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자편지] “보냄받은 자리에 남아 주의 뜻을 따르겠다”며…

그해 탈북을 포기한 65명의 북한 성도를 만났습니다.
이제 우리가 일어나야 합니다. 부르심을 점검해야 합니다.
저 닫혀 있는 그 땅에 들어가 하나님이 유업으로 주신 땅을 차지해야 합니다.

1985년 늦가을은 선교사로도, 세상적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도 늦은 시점이었습니다.
사업을 중단한 지 6년째에 접어들었고, 목사 안수를 받은 지는 3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아무 후원자나 돕는 분 없이 발을 내디딘 상황이었습니다.
그저 주시는 대로 길을 떠나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중국으로의 첫 정탐 방문이 이뤄지고 2년간 하나님의 이끄심을 기다렸습니다.
1985년에야 확실한 인도하심을 받고 현장으로 떠났습니다.
이미 40을 넘긴 늦은 나이였음에도 하나님은 제 가슴에 북한 땅을 향한 길을 열어 놓고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사역지에서 저의 부르심을 재확인해 주셨습니다.
“나는 그 땅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말씀에서 “너는?”이라는 숨겨진 언어를 강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중국을 떠나왔는데 떠난 게 아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왔는데 돌아온 게 아니었습니다.
제 마음은 실제로 거기에 남아 있었습니다.
모든 상황이 “아닌 듯”한데 하나님의 부르심과 보내심에 대해서는 “예”가 되었습니다.

한 해 두 해가 가고 여섯째 해에 끔찍한 고난을 경험했습니다.
사역을 감당하기에 육체는 힘들었고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때 그만 두었어야 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더 많이 더 계속해야 했을 뿐입니다.
바로 그해 탈북을 포기한 65명의 북한 성도를 만났습니다.
“보냄받은 자리에 남아 주의 뜻을 따르겠다”며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라고 고백하던 이들이었습니다.
그러고 4년 반 후에 “주님의 뜻에 따르기로 한” 그들의 결과를 알고자 찾아갔습니다.
6명의 젊은이는 보위부원에게 대항하다 매맞아 죽었고, 나머지 59명은 굶고 병들어 죽었으며, 1991년에 세 살짜리였던 손녀도 병들어 죽었답니다.
이 이야기를 전하던 택시 운전사는 흐느끼며 “예수가 무엇이기에…”라며 나도 예수쟁이가 되었노라고 말했습니다.

5년이 지나고 10년, 25년, 그리고 지금 37년 차에 이르렀습니다.
수백 번의 발걸음이 수천 번의 설교와 도전이 되었나 봅니다.
같은 뜻을 품고 기도하는 이들이 늘어났고, 젊은이들이 이곳저곳에서 일어나 선교지로 보내졌습니다.
이제 우리가 일어나야 합니다.
북한, 중국, 선교지를 유업으로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말씀 안에서 확인하고
부르심을 점검해야 합니다.
오는 7월에 경기도에 위치한 소망수양관에서 선교 컨퍼런스를 갖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셨습니다.
2년 만에 모이는 65회 선교 컨퍼런스에서 하나님께서 유업으로 주신 선교지를
믿음으로 취하는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예배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 닫혀 있는 그 땅에 들어가 하나님이 유업으로 주신 땅을 차지해야 합니다.
곧! 예, 곧입니다.

2022년 6월 15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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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역자 편지] 저와 함께 기도의 무릎을 꿇지 않으시렵니까?

한국 땅에 7만 명의 기도 회원을 찾고 있는 제 마음을 아시나요?
기도하는 한 사람이 하나님이 없는 한 국가보다 강합니다.
모일 수 없어 각자가 자신만의 골방에서 기도해 왔지만 이제는 함께 모여 기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를 위한 기도가 시작이었습니다.
저의 안전과 먹을 것, 집과 학업과 직장, 건강… 이런 제목을 놓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더 보게 되고 나이가 들면서 관심 가는 분야가 늘었습니다.
자연히 기도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교회와 목회자, 이웃 성도와 예배 회복을 위해 간절함으로 아뢰었습니다.
이웃 나라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과 선교사들을 위한 기도와
원수를 사랑하게 되기를 바라는 기도도 더해졌습니다.
당연히 복음 통일을 위해서도
북한 사역과 그 땅에 어려움을 겪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기도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땅굴 속에서, 또 마룻바닥이 닳도록 기도하며 “주여!” 이 한 마디에 생명을 거는 주의 백성을 우리는 얼마나 불쌍히 여겼는지요?
“천국에서나 만나자”는 말도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라던 한 노인의 말도…
65명의 성도는 매맞아 죽고 병들어 죽고 굶어 죽어 가면서도 믿음을 지켰답니다.
“왜 이제야 왔소?”라며 묻던 북한 청년은 혼자만 예수 믿게 된 것이 서러워 혼절하고 말았습니다.
감사하고 속상하고 지옥에 갔을 어머니에게 미안해서… 그 청년의 마음을 아시나요?
하나님 아버지의 가슴에 쌓인 이 아픔의 소리를 나로 깨닫게 해 달라고 부르짖어 보았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나는 그 땅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시던 그 음성을 저는 또 듣고 있습니다.
“그 땅에 내 백성이 살아 있다”라고 하신 그 음성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기도 제목들을 하나님께 아뢸 수 있게 하신 것이 축복임을 기억합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이미 사랑하셔서 거룩함으로 나가게 하신 그 은혜가 오늘의 축복이랍니다.
한국 땅에 7만 명의 기도 회원을 찾고 있는 제 마음을 아시나요?

기도하는 한 사람이 하나님이 없는 한 국가보다 강합니다.
그동안 코로나로 모일 수 없어 각자가 자신만의 골방에서 기도해 왔지만 이제는 함께 모여 기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퉁이돌선교회는 5월 28일에 모여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기도용사 연합기도회’를 가지려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뜨겁게 기도함으로 메말랐던 심령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각자가 회복되고, 그 능력을 힘입어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기를 기도하고 북한을 위하여서도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 땅이 회복되고 우리 교회가 회복되기를 바라며 저와 함께 기도의 무릎을 꿇지 않으시렵니까?

2022년 5월 16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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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역자편지] 찾아가서 아뢰고 의논할 분은 하나님뿐이었습니다.

때가 가까워서일까요?
북한 땅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아뢰었습니다.
이제 북한 땅이 건너다 보이는 곳에 위치한 강화훈련원에 북한 성도들을 기억하며 예배하고 기도하는 이들이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북한 선교를 물어볼 대상이 없었습니다.
찾아가서 아뢰고 의논할 분은 하나님뿐이었습니다.
기도 외에 달리 방법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묻고 답을 기다려서 그대로 행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국 정탐 여행을 제안을 받았을 때에도 저는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인도하심을 분명히 알게 되었을 때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하나님이 길을 열어가심을 따라 갔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한두 번 중국에 다녀오면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성경을 그토록 사모하는 이들을 만났습니다.
성경을 배달하며 그들의 필요와 북한 성도의 아픔을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저들을 위해 제가 할 일이 무엇인가요?”라고 여쭈었을 때 주신 말씀이 “나는 그들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은 땅을 나도 포기해서는 안 되겠다는 믿음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들을 이웃으로 사랑하고 도울 길을 찾아야 했습니다.
성경을 배달하며 성도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모든 것을 동원했습니다.
모퉁이돌이나 제가 할 수 없는 일은 할 수 있는 이들과 동역하면서 감당했습니다.
때가 가까워서일까요?
마땅히 할 일을 가르치는 일을 감당하려고 훈련원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북한 땅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아뢰었습니다.
4년 전에 그런 폐교를 알게 되어 오랫동안 기도했습니다.
제가 찾아갈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기도 부탁은 하지만 필요한 것을 교회나 사람에게 요청하지는 않았습니다.
조그만 방을 하나씩 수리하기 시작해 컨테이너를 준비하고 부속 건물을 지어서 준공검사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여 갖게 된 건물입니다.
저는 하나님밖에 찾아갈 곳도 아뢸 분도 따로 없습니다.
18세 이후 제 인생 전체를 통틀어서 도움을 줄 분들이 없었습니다.
다만 한 분 하나님만이 제 삶 전체를 이끌어 오셨다고 확신합니다.
죄를 범하고 넘어지고 실수하고 시행착오를 겪는 동안에도 지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와 무릎을 꿇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제게 그대로 적용된 구절들이 가득합니다.
그 말씀이 공산권 국가에서도 적용될 것을 압니다.
하나님이 저 같은 죄인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시고 인도하셨습니다.
같은 사랑으로 하나님이 북한 땅의 백성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사랑하심을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번역해서 북한어로 출판하고 배달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말씀이 바로 살 길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성경 한 권을 얻기 위해 눈물로 기도한 성도들이 성경을 품에 안고 생명의 양식이라며 눈물 흘리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 북한 땅이 건너다 보이는 곳에 위치한 강화훈련원에 지금도 숨죽여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북한 성도들을 기억하며 예배하고 기도하는 이들이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나아가 북한 성도들을 향해 기도할 용사들이 훈련되고, 선교 현장에 나아가 복음 전할 일꾼들이 훈련되는 사역이 일어나기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오늘도 이 길을 같이 갈 분들과 함께 가고 싶습니다.

2022년 4월 15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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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역자편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것입니다

“성경 가방을 들고 강변으로 가야 한다”라고 선교사님이 일러 주었습니다.
즉시 가방을 챙겨서 북한이 건너 보이는 곳에 섰습니다.
두 팔을 들고 한참을 울면서 기도하는데 눈을 떠 보니 거짓말처럼 가방이 없어졌습니다.
“아니, 가방…” 하고 놀라서 작은 소리로 말했지만 이미 누군가 와서 가방을 모두 수거(?)해 갔고 성경 배달은 끝이 나 있었습니다.
누구인지 또 어디로인지도 모른 채 우리는 그 지역에 머물며 기도하고 헤어졌습니다.
저는 서서 기도만 했을 뿐입니다.

성경 배달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동원됩니다.
한번은 300명의 어린이들이 중국어 성경을 5권씩 가져 갔습니다.
아이들은 성경을 모아서 호텔 로비에 쌓아 놓았습니다.
그 1만 5천 권을 현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이 수거해 갔습니다.
또 미국인이 많이 드나드는 어떤 호텔에 이상한 가방 수십 개가 놓였습니다.
서울에서 가져 간 가방을 미국 청년들이 두고 사라진 것입니다.
제가 그 가방을 가져다 배달했습니다.
눈에 띄는 곳에 가방을 둔 청년들을 마음속으로 나무랐지만 그 성경은 제가 배달하려던 이들에게 무사히 전달되었습니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현장에서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이곳에는 오지 말아 주십시오….”
다른 지역은 그냥 다녀가더라도 여기는 들르지 말아 달라는 간절한 부탁이었습니다.

모퉁이돌선교회는 ‘그들로 사역하게 하라’는 방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북한, 중국, 아랍 국가, 이스라엘 할 것 없이 가서 가르치고 교제하고 섬길 부분만 감당하고 나머지는 그들로 일하게 합니다.

저에게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것입니다.
선교에 뜻있는 분들이나 목회할 분들을 훈련시키고 싶습니다.

강화훈련원에서, 애굽으로, 요르단으로, 이스라엘로 가서 성경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가르치면서 다음 오는 세대의 일꾼을 만들고 싶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구브로, 그리스, 그리고 터키를 순례하면서 준비시키고 싶습니다.
훈련 중에 탈락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모사드 정보원 한 사람을 찾기 위해 1500명을 만난다고 합니다.
마지막 한 명에도 만족할 수 없다면 탈락시키고 다시 1500명을 찾는다고 합니다.
다음 세대를 위한 일꾼을 찾아 키우고, 갈 수 있도록 훈련시켜서 보내고 싶습니다.
강화훈련원이 그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달하는 또 다른 방법은 바로 방송입니다. 코로나로 사방이 막혀 있는 지금은
전파를 이용해서 북한에 하나님의 말씀을 배달하고, 예배와 기도와 찬양을 함께합니다.
특별히 금년 부활절을 맞으며 하나님께서 부활의 메시지를 선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여 남북한의 성도들이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는 부활절 연합예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고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이 북녘의 성도들에게,
또 한국과 열방의 성도들에게 넘치게 되길 기대합니다.

2022년 3월 15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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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역자편지] “북한의 문은 한 번도 닫히지 않았습니다”

“통일이 되면 평양에 교회를 세울 거에요.
통일이 되면 제자를 삼으러 가야지요.
통일이 되면 고아원과 양로원을 하려고 준비 중이에요.”
통일이 안 되면 교회를 세우거나 제자를 삼을 수 없겠군요.
주님은 통일이 되면 제자를 삼으러 가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에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며칠 전 악명 높은 북한의 전거리교화소에서 3년을 복역하며 8명에게 전도한 탈북 자매를 만났습니다.
그 자매는 “북한의 문은 한 번도 닫히지 않았습니다. 지금 북한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몇 번이나 강조해서 들려 주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북한에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방송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 편지나 전도지를 보낼 수 있습니다.
중국, 몽골, 러시아, 일본, 독일, 미국 성도들이 평양에서 제자 삼는 일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저는 1985년부터 북한 사역을 시작한 이후로 방법이 없는 게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주의 뜻에 맞게 제자를 삼으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피땀 흘리며 어려움을 겪는 그들을 후원하고 그들이 일하게끔 뒤에서 기도해 줄 방법이 정말 없을까요?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약속을 주님이 지키고 계십니다.
북한에 지금도 교회가 세워지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하나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하교회 사역자들이 훈련하여 세워집니다.
성경배달은 북한을 넘어 다른 공산권 나라까지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구제도 하고 탈북민 고아들을 중국에서 돌보고 대학에도 보내고 있습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도록 여러분의 손길과 후원을 동원하고 계십니다.
통일 후에 하시겠습니까?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외면하시렵니까?
저 땅에서 복음을 듣지 못한 백성들이 죽어 가고 있습니다.

일곱 살 때 어머니에게서 북한 선교를 하도록 권고받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네가 안하면 누가 하겠냐?”라고 말씀해 주신 아버님께 고마운 마음입니다.
통일 후에요?
아니요.
지금 준비하면서 한편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모퉁이돌선교회는 코로나 상황에서도 2022년 봄 학기에 하나님의 일꾼을 세우는 선교 훈련을 진행합니다.
북한에 가서 가르칠 성경 교사를 양성하고, 선교에 관심을 갖고 선교지와 후방에서 하나님이 주신 은사로 선교에 참여할 신실한 사역자들을 세우는 인턴십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배우는 그 사역에 함께하는 복을 누리길 기도합니다.

2022년 2월 14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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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역자편지]성경은 제게 ‘무익한 종’의 자리를 알려 주었습니다

저에게는 젊은 날에 당한 어려움을 극복하려 애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저를 지켜 보시며 인도하시던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을 이해했을 때
“아! 이 일을 하게 하시려고 나로 그 어려운 상황을 겪게 하셨구나” 하는 고백을 수도 없이 했습니다.
사역을 시작할 무렵, 공산 정권 하에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믿음이 자라고 성도로 준비되는 것을 기뻐하시던 어른들을 만났습니다.
북한에서 태어나 중국으로 떠밀려 와 만주 벌판에서 살게 된 조선족들이었습니다.
또 문화혁명 당시 공안원 노릇을 하다가 예수 믿고 목사가 된 중국 사역자도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하나를 키워서 성도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문화혁명 자체가 옳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북한의 공산주의나 주체사상에 찌든 이가 예수를 만나고 누리는 그 ‘자유함’을
우리는 사실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그런 어른들을 통해 배웠습니다.
저는 목회자들의 어려움과 실패도 가까이에서 보았습니다.
그 일이 제게 좋은 교훈이 되었고 성경은 그런 제게 ‘무익한 종’의 자리를 알려 주었습니다.
과거에 실수하고 무너졌고 지금도 여전히 부족하고 안타까울 정도의 못남이 있지만
주님은 그런 저에게 선교 사역이라는 일거리를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누가복음 17장은 한 주인에게 종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종은 쟁기질과 양떼를 치는 일거리를 이미 맡고 있었습니다.
그가 일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주인은 식사가 준비됐으니 앉아서 함께 먹자고 하지 않습니다.
너는 주인이 먹고 마시도록 준비하고 허리를 동이고 시중을 든 후에야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그런다고 주인이 종에게 사례나 감사를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라고 말해야 하는데 입술로만이 아니라
마음 바탕에 그런 자세가 있는 것이 믿음을 더하는 것이라고 누가복음 17장은 기록합니다.
마땅히 주어진 종의 자리라는 마음으로 섬기는 것이 믿음을 더하는 것이다면
그것이 바로 ‘순종’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대가 없이 순복의 자리를 끝까지 당연히 지켜내는 것이 복된 믿음임을 알기에 저는 순종을 택하도록 이끄셨음을 감사히 여기며 살아가고자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북한과 중국에 살아 있는 성도들의 필요를 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그들을 당연히 아껴야 할 책임을 보이셨습니다.
그 일을 주인 되신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저는 주인의 자녀들을 섬길 길을 열어 주심을 받았을 뿐입니다.
“마땅히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라는 종의 고백이 저의 고백이 되게 하셨습니다.
주인이 순종할 기회를 주셨고 감당할 수 있도록 인도하셨기에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므로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성경 배달, 그게 선교냐!”라는 핀잔을 들을 때도 ‘제게 주어진’ 일임을 알았기에 사람의 마음이 아닌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따라 순종한 무익한 종이었을 뿐입니다.
순종하도록 이끄시고 그 자리에 머물고 싶도록 만든 분이 저의 주인인 ‘하나님’이셨습니다.
2022년에도 처음처럼 그 주인의 뜻에 맞게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이 머무는 북한과 중국과 소수민족, 아랍과 이스라엘의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이 교회와 성도를 핍박하는 소식이 여전히 선교 현장에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중지해서는 안되고 중단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선교입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저와 여러분이 오직 우리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만 순종하며 기도하고, 예배하고, 선교하는 무익한 종의 자리에 서 있기를 기도합니다.

2022년 1월 14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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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역자편지] 예수의 복된 소식을 저 북녘 땅에 전할 길을 열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어떻게 초심을 잃지 않고 지금까지 오실 수 있었어요?”
이렇게 묻는 이들을 가끔 만납니다.
“성경을 배달하는 게 사람들이 인정할 만한 특별한 일도 아닌데 어떻게 그 오랫동안…”


답은 이렇습니다.
제가 할 줄 아는 게 없습니다.
특별히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성경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뜻밖에 너무 많은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성경을 배달하고, 돌아와서 현장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성경을 한 권씩 열 권씩 사 주면서 배달하라고 부탁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일을 한 두 번 하던 것이 10년, 20년을 지나 36년을 지나온 것 뿐입니다.
그 일이 저로 하여금 보람을 느끼게 했고 북한에 성경을 보급할 길을 찾게 했습니다.
중국어 성경도 보급했습니다. 병음성경을 배달하며 한편으로 중국어 주석성경을 번역하게 했습니다.
그 와중에 북한어 성경을 히브리어와 헬라어에서 직접 번역하여 출판하였습니다.
만화로 된 성경 이야기도 북한과 아랍권과 불교권에 보급했습니다.
어려운 일도 없지 않았습니다.
잡혀 들어가 매도 맞고 고문을 당했습니다. 선배 선교사들도 그런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몇몇 분들에게 성경 배달하는 게 무슨 선교냐는 핀잔을 들었지만
선교 현장을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한 권의 성경을 받아 들고 기뻐하는 이들을 보면서 느낀 고마움을 경험하면 아마 그들도
제가 하는 일을 이해하거나 동참하지 않았을까요?
하여간 저는 특별히 다른 일을 할 재능도 능력도 없었는데 이 일만은 하게 됐고,
여전히 더 많은 나라에 전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계속 공급하셨고 확장시켜 주셨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성경을 배달할 수 있는 기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중국은 더 이상 출입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심각하게 가중되고 있습니다.
북한도 어려워졌습니다.
더 이상 배달이 가능하지 않을 듯 보이십니까?
아닙니다. 방법을 달리할 뿐이지 하나님의 나라는 그들의 횡포로 제한받지 않습니다.
좀 더 지혜로운 방법을 찾아야 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제게 그렇게 일하도록 길을 열어주고 계십니다.
아랍권과 중동 지역은 마음으로 기도만 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은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도와 달라는 이스라엘 현지의 요청에 기도회 뿐만 아니라 방송, 선교사 가족들과
한국문화 센터까지 감당해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이제는 구유에 누이신 어린 양,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의 복된 소식을 저 북녘 땅에 전할 길을 열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할 줄 아는 게 없습니다.
다만 무익한 종으로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순종할 것입니다.
금년 성탄절에도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감격이 우리 모두에게 차고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음에 굳게 서 있는 북녘의 성도들이 성탄의 소식을 기뻐하기를 기도합니다.
고난 중에 있는 중국의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기뻐하고,
아랍과 이스라엘에서도 예수의 탄생을 기뻐 맞이하기를 소망합니다.
특별히 선교지에서 복음을 전하며 수고하는 선교사들에게 성탄의 기쁨이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무익한 종으로 하나님만을 기뻐하는 저와 여러분에게 성탄의 기쁨이 가득하길 축복합니다.

2021년 12월 15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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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역자편지] 고통 중에 소리 내어 찬양하지 못하는 이웃이 있습니다!

국군 장교였던 이모부가 6.25 전쟁 중에 전사했습니다.
얼마 후 이모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어린 나이에 제주도로 피난을 가야 했습니다.
피난 중에 어머니는 북한 땅으로 복음을 들고 가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1963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시기 전, 어머니는 미국 시민권을 가지면 북한에 갈 수 있다며 다시 재촉하셨습니다.

1970년 판문점을 방문해서 그 땅을 바라보았습니다.
1983년 중국 단동에서 추위에 언 손을 들고 울며 기도했습니다.
1985년 모퉁이돌선교회를 시작하던 그해 바로 중국으로 들어갔습니다.
우선 조선족들을 위해 성경을 배달하는 게 목적이었기에 성경 밀수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족을 통해 북조선에 성경을 공급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황해도 해주까지 찢어진 쪽지 성경부터 두터운 주석 성경들이 배달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 주민의 상황을 듣게 되었습니다.
소문 내지 않고 조용히 북에서 요구되는 것들을 전달했습니다.

1988년 겨울 저는 직접 북한 땅에 발을 디디기 시작했습니다.
라디오를 가지고 가서 방송 가능성을 타진했습니다.
머무는 호텔의 도청장치를 이용했고 가져 간 짐을 뒤지도록 유도했습니다.
성경책 외에 그들이 관심 가질 만한 책과 비디오를 방 안에 전시해 놓았습니다.
풍선을 호텔 방에서 밖으로 날려 보내기도 했습니다.
전도지를 가져다가 기차 안에서 밖으로 버려 보았습니다.
톰슨 주석성경 75권을 특별 제작하여 000에게 전달했습니다.
복음을 전할 기회는 기껏해야 5-6명 정도의 동행인과 식사를 하면서 독방에서 나눌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북한 성도들이 그들의 언어로 된 성경을 보내 달라는 요청을 해 왔습니다.
신약의 헬라어 원문을 한글로 번역한 후 북한 말로 번역했습니다.
신약 성경 번역을 마친 후에는 곧 바로 구약의 히브리어 원문에서 한글로, 다시 북한 말로 번역해서 북한어 신구약합본 성경을 인쇄하였고, 북한 성도들에게 보내는 사역을 했습니다.
이 일을 위해 일꾼들을 준비해 놓으셨던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하나님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북한어와 남한어를 한 페이지에서 비교하며 볼 수 있는 《남북한 병행성경》을 출판할 수 있도록 힘과 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코로나로 인해 북한에 성경을 보내는 일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로 한국에 와 있는 탈북민들을 주목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실 복음통일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마중물로 보내신 귀한 지체들입니다.
금년 성탄절에 탈북민 교회와 성도들에게 《남북한 병행성경》을 선물로 보내려고 합니다.
오늘 여러분과 제가 해야 할 실제적인 사역입니다.
이 사역에 기꺼이 참여하시는 여러 분들이 계십니다.

지금도 고통 중에 소리 내어 찬양하지 못하는 이웃이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간절한 기도가 국경이 봉쇄되어 오갈 수 없어 애태우는 북녘의 성도들에게 전해지고,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이 저들에게 닿아 위로하는 그 일에 저와 여러분이 함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021년 11월 15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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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역자 편지] 저는 그 사람들 중 한 명일 뿐입니다

성경을 가득히 채운 가방 몇 개씩을 들고 메고 떠났습니다.
많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현장에 도착해 보면 늘 부족하게 여겨지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비용이 좀 들어도 무거워도 더 가지고 올 걸 후회가 됐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 또 성경을 준비했고, 성경 구입 비용을 담당한 분들에게 안전하게 돌아왔다는 전화를 했습니다.
그러고 나면 수요일에 시간이 있느냐, 금요 철야 기도회에 와 줄 수 있느냐, 유년부 아이들에게 설교하러 올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렇게 36년 넘게 성경 배달과 설교와 글 쓰는 일로 집을 떠나 바쁘게 살았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여행 일정이 제한되다 보니 지난 2월과 3월에는 정말 처음으로 오랫동안 집에 머물렀습니다.
아이들과 지난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뜻밖에도 “아빠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고 있기에 고마웠다”라며 눈시울을 붉히는 것을 보게 됐습니다.
고맙기는 하지만 아빠가 없는 시간은 어쩔 수 없는 부재와 아픔이었을 것입니다.
나름대로 짧은 시간이라도 아빠의 역할을 잘 감당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이는 제가 사역 중심의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한편으로 저는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역을 잘 감당해 왔나? 질문을 해봅니다.
현장에서 만난 성도들에게 성경은 잘 나누어 주었지만 설교나 글 쓰는 일에는 늘 부족함을 느끼기에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선교 보고를 하라고 하면 가깝든 멀든 어디든지 갔습니다.
교회의 크고 작음이나 나이의 많고 어림도 구별하지 않았습니다.
청소년 집회에서 도전받은 학생들이 성장해 선교사, 목사로 헌신한 일꾼들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아프리카에서 어떤 이는 아랍권에서 사역합니다.
지난 3월 만 76세의 나이에 허리를 다쳐 불편한 상황임에도 여전히 선교 보고를 요청받고 있습니다. 아픈 허리를 매만져가며 승합자로 부산까지 가서 선교 보고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몸이 불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보고를 하는 것은 책임일 따름입니다.
어제 오늘만이 아닌 지난 기간 연약함을 안고 사역에 임했습니다.
40도의 열이 있어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현장으로 가곤 했습니다.
14시간 비행기 안에서 끙끙거리면서도 저같이 어리석고 부족한 사람이 이렇게라도 쓰임받을 수 있음이 고마웠습니다.
성경을 받아 들고 울며 고마워하는 이들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한 권의 책이 나를 살렸다고 말하는 성도의 고백이 있었습니다.
저로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습니다.
코로나가 창궐한 지금도 사역이 점점 확장되고 있음은 감사한 일입니다.
아랍권과 이스라엘, 불교권으로 사역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많은 나라의 성도들이 북한과 중국과 몽골과 러시아와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합니다.
저는 그 사람들 중 한 명일 뿐입니다.
7만 명의 한국 회원들이 확보되어 함께 이 길을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7만 명의 성도가 하나님께 읊조리며 간구하는 기도가 상달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10월 30일 북한에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임하길 선포하는 기도회가 준비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 한 사람이 되어 함께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2021년 10월 15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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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역자편지] 한 줌의 쌀, 그리고 한 줌의 흙을 위해 함께 기도할 이들을 찾습니다

한 줌의 쌀이라도 보내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한 자루, 한 가마를 자전거, 리어카, 버스, 트럭 등에 실어서 보냈습니다.
밀가루와 옥수수를 컨테이너를 동원해서 보내기도 했습니다.
의약품을 비행기와 선박에 의존해서 보낸 적도 있었습니다.
밀수라는 극단적인 방법도 사용해야 했습니다.

굶어 죽어가는 것을 듣고서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145번 중국을 드나들 때마다 조선족 성도들이 아낌없이 도와 주었습니다.
자그마한 조선족 교회와 목회자들도 외면할 수 없어서 그들에게 성경책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교회를 건축하고 신학교를 시작하고 고아원, 양로원을 세워서 후원했습니다.
할 수 있는 대로 조선족을 해외로 이끌어 내서 공부도 시켰습니다.
방송, 라디오, 컴퓨터, 핸드폰 등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찾아내야 했습니다.

일꾼들이 몽골과 러시아에서 기꺼이 자원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위해 기꺼이 삶을 드렸습니다.
그렇게 수고한 종들에게서 복음을 받아 들고 현장으로 돌아간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36년이라는 세월 동안 해외 여러 나라를 방문하며 복음이 저 북녘 땅에서 역사하고 있음을 나누었습니다.
눈물을 흘려서 호소하고 저들을 잊지 말자고 외쳤습니다.
지금도 몽골에서 러시아에서 북한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일꾼들이 일어납니다.
어떤 이들은 북한에 들어가 사역을 하다가 잡혀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중남미로, 모슬렘 권에서 사역을 했습니다.
불교 권에서 일하는 이들도 만났습니다.
현장은 다르지만 북한 성도를 기억하고 기도하는 분들입니다.
기회가 오면 평양에 가서 교회를 개척할 날을 기다리는 분들입니다.

사역을 하면서 지치고 피곤해서 쉬기도 했습니다.
연약한 몸을 이끌고 보냄 받은 곳으로 가야 했습니다.
매를 맞았습니다.
끌려가서 고문도 당했습니다.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일곱 살 때 “북한으로 가라”시던 어머님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그 때문에 고통스런 과정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받아 지금까지 감당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통일은 오지 않았습니다.
한국 교회가 모두 일어나서 기도하고 한 줌의 쌀을 보내기 위해 헌신한다면 일어날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한국 교회 성도를 위해서도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화훈련원은 한국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오는 세대를 위해 준비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입니다.
훈련원 수리가 끝나가자 또 생각에 젖었습니다.
터키의 갑바도기아에 있는 지하 성도들의 땅굴처럼 파내고 싶었습니다.
한 줌의 흙을 파내어 기도 땅굴을 만들고자 합니다.
북한 성도들의 형편을 조금이라도 기억하며 기도하고자 합니다.

저는 여전히 한 줌의 쌀과 밀가루를 북한에 보내고 있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책임이기에 이 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게 주어진 이웃이잖아요?
한 줌의 쌀, 그리고 한 줌의 흙을 위해 함께 기도할 이들을 찾습니다.

2021년 9월 15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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