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칼럼] 큰 소리로 찬송을 부르고 싶다며 울먹이던 성도는 끝내…

달라스에서의 마지막 설교를 앞두고 있습니다.
며칠간 집에 머물렀다가 또 설교하기 위해 이곳저곳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아틀란타와 샴페인, 유타에서 집회가 약속되어 있고 유럽과 뉴질랜드, 호주에서도 초청이 왔습니다.
해외 집회가 점점 많아지는 한편 한국에서는 조용한 편입니다.
수많은 북한 선교 기관들이 생겨난 것이 이유일까요?
북한 선교를 하는 선교회가 400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문제는 북한 내부 선교가 아닌 탈북민을 위한 선교회라는 데 있습니다.
탈북민 선교,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한국에 3만 5천 명의 탈북민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2천만이 넘는 북한 내부의 주민을 향한 사역은 어찌해야 할까요?
구제만으로는 영혼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데 그들을 어쩌지요?
20만이 넘는 북한 지하성도는 외면해도 될까요?


성경 한 권 받아보기를 소원하는 이들.
십일조 한 번 마음 놓고 해 보고 싶은 이들.
성찬식 한 번 하며 그 떡과 잔을 대하고 싶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찬송 한번 큰 소리로 마음껏 불러보고 싶소”라며 울먹이던 성도는 끝내 죽어갔습니다.
마룻바닥이 달아서 파일 정도로 몸을 비꼬며 기도했던 그 아주머니도.
세 살짜리 손녀마저 함께 수용소로 가야 했던 그 할아버지도.
그런 분들이 바로 우리의 “이웃”이 아니던가요?
피 흘리는 북한의 성도들을 생각하며
오늘 저는 그 이웃들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마가복음 12장을 28절에서 34절을 나누려고 합니다.
함께 들으실래요?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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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삶 전체가 복음을 전하고 영혼을 구하는 사역입니다

홍콩에서 만난 미국인이 있습니다.
전적으로 성경 배달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나는 성경을 배달할 뿐인데 본국에서는 날더러 선교사라고 한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목사 안수를 받았지만 담임 목사로서 목회를 해 본 일은 없습니다.
선교회를 세우긴 했지만 정작 선교지에서 선교사로서의 일은 하지 못했습니다.
성경을 배달했을 뿐입니다.
공산권이다 이슬람권이다 불교권이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디라도 성경을 필요로 하는 곳에 직접 배달하고 성경을 구하도록 다리를 놓았습니다.
그것뿐입니다.
1986년 한 권사님이 봉투를 내밀며 ”성경 배달 비용“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100만 원이었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후원하십니다.
성경 배달 비용. 정확한 말이지만 그렇게 표현하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실제로 훈련도 해야 하고 정탐도 해야 합니다.
훈련원을 운영해야 하고 전기도 써야 하고 사무실 월세 비용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역을 하던 유대인에게 한 기업인이 신용카드를 주면서 마음 놓고 쓰라고 했답니다.
코카콜라를 사 먹어도 되느냐고 물으니,
기업인이 미소를 지으며 ”당신의 삶 전체가 사역“이라며 “청바지도 사 입고 가족들 점심도 사 주라”라고 했답니다.
가끔 그런 기업인을 우리 모퉁이돌에는 안 주시나 생각하고는 했었습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모퉁이돌은 두 렙돈만을 가진 분들이 삶을 드렸기에 운영됩니다.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더한 것은 그분들의 기도가 함께함을 저는 압니다. 하나님이 아십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들으셔서 성경 한 권 한 권이 국경을 넘어 하나님 나라에 기쁨이 됩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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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북한에 성경 보내는 일에도 함께합니다!

시애틀에서 북극을 넘어 만난 나라, 노르웨이.
1970년까지 가난했던 나라가 석유가 발견되고 수산업이 활발해졌습니다.
선교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연어와 청어를 수출하는 중국 선교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조용히 성경을 인쇄하여 보급했습니다.
한 분이 일본으로 건너가 직접 성경 인쇄하는 일을 감당했습니다.
노르웨이 모 선교기관에서 비용을 감당했습니다.
우리가 배달하는 성경의 많은 부분이 바로 노르웨이 성도들의 헌금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연합입니다.
미국과 캐나다, 노르웨이와 일본, 한국과 중국의 소수민족이 함께 연합하여 주의 뜻을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북한에 성경 보내는 일에도 함께합니다.
그 노르웨이 사역자의 초청을 받아 그들과 며칠을 지냈습니다.
기차를 타고 가서 한 곳에서 머물며 교제하고 간증하고 몇 시간씩 차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깨끗한 공기와 물 때문이었을까요?
피곤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주일 예배에 설교하며 북한 선교를 나누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영국으로 날아갔습니다.
YMCA 건물의 방 하나를 빌려 오후 한 시 반, 말씀을 전하는 사흘 동안 청년들이 찬양을 맡았습니다.
예배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뜨거웠습니다.
거의 모든 성도들이 방언으로 기도하고 찬양하고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한국 땅에 복이고 소망인 젊은이들이었습니다.
평일에도 꼭대기층 다락방을 빌려 학생들이 와서 기도하고 찬양하고 공부한다고 합니다.
그곳에는 에어컨이 없습니다. 여름엔 무더위 속에 땀 흘리며 모여 기도합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공부가 아닌 “기도하라”고 가르쳤답니다. 그런데 대부분 학생이 우등생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웨일즈로 향했습니다.
대동강에 와서 순교한 웨일즈 출신 토마스 목사를 보내준 웨일즈 교회를 찾았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말씀을 전하며 그들 조상의 선교와 순교가 우리나라에 있었음을 전했습니다.
우리가 그 열매로 이 자리에 섰음을 말하며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웬일일까?
그들은 눈물을 흘렸고 점심을 먹고 오후 시간을 연장해서 자리를 지켰습니다.
한국 땅에 복음을 전해준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며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다른 한인들도 각자의 나라에서 그들에게 고마움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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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중국 성도들과 평양에서 함께 예배하기를

북한을 직접 들어간 것은 1988년 LNK`88(Love North Korea) 선교대회를 했던 겨울이었습니다.
모퉁이돌선교회를 시작한 것이 10월 말이었으니 만 3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3년 동안 성경을 배달하며 북한 지하성도들을 만나고 조선족 성도들을 후원했습니다.
조선족은 실제로 북한 사역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동족이기에, 한 민족이기에, 아니 그리스도의 사랑으로서 북한 성도들을 도왔습니다.
그 뒤에서 한국 교회는 선교사들을 통해 북한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도왔습니다.
김일성이 죽기 전부터 지금까지 진행해 온 일입니다.
조선족 교회와 성도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역을 감당하면서 중국 교회와 성도들에게 선교적 불씨를 주어 도전했습니다.
중국 교회 성도들은 드러내지 않고 조용하고 은밀하게 일했습니다.
가난한 북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긴 중국 성도들이 북한을 드나들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인의 특성상 쉽게 한꺼번에 끓어오르는 것도 아니고 선교의 경험도 많지 않습니다.
오랜 동안 사역을 감당한 서구인의 선교와 큰 차이가 있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모퉁이돌선교회는 그들을 교회와 신학교를 통해 훈련했습니다.
가는 방법을 제시하고 훈련시키고 후원하여 보내서 주의 나라를 세워가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갈 수 없을 때 갈 수 있는 일꾼을 키워내는 일을 40년 가까이했습니다.
어디로? 한족에게로, 소수민족에게로, 그리고 이웃 나라로.
북한이 그중 한 나라입니다.
중국 교회를 이끄는 이들은 한국 교회가 얼마나 귀한 일을 해 왔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들이 빚을 갚고 싶어합니다.
실제로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부담을 가진 중국 교회와 성도들이 북한 땅을 밟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 가운데는 저를 영적 아버지로 여기고 경의를 표하는 세대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세워갈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통일이 오면 평양에 함께 가서 예배하고 싶다는 중국 성도들이 있습니다.
모퉁이돌에게서 성경을 받은 그들이 이제는 한글 성경을 저들에게 배달하고 싶어합니다.
복음통일의 때가 가까운 것은 아닐까요?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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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북한 성도의 숨소리가 들리시나요?

집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연변의 한 조그마한 도시의 감옥소를 폐쇄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탈북민을 체포해 두었다가 북송하는 곳이었습니다.
폐쇄가 기쁜 소식은 아닙니다.
훨씬 더 큰 감옥을 만들기 위한 절차입니다.
감옥은 올해 안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경제적인 쓰나미가 엄청나게 들어닥칠 터인데 감옥을 크게 짓는다?
그 감옥에 갇혔다가 북송되고 다시 탈북한 이들이 한국에 정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택함받고 의롭게 되고 영광스러운 자리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을 돕지는 못할망정 괴롭히는 어리석은 자들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리를 지켜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계신가요?
공산주의자들의 자리를 넘어서서 더 큰 악을 저지르는 자들의 편에 서 있지는 않는지요?
매 맞아 피 흘리고 죽어가면서도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라는 시편 150편의 말씀은 오늘도 유효하다고 외치는 주의 백성이십니까?
북한 땅에 숨겨진 성도들은 손바닥에 십자가를 그립니다.

발로 땅 바닥에 십자가를 그려서 보여주려고 합니다.
머리를 끄덕이며 “우리 것은 길어”라던 원산 할머니.
강 건너편 강화도에 흐릿하게나마 세워진 십자가를 보고 흐느끼는 성도의 가슴은 기도로 채워집니다.
어두운 방 구석에서 읽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땅 한 구석에 세워지는 숨겨지는 교회-예배당을 짓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저 땅에 숨은 자들을.
여기서 준비하는 자들을 훈련하는 이 땅의 새 세대들의 찢어지는 가슴을.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영광스럽게 하셨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은 피 흘려 죽어 가시는 그 영광의 예수 편에 서 계십니까?
아니면 십자가를 멀리서 바라보고만 있다가 도망치시렵니까?
하나님 나라!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은 하나님의 백성이 그 땅에 오늘도 살아 있습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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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봤습니다

홍콩 숙소에서 수많은 성경 밀수꾼들과 마주쳤습니다.
좁디좁은 방에 2층 침대가 10여 개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
화장실은 하나뿐이고 식사를 준비할 부엌도 변변치 않았습니다.
대부분이 태평양을 건너온 미국인과 호주인, 뉴질랜드인이었습니다.
가방 하나 그리고 걸친 옷이 전부인 그들은 홍콩 현지 일꾼의 안내를 따라 새벽부터 저녁까지 가방을 메고 들고 중국을 다녀왔습니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젊은이들도 있었고 은퇴한 나이 든 어르신들도 많았습니다.
겉으로는 관광객들입니다. 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성경 밀수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심천이나 광주를 드나들었고 어떤 이들은 상하이나 북경 등지를 다니며 성경을 배달했습니다.
음식은 주로 길거리에서 간단하게 때웠습니다.

눈에 익은 호주 형제가 “이번에는 어디로?”라고 저에게 물었습니다.
“같은 곳으로.”라고 답했습니다.
“자네 언어를 쓰는 곳?”
“그럼!”
“우리도 같이 가면 안 될까?”
“몇 명이서 왔어?”
“열여섯 명?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왔어.”
“얼마나 배달할 수 있어?”
“할 수 있는 만큼.”
저와 제가 가르친 청년 부부, 그들은 신혼여행으로 선교지를 가고 싶다고 연락을 해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대화한 호주인과 뉴질랜드인까지 모두 20명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당 50kg의 가방을 채웠습니다. 합해서 1톤이 된 셈입니다.
어떤 이는 자기 가방에다가도 성경을 구겨 넣었습니다. 한 권이라도 더 가져다 주려고….
이들과 함께 신의주 건너편까지 여행을 했습니다.
성경은 무사히 배달되었습니다.
어려운 고비고비마다 하나님이 사람을 붙여 주시고 지켜 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당신 백성의 손에 성경 한 권을 들려주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한톤의 성경이 배달된 후에 짐을 맡아서 배달해 준 조선족 형제가 목사가 되었고 같이 동행한 친구도 목사가 되었습니다.
호주 형제도 목사가 되어 북한 선교를 위해 일생을 하나님께 헌신했습니다. 이유를 물었습니다.
“왜 목사가 됐어?”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봤잖아! 우리를 불러내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에 자신감이 생겨 39년 동안 그 일을 했을 뿐이야.”
허름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빨래를 침대에 걸어 말려 입던 열여섯 명의 형제자매들은 대부분 은퇴한 60대의 밀수꾼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배달한 성경은 조선족에게 모두 전달되었습니다.
1986년의 일입니다.
그후 1988년의 LNK ‘88 (북한도 복음화하라)의 행사에 동참했던 이들이 바로 이때 만난 이들이었습니다.
이제는 모두 천국에서 주님을 찬양하고 있겠네요.
한 번이라도 저 땅에 성경을 메고 배달할 날이 오기를 기다리시는 분 계신가요?
저도 함께 갈 그날을 기도합니다.

강 건너 북한 땅을 바라보며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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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탈북민으로 살아가는 이웃에게 김치 한 포기라도

그 음성을 저는 제대로 이해했던 것일까요?

세월이 지나는 동안 저는 이곳저곳에서 북한 주민을 만났습니다.
연길, 하얼빈, 단둥, 일본, 심지어는 영국에서도 만났습니다.
얼마전 북한인 세 명을 미국 애틀랜타에서 가정 모임으로 만났습니다.
냉랭하던 첫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다음날인 주일에 제가 설교하는 교회로 찾아와서
예배 후에 봉투 하나를 내밀던 북한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습니다.
“북한을 잊지 않고 그 수고를 해 주셨는데….”라며 울며 머리를 숙였습니다.
아!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았다던 저들을 향한 마음을 그제야 알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은 저 땅과 저들을 위해 나는 과연 무엇을 했을까요?
커피 값의 10분의 1도 안되는 500원짜리 동전 하나가 저들 북한인의 하루 식량이 된다는데.
남한 땅에서 여전히 탈북민으로 살아가는 이웃에게
김치 한 포기라도 나눌려고 김장을 했습니다.
배추, 고춧가루, 무, 새우젓, 굴을 준비했습니다.
틸북민들을 돕는 일입니다.
그렇게라도 섬길 수 있어 감사한 일이기도 합니다.
지난 39년 동안 공산권선교를 감당해 오면서 늘 하나님이 채우시고 공급하심을 보았습니다.
이번에도 많은 탈북민들에게 공급하려는 이 뜻이 저들의 마음을 열어가시기를 기도합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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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그 세월이 39년 차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반도 반대편 나라에 살던 청년 하나를 불러 내셨습니다.
그 청년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필리핀 마닐라의 한 선교부에서 일했습니다.
그는 제주도의 극동방송 안테나를 세우며 북한을 위해 10년을 기도하였습니다.
북한에서 태어난 미국시민권자로 북한 선교에 뜻있는 사람을 찾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그 청년을 저는 캘리포니아의 산타 아나 사무실에서 만났습니다.
1984년 여름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미국에서 모퉁이돌선교회를 등록하고 1985년에 한국에서 모퉁이돌선교회를 시작합니다.
어머님이 뜻하셨던 북한 선교를 지구 반대편에서 준비시키신 청년과 함께 영락교회에서 LNK’88(북한사랑 심포지움)을 열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저는 공산권에 대한 지식이 없고 가르쳐 줄 만한 분을 한국에서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호주, 루마니아, 네덜란드, 홍콩에서 데일 킷즈만 박사, 죠나단 챠오 박사, 데이빗 셧펀, 웜브란트 목사님을 준비해 놓으셨다가 만나게 하셨습니다.
모두 공산권 선교를 구체적으로 하고 계신 분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은 경험과 지식이 풍부했고 저를 주저없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중국 현장에는 조선족들이 성경을 필요로 했기에 공급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북한의 성도들을 만났습니다.
북한 언어로 성경을 번역해 달라는 그들의 요청이 모퉁이돌선교회의 사역이 되었습니다.
저는 처음에 저를 도왔던 분들의 영역을 벗어나서 조선족에게로, 북한인들에게로 가까이 갔습니다.
그 세월이 38년을 넘어서 39년 차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준비하심이 보이십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성경 배달은 밀수라는 비밀스러운 방법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사람들을 통해서 공급하시는 것으로 성경을 인쇄하고 출판하고 배달합니다.
선교사들을 현지로 보내서 사역하게 하심만 감당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지구 끝에서 한 사람을 준비시켜 주셨으니 공급할 사람들도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39년 차가 되는 동안 오해가 많았습니다.
가짜 뉴스를 만들어서 유튜브에서 선교를 방해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북한의 지하성도를 위해 남북한의 언어를 한 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남북한 병행성경』을 만들었습니다.
여전히 라디오로 방송을 하고 풍선을 띄우고 북한의 영적 인프라를 만들어갑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선포하라 하셨기에 순종할 뿐입니다.
필요한 것을 채우실 하나님이 위대하시기에 순종할 뿐입니다.
올해도 “예! 하나님”이라고 선포하며 주의 나라를 위해 매일 낮 12시에 기억하여 기도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역할을 하시고 그 하나님께 순종할 때 우리는 무익한 종으로서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저는 아무런 능력이나 힘이나 지식이나 자격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할 책임만을 고집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바로 우리의 목표이고 길임을 알아 감당할 때 북한 땅에 일어나야 할 복음의 역사가 이뤄질 것을 바라고 의지합니다.
올해도 “예! 하나님” 하시며 순종하시렵니까?
순종하시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뤄질 것입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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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주님이 포기하지 않으시기에 저도 감당할 뿐입니다

“나는 그 땅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땅에 내 백성이 살아 있다!”

하나님이 제게 들려주신 음성입니다.
1985년 중국에서의 일입니다.

그후로 저도 그 땅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감당하려고 애썼습니다.
중국을 드나들면서 조선족으로 북한 주민을 돕게 했습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탈북민과 북한인을 도와야 했습니다.
그리고 평양에 발을 들여놨습니다. 수천만 불어치의 의약품, 강냉이 씨앗 등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것보다 더 마음을 쓰며 했던 일은 성경을 직간접적으로 배달한 것이었습니다.
전도지를 전하고 풍선을 띄웠습니다.
방송을 꾸준히 해보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는 동안 매도 맞았고 배신도 당했고 고문도 당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도 주님처럼 포기하지 않도록 이끌림 받았습니다.
사역하는 동안 재정적으로 힘들고, 아이들을 남들처럼 입힐 수 없었습니다.
때로 불끈불끈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래도 걸어야 했습니다.
사랑하게 되도록 하나님의 자비를 구해야 했습니다.
한 번은 포기하고 싶어서 육신의 아버님께 여쭈었습니다.
아버님은 “네가 안 하면 그 길을 누가 가겠냐?”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이 여전히 제 귀에 들리는 듯합니다.
탕자를 끌어안고 잔치를 베푸시고 더 좋은 옷으로 입히시는 하나님.
그분을 닮기에 저는 여전히 악함에도 주님이 곁에 계십니다.

주어진 일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주어진 것은 사랑과 용서와 너그러움이지만 정말 쉽지 않기에 주님이 어떻게 범죄한 자식을 사랑하실 수 있는가를 묻기도 합니다.
그 사랑. 그 은혜. 여전히 가까이 머무시는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오늘도 유효하기에 다시 일어납니다.
그러고는 창밖으로 건너다 보이는 북한 땅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립니다.
용서받고도 용서받은 줄 모르고 여전히 살아가는 백성을 보며 아픈 마음을 부여잡습니다.

북녘 백성에게 당신들은 용서받은 자들이라고 우리가 전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 용서하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기다리니 지체 말고 돌아오라고 말입니다.
매 맞고 굶주리고 피 흘리는 백성들을 아버지가 사랑으로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손과 발이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하지 않을까요?
이 땅에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북녘에도 가득한 성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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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영혼이 깨어나는 생사의 일입니다

여전히 북녘 땅을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40년 전,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방에 성경을 넣어 현장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1983년부터 지금까지 만난 분들을 통해 주께서는 일들을 이루시고 인도하셨습니다.
때로 모함하고 비난하는 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한 가방에 가득히 채운 성경을 배달하는 일은 중단할 수 없었습니다.
성경을 번역하여 북한에 보내는 일은 가치 있는 일이었습니다.
방송을 통해 저들로 듣게 하는 일 또한 복된 일이었습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살고 죽는” 생사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매를 맞고 고문을 당하고 버림받은 듯한 재정의 어려움이 괴롭히고 있었습니다만
제게 주어진 그 조그마한 일.
성경을 배달하고 번역하고 출판하고 현장으로 일꾼을 보내는 일.
일꾼을 찾아내 키우는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저는 중국에서의 사역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몽골이나 러시아에서의 일도 여전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북한 지하성도를 영적으로 먹이고 구제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눈을 팔아서 저를 미국에 보내시려 했던 어머님은 죽기까지,
피 흘리면서 가야 할 길이라고 말씀하셨고
아버님은 “포기하지 마라! 네가 안 하면 누가 하겠냐?”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 길을 오늘도 갈 뿐입니다.
세상 일을 위해서는 몇백억씩 기부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신문에서 보았습니다.
구원을 위해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뤄가실 분들이 없나요?
여전히 북녘 땅을 바라보고 오늘을 시작합니다.
주어진 작은 일이라도 감당하기 원합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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