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을 돌아보며] 백두산 자락에 예배하는 스물일곱의 북한 성도 (2025.01)

1985년 모퉁이돌선교회가 시작되었다. 지난 40년간 본회가 지나온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이었다. 40주년을 기해 모퉁이돌선교회에 있어서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던 사역들 중에서 매달 하나씩을 선정해 하나님께서 행하신 귀하고 놀라운 은혜를 돌아보며 앞으로를 준비함에 있어 발판을 삼고자 한다. 이달에는 북한에 지하교회가 존재함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던, 백두산 자락에서 예배하는 스물일곱 명의 성도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산중 비밀 예배 처소를 다녀왔습니다

“살아있습디다.”
“무슨 말씀이신지….”
“예수 믿는 사람이 조선에 있습디다. 여기 증표를 가져왔수다.”
얼마 전 북한에 친척 방문을 하고 귀국한 조선족 사역자는 조심스럽게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이삭 목사에게 내밀었다. 누런 갱지에 검은색으로 쓴 종이에는 스물일곱 명의 이름과 나이가 적혀 있었다.
“이것은…”
사역자의 얼굴을 보며 묻던 이삭 목사는 자신이 생각한 것이 맞다는 사역자의 눈짓 사인을 받는 순간 황급히 종이를 접어 탁자 밑에 감췄다.
“지도자가 기도를 부탁하며 건네 준 전 교인 명단입니다.”
“어떻게 손에 넣었습니까?”
이삭 목사는 탁자 쪽으로 바짝 다가앉으며 물었다.
“백두산 기슭에 난 꽤 험한 길이었는데 한 두세 시간쯤 걸었을라나요? 산속 깊은 곳까지 가니까 웬 움막 하나가 있습디다. 거기에 여자아이가 앉아 있었는데….”
조선족 사역자는 그때가 생생하다는 듯 이야기를 이어갔다.

믿음을 지키도록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라요

“누구냐! 어떻게 왔어?”
조약돌로 공기 놀이를 하던 여자아이는 낯선 사람을 보고 경계심을 드러내며 물었다.
“안심해. 확인하고 내가 데려온 분이야.”
조선족 사역자와 같이 온 친척이 나서고 나서야 여자아이는 겨우 경계하는 빛을 풀었다. 아이는 곧장 뒤돌아서서 마치 모스 부호를 두드리듯 일정한 리듬의 신호를 움막 안으로 보냈다. 그러자 사람이 나왔다.
“이리로 드시지요.”
그의 손짓을 따라 들어간 움막 내부는 이중 구조로 되어 있었다. 문 밖으로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예배 처소가 움막 가운데 위치해 있었는데, 그곳을 울타리처럼 뺑 두른 제법 큰 공간을 따로 두어서 바깥에서는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예배 처소에는 열일곱 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누더기 옷에 뼈만 앙상하게 남은 영락없는 거지 꼴이었지만 두 눈만은 총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잠시 후, 거기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일어났다. 손에는 닳고 닳은 성경이 들려 있었다. 그분은 낮은 목소리로 말씀을 전했고, 성경책이나 찬송가가 없는 나머지 성도들은 그 할머니가 하는 말을 놓칠세라 온 신경을 집중했다.
말씀이 끝나자 다같이 찬양을 불렀다. 그런데 소리를 내지 않고 다들 입 모양만 벙긋벙긋했다. 아무리 깊은 산중이어도 만에 하나를 대비해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비록 귀로는 들리는 것이 없지만 백두산 자락에서의 움막 예배는 그 어떤 예배보다 마음을 울렸다.

모든 순서를 마치고 조선족 사역자가 여자아이에게 물었다.
“얘야, 너 소원이 있니?”
“할머니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네다.”
당찬 말투가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사역자는 이번에는 할머니에게로 다가갔다.
“저는 곧 중국으로 돌아갑니다. 저에게 부탁할 것이 있으십니까?”
여든한 살의 할머니는 말 대신 갱지 한 장을 가져다가 자를 대고 펜으로 줄을 쳤다. 그러고는 스물일곱 명 성도의 이름을 칸마다 또박또박 정자로 적었다. 그 옆으로는 나이를 썼는데 이십 대부터 팔십 대까지 연령층이 다양했다.

“이 스물일곱 명을 위해 기도해 주시라요. 오늘까지는 무릎을 꿇어 기도하며 믿음을 지켰는데 내일까지도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소. 순교를 당하더라도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라요.”
종이를 받아드는 사역자의 손이 떨렸다. 이 귀한 것을 어떻게 가져가야 하나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허벅지에 종이를 대고 붕대로 감고 헝겊으로 다시 겹겹이 쌌다. 사역자는 며칠 후 스물일곱 명의 기도 부탁을 마음에 품고 국경을 넘었다.

북한에 예배하는 주의 백성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전하는 사역자의 눈가가 촉촉히 젖었다.
“그분들을 뵙고 중국으로 돌아오기 직전에 백두산 을 갔습니다. 한참을 산을 오르다가 갑자기 소변이 마려워서 인적 없는 숲속을 찾아 들어갔는데 글쎄 한 십여 명 정도가 둘러 앉았던 것 같은 흔적이 풀밭에 남아 있지 뭡니까. 이상한 생각이 들어 주변을 살펴보니, 저쪽 끝에 나무 껍질을 벗겨서 묶어 놓은 십자가가 보였습니다. 예배를 드린 자리가 틀림없었습니다. 저는 성도들이 앉았을 자리 자리마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황급히 자리를 떴습니다. 급하게 나오느라 십자가를 챙겨 오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1987년의 일이다. 당시 북한에 성도가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백두산 자락에서 예배하는 성도들의 명단은 분명한 증거와 확신이 되었다. 이후, 모퉁이돌선교회는 북한 성도들에게 필요한 성경을 보내고 지하교회 성도를 적극 지원하면서 한국 교회에 북한 지하교회를 알리는 역할을 감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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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예배를 마치고] 북한을 향한 기쁨의 노래가 울려 퍼지다! (2025.01)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2024년 북녘 성도와 함께 드리는 성탄 예배에서 드려진 고백이다. 라디오 방송을 통해 북한에 있는 성도들과 한국 땅의 성도들, 탈북민들이 모여 구원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기뻐했다. 이번 성탄 예배에는 많은 탈북민 교회와 성도들이 참여했다. 나오미찬양단이 찬양과 신앙 고백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탈북민 성가대에 북한기독교총연합회 소속의 교회와 목회자들, 탈북기독군인회 회원들, 다음세대 우리들학교 학생들 200여 명이 참여해 영상과 편지, 결단, 기도 등의 특별 순서로 가슴 뭉클한 고백과 사연을 나눴다.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예수님을 모르는 영혼들을 향한 그들의 애끓는 목소리를 지면에 옮긴다.

18년 전, 헤어진 딸에게 띄우는
엄마의 음성 편지

꿈결에도 보고 싶은 사랑하는 내 딸아!
지금 어느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이 엄마를 기억이나 할지, 혹시 나를 원망하지는 않는지, 알 길 없는 이 엄마의 안타까운 마음 말로 다 표현할 길 없구나!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생각 나고, 눈이 오면 눈이 와서 그립고 해가 뜨면 해를 보면서 딸을 생각한 지가 어언 18년이 흘렀구나. 꿈속에서도 너의 모습은 우리가 헤어질 때의 14살 모습 그대로여서 더 마음이 아파. 이제는 30대 중반으로 가는 너의 모습을 그려보려고 해도 그려지지 않는구나.
보고 싶고 사랑하는 딸아, 어디에 있을지라도 이 엄마와 너는 한 몸임을 기억해 주렴. 낙심하지 말고 지치고 힘들어도 힘을 내서 살아 주렴. 엄마가 믿는 하나님께 매일 매시간 기도한단다. 어느 날 불현듯 꿈같이 너를 만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나는 기도한다. 너가 있는 곳이 어디든 하나님은 살아 계시니까!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딸을 건강하게 살려 주시기를 기도한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 딸이 북한 땅 어느 곳에 있는지 어느 수용소에 갇혀 있는지 다 알고 계시니 찾아가 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어떤 통로를 통해서든지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리라 믿는다. 그래서 우리 딸을 통해 또 주변 사람들이 주님을 믿고 살아가는 힘을 주실 하나님을 기대한다. 딸아, 손 한 번 잡아보고 우리 딸에게 따뜻한 밥 한 번 해주고 싶은 이 엄마의 간절한 소원을 오늘도 나와 우리 교회는 간절히 기도한다. 만날 때까지 용기 내어 잘 견뎌 주기를 간곡히 부탁한다. 사랑해. 우리 딸!

18년 전, 가족이 탈북하는 과정에서 붙잡혀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간 딸에게 보내는 엄마의 마음이 절절하다. 생사 여부를 알지 못하나 전파를 통해 울먹이며 북한의 딸에게 전하는 어미의 애가가 울려퍼질 때 방송을 듣는 북한의 성도들이, 감시하는 요원들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북녘의 백성들까지, 듣는 이마다 구원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백성들이 가득하게 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을 믿으라 전했던
친구에게 보내는 성탄 편지

사랑하는 친구야!
이 엄동설한에 어찌 지내는지. 우리 헤어진 지 벌써 5년이 되었는데 너무 보고 싶어! 언제나 따뜻한 사랑으로 주변 사람을 돌아보고 나에게 ‘너는 죽지 않을 거야. 우리가 기도하고 있으니 살 거야’ 하던 내 친구야! 아프지는 않는지 밥은 먹고 사는지, 너는 내가 아플 때나 슬플 때나 늘 내 곁에 있어주고 큰 힘이 되어 주었지. 병마로 죽어가던 나를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밤낮으로 기도하며 ‘주님만 믿고 마음의 기둥이 든든하면 이 험한 세상도 웃으며 살아 갈수 있다’고 깨우쳐 준 너는 내 인생의 천사 같은 존재였어!
절망적인 시간이었지만 나에게 소망을 주고 포기하지 않고 기도해 준 너의 기도로 나는 한국에 와서 병도 치유받고 하나님을 믿고 있어. 주님을 만나고 보니 너와 함께했던 모든 순간들이 더욱 소중하고 하나님께서 북한에서 너를 나에게 보내주셨다는 생각이 들어. 어두운 창고에서 산속의 이름 모를 나무 밑에서 오늘도 주님만 바라보며 기도로 살아내고 있을 너를 위해 이제는 나와 우리 모두가 함께 기도하고 있어.
너에게 진 기도의 빚을 이제는 내가 갚고 싶어. 오늘도 누군가에게 목숨 걸고 복음을 전하고 있을 너를 생각하면 나는 내 친구가 자랑스러워! 사랑하는 친구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그 사랑을 두렴 없이 전하고 있는 너를 생각하며 북한에서 성탄절을 함께 보내게 될 그날을 꿈꾸며 기다린다. 친구야! 우리 이 땅에서 만약 못 만나면 천국에서 꼭 만나자! 친구야 아프지 마 그리고 사랑해!

북한에서 병에 걸려 죽기 직전까지 갔을 때 하루도 빠짐없이 와서 보살펴 주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권면하며 기도해 주던 세상에서 둘도 없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그 친구가 기도한 대로 자신은 병을 이기고 한국에 잘 도착했지만, 여전히 북한에서 고혈압과 생활고로 고생하고 있을 친구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 온다고 한다. 이 편지를 듣는다면 너무너무 좋아할 그 친구를 꼭 죽지 않고 살아서 만나 하나님 믿고 교회를 다니는 지금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말해 주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하나님, 이 성경을 북한에 있는
언니에게 전하겠습니다!

언니, 잘 계신가요?
전화하면서 하나님을 믿으라고 한 말 잊지 않으셨죠? 형부가 처제가 믿는 하나님을 우리도 믿어보자고 한 말. 믿음 생활 잘하실 줄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만이 살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다시 만날 때 하나님의 큰 축복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북한에 있는 가족과 친구와 이웃들에게 ‘남북한병행성경’을 보내겠다고 하나님 앞에서 선포한 한 탈북 성도가 “북한의 문이 열릴 때 이 성경을 북한에 있는 언니 김ㅇㅇ에게 전하겠습니다”라고 결단하며 쓴 짧은 메모이다. 20년 전, 북한에 있는 언니와 통화할 때 “언니, 하나님 살아 계시거든. 하나님만 믿어 봐.”라며 전도를 했고, 또 다시 전화로 연결됐을 때 “처제가 믿는 하나님을 우리도 믿어보자”라던 형부의 말과 “기도할 때 무슨 말을 해야 하니? 손을 비벼야 하니? 무릎을 꿇어야 하니?”라고 묻던 언니의 음성이 생생하다며, 지금은 언니가 얼마만큼 하나님 앞에 가까이 왔을지 궁금하고, 꼭 언니 부부에게 이 성경을 전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강화 선교센터에서 북한을 향해 밝힌
성탄 트리 점등식

하나님 아버지, 세상에 이런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지구상 그 어디에도 이런 나라는 없습니다. 눈앞에 고향 땅을 두고도 가보지 못하고 만날 수도 없는 이 분단의 아픔이 언제까지입니까?
하나님, 우리 마음의 오랜 슬픔이자 아픔인 저 땅 우리 형제 자매들에게도 속히 생명의 빛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육의 어둠과 영혼의 어두움 가운데서 소망 잃고 살아가는 저들을 생명의 빚 가운데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한 줄기 빛을 소망하며 기다리고 있는 우리 형제 자매들에게 진리와 생명의 빛이 임하셔서 어둠이 스스로 물러가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우리의 눈물을, 우리 민족의 눈물을 닦아 주실 하나님, 오랜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오니 이 땅을 고쳐 주시옵소서. 이 땅의 모든 걸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우리로 하여금 성탄의 기쁨을 함께 나누며 다시 춤추게 하실 그날까지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북한을 향해 성탄의 빛을 밝힌 모퉁이돌선교회 강화 선교센터에서 올려진 탈북민의 간절한 기도이다. 염하강 건너에 위치한 북한의 희미한 불빛을 바라보며 50여 명의 탈북민들이 두 손을 높이 들고 눈물로 기도하였다. 북한 땅을 향해 믿음으로 선포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통해 “통일은 여기서 이미 시작됐다”라는 기쁨의 고백을 했다.

327권 남북한병행성경이
성탄 선물로 전해졌습니다!

2024년에도 복음통일의 마중물로 이 땅에 온 탈북민 교회와 성도들에게 남북한의 언어를 비교하며 볼 수 있는 《남북한병행성경》 327권을 성탄 선물로 나누었습니다. 이번에도 많은 분들이 기도와 헌금으로 동참해 주셨습니다. 성경을 받은 327명의 탈북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북한의 문을 여실 때 북한에 있는 전도 대상자들에게 이 성경책을 전달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참여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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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소식] 굶주린 북한 친구들에게 꼭 전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중학교 3학년 김에녹이라고 합니다.
모퉁이돌선교회 어린이 캠프와 이삭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서 북한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고,
동생 온유와 함께 북한 친구들을 돕기 위해 돼지 저금통을 채워 왔습니다.
이제 저금통이 거의 다 차서 보내드립니다.
추위와 굶주림에 힘들어할 북한 친구들에게 꼭 전해주세요.
그 친구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기를 위해, 속히 복음통일이 되어 북한 친구들이
자유롭게 신앙 생활하게 되기를 계속 기도하겠습니다.

김에녹, 김온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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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 소식] 암 환자 전도양육센터가 개척되었습니다 (2024.12)

2020년 8월 팬데믹 기간 중에 주신 비전을 드디어 이루어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A국은 코로나 이후 병원에 외부인이 출입할 수 없어서, 병원 전도팀이 암전문병원 옆에 있는 여관들에 가서 전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A국에는 암전문병원이 별로 없기에 거의 모든 암 환자가 각 지방에서 이곳으로 올라와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습니다. 형편이 되는 사람들은 치료를 받는 동안 싸구려 여관에서라도 자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그 몸으로 땅바닥에서 잡니다. 그들을 위한 양육센터를 놓고 몇 년 동안 기도해 오다 드디어 하나님의 때가 되어 구체적인 준비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단 우리는 센터를 운영한 경험이 없고 재정적인 한계도 있어서 병원 옆에 작은 건물을 얻어 암 환자와 가족을 위한 전도양육센터를 개척하기로 했습니다. 그곳에 샤워실과 세탁기를 준비해서 마음껏 사용하게 하고, 전도된 사람들에게는 성경을 가르치고 간단하게 식사를 대접하는 정도로 시작해, 잘 되면 확장하는 것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A국의 특수한 사정으로 인해 암 환자들은 이곳에서 전도를 받아 예수님을 영접해도 고향에 돌아가면 갈 수 있는 교회가 없고, 설령 있다 해도 교회에서 양육을 받을 수 없기에, 이들을 잘 양육해서 집으로 간 후에도 줌 예배에 같이 참여하게 하고 리더로 발굴해 작은 가정교회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주님의 때에 주님의 방법으로 일해가심이 정말 신묘막측하다”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비전을 주셔서 눈물로 기도는 했지만 너무나 큰 재정과 인력이 필요한 막대한 프로젝트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아 솔직히 기도하면서도 낙심이 되고 내가 성령의 음성을 제대로 들었나 의심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암치료를 받고 땅바닥에서 자면서 고통과 싸워야 하고, 또 죽어서는 지옥에 가야 하는 그들을 생각하면 눈물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부족한 저 같은 사람에게 아버지의 마음을 부으셔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 같은 심령으로 눈물만 흘렸는데 놀랍게 이루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암 환우와 가족을 위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가 탄생되기를 기도합니다.

A국에서 김ㅇㅇ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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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 특집] 고난의 감옥에서 받은 구원의 선물 (2024. 12)

가장 어두운 그곳에 비친 따뜻한 한 줄기 빛

“연희 언니야, 걱정하지 마. 언니네 아들 중국에서 잘 지내고 있대.”
차가운 감옥 벽에 힘 없이 이마를 기대고 앉아 있던 연희는 아들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여 고개를 들었다.
“우리 아들…? 그게 무슨 말이야?”
애써 놀란 기색을 감추며 연희는 봄이에게 되물었다. 말투는 침착했지만 쿵쾅쿵쾅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를 어쩌지는 못했다.
“아들 잘 지낸다고… 하나님이 언니 아들 잘 돌봐 주고 계신대.”
봄이는 다시 한 번 또렷하게, 그러나 감방 안의 다른 죄수들에게는 들리지 않게 조심하여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하나님은 또 무슨 말이야? 하나님이 누군데?”
“언니는 아직 잘 모르지만, 하나님은 언니를 잘 알고 계셔.”

봄이는 수수께끼 같은 말만 쏟아냈다. 연희는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되어 혼란스러웠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나를 아는 어떤 분이 내 아들을 돌봐 준다’는 봄이의 말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들이 잘 있다는 말이 사실이기를 바라는 기대감도 생겼다. 아니, 너무 절박한 나머지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고 싶는 심정이었다.

연희는 두 번째로 강제 북송을 당해 북한 감옥에 갇힌 신세였다. 몇 해 전, 중국에 인신매매로 팔려가 그곳에서 아들을 낳고 살았지만 불법 체류자의 신분을 면할 수 없었다. 결국 국경에 있는 감옥으로 보내져 조사를 받았다. 말이 조사지 실상은 수시로 불려가 보위원들에게 호된 고문과 협박을 받는 과정이었다.
연희는 두 번 북송되었다는 이유로 첫 번째 때보다 더 심한 고초를 겪어야 했다. 정신을 잃을 때까지 맞는 날이 계속되다 보니 몸이 성한 데가 없었다. 그런데 연희에게는 만신창이가 되는 육체의 고통보다 더 큰 마음의 고통이 있었다. 중국에 혼자 남겨진 어린 아들에 대한 근심이었다. 고작 다섯 살밖에 안 된 꼬마가 엄마 없이 어떻게 살 수 있을지 생각만 해도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아들에 대한 걱정은 그녀의 영혼을 철저히 잠식해 나갔다.

아들의 생사 여부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온갖 고문과 노동에 시달리던 그녀의 몸과 마음은 갈수록 시들해졌다. 곧 쓰러져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가 됐지만 연희는 살아서 아들을 다시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버티고 또 버텼다.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아들에게 행여라도 해가 될까 봐, 중국에서 잡힌 순간부터 일절 아들의 존재를 언급하거나 서류에 쓰지 않았다.

그렇게 아들에 대해 철저히 함구하고 혼자서만 애달아 하던 차에 봄이가 그 ‘아들’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아들의 존재를 어떻게 안 것인지 연희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미심쩍고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연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봄이를 믿어 보기로 했다.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감옥에서 봄이는 연희의 유일한 말벗이 되었다.

전날의 두려움이 기도로 한숨이 찬송으로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무슨 노래야? 참 좋다. 나도 배워 줘라.”
처음 듣는 곡인데도 가락이며 가사가 연희에게 큰 잔향을 남겼다.
“언니, 이거 하나님을 높이는 찬송가야. 따라해 봐.”
연희는 귀를 쫑긋 세웠다.

“내 주는 자비하셔서 늘 함께 계시고
내 궁핍함을 아시고 늘 채워 주시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연희는 봄이가 부르는 대로 흥얼거렸다. 그런데 찬양을 하면 할수록 연희는 이 노래가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들 걱정 때문에 한 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는 어미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근심하지 말아라. 내가 함께한다. 나만 따라오너라.’ 하는 따뜻한 위로의 말씀으로 들렸다.
연희와 봄이는 어려운 순간이 올 때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를 부르며 힘을 얻었다. 찬양이 끝나면 봄이는 연희에게 꼭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주었다. “옛날 옛날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에 관한 것이었다. 봄이는 창세기부터 알기 쉽게 이야기 형태로 차근차근 성경을 풀어주었다. 오늘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대목을 할 차례였다.

“하루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데려가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셨어. 아브라함은 이삭과 함께 곧장 모리아 산으로 향했지. 산으로 가는 길에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물었어. ‘제물로 바칠 양은 어디 있나요?’라고. 아브라함은 주님께서 준비해 주실 것이라고만 대답했어.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장소에 이르러 이삭을 꽁꽁 묶고 칼로 내리치려고 했어. 그런데 그 순간, 하나님이 아무것도 하지 말라며 아브라함을 막으셨어. 하나님은 이삭을 대신해서 바칠 숫양을 준비해 주셨고, 아브라함은 그 양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어. 마치 우리를 대신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신 것처럼 말이야.”

봄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연희는 아브라함이 수풀에 걸린 양을 발견하는 장면에서, 이삭을 대신할 제물을 예비하신 하나님이라면 자신을 위해서도 무언가를 준비해 주시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이 생겼다. 봄이는 예수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어. 언니와 내가 지은 죄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거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 죄가 용서받았어. 그래서 2천 년 전,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육신의 몸으로 이 땅에 태어나셨어.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 또 다른 구절에선 이렇게 되어 있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봄이가 매일 속닥거리며 나눠주는 성경 이야기들은 이렇듯 연희의 믿음이 자라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신기한 것은 연희와 봄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주변에서 관심을 가질 법도 한데, 감방 안의 죄수들과 간수들은 그 두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보호하심 아래 연희를 위한 일대일 비밀 성경 공부는 몇 달간이나 지속되었다.

지옥 같은 감옥이 하나님을 만나는 천국으로

“뭐? 남조선 사람을 만났어? 네가 기독교를 알아? 그리고 교회를 다녔다?”
화가 머리 끝까지 뻗친 간수가 몽둥이를 탕탕 내리치며 고함을 질렀다. 조사실에서 흘러나오는 살기등등한 위협적인 소리에 감방에 있던 죄수들은 미동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이게 성경책이라는 걸 알면서 중국에서 가져왔단 말이지? 어? 하나도 아니고 몇 권을?”
간수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구두발과 몽둥이로 조사받는 사람을 마구 차고 때렸다. 괴로워하는 비명 소리와 사람을 질질 끄는 소리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공포의 순간이었다. 억만 년 같은 길고도 괴로운 시간이 지나고 고요가 찾아들었다.
다음날 연희와 봄이가 알게 된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중국에서 전도를 받아 교회에 갔던 어떤 여자가 손바닥만 한 성경책을 여러 권 가지고 오다가 잡혔고 감옥에서 어제 맞아 죽은 것이었다. 연희는 덜컥 겁이 났다. 비밀리에 하고 있는 성경 공부가 발각되는 날에는 자신도 같은 꼴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연희는 원망하듯 봄이에게 따져 물었다.
“왜 나한테 와서 이래? 여기 갇혀 있는 사람이 몇백 명인데. 왜 나에게 말을 걸고 잘해 주는 거야?”
봄이는 투정하듯 불만스럽게 따지는 연희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하나님이 언니에게 가서 말해 주라고 하셨어. 하나님이 언니에게 나를 보낸 거야.”
“나한테로 보냈다고? 어떻게? 내가 누군데? 무엇이길래….”
연희는 북받쳐 오르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언니야, 이것 봐라. 내가 어제 뭐 주워 개꾸 왔게?”
봄이는 괜찮다는 듯 연희를 향해 밝게 웃으며 손을 펴 보였다. 반짝이는 유리 조각이었다. 봄이는 어제 몸이 아픈 연희를 대신해서 건설장에 다녀왔다. 일하다가 깨진 유리 조각을 발견해서 몰래 들고 온 모양이었다.

“언니야, 망 좀 봐라. 내가 이거 할 동안에.”
봄이는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 연희는 영문을 모른 채 경계의 눈초리로 주변을 살폈다.
“언니도 이 글 적어라.”
연희는 봄이가 가리키는 데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벽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봄이가 깨진 유리로 벽을 긁어서 쓴 성경 구절이었다.
“배짱 한 번 두둑하다. 이거 들키는 날에 우리는 맞아 죽는다.”
연희는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며 말했지만 사실 하나도 무섭지가 않았다. 억울하게 갇혀서 매 맞고 못 먹으며 서서히 죽어 가느니 차라리 하나님을 위해 옳은 일을 하고 싶었다.
“언니야, 우리는 여기서 죽든지 나가든지 하겠지. 우리가 없어지고 나서 이 자리에 믿는 사람이 들어오면 ‘아, 우리 말고 또 믿는 누군가가 있어서 여기다 이런 걸 적어 놨네?’ 하지 않을까?”
봄이의 말에 연희는 전적으로 뜻을 같이했다. 봄이에게서 유리 조각을 건네받아 연희도 하나님의 말씀을 벽에다 썼다. 이 구절을 읽는 사람들이 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을 믿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또한 이미 믿음이 있는 이들에게는 “너의 신앙을 버리지 말아라. 지금은 감옥에서 고통스럽게 살 수밖에 없지만 죽으면 영혼이 자유를 얻어 구원을 받지 않느냐. 하늘나라가 얼마나 행복한 곳인데 그곳에 가는 걸 포기해선 안 된다.”는 의미가 전달되기를 원해서 한 글자 한 글자에 정성을 담았다.

그 일이 있고 네댓 달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봄이가 자신에 찬 어조로 뜬금없는 말을 했다.
“언니, 나는 이제 이 감옥에서 나갈 거야. 내가 나가고 일주일 후에 언니도 나가게 될 거야.”
그 말을 남긴 봄이는 정말 얼마 안 있어서 감옥에서 풀려났다. 연희도 그로부터 7일 후에 다른 도시로 이송되던 중 기회를 얻어 도망을 쳤다. 연희는 감옥에서 겪은 일을 회상하며 한 가지 중요한 고백을 했다.
“중국에서 북한으로 끌려가기 직전에, 공안이 제 손을 묶은 끈을 느슨하게 풀어주면서 도망치라고 눈짓을 했어요. 저는 이미 자포자기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냥 가만히 있었죠. 그런데 옥에 갇히고 몇 달 만에 다른 일이 터지면서 극적으로 탈출할 수 있었어요. 하나님이 허락하신 거였죠. 그때의 일들을 되짚어 보면 제가 만약 중국에서 살 때 전도를 받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을 해 보지만 저는 아마 거절했을 거예요. 제가 듣지 않을 것을 아신 하나님께서 고생스럽더라도 북한 감옥에 가게 하신 거였어요. 모든 희망이 사라진 그곳에서 하나님은 봄이를 붙여서 복음을 듣게 하셨고, 감옥에서 일대일 제자 양육까지 받게 하셨어요. 겉으로 보기에는 감옥에 갇힌 죄수였지만, 실제로는 구원을 받아 천국의 삶을 누리는,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복 받은 사람이었어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북한, 그것도 기독교인을 가장 악랄하게 다루는 북한 감옥에서 복음을 듣도록 역사하신 하나님은 모든 상황을 뛰어넘는 전능함으로 오늘도 북한에서 친히 구원을 이뤄가고 계신다. 모퉁이돌선교회는 북한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로 감옥에 갇혀 신음하는 성도들과 북한 감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 전도인들을 돕고 있다. 갇힌 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지원하는 사역에 참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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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소식] 북성교회 70주년을 기념해 북한어 성경 78권을 보냅니다

6.25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포탄이 북성리 마을로 날아와 ‘눈 앞에서 가족을 잃은 아픔’을 여전히 기억에 담고 살아가야 했던 지난 시간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제 ‘저 북녘 땅에 고통받으며 십자가 복음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는 영혼들’을 보게 하셨습니다. 기괴한 기계 소리로 24시간 대남방송을 내보내는 ‘흉측한 소음’은 오히려 ‘고통으로 절규하고 있을 북한 영혼들의 울부짖음’처럼 들려왔습니다.

교회 회의를 통해 모퉁이돌선교회 ‘북한에 성경을 보내는 사역’을 감당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70주년이니 70권이 목표가 되었습니다. 거룩한 부담감이 몰려왔습니다. 마치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는 이때에(마24:12),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도 ’네 믿음을 보겠느냐?’(눅18:8)라고 물으시는 듯 여겨졌습니다.

놀랍고 감사하게도 그 결정에 온 성도들이 기쁨으로 화답해 주셨습니다. 성경 헌금은 모두 76권이 드려졌으며, 그날 참석하지 못한 2분의 헌신으로 총 78권의 헌금이 보내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북성교회의 북한 사역은 이제 시작되었습니다. 북녘의 영혼들을 바라보며 기도하게 하시려고 ‘북성교회’를 이곳에 세워주셨다는 믿음이 솟아났습니다.

“주님! 저 북녘 땅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고 있습니다. 속히 구원하옵소서!”

강화 북성교회 김선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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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 특집 1] 스무 명을 전도하고 여섯 성도와 예배합니다 (2024.11)

스무 명을 전도하고
여섯 성도와 예배합니다

“동옥아, 오늘 사람들이 수근거리는 걸 들었는데, 중국에 가면 예수님이 살려준다더라.”
별일 아니라는 듯 동철은 무심한 말투로 동생 동옥에게 말했다. “동철 오빠도 그 소리 들었소? 아까 인민반에 갔댔는데 글쎄 중국에 다녀온 여자가 비판서를 읽으면서 ‘교회에 갔더니 먹을 걸 줬습니다.’라고 하지 않았겠소. 그 여자는 ‘잘못했습니다. 다신 안 가겠습니다’라며 싹싹 빌었지만 그 덕에 사람들이 ‘교회가 먹을 거를 준다.’는 걸 알게 됐지 뭐야요. 온 동네가 하루 종일 그 얘기를 하느라 아주 들끓었소.”
‘먹을 거’라는 말을 할 때 동옥은 유독 힘을 주었다. 배급이 끊어져 쌀독이 빈 지 이미 넉 달이 지났다. 내일 끼니를 무엇으로 때울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뭔가 방법을 찾아야 했다.
“오빠, 앉아서 배급이 나오기만을 기다릴 거요? 우리도 강 건너….”
동옥은 동철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아꼈다. 그런데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그러냐.”라며 펄쩍 뛸 줄 알았던 동철이 의외로 잠잠했다.
“뇌물이 고이면 경비대도 움직이겠지.”
동철은 방도를 알아보겠노라며 동옥에게 약조했다.

조물주 하나님이 나를 위해 고통당하시다니

야심한 시각, 압록강을 건너 중국 땅에 들어선 동철과 동옥은 근처 인가로 다가가 문을 두드렸다. 똑. 똑. 그 문에서 누가 나오느냐에 따라 자신들은 공안에 신고되거나 인신매매로 팔릴 수 있기에 남매의 심장은 두 근 반, 세 근 반으로 뛰었다. “밖에 누구요?” 다행히 조선말을 하는, 눈매가 선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북조선에서 먹을 것을 구하러 나왔습니다. 도와주시라요.” 동철이 경계를 풀지 않으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자 집주인은 재빨리 사방을 살펴, 보는 눈이 없음을 확인하고 얼른 두 사람을 집 안으로 끌어당겼다. “일단 여기서 지내시오. 우선 급한대로 있는 음식을 챙겨볼 테니 절대로 밖으로 나와선 안 됩니다. 큰 소리가 나서도 안 되고요.”

 

집주인은 거듭 주의를 주고 밖으로 나갔다. 비록 누추한 창고에 마련한 거처였지만, 도움을 받을수 있으리란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동철과 동옥은 긴장이 풀려 스르륵 잠이 들었다. 다음날부터 며칠간 동철 남매는 낮에는 집주인이 창고로 가져다주는 식사를 하고, 저녁에는 그 집에 건너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남조선 TV를 보았다. 그러던 중 집주인이 조물주 이야기를 꺼냈다. “만물에는 다 만든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도 주인이 있는데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동철은 하나님이란 말이 튀어나오자 움찔했다. 동옥도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치떴다. 그런데 집주인은 두 사람이 이해를 못 했다고 생각했는지 다른 각도로 부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죽으면 북조선에서는 뭐라고 말합니까? ‘세상을 떠났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세상을 떠난다는 건 달리 갈 데가 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이 세상을 떠나 지옥이나 천국으로 가야 합니다.

믿는 사람은 천국에 가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지옥에 떨어집니다. 지옥에 가기 싫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집주인은 하나님, 예수님, 죄, 십자가, 사랑, 은혜 등의 단어를 써 가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러나 동철은 귓등에 스치는 말들을 듣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기독교인이나 남조선 사람들이 북조선 사람의 장기를 팔고 피를 뽑기 때문에 가까이 가서는 안 된다는, 북한에서 수없이 받은 교육 내용이 떠올라 무서운 생각마저 들었다.

슬쩍 곁눈질하니 동옥도 동철과 별반 다르지 않은 듯했다. 지금은 도움을 받고 있기에 내색할 수 없지만 ‘내가 다시 여기를 오나 봐라’라며 속으로 이를 갈았다.

 

그런데 바로 그 즈음이었다. 집주인이 틀어 놓은 “예수”라는 제목의 영화에서 십자가 처형 장면이 나왔다.
사람 심리가 묘한 것인지, 귀로만 들을 때는 모르겠던 것이 눈으로 보니까 새롭게 다가왔다. 나의 죄 때문에 예수가 죽었다는 것이 마음으로부터 믿어졌다. ‘세상에, 우리는 김일성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고 들었는데 신이라는 분이 나를 위해 죽으시다니. 저렇게 고통을 당하시다니….’ 공포와 분노로 일그러졌던 동철과 동옥의 눈망울에 어느덧 눈물이 고였다.

순교 후에도 성도들이 모여 예배하고

며칠 후, 복음을 받고 북한에 돌아간 동철과 동옥의 삶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계신다’라는 것을 확인한 남매는, 그 사실을 전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불붙는 심정이 되어, 담대하게 주변에 하나님을 전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다.
“일요일마다 친구들이 우리 집에 모이는데 너도 와라. 이번에는 물 뿌리는 예식도 할 거야.”
하나님에 대해 어느 정도 말문이 트인 친구들에게는 적극적으로 주일 예배 참석을 권했다. 그러다가 본인들의 성경 지식이나 경험으로는 양육이 어려운 사람들이 생기면 중국에 보내 말씀 훈련을 받게 했다. 위험을 감수해야 했지만 무려 20명이 넘는 성도들이 동철과 동옥의 손을 거쳐 중국을 갔다와서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했다.
동철과 동옥은 구제에도 열심을 내어 길을 가다가 꽃제비를 만나면 지나치지 않고 음식을 나누어 주었고, 형편이 어려운 이웃에게도 다가가 쌀과 부식을 가져다 주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날, 꽤 값나가는 일본산 장화를 신고 시장을 다녀온 동옥이 맨발로 집에 돌아왔다. 옆집 아줌마가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서 물었다.
“왜 신발이 없어요? 강도라도 맞았어요?”

“오다가 맨발로 앉아 계신 할아버지가 너무 딱해 보여서 벗어 드렸어요.”
동옥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아니, 그럼 그냥 신발을 하나 사주지. 그 비싼 걸 왜 모르는 사람에게 줘요.”
“예수 믿는 사람은 좋은 걸 줘야 해요. 안 좋은 걸 주면 하나님이 안 받으세요.”
동옥과 동철은 불과 며칠간 중국에 머물면서 공부한 것이 그들이 가진 성경 지식의 전부였다. 그럼에도 배운 것들을 모두 삶으로 실천했다. 북한에서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아가기란 결코 쉽지 않다. 심각한 식량난에 내 주머니를 털어서 남을 먹이거나 조건 없이 남에게 내 것을 주는 것은 일반 주민으로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동철과 동옥의 비상식적인 행동들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사람이 중국에 갔다 오더니 이상해졌다”라며 입방아를 찧었다. 그렇지만 남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복음을 전하고 이웃을 섬기는 사역에 누구보다 열심이던 동옥은 어느 날 보위부에 잡히고 말았다. 중국에 성도를 보내는 일로 사람을 만나다가 발각이 된 것이다. 동옥은 면회 온 가족에게 “내가 기독교인인 걸 다 알고 있으니 돈을 써서 빼내려고 애쓰지 말아요. 억만금을 준다 해도 나는 이제 나갈 수가 없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순교의 길을 갔다.

동생의 죽음 이후에도 동철은 굴하지 않고 하나님을 알리는 일에 힘을 쏟아 매주 6명의 성도들과 예배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금도 핍박받는 북한 땅에서 믿음을 순전히 지키는 성도들을 일으키시고 그들을 통해 주의 나라를 이뤄가시는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올려드린다.

“그 날에 주님의 땅 되어”

모퉁이돌선교회에서는 여러분들이 기도한다는 이유만으로 [카타콤소식지]를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매달 우편, 이메일로 북한선교 소식을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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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 특집 2] 외워 둔 말씀을 썼다가 태웁니다 (2024. 11)

인차 소식을 보낸다고 했는데 늦어서 많이 미안합니다.
무슨 말을 어떻게 전한들 고마운 마음을 다 이야기하겠습니까.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잘살곘다고 다짐을 매일 합니다.
거기도 어려운데 매번 이렇게 보내주어 고마운 인사를 어떻게 다할 수 있겠습니까?
날로 통제는 더 심해지는데 손 글씨 쓰는 것도 근심이 됩니다.
먹을 것을 좀 주면 수근대는 것 같아 근심되고
어떻게 방조를 줄까 궁리를 많이 하다가 기도를 하고 시작해야겠구나라고 후회합니다.
어떤 때는 외로워서 목이 타는 것 같습니다.
락심해서 혼자 눈물을 흘리다가도 나를 위해 희생하신 우리 주님을 생각하면서 이러지 말아야지 하고 혼자서 책에 외워 둔 말씀을 썼다가 태웁니다.
그래도 근심하지 마십시요.
주변에 마음이 통하는 동무들과 함께 헤쳐 나가겠습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구원의 확신 안에서 만납시다.
어떤 폭풍이 와도 진리는 저의 심장에 새겼습니다.
어떤 광풍이 와도 진리를 바꾸지 않겠습니다.
또 진리는 꼭 승리할 것입니다.
우리 수천만 동포들에게도 이 해발(햇빛)이 비치여 인생의 행복을 찾고 인간의 참된 가치를 찾고 절대 신념으로 느끼는 그날을 위해 살겠습니다.
저를 축원해 주는 모든 분들의 부흥을 축원하며 진심으로 인사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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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 특집] 북한에서 4대째 믿음을 지킨 지하교회 성도가 왔습니다! (2024.10)

북한에서 예수를 믿다 한국에 온 이영실 사모의 간증이 지난 선교 아카데미 개강 예배에서 나눠졌다. 기독교를 핍박하는 그곳에서 자신이 어떻게 신앙의 유업을 물려 받았으며,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은 어떻게 기도하고 전도하는지를 생생하게 증언해 주었다.

장롱에서 발견한 싯누런 책 한 권

저는 엄마, 아빠라는 말을 떼기도 전에 탁아소로 보내져 “김일성 대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하며 세뇌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오직 당과 수령과 조국과 인민을 위해서 내 한 몸을 바쳐야지”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부모님은 자녀들에게도 기독교인임을 철저히 숨기셨기 때문에 자랄 때 하나님이나 기독교에 대해서는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12살이 되던 해에, 하루는 옷장 서랍 밑에 뭔가를 꺼내려고 손을 넣었다가 싯누런 책 한 권을 발견했습니다. 겉에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범상치 않은 책이었습니다. “이게 뭐지?”라며 펼쳐 보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순간 머리카락이 곤두서면서 닭살이 돋았습니다. 북한에서는 외국 출판물을 모두 신고해야 합니다. “우리 집에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책이 있지? 보위부에 가야 하나? 담임선생님한테 일러야 되나? 아, 우리 집은 망했구나!”라며 사시나무 떨 듯 떨었습니다.

밤에 누워서까지 “어떻게 하지?”라는 고민과 함께 “태초라는 게 뭐야? 하나님은 뭐지? 천지는 또 뭐고?” 하는 질문이 제 안에서 계속 맴돌았습니다. 결국 두 주쯤 지나서 아버지에게 “저기 있는 책이 도대체 뭐예요?” 하고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제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시더니 “네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짐승이 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제가 “뱀”이라고 대답하니까 아버지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신기하게도 저는 그 이야기가 믿어졌습니다. 요셉의 이야기도 들려주셨는데 “와 그렇구나” 하며 이해가 되면서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핍박받는다는 걸 알고 있지만 하나님을 아는 게 너무 좋았습니다. 

하나님을 포기할 수 없다며 순교의 자리로

하나님을 믿고 나니까 제일 먼저 학교 친구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애들에게 하나님을 전할까 궁리하다가 “야, 너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짐승이 뭐야?”라고 아버지에게 배운 대로 물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여기에서처럼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가 없습니다. 제 입에서 기독교나 하나님에 대해 나오는 순간 저희 가족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겁니다. 그래서 광범위하게 토론하지 않고 조용조용 조심스럽게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나는 죽어도 괜찮다’라며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저희 동네에 살던 분도 그랬습니다. 그분이 직장에 나가서 하나님을 믿어야 된다라고 계속 말하고 다니니까 보위부가 “네 입에서 다시는 하나님이라는 말 자체가 나오지 말게 하라. 하나님을 전하지 말라. 기독교를 전하지 말라.” 이렇게 경고를 줬습니다. 주위에서도 “우리는 살아 남아서 대에 이어 가며 하나님을 전해야 된다.”라고 설득했지만 그분 안에 계신 성령님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보위부가 사람들을 다 불러 모아 놓고 그분에게 “네가 여기서 하나님을 부인하면 살려주겠다.”라고 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은 하나님을 포기할 수 없다”라고 말해서 그분은 바로 처형당하고 아내와 자녀는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졌습니다.

북한에서는 전도할 때 목숨을 내놓고 해야 합니다. 그냥 “하나님 믿어라”라고 말하는 수준으로는 안 됩니다. 삶으로 살아내지 않으면 복음이 전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북한에는 거짓된 믿음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나는 죽어서 없어진 존재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전할 때 믿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북한에는 복음도, 지하교회도, 전도도 없다고 하시는 분들을 만나면, 저는 하나님을 예배당에만 계신 분으로 제한하는 것 같아, 마음이 답답하고 아픕니다.

지금도 북한에서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

저희 아버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도를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전도 대상자에게 바로 접근하지 않고 6~7년 정도 시간을 갖고 기도한 후에 기회를 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랬을 때 “이게 뭐야? 도대체 뭔 소리야?”라고 반응한 분이 한 명도 없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번은 제가 아버지에게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보여 달라”라고 졸랐는데 그때 아버지가 들려주신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1998년쯤, 고난의 행군 시절에 아버지와 같이 일하시던 분이 며칠 동안 출근을 안 하시더랍니다. 그래서 집에 찾아갔더니 아내와 애들은 가출하고, 그분은 폐결핵에 걸려 죽게 되었다고 하시더군요. 당시는 먹을 것이 없어서 사람들이 쓰러지고 꽃제비들의 시신이 역전에 널려 있던 때라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오래 못 살 것 같은 그분에게 집에 있는 음식을 가져다가 먹이셨습니다. 며칠 동안 그렇게 해서 몸이 많이 회복되었는데 그분이 아버지의 손을 잡으면서 “내가 이십여 년 동안 너를 감시해 왔다.”라고 하셔서 아버지가 깜짝 놀랐다고 했습니다. 아침에 출근해서부터 저녁에 퇴근할 때까지 저희 아버지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매일 보위부에 가서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분이 “내가 이때까지 한 번도 네가 말한 하나님을 가서 얘기한 적이 없다”라고 하시면서 “이제는 내가 죽을 때가 가까운 것 같다. 네가 믿는 하나님을 내가 믿고 죽겠다.”라고 고백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지 않으면 이런 일은 북한 땅에서 가능하지 않습니다. 북한에서도 기적을 행하여 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제가 12살에 하나님을 믿으면서 어른들께 “도대체 기도를 어떻게 하나요?”라고 여쭈었습니다. 저희 할머니와 부모님은 남조선을 위해 기도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매일 기도하셨습니다. 남조선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이스라엘이 회복되기를 기도하는 것 외에는 없었습니다.

나와 내 가족이 잘 되게 해 달라는 기도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건 이방인들이 구하는 거라고, 오직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하시겠다고 성경에 말씀하신 것처럼 기도하셨습니다. 북한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왜 우리를 이렇게 고난 가운데 내버려 두셨습니까?”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북한 성도들은 고난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뭘 원하시는지를 분별하고자 기도할 뿐입니다. 북한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채워지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나, 또 다른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되는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남북이 연합하여 함께 북한에 올라갈 그날

저는 북한에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4대째 예수 믿는 가정에서 성도로서 믿음을 지키다가 남한으로 왔습니다. 저는 북한이 열렸을 때 제일 먼저 들어가겠다는 마음으로 지금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실 때 뒤도 안 돌아보고 북한을 향해서 가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그러신가요?

그런데 제가 한 가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북한을 절대로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이 되면 한국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에게 다 잡아 먹혀 탈탈 털릴 거라고 탈북민들끼리 이야기합니다. 제가 탈북하기 전에도 북한에는 여우하고 승냥이만 남았다고들 했습니다. 다 죽고 악질들만 남았다는 소리입니다. 지금은 아마 더 할 겁니다. 여러분은 북한 사람들이 어떤 말을 쓰고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관심이 있으신가요?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냥 “통일이 되면 북한에 올라갈 거야”라고 천진하게 생각하시면 안 된다는 겁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의 각오 없이 북한에 들어가면 그냥 다 잡아 먹힙니다.

성경에 “형제가 동거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라는 구절이 있지요? 저는 북한 분들과 한국 분들이 연합해서 북한에 올라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사람 혼자서는, 한국 사람 혼자서는, 절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남과 북이 하나되어 기도의 동역자로 북한을 향해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속히 북한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복음문화교회
이영실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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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남북 청소년 영어 성경 캠프] “하나님 나라와 북한 복음화를 향해 FOCUS” (2024.10)

2024년 여름, 강화선교훈련센터에서 열린 모퉁이돌선교회 영어 성경 캠프는 단순한 캠프 이상의 의미를 지닌 특별한 여정이었다. 다양한 세대와 배경을 초월해서 깊은 연합을 이루는 장이었고, 중1부터 고3까지의 학생들과 피부색이 다른 선생님들이 갈등과 차이를 넘어 하나님 안에서의 진정한 연합을 경험하는 기회였다. 멀리 미국에서부터 자비량으로 섬기러 온 ANM 선생님들의 아낌없는 헌신과 열정은 아이들의 경계심과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철조망 너머 북한을 향한 새로운 시각과 기도

북한이 바로 보이는 강화선교훈련센터에서 진행된 캠프는 학생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안겼습니다. ‘철조망 기도’는 북한에 대한 마음을 새롭게 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막연한 북한에 대한 생각과 기도가 구체화되었으며, 학생들은 북한을 향한 기도와 관심을 실질적으로 표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북한에 대한 기도와 비전을 더욱 뚜렷하게 만드는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캠프의 마지막 저녁 예배에는 그동안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고민, 상처, 소원들을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기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학생들의 영혼육은 하나님께 더욱 이끌렸고, 앞으로의 삶을 주님 앞에 드려 하나님 나라를 향해 달려가는 삶, 북한의 복음화를 위해 애쓰는 삶을 꿈꾸게 했습니다.

 

초점을 주님께로, 신앙의 새로운 여정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이번 캠프를 통해 세대 간의 연합이 더 큰 하나님의 사역을 이루어가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모든 세대가 함께 주님께 초점을 맞출 때, 우리의 지역 사회와 북한을 향해 나비효과처럼 복음의 파도가 일으켜짐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런 시간들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확고히 하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더욱 헌신할 수 있는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초점(Focus)을 기억하여 학생들의 신앙이 더욱 확고해지고, 배우고 깨달은 내용들을 토대로 앞으로의 여정을 더욱 각 사람을 부르신 목적대로 걸어가기를 지속적으로 기도합니다.

 송리사(본회 회원지원부 간사)

폭풍 속에서도 예수님께 집중하면 이길 수 있어요

영어 성경 캠프를 통해 하나님을 잊고 원하는 대로 놀고 공부하며 바쁘게 일상을 살았는데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만 예배하며 영의 목마름과 배고픔을 채웠어요. 이번 캠프에서는 베드로의 이야기가 강렬하게 다가왔어요. 후속 활동으로, 이쪽 저쪽에서 여러 소리가 들리는 길을 인도자의 손을 잡고 통과했는데, 파도가 일고 천둥이 쳐도 예수님만 보고 믿으며 걸으면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북한 사람들도 통일이 되고 주님이 오실 때까지 많은 삶의 압박을 예수님이 주시는 힘과 소망으로 이겨내기를 기도해요.

문하람(중2)

주님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캠프였어요

영어 캠프는 처음이라 긴장했는데 막상 와서 보니 초반에는 조금 어색해도 다양한 활동을 하며 팀끼리 교류하며 금세 가까워졌어요. 제가 좀 내향적이어서 찬양하며 춤추는 것도 처음에는 주춤거렸지만 주님을 좀 더 가까이에서 찬양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생각보다 좋은 경험이었어요. 철조망 근처에서는 제 또래 북한 친구를 위해 기도했는데 갑자기 갈비뼈가 아팠어요. 그래서 아픈 친구들이 있다면 몸과 마음을 치유해 주시고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주님의 보혈로 덮어 달라고 축복하며 기도했어요. 시간이 날 때마다 북한을 위해 기도하고 싶어요. 

최정환(고3) 

하나님을 뜨겁게 구하는 간절함이 생겼어요

첫날 너무 피곤해서 그냥 숙소에 와서 일찍 자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했다면 후회할 뻔했어요. 사실, 캠프에 오기 전에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찬양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진짜 계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면 나도 하나님을 뜨겁게 만나고 싶다는 간절함이 생겼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다시 나를 만나 달라고 기도했어요. 저는 원래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에요. 그런데 말씀을 듣는 중에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구절을 성경에서 봤어요. 문득 하나님이 나한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왜 나는 성경책을 안 읽고 남들에게 “나는 이러 이러 해서 화가 난다”라고 이야기하고 다녔을까 하는 후회가 되었어요. 

김민아(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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