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콤소식 2017.9. 특집3] 신사참배 했던 목회자들이 공산정권을 세우는데도 앞장섰다!

 

“목사 동무들, 일제 시대에는 교회가 정부시책에 잘 협조했는데 이 무 슨 소리요. 이제는 우리가 나라를 세우는데 협조를 안 한다면 그것은 반동이요! 알갔소?”
김일성이 성난 목소리로 책상을 꽝! 내리치며 소리치자 순식간에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듯 조용해졌다. 1946년 11월 3일, 주일에 교회를 인민위원 선거장소로 사용할 것을 요구한 김일성에게 ‘북한 5도연합노회’ 대표 7인이 찾아가 항의의 뜻을 표하자 김일성은 국가를 위해 교회가 협조해야 된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대표 7인을 돌려보냈고, 예정대로 주일에 교회에서 선거를 치렀다.
기독교의 선거 참여를 유도하라는 김일성의 지시를 받은 강양욱은 공산정권을 지지할 어용단체에 평양의 유력한 목사들을 끌어들이려 했으나 평양시내 교역자 중에 동조하는 이가 거의 없었다. 이렇게 되자 일제 때 신사참배 강요에 굴복했던 목사나 친일파 목사와 장로를 회유와 협박으로 가입케 하였다. 그리하여 함경도의 조희렴 목사 등을 발기인으로 하여, 1946년 가을 곽희정, 이웅, 신영철, 심익현, 나시산, 배덕영(일제하 기독교조선감리회연맹 이사) 김치근, 황기황 목사 등을 중심으로 ‘북조선기독교연맹’이 조직되었다.
북조선기독교연맹에 가입한 목사들 대부분은 일제시대 신사참배를 했던 목사들로, 강양욱과 함께 연맹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심익현은 평안남도 대동군 용산면 하리교회(지금 평양 만경대구역 칠곡동 칠곡교회 자리) 담임목사로 일제하에서는 친일조직인 기독교내선친목회 회원으로, 신사참배가 가결될 당시 신사참배 즉시 실행을 특청했던 인물이었다. 강양욱은 전 중국 산동지방 선교사로 일했던 박상순을 연맹 위원장으로 1942년 장로교 총회장을 역임한 황해도 인민위원회 요직에 있던 김응순 목사를 연맹 부위원장으로 세웠다.
김응순은 황해도 장연에서 출생하여 소래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고, 1927년 장로회신학교를 졸업(제21회)하고 그 해 가을 소래교회의 청빙을 받고 황해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1936년 해주 제일교회에서 시무 중 황해노회 노회장에 선임되어 황해도 지역의 장로교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또한 평양기독교친목회 회원이었는데, 이 모임은 개신교 목회자들을 대거 친일 활동에 끌어들인 평양 출신의 교육자이자 언론인 오문환이 설립한 단체였다. 조선총독부는 이 단체를 이용하여 기독교 황민화를 추진했고, 김응순은 오문환을 따라 교토에 있는 헤이안신궁, 나라에 있는 가시하라신궁, 도쿄에 있는 야스쿠니신사, 이세신궁 등 여러 신궁을 다니면서 신사참배를 하고 귀국했다. 1942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장에 올라 전쟁지원을 위한 예배를 거행하고 교인들에게 헌금을 걷어 전쟁에 필요한 전투기와 무기 등을 기증하고, 전국교회의 종을 모아 헌납한 일도 있다. 1938년 9월 제27회 총회 시 신사참배 결의에 동참하였으며, 1942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제31회 총회가 개회되었을 때에 황해노회장으로 재임 시 창씨개명을 하여 아라모리목사라 불렀으며,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가 1943년 5월에 해산을 하고 1943년 일본기독교 조선교단으로 발족할 때 교단본부의 부총리를 맡았다.

 

김치근 목사는 평양장로회신학교 17회 졸업생으로 해방 뒤 교회가 공산정권에 협력하는 일에 앞장섰다. 당시 평서노회의 중진이었던 김치근 목사는 용강에 과수원과 논, 밭 등 상당한 재산을 가지고 있었는데 북조선기독교도연맹에 적극 협력했다. 이들을 앞세운 교회에 대한 핍박이 심해지면서 1947년에는 북한교회의 삼분의 일이 북조선기독교도연맹에 가입하고, 1948년 조선중앙연감에 의하면 조선기독교연맹원의 숫자는 85,118명이었다. 한편, 1947년 2월 21일 개최된 제 1차 북조선 인민위원회에서는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추대하고, 해방 전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홍기주 목사와 김책을 부위원장으로 선출했다. 홍기주는 북한정권 수립 초기 김일성에 협조한 대표적인 기독교계 목사이자 북한 정권 수립에 협조한 기독교계 인사 중 가장 고위직에 오른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북조선인민위원회에 북조선기독교도연맹의 지도적 인사들이 대거 발탁되면서 북한정권의 반종교 선전과 고립정책을 추진해 연맹에 가입하지 않은 교회들을 약화시켰다. 이에 더하여 북한당국은 토지개혁을 통해 기독교 세력에 대한 경제적인 탄압을 감행했다. “반동적인 장로, 목사로서 토지를 소유하지 않은 자가 거의 없고, 놀고 먹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저들은 우리에 대해서 불만을 갖고 있다.” 라고 한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북한정권은 ‘무상몰수·무상분배’를 원칙으로 한 토지개혁을 통해 종교단체 소유지를 모두 압수했다. 이로 인해 모든 종교 활동의 경제적 기초가 무너졌고, 특히 황해도와 평안남북도 지주세력을 기반으로 한 기독교 세력과 민족주의 세력이 몰락한 계기가 되었다. 또한 ‘미신타파돌격기간’을 설정하여, 반종교적 운동을 일으켜 교회에 막대한 타격을 가하였다. 그 결과 1950년 개신교 신자 수는 약 12만 명, 교회 수는 약 1,400개소라고 하는데, 이는 해방 후부터 약 4년 동안 교세의 40% 이상 감소한 것이다.

 

김일성은 노동당 제2차 대회가 열린1948년 3월을 전후로 교회 장로들과 목사들에 대한 공격의 강도를 높였다. 북한정권이 반공 노선을 취하는 기독교 세력을 반체제 세력으로 규정하고 탄압하자, ‘북조선기독교도연맹’은 1948년부터 도, 군, 면의 연맹지부를 결성하여 그 조직을 확대해 나갔고, 북한 기독교의 최대 세력인 5도연합노회를 해산시키고 1949년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북조선기독교도연맹 총회를 개최해 총회장에 김익두 목사, 부회장에 김응순 목사, 서기에 조택수 목사(당시 황해도 곡산읍교회, 명백한 친일행위자)를 세웠다. 그리고 북조선기독교도연맹 제3차 총회에서는 새 강령을 채택하여, 강령 전문에 “인민공화국을 지지하며, 인민공화국 헌법과 정부 정강을 실천한다”고 삽입하였다. 1950년부터 3년간 계속된 6·25 전쟁 중에도 ‘북조선기독교도연맹’은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자 서울에서 ‘서울 탈환환영예배’를 드렸다. 북한교회는 전쟁에 대해 물질적, 정신적으로 지원하고, 1950년 8월 5일 평양 서문밖교회에서는 기독교도연맹 중앙위원들과 각 지구 대표들, 북한 전역의 목사, 장로 등이 참석한 가운데 궐기대회를 열고, 북한의 기독교인들에게 전쟁의 승리를 위해 총궐기할 것을 호소하였다. 심지어 8월 13일에는 북한 전 지역에서 전승 기도회를 열어 6·25전쟁은 ‘정의의 전쟁이며 성스러운 전쟁’으로 규정해 남한정부와 미군에게는 하나님의 저주가 내리기를 기도했다. 전쟁 승리를 위한 무기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헌납운동에도 열을 올렸다. 북조선기독교도연맹총회 초대 총회장을 지낸 황해도 신천 서부교회의 김익두 목사가 비행기, 탱크, 함선 기금 10만원을 헌납한 후, ‘군기 구입 헌납운동’은 각 지역 교회들로 확산되어 갔다.

 

이것은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결행하고, 전쟁물자와 전승기도회 등을 가졌던 것과 너무나 흡사한 형태이다. 결과적으로 신앙의 정절을 지키지 못한 교회와 목회자들이 공산정권 하에서도 동일한 죄악을 답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통일을 준비하는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해방 후 김일성이 신사참배에 적극 가담했던 목회자들로 공산정권을 지지하도록 탄압하고, 그에 굴복한 목회자들의 죄악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신하여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는 제사장적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만 할 것이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무너진 성벽을 수축하고 주의 제단을 재건함으로 갇힌 백성들이 자유로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복을 누리도록 닫힌 문을 여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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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소식 2017.9. 특집2] 조선 땅에 들어온 신사와 그 악영향 및 제사장적 회개

 

인류역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하나님의 은혜가 강렬하게 임한 평양 대부흥은 한반도 전역에서 감사와 감격의 찬송이 울려 퍼지게 하였다. 그러나 불과 30여년 간 지속된 부흥의 열매는 급브레이크를 밟은 승용차처럼 멈춰버리고 말았다. 당시 조선교회가 일제의 악랄한 핍박 앞에 굴복하고 만 것이다. 조선예수교장로회가 1938년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천조대신 외에는 참신이 없다!”고 고백하면서 본격적으로 하나님을 배신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아 누렸던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일부 목사님들과 성도님들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교단과 교파가 배교하였다. 한반도 땅에 세워진 ‘신사의 분포’와 ‘신사가 들어온 경위’ 그리고 해방 후 ‘신사가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살펴보면 신사참배를 통해 행한 우리나라와 민족의 신앙적 배반이 하나님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시게 하는지 알 수 있다.

 

1893년 신토의 일종으로 알려진 천리교가 부산에서 포교를 시작하였다. 1920년말에는 총독부의 보호 아래 천리교, 금광교, 신리교, 대사교, 실행교 등 5개 종파가, 1941년말에는 교파신토 13개파 가운데 무려 10개 교파가 한반도에 침투하여 포교 활동을 했다. 특히 교파신토는 일제에 의하여 ‘국가신토를 위한 선도자’ 역할을 담당하여 총독부의 보호를 받으면서 “교파신토는 종교요, 국가신토는 종교가 아니다.”라는 기만적 이론의 기반이 되었다. 국가 신토가 한반도에 자리잡을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였던 것이다. 일제 때 조선 땅에 세워진 신사는 모두 1,141개였다. 그 중 가장 격이 높은 신사를 관폐신사라고 하는데 조선신궁과 부여신궁이다. 그 하위 신사를 국폐소사라 한다. 경성신사, 강원신사(춘천), 대구신사, 평양신사, 광주신사, 함흥신사, 전주신사 그리고 용두산신사(부산) 등 모두 8곳에 세워졌다. 더 아래 등급의 작은 신사들도 있었는데 전국에 약 1,000여곳에 세워졌다. 관폐신사와 국폐소사 그리고 나머지 소규모의 신사들이 남북한에 걸쳐 전국적으로 세워졌던 것이다. 신사는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들을 모신 곳이었고, 신사에서의 신앙행위는 새긴 우상과 형상을 만들어 그것에 절하며 섬기는 것이었다. 태양여신인 천조대신과 태양여신의 아들인 천황을 우상으로 숭배하므로 십계명의 제1, 2계명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명백한 배교행위였다. 시편 121편 기록자가 시온산을 가득 메운 산당들을 보고 하나님을 우러러 탄식하던 모습이 당시 조선 땅에서 재현된 것이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신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방해하려던 일제의 간악한 궤계는 조선신궁이 세워지는 과정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조선신궁이 진정한 신사가 되기 위해서는 천조대신과 메이지 천황을 맞이하는 의식을 거쳐야 했다. 그것이 바로 ‘진좌제’라는 것이다. 1925년 10월 15일 조선신궁 진좌제를 맞이하여 조선총독부에서는 조선신궁에 모실 신들의 신체(신사의 예배 대상, 영대(靈代), 정체(正體), 어신체(御身體)로 불림)를 일본에서 들여왔다. 조선총독부는 조용히 신체를 운반하는 관례와 달리, 수많은 조선인들을 의도적으로 동원하여 많은 인파가 모인 거대규모의 행사로 꾸민 다음 천조대신이 바다를 건너 조선으로 넘어온다는 느낌을 주도록 성대한 환영회를 개최하였다. 일본에서 보낸 신체는 부산역에 당도하였고 부산역에서 출발하여 경성역에 도착하였는데, 조선의 주요도시들을 땅밟기하듯 순서대로 점령하며 북상해 올라오는 루트를 거쳤다. 그 클라이막스는 신체가 경성역(서울역)에 도착하는 10월 13일이었다. 경성역은 1925년 9월 30일에 신축되었는데 신축 후 처음 들어온 열차가 조선신궁 신체를 실은 열차였고 많은 사람들이 운집한 가운데 보란듯이 신체가 경성역에 도착한 것이다. 조선신궁 신체가 경성역에 도착하였다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 일본의 근대화된 문명이 미개한 조선 땅에 혜택을 베풀기 위하여 들어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행위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조선신궁의 신이 일본의 영권(靈權)을 가지고 조선으로 침노해 들어왔다는 영적 의미가 숨겨져 있다. 역사적 사실의 이면에는 내력이 있고 내력 중에도 영적인 내력은 역사의 흐름을 좌우한다. 이리하여 이세 황대신궁을 일본 전역에 정점으로 두고 그 직계로 조선신궁과 부여신궁 두 관폐신사를, 그 아래 도별 1개씩의 국폐신사 그 다음에 일반 신사들을 둠으로 조선 땅 구석구석까지 신사가 세워졌다. 외연적으로는 황민화 정책의 거점망이 구성된 것이었으나 영적 측면에서는 일본 본토의 태양여신과 천황이라는 악의 세력이 한반도 전역을 지배하기 위해 견고한 진을 형성한 것이다. 이후 연쇄적으로 신사참배 인식운동, 신사참배 권유운동, 동방요배, 목회자들의 근로봉사(부일협력), 국방헌금, 휼병금, 무운장구기도회, 시국강연회, 전승축하회, 일본군 위문, 일제에 전투기 헌금, 신사참배 거부목회자 파직 등이 이어지면서 차마 형언할 수 없는 배교적 행위들이 한반도를 죄악으로 얼룩지게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와 민족을 사랑하셔서 일제로부터 지키고 보호해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은 갑작스런 해방을 선물로 주셨다. 일제의 지배하에 신음하던 조선교회가 36년간의 암울한 역사가 종결되면서 8·15 해방을 맞이한 이후 한반도 땅에서는 예배당 재건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신사가 세워져 있던 자리도 교회터로 탈바꿈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신토침례와 신사참배로 하나님을 배교하였던 교회들이 철저한 회개의 과정을 생략한 채 버젓이 교회로 재건되어 예배를 드리고 입당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광복 직후 남겨진 천리교의 신사 터는 미 군정청과 교섭하여 조선신학교 소유로 불하되었고 거기에 교회들이 세워졌다. 남산은 아래에서 올려 보면 경성 어디서든 누구나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하였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경성을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일제가 세운 신사는 조선의 중심인 경성을 송두리째 장악하고 본토인 일본을 향하여 마주보고 서있는 모양새로 세워졌던 것이다. 이 남산에 있던 조선신궁 별관 자리에 대한예수교장교회신학교와 기독교박물관이, 남산 북쪽 기슭 경성신사 자리(중구 예장동)에는 숭의여고와 숭의여자대학교가, 또 그 아래 신토 절간 자리에는 C교회와 현재의 H신학교를 후신으로 하는 신학교가 점유하였고 서울역 맞은 편 동자동의 천리교(신토에 소속된 종파) 본부 자리에는 한국 제일의 근대식 건물을 자랑하는 Y교회가, 장충동의 서울 지부 자리에는 K교회가 들어섰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신도침례와 신사참배에 대하여 회개하지 않은 한국교회가 신사가 위치했던 곳을 예배당으로 바꾸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는 현실이다.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예배당은 건물일 뿐 성전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내주하여 계심으로 오늘날 성도된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이다. 그러므로 신토침례와 신사참배에 대해 회개하지 않은 주의 백성들이 신사가 세워진 곳에 예배당을 짓고 예배한다면 그곳은 여전히 하나님을 배반하던 신사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그 예배자들의 주인이 여전히 천조대신이고 천황이기 때문이다. 신도침례와 신사참배에 대한 통절한 회개 없이 드려지는 예배는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한 또다른 형식의 동방요배일 뿐이다. 회개없는 예배는 죄로부터 도피하는 가면 무도회일 뿐이다.

 

청산되지 않은 과거는 되풀이된다. 마리아 숭배의 여신 사상에 물든 왜병들 18,000여명에 의해 강토가 피로 물들었던 약 7년간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태양여신을 숭배하는 악의 세력들이 우리나라와 민족을 압제하였던 일제 36년, 사단이 즐기는 피의 제사와 다름없는 동족상잔의 비극 6.25전쟁, 한반도의 분단의 역사 72년, 그리고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남북문제와 정치·사회·문화·군사적 혼란과 교회와 성도의 타락… 이 모든 일과 그 과정은 예레미야서에 등장하는 하늘황후인 태양여신과 인간에 불과한 천황을 신으로 숭배한 죄에서 잉태된 결과들로써 우리나라와 민족에게 고통과 비극의 연속이었다. 청산되지 않는 역사적 정황은 회개로 정결케 되어야 한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고자 했던 모리아산은 순종의 터였다. 다윗이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버리고 인구조사의 죄를 범했을 때 그로 회개케 한 곳인 아나우라의 타작마당은 바로 모리아산 아브라함의 순종의 현장이었다. 순종의 역사가 서려있는 회개의 땅이었던 모리아산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솔로몬 성전이 들어섰다. 반면 바벨탑이 세워졌던 시날 땅은 인본주의가 극에 달하였던 바벨론 지역이었다.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 민족을 징계하는 일에 쓰임받지만 결국 멸망하는 족속의 대표적 이름이 바벨론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징계하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포로로 끌려가게 하시는 처참한 유배의 땅 이름도 바벨론이다. 회개없는 악의 땅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패역이 저질러지는 악한 곳으로 남는다. 그러나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한 땅에는 하나님의 집이 들어선다. 순종의 땅 모리아이자, 회개의 땅 아나우라였던 곳에 하나님의 성전이 들어섰던 성경의 역사가 신사로 가득찼던 한반도 땅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하나님이 아니라 태양여신이 최고의 신이라고 선포하였던 신도침례(미소기바라이)의 악행은 회개해야 마땅한 우리민족의 원초적 죄이다. 전국 곳곳에 설치된 신사에서 우상에게 절하며 하나님을 배반하였던 신사참배의 죄는 회개하여야 마땅한 과거사이다. 뼈아픈 과거와 숨겨진 역사적 치부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일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반드시 넘어서야 할 산이다. 회개는 슬프고 고통스러운 정서를 동반하지만 결국은 우리를 소망으로 인도한다. ‘실망’이 아니라 ‘절망’이라고 표현해야 마땅한 영적타락에서도 일으켜 세워 하나님을 향한 ‘앙망’으로 바꾸어 주는 회복의 능력이 회개로 말미암아 주어진다. ‘거룩한 슬픔의 회개’ 너머에 ‘더할나위 없는 회복의 기쁨’이 우리나라와 민족을 기다리고 있다. 한반도 땅에는 살벌한 전쟁의 위험이 상존한다. 교회는 일상적으로 심각한 타락과 분열 가운데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마지막 선교의 대열에서 주역이 될 우리나라와 민족을 향해, 특별히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인 우리에게 제사장적 회개의 기도를 간곡히 요청하신다.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행악을 인하여 나의 분노가 불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끌자가 없으리라” (렘 4:4)

황제롬 목사(미국 목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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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소식 2017.9. 특집1] 한국교회의 신사참배 죄악을 회개합니다!

 

우리는 지난 8월 ‘카타콤소식’에 일제강점기 일본이 우리민족에게 자행한 죄악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용서하는 내용을 다루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한국교회가 해결해야 하는 더 중요한 문제가 있음을 말씀하신다. 그것은 일제의 탄압에 굴복하여 한국교회가 자발적으로 신사참배를 결행한 죄악을 구체적으로 자복하고 회개할 것에 대한 촉구이다. 이번 호에서는 신사참배를 자행했던 한국교회와 우리의 부끄러운 수치를 낱낱이 드러내고 그것에 대해 회개하고 돌이킴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실 통일을 주도적으로 감당해 가는 한국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그 내용을 정리하였다.

 

1915년 일본이 장악한 조선총독부는 교육과 종교의 분리 원칙을 내세우며 기독교학교의 종교교육을 완전히 금지하였다. 그러나 1919년 3·1운동의 결과로 미국 워싱턴에 4년 간 체류하면서 교회도 나가고 영어로 일기도 쓸 정도로 어학실력을 갖춘 지미파인 사이토(齊藤實)를 1919년 9월 제3대 조선 총독으로 임명했다. 사이토는 부임하자마자 적극적으로 선교사 회유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기독교학교의 종교교육을 허가하면서 지정학교제도를 시행했다. 이는 기독교학교를 인정하여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제도이다. 이 제도를 통해 기독교학교가 식민지 교육체제로 귀속되기 시작했고 경신학교, 계성학교, 신흥학교, 신성학교 등의 기독교학교들은 지정학교로 인가된 이후 일제가 요구하는 교과과정을 따르기 시작했다. 식민지 조선의 기독교는 지정학교로 인가 받기 위해 총독부의 시혜를 바라는 입장을 가지게 되었다.
그 결과 아시아·태평양 침략전쟁 시기에 기독교학교들은 황국신민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1912년 3월 조선총독부는 ‘조선민사령’을 공포하면서 식민지 조선에 부동산 등기제도를 실시하여 부동산에 관련된 제반 사항은 등기를 통해 이루어졌고, 토지조사사업이 완료된 1918년부터 실질적으로 시행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조선총독부는 1920년대에 기독교단체의 법인설립을 허용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선교사 회유정책의 핵심전략 중의 핵심이었다. 1924년 조선총독부는 기독교 여러 교파의 책임자들을 불러 법인설립을 허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1924년부터 1926년까지 선교회의 법인설립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미국 북장로교선교부, 미국 남장로교선교부, 미국 남감리교선교부, 미국 북감리교선교부, 캐나다 장로교선교부, 호주장로교선교부 등의 선교부가 이 시기에 재단법인을 설립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조선총독부로부터 세금감면의 혜택, 즉 30/1000 비율이었던 세금이 5/1000의 비율로 감면된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선교사 회유정책의 결과 선교사들은 조선총독부에 협조하는 태도로 전환했다. 한국감리교의 감독(1916-1928)을 지냈던 웰치(H. Welch) 선교사는 사이토 총독을 ‘기독교 정신의 구현자’라고 불렀다. 스코필드(F. W. Scofield) 선교사는 식민지 조선의 지도자들에게 “공연히 일본 통치를 공격만 하지 말고 스스로 고치고 타일러 민족을 위한 길을 찾아보시오. 당신네들은 일선(日鮮) 공존공영의 필요를 인정하고 온전한 사상을 가지는 것이 이로울 것”이라고 타이르기도 했다. 재단법인의 설립으로 식민지 조선의 기독교는 기득권을 지킬 수 있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조선총독부의 전면적인 통제를 받게 되었다. 그 결과는 ‘일본적 기독교의 확립’, ‘국체에 적합한 야소교’로 나타났으며 열매가 ‘종교보국’이라는 미명 하에 시행된 신사참배와 전쟁협력이었다.

 

‘일본적 기독교의 확립’, ‘국체에 적합한 야소교’는 일제의 아시아·태평양 전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1944년에 시행된 징병제를 정당화까지 했다. “조선 기독교인들이 중국에 파병되어 있는 일본군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위문대를 보내는 운동은 그 발상만으로 칭찬받을 만한 일”(『윤치호 일기(1916-1943)』, 역사비평사, 2001, 427-428쪽)
“우리들은 일본제국 신민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는 감이 없지 않지만, 좌담회 등에 의하여 황군은 우리들 때문에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1937년 11월 6일 함경북도 박석홍 기독교인) 해방 후에 연세대 총장을 역임한 백낙준 박사는 요한복음 2장 16절의 내용, 즉 예수가 성전을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가리킨 장면을 천황에 대한 보은 논리로 차용했다. 그는 병역을 국민의 가장 숭고한 의무라고 강조하면서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에게 징병제에 적극 동참할 것을 강권하였다. 그리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는 ‘내 아버지의 집’인 성전을 수호했듯이 우리도 일본을 결사 수호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백낙준, ”내 아버지의 집”, 『기독교신문』, 1942년 5월 20일자)

 

일본기독교 조선장로교단의 총무 김종대 목사는 사도 바울이 로마 영토 내에서 전도를 하기 위해 유대인의 이름인 사울을 버리고 로마인의 이름인 바울로 개명했듯이 식민지 조선의 기독교인들도 창씨개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바울이 전도의 언어로 모국어가 아니라 헬라어를 사용한 것처럼, 우리도 일본어를 적극적으로 배워 전도의 기회로 삼자고 주장했다. 그는 사도 바울의 서사를 동원해 창씨개명, 대동아공영권, 일본어 사용을 중심으로 하는 일제의 내선일체 기조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였다.

 

1940년 일제 경찰이 마련한 <기독교에 대한 지도방침>에 따라 1942년 12월 감리교회는 가장 먼저 구약성서 폐기를 선언했다. 1943년 5월 5일 일본기독교 조선장로교단은 구약성서에 나타난 유대사상을 없애기 위해 적당한 해석교본을 편찬할 것을 결의했다. 1943년 10월 일본기독교 조선감리교단도 설교시간에 구약성서와 요한계시록을 사용하지 않고 4복음서만을 사용할 것을 지시했다. 이렇게 일제가 구약성서를 말살하려고 했던 이유는 구약성서 특히 예언서에 담긴 저항적인 메시지를 제거하고 그 정신을 거세하기 위해서였다. 일제는 식민지 조선의 기독교가 자신들의 지배에 대해 그 어떤 저항도 하지 않기를 기도(企圖)했다. 심지어 윤치호는
“아모스와 같은 히브리 예언서는 읽기 어렵다. 나는 신이 저와 같이 욕설하는 말투로 비판했다고는 정말로 믿기 어렵다, 그러한 품위 없는 말씀을 사용했을 리가 없다.”(역사비평사, 2001)고 주장했다.

 

1940년 11월 10일 장로교 총회장 곽진근 목사는 장로회 총회 간부들과 함께 이른바 “조선예수교 장로회 혁신요강”을 발표했다. 이 혁신요강의 제5조 3항에는 “찬미가 기타 모든 기독교 관계 서적 출판물의 검토를 하여 국체에 배반되는 자구를 개정할 것”이 들어 있었다. 이러한 요강에 따라 진행된 찬송가 가사의 개정과 삭제가 1942년 1월 20일부로 종교교육부 총무 정인과 목사의 명의로 “신편찬송가 정정 사용 주지의 건”이라는 긴급통고문을 발표하고 실행되었다. 이렇게 찬송가 가사를 개정하거나 삭제한 예를 들면, 일제의 “천황-신민”이라는 천황제 이데올로기에 위배된다고 생각되는 “왕, 대왕, 만백성, 백성, 임금, 구주, 구세주, 만유의 주재, 다스리시네” 등 하나님의 통치권과 관련되는 단어는 ‘주, 주님-사람, 보살피시네’ 등으로 바꾸었다. 또한 영적인 전투, 군사와 관련된 단어인 “군병, 충성, 싸우라” 등은 “일꾼, 정성, 일하라” 등으로 바꾸고, “십자가 군병”이나, “내주는 강한성”,
“믿음이 이기네”, “믿는 사람들은 군병 같으니”, 심지어는 주기도문 영가까지도 전장을 삭제했다.

 

장로교는 1938년 9월 제27회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했고, 12월 12일에는 장로회 총회장 홍택기와 부회장 김길창이 감리교 총리사 김종우와 전 총리사 양주삼, 성결교 이사장 이명직과 함께 일본의 이세신궁, 메이지신궁, 가시하라신궁, 아츠다신궁, 야스쿠니신사 등을 두루 참배하려고 일본으로 떠났다. 1939년 9월 10일 제28회 총회 결의에 의하여 3천여 교회가 국민정신총동원연맹에 가맹하여 ‘종교보국’의 실적을 올렸다. 동시에 시국에 맞추어서 외국인 선교사의 기반(羈絆)을 벗어나 진정한 ‘일본적 기독교의 확립’, ‘국체에 적합한 야소교’로 전향하는 길을 능동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단히 놀라운 것은 총회 차원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하기 이전부터 23개 노회 가운데 17개 노회가 독자적으로 신사참배를 실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무려 장로교의 74%가 이미 신사참배를 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또한 신사참배를 총회 차원에서 결의하기 전부터 전승축하회 86회와 무운장구기도회 2,042회를 실시하고 국방헌금 454,539원을 모금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의 조선기독교의 신사참배를 일제의 강요라는 외적 요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결의하게 되었다는 옹색한 논리는 사뭇 무색해질 수 밖에 없다. 신사참배에 대한 일본의 외압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세계기독교 부흥역사에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부흥을 경험했던 한국교회가 개인 혹은 총회차원에서 자발적인 신사참배를 결의한 것이다.

 

한국교회의 죄악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해방 후에도 이 부끄러운 죄악에서 돌이키는 것은 고사하고 오랫동안 신사참배 한 죄악을 은폐하며 오늘에 이른다. 물론 몇몇 개인과 교단이 부분적으로 신사참배를 인정하고 회개하기도 했지만 본질적으로 이 죄악에 대해 아직까지도 묻어두고 있다.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한국교회와 성도는 없다. 심지어 신사참배를 하지 않았던 성도라 할지라도 그러하다. 이 죄악은 너무나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부분이지만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반드시 회개하고 돌이켜야만 하는 문제이다. 해방과 함께 분단되어 아직까지도 피 흘리는 우리민족의 역사가 한국교회가 해결하지 못한 신사참배의 죄악으로 인한 것은 아닐까?

 

그러하기에 통일을 기대하며 준비하는 지금 느헤미야 1장 6~7절에 “이제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가 일제강점기 한국교회가 일본의 탄압을 견디지 못하고 신사참배한 죄악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비의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라며 제사장적 기도로 나아갑니다.

송재선 목사(본회 연구원 부원장)

 


 

 

1. 신명기 4장 19절에 또 그리하여 네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해와 달과 별들, 하늘 위의 모든 천체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하 만민을 위하여 배정하신 것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며 섬기지 말라” 경고하신 하나님, 1919년부터 사이토 총독의 회유정책에 넘어가 기독교학교들이 황국신민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으로 전락했던 죄악을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신하여 회개합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2. 고린도전서 6장 10절에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말씀하신 주여, 1924년부터 미국, 캐나다, 호주 등 대다수의 선교회가 재단법인을 설립하면서 세금감면 등의 혜택을 받으려고 선교사들이 조선총독부에 협조하고, 조선교회로 하여금 신사참배와 전쟁협력에 따르도록 권고한 죄악을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신하여 회개합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3. 이사야 56장 11절에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 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라 다 제 길로 돌아가며 사람마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 말씀하신 여호와여, 일본의 아시아·태평양 전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1944년에 시행된 징병제를 ‘내 아버지의 집’인 성전을 수호했듯이 일본을 결사 수호해야 한다고 정당화하며 일본군에게 성탄절 선물로 위문대를 보내는 운동을 전개하고, 창씨개명, 대동아공영권, 일본어 사용 등을 주장하며 일제의 내선일체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조선교회 목회자와 지도자들의 죄악을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합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4. 이사야 59장 21절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신 여호와여, 1942년 12월 가장 먼저 구약성서 폐기를 선언한 감리교회, “교단의 경전은 신약성서로 하고 구약성서에 있는 유대사상을 제거하기 위해 구약해석교본을 발간”(1943년 4월 초 새문안교회에서 모인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구세단, 일본기독교조선교구의 대표로 구성된 제2회 교파합동위원회에서도 합동될 교단의 명칭을 “일본기독교 조선혁신교단”), 1943년 5월 5일 구약성서에 나타난 유대사상을 없애기 위해 적당한 해석교본편찬을 결의한 조선장로교단, “교단 혁신의 정신을 반영하여 유태사상을 배제하고 순복음으로서 교의를 선포하기로 교단규칙”, “예배 설교 또는 교의를 선포할 때에 구약전서와 신약의 묵시록은 사용치 아니하고 〈4복음서〉에 기인해서 교의선포를 하기로 각 교회 주관자에게 교단 총리로부터 통첩”(1943년 10월 감리교단 총회 결의) 등 일제가 예언서에 담긴 저항적인 메시지를 제거하려고 구약성서를 말살하는 정책을 지지하고 따랐던 한국교회의 죄악을 대신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합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5. 디모데전서 4장 1~2절에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말씀하신 하나님, 1940년 11월 10일, ‘조선예수교 장로회 혁신요강’을 발표해 찬송가 가사를 개정하거나 삭제해 “천황-신민”이라는 천황제에 위배된다며 “왕, 대왕, 만백성, 백성, 임금, 구주, 구세주, 만유의 주재, 다스리시네” 등 하나님의 통치권과 관련되는 단어는 ‘주, 주님-사람, 보살피시네’ 등으로 바꾸고, “십자가 군병, 내주는 강한 성, 믿음이 이기네, 믿는 사람들은 군병 같으니”와 심지어 주기도문 영가까지 전장을 삭제한 한국교회의 죄악을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합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6. 출애굽기 34장 14절에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말씀하신 여호와여, 1938년 9월 제27회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하기 이전부터 일제의 탄압 앞에 23개 노회 가운데 17개 노회가 독자적으로 신사참배를 실행하고, 장로교의 74%가 이미 자발적으로 신사참배를 행했던 한국교회의 죄악을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합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7. 예레미야애가 1장 20절에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내가 환난을 당하여 나의 애를 다 태우고 나의 마음이 상하오니 나의 반역이 심히 큼이니이다 밖에서는 칼이 내 아들을 빼앗아 가고 집 안에서는 죽음 같은 것이 있나이다” 말씀하신 하나님, 1937년~1939년까지 장로교를 비롯해 각 교단에서 3천여 교회가 국민정신총동원연맹에 가맹하여 전승축하회 604회, 무운장구 기도회 8,953회, 시국 강연 1,355회, 국방헌금 1,580,424원, 휼병금 172,646원, 유기 헌납 308점, 위문 181회, 위문대 1,580개(1940년 제29회 장로교회 총회 보고), 총알 제작에 사용하도록 수백 개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종모 및 철제 종각 기타 철물을 일제히 헌납하기로 결의한 죄악을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합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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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소식 2017.8. 특집4] 북녘에 구원을 이루는 역사의 시작점

 

1960년 3월,
에스더 자매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본의 니이카타 항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고 김일성이 지상낙원이라고 선전하는 말에 속아서 북조선으로 왔다. 그리고 북조선에 도착해 만난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1963년에 결혼했다. 그녀가 두 살이 되던 1975년, 아버지는 ‘일본에 다시 갔으면 좋겠다’고 한 말 때문에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간 뒤 지금까지 소식을 알 수 없다.
어머니는 그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날 며칠 출장을 다녀온다고 떠난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아 걱정이 되어 회사에 가서 물어보니 보위부에 가보라고 하더구나. 그 말을 듣고 놀라서 보위부에 찾아가니 ‘애들은 남에게 주고 새로 시집가라.’고 하는데 앞이 캄캄해지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단다. 그 때 34살이었던 나는 올망졸망한 애들 다섯을 데리고 살아갈 생각을 하니 너무 막막해서~~~” 어머니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가슴을 치던 모습을 기억한다.

 

세대주가 없어 늘 힘들어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자랐다. 아버지가 정치범수용소에 간 것 때문에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교원들에게 대놓고 따돌림을 당했다. 중학교 진학을 위한 입학원서에 그녀가 ‘아버지 사망’이라고 쓴 것을 본 교원이 “너네 아버지 죽은 거 아니잖아 다시 써라.”라며 종이를 던지고 야단을 치는데 그녀는 창피함에 얼굴이 달아오르고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언제나 교원이 공개적으로 놀리면 덩달아 애들에게 놀림을 당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적으로 기가 죽어 움츠리고 살았다.
그녀는 추석명절에 음식을 준비해 산소에 가는 친구들이 제일 부러웠다. 다른 사람들은 죽은 부모님을 추억하고 제사하러 가는데 산소마저 갈 수 없는 것이 싫었다. 죽지도 않은 아버지를 찾아가 만날 수도, 추억할 것도, 사진 한 장 없는 아버지를 떠올리는 것이 싫었다. 친구들이 ‘아버지! 아버지’ 부르는 것이 너무 부러웠다.

 

그녀의 가족은 30가구 밖에 없는 작은 동네에서 살았다. 아버지가 정치범수용소에 갔고, 일본에서 온 가족이기에 완전히 감시대상이었다. 동네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거나 물건을 잃어버리면 모든 누명을 그녀 가족에게 씌웠다.
“어느 날 한 집에서 뜨개질 하는 실을 잃어버렸는데 우리 집에서 가져갔다며 집에 들어와 샅샅이 뒤지고 갔습니다. 엄마는 너무 억울해 소리도 크게 내지 못하고 꺼억 꺼억 우는데, 그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좁은 방 하나에 여섯이 웅크리고 앉아서, 엄마는 울고 있고, 애들은 겁에 질린 눈으로 엄마를 보며 얼마나 두려웠겠어요?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아버지 때문에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얼마나 아버지를 원망했는지 모릅니다.”

 

결국 그렇게 힘들게 살았던 어머니는 고난의 행군시기에 자식들을 위해 식량을 구하러 나가셨다가 길가에서 굶어 죽었다.
생전에 “한 번만이라도 고향 땅을 밟아봤으면 좋겠다…”하시던 어머니의 음성이 귓가를 맴돌았다. 에스더는 결국 살기 위해 북한을 떠났고, 하나님의 은혜로 한 아주머니의 강권적인 부탁으로 복음을 듣고 예수를 영접하는 복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녀에게 아버지는 만질 수도, 느껴지지도 않는 원망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3년 전, 선교컨퍼런스에서 말씀을 전하던 이삭 목사가 “여러분은 감옥에 갇혀 받았던 고문 휴유증으로 인하여 기억상실증에 걸려 사랑하는 딸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아비의 그 아픔을 아시겠습니까?”라고 물을 때였다.
“야! 우리 아버지도 저 마음이었겠구나… 감옥에서 고통당하며 얼마나 내 생각을 했을까?”
에스더 자매는 뇌리에 번개처럼 강한 생각이 떠오르자 그동안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아온 것이 미안하고 죄송해 가슴이 메고 코 끝이 찡해 오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버지 미안해요, 아버지는 감옥에서 그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아버지는 나를 그리워했을텐데 나는 그 오랜 시간 동안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았습니다.
아버지 미안합니다. 이런 나를 용서해 주세요…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그녀는 몸부림을 치며 기억도 나지 않는 아버지를 부르며 용서해달라고 울부짖어 기도했다. 그렇게 기도를 마쳤을 때 아버지에 대한 그녀의 생각이 완전히 새롭게 변화되었다. 그녀 스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그녀에게 아버지는 기억이나 느낌 등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아버지는 그녀와 가족들을 힘들게 만든 원망스런 대상일 뿐이었다. 그런 아버지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불러지고,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지고, 아버지의 사랑이 만져지는 것처럼 분명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2017년 6월, 그녀는 복음으로 통일을 준비하는 KRIN JAPAN 모임에 초청을 받아 일본에 갔다. 12일, 모임이 시작되기 전 니이카타항을 향해 가는데 주룩 주룩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차 안에서 그녀의 입에서 억누를 수 없는 뜨거운 기도가 터져 나왔다.

 

이곳 니이카타에 올 수 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북한을 향해 떠날 때 마지막으로 밟았던 이 땅으로 다시 인도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많은 길을 돌고 돌아 이 땅에 올 수 있었던 것은 한 개인의 인생이 아니라 나 같은 죄인을 이미 57년 전에 예정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 안에 있음을 믿으며 감사 드립니다.
우리 부모님을 비롯한 9만여 명의 재일동포들이 이곳에서 북한을 향해 갈 때는 큰 기대를 안고 갔을 터인데 그곳에서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힘든 삶을 살았음을 하나님 아시지요. 너무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어서 죽기 전에 한 번만이라도 다시 일본으로 가봤으면 좋겠다는 말 한마디 때문에 가족들과 생이별하고 수용소에서 죽어간 그들도 하나님 보셨지요.
우리가 지금 서있는 이 땅은 그들의 마음에 담고 있고 또 한 번만이라도 다시 밟고 싶었던 땅입니다. 지금 이곳에서 다시 북한에서 죽어간 재일동포들의 마음과 아픔을 기억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고난 당하며 고통 가운데 힘들어하는 그들을 그려보며 기도합니다.
어쩌면 그곳에서 저를 불러주신 하나님께서 저들을 대신하여 기도하라고 보내신 것은 아니신지요. 하나님, 지금 제가 이곳에 있는 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지금도 그 땅에서 신음하며 울부짖고 있는 주의 백성들에게도 기적을 베풀어 주옵소서. 우리가 지금, 이곳 일본 니이카타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출발이 북녘 땅에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의 시작점이 되게 하옵소서.
57년 전 희망을 안고 이곳을 떠났지만 절망 가운데 북녘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재일동포들과 그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전해지도록 영원한 생명 되신 예수님의 복음을 나르는 배가 이곳에서 이제 다시 출발하게 하옵소서. 이곳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준비되어 북녘을 위해 기도하며 북녘을 향해 다시 출발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제는 북녘 땅에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선포합니다. 그 일을 위하여 우리를 불러주셨사오니 오늘 또다시 이곳에서 하나님의 구원과 용서 그리고 사랑이 선포되어 하나님의 사람들이 회복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이곳에 보내신 하나님을 기대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니이카타항에서 눈물로 드리는 에스더 자매의 용서와 화해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실 것을 기대하며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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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소식 2017.8. 특집3] 용서와 화해사역으로 통일을 준비합니다!

 

하나님께서 모퉁이돌선교회로 하여금 2013년부터 세계 여러 나라의 교회와 선교기관대표들과 함께 복음으로 통일을 준비하는 팀들을 국가별로 구성하고 연합할 수 있도록 인도하고 계신다. 통일 시 북한교회재건을 위해 준비하고 참여하는 KRIN 네트워크이다. 미국, 캐나다, 중국, 일본, 호주, 유럽, 한국, 브라질 등의 나라들이 통일 시 북한교회재건에 필요한 12분야의 사역들을 준비해 가고 있다. 그중에 하나가 용서와 화해의 사역이다.
지난 6월 일본의 니이카타에서 KRIN 일본 모임이 일본교회의 초청으로 진행되었다. 그곳에서 일본과 한국교회가 서로의 죄를 회개하고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였다.
그 일들을 나누고자 정리하였다.

 

1995년, GCOWE’95선교대회에서의 일이다.
용서와 화해에 대한 메시지를 선포하던 일본의 아리가 목사는 하던 말을 멈추더니 이삭 목사를 향해 앞으로 나오라고 요청했다. 이삭 목사는 갑자기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영문도 모르고 강단을 향해 나아갔다. 기다리고 있던 아리가 목사는 이삭 목사가 올라오자 그 앞에 가서 무릎을 꿇고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고 이목사님의 할아버지를 죽인 죄를 일본을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합니다. 용서해주십시오.”라고 눈물로 기도했다. 그러자 이삭 목사도 무릎을 꿇고 “일본이 우리 할아버지와 한국에 범한 죄악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합니다. 저도 일본을 미워한 죄를 회개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며 서로 부둥켜 안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런데 그것으로 해결된 것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 있던 한 분이 기도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1953년 휴전과 함께 김일성은 사회주의 건설에 박차를 가하면서 1958년, 인텔리 즉 지식인들을 제거하는 운동을 대대적으로 실시했다. 이때 모든 교회가 무너지고, 예수 믿는 사람들도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기독교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순교나 배교 혹은 지하로 숨어 들어가는 것이었다. 결국 조선기독교연맹으로 불린 어용단체까지도 문이 닫혔고, 김일성은 자신 있게 “기독교는 북조선에서 사라졌다”고 공표했다.

 

북한을 비롯한 다른 나라로 귀화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김일성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일본 시민권을 받지 못한 채 고단하게 살아가던 재일동포들에게 ‘북조선은 지상낙원’이라고 선전하며 북한에 귀화하도록 획책했다. 그리하여 1959~1984년까지 재일동포 93,340여 명이 니이카타항에서 배를 타고 북한으로 귀화했다. 적십자사의 보고 따르면, 북송된 재일교포들 중 2.7%가 기독교인이라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2,500여 명이 하나님의 백성이었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하나님은 1958년에 제거된 교회를 다시 연장하는 차원에서 니이카타항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북한 땅에 보내지 않았을까?

 

니이카타항구는 북한과 특별한 관계가 있다. 과거, 발해는 지금의 블라디보스톡과 나진선봉지역이다. 나진에서 배를 타고 동쪽으로 2킬로 나와서 엔진을 끄고 가만히 있으면 일주일 안에 자연적으로 니이카타항에 도착하게 된다. 이렇게 흐르는 해류현상을 가리켜 ‘발해해도’라고 한다. 그래서 북송선이 니이카타항에서 출발했던 것이다.

 

복음으로 통일을 준비하는 KRIN 네트워크가 확장되면서 지난해 11월, 동경에서 개최된 KRIN JAPAN 모임에서 임원이 구성되었다. 그 자리에서 “왜 일본이 한반도 통일에 참여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그에 대하여 하나님이 원하는 북한교회재건은 전 세계 하나님의 백성들이 참여하는 통일이 되어야 하고, 일본교회의 참여도 필요함이 나눠졌다. 그 과정에서 일본교회 지도자들이 일본이 한국을 향해 잘못 행한 죄를 겸손하게 사과하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금년 6월, 니이카타에서 40명의 일본 목회자와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2차 KRIN JAPAN 모임이 개최되었다.
왜 하나님은 니이카타에서 모임을 갖게 하셨을까?
참석한 분 중에 신학교 총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분이 의견을 발표하는 중에 “저는 한국에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직접 한국에 가서 여러 번 한국교회를 향해 일본이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했는데, 어느 한 분도 저희가 잘못했다는 것에 대해 용서한다고, 일본을 용서해주겠다고 말한 사람이 없었습니다.”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이반석 목사가 일어나 “이 시간 한국교회를 대신하여 일본이 한국에 저질렀던 죄악에 대하여 일본교회가 용서를 구한 것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용서합니다.”라고 선포했다.

 

그러면서 그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께서 제 안에 일본을 미워한 죄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일본을 미워한 죄를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저도 여러분께 사과를 드립니다. 저는 그냥 여기에 와서
‘당신들을 용서합니다.’라고 외치면 될 줄 알았는데 하나님은 화해하기를 원하십니다. 일본을 미워한 죄를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일본이 한국에 잘못한 문제가 악의 세력이지 일본 자체가 아니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진심으로 여러분을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게 하셨기에 우리가 연합하여 악의 세력을 무너뜨리는 자리에 서서 화해하기를 원합니다.” 고백하고 기도했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본을 용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본을 미워한 죄를 이 시간에 회개합니다. 하나님, 저희들이 화해하겠사오니 제사장의 자리에서 우리 한국교회를 대신하여 그동안 미워했던 그 죄를 용서받고 용서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하나님, 이 땅에서 매여있는 것을 풉니다. 하늘에서 푸시고 성령의 역사를 주님께서 이루어 가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본을 용서하고, 일본을 미워한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는 선포가 있은 후, 일본교회가 복음통일을 준비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사실 일본은 우리들이 감정적으로 환영하고 싶지 않은 국가이고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놀랍게도 일본교회가 통일준비에 동원되고 있다.

 

마태복음 5장에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말씀처럼 이 땅에서 매인 것을 풀 때 하늘 나라에서도 풀어지는 언약의 약속이 성취될 것이다. 이렇게 한국교회와 일본교회가 연합하여 통일이 되었을 때 북한에 가서 상한 영혼들을 위로하고 용서하고 화해함으로 하나되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하고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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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소식 2017.8. 특집2] 주님이 주신 사랑으로 일본을 용서하고 사랑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올해 서울의 어느 3.1절 기념 행사장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나라와 민족 앞에 전하는 메시지를 담아 내건 현수막에 적힌 문구입니다.
동아시아 지역 근현대사 초반에 제국주의 일본이 한반도를 강제로 유린하던 시대가 있었고, 그들이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범죄들 중에는 의도적으로 숨겨지거나 왜곡되어 전해지고 있는 것들도 많습니다. 안타깝게 묻혀버린 아픈 역사를 찾아내어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인권운동 차원에서 보면 위안부들의 억울한 누명은 벗겨져야 하고 감춰진 진실은 속시원히 드러나야 합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인류가 지켜내야할 보편적 가치로 인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민족주의 차원에서 보면, 일본은 철저한 자기반성의 토대 위에 전범자들에 대하여 응분의 처벌을 해야하고, 또 피해자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야 마땅합니다. 일본의 약소국 침략과 그땅 백성들에 대한 인권유린은 국제적 범죄행위이며 윤리 도덕적으로도 파렴치한 행위로 인정되기 때문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한반도 땅에서 저지른 죄악은 위안부 강제동원 외에도 무수히 많습니다. 그들이 우리 민족에게 가한 죄는 정말 잔인하고 가혹한 것이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1919년 3.1운동이 거세게 일어날 즈음에 경기도 화성군의 제암리에서는 만세운동에 참석하였던 사람들 중 수십명이 일제에 의해 집단 학살당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일본 경찰이 제암리 일대에서 일어났던 만세 사건을 진압하며 가혹행위를 한 것에 대하여 사죄하겠다며 만세 사건에 연루된 주민들을 4월 15일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제암교회로 모이게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모이자 아무도 나가지 못하도록 예배당 문을 폐쇄한 다음 실탄을 장전한 총을 든 일본군들로 하여금 예배당을 둘러싸게 하고 사격을 가해 한사람도 남김없이 죽였습니다. 이에 더하여 예배당 주변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러버린 탓에 죽은 자들의 시신은 모두 화장되어 잿더미가 되어 버렸습니다.

 

일본 규슈의 나가사키 연안에 하시마라는 섬이 있습니다. 태평양 전쟁이 시작된 1941년부터 1945년 종전되기까지 강제징용되어 이 섬으로 끌려간 조선인이 약 800명이나 됩니다. 이 섬의 별칭은 군함도인데 말 그대로 군함처럼 생긴 철옹성 같은 요새였습니다. 지하 1km 깊이의 갱도로 내려가 석탄을 채굴하는 일에 강제 동원되었던 조선인들은 숨도 제대로 쉴 수 없고 먹을 양식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생지옥같은 현장에서 노예처럼 노역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게다가 종전 직전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투하된 후에는 현장수습 작업을 위해 이들을 동원하였습니다. 일제는 이들에게 강제노역도 부족하여 원폭피해까지 입게 한 것입니다.

 

 

일본은 연합군에게 항복하여 패전한 후 이와 관련된 모든 증거들을 인멸하고 사실을 은폐하였습니다.

 

더구나 전쟁을 위한 강제동원 시설임이 분명하고 피해자들이 지옥도라고 부르는 군함도를 근대화 유적지로 선정하고 관광지로 개발하였고, 일본 최초의 아파트와 근대적 최첨단 산업단지가 있던 곳으로 자랑하며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까지 하였습니다. 피해자인 조선인의 입장에서는 명백한 강제징용의 현장인데, 가해자인 일본은 메이지 유신 시대의 산업혁명 시설로 선전하여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아낸 것입니다.

 

일제의 조선교회에 대한 핍박도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계획되었습니다. 블레어(W.N.Blair)와 사무엘 마펫(S.H. Moffet)선교사의 기록에 의하면, 일제는 1945년에 들어서 패전이 예견되자 미국군 또는 연합군이 한반도에 상륙하는 경우 맨 먼저 연합군에 협력할 세력이 기독교도들이라고 보고 기독교도 학살 계획을 수립하였습니다. 조선인 기독교인 5만여명에 대한 처형일을 1945년 8월 중순으로 잡았다고 합니다. 영변에서는 2시간에 20명씩 살인할 능력을 가진 일본군인들에 의하여 죽창과 일본도로 찔러 죽이는 방법으로 2만 7천명을 살해하려 예정했던 약 20평의 살인굴이 전 특고형사의 안내로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계략을 아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지키시기 위해 해방을 주신 것은 아닐까요?
일제가 한반도 강점기에 저지른 이러한 역사적 죄악에 대하여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우리는 과연 어떤 태도와 자세를 견지해야 할까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우리는 어떤 태도와 자세를 견지해야 할까요?

 

일본이 우리에게 아무리 극악무도한 죄를 저질렀어도 우리는 그들을 용서해야 하는 자리에 있습니다. 당한 만큼 보상받거나 당한만큼 갚아주는 방식은 세속적인 해결책입니다. 가해자로 하여금 얻은 이익을 토해내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잃은 손실을 만회하게 하는 방식도 세속적인 해결방법일 뿐입니다. 법적 윤리적·도덕적 해결방식도 일시적으로 상처의 겉은 아물게 할 수 있어도 영구적으로 속사람을 온전히 치료할 수는 없습니다. 위안부들의 경우, 당장은 위로를 받을 수는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아픔이 되살아나거나 더욱 커지거나 하여, 그 악몽같은 순간들의 기억에서 끝까지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가해자인 일본은 분명히 회개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가해자인 일본은 회개해야 할 책임이 분명히 있습니다. 세상권력은 회개할 권위가 없기에 일본교회가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피해자인 우리 민족은 일본의 죄를 용서해야 하는 영적 책임과 권한이 주어져 있습니다. 이 일은 일제에 의해 피해를 당한 사람들을 위하여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제사장적 권위로 감당해야 할 일입니다.

 

일본의 죄에 대한 용서는 우선 하나님 앞에서 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당사자인 일본을 향해서도 그 용서를 선포해야 합니다. “일본의 죄를 용서합니다!” 하는 식으로 뜬구름을 잡거나
“일제가 그 때 여러 곳에서 우리에게 저지른 많은 나쁜 행위들을 모두 용서합니다!”하는 식으로 애매모호하게 하는 용서의 말은 ‘내용은 없고 형식만 있는’대충주의에 불과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마 6:7) 알아듣지도 못할 말로 중얼거리는 기도의 습관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용서의 기도는 명백해야 합니다. 먼저 일제가 자행한 범죄가 얼마나 잔혹하고 비참한 것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조사하여야 합니다. 감정적 흥분을 떠나 어떤 무리들이 무슨 죄를 언제 어떻게 저질렀는지에 대하여 사실관계를 분명하게 규명하고 조사하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죄를 저지른 일과 사건이 구체적이고 분명한 사실로 드러나면, 말씀에 비추어 영적으로 진단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죄의 심각성이 분별되고 그 영적 영향력이 감지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기도의 제목이 되어 우리의 진실한 마음에 담겨지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진솔한 기도를 할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당한 분들이 겪었을 아픔과 슬픔을 우리도 절절하게 공감하게 하실 것입니다. 당대에 겪었을 그 극한의 고통을 우리가 체휼하듯 느끼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부어주신 십자가의 용서의 사랑에 힘입으면, 일제가 우리민족에게 저질렀던 죄를 하나 하나 그리고 유형별로, 나아가 전체를 묶어서 총제적으로 용서하는 자리로 우리를 이끄실 것입니다.

 

 

우리가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로 용서케 하시므로 용서하게 되는 은혜를 누릴 것입니다.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 16:19) 말씀을 따라, 인간적 의지와 뜻과는 무관하게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일제가 우리에게 범한 죄를 ‘우리가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용서케 하시므로 하나님도 우리로 용서하게 되는’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일제는 36년간의 침략기간 동안 ‘무단정치’의 명목으로 정치적·경제적 제도적 핍박을 가했고, ‘문화정치’를 구실로 민족문화와 예술을 억압하였으며,
‘황민화 정치 및 전시동원’을 빌미로 육체적, 도덕적, 정신적, 영적 탄압을 아주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감행하였습니다. 더욱이 미소기바라이(신도침례)와 신사참배를 강요하며 교회와 성도들에 대하여 형언할 수 없는 참혹한 핍박을 가하였습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 6:6) 말씀대로 가해자인 일본은 일본제국주의가 저지른 악행에 대하여 회개하지 않으면 그만큼 나쁜 열매를 거둘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피해자인 우리 나라와 민족도 힘쓰고 애써 노력하는 만큼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일본을 용서할 수 있게 되고, 또 그만큼 일본을 품어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해자인 일본과 피해자인 우리 모두에게 비록 힘겨우나 가슴 벅찬 소망의 과제를 주신 것입니다.

 

일본이 우리 나라와 민족에게 저지른 죄를 용서해야 하는 거룩한 영적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진 이상 우리는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일제가 우리 나라와 민족에게 가한 잔혹한 핍박과 우리 선조들이 당한 엄청난 고통을 구체적으로 밝히기 위해서는 역사적, 사회문화적, 정치경제적 측면으로 유형화하여 낱낱이 조사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분별하며 영적으로 진단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많은 수고와 땀이 필요합니다.
세상은 이렇게 말합니다. “피해자는 당한 만큼 위로받아야 하고 가해자는 피해를 준 만큼 반성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는 이렇게 말하고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피해자는 당한 만큼 용서해야 하고 용서한 만큼 가해자를 품어야 하며 또 그 보다 훨씬 더한 만큼 그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원수갚는 자로 부름받은 자들이 아니라 원수를 사랑하도록 부름받은 자들입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 5:44)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우리 나라와 민족에게 저지른 온갖 악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본을 사랑하시는 주님 앞에서 우리도 주님이 주신 사랑으로 일본을 용서하고 사랑하십시다.

미국 목양담당 황제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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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소식 2017.8. 특집1] 일본을 용서합니다!

 

우리나라는 36년간 일본의 식민지배하에서 주권을 빼앗긴 채 온갖 만행에 시달렸다. 당시 직접 고통당한 사람들이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함에도 일본은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기는 커녕 은폐하기에 급급하다. 하나님은 그러한 일본을 우리가 용서해야만 북한의 문을 여시겠다고 말씀하신다(마5:23~24). 그런데 우리가 일본을 용서함에 있어 그들의 죄 전체를 용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 한국과 한국백성들,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 행한 죄를 용서하여야 한다. 마치 성폭행을 당한 한 소녀가 자신을 폭행한 남자를 20여 년이 지난 후에 그 남자를 용서한다고 하는 것은 그 소녀에게 행한 성적 폭행의 죄를 용서하는 것이지 그 남자의 다른 죄까지 용서해 준다는 말이 아닌 것과 같다. 하지만 단순히 우리가 일본이 저지른 죄를 잊어 버리는 것은 죄를 용서하여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행한 죄를 정확하게 알고 먼저 가서 그들이 원수일지라도 용서해 주겠다고 선포(마 5:43-48)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예배하는 것이 이제 해야할 일이라 생각하여, 일본이 저지른 죄악들을 조목조목 나열하고 용서한다고 선포하며 하나님께 나아갈 것이다.

 

일본이 교회를 불사르고, 성도들을 죽이고,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재산을 몰수하고, 사람들을 괴롭히고, 위안부, 징병, 언어사용을 금지하는 등의 우리나라에 범한 죄악을 찾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그것에 대해 용서하는 기도를 하려 한다. 그것만이 하나님의 의를 힘입어야만 할 수 있는 제사장적 기도이다. 아파도 다시 한번 이 내용을 알아 용서한 후에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기를 바란다. 그 죄를 해결하실 분은 하나님이시고 대신 회개하고 용서한 우리는 치유를 받을 것이다. 이번 카타콤소식지에서는 먼저 ‘조선인 징용노동자들에 대한 학살과 만행’에 대해 기도하고자 한다.

 

1945년 8월 22일 저녁, 일본 북부 아오모리현 오오미나도항에 닻을 올린 한 척의 군함 ‘우끼시마마루’에 징병, 징용, 정신대 등의 명목으로 강제로 일본에 끌려온 조선인노동자들과 그 가족 3,700여 명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비행장과 군사시설공장, 탄광, 광산, 발전소 공사장 등 가장 위험하고 힘든 고역장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서 해방을 맞아 고향으로 가게 되었다는 기쁨과 흥분으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1945년 8월 24일 오후 5시 20분경, ‘우끼시마마루’ 함이 마이즈루만의 도시마라는 작은 섬을 지날 때였다. 함장을 비롯한 일본군 장교들이 보트를 내려 올라타고는 서둘러 육지를 향해 노를 저었다. 그것을 보며 이상하다 생각할 때 기관실 쪽에서 “쾅”하는 요란한 폭발소리가 일어났고 군함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아우성을 치면서 선실에서 갑판 위로 올라오려고 했지만 배 밑창에 구멍이 뚫린 군함은 결국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540여 명의 동포들이 바다에 수장되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3,160여 명은 모두 마이즈루만 다이라에 있는 해병단 숙소에 수용되었으나 다음 날, 일본군인들은 증기탱크를 폭발시켜서 수많은 조선인들을 학살했다.

 

1954년 일본은 학살의 증거를 없애려, 인양한 ‘우끼시마마루’를 해체해 버렸다. 당시 취재 보도한 한 신문사 기자는 “일본은 비밀리에 해체작업을 함으로써 범죄의 증거 소멸을 획책했다. 첩첩히 쌓인 흙 속에 유골과 함께 장화, 노동화, 담요, 시계, 식기 등이 있었다. 동그란 흙덩어리를 슬며시 손으로 밀어보니 고무 볼이었다. 살아있다면 이 공을 고향에 가져가 뛰놀고 있을 어린이들을 생각하니 흘러내리는 눈물을 억제할 수 없었다.”라고 쓰고 있다.

 

일본은 중일전쟁이 확대되자 부족한 병력을 충원하기 위해 전시동원체제 하에서 강압적인 지원병제와 징병제를 통해 1942년~1943년 4월 1일까지 약 2,700여개 소에 10만 2,600여명에 달하는 조선청년들을 <청년연성소>에 끌고 가 가혹한 군사훈련을 시켰다. 1939~1945년까지 징병된 조선인은 무려 15만 4,000여 명에 달했다. 또한 조선 강점 이후 일본은 해외침략전쟁에 필요한 노동력 확보를 위해 1938년 4월 1일 <국가총동원법>을 법률 제55호로 공포, 강제징용형태로 조선 안에서뿐 아니라 해외에까지 끌어갔다.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강제징병, 강제징용, 일본군 <위안부> 등 징발된 수가 840만 명에 달했다. 1938년~1945년까지 조선인구의 1/4에 해당하는 609만 2,319명이 강제징용에 끌려갔다. 이렇게 강제 연행된 조선 사람들을 업주들은 마음대로 죽이거나 살려둘 권리를 가지고 학대하고 혹사했다. 1940년~1944년까지 일본 영토의 탄광에서 죽어간 조선인이 6만 명이고 일본의 지시마줄섬 가시비구에 끌려가 군사시설작업에 동원된 5,000여 명, 1959년 북송이 있었던 니이카타 항구 앞에 있는 사도 아지마섬에 끌려가 혹사당한 2,500여 명을 ‘비밀보장’이라는 구실로 집단학살했다. 시가노시 한 병기공장에서 일하던 조선인 2,000여 명을 바다로 몰아 수장하고, 나가노 <대본영지하실> 공사가 완공되자 수천 수만의 징용군노무자들을 학살했다. 오끼나와의 한 방어공사장에서 일하던 조선인 1,500여 명이 전원폭사, 1945년 여름 1,700여 명 폭발물을 만재한 함선에 태워 전원폭사, 다이겡마루에서 1,000여 명 학살, 마샬군도 마간에서 2,000여 명, 다라와에서 1,600여 명, 구고젠린에서 6,000여 명, 구사이에서 700여 명, 마끄예라쁘에서 800여 명, 우도에서 1,900여 명, 마리아나군도의 사이판에서 1,200여 명, 도라쪼구섬에서 4,000여 명이 무참히 살해당했다. 그 외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이름 없이 죽임을 당했다.

 

송재선 목사(본회 연구원 부원장)

 

 

 

하나님, 어떻게 이런 죄악을 자행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일본의 만행이 기록된 내용을 읽는 것만으로도 화가 치밀어 오르고 가슴이 아파 눈물이 납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셨으니 우리의 의가 아닌,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셔서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고 친히 말씀하셨기에 그 말씀에 힘입어 1900년 이전부터 조선침략을 시도해 급기야 1905년 을사조약으로 이 강토를 찬탈하고, 1910년 한일합방으로 완전히 조선을 식민지화해 지배하며, 1945년 8월까지 조선인 징용노동자들을 학살한 일본의 위정자들과 군인들, 그리고 기업인들의 죄악을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합니다. 저희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우리 한국교회도 한국을 대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저희들의 죄를 조목조목들어 용서합니다.

 

 

 

일본을 용서하는 제사장적 기도

 

역대하 6장 39절에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보시오며 주께 범죄한 주의 백성을 용서하옵소서” 말씀하신 하나님, 1939년~1945년까지 15만 4,000여 명이나 되는 조선의 청년들을 강제로 징병해 전쟁터에서 죽어가게 한 일본의 죄악을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합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또 우리 한국교회도 한국을 대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저희들의 죄를 조목조목들어 용서합니다.

 

마가복음 11장 25절에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말씀하신 주여, 조선을 강점하고 침략전쟁에 필요한 노동력을 확보하려고 1938년~1945년까지 조선인구의 1/4에 해당하는 609만 2,319명을 강제징용에 끌어가 혹사케한 일본의 죄악을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합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또 우리 한국교회도 한국을 대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저희들의 죄를 조목조목들어 용서합니다.

 

이사야 55장 7절에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말씀하신 긍휼의 하나님, 1930년~1945년까지 탄광, 군사시설건설, 군수공장, 도로건설 등에서 징용군노무자들을 고의적으로 학살한 일본과 기업주들의 죄악을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합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또 우리 한국교회도 한국을 대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저희들의 죄를 조목조목들어 용서합니다.

 

미국 장로교 외지선교보고에 의하면 1,200여 교회의 문을 닫고, 2,000여 명의 목회자와 성도들을 투옥시키고, 50여 명의 목회자들을 순교시킨 일본의 죄악을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합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땅에 1,141개의 크고 작은 신사를 설치하고, 교회, 학교, 정치 단위 곳곳에 신사참배를 강요할 뿐만 아니라 이를 거부하는 자들을 감옥에 가두고 고문하여 심하면 죽음에 이르게 한 일본의 죄악을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합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또 우리 한국교회도 한국을 대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저희들의 죄를 조목조목 들어 용서합니다.

 

우리의 문화를 말살하려고, 우리말을 사용하지 못하게 금지하고, 이름까지도 일본어로 개명하도록 강요하고, 한복을 입지 못하게 하고, 상투까지도 자르고, 이 땅의 많은 문화재를 빼앗고, 심지어 무덤까지도 파헤쳐 도굴해 가고, 부족한 전쟁물자를 충당하려고 식량과 각종 물자를 강제로 빼앗아 가는 등의 온갖 악행을 일삼은 일본의 죄악을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합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또 우리 한국교회도 한국을 대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저희들의 죄를 조목조목들어 용서합니다.

 

조선의 왕후를 살해하고, 10대 소녀로부터 24만여명이나 되는 여인들을 끌어다 노동과 일본군의 성적 노리개로 짓밟은 일본의 죄악을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합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또 우리 한국교회도 한국을 대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저희들의 죄를 조목조목들어 용서합니다.

 

다니엘 9장 19절에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말씀과 같이 일본의 만행을 대신하여 제사장적 기도로 나아가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제 스가랴 3장에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내가 말하되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내가 거기에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 말씀의 능력이 이 땅과 일본에 임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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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소식 2017.7] 치유와 회복을 노래하는 방송 ‘통일의 소리’

<특집1>

 

“모퉁이돌선교회가 보내는 방송이 북한 정부가 가장 싫어 하는 방송인지 아세요?”
“아니 그것을 어떻게 아세요?” 사역자가 궁금해 하며 묻자
“저희가 한국에서 송출되는 모든 방송을 듣고 있는데 유난히 ‘광야의 소리’ 시간에 재밍(전파방해)이 심합니다” 방송관계자가 전해준 말이다.
그 이유는 북한을 떠나온 사람들이 남한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와 그들이 만난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하는 믿음의 고백이 북한주민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동요시키기 때문이다.
북녘 땅에 복음을 전하는 ‘광야의 소리’ 방송과 열방에 흩어져 있는 한민족 디아스포라들에게 선교적 삶을 도전하는‘통일의 소리’가 그것이다. 이제는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단파·중파를 활용한 공중파 방송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앱 방송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24시간 방송이 가능하도록 하나님이 행하셨다. 이처럼 다양해지고 있는 방송프로그램마다 청취하는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며 예배하는 마음으로 사역을 감당하는 프로그램 출연자들이 있다. 그들의 신앙고백이 담긴 이야기를 최근 더하여진 방송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정리하여 나눈다.

 

 

지난 4월부터 새로 시작한 프로그램 <비파와 수금으로>는 매주 다른 출연자들이 자신의 삶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나의 찬송, 나의 고백’이라는 코너와 함께 찬양하는 시간으로 진행된다.

4월의 어느 날, 녹음실 한 켠에 신디 피아노와 기타를 설치해 놓은 자리에 <비파와 수금으로>의 3회차 방송 출연자인 홍룻 간사가 들어와 피아노 앞에 앉았다. 본회 예배팀에서 피아노 반주를 맡고 있는 홍룻 간사는 PD의 큐사인이 있은 후, ‘천사들의 노래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노래로 나의 사랑하는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원해 할렐루야 ~♬’ 찬양이 끝나자, 떨리는 목소리로 하나님 앞에 진심을 담은 작은 고백을 올려드렸다.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 너는 너 자신을 위해서 나를 믿었어.’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저는 최선을 다해서, 정말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제가 가진 역량 이상으로 열심을 다했던 저에게 어느 날 들려온 하나님의 음성은 너무나도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깊은 시름 중에 결국 고백했습니다. ‘나는 하나님 때문에 살지 않았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내 삶의 이유가 ‘하나님, 오직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내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나였습니다. 내가 고민하고 슬퍼하고 울고 하나님께 기도한 이유는 나 때문이었습니다. ‘너의 삶이 송두리째 무너질 때, 너의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 네가 여전히 나를 기쁨으로 찬양할 수 있니?’ 하나님이 제게 묻고 계셨습니다. 그날 저는 진정한 회심을 경험했습니다. 이 찬양은 그날 불렀던 찬양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겠다는 수많은 눈물과 결심과 결단들,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한 시간들이 여러 번 있었지만, 그날에서야 저는 제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진정으로 고백했습니다.”

 

어려운 시간을 견디게 하시며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격이 홍룻 간사의 고백 속에 절절히 묻어 나왔다. 이어서 홍룻 간사는 금명도 간사와 함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직접 찬양을 불러 다시 한 번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고 기도로 프로그램을 마쳤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내어주신 하나님. 십자가 지신 주님을 본받아 저도 그렇게 살겠습니다. 말뿐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께 내 모든 것을 내어놓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나를 붙드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이것이 내게 얼마나 큰 유익이며 이것만이 삶을 얻는 길임을 깨달아 기쁨으로 감당하게 하옵소서. 죄인된 우리를 위하여 기꺼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녹음을 마친 홍룻 간사의 얼굴에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작은 녹음실은 찬양의 열기로 뒤덮였고 그 뜨거움이 유리창 너머 PD에게도 전해졌다. 홍룻 간사가 이날 드린 찬양과 고백은 방송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누구도 아닌 하나님 앞에서 진솔하게 드리는 골방 예배 그 자체였다.

 

진행자인 금명도 간사는 “<비파와 수금으로>는 하나님께 드리는 고백을 듣고 함께 찬양하는 방송입니다.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삶이 묻어나는 고백, 하나님께 드리는 진실한 고백이기에 청취자들에게도 같은 울림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비파와 수금으로>에는 남북연합예배와 정기기도모임 등 본회 예배 시 찬양팀으로 섬기는 자원사역자들과 본회 간사들이 출연하여 예배하는 시간을 가졌다. 앞으로 <비파와 수금으로>는 ‘나의 찬송, 나의 고백’ 코너와 함께 각자의 자리에서 삶으로 예배하는 분들을 직접 찾아가서,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주님을 높이고 증거하는 분들의 찬양과 고백을 담아볼 계획이다.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금명도 간사는 “앞으로 골방과 노방뿐 아니라 열방에서 예배하고 싶습니다. 어린 양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모든 나라와 민족과 백성과 방언 중에서 예배할 것을 사모하면서 선교지에 나가 다국어로 예배하고자 합니다. 평양에서 예루살렘까지, 각 언어로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께 열방의 백성들과 함께 예배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물론 어떤 모양, 어떤 방법을 동원하던지 <비파와 수금으로>는 하나님을 제1청취자로 하고,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방송이 되기를 간절히 사모합니다.” 라고 고백했다.

 

 

안녕, 내 친구 별이야. 혹시 내 목소리 기억하니? 난 너와 함께 OO인민학교를 다녔던 민지(가명)야. 네가 나를 지금도 기억할진 모르겠지만 난 너를 기억하고, 잊을 수 없어. 우리 2학년 때 처음 만났었지? 그 뒤로 늘 함께였는데 지금은 이렇게 떨어져 있네. 너무 보고 싶어… 기억나? 겨울에 썰매 타다가 내가 넘어진 적이 있었잖아. 그래서 내가 울고 있는데, 넌 나를 부축해서 데려다줬지. 그땐 고맙다는 말도 못했는데 이제야 이렇게 고맙다고 말해서 미안해…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별아.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은 대한민국이고, 나는 이곳에서 아주 잘 지내고 있어. 너도 행복하게 지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우리 친구 아프지 말고 잘 먹으며 생활할 수 있게 해달라고 이곳 선생님과 친구들과 함께 기도하고 있어. 이렇게 기도밖에 할 수 없어서 미안해. 사실 얼마 전에 북조선에 눈이 많이 왔다고 들었어. 그 때 네 생각이 나면서 학교 가는 길 괜찮을까. 우리 함께 살던 마을에 집이 무너지지는 않았을까 걱정했어.

 

<이 소리가 들리시나요?>는 북한에서 교사였던 탈북자 출신의 이새라 선생님과 탈북 학생 이민지(가명) 양이 진행하며, 남한에 있는 탈북 청년들과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방송을 통해 오디오 편지를 전달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으로 진행된다. 민지의 편지가 계속되었다.

 

별이야. 내가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는 내가 북조선에서 알고 있던 남조선과 많이 달라서 힘들었어. 우리가 북조선에서 남조선이라고 하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 한국이라고 하더라고. 내가 엄마를 따라 한국에 왔을 때는 너무 힘들어서 북조선에 다시 가겠다고 울기도 했었고 혼자 북조선에서 친구들과 놀던 생각을 되짚어 보곤 했었어.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행복하고 즐거운 학교 생활을 할수록 너희는 내 기억 속에서 잊혀져만 갔어. 그래서 잊지 않으려고 북조선에서 살면서 있었던 일이 기억날 때마다 일기장에 적어두었어… 이런 행복한 나라에서 별이 너를 비롯해 다른 친구들도 함께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을 해. 처음 여기 왔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너희들이 그리워지니까 통일이 간절해졌어. 언제 통일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결코 너희를 포기하지 않으실 거야. 그저 하나님께서 가르치신 대로 우리는 살며 기도하면 되는 거니까. 하루빨리 만나길 우리 기도해 보자 별아. 그리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내가 너희들에게 이 방송을 통해 알려줄게. 우리,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열심히 노력해보자, 별아. 간절히 우리가 만나길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꼭 이루어주실 거야. 그러니 만나는 날까지 아프지 말고 잘 지내야 해. 나도 잘 지낼 테니… 많이 많이 보고 싶을 거야.
– 한국에서 너의 둘도 없는 친구, 민지가 –

 

지난 4월 25일 <이 소리가 들리시나요?> 의 첫 방송에서 소개된 내용이다. 함경북도 경성군에서 살다가 남녘으로 온 민지가 북녘에 있는 친구 별이에게 보낸 사랑의 편지를 청취자들, 특별히 민지와 같은 탈북민 청취자들이 공감하고 응원하는 소감을 게시판에 남겨주셨었다. 그 중, 한 분의 내용을 소개한다.

 

“북한에 있는 친구 별이에게 보내는 민지의 편지 낭독은 오래 전에 이산의 아픔 속에 살아온 저에게는 너무나도 슬프고 가슴 저리게 하는 일이네요. 아주 아주 오래 전이라 희미해져 가는 북한의 기억들을 다시 떠올리게 해서 마음이 울컥해집니다. 북한의 별이라는 친구가 이 방송을 들었다면 어떤 마음이 들었을지 몹시 궁금해집니다. 계속해서 가슴 절절한 방송이 나가기를 기대합니다. 남한과 해외의 많은 한인 디아스포라들이 듣고 기도의 자리로 나가야겠습니다. 실감나는 방송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새라 선생님과 민지에게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바라고, 하나님께서 선생님의 기도를 꼭 들어주시기를 함께 기도합니다.”

 

1회부터 이 프로그램에 꾸준히 출연하고 있는 이민지 학생은 인민학교 2학년 때 북한에서 탈북하여 올해로 열 네살이 되었다. “방송을 하면서 그리웠던 고향이 더 그리워졌어요. 기억 저편에 잊고 있었던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하고 북한 생각이 많이 나요.”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와서 기억이 희미해졌을 법도 한데, 똘망똘망한 눈망울의 민지가 하나씩 풀어놓는 이야기 보따리는 탈북 아이들부터 북한을 고향으로 둔 할아버지·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방송을 진행하는 이새라 선생님도 “어린 아이인 민지의 목소리로 메시지를 전달하다 보니 반응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탈북한 또래 친구 아이들도 민지의 이야기에 귀를 귀울여요. 제가 섬기는 교회의 한 장로님께서는 운전 중에 무심코 방송을 듣다가 ‘북한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어린 아이의 입에서 전해 들으니, 비수에 꽂히더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어린 아이가 이렇게 호소를 하면서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신 것을 그분도 포기하지 않고 같이 북한을 위해서 기도하고 후원하겠다고 하셨어요.”

 

그렇지만 생생한 이야기를 위해 과거에 있었던 북한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진행자인 이새라 선생님은 “북한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해서 이야기 하다 보면, 과거에 죄인지 모르고 행했던 저의 못난 모습들이 많이 떠올라서 힘이 듭니다. 그렇지만 진실된 방송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있고, 또 힘든 점보다는 감사한 일이 더 많이 있어서 기쁨으로 감당하고 있습니다.” 라고 하였다.
선생님에게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어떤 분이 방송을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저에게 전화를 주셨어요. 민지가 어릴 때 얼음에서 눈 썰매를 타고 놀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자신의 어린 시절이 많이 생각났다고 하시면서 ‘북한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구나 하고 느꼈어요.’ 라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탈북민이 아닌 사람들도 북한의 이야기에 공감했다고 격려해주는 청취자들의 목소리에 힘을 얻습니다”라고 하였다. 미래의 꿈이 ‘선교사’라고 당당히 말하는 민지는 “처음에는 긴장이 되고 떨렸지만, 하나님을 전하는 거니까 기쁘고 자랑스럽게 방송하고 있어요.” 라고 말하며 싱긋 웃음지었다.

 

이야기를 나누며 이새라 선생님과 민지가 방송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싶어하는 간절함이 느껴졌다. 이미
‘선교사’로서 방송사역을 하고 있는 민지는 “하나님을 잘 모르는 분이 이 방송을 듣는다면, 꼭 하나님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또, 북한주민들과 저의 친구들이 방송을 듣는다면 어서 빨리 보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라고 야무지게 말했다. 이새라 선생님도 “북한에 있는 동포들뿐 아니라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탈북민들, 북한사역을 하는 분들이 이 방송을 듣고 하나님을 만나고 살아가면서 회심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방송하고 있습니다. 두려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드리고 이 사역을 감당하기 원합니다. 방송을 많이 들어주시고 또 기도해주세요.” 라며 하나님의 사역을 온전히 올려드렸다.

 

 

북녘 땅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놀라운 계획 가운데 ‘광야의 소리’ 방송과 ‘통일의 소리’ 방송이 시작되어 이제는 ‘평양에서 예루살렘까지’ 전 지역에서 방송 사역을 확장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린다. 하나님의 사랑은 복음이 막혀있는 북한 땅에도 국경 없는 전파로 전해져 북한주민들의 생명을 소생시키고 구원의 길로 이끌어 주신다.

 

더하여 방송으로 남과 북의 생생한 내용들이 나눠져 주 안에서 하나됨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가교역할로 복음통일을 준비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복음이 제한된 북한에 방송을 보내는 사역에 참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몰래 숨어서 이 방송을 듣고 있을 북한성도들과 함께 신앙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방송의 제 1 청취자이신 하나님께 예배하고 북한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는 거룩한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하고, 앞으로 ‘통일의 소리’가 더욱 활성화되고 확장되어 하나님께서 이루실 복음통일을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07년부터 전파를 이용해 북한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시작된 모퉁이돌선교회의 방송사역은 이제 중국을 넘어 소수민족, 아랍, 이스라엘까지 확장되고 있다. 하나님께서 출연자들에게 손 내밀어주신 이야기가 각각 다르고 그 은혜가 저마다 특별한 것처럼, 방송을 듣는 청취자들도 함께 찬양을 올려드리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통일의 소리> 청취자들이 남긴 게시판 사연

지혜자 : 카타콤소식 중 ‘양강도에서 온 편지’ 소식을 들으면서 ’북한에서 조용하게 일하고 계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복음으로 평화통일을 이루시려고 인프라를 구축하고 계시는구나 ’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 사랑 : 귀한 방송을 통해 북한의 성도들과 땅끝까지 기쁜 소식을 듣게 하심을 찬양합니다~ 복음 통일을 위해 기도합니다 ♡

Allen Kim : 북한의 소식을 통해서 회개시키시고 세계관을 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북녘의 지하교인들을 지켜주시고 함께 하소서!

희야 : 오늘 어머니랑 옥수수 모종을 밭에 옮겨 심으면서 북한에서 살고 있는 성도들과 함께 먹을 수 있음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함께 먹게 될 그날을 기다립니다. 저는 13년째 파킨스병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병이 치료되어 통일 되는 날 기쁨으로 뛰어가 북녘 성도들을 맞이 하고 싶네요

루치아 : 하나님의 말씀을 외워 두면 환란이 와도 끄떡 없다는 북한성도의 고백이 가슴을 확 때립니다. 자유 천지에서 내 믿음의 강도는 어느 정도인지 참으로 두렵네요.

 

★ AM 1190 미주 복음방송 (월~금 오후4:40~5:00)
★ AM 880 하와이 복음방송 (매일 오후 12:00~1:00)
★ OKCN 방송 okcnradio.org/vou
★ KCBN 미주기독교방송 www.kcbn.us

 


 

방송 사역을 위하여 기도해주십시오!

 

첫째, 방송의 필요를 채워주옵소서!
단파방송 중심에서 안정적이고 독립적인 중파방송의 시간이 확장됨에 있어 필요한 물질을 공급해 주시고, 장애가 되는 여러 환경들이 해결되게 하옵소서. 이러한 방송들이 진행되기 위해 무엇보다 준비된 적합한 일꾼들과 규모 있는 오디오 장비와 영상 스튜디오 등이 시급합니다. 공급자 되신 주께서 채우시고 구비되게 하여 주옵소서.

 

셋째, 방송이 울려 퍼지는 모든 곳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옵소서!
북한에서 숨죽이며 신앙을 지키는 성도들마다 방송을 듣고 힘과 위로를 얻어 말씀과 기도와 예배가 회복되는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게 하시고, 믿지 않는 사람들도 복음 방송을 듣게 될 때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며 영접하는 역사와 능력이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특히 의무적으로 남한방송을 청취하는 북한의 감청요원들과 방송 관계자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역사를 허락해 주시고, 방송을 듣는 자들마다 남한에 있는 교회와 성도들이 북한을 향해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을 방송을 통해 전하고 있음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이것이 곧 오랫동안 남북한의 왕래가 막혀 있는 상황에서 통일을 준비하는 중요한 통로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둘째, 방송을 듣거나 진행할 때 올무가 되는 사단의 공격을 파하여 주옵소서!
복음이 제한된 지역에서 목숨을 걸고 방송을 듣는 주의 백성들을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전파방해로 인하여 방송을 청취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환경들이 주님의 손에서 다스려지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주의 백성들이 방송을 듣지 못하도록 전파방해를 하는 북한당국과 관련자들의 모든 궤계가 중지되게 하여 주옵소서. 방송을 통해 사단의 진을 파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아는 악한 영들이 예수를 믿지 못하도록 방해코자 하는 모든 여건들을 하나님의 권능으로 다스려 주옵소서.

 

넷째, ‘방송을 통한 복음으로의 통일’이 준비되게 하옵소서!
이제 임박한 통일을 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대북방송 형태의 방송에서 좀 더 나아가 남북한 전체와 해외동포들을 아우르는 통일 전·후의 복음 통일방송이 되게 하옵소서. 북녘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한 기독교 가정, 문화, 특별히 다음세대를 겨냥한 선교 컨텐츠가 더욱 구체적으로 준비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 나라 안에서 통일 전·후 전반에 걸친 방송사역을 통해 복음으로의 통일준비 사역이 이뤄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특집 2>

 

 

2011년 9월, 갑작스런 ‘웰컴투 홀리랜드’ 방송사역을 제의 받았을 때는 너무 당황해서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들었습니다. 20년 가까이 모퉁이돌선교회에서 사역하면서 단 한 번도 제가 방송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저에게 전문 방송 작가를 붙여주셨지만, 인간적인 두려움에 계속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이 방송이 이스라엘 땅에 울려 퍼지고, 이 방송을 통해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의 마음이 전달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 앞에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확신과 소망을 가지고 어렵사리 방송사역에 첫 발을 떼었습니다.

 

처음 하는 방송은 서툴고 어색했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며 평안한 마음으로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기술자도 능력자도 아닙니다. 다만 저의 일을 하나님 손에 맡기고 올려드릴 때에 하나님께서는 많은 일을 이루셨습니다. 이야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면 녹음실 구석에 앉아서, ‘하나님 오늘은 무슨 내용을 담아요?’ 라고 여쭤보며 하나님과 함께 원고를 작성했습니다. 방송을 통해 무언가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건 아니지만, 일상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께서 저에게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소소하게 나누며 이스라엘과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늘 방송에 임했습니다. 아랍 지역에서 송출하는 방송이기 때문에 몇 가지 제약이 있는데, 때때로 그러한 제약에 부딪히는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하나님께 하소연 하듯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방송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이 전달되게 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어서 너무 힘이 드네요.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이 방송을 듣고 이스라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기도로 동참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을 수 있도록 저에게 지혜를 주세요.’ 그렇게 기도하며 원고를 작성하고 녹음이 다 끝나고 나면 ‘제가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께 아름답게 드리고 싶어요. 그 다음에는 저는 몰라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하세요.’ 라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제 모든 것을 내어드릴 수 있었습니다. ‘웰컴투 홀리랜드’는 이렇게 은혜로 만들어지는 방송입니다.
이제 ‘웰컴투 홀리랜드’는 북한에도 송출이 되어 북녘의 성도들과 함께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과 북한, 그리고 웹 방송과 앱 방송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이 ‘웰컴투 홀리랜드’라는 방송을 듣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매일 뉴스를 살피고, 이스라엘 선교 단체의 소식을 들으면서,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북한성도들의 마음에 위로가 되는 내용이 무엇일지 늘 고민합니다.

 

작은 소망이 있다면, 이스라엘의 성도들과 북녘 땅의 성도들, 이 방송을 듣는 모든 이들이 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고… 예루살렘과 평양에서, 열방의 모든 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했으면 합니다. 제가 방송을 통해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만 청취자들과 함께 예배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제가 방송을 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기쁨이고 감사입니다. 언젠가, 유대와 사마리아, 온 백성들이 한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꿈꿔 봅니다. 하나됨으로 하나님 찬양하고 다시 오실 예수님 예비하는 것을 꿈꾸며, 오늘도 방송할 새 힘을 얻습니다.

 

‘웰컴투 홀리랜드’ 라는 프로그램을 오늘(2017년 6월 21일)로써 588회까지 녹음했습니다. 지난 날을 되돌아보면, 모퉁이돌선교회에 처음 발을 디딘 것도 제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권하심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 저 이거 못하겠어요. 하기 싫어요.’ 라고 울며 기도했는데, 어느새 뒤돌아 보면 하나님께서 저를 이만큼 데려다 놓고 ‘내가 너와 함께하고 있어.’ 라고 격려하시며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그만 두라.’고 내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먼저 찾아오셔서 감격과 감사와 감화를 저에게 주시고 순종할 수 있게 하시니,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본회 방송사역 담당 김은혜 간사

 


통일을 위해 한인 디아스포라들을 준비시키고 평양에서 예루살렘까지 주님이 다시 오실 길을 예비하기 위해 시작된 방송, [통일의 소리]는 그동안 특별한 홍보 없이 선교 동역자들과 프로그램 참여자들의 입소문을 통해 알려져 왔음에도 앱 방송 방문자의 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그러한 가운데 공중파에 컨텐츠를 공급하면서부터는 방송 청취율이 더욱 상승하고 있다.

 

현재 [통일의 소리] 제작에 참여중인 일꾼들은 365일 방송으로 인해 힘들 법도 한데 이구동성으로 “방송을 통해 선교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라고만 하니 참으로 은혜가 아닐 수 없다.

 

다음은 방송 제작을 담당하는 사역자들의 고백이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북한을 향해 방송을 하고 있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직접 겪은 북한의 현실과 탈북 과정을 드라마로 표현하니 마치 본인이 현장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어떤 분은 장거리 배달 운송을 하는 12시간 내내 방송을 듣는다고 합니다. 청취하시는 분들이 북한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고 통일에 대해 새로운 안목을 갖게 되었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이민 생활의 어려움으로 고단한데 북한 성도들의 이야기를 통해 힘을 얻는다는 청취자들의 사연에 보람을 느낍니다.”

 

[통일의 소리]는 시간이 지나도 부르심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인 디아스포라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방송으로서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 기도하며 최선의 노력을 다하며 전진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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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소식 2017.6] 북한선교, 하나님이 먼저 행하십니다!

[특집 1]

 

 

북한선교는 현실적인 관점에서 많은 장애물로 넘쳐난다. 특히 요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환경적으로 어려움이 따른다. 그러나 어둠이 짙으면 빛을 더욱 선명하게 볼 수 있듯이 북한을 향한 하나님의 강권하시는 사랑이 그 땅의 영혼들에게 부어져 역사하고 있음을 우리는 보게 된다. 오늘도 북한을 향한 사랑을 친히 확증해 보이시는 하나님의 선교를 한 사람의 이야기를 정리해 나눈다.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종소리에  이끌려 …

 

땡~땡~땡…… 고요한 새벽녘, 종소리가 들려왔다. ‘웬 종소리지? 우리 마을에는 종이 울릴만한 곳이 없는데… ‘귓가를 울리는 낯선 종소리에 예은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새벽 4시만 되면 어김없이 들리는 종소리에 예은은 잠에서 깨어났다. “이보시라요, 이 종소리 들리십네까?”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워 물으니 “무슨 종소리가 난다고 그래? 당신 마음이 약해서 환청이 들리는 것 아냐?” 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새벽녘에 들려오는 종소리는 그렇게 세 달 동안 들려왔지만 예은은 어디에서 나는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먹을 것이 없어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던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끼니 걱정을 하지 않고 살았던 예은에게 어느 날 커다란 위기가 찾아왔다. 믿었던 사람에게 사기를 당해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녀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삶을 포기하고 싶었다. 집까지 빼앗기고 월세방에서 근근이 살아가며 속앓이를 하던 그녀는 설상가상으로 자궁근종에 걸려 수술까지 해야하는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자 남편은 “이렇게 살다가는 우리 가족 모두 허망하게 죽고 말 거야. 그러니 남조선으로 가자.”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또 다시 그녀는 유방암 3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상황을 맞이했다. 암세포는 그녀를 더욱 고통스럽게 하였다.
‘아, 이러다가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구나. 내가 이렇게 죽으면 우리 가족은 어떻게 하지.’ 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고, 급기야 탈북을 결심했다.

 

정든 고향을 떠날 생각을 하니 순간순간 마음이 흔들렸지만, 그때마다 그녀의 귓가에 종소리가 울려 퍼졌고 3개월이 지날 무렵에는 남편과 아이들까지도 종소리가 들린다고 하였다. “이상하다. 도대체 어디서 이 종소리가 들린단 말이지? 마치 나를 이끌어주는 종소리 같아.” 마침내, 그녀는 거동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가족들과 함께 강을 건너기 위해 국경 쪽으로 이동했다. 강에 들어섰는데, 바로 뒤에 세 명의 국경 경비대원들이 지켜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분명 강을 건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가만히 서 있기만 하였다. 강을 건너면서 철없는 딸아이가 “오마니, ‘이렇게 탈북하라고 하면 몇 번이고 하겠습네다”라고 했다. 예은은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자신들의 탈북을 돕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믿음의 성도들을 만나  하나님을 알게 되었지만…

 

예은과 가족들은 강을 건너자마자 종소리를 생각하며 부랴부랴 교회를 찾았다. 그러나 교회가 보이지 않았다. 이곳 저곳을 헤매다가 예배당이라고 생각되는 건물에 들어갔는데, 그곳은 다름 아닌 파출소였다. 겁도 없이 공안들에게 교회로 데려다 달라고 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아 할 수 없이 밖으로 나왔다. 중국의 공안들도 그들의 행색을 보면 북한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텐데 검거하지 않고 그냥 내보내 준 것도 기이한 일이었다.
그 곳을 나왔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여보, 더는 못 걷겠습네다.”
“조금만 더 참아보라.” 남편이 힘들어하는 아내를 달랬다. 추운 겨울 거리를 몇 시간이나 헤매었다. 막막함에 모든 것을 포기 하고 싶은 마음으로 무작정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찾았는데, 그곳에서 믿음의 성도를 만나게 되었다. 그 분은 예은의 가족들을 집으로 데려가 며칠 동안 묵도록 허락해주고,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며 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아주머니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만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만나게 하신거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이라구요? 그게 누군데요?”
“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지으신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이 죄를 지었어요. 그죄로 인해 인간은 영원한 지옥에 가야만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죄 지은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고, 예수님은 우리 인간의 죄를 해결하려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3일 만에 살아 나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는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내래, 그거이 무슨 말인지 통 알아 못듣겠습네다.”
예은이 귀찮다는 듯이 대꾸하니 주인 집 아주머니는 “그래요, 그래서 제가 예수님 영화를 준비했어요. 딱히 할 일도 없는데 이 영화를 좀 보세요”라며 틀어주었다.
예은에게는 영화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남편과 아이들은 정말 재미있어 하고, 영화를 보고 나서도 예수님 이야기를 서로 나누며 예수님이 믿어진다고 말했다. “드디어 우리 식구들이 미쳐가는구나~~” 예은은 마음 속으로 이렇게 되뇌였다.

 

며칠 후 목사님이라고 하는 분이 찾아와 아파 누워있는 예은을 향해 “하나님께서 예은 자매를 만드시고 사랑하십니다.” 라고 하는데 속에서 화가 올라왔다. ‘아니 무슨 목사라는 사람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 거지? 입김을 불어서 사람을 만들었다니, 누가 저런 허황된 말을 믿을까?’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옆에 앉은 남편과 아이들은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하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그런 남편을 보며 ‘어떻게 대학 나온 사람이 저런 거짓말을 쉽게 믿는 거지?’ 라고 생각했다.
마지 못해 하루 하루 성경공부를 하는 예은의 몸은 점점 고통에 시달렸다. 그녀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하나님, 하나님이라는 분이 있다면 내가 이렇게 아플까요? 저를 살리자고 탈북 시켰으면 고향 땅에서 살려주지. 부모 형제 하나 없는 이 땅에서 죽게 하시면 어떡합니까?” 라고 기도한 후 잠이 들었다. 그런데 새벽 꿈 속에서 하나님이 찾아와 “내 딸아, 걱정 말아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라고 음성을 들려주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연이어 꾼 꿈에서 여러 사람들이 탁자 위에 있는 십자가 열쇠를 천국의 열쇠라고 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이 열쇠는 예은 자매를 위한 것이오.’ 라며 그녀에게 열쇠를 주는 꿈을 꾸었다. 머리로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하나님이 너무도 생생한 꿈으로 자신 앞에 나타나니 혼란스러웠다. 그런 체험이 계속됨에도 믿지 않는 그녀에게 하나님은 또 한 번의 기적을 보여주셨다. 암세포가 퍼져 통증을 견딜 수 없어 아편을 복용하려던 순간 성도들이 통증이 있는 부위에 손을 대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은 자매의 통증이 치유될지어다.” 선포하며 기도하니 정말 거짓말처럼 통증이 말끔히 사라졌다. 이렇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꿈을 꾸며, 병 치유의 기적을 체험한 그녀는 더 이상 하나님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기도한 대로 응답하시는 하나님!

 

그 후, 그 성도의 가정에서 3개월 동안 성경공부를 하며 매일 “하나님, 제가 성경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으면 한국에 꼭 보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던 브로커가 성경을 다 읽고 나자 찾아왔다. 그러나 남한으로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쁨도 잠시 자신의 건강상태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하나님, 산을 타고 강을 건너고, 걷고 달리고 험난한 길을 가야 한다는데… 이 아픈 몸을 이끌고 어떻게 가죠?”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녀의 가족이 차를 타고 갈 수 있도록 행하셨다. 그 길을 안내하던 브로커도 “지금껏 이렇게 쉽게 온 적은 없었는데, 그것 참 신기합니다”라며 놀라워했다.

 

그렇게 제3국에 도착해서도 그녀는 “하나님 저 빨리 남한으로 가게 해주세요. 5월 19일에 꼭 비행기 타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그 날짜는 일반적으로 몇 달씩 걸려야 하는 것에 비추어볼 때 터무니 없는 기도였다. 그 기도를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과 가족들이 “말도 안되는 소리한다”고 면박을 줬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나는 무조건 그 날짜에 갈 테니 뭐라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정말 기적이 일어났다. 건강이 좋지 않은 예은 자매만 5월 19일 한국행 비행기를 탔고, 가족들은 난민촌에 2달 더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그녀는 기도한대로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면서 신기하고 놀라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 많은 기적을 체험하면서 남한에 와서도 마음이 안정되지 않고 교회에 나가는 것도 싫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나님, 하나님이 계신 건 알겠는데 믿어지지도 않고 남한 생활이 너무 힘들어요.” 그렇게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중국에서 만났던 선교사님과 사람들을 보내주셨다. 그러면서 북한에서 의사였던 그녀는 남한에서 의사 시험에 도전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지금까지 한번도 시험에 떨어져 본 경험이 없는 그녀는 난생 처음 겪는 실패에 좌절했다. 그 결과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하나님, 저 이러려고 남한에 보내셨어요? 다시 북한으로 보내주세요.”라고 투정을 부리며 힘겨운 싸움을 하던 그 때 하나님은 또 다시 그녀를 새로운 길로 이끄셨다.

 

 

북한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셨다!

 

“자매님, 중국에 가서 북한에 있는 가족을 만나서 복음전하는 일을 합시다.” 일꾼과 함께 자신이 떠나와 3개월 동안 머물렀던 그 곳으로 갔다. 그러나 그 곳의 경비가 삼엄해 한 가족도 만나지 못하고 처소에 갇혀 있어야 했다. 기대와 달리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상심해 잠을 이루지 못하며 뒤척이다 잠깐 잠이 들었는데 “내가 너 마음 아프고 힘든 것 다 알고 있다. 여기서 마음 편하게 있어라.” 부드러운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그 다음 날 북한에서 사역하는 지하교회성도가 중국으로 건너와 만났다. 그 성도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선에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있다니!”라며 놀랐다. 북한성도는 짧은 만남을 갖고 다시 북조선으로 돌아갔다. 북한성도가 돌아간 강 건너 북한 땅이 예은의 눈에 들어왔다.
“아! 하나님께서 왜 저를 탈북하게 하셨는지 알겠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확실히 믿습니다. 앞으로 북한선교를 위해 살아가겠습니다. 저도 이제 고향에 돌아가 가족과 친구와 이웃을 위해서 의료선교에 힘쓰겠습니다.”라고 고백했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사랑과 은혜가 부어지자 한 순간에 하나님이 믿어지고, 천국이 믿어지고 그녀는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기쁨과 감격으로 하나님을 찬양했다.

 

그렇게 중국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예은의 입술에 기쁨과 감사의 고백이 끊임 없이 흘러나오자 그 모습을 곁에서 보고 있던 남편이 “사람이 달라져도 이렇게 달라질 수 있어?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네”라며 놀라워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명을 깨닫게 되자 “이전에는 마지못해 예배를 참석하고, 집에서 찬양 듣는 것도 힘들어 했는데, 요즘은 공부하기 전에 꼭 한 시간씩 말씀을 읽고 찬양을 틀어놓습니다. 딸 아이에게도 ‘우리는 사명이 있어. 너도 그 사명을 위해서 공부 열심히 해야 돼.’ 라고 가르칩니다.”라며 기쁨의 고백으로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했다.

 

 

우리의 기도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하나님은 요한일서 4장 10절의 말씀에서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오셔서 구원의 은혜 베푸셨음을 말씀하신다. 그것은 72년 굳게 닫힌 북한 땅과 북한주민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이다. 그 하나님의 열심이 오늘 북한의 한 사람을 찾아가 종소리를 듣게 하시고, 그로 여러 어려운 과정을 거치며 복음을 듣게 하시고, 급기야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해 예배하며 사명자로 서게 하신다. 이는 곧 북한을 향한 하나님의 열심과 사랑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북한선교에 더욱 열심을 내야 한다. 우리가 북한선교를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돌들로도 소리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북한선교는 오늘날 우리가 감당해야 할 마땅한 몫이요, 사명이다.

 


 

<특집 2>

 

2016년, 11월, 북한을 떠나 강을 건넌지 3일째 되는 날이 되어서야 지철은 일꾼들을 만나 어느 집으로 안내되었다.

 

“야~아!! 정말 멋있는 책이구나”
지철(가명)은 책상 위에 있는 책을 보며 감탄했다.
무엇보다 겉표지가 가죽으로 되어 있고 지퍼까지 달려있는 멋진 책은 처음이었다.
“그거이 성경책입니다.”라고 하는 말에 깜짝 놀라 “네…”라고 대답하며 돌아보는 지철을 향해 주인 아주머니는 “뭘 그리 놀랍니까? 얼이 나간 사람처럼 성경책을 쳐다보고 있길래 한 말입니다. 우리 집에 성경책이 여러 권 있으니 아저씨 한 권 드릴 테니 읽어보세요”
성경책을 설레는 맘으로 손에 들고 처음 펼치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내용이 낯설긴 했지만 왠지 모르게 그 말씀들이 싫지 않았다. 그리고 중국에 머문 3개월 동안 매일 성경공부를 하며 계속해 성경을 읽었다. 성경을 본 이후로는 한국에 무사히 가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좋은 사람들을 만나 남한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한국에 와서도 날마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지만, 그럴수록 북한에 대해서는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미움과 분노가 커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형제님, 우리교회에서 의료선교를 떠나는데 같이 가도록 해요”
“의료선교가 뭡니까?”
“세계 여러 나라에 선교사들이 가서 복음을 전하는데 우리가 가려고하는 인도지역도 아주 열악하고 어려운 곳입니다. 그곳에 가서 사람들을 치료해주며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인도로 갑니다.”
“아! 그래요, 그럼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그런데 170만원의 선교비용이 필요합니다.”
지철은 가진 돈이 한 푼도 없었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면 비용을 주실 거라는 믿음에 걱정이 되지 않았다. 기도할 때 생각지도 않았던 이곳 저곳에서 30만원, 40만원, 20만원, 50만원, 10만원, 20만원 들어왔다. 하나님은 정말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딱 필요한 비용을 채워주셨다.

 

마침내 2017년 2월 어느 날 23명으로 구성된 의료팀이 인도를 향해 출발했다. 인도에서도 정말 의사들의 진료를 평생 받지 못하는 어려운 지역에 도착했다. 지철은 한방 팀에 소속이 되었다. 먼저 하나님께 모든 사역을 올려드리며 기도했다. 의료선교팀이 도착하자 그곳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의료 환경이 열악한 곳이라 의료진에 비해 환자가 너무 많아서 한 사람 한 사람 집중해서 진료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명씩 나누어 진료를 하는데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의료 사고 없이 매일 매일 많은 환자들을 진료할 때 치료가 되었다. 그러자 치료에 대한 소문이 그 지역에 퍼지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치료를 받기 위해 찾아왔다.

 

3일째 진료를 시작하는데 한 무슬림 남자가 네 살짜리 딸아이를 데려와서는 “이 아이는 벙어리입니다. 내 딸이 말을 하면 내가 예수님을 믿겠습니다.”라고 했다. 지철은 그 아이를 붙잡고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 후 정수리와 다른 두 곳에 침을 꽂았다. 그리고 다시 3일이 지났을 때이다. “지난 번 벙어리였던 그 여자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무슬림 아버지가 여기 찾아와 그 말을 하면 예수를 믿어야 하니 숨긴 것입니다.”라고 전해주었다. 지철은 자기 스스로 예수를 믿겠다고 약속했던 그 여자 아이의 아비가 하루 빨리 예수 믿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또, 사지가 마비된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혼자 남아 2주 이상 일정을 연장해 치료를 계속했다. 그 결과 믿는 사람이 5명 뿐이었던 그 곳에 56명이 예수를 믿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지철은 그곳에서 3주 동안 많은 사람들을 치료하는 동안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매 순간 역사하는 것을 경험했다. 보여주시는 기적에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안타까웠고, 현대 의학으로도 치유하지 못하는 환자들을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면서 ‘의료 선교도 내가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거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제대로 된 음식도 없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환자들을 치료하느라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지금까지 몰랐던 하나님의 은혜를 인도에서 경험하면서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오르는 벅찬 감동을 느꼈다.

 

“지금 이 모든 일을 생각해보면 정말 신기합니다. 제가 모르고 계획했던 일들이 하나님의 큰 그림 안에 있었습니다. 인도를 다녀오면서 제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고 나니까, 지금까지 북한이라고 하면 완전히 등이 돌아서는 마음이었는데, 이제 북한에 대한 아픔도 회복되고 있고, 성경을 보면서 북한을 사랑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많이 듭니다. 결과적으로 북한에서 견딜 수 없는 어려움을 당했던 것도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었음을 알고, 또 감사드립니다. 성경에 보면, 약한 자와 가난한 자를 도와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이 바로 나를 도와주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놀라운 은혜에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지고 그 사랑에 감격하며 말씀 안에 믿음의 뿌리를 내려 지철의 모습에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이며 백성된 기쁨과 감격이 만면에 흘러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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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소식 2017.5] 북한선교의 열정이 타오르는 브라질교회

<특집 1>

 

 

하나님은 2013년에 32년간 북한 선교를 감당해 온 모퉁이돌선교회를 향해 ‘통일, 내가 이룰 것이니 준비하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통일은 민족, 정치, 군사, 경제가 아닌 피 흘림 없는 평화통일을 의미한다. 통일은 현재 외부 세계와 완전히 단절된 채 통제를 받고 있는 북한현실에서 성도들과 주민들이 자유로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할 수 있기 위한 가장 좋은 선교 전략이 아닐 수 없다. 한반도의 복음통일을 위해 하나님은 세계교회를 깨우고 흔들어 참여할 수 있는 문을 활짝 열어가고 계신다.

 

특별히 지난 3월 10일부터 4월 3일까지 브라질교회의 초청으로 모퉁이돌선교회가 함께 한 북한 복음화와 통일을 위한 기도 모임 ‘COREIA DO NORTE URGENTE (북한 선교 대회)’에서 민족적, 지리적으로 그리고 문화와 언어가 전혀 다른 브라질교회와 성도들이 보여준 뜨거운 열정은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어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2~3)”는 하나님의 열심을 고스란히 증명한 감동의 시간이었다. 그 내용을 정리하여 함께 나눈다.

 

상처를 치유할 넉넉한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 넘치고

 

“저는 북한에서 엄마의 품에 안겨보지도,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보지도 못하고 살았습니다. 엄마가 사랑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생활이 너무 힘들어 그럴 여유가 없었던 겁니다. 북한에서와 탈북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제 삶을 나누었을 때 수천 명이 일제히 일어나 뜨거운 박수를 치며 격려할 때 큰 위로가 되었고, 그보다 더 큰 감동은 집회를 마치고 난 뒤 성도들이 줄을 서서 한 사람씩 꼭 끌어안고 얼굴을 비비며 사랑한다고 하는데, 제 속에 응어리진 것들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 같은 것이 뭐라고 그렇게까지 사랑해주는지 제 안에 있던 상처가 모두 치유되었습니다.” 탈북민 릴리 자매의 감격 어린 고백이다.

 

브라질에서 북한선교를 나눴던 모든 일꾼들이 가는 곳마다, 예배가 끝날 때마다, 성도들이 일렬로 줄을 서서 포옹하기 위해 40분씩 기다리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브라질의 한 청년은 일꾼을 부둥켜안고 통곡하며 “북한에 있는 성도들이 그런 아픔을 당하는지 몰랐습니다. 내가 묵인한 것이 하나님 앞에 잘못인 것을 알고 회개합니다. 형제여 사랑합니다.”라며 뜨거운 사랑을 전했다. 가는 교회마다 만나는 모든 성도들의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넉넉한 미소와 사랑은 언어가 달라도 아무런 장벽이 되지 않았다. 그 하나님의 사랑은 황폐하고 메마른 북한 땅을 적시기에 충분하리라!

 

천여 명이 여권을 준비하고 북한에 가겠다고 헌신

 

“여러분, 우리 모두 여권을 준비해 북한에 갑시다!”
여성들의 기도모임에서 릴리 자매의 간증이 끝난 후, 모임의 대표가 그 자리에 모인 1,000여 명의 브라질 성도들에게 제안했을 때, 일제히 손을 들어 북한에 가겠다고 결단했다. 또한 모임을 마친 후, 한 자매가 손수 만든 구두 두 켤레를 릴리 자매에게 선물로 주며 “이 신발을 신고 북한에 가서 복음을 전하십시오. 그 일이 가능하도록 계속 기도하겠습니다.” 라며 끌어안았다. 릴리 자매는 “신발을 받고 함께 기도하면서 때가 되면 이분들과 함께 북한에 가서 북한 사람들 안에 있는 상처를 다 끄집어내고 예수님의 사랑을 채워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고난 중에 믿음을 지키고 있는 북한 성도들에게 브라질교회의 기도와 사랑이 큰 위로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통해 북한에 큰 치유를 주실 것입니다.” 라고 고백했다.

 

뿐만 아니라 브라질교회 목회자들 150여 명은 금년 여름, 중국 접경 지역에 가서 북한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일정을 계획하였다. 북한의 실상에 대해 듣고, 곧바로 여권을 준비하고, 기도사역을 준비하는 브라질교회 목회자들과 성도들을 통해 복음통일을 실질적으로 준비케 하시는 하나님의 특심이 곧 굳게 닫힌 북한의 문을 활짝 여실 것을 믿음으로 기대하는 바이다.

 

 

북한을 위한 기도자 10만 명을 준비

 

“여러분, 우리 모두 여권을 준비해 북한에 갑시다!”
여성들의 기도모임에서 릴리 자매의 간증이 끝난 후, 모임의 대표가 그 자리에 모인 1,000여 명의 브라질 성도들에게 제안했을 때, 일제히 손을 들어 북한에 가겠다고 결단했다. 또한 모임을 마친 후, 한 자매가 손수 만든 구두 두 켤레를 릴리 자매에게 선물로 주며 “이 신발을 신고 북한에 가서 복음을 전하십시오. 그 일이 가능하도록 계속 기도하겠습니다.” 라며 끌어안았다. 릴리 자매는 “신발을 받고 함께 기도하면서 때가 되면 이분들과 함께 북한에 가서 북한 사람들 안에 있는 상처를 다 끄집어내고 예수님의 사랑을 채워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고난 중에 믿음을 지키고 있는 북한 성도들에게 브라질교회의 기도와 사랑이 큰 위로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통해 북한에 큰 치유를 주실 것입니다.” 라고 고백했다.

 

통일을 준비하는 브라질교회를 통해 한국교회에 말씀하시는 하나님!

 

뿐만 아니라 브라질교회 목회자들 150여 명은 금년 여름, 중국 접경 지역에 가서 북한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일정을 계획하였다. 북한의 실상에 대해 듣고, 곧바로 여권을 준비하고, 기도사역을 준비하는 브라질교회 목회자들과 성도들을 통해 복음통일을 실질적으로 준비케 하시는 하나님의 특심이 곧 굳게 닫힌 북한의 문을 활짝 여실 것을 믿음으로 기대하는 바이다.

 

 

이반석 목사는 말한다.“약 한 달간 계속된 모임에서 북한을 위해 뜨겁게 기도하며 통일을 준비하는 브라질교회의 북한선교에 대한 열정과 브라질 목회자들의 겸손한 모습을 보며,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이끄시고 움직이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먼 훗날 북한이 열리고 세계교회가 협력하는 모습을 돌아볼 때, 브라질에서 있었던 오늘의 집회를 하나의 역사로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또한 북한선교와 통일을 준비함에 있어서 잠잠한 한국교회를 향해 ‘깨어나라. 일어나라.’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브라질교회를 비롯한 세계교회가 연합하여 하나님께서 행하실 복음통일을 준비할 때, 한국교회가 맡겨주신 역할을 잘 감당해 나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브라질교회 가운데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시며 복음통일을 친히 성취해 가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찬양합니다.

 

 


 

<특집 2>

 

 

저는 모퉁이돌선교회의 요청으로 3월 11일~4월 2일까지 30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고 지구의 반 바퀴를 돌아 남미대륙에 위치한 브라질에 가서 북한 복음화와 복음통일에 참여하고자 하는 여러 교회와 성도들에게 북한의 실상에 대해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북한에서 자라며 체험한 소식을 전했을 때 브라질교회와 성도들이 보인 모습에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예배에 참가한 1만여 명의 성도들이 주님의 마음으로 북한인민들을 사랑하고 북한을 위해 하나님께 전심을 다해 기도하겠다며 눈물을 흘리며 저를 포옹해주었습니다. 매일매일 예배와 기도시간이 거듭되는 동안 수만 명의 브라질교회와 성도들 앞에서 하나님의 택하심과 구원하심을 간증하면서 주님의 놀라운 섭리와 은혜를 심장으로 절감하는 감동과 격정의 순간들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북한 복음화의 주역은 우리 탈북자이며 통일의 주인공도 탈북자라 생각해왔습니다. 그런 제 생각은 브라질교회에서 첫 주일예배를 통해 완전히 부서졌습니다. 국적도 언어도 다른 브라질 성도들이 북한 영혼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주님의 사랑만이 북한을 복음화하실 수 있고, 한국 통일의 주인공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것은 분명 하나님이 아니시면 불가능한 기적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체험하는 순간순간이었습니다.

 

또한 2008년 북한을 떠나 한국에 와서도 저는 줄곧 “나는 왜 북한에서 태어났을까?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좋은 대학에서 공부하고 능력을 갖추어 더 큰 일을 할 수 있었을텐데…”하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북한의 실상과 고난받는 성도들의 이야기를 전했을 때 눈물로 기도하는 수많은 브라질 성도들을 보며 제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하나님 아버지 저를 북한에서 태어나게 해주시고 택하시어 탈북자로 구원해주시고 민족 복음화의 도구로 쓰임 받도록 특혜를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진정으로 저는 축복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 백성입니다!” 라는 불같은 고백이 흘러나왔습니다.

 

더하여 북한에 있을 때 비행기 타는 것이 평생의 꿈이었던 소원도 이루어졌습니다. 북한에서는 아무리 돈이 많고, 간부집 자식이라도, 수령이나 그 아들이 아니고서는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나가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특권이고 그림책에서나 읽을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하나님의 은혜로 한국에서 출발해 유럽을 거쳐 브라질까지 그리고 넓은 브라질의 도시들을 이동할 때 비행기를 타고 마음껏 날아다녔으니 평생의 소원도 이루어졌습니다. 죽음에서 구원해주시고 민족 복음화의 도구로 쓰임 받는 것만 해도 분에 넘치는데 꿈과 소원까지 다 이루어주시니 갚을 길 없는 주님의 은혜에 감격할 뿐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영원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김영광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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