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5년 부활절에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이 땅을 밟으며 손에 들고 들어온 한글 성경은 마가복음이었습니다. 굳게 닫힌 선교지로 해외 선교사가 그 나라 말로 번역된 성경을 들고 들어가는 일은 세계 선교 역사상 유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140년 전 이수정이 일본에서 번역한 마가복음이 미국 선교사들의 손에 들려 한국 땅으로 보내진 것처럼 모퉁이돌선교회는 지금도 복음 풍선에 마가복음을 담아 북한 땅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올해는 모퉁이돌선교회가 4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모퉁이돌의 선교 사역은 마가복음이 이 땅에 들어온 지 100년째 되는 해에 출발했습니다. 이처럼 특별히 기념할 만한 해에 문광서원은 부활절에 맞춰 《위드 필사 성경 북한어로 쓰는 마가복음》(이하 “필사 성경 마가복음”)을 발간합니다. 북한 성도들은 성경을 직접 소지할 수 없기 때문에 많은 경우 자신이 손으로 베껴 적은 성경을 몰래 감추어 두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어로 쓰는 말씀 필사를 통해 그들의 간절한 마음을 함께 느끼며 북으로 성경을 보내는 사역에 동참할 수 있기를 바라며 《필사 성경 마가복음》 발간에 기해 몇 가지 특별한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이수정이 일본에서 개종하여 성경을 번역하고 있을 때, 만주에서는 존 로스와 그의 일행이 한글로 성경을 번역하고 있었습니다. 1882년에 간행된 존 로스의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와 『예수셩교요안복음젼셔』를 이수정은 모두 읽었고, 1884년에 「 」(마가복음)을 번역할 때 참고했습니다. 이수정은 마가복음 번역을 1884년 봄에 마쳤으나 다른 업무에 밀려 그 해에 인쇄하지 못하고, 1885년 2월 요코하마에서 간행합니다. 이렇게 인쇄된 마가복음은 재일 한국인 유학생들에게 배포되었고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그리고 그 후 내한한 선교사들의 손에 들려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수정은 1882년 일본에서 츠다 센에게 한문 신약성경을 한 권 얻어 읽으며 기독교를 처음 접했습니다. 그는 츠다 센의 소개로 알게 된 나카다와 함께 성경을 공부하며 예수님을 영접했고, 1883년 4월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수정은 동경한인교회를 이끌면서 성경 번역에 힘쓰는 한편 미국 교회를 향해 한국에 선교사를 보내 달라고 호소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다음은 이수정이 쓴 편지의 일부입니다. “여러분의 국가는 기독교 국가로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여러분이 우리에게 복음을 보내주지 않으면 나는 다른 나라가 그들의 교사들을 파송하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경우 다른 나라의 가르침들이 주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여기서 다른 나라란 일본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순수한 복음이 아닌 제국주의의 방편으로 기독교가 전파되기를 원하지 않았던 이수정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수정의 호소는 직접적으로 미국 북장로회의 언더우드를 움직였을 뿐만 아니라 감리교의 한국 선교 시도에도 영향을 미쳐 아펜젤러를 불러들였습니다. 여러분도 바로 이 같은 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필사 성경 마가복음》과 함께 140년 전의 그 뜨거운 마음을 다시 느끼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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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을 돌아보며 4] 풍선으로 북한에 복음을 전한다는 사실이 놀라워 (2025. 4)
제가 모퉁이돌선교회를 안 것은 대학 시절 이삭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나서였습니다. 솔직히 그때 들은 설교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중에 직업을 가지면 모퉁이돌선교회에 후원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고 목회를 하게 되었고 첫 후원지는 결단한 대로 모퉁이돌선교회였습니다. 몇 년을 후원만 하던 제가 모퉁이돌선교회에 참여하게 된 것은 아내가 컨퍼런스에 참석한 후부터였습니다. 큰 은혜를 받은 아내가 저에게 갈 것을 권유했고 그 다음 컨퍼런스에 참석한 저도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 뒤로 제 삶이 바뀌었습니다. 북한에 전혀 관심이 없던 제가 북한을 품게 되었고, 관심을 갖게 되었고, 북한을 알게 되었으며, 모퉁이돌선교회에서 하는 사역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컨퍼런스 이후 제 마음에 가장 와 닿았던 사역은 복음 풍선 날리기였습니다. 매년 바람이 북으로 부는 시기에 시작되어 ‘민들레 사역’이라고도 부르는 이 사역은 제 마음을 설레게 했고 꼭 해 보고 싶게 만들었습니다. 온 가족이 여름 휴가를 맞아 참여한 복음 풍선 사역은 해마다 가슴을 뛰게 했습니다. 하지만 전라도에서 거기까지 가야하는 거리상의 제한으로 쉽지 않았습니다. 매년 마음은 복음 풍선에 있는데 가지 못하는 서운함을 가지고 있던 중 제가 속한 노회에 있는 ‘남북한 선교 통일 위원회’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통일 선교위원회에서는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부터 실천해 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장 먼저 통일 선교위원에 속한 목회자분들로 북한 선교에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 강화도 모퉁이돌선교센터에 방문하는 것을 계획했습니다. 저는 포함한 5명의 목회자들이 1박2일 일정으로 강화선교센터에서 이삭 목사님과 대화하며 북한을 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돌아오면서 복음 풍선 날리는 사역에 참여하는 것이 어떠냐고 넌지시 제안하니 모두가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노회 소속 목사님들과 복음 풍선 보내는 사역에 함께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복음 풍선을 날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람이기에 기도해야 했습니다. 1박2일 일정으로 올라와 풍선을 날리지 못하면 안 되기에 기도로 준비하도록 당부했고, 저도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이 기도했습니다.
약속한 날짜에 모퉁이돌선교회 사무실에 도착해 보니 생각지 않은 일이 있었습니다. 복음 풍선만이 아니라 모퉁이돌선교회의 전반적인 사역을 설명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차에서 들려주었던 것보다 더 생생하게 사역을 알려주신 모퉁이돌선교회 목사님들로 인해 함께 온 목회자들의 감동과 기대가 두 배가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복음 풍선을 날리러 출발했습니다.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에서 통일 전망대를 보고 나니 통일에 대한 열망이 더 커졌습니다. 사실 저는 그곳을 그때 처음 가봤습니다. 거기에서 기도한 후에 모퉁이돌선교회 일꾼과 함께 세 군데로 이동하며 복음 풍선을 날렸습니다. 헬륨 가스를 넣은 풍선을 받아 기도하고 날리고 또 다음 장소로 가서 날리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놀랍게도 세 군데에서 띄운 복음 풍선들이 우리의 손에서 떠나자 북쪽을 향해 똑바로 날아갔습니다. 모두 다 북으로 날아가는 주황색 풍선의 행렬을 보며 탄성을 질렀고 보는 것만으로도 은혜가 되고 감사했습니다.
풍선을 다 날린 후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함께하신 분들이 북한에 관해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북한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고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이렇게 풍선 하나 날리는 것만으로도 북한에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복음 풍선이 한꺼번에 날아가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풍선을 받은 북한의 누군가가 꼭 복음을 알게 되기를 위해 기도했습니다.”라고도 말했습니다. 다음날 저보다 먼저 다른 목사님들이 다음번에는 성경 배달을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감사하게도 금년 6월에 M국으로 성경 배달을 갑니다. 다녀오면 더 많은 은혜, 그리고 북한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노회 목사님들과 했던 것처럼 이제 교회에서 성도들과 함께 복음 풍선을 날리러 가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도들과 함께 복음 풍선을 날리며 기도할 그날을 기대합니다.
문민 목사(장성신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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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 특집] 우리가 날린 풍선이 북한 주민의 손에 들어가나요? (2025. 4)
“북한에서 남한으로 선동하는 삐라를 많이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것을 역으로 이용해 북한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도지로 만들어 보낼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우리도 공산주의로 신음하는 루마니아에 하나님의 말씀을 풍선으로 인쇄하여 접경 지역에서 보냈는데 사역이 시작되고 1년 만에 공산주의 정권이 붕괴되었습니다.” 소련 공산주의에 점령된 루마니아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14년이나 지하 감옥에 갇혔다가 서방 세계의 도움으로 석방된 웜브란트 목사가 이삭 목사와 나눈 대화이다. 웜브란트 목사가 소속된 ‘순교자의 소리’ 선교 단체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루마니아의 복음 풍선 경험을 적극적으로 나눠주었고, 1993년 4월에 복음 풍선 보내기, 즉 북한에 하나님의 말씀이 인쇄된 풍선을 띄워 복음을 전하는 민들레 사역이 본회에서 시작돼 32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이야기 1
복음 풍선을 받은 북한의 한 가정
한창 민들레 사역이 진행 중이던 1997년경, 호주의 한 기관으로부터 이삭 목사를 찾는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당신 선교회에서 북한에 풍선을 띄우고 있는 게 맞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에 대한 피드백은 듣고 있습니까?” “아니요. 그런데 무척 궁금하긴 합니다.” 이삭 목사가 이렇게 대답하자 어떤 경로로 정보를 입수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놀랍게도 그들은 우리가 보낸 주황색 복음 풍선을 받은 한 북한 가정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북한의 소학교 5학년생 아이가 학교를 가려고 집을 나서는데, 싸리 울타리에 걸린 큼지막한 주황색 풍선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북한에서는 주황색이 흔치 않기 때문에 유난히 눈에 띄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아이는 풍선을 집어 들고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언뜻 봐서는 알 수 없는 글들이 가득 적혀 있었다. 아이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학교를 가려다 말고, 풍선에 적힌 글자를 읽어내려 가기 시작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라는 단어를 본 아이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엄마와 할머니한테 들었던 말들이 풍선에 쓰여 있어서였다. 덜컥 겁이 난 아이는 글을 읽다 말고, 엄마를 불렀다. “엄마~ 이것 좀 보세요!” 아이가 이미 학교에 간 줄 알았던 엄마는 밖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음성에 놀라 밖으로 뛰어나왔다. 아이가 건넨 풍선을 본 엄마는 아연실색하여 황급히 시어머니에게로 달려갔다. 시어머니는 풍선을 받아들고 그 자리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눈물 섞인 목소리로 되뇌었다. “잊힌 줄 알았는데… 우리가 완전히 잊혀진 게 아니었구나. 누군가 우리를 기억하고 있구나.” 그녀는 마치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듯, 풍선을 고이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호주에서 전화를 건 사람은 풍선을 받은 북한 성도의 이야기를 해 주며 “이 일을 계속해 줘서 고맙다”라는 뜻밖의 말을 전했다. 밤마다 날려 보낸 하나님의 말씀이 북한 어디에 떨어지고, 누가 주워서 보는지 확인되지 않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북한에 보내지기를 간절히 원하여 사역을 감당하던 일꾼들에게는 전혀 예기치 못했던, 그러나 큰 기쁨과 격려가 되는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복음 풍선 사역은 모퉁이돌선교회 일꾼만이 아닌 회원들에게도 알려서 참여하는 형태로 확장되었다.
이야기 2
개성공단 인민군 장교의 항의
북한 개성공단에 남한 기업들이 공장을 세워 활발하게 경제 활동을 하던 시기에 있었던 일이다. 개성공단의 몇몇 크리스천 사업가들이 한국교회 목회자들을 초청해서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부흥회를 계획했는데 이때 성락성결교회 박태희 목사도 함께하였다. 박 목사님이 분당 ‘예수평강교회’에서 설교 중에 전한 말씀이다.
‘아니, 이럴 수가 있습니까?’ 한 인민군 장교가 저에게 갑자기 따지듯이 말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러시오?’ 인민군 장교는 주황색 비닐 봉투를 여러 장 들고 와서 흔들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여기에 예수 믿으란 소리가 잔뜩 쓰여 있잖소! 바람 부는 날 산에 가면 예수 믿으라는 이 삐라가 잔뜩 떨어져 있거나 나무에 걸려 있습니다. 이건 휴전 협정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는 잔뜩 화가 나서 더 이상은 풍선을 보내지 말라며 거세게 항의를 했습니다. 돌아와서 알아보니 풍선을 보낸 곳이 모퉁이돌선교회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많은 양의 복음 풍선이 북한에 보내지고 있음이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인민군 장교의 거센 항의는 마치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여러 왕들의 성을 점령한다는 소문에 여리고 왕과 백성의 간담이 서늘했던 것과 같은 모습으로 비춰진다. 북한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전단지 등을 포함한 불온 선전물을 발견하면, 즉시 당에 신고하도록 사상교육을 받는다. 만일 그런 것들을 발견하고도 신고하지 않거나 개인이 소지하고 있다가 발각되면 처벌을 면하기 어렵다. 그러나 놀랍게도 남한의 불온 선전물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적어도 한 번은 내용을 읽어본다는 사실이다. 풍선을 주워 읽는 영혼을 성령께서 사로잡으시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기에 우리는 기도한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의 일하심은 누구도 제한하거나 가늠할 수 없다.
이야기 3
청진에서 복음 풍선을 주웠다는 탈북민의 증언
복음 풍선을 북한에 보내는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늦은 밤에 진행된다. 이를 위해서는 사전 준비가 필요한데 마가복음이 인쇄된 특수 비닐의 모서리에 헬륨 가스를 주입할 작은 구멍을 내어 스티커를 붙이게 된다. 본회 사무실에서 그 작업을 하고 있을 때 한 탈북민 형제가 방문했다.
“어! 이게 왜 여기에 있슴까?” “왜요? 우리가 북한으로 보내는 복음 풍선인데요.” ”아! 그렇슴까? 내 청진에서 이걸 봤다 말임다. 우리 어머니가 이걸 주웠슴다. 그때는 이걸 중국에서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모퉁이돌에서 보낸 게 청진에까지 날라왔다니 놀랐슴다.” 탈북민 형제는 감격해하며 대낮 서울 한복판에서 복음 풍선 한 장을 날리고 싶다고 간절하게 부탁했다.
금년 4월에도 어김없이 바람이 북녘을 향해 불기 시작했다. 올해로 모퉁이돌선교회는 북한 선교를 시작한 지 40년을 맞았고, 동시에 복음 풍선 사역은 32년을 맞았다. 북한은 그 어느 때보다 철저하게 국경을 봉쇄하고, 심지어 국내에서도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경우 여권을 발급받도록 규제하고 있다. 모퉁이돌선교회는 복음을 전함에 있어 앞문이 막히면 뒷문으로, 옆문으로, 사방이 막히면 하늘과 바다와 전파를 이용해 복음을 쉬지 않고 전하도록 하나님께서 이끌어 오셨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영생에 이르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하시니(요4:14) 복음 풍선 사역을 준비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다. 민들레 사역은 단순히 풍선을 보내는 것이 아닌, 막힌 담을 무너뜨리고 하늘과 땅을 진동케 하는 하나님의 사역이다. 북한 땅을 진동케 하고, 북한 지도부의 곧은 목과 마음에 두려움을 느끼게 해서 저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숨죽이며 믿음을 지키는 북한 성도들에게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위로하는 사역이다.
기도해 주세요
민들레 사역은 바람이 북으로 불어야 하기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자연을 지으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 바람의 방향을 주관해 주시도록 기도가 필요하다. 더하여 남한에서 북한으로 복음 풍선을 보내는 데 있어 제약이 되는 법적, 환경적인 요소들이 제거되어 자유롭게 하나님의 말씀을 보내 그 땅을 진동케 하는 역사가 있도록 기도의 무릎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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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을 돌아보며 3] 작전명: 헬리콥터로 성경을 밀수하라 (2025. 3)
40년을 돌아보며 (3)
모퉁이돌선교회의 초창기 사역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성경 밀수”일 것이다. 이삭 목사는 “어떻게 하면 북한과 중국에 성경을 들여보낼 수 있을까?”라는 문제에 늘 골몰했고, 일상적인 일을 하면서도 “복음을 전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아이디어가 없을까?”라며 눈을 반짝거렸다. 첩보 영화에서 메모한 내용이 실제 사역 현장에 접목된 적도 있는데 헬리콥터를 이용한 대규모 성경 밀수 작전이 그중 하나였다.
“조금만 더 가까이 갑시다!” “이 이상은 안 됩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북한 국경 쪽으로 비행기를 붙이고 싶어하는 선교사와 국경을 넘을 수 없다며 완강히 거부하는 헬리콥터 조종사 간의 실랑이가 팽팽했다. 결국 일꾼이 웃돈을 얹어 주기로 하고 나서야 헬기는 북한 영해 근처를 저공 비행했다. 아래로 200여 미터 남짓한 강폭의 두만강이 러시아와 북한을 잇는 두만강 철교를 가로질러 유유히 흘러갔다. 선교사는 며칠 전, 두만강 앞바다의 물의 흐름을 알아보라는 이삭 목사의 말에 따라 중국, 러시아, 북한의 국경이 만나는 핫산 지역을 찾았다. 그때 살펴 둔 인근 지점까지 헬리콥터가 날아가자 선교사는 성경 말씀과 전도지가 담긴 특수 제작 팩을 밑으로 떨어트렸다. 감사하게도 오늘은 물살이 세서 한두 시간 안에 북한 영해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빠르게 북한 쪽으로 향하는 성경과 전도지를 바라보며 헬리콥터 밀수 작전의 성공을 직감한 선교사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제 기분 좋게 돌아갈 일만 남았는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조종사가 갑자기 기수를 돌려 불시착을 시도하더니 순식간에 군인들이 가득 탄 트럭 두 대와 지휘 차량인 군용 지프차가 선교사와 조종사를 포위했다. 총을 멘 군인들이 다가와 두 사람을 사정없이 끌어내린 것도 눈깜짝할 사이의 일이었다. “러시아 남방 한계선을 넘은 혐의로 체포한다.” 졸지에 비자 없이 북한을 다녀온 것이 된 선교사와 조종사는 꼼짝없이 붙들려 국경수비대장 앞으로 끌려갔다. “너희들, 이게 얼마나 중범죄인지 알아? 적어도 몇 십 년은 징역을 살아야 할 거다. 왜 북한으로 가려 한 거지? 이번이 몇 번째야?” 국경수비대장은 심문을 계속했지만, 선교사는 유구무언이었다. 선교사는 입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고, 얼굴이 사색이 되어갔다. 그런 그가 딱해 보였던지 수비대장이 담배를 권했다. “고맙습니다만 저는 목사입니다.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 그 말은 들은 수비대장이 자신의 애인도 예수를 믿는다며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던졌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선교사는 지금이 복음을 전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를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선교사는 전도지를 꺼내 성구를 한 절 한 절 찾아가며 그 의미를 설명했다. 전도를 하다 보니 어느덧 잡은 자와 잡힌 자가 뒤바뀐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흐르고 수비대장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네 신병을 어떻게 처리할지 본부에 계속 연락을 했는데 결정권자가 자리에 없고, 네 비자 날짜도 내일로 끝나기 때문에 내 직권으로 풀어주겠다.” 극적으로 러시아 군인들의 손에서 벗어난 선교사는 “스파시바(고맙다)”를 연신 외쳤다. 만약 비자 기간이 많이 남았다면 힘든 일을 피하기 어려웠을 텐데 날짜와 때까지 섬세하게 맞추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놀라웠다. 선교사는 은혜에 감격하며 헬리콥터에 몸을 싣고 러시아 내륙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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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 특집] 핍박에도 여전히 만나는 믿음의 식구들이 있습니다 (2025. 3]
국경수비대를 피해 성도의 집으로
“여기에 잠깐 숨었다가 가십시오. 아까 일러드린 대로 저 길을 따라 쭉 가면 인가가 나올 겁니다. 몸조심하십시오. 그럼….” 일꾼에게 눈인사를 건넨 밀수꾼은 잰걸음으로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밀수꾼의 도움을 받아 중국에서 북한 영내로 넘어온 일꾼은 한 치 앞도 분간되지 않는 어두움과 풀벌레 소리만 고요하게 들리는 적막 속에 홀로 남겨졌다. 시간이 흐르자 어두움에 눈이 어느 정도 익숙해진 일꾼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조심스레 발걸음을 뗐다. 한 발, 한 발, 꽤 오랜 시간을 걸었음에도 밀수꾼이 말한 인가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곧 동이 터올 시간이라 조바심이 났지만 계속 걷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이 새벽에 어디에서 오십니까?” 등 뒤에서 웬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 애써 태연한 척하며 뒤를 돌아보니 한 건장한 남자가 일꾼을 노려보고 있었다. “친척이 이 동네에 살고 있어서 중국에서 놀러 왔습니다.” 일꾼은 긴장해서 돌처럼 굳은 입술을 가까스로 열어 변명했다. “통행증을 해 가지고 오셨습니까?” “그럼요. 그런데 친척 집에 두고 왔습니다.” “그래요? 그럼 같이 가서 보십시다.” 거짓말이 들통나는 건 시간 문제였다. 그렇다고 남자가 시키는 대로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처음에는 순순히 동행하는 척하다가 일꾼은 동네 입구로 들어갈 즈음, 상대가 방심한 틈을 타서 줄행랑을 쳤다.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가던 일꾼의 눈에 문이 살짝 열려 있는 집이 보였다. 다급한 대로 곧장 그리로 뛰어들어가 문을 닫고는 한걸음에 방문까지 달려가 몸을 숨겼다.
여덟 가정이 모여 예배합니다
“뉘, 뉘시오.” 방안에 있던 여자와 어린아이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일꾼을 쳐다보았다. “정말 미안하오. 사정이 급해서 그렇소. 나를 잠시만 숨겨 주시오.” 일꾼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사정하자, 여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도한 일꾼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자신을 구해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했다. 기도가 끝나고 방안을 둘러보던 일꾼의 눈에 범상치 않은 물건이 들어왔다. 여자가 옷 뒤로 숨기고 있어서 전체가 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성경이 틀림없었다. “아주머니, 예수 믿으세요?” 일꾼이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여자는 당황해서 얼굴이 굳어졌다. “아주머니, 저도 예수 믿습니다. 성경책은 어떻게 구하셨어요? 겉이 나달나달한 걸 보니 꽤나 오래 읽으셨나 봅니다. 예배는 혼자 드리십니까?” 쏟아지는 질문에 더 이상 숨길 수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여자가 입을 열었다. “여덟 가정이 모여서 예배합니다. 성경책은 저희를 지도하는 분이 주셨는데 저희끼리 돌려서 보고 있습니다.” 일꾼은 하나님의 섭리에 탄복했다. 발각될 위기를 모면하려고 도망쳤을 뿐인데, 하나님은 이 사건을 사용해 자신을 성도의 집으로 인도하신 것이었다. 일꾼은 여자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지하 처소가 비단 00시뿐만 아니라 00시, 00도에 흩어져 있고, 한 명의 지도자가 각 지역을 순회하며 목양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또한 이들이 가난한 형편에도 불구하고 12명의 고아를 입히고 먹이고 돌보고 있음도 알게 되었다. 그날 밤, 일꾼은 여인의 남편의 옷을 입고, 여인이 알려준 비밀 통로를 따라 중국으로 넘어갔다. 국경을 지나며 하나님께서 극적으로 만나게 해 주신 귀한 성도들을 어떻게 섬겨야 할지, 어둠이 깊어지면서 일꾼의 고민도 깊어졌다.
새 신자 성경 교재가 필요합니다
그날의 만남 이후 일꾼은 정기적으로 그곳 성도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지원했다. 어떤 때는 종자를, 어떤 때는 성경책을, 어떤 때는 돈과 여러 물품들을 보내어 여덟 가정이 나누어서 쓰게끔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 신자 교재 000권을 보내달라는 연락이 왔다. 백 권이 넘는 책을 요청한 것으로 보아, 00시 책임자가 관리하는 지하 교회가 엄청난 규모임을 짐작케 했다. 일꾼은 직접 상황을 확인하고자 책임자를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타진했다. 한참 후에야 의외의 답이 쪽지로 전해졌다. “선생님, 그간의 고마움을 어떻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제가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어떻게 들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일이 하나님이 아시면 됐지 서로가 굳이 만날 것까지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일꾼은 일 년 반 동안이나 물심양면으로 도왔는데 어떻게 한번 만나자는 요청을 단칼에 거절하는지 한편으론 야속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상황을 이해 못할 것도 아니어서, 새 신자용 성경 공부 교재를 최대한 작은 크기로 만들어서 보냈다. 그 책을 보내고 얼마 되지 않아 또 다시 북한에서 소식이 왔다. “위험합니다. 당분간 안 오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더 이상 어떤 말이나 편지가 건너오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그 즈음 국경 경비가 한층 강화돼 사람을 보내서 형편을 알아볼 수도 없었다. 북한 00시의 여덟 가정과 새 신자 교재 000권은 그렇게 잊히는 듯했다.
만나면 할 이야기가 많습니다
“선생님, 말씀하신 그분을 찾았습니다. 믿는 것이 발각되어 고초가 많았다고 합니다. 지금 옥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되셨는데, 집에 계십니다.” 그간 00시 책임자를 찾는 일에 번번히 실패해온 일꾼에게는 반가운, 그러나 가슴 아픈 소리였다. 연락이 안 닿는 동안 온갖 고생을 다 했을 지도자를 생각하니 눈물이 절로 글썽여졌다. “찾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집으로 가서 어떻게 지내는지 좀더 자세히 알아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분께 00년에 편지를 보낸 사람이라고 하면 기억할 겁니다.” 일꾼이 당부했다.
“안 그래도 가지 않았겠습니까. 선생님 이야기를 했더니 ‘내가 그 선생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라며 울먹이셨습니다. 사정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집은 허물어지고 몸은 병이 들어 의사가 큰 병원에 가 보라고 했답니다. 먹는 거 입는 거는 말할 것도 없고요. 같이 사는 식구는 없지만, 만나는 식구가 4명 있다고 말했습니다.” 일꾼은 당장 쌀과 돈을 준비해서 지도자에게 보냈다. 광야에 뿌리를 내린 나무처럼, 돌아보는 사람 없이 근근이 살아가는 지도자에게 일꾼의 선물은 크나큰 힘이 되었다. 가난과 고통, 병마의 희생 위에서 신앙을 지켜가는 북한의 성도들이 지치지 않고 믿음의 경주를 계속하도록 기도의 끈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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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돌 소식] 북한 교회와 북한 선교에 헌신된 사역자를 세우는 모퉁이돌신학원 (2025. 3)
“입학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신학교도 많은데 선교회에서 신학교를 세우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주 듣는 질문입니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는 ‘북한 지하교회 지도자를 세우는 학교’라는 모퉁이돌신학원의 설립 목적을 들 수 있습니다. 많은 교회와 신학교는 언젠가 북한의 문이 열릴 때를 대비해, 남북 분단이 있기 전에 존재했던 자기 교단의 파괴된 교회를 재건하고 그 교회를 섬길 교역자를 파송하기 위한 재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하나님이 세우시고 이끌고 계시는 지하교회와 그 지도자는 그때에 어떻게 될까요?
고난과 종말적 신앙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교회들과 교회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신학교가 지금 살아 움직이는 북한 지하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정규 신학의 학위 과정을 수료하지 않았다고 혹은 그동안 김일성 배지를 가슴에 달고 동상에 절했다고 그들의 신앙이 잘못되었노라며 내치려고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북한에서 믿음을 지키고 교회를 섬기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그들의 모습을 알고 있는 모퉁이돌선교회는 그들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북한에 지하교회를 세우고 이끌어 오신 하나님은 모퉁이돌신학원을 세우시고 북한을 포함한 박해 지역의 교회 지도자들이 당당히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학위 과정을 준비하게 하시고 아시아신학협의회(ATA) 인증을 받기 위해 동아시아신학원과 협력하여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지난 2024년 한 해 동안 1기 학우들과 함께 그 길을 열심히 달려왔으며 이제 새로운 학우들을 초대하고 있습니다.
모퉁이돌신학원은 목회학 석사(M. Div), 북한 선교 인문학 석사(MA), 신학 학사(B. Th) 과정을 온라인 교육을 통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목회학 석사(M. Div) 과정은 북한의 지하교회 목회자들, 그리고 남한과 디아스포라 한인들 가운데 북한 선교를 위해 헌신할 선교사와 목회자 같은 사역자들을 양성하는 과정입니다. 북한 선교 인문학 석사(MA)는 북한 선교가 남과 북의 주민들이 소통하는 데서 출발해야 하기에, 남북한 주민 사회통합을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과정입니다. 또한 체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을 위한 트라우마 상담에도 관심을 쏟고 연구합니다. 마지막으로 신학 학사(B. Th) 과정은 모퉁이돌신학원의 모체가 되는 과정으로서, 지난 40년 동안 성경을 배달하면서 성경을 가르쳐 달라는 현지 성도들의 요구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하나님 말씀을 가르쳐 온 노력의 열매입니다. 박해 지역의 특성상 부족한 학력을 보완하여 학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도록 준비된 과정입니다. 최근 다양한 사람들이 모퉁이돌신학원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탈북민, 중국 한족과 조선족 성도들, 몽골 성도들 가운데 부름 받은 이들, 그리고 국내에 들어온 이주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배워 교회 지도자가 되는 데 모퉁이돌신학원을 통해 준비될 수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이들을 위해 많은 기도와 장학금 지원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꾼을 양성하기 위하여 직접 장학금을 지원할 수도 있습니다만, 모퉁이돌신학원은 장학금을 지원하는 자나 지원받는 자나 모두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서로 격려하며 나아갈 수 있도록 ‘청강제도’를 준비했습니다. 청강생들의 수업료는 상당 부분 현장 사역자나 이주민 사역자의 장학금으로 사용될 것입니다. 또한 청강제도는 당장 학위 과정에 입학하는 것이 어려운 이들에게도 하나님 말씀을 배울 기회를 제공하고, 나중에 학점을 인정받아 학위를 받을 수 있는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기존의 많은 신학교들이 입학 정원을 채우지 못해 힘들어한다는 소리를 오늘도 들었습니다만, 종말의 시대에 고난을 이기고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할 지도자들을 하나님께서 보내주실 것이기에, 그리고 그들을 양성할 교수들과 여건들을 제공해 주실 것을 믿기에, 오늘도 강의를 촬영하여 편집하면서 학습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동역자 여러분들의 많은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변야곱 목사(모퉁이돌신학원 원장)
모퉁이돌 신학원의 기도
첫째, 모퉁이돌신학원이 주께서 기뻐하시는 신학교로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게 하소서. 둘째, 신학적 지식과 성령의 충만함을 겸비한 교수진이 준비되게 하소서. 셋째, 전신갑주로 무장된 충성된 주의 군사들이 훈련되어지고,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생명을 바치는 일꾼들이 세워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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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을 돌아보며 2] 24년 동안 12가정을 전도한 순희 할머니(2025. 2)
내 얘기하라고 보내셨대!
“속상해서 3년을 울었어. ‘하나님, 왜 제가 여기 와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뭐라고 말 좀 해 보십시오!’라고 하나님을 얼마나 원망했는지 몰라.” ‘북한에서 온 예수쟁이’라는 순희 아주머니는 1960년에 중국에서 북한으로 들어간 이주민이었다. 살기 좋다는 북한의 선전을 믿고 국경을 넘었지만 그와는 영 딴판인 현실에 아주머니는 망연자실해서 하나님께 이유를 묻고 또 물었다. “왜 북한에 가게 하셨대요?” 이삭 목사는 하나님의 답변이 궁금했다. “내 얘기하라고 보내셨대. 하나님 얘기! 그 소리 듣고 깜짝 놀라 중국에 있는 친척들에게 연락을 했지.” 순희 아주머니는 중국에 살면서 어려서부터 예수를 믿었다고 한다. 그러다 문화혁명이 일어나 핍박이 심해지자 북조선이 살기 좋다는 말에 속아 북한행을 택했다. 아주머니는 자신을 속게끔 내버려두신 하나님을 원망했다. 그러나 3년간의 기도 끝에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계획 아래 일어났음을 깨닫고 전도를 시작했다. “1963년에는 도강증(통행증)만 있으면 중국을 다녀올 수가 있었지. 가서는 친척들에게 줄 수 있는 거 뭐든지 다 달라고 했어. 그렇게 받은 물건을 바리바리 싸 들고 북조선에 돌아와서 옆집에 하나씩 하나씩 선물로 나눠줬지.” “아주머니에게도 요긴한 것들이었을 텐데, 모두 전도 물품으로 쓰셨군요.” 그 말을 하는 아주머니의 얼굴, 고생을 많이 한 탓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이 이삭 목사의 눈에 들어왔다. 친척들이 준 물건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복음을 위해 사용한 아주머니의 훈장과도 같은 주름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두 분이거든!
하나님이나 성경 말씀은 입에 올리지도 않고 아무 대가 없이 물건을 주는 일이 계속되자 이웃 사람들을 이유를 궁금해했다. “아주머니도 편하게 사시는 것 같지 않은데 왜 이렇게 주세요?” “나? 나는 고향에 맨션이 있어.” 심드렁한 말투로 아주머니가 받아쳤다. “네? 저도 그 맨션에 가 볼 수 있나요?” 사람들은 아주머니가 숨겨놓은 부자라며 수근댔다. “없어!” “왜요?” “아버지가 다르잖아! 나는 아버지가 한 분이 아니라 두 분이거든.” 대화가 이쯤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문이 막히거나 이해를 하지 못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비밀스러운 언어를 알아들은 사람이 있었다. 아주머니에게서 2년 동안 도움을 받은 이웃 사람의 입에서 “지금 하나님을 얘기하는구먼”이라는 말이 튀어나온 것이다. 순희 아주머니는 물론 그 누구도 하나님을 말하거나 가르친 적이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순희 아주머니의 은밀한 은유를 알아듣는 사람들이 생겼고, 결국 북한 내부에서 24년간 12가정, 24명을 전도할 수 있었다.
1987년 중국에서 이삭 목사가 만난 순희 아주머니의 이야기다. 첫 만남 이후 2004년 4월 22일, 북한 용천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로 희생당하시기 전까지 17년을 꾸준히 도왔다. 순희 아주머니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을 북한에 이주시켜서라도 진리와 생명의 빛을 비추기 원하시는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과, 북한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이 전해지고 복음이 전파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모퉁이돌선교회는 이후로도 북한 성도들을 직접적으로 돕고, 그들의 사역을 지원해 40년째 북한 복음화를 이루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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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특집 1] 북한에 보내진 헌금은 어떻게 사용되었을까? (2025. 2)
작년 7월 하순에 압록강 유역에서 발생한 기록적인 폭우로 평안북도, 자강도, 양강도의 많은 주민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으며, 15,000명 이상의 이재민이 생겨났다. 마을은 흙탕물로 뒤덮였고, 도로가 파괴되었고, 농경지가 물에 잠겼다. 설상가상으로 복구가 끝나기도 전인 8월과 9월에 큰비가 내려 인적, 물적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러한 피해는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에게도 닥쳤으며, 수해당한 성도들은 도움을 요청해 왔다. 본회는 지난해 10월부터 수해당한 성도들에게 성탄 선물을 준비해서 보내는 사역을 알렸고, 석 달 동안 많은 분들이 참여해 모아진 헌금으로 북한 지하성도들에게 식량과 방한복, 난방비, 주거비 등을 지원할 수 있었다.
모두 다 물에 잠겨 아우성입니다
직승기(헬리콥터)가 떠서 사람들을 구했는데 산사태가 나서 사람들이 피해를 많이 입고 죽은 사람도 10명 넘게 생겼습니다. 집안에 있던 늙은이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곡식들도 모두 다 물에 잠겼지 막연합니다. 지금 압록강 연선 쪽으로 피해가 많이 났습니다.
00 지역에도 집들이 강역에 있는 곡식도 모두 다 물에 잠겼습니다. 이번 장마 피해가 많이 났습니다. 그래서 지금 도당, 군당, 리당 일군들이 총동원해서 지금 농촌에 내려가 복구 사업을 합니다. 농사군들이 올해 농사는 망쳤다고 모두 아우성입니다. 지난 여름, 00 수해 지역에서 온 연락입니다. 생각보다 큰 피해를 입었고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물살에 떠나보냈으며 집을 잃고 그냥 거리에서 살거나 남의 집 동거살이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감시 때문에 더 이상 전화가 어려워 쪽지로 대신 받았습니다. 종이에 적힌 수해 상황은 처참했습니다. 워낙 시골 지역이라 집들이 허술해서 무너지고, 어떤 곳은 마을 전체가 사라졌으며, 또 다른 곳은 노인과 아이들을 포함한 사망자가 대략 40명, 집을 잃은 가구도 21세대나 된다고 했습니다. 또 벽이 무너져 내려서 집안이 다 들여다보이는 형편인데도 그런 집에서 살아가며 산에서 조금씩 진흙을 파서 볏짚에 이겨 벽을 세운다고 전해왔습니다. 남의 집 동거살이도 예전에는 쌀 몇 킬로만 주면 들어갈 수 있었지만 요즘은 돈으로 환산해서 최소한 일 년씩 계약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린아이가 있거나 노인이 있는 가정의 방값이라도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선교회에서 믿는 자들이 모은 비용을 보냈습니다. (A 사역자의 보고 중에서)
그늘진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장마 피해로 인해 어려움이 심해지면서 길거리에 꽃제비들이 더 많이 늘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수해 피해 난 집들도 집은 있어도 모든 것이 턱없이 부족해서 걱정들입니다. 또 다시 돈을 보내주어 잘 받았습니다. 이번에 받은 돈으로 쌀과 옷을 구매하여 주변에 제일 도움이 필요하다고 보여지는 사람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마치 가뭄에 단비를 만난 듯이 숨통을 트일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기면서 고마워했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의 그늘졌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나는 모습들을 보면서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헐벗고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면서 사랑의 손길로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분들과 만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욱 정성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겠습니다.
수해로 어려움에 처한 북한 성도에게 준비된 사역비를 보내고 며칠 후에 큰돈을 보내줘서 고맙다는 쪽지가 왔습니다. 돈을 전해주러 간 일꾼은 여태껏 여러 곳을 다녀 봤지만 그렇게 한 집에 많은 사람들이 있는 건 처음 봤다며 혀를 내둘렀습니다. 좁은 집이 터질 것마냥 어린아이들을 포함해서 한 열댓 명은 사는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죽을 한 가마 써 놓고 먹으라는데 차마 숟가락을 들지 못할 정도로 가난해 보였습니다. 북한에 아픔과 고통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체념한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상심한 저들의 마음에 예수님의 진정한 사랑과 위로가 전해졌습니다. 도움을 주러 이곳저곳을 누비는 북한 일꾼은 국가도 이웃도 가족도 책임지지 못하는 절망적인 시간에 보내어진 이 귀한 비용을 통해 복음이 확실히 전해지고 있음을 기대한다고 전해왔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전달하는 이들이 입을 열어 주 예수를 그리스도라 담대히 전하기를 기도합니다. (B 사역자의 보고 중에서)
전도하고 복음 전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주께 있습니다. 덧없이 사는 인생길 전도하지 못한 량심의 가책이 큽니다. 머뭇거리기만 하다가 죽은 생명을 마주하고 보니 눈물이 나서 못 보겠습니다. 사람들이 아침에 눈뜨기가 무섭다고 합니다. 먼저 한지에 나앉은 사람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마음이 좁아 못 살지 집이 좁아 못 살겠습니까. 할 수 있는껏 해 보겠습니다. 감시가 날로 심합니다.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역을 진행하면서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또 ‘어떤 이와 연결하게 하실까’, ‘또 어떤 사람을 도와야 하나’, 하는 기대와 고민이 커졌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갈라디아서 6장 10절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되 특히 믿음의 가정들에게 하자” 그래서 믿음의 가정들을 찾고 연결하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북한에서 활동하는 성도들을 통해 홍수로 집과 가족을 잃은 가정에 쌀과 옷을 사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이 외에도 여러 동네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수소문을 했더니 그 사역자의 집은 감사하게도 큰물 피해를 당하지 않아 일요일에 은밀히 예배를 드린다고 했습니다. 정해진 예배의 순서도 없고 찬양을 못할 때도 많겠지만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성도들의 사랑하는 마음을 보면서 도리어 저희가 회개하게 됩니다. 자신들의 삶도 모자라고 많이 절박한 현실인데 다른 자들을 도와주는 것은 성도들만이 할 수 있는 신앙고백일 것입니다. 북한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역자가 보석보다 귀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배 처소를 눈동자같이 지켜 보호하심에 감사합니다. (C 사역자의 보고 중에서)
섬김을 통해 구원에 이르기를 기도합니다
“2024년 한 해도 하나님께서 은혜 주셔서 어둡고 캄캄한 땅에서 예수님만 바라보는 주의 자녀들에게 공급할 길을 열어주심에 감사합니다. 거저 받는 것이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에 빚진 자로 섬길 마음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받은 비용을 자신의 것이라 움켜쥐지 않고 기꺼이 나누고 베푸는 북한 성도들의 손길로 주의 백성의 마음이 치유되기를 기도합니다. 아픔과 상처, 위협과 핍박으로 눈치를 봐야 하는 성도들의 삶이지만 하나님께서 위로하고 계심을 고백하며 다시 힘을 내어 일어났으면 참 좋겠습니다. 모퉁이돌선교회가 섬기고 있는 성도들을 만나는 자들마다 다 구원에 이르기를 기도합니다. 성도들이 나누는 쌀 한 톨, 음식 하나. 석탄 한 개. 모두가 헌금으로 보내어지는 귀한 것이기에 받아드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로 머지않아 만나게 하실 그날을 기다립니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예배하며 믿음을 지켜왔는지 못다한 이야기들을 듣게 될 그날을 고대합니다. 하루하루 예배의 힘으로 버텨내는 북한 성도들의 대열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서툴고 투박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가장 간절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예배하는 성도들을 주의 말씀 위에 굳게 세우시고 어떤 죄악도 저들을 주관하지 못하도록 지키시고 보호하시기를 간구합니다 새해에도 북녘 성도들을 돕는 사역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감당함에 부족하지 않도록 공급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북한 성도들을 통해 일어나고 있는 놀라운 사역과 헌신에 감격한 일꾼의 고백입니다. 북한 성도들에게 필요한 사역비와 물품을 준비해서 보내고, 그들이 잘 받았다는 증거로 보내오는 쌀과 기름 그리고 다양하게 나눠진 식량과 옷과 생필품 등이 찍힌 사진들을 보안을 위해 지면에 소개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눈동자에 생생하게 새겨져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고난과 수해로 어려운 성도들을 기억하며 귀한 헌금과 기도로 헌신하신 분들에게도 하늘의 상급을 풍성하게 베풀어 주셨음을 확신하며 귀한 소식을 나누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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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우리 곁에 오신 그분이 진정한 위로자 입니다! (2025. 2)
너희는 위로하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라 이는 너희 하나님의 이르심이다(사40:1)
“너희”는 누구를 가리킬까요? 이스라엘 랍비들이 번역한 70인역에는 “너희 제사장들아 내 백성을 위로하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70년 이상 나라 없이 죽고 짓밟히며 바벨론에서 살아가는 백성을 “제사장”이라고 부르며 위로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들이 과연 위로할 수 있을까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이사야서 6장으로 가 보겠습니다. 천상 회의에 참여한 이사야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웃시야 왕이 죽고 나라는 형편없이 되어 아무것도 의지할 수 없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성전에서 기도하던 이사야에게 문지방이 흔들리며 하늘이 열리는 환상이 보입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하나님을 창화하는 소리에 이어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 하는 음성이 들립니다. 우리는 이 장면을 이사야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는 것으로 흔히들 해석합니다. 그러나 유심히 살펴보십시오. 지금 이 일은 하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는 이사야가 아닌 우리 주님의 목소리입니다. 죄로 엉망진창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는 고난의 길을 누가 가겠느냐는 탄식에 하나님이신 우리 주님이 사람으로 오시겠다고 헌신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죄를 지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 우리와 같은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위로’라는 단어의 70인역 헬라어는 ‘파라 클레시스’로 ‘옆으로 부른다’는 뜻입니다. 우리 곁에 오신 그분이 진정한 위로자입니다. 내 백성을 위로하는 주체는 제사장이나 사람이 아닌 예수님인 것입니다.
한 음성이 말하기를 웨치라 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내가 무엇을 웨치리이까 하니 그 음성이 말하기를 모든 인생은 풀이요 그 모든 영화는 들의 꽃과 같도다 여호와께서 그 우로 숨을 내쉬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니 실로 인생은 풀이라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였다(사40:6~8)
하나님이 외치라 하신 메시지는 원래 이스라엘 백성, 유다 백성, 예루살렘 시민에게 주신 것이지만 오늘 여기에 있는 저와 여러분, 북녘 백성에게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이신 것을 믿으십니까? 모퉁이돌선교회가 40년간 사역을 해왔고, 70회 컨퍼런스를 열었는데 이제 응답해 주실 때가 됐다고 믿으십니까? 수많은 순교의 피가 뿌려졌는데 하나님께서 위로하실 때가 됐다고 생각하십니까? 배나 받았고 복역의 때가 끝났다는 주님의 음성이 정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소원이 있으십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비록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음은 당신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당신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 내 원쑤의 목전에서 내 앞에 상을 펴시고 내 머리에 기름을 부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시 23:1,4,5)
우리말과 히브리어 본문은 “나의 목자” 즉, 명사를 사용하는데 70인역은 동사로 표현합니다. 의역하자면 “여호와께서 나를 목양하시니”가 됩니다. 지금, 주님이 살아 계셔서, 나를 현재 진행형으로 목양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나를 목양하신다니, 할렐루야! 뒤이은 4절에는 “안위하다”, “보호하다”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바로 “파라 칼레오”입니다. 옆에 와서 보호해 준다, 위로한다는 뜻으로 양들이 지팡이와 막대기를 통해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든든함을 느낌을 시사합니다.
또 하나 주목할 구절로 “내 잔이 넘칩니다”를 꼽을 수 있습니다. 70인역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면 “당신의 잔이 가장 취하게 합니다”가 됩니다. 어떤 면에서 주님이 주신 사명은 성령으로 취한 상태가 아니면 완수할 수 없습니다. 첫사랑의 회복은 저와 여러분에게 ‘파라 클레토스(위로자)’로 오시는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 주님과 하나가 된 상태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 오신 것처럼, 우리도 그 발자취를 좇아 위로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냐고요? 성령으로 충만하게 됐을 때, 예수님의 십자가를 즐거움으로 질 때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북한의 백성과 남한의 백성을 진정으로 위로하며 하나님을 함께 찬양하게 될 그날을 향해 전진 또 전진하십시다.
*70회 선교컨퍼런스 장동수 박사의 강의 내용을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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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을 맞으며] 평양에서 예루살렘까지 약속된 땅을 향하여 (2025.01)
1985년 10월 28일에 시작된 모퉁이돌선교회의 첫 사역은 다름아닌 성경 배달이었습니다. 이삭 목사님은 그로부터 2년 전인 1983년, 중국 정탐 여행에서 만난 조선족 성도들에게 “성경을 꼭 다시 가져다주겠습니다”라고 약조했습니다. 그 말을 지키기 위해 이삭 목사님과 저는 25kg씩 성경을 가득 담은 가방 10개를 양손에 들고 어깨에 메고 중국으로 운반했습니다. 이것이 모퉁이돌선교회가 세워지고 난 다음 첫 번째로 이루어진 성경 배달이었습니다.
이후 모퉁이돌선교회는 북한에 지속적으로 성경책을 들여보내는 한편 하나님의 말씀을 북한어로 번역하는 사역을 감당해 왔습니다. 또한 북한의 문이 열릴 때를 기도로 준비하며 북한에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할 전도자들을 훈련해 왔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주시고 그들을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지난 40년 동안 선교회를 친히 이끄시고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이끄심을 따라 지금까지 왔는데, 앞으로의 40년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히브리인들을 가나안 땅에 이르게 한 가장 큰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태어나게 하시고, 그들이 제사장 나라가 되어, 복음 들고 땅 끝까지 이르러 온 세상을 구원하게 하시려는 계획이었습니다. 모퉁이돌선교회 역시 북한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마지막 땅이 아니라, 평양이 시작점이 되어, 평양에서 예루살렘까지에 이르게 하시고, 그것으로 전 세계를 복음화하실 것을 믿습니다.
이제 우리는 평양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그 길의 첫 단계인 북한부터 가야 할 것입니다. 2025년 모퉁이돌선교회가 “평양에서”에서 “평양에서도”를 준비하는 일에 박차를 가하고, 마지막 약속된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달려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