 있도록 길도 열어야 합니다.
저는 오늘 제가 감당할 일들을 할 것입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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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북한에서도 성경이 답입니다

무익한 종 이삭

오랜 세월 성경을 가까이할 수 있었던 것은 큰 복이었습니다.
성경을 읽도록 가르쳐 주신 어머님께 고마운 마음입니다.
목사님이셨던 아버님 서재의 책들은 언제나 꺼내서 볼 수 있었습니다.
가르치기 위해서, 설교하기 위해서라도 저는 성경을 옆에 끼고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경을 갖기 위해 눈물 흘리며 오랫동안 기도해 온 분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의 필요를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그 요구를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몽골인이든 러시아인이든 중국인이든 성경이 답인 것을 저는 알았습니다.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성경을 필요로 한다는 이야기는 제 가슴을 뛰게 만들었습니다.
그림으로라도 만화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볼 수 있음은 축복입니다.
삶을 성경,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할 수 있다면 복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북한 주민의 손에 들려주고자 합니다.
그들의 말로 낭독한 말씀을 저들의 귀에 들리게 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저들의 생명을 살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보급하는 일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북한을 살리고 통일이 될 때를 위해 기도해 오셨지요?
모퉁이돌선교회는 그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그들의 언어로 된 성경을 오랜 기간 번역하여 인쇄하고 배달해 왔습니다.
38선에 가득한 향기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날이 올 때를 대비해서 북한어 성경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한 권, 한 권이 모여 북한을 무너트릴 것입니다.
여리고 성은 여호수아 군대의 순종에 의해서 무너졌습니다.
어리석어 보이는 그들의 순종이 전투 없이 여리고를 함락시켰습니다.
이제, 순종하여 하나님의 백성답게 일어나서 함성을 외칠 주의 백성을 찾습니다.
몇 권이 필요하냐고 묻는 이들이 있습니다.
몇 권을 준비하실 수 있느냐고 제가 되묻습니다.
한 권을 준비하실 수 있으세요?
그렇게 시작하세요.
열 권을 준비하실 수 있다면 더 빨리 되겠지요?
100권을 준비할 수 있는 1만 명만 있다면 어떨까요?

저는 큰 북한어 성경을 양가죽으로 제본해 달라고 부탁해 놨습니다.
사전이 들어간 북한어 성경을 들고 북한 땅에서 설교할 그날을 기다립니다.
그날이 오기를 저는 끊이지 않고 기도합니다.
오늘도 강화도 훈련원 바로 건너편에 보이는 북한 땅을 향해서 마음을 정하고 기도합니다.
어제는 북한 땅이 잘 보였는데 오늘은 비가 내리더니 흐려져서 잘 보이지 않네요.
어두운 저 땅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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