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콤 특집 1] 아버지는 100번 이상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2019.10)

 

2017년 8월 광복절 특집으로 ‘일본을 용서합니다’ 내용을 게재하면서 일본이 36년 동안 자행했던 수많은 죄악을 다루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이 강권하시는 은혜와 사랑을 힘입어 일본의 죄악을 용서하는 제사상장적 기도를 선포하였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오늘 한일 관계가 첨예한 갈등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탈북 가정의 어린이들 6명과 본회 일꾼 4명이 일본 교회의 초청으로 다녀왔고, 하나님께서 일본 땅을 밟으며 기도할 수 있도록 이끄셨다. 다음은 탈북 어린이들을 초청해 캠프를 진행한 오사카의 카리스교회 무라카미 야스아키 담임 목사와 나눈 인터뷰이다.

 

 

Q 탈북 어린이들을 초청해 캠프를 진행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요?

 

저희 카리스교회에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이 아이들이 일본인 친구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의 친구와도 교제할 기회를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작은 곳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사랑 안에서 큰 시선으로 높은 곳을 봤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캠프명을 일본과 한국, 북한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뜻으로 ‘하나 캠프’로 지었습니다.
사실, 작년에 한국을 방문할 때만 해도 하나 캠프를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어려운 장벽들을 뛰어넘고 하나님 안에서 캠프가 열렸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한 방향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의 다름만 보고 있어서는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한 곳을 보았고 ‘할 수 없다’가 아니라 ‘할 수 있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못할 이유를 찾으려면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캠프에 대해 물으면 그건 안 될 거라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반드시 아이들이 캠프를 통해 성장할 것이다.’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캠프를 통해 아이들이 믿음으로 높고 넓게 보는 시야를 가지게 됐다고 저는 믿습니다. 하나 캠프를 열게 돼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Q 준비 과정에서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말씀해주세요.

 

돌이켜 보면 딱히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뭘 해도 참 빠르죠. 어른들은 이것저것 재느라 일을 못합니다. 저희들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까’ 하고 물었더니 어른들보다 더 놀라운 것들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래서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등 많은 방법을 이용해서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이들을 통해 이런 캠프가 열리게 돼서 너무 감사합니다. 꼭 어려운 점을 하나 꼽는다면 아마 어른들의 딱딱한 머리가 아닐까 합니다.

 

 

Q 탈북민 아동들을 어떤 마음으로 지켜보셨는지요?

 

아이들은 금방 친해지죠. 언어의 장벽도, 음식의 장벽도 금새 뛰어넘고요. 어른들은 나라 사정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지만 아이들에게 그런 것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요. 오히려 하나님 나라의 한 가족 구성원으로서 함께 나누고 즐기는 것을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저는 이번 모임이 더욱 넓어지고 커질 것을 기대합니다. 이번에 한국에서 일본으로 오는 기회가 하나님 안에서 허락되었듯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또 북한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일본과 한국, 중국 등 아시아의 모든 어린이들이 함께 모일 시간이 빨리 오기를 저는 마음 깊이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배를 태워서 건너편 언덕으로 보내셨습니다. 저는 그 일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배를 인도하시고 일본과 중국과 한국 등 모든 아시아 어린이들이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외출하는 일이 곧 일어날 거라고 믿습니다.

 

 

Q 북한을 향한 마음이 있으면 나눠주시지요.

 

저는 10년 전쯤 한국 38도선 부근에서 북한 땅을 본 적이 있습니다. 무서운 병사들이 서 있는 그곳에서 긴장감을 느끼며 한국 사람들과 북한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나의 강을 사이에 두고 저 건너편으로 갈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까웠지만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 강을 건너가면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마음속 깊이 느꼈습니다. 그들에게 성경 말씀을 전하고, 또 그곳에 계신 많은 기독교인들과 나눔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은혜가 풍성한 분이십니다. 예수님께는 불가능이 없고, 불가능이 가능이 됩니다. 또 하나님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소망의 말씀을 주십니다. 두드리면 반드시 열릴 것입니다. 하나님은 북한에 있는 크리스천들을 정말 사랑하십니다. 이곳 일본에서도 북한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늘 문이 열리고 일본과 한국과 북한의 성도들이 모임을 가질 날이 속히 올 것을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은 한 식탁으로 우리가 모일 수 있도록 준비하고 계십니다. 거기서 함께 교제할 것을 믿으며 함께 힘내서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Q 한국과 일본이 정치적으로 안 좋은 상황입니다. 일본 목사님으로서 한국 성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제 아버지는 40년 전부터 100번 이상 한국을 방문하셨습니다. 일본이 저지른 많은 잘못들을 사과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말씀을 전파하셨습니다. 거기에 많은 분들이 눈물을 흘리며 응답해 주셨습니다. 저도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한국에 가서 사죄했습니다. 지면을 통해 한 번 더 일본 민족이 여러분에게 저지른 많은 죄들을 용서해 주시길 구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우리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복음을 전하며 나가십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성령으로 하나 되어서 복음을 전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한국만 미국만 복음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일본도 북한도 자기 나라를 넘어서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할 날이 지금 곧 오려고 합니다. 복음은 받는 것보다 전하는 것이 기쁨입니다. 받은 모든 은혜를 전파하고 싶습니다. 하늘 문이 열린 이곳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부디 하나님께 함께 쓰임받기를 소망합니다.

 

 

Q 마지막으로 북한을 위해 기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북한 땅을 특별히 사랑해 주시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문을 여시고 더 큰 은혜를 충만히 부어 주옵소서. 북한의 모든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옵소서.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은혜 받고 구원 받게 하옵소서.
크나큰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해방시킬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저희는 믿고 감사합니다. 우리 인간이 감당할 수 있도록 그곳에 하나님의 빛을 내려 주옵소서. 어둠 속에 주님의 빛을 비춰 주옵소서. 복음의 빛을 주께서 비춰 주옵소서.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북한을 위해 기도하는 많은 이들의 마음이 지치지 않게 하나님께서 힘을 주옵소서. 더욱더 믿음을 갖고 기도하도록 주께서 도와 주옵소서.
사람이 불가능한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북한과 북한의 해방을 위해 더욱더 뜨겁게 기도하도록 우리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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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특집 2] 빨리 당겨 돌아가고 싶습니다! (2019.09)

잇몸이 녹아내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치료 차 한국에 나왔습니다. 걱정했는데 하나님께서 좋은 선생님과 환경을 허락하셔서 은혜 중에 치료받고 있습니다. 염려하던 마음이 수그러들자 떠나온 이스라엘의 이웃들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사모님, 어찌 지내십니까? 내가 가져 갈 테니
필요한 물품 있으면 알려주세요.”
“너무 무겁고 부피가 커서요….”
“어떻게든 가지고 갈 테니 꼭 보내세요.”
“그럼 송구하지만 부탁드립니다.”

먹을 것 귀한 곳에서 압력 밥솥이 고장 나서 선밥, 진밥 그러다 어느 운 좋은 날에는 입에 맞는 밥 먹고 있는 것 압니다. 오늘 아침 이 가정을 위하여 평안을 구합니다.

 

“사모님, 요즘 어찌 사십니까?”
“네. 은혜로 살고 있습니다.”

파송 교회의 후원이 끊어지고 가족들의 도움으로 근근이 하루를 한 주를 한 달을 일 년을 이겨내는 사모님의 대답입니다. 이 가정 또한 평안을 구합니다.

 

“사모님! 몸조리 잘하고 있지요?”
세 아이를 수술로 출산하고 또 한 명의 자녀를 출산하기 위해 온 가족이 한국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런데 요양해야 할 산모는 본인 몸의 회복보다 환경 좋은 한국에서 돌아가서 다시 현지에 적응해야 할 아이들 걱정이 더 큽니다. 이 가정의 평화를 구합니다.

 

“사모님! 몸은 어떠세요?”
“자알 견뎌내고 있습니다.”

사모님은 몇 개월 전 한국 방문 때 처방 받아 온 반 년 치 약이 은혜라고 말합니다. 여름에 녹음이 무성한 한국과 달리 이스라엘은 풀들이 뙤약볕에 말라 누렇게 변해 갑니다. 그럼에도 이른 새벽에 볼 수 있는 이슬 때문에 행복하다고 고백합니다. 이 가정 위에도 하늘의 평안을 구합니다.

 

“사모님! 비자는 잘 나오겠지요?”
“9월 중순 이후에 받을 수 있다고 해서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온 지 일 년 된 이 가정은 비자를 발급받으려고 많은 식구를 데리고 한국에 나왔습니다. 이스라엘 언어 연수 비자는 짧아지고 가족 동반 비자도 받기 어려운 상황에 지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이 가정을 위해 평안을 구합니다.
이스라엘 여기저기에 뻗어 있는 9미터 높이의 장벽은 더 길어지고, 테러는 더 다양한 모습으로 매일 일어나고, 이스라엘과 아랍의 골은 더 깊어만 가고, 그래서 예수의 이름이 시간과 함께 퇴색되어 가는 것만 같습니다.
한겨울 우기 때 내린 물이 가늠할 수 없는 깊은 땅속 바위 틈에 자리잡고, 작은 길 얕은 물길이 되고 웅덩이가 되어 우리를 시원케 합니다. 그 보이지 않고 소리 없는 물길이 건기의 생명을 연장합니다. 2,000년 전 생명으로 오신 그 이름이 사라질 것 같은 현실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여전히 살아 있고, 그의 일꾼들이 예루살렘에서 일합니다. 이 땅을 위하여 울어주십시오. 이 땅의 부흥을 위하여 그 역사의 생명이 요동치도록 간절히 울어 주십시오.

 

“사모님, 뭐 사다 드릴까요?”
“라면 스프 한 봉지만 부탁합니다.”

충족될 것에 비해 부탁의 바람은 아주 작습니다. 슬프도록 작습니다. 어느 곳이든 어느 집이든 한두 가지의 작은 염려들은 있습니다. 그러나 현지에서 일어나는 염려들은 한국에서 고민하는 것과는 환경과 물질 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견뎌야 하고 이겨야 하고 참아야 하고 때로는 외면해야 하고 사역 뒤로 밀쳐 두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이 올지라도 불평하지 말고 잘 견뎌내야만 하고 은혜만을 구해야 합니다. 천국에 가는 그날까지!

이스라엘 사역을 시작한 지 6년. 한국에서 그 땅을 바라보며 몇 가정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 지나온 시간들을 되짚어 봅니다. 가장 풍족한 은혜는 마음의 평안이며 사역의 열매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나누는 것이며, 내 안에 생명의 강물을 가득 채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네가 있는 그곳이 족하다’ 하신 아버지의 말씀이 내 가슴에서 요동칩니다.
그 은혜가 힘이 되어 우리는 다시 뙤약볕만큼 따가운 시선과 메마른 잎처럼 날카로운 그들 앞에 섭니다. 두들겨도 소리 나지 않는 담벼락 같은 그들의 공허함에 우리의 간절한 시선을 둡니다. 들을 생각 없는 돌덩이마냥 딱딱한 그들의 가슴팍에 예수님의 사랑만이 심기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품고, 내 안에 살아 있어 변함없으신 그의 사랑을 다시 새기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니 빨리 당겨 돌아가고 싶습니다.
가서 쌓아 올려진 돌덩이들을 사랑의 이름으로 한 장 한 장 들어내어 우리 주님을 높은 성, 그분이 서 있어 마땅한 곳에 세워 드려야 합니다. 땅속 깊은 물길을 더 찾아야 하고 더 많은 웅덩이를 만들어야 하는 그 분명한 사명이 있기에 우리는 그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뿌리 깊은 나무가 흔들리지 않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의 그늘이 되어 그늘 아래로 오는 이들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들이 한여름의 뙤악볕을 견디게 아낌없이 그늘을 내어 줄 것입니다. 그곳에서 예수의 사랑을 전할 것입니다. 그들의 목마름을 채울 것입니다. 그들을 위하여 우리는 그 자리에서 순종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는 그날까지 은혜만 구할 것입니다.

 

김OO (이스라엘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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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특집 1] 선교사의 눈물, 그리고 회복 (2019.09)

 

 

하나님의 격려로 다시 일어납니다

 

나는 감히 선교사를 꿈꾸지 않았습니다. 나 같은 사람을 하나님이 부를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선교사가 되려면 하나님의 특별한 지명과 계시를 받고 각별한 영적 능력을 가지고 죽음도 불사하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짐작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계속 저를 부르셨습니다. 네가 아니면 누가 낯선 땅에 가겠냐고, 누가 가족과 떨어져서 먼 거리를 여행하며 외로운 밤과 낮을 보내겠냐고 물으셨습니다. 탁월한 능력이나 대단한 지식은 없지만 부나 명예가 인생의 목적이 아닌 사람, 불편한 곳에서 자고 익숙지 않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사람, 또 낯선 언어를 배우며 추위나 더위를 참는 사람,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견디고 인내할 사람이 저라고 하셨습니다. ‘나를 대신하여 가 달라’고 부탁하시는 주님의 친절한 음성을 저는 거부할 수가 없었습니다.
비록 주님을 사랑해서 타국에 왔지만 거기서 당하는 수모와 멸시는 결코 녹록지 않았습니다. 사역을 위해 긴 시간 버스와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 엄습하여 밀려오는 외로움과 두려움으로 마음이 어려웠고, 안전의 위협을 받을 때마다 주님을 원망할 시간도 없이 사역의 흔적을 없애느라 동분서주하기 바빴습니다. 잠자리에 들며, 내일은 고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다짐했던 순간이 많았습니다.
이국 땅에서 자라나는 자녀들과 생활고에 지친 아내에게 오히려 짜증을 내기도 했고, 함께 일하는 현지 일꾼들로부터 배신을 당한 날은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생명과 같이 아끼는 훈련 받은 제자들이 사역지로 돌아간 후에 연락이 끊기면, 복음을 전해준 것이 그들의 목숨을 빼앗은 것 같아, 하던 일을 모두 접고 본국으로 돌아가 숨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나의 모습을 나무라시지 않고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부르며 끝까지 붙드셨습니다. 비록 선교지에서 대단한 이적과 기사를 나타낼 수는 없어도, 나는 이제 주님의 능력 아래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 가난한 자들과 먹고, 병든 자의 환부에 손을 대고 기도하며, 갇힌 자와 그들의 가족을 돌보며, 고아와 과부의 대변인으로 상처받은 자의 어머니가 되어, 내 것을 그들을 위해 나누는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롬 10:14-15)” 주의 말씀에 힘을 얻은 저는 이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 24)”

 

 

사명자로 걸어가는 길

 

‘어떻게 선교사로 부름 받으셨나요?’ 라는 질문에 뜻밖에도 앞에 실린 것 같은 내밀한 고백이 답으로 돌아왔다. 선교사는 전사인 줄로만 알았다. 영적 불모지에서 용감무쌍하게 전투를 치르는, 그래서 외롭다거나 지친다거나 무섭다거나 하는 말 따위는 늘어 놓지 않는 하나님의 정예 요원이려니 했다. 그런데 본회 선교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의외의 단어들이 귓가를 스쳤다. 눈물, 절망, 고독, 두려움, 고민, 갈등, 탄식, 탈진… 공식적인 사역 보고서가 아닌 개인의 삶으로 마주한 선교사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선교사로 헌신하고 선교사로 살아가며 사역하는 모든 순간이 무엇 하나 쉽지 않고 고통 없이 되는 일도 없었다.
N 선교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던 날을 이렇게 회상한다. “저는 원래 북한을 품고 기도하면서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북한에 들어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교회 개척도 안 하고 있었는데 막상 하나님께서 가라고 말씀하시니까 아이들 교육 걱정이 앞서더군요. 그래서 계속 머뭇거리고 있자니 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 가셨어요. 그러면서 응답을 주시길 ‘내가 너의 아내와 아이들을 네가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한다’고 하셨어요. ‘네. 알았습니다’는 말 외에 할 말이 없었죠.”
목회까지 미루며 북한 선교를 위해 결단을 내렸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순종하기는 어려웠다. 아내와 자녀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선교사 본인이야 확실한 소명이 있어서 간다지만 가족들은 그렇지 않기에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다. 특히 한국과는 다른 선교지 환경으로 인해 아이들이 상처받지는 않을지, 학교 문제를 비롯해서 현지에 적응할 수 있을지에 촉각이 곤두선다.
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사실 아이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중국에서 사역하는 M 선교사와 J 선교사는 중국 정부의 감시와 핍박이 온몸을 옥죄는 압박으로 작용한다고 술회한다. 공안이 어느 날 갑자기 집으로 들이닥쳐 컴퓨터에 있는 자료를 복사해서 가져가고, 어느 날 갑자기 휴대폰에서 수상한 자료가 발견되었다며 70여 일간 감옥에 감금하고,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의 신상을 스캔할 수 있는 QR 코드를 집에 설치하고, 어느 날 갑자기 멀쩡하게 운영하던 사업장을 강제로 폐쇄하고, 또 어느 날 갑자기 조사할 게 있다고 파출소로 불러내니, 웬만한 사람은 평정심을 잃을 만하다.
주변 선교사들이 겪는 어려움을 보는 것 또한 심적인 부담을 가중시킨다. 이제 막 중국 공항에 착륙한 기내로 공안이 들어와서 앉아 있던 선교사를 붙잡아 추방시키는가 하면, 비행기 환승을 기다리던 선교사 가족을 바로 그 자리에서 출국시키는 일까지 발생했다. M과 J 두 선교사 모두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진행된 선교사 추방 행렬로 자신들이 아는 선교사는 이제 한 사람도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일으켜 세우시는 하나님

 

그러나 선교사들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한 위로와 안식 그리고 채움과 감사와 회복으로 이어졌다.
A 선교사는 오랜 기간 힘을 다해 일을 했지만 도무지 사역의 열매가 맺히지 않아서 무척 낙심한 상태였다. 마치 로뎀나무 아래 누운 엘리야처럼 그는 ‘하나님, 나 이제 그만 할래요.’는 말을 툭 내뱉았다. 기진맥진한 채로 씨름하던 그에게 한 사람이 찾아왔다. 몇 년 전 성경을 배우고 돌아간 북한 성도가 보낸 사람이었다. 북한에서 나와 처음 만난 그 성도는 주기도문, 사도신경, 십계명을 정확하게 암송하고 있었다. 20년 가까이 사역해 오면서 처음 겪는 일이어서 “아니, 어떻게 조선에 있으면서 이렇게 십계명까지 몽땅 외울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이거이 제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준 OO이 가르쳐 준 기야요”라고 대답했다. 어떤 식으로 가르쳐 줬느냐고 물었더니
“주기도문을 가르쳐 줄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종이에 쓴 것을 제게 보이고 암송하라고 합니다. 제가 금방 따라 외우면 그 종이를 불에 태웁니다. 그런 다음 며칠이 지나서 다시 그 집을 찾아가면 뒤 구절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며 나라에 임하옵시며’를 외우게 합니다. 그런 식으로 주기도문을 외우고, 사도신경을 외우고, 십계명을 외웠습니다. 이제 더 깊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라고 여기로 보낸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자신에게 복음을 전한 일꾼이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도와줬는데 심지어 살림살이까지 나눠줬다고 했다. 그렇게 북한 성도가 몇 년 동안 얼마나 쉬지 않고 기도하고 전도하는지를 소상히 말해주면서 자기가 아는 사람만 28명도 넘게 예수를 믿었다고 전했다.
이 말을 들은 A 선교사는 이렇게 고백했다. “최근 저는 정말 마음도 몸도 지치고 힘들었습니다. 이렇게는 더 이상 어려우니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닌가? 심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OO이 보낸 사람을 통해 거기서 사역하는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아, 내가 힘이 들어 허우적거리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쉬지 않고, 졸지도 않고, 상상도 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행하고 계셨구나!’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입이 천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저 같이 부족한 사람을 하나님이 사용해 주시니 감사하지요. 북한에서 OO이 사역하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힘을 얻었습니다.”
이렇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주저 앉아 있는 그때에도 신실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나라를 확장시키고 역사하심으로 귀한 열매들을 맺어 가신다. 그 열매들을 보고 선교사들은 힘을 얻고 회복의 기쁨을 누린다.

 

선교지는 치열한 영적 전투의 현장이 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저항하는 복음이 제한된 지역에서 진리 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선포함으로 견고한 진을 파한 후 하나님의 나라를 굳게 세워야 할 실존하는 싸움의 격전지이기 때문이다. 그 한가운데에 선교사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에 대한 영적, 물리적, 환경적 어려움과 공격들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지금도 복음을 증거하느라 치열한 전쟁터에서 바울과 같이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다짐하며 싸우는 선교사들을 위한 우리의 기도가 필요하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마다 보냄 받은 땅에서 모든 민족이 주께로 돌아오는 그 영광의 열매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며 기뻐하는 은택을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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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특집2] 그 기도를 들으시고 나를 살려주신 하나님!(2019.08)

 

나는 함경북도 함흥집결소(감옥)에 갇혀 고통에 신음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다. 처음 중국에 나와 일할 곳을 찾아 여기 저기 헤매던 나는 우연히 한국에서 온 선교사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분들은 집 짓는 목수 일을 하던 내게 복음을 전해 주었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나의 모든 것을 감싸 안아 주시며 품어 주셨다. 그러던 어느 날 선교사님들이 마련해 준 쉼터가 발각되면서 나는 강제북송을 당해 함흥집결소에 수감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짐승보다 못한 고문과 매질에 시달려야 했다.

 

하루는 간수가 나를 불러 땅을 파라고 시켰다. 먹지 못해 기운이 없는 상태에서 얼마간 파 내려 갔을 때, 가마니에 둘둘 만 무엇인가를 끌고 나와 나에게 묻으라고 했다. 그런데 손이 파닥이는 것이 보였다.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 아직 살아 있는 것 같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간수들이 “이 새끼 어디서 대들어”라며 사정없이 때렸다. 그렇게 몇 번 시신 묻는 일을 하고 있자니 ‘아! 나도 이러다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선교사들이 조건 없이 따뜻하게 대해 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들려주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를 끔찍이 사랑하고 용납해 주었던 선교사들을 다시 보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집결소에 수감된 지 6개월이 지났을 때 나는 허약(영양실조)으로 몸무게가 36kg까지 빠져 걸을 수조차 없게 되었다. 그런데 김정일의 생일을 맞아 중국에 갔다가 구속된 사람들을 풀어주라는 대사령이 내려졌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나는 “할렐루야!”라고 외쳤다. 나도 모르게 나온 소리에 놀라서 옆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데 누군가 구석에서 “아멘!”이라고 했다. 덜컥 겁이 났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무 일 없이 석방되도록 은혜를 베푸셨다.

 

호송원 둘이 나를 고향까지 데려다 주는 임무를 띠고 나를 앞세워 함흥역전까지 갔다. 그러나 굶주림으로 영양실조에 걸린 나는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어서 푹 쓰러졌다. 호송원들은 깜작 놀라 “이 새끼 죽으면 안 되는데… 쌀뜨물 얻어오라”라고 했다. 그 말은 귀에 들렸지만 몸은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는데 갑자기 중국에서 내가 선교사들에게 못되게 굴었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해준 선교사들의 말을 듣지 않고, 돈을 벌려고 집을 지으며 거짓으로 예배드리고, 선교사들이 말씀을 전할 때 일부러 방해하고, 고의적으로 찬양 음을 틀리게 낸 못난 모습들이었다. 때늦은 후회와 함께 회개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내가 왜 그랬지? 다시 그분들을 만난다면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하나님을 찾았다.

 

 

그때 누군가 내 입에 쌀뜨물을 넣었다. 조금씩 의식이 돌아오는 와중에 머릿속에서는 자꾸만 하나님 생각이 났다. ‘하나님… 하나님이 나하고 함께 하시나?’라는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고는 “하나님, 이제 하나님이 보내준 사람들을 만나면 진짜 예배도 잘 드리고 찬양도 잘 하겠습니다”라고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호송원들은 의식이 돌아온 나를 역전에 두고 돌아갔다. 몸을 추스려서 발걸음을 떼는데 내 모습이 너무 기가 막혔다. 중국에 돈 벌러 갔는데 돈은 고사하고 산송장 같은 몰골로 집에 가자니 부모님 뵐 면목이 없었다. 다시 중국에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감옥에서 만난 고향 친구와 함께 집 대신 두만강으로 향했다. 누가 봐도 깡마른 꽃제비의 모습으로 대낮에 두만강을 건너려고 서성거리니 아니나 다를까 경비를 서던 군인이 쫓아왔다. 나는 비틀비틀 뛰면서 속으로 “하나님, 우리 중국 무사히 가게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우리는 얼마 못 가서 경비병에게 붙잡혔다. 그런데 몰골이 어찌나 형편없었던지 경비병은 우리를 초소로 데려가서 밥을 주면서 “너희 중국 가려고 하는 거 아니지? 빨리 먹고 집으로 돌아가라”라고 했다. 하나님이 베푸신 기적이었다. 우리는 경비대가 주는 밥을 먹고 힘을 내서 중국으로 넘어왔다.

 

그렇게 무사히 중국 쪽 강변에 숨어 있다가 조선말 하는 사람을 찾아서 그 집에 들어가 전화기를 한 번만 쓰자고 사정했다. 처음에는 안 된다고 하더니 손을 싹싹 빌면서 친척을 찾으려고 한다고 했더니 전화를 사용할 수 있게 허락했다. 처음 나를 선교사들에게 데려다 주었던 모 권사에게 전화를 했다. 그 권사는 내 목소리를 듣더니 이내 울먹이는 목소리가 됐다.

 

 

“권사님, 선교사님들은 잘 계심까?”
“선교 센터가 발각되어 선교사님들은 모두 추방당하고, 탈북자들은 북한으로 잡혀 갔어. 다 죽은 줄만 알았는데… 살아와줘서 고맙다”
그 말을 듣는데 뜨거운 눈물이 두 볼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렸다. ‘집결소에서 내가 산 채로 묻었던 그 사람들처럼 나도 죽을 수 있었는데, 그런 나를 하나님은 살려서 중국에까지 오게 하셨구나. 아, 여기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내가 살아 돌아오기를 기도했구나.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나를 살려주셨구나’ 하는 감사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그로부터 6시간 후, 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나 지극한 돌봄을 받고 몸을 완전히 회복해서 중국에 나온 북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하나님을 예배했다.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북한 땅에 흘러가기를 기도하며 그 날을 준비한다. 나를 만나 주시고 구속해 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을 북녘의 내 가족과 모든 백성들에게도 전해지는 ‘탈북행전이’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탈북민 정OO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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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특집1] 지금도 진행중인 탈북행전, 하나님의 역사를 만화로 담는 것이 저의 부르심입니다(2019.08)

 

북한에서 부활절 달걀을 받았다

 

“해마다 4월이 되면 할머니가 계란을 나눠 주셨어요. 재미있는 이야기도 같이 들려 주셨는데 그때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몰랐어요. 여기 남한에 와서 교회에 가 보니까 부활절에 달걀을 주더라고요. 그리고 설교를 듣는데 할머니가 하셨던 말씀과 너무 똑같아서 소름이 쫙 돋았어요. 또 하루는 할머니가 일하면서 흥얼거리던 곡조가 찬송가로 흘러나와서 깜짝 놀라기도 했어요.
저희 할머니는 새벽 기도를 하셨어요. 꼭두새벽이면 일어나서 꼬챙이 하나 들고 불을 때셨는데, 딱딱 나무 타는 소리에 맞춰 ‘사르르 스습습스’ 하면서 다른 사람은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를 내셨어요. 할머니는 식구들이 제사 지낼 때도 혼잣말을 하곤 하셨는데 추측하기로는 회개 기도를 하셨던 것 같아요.
할머니에 대한 또 하나의 기억은 할머니가 주머니를 털어서 꽃제비에게 돈을 쥐어 준 거예요. 그 일로 아들에게 죽어라 욕을 먹었죠. 어머니는 자식들 생각은 안 하냐고, 장사 밑천도 안 남기고 가진 돈 전부를 주면 어떻게 하냐고 쓴소리를 해댔어요. 할머니는 그렇게 자식들에게 천대와 멸시를 받으면서도 주변에 배 곯는 사람이 있으면 늘 베풀곤 하셨어요. 믿음이 없었다면 그런 행동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철두철미하게 믿는 신앙인이 분명히 있다

 

“모르긴 해도 제 이야기에 공감하는 북한 분들이 꽤 있을 거예요. 북한에는 1호 작품이라고 김일성 부자 초상화가 벽마다 돌아가면서 붙어 있어요. 그림이 부족하면 김일성, 김정일이라고 글이라도 써서 채워 놔요. 그런데 어느 날 그 초상화에 손상이 가 있었어요. 천인공노할 일이죠. 북한에서 살 때는 막연히 남조선 간첩이 한 짓이겠거니 했어요. 그런데 멀쩡한 간첩이 초상화 하나 훼손하려고 북한에 침투하겠어요? 그렇다고 평범한 북한 주민들이 그런 일을 벌일 리 없잖아요. 기독교인밖에는 없어요. 우상 숭배는 기독교에서 죄니까 초상화에 금을 확 그어버리는 거죠. 그렇게 손상 사건이 발생하면 그 지역은 집중 감시 지역이 돼요. 사람들이 어디로 몇 시에 이동하는지 철저하게 조사하고 의심 가는 부분은 신고하게 만들어요. 까딱하면 목숨이 달아날 판인데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그런 행동을 하니 참 대단하다 싶어요. 그리고 저희 할머니는 평생 한 동네에서만 사셨어요. 거기는 모든 사람들이 떠나기를 원하는 곳이에요. 왜냐면 6·25 때 한국으로 넘어가고 남은 가족들, 소위 북한에서 말하는 감시자 가족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었거든요. 어떤 희망도 발전도 기대할 수 없는 곳이었죠. 제가 평양에서 지방으로 추방당해서 할머니와 함께 지낼 때 할머니가 ‘동네에서 똑똑한 사람들은 전쟁 때 다 내려갔다’는 말씀을 해 주셨어요. 즉 기독교인들이 살았고 지금도 기독교인들이 남아 있는 동네인 거죠. 그 이유 때문에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날까지 그곳을 벗어나지 않으신 게 아닌가 생각해 봐요.”

 

한국 목사가 북한 가정집에 들어가 예배를 인도했다

 

“워낙 극비로 나온 분들이라 이제는 얼굴도 가물가물해요. 그분들은 5분, 10분 이내로 잡힐 것 같은 절박한 상황에서 탈출하셨어요. 목숨이 경각에 달린 그 짧은 시간에 전력질주해서 숨었다가 추격을 따돌리고 국경을 넘어서 간신히 보위부의 손을 벗어났어요. 진짜 하나님이 살리신 거예요. 그분들은 옛날부터, 그러니까 6·25 때부터 믿음 생활을 했다고 하시더군요. 당시 아파트 지하에 십자가를 걸어 놓고 가족끼리 예배를 드렸는데 나중에 다른 한 가정이 더 합류해서 예배했다고 하더라고요. 북한에서 전도를 하고 예배한다는 건 기적이에요.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한국 목사님이 예배를 인도했다는 점이에요. 예배할 날이 되면 한국 목사님이 뇌물을 주고, 북한 국경을 넘어서 그 집에 들어가서 예배를 집도했대요. 나왔다가는 다시 들어가고, 그런 식으로 하다가 걸리고 말았어요. 어떻게 안 걸리겠어요. 목사님이 체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그분들은 도망쳤어요. 아버지와 오빠는 잡혔고 모녀만 극적으로 탈출한 경우에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하셨다

 

“탈북 도중 혜산시에서 붙잡혔어요. 보위원 6명이 제 팔을 옴짝달싹 못하게 잡는 순간 이젠 죽었구나 싶더군요.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때마침 휴대폰 벨이 울렸어요. 보위원이 증거를 잡으려고 ‘받어’ 하고 전화기를 들이대더라고요. 그런데 갑자기 제 입에서 엉뚱한 말이 튀어 나왔어요. ‘거기 단둥이죠? 우리 엄마 바꿔줘요. 엄마가 조국으로 돌아온다고 해서 내가 지금 가고 있으니까 빨리 바꿔요.’ 그 한 마디로 저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탈북한 엄마를 잡으러 가는 아들이 됐어요. 그때부터 저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진술할 수 있어서 8일 만에 풀려났어요.
이 일이 있기 전 저는 노동단련대 6개월형을 선고 받았어요. 단련대에 입소하면 간수들이 기선 제압에 들어가요. 첫날은 벽 삼 면 가득 보안성 헌법을 잔뜩 써 놓고 그날 다 외우라고 해요. 저는 암송을 못하는 편인데 어떻게 그건 잘 외웠어요. 그 일을 계기로 학습 반장이 됐고 또 얼마 안 있어서 수감자들 작업을 조직하는 반장이 됐어요. 당시 저는 제 조직적 수완이 대단하다고 스스로 감탄했는데 그 일들은 기적이었어요. 반장을 어떻게 아무나 하겠어요.
제가 한국에서 기도하던 중에 북한에서 겪은 일들이 필름처럼 지나갔어요.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갇히고 거기서 살아남은 과정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이끄심이었구나, 주님이 이때 나를 구해 주셨구나. 성령님이 이렇게 하셨구나 하는 것들이 깨달아졌어요. 그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요. 성령님이 나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열정과 담대함을 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모든 일들이 너무 놀라워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얼마나 소리질렀는지 몰라요.”

 

탈북행전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그리다

 

“탈북 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주변 탈북자들에게 이야기하면 너무 아무렇지 않게 들어요. 한편으로는 그들에게는 일상적인 일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한편으로는 참 가슴이 아파요. 본인들이 어떤 은혜를 받았는지 모르는 거잖아요. 답답한 마음에 ‘하나님이 도우셨다’고 말하면 대개는 운이 좋았다는 반응이에요. 운이 좋은 것도 한두 번이지. 이것도 운, 저것도 운이면 설명할 길이 없어요. 하루는 저를 비롯한 탈북자들의 경험을 어디에선가 간증을 하고 있었는데 그걸 들으시던 한 분이 ‘내가 지금 탈북행전을 보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어요. ‘탈북행전’이라는 단어를 듣고 제가 무릎을 탁 쳤어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래요. 제가 이걸 해야 하는군요.’라는 고백이 절로 나왔어요. 탈북자들의 삶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기록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들이 북한을 출발해서 한국으로 오는 과정은 마지막 하이라이트일 뿐이에요. 탈북 과정에서 이적이 있었던 사람은 분명 북한에서 살 때도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어요. 저는 그것이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그림, 짜임새로 잘 표현하면 돼요. 만화로 영혼을 살리는 일이 제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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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특집] 평양에서 예루살렘까지 성경을 배달합니다!

 

북한, 중국, 소수민족, 아랍,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는 백성들이 있다. 모퉁이돌선교회는 지난 34년 동안 이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된 성경을 배달해 왔다.
하나님께서 북한과 중국을 중심으로 배달된 성경을 이제 아랍과 이스라엘까지 그 지경을 확장시켜 주셨고, 성경이 보내지는 곳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예배함으로 성령의 충만한 임재와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

 

 

북한

북한은 17년 동안 기독교박해 1위를 고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에는 적게는 수만 명에서 많게는 수십만 명에 이르는 지하성도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성경도 없고, 가르쳐주는 이도 없이 믿음을 지키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언어로 된 북한어성경을 준비해 보내고 있다. 북한의 590만 가정마다 성경이 필요하다.

 

 

중국

중국은 시진핑 집권 이후 교회 탄압을 강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에서 하루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2만5천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이 턱없이 부족하다. 나아가 대다수의 농촌 지역 목회자들로부터 요청 받는 주석 성경 정독본은 무제한적으로 필요하다.

 

 

소수민족

중국은 55개 소수 민족이 있고, 이들은 인접한 나라들에 거주하는 민족과 같은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중국어를 읽기 어려운 소수민족들을 위해 중국어 병음 성경이 준비되어 보내지고 있다. 특별히 실크로드를 따라 서북쪽에 위치한 소수 민족에게 그들의 언어로 된 성경이 필요하다.

 

 

아랍

중앙아시아를 지나 중동에 위치한 여러 나라들은 이슬람을 신봉하는 무슬림 국가들이다. 최근 이들 지역에 내전, 전쟁, 난민, 체제 붕괴 등을 통한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터키에 시리아, 아프카니스탄, 이란에서 온 난민들이 거주한다. 이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된 성경과 만화 메시아가 필요하다.

 

 

이스라엘

이스라엘에는 유대인과 서쪽 지역의 팔레스타인이 거주하는 아랍인들이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최근 유대교에서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들이 증가하고 있어, 이들을 위한 히브리어성경이 필요하고,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아랍인들을 위한 아랍어성경과 만화 메시야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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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소식 3] 아랍: 성경의 오병이어를 경험하다(2019.07)

처음 만나는 터키의 공기, 냄새, 색깔은 낯설었지만 기분 나쁘지 않은 어색함으로 다가왔다. 우리를 마중 나온 김 선생은 이란에서 8년간 사역하다가 추방되어서 터키로 건너 와 이란 및 아프간 난민을 섬기는 분이었다.
“목사님, 성경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분의 첫 마디는 심장을 요동치게 했다.
“성경이 필요하다고?!”
김 선생은 이란어 성경과 아프간 성경을 난민들에게 전달하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었다. 2014년부터 성경 보급을 시작했는데 아랍어 성경 2만5천 권, 아랍어 만화 메시야 2만5천 권, 아프간어 신약 3천 권 등을 본회와 함께 배달했다. 그 숫자를 듣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한 감격이 밀려왔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그럼에도 여전히 성경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현재 터키에 온 이란 난민이 약 6만 명, 아프간 난민은 30만 명이 넘었다. 이슬람인 그들은 가족과 동료들의 눈이 무서워서 개종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런데 난민으로 심령이 가난해지면 배교도로 죽으나 배고파서 죽으나 매한가지이기 때문에 복음을 쉽게 받아들인다. 이때 필요한 것이 그들의 언어로 된 성경이다. 성경을 읽은 난민들은 신앙의 흔들림이 적다. 예배에 참석하지만 성경을 읽지 않는 이들은 곧 믿음이 파선하고 만다고 김 선생은 설명했다.
또 난민들은 정착 후에는 복음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난민 생활 초기야말로 성경을 공급할 적기인 셈이다. 그런데 성경을 원하는 수요에 비해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고 성경을 인쇄할 비용이나 사역할 일꾼도 없는 상황이라니 ‘아버지’라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성경이 난민들에게 생명력을 전달합니다

 

터키 전 지역에는 2011년부터 들어온 약 350만 명의 시리아 난민이 골고루 살고 있다. 그 중 터키 남부 아다나에는 약 15만 명의 시리아 난민이 있다. 우리는 아다나에서 또 다른 일꾼을 만나서 시리아 난민에게 아랍어 성경을 전해주는 사역에 참여했다. 뉴스로만 보던 시리아 난민을 직접 현장에서 보니 마음이 아팠다. 그들의 형편없는 생활상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의 눈에 생명력이 없는 것 때문에 마음이 무너졌다. 사역 내내 ‘누가 저들에게 복음을 전할까’ 라는 생각이 나를 힘들게 했다.
초등학생도 안 된 남자아이가 온 몸에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집으로 돌아와 쉬고 있는 가정을 방문했다. 그 아이는 8명 식구의 가장이었다. 우리는 그에게 성경을 주며 복음을 전했다. 우리를 안내한 일꾼은 자신이 마약과 알코올의 중독자였는데 이런 쓰레기 같은 자신을 구원해 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간증을 했다. 그러나 그와 그 집 식구들의 눈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심령에는 영적인 지각이 흔들렸을 것으로 믿고 그들을 축복하며 나왔다.

 

터키는 지금 그야말로 추수밭이다. 정작 터키 교회는 부흥이 안 되고 있지만 터키에 온 난민 교회는 부흥되고 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이 어떠한 의미인지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난민으로 남의 땅에 온 그들에게는 소망이 없다. 미래는 절망일 뿐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난민들의 눈은 생명력이 있다. 성경,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비록 다른 난민들과 별반 다르지 않는 환경에서 살아가지만 그들의 눈빛만은 달랐다. 내가 믿은 예수를 동족에게 전하리라고 다짐하는 그들의 손에는 또한 성경이 포개져 있다. 지금 터키에서는 성경이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영적인 생명력을 전달하고 있다.

 

김나훔목사(본회 훈련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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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소식 2] 중국: 주석 성경이 보내진 곳에 부흥이 일어납니다!(2019.07)

 

“설교가 질적으로 달라졌습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깊어지고 넓어지고 풍성해지니
교회가 날로 성장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작년 12월, 중국의 모 도시에서 만난 중국 기독교 단체 지도자의 갑작스런 인사에 일꾼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 지도자는 일꾼의 두 손을 꼭 잡으며 몇 번이고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얼마전 이 단체에 성경을 보낸 것 밖에는 없는 일꾼으로서는 어떻게 설교가 변하고 교회가 부흥했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의문은 중국 지도자의 다음 이야기에서 풀렸다. “성경을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몇 년을 기다려서 받은 성경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뜯어 보니 저희에게 정말 필요한 주석 성경이 150권이나 들어 있더군요. 그래서 저희 단체에 속한 모든 설교자에게 한 권씩 배부했습니다. 설교자들은 그 주석 성경을 참고해서 설교를 했고 그때부터 교회 분위기와 교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일꾼은 그제야 전후 사정이 이해가 됐다. 중국 지도자는 성경을 보내준 것에 대한 감사를 넘어 성경을 받은 설교자들의 말씀이 바뀌고 그로 인해 교회가 부흥한 것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한 것이었다.

 

 

말씀으로 세워지는 중국 교회

 

중국 교회는 순회 전도자들이 마을마다 돌면서 개척한 곳이 대부분이다. 이들 교회는 단기간에 수십, 수백 명씩 성도가 늘지만 말씀의 기반 위에 든든히 서 있지는 못하다. 신학 교육을 받지 못한 설교자들이 말씀을 전하기 때문이다. 목회자가 절실히 요구되는 중국 교회에 설명과 자료가 풍부한 주석 성경은 전문 지식이 없는 중국 교회 설교자들이 활용하기에 더 없이 좋은 말씀의 도구가 된다.
“농어촌 교회 설교자들에게는 성경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정식 학교를 나오지 못했을뿐더러 각자의 생업에 종사하며 말씀을 전하기 때문에 때때로 성경을 오인해서 전달하는 일이 생깁니다. 여러분들이 보낸 주석성경은 설교자들을 영적으로 충만하게 했고 설교를 풍성하게 만들었으며 교회를 부흥시켰습니다. 중국 교회는 지금 핍박 중에 있습니다. 교회는 잠시 위축되었지만 어느 순간 확장됐는데, 저희 단체의 경우 그 시점이 바로 주석 성경을 받은 후부터였습니다.”
직접 성경을 배달한 일꾼에게 그 지도자의 말은 감동적인 고백이었다. 사실 일꾼은 그 단체에 성경을 배달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중국 상황이 여의치 않아 계속 배달이 지연되다가 지난해에야 겨우 제3국을 여러 번 경유한 끝에 배달이 성사되었다.
성경 배달 현장은 이렇듯 늘 어렵다. 그러나 성경이 필요한 곳의 사정을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시고 신실하게 응답하신다. 신학 훈련은 물론 설교 자료조차 없는 중국 교회 설교자들에게 하나님은 주석 성경을 공급하시어 성도들을 말씀으로 먹이시고 중국 교회를 굳건하게 세우신다. 주석 성경 배달을 통해 이루신 하나님의 경륜을 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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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 특집 1] 북한 성도에게 보내진 성경 한 권으로 수십 명이 예수를 믿고(2019.07)

 

“다음 번 올 때 성경책을 갖다 줄 수 없겠는가?”
“그건 안 돼. 몸수색을 다 하는걸. 그것만은 절대 못 해.”
“말씀을 봐야겠는데… 읽어야겠는데…”
성경이 필요하다는 북한 지하교회 성도의 청에도 일꾼은 거절하고야 말았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 몸을 샅샅이 훑는 세관 검사를 무슨 재주로 통과한다는 말인가. 성경책을 들고 북한에 세관을 무사히 통과한다는 건 일꾼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안 될 일이야.’ 일꾼은 방금 들은 말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려는 듯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맞은편에 앉은 북한 성도는 ‘그래도 어떻게 좀…’이라는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 차마 그를 붙들지는 못했다.
중국으로 돌아온 일꾼의 뇌리에 애써 외면했던 북한 성도의 마지막 중얼거림이 맴돌았다. ‘말씀을 봐야겠는데… 읽어야겠는데…’ 혼잣말하던 그 음성이 앉으나 서나, 일하나 밥 먹나, 무엇을 하든 귓가에 맴돌았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은 점점 커져 속에서 불 일듯 했다.
결국 일꾼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 말씀에 기갈이 난다는데 어떻게 합니까? 말씀을 읽어야 살겠다는데 어떻게 합니까? 사람의 노력이나 방법으로는 안 되는 일이잖습니까? 성경을 가져갈 수 있도록 주께서 도와주십시오.” 하고 기도로 매달렸다.
마치 예레미아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것처럼, 그 일꾼도 북한에 성경을 보내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지 않고는 괴로워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매불망 성경 배달을 위해 기도하던 어느 날 불현듯 “두려워하지 말라”는 은밀한 음성과 함께 담대한 마음이 쑥 들어왔다. 아울러 성경을 가져갈 구체적인 방법도 떠올랐다. 일꾼은 즉시 일어나 생각난 부위에 성경책을 대고 옷으로 가려 봤다. 이렇게 하면 되겠다는 확신과 함께 하나님이 하실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영혼의 생수가 된 한 권의 성경

 

시간이 흘러 어느덧 북한에 들어가야 할 기일이 됐다. 일꾼은 몸속에 성경을 숨긴 채 세관 앞에 섰다. 먼저 온 사람들로 세관은 북적였다. 일꾼은 느닷없이 통관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제치고 제일 앞으로 가서 “내가 급한 일이 있어 빨리 가야 하니 나부터 먼저 해 달라요”라며 세관원에 사정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같이 간 일행들이 오히려 겁을 집어 먹고 주의하라고 손짓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일꾼은 미동하지 않고 오늘은 하나님이 행하실 것을 믿고 대담하게 행동했다.
그날 하나님은 믿음대로 역사하셨다. 일꾼은 무사히 세관을 통과했다. 조사가 이전보다 허술하게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완벽하게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성경책을 숨긴 것도 아닌데, 하나님께서는 세관원들의 눈을 가리셔서 일꾼을 안전하게 보호하셨다.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린 일꾼은 무사히 통관된 성경을 가지고 요청했던 성도의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똑. 똑. 문을 두드리자 북한 성도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뛰어나왔다. 일꾼은 싸온 쌀이며 옷을 건네주고는 어서 방으로 들어가자며 북한 성도의 팔을 끌었다. 방문이 닫히고 주위가 조용해진 걸 확인한 일꾼은 몸속에 꽁꽁 숨긴 성경책을 꺼내놓았다. 검은색 표지로 된 새 성경책이었다.
북한 성도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후에 입을 뗐다. “중국에 있을 때는 늘 성경책을 볼 수 있어서 몰랐슴다. 그런데 여기서 말씀 없이 신앙생활을 하려니 얼마나 힘든지… 중국에서 몇 절이라도 더 외워서 올 걸 하는 후회가 많이 됐슴다.” 언제든 손을 뻗으면 성경책을 읽을 수 있는 편안한 환경에서는 체감하지 못한 말씀의 귀중함이 말씀 한 자도 볼 수 없는 캄캄한 암흑 속에서 죽음과도 같은 영적 기갈로 다가왔다. 말씀의 생수를 받아 마신 북한 성도는 해갈의 기쁨으로 충만했다. 위험을 감수하고 성경을 배달한 일꾼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한 기쁨으로 가득 찼다.

 

당신의 백성을 위로하시는 하나님

 

이 일이 있은 후 일꾼은 몇 번 더 같은 방법으로 성경을 배달했다. 많아야 한 번에 서너 권 들고 가는 게 다였지만 그 몇 권도 배달과 동시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어떤 때는 감시망이 강화돼 시장 같은 번잡한 곳에서 비밀리에 전달하기도 했다. 가끔 성경책을 받는 성도의 얼굴을 못 볼 정도로 급박하게 배달이 이루어졌지만 애타게 말씀을 기다리는 어떤 이의 손에 성경이 들어갔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후에 듣게 된 소식으로는 처음 일꾼에게 성경을 받은 성도는 믿음과 성령이 점차 충만해져서 많은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했고, 그들 또한 주변 사람들을 전도하는 풍성한 열매를 맺었다. 말씀에 대한 목마름을 가진 북한 성도와 그 목마름을 외면하지 않은 일꾼의 순종을 통해 하나님은 북한에 성경을 보냈고 수십 명이 넘는 영혼을 구원하셨다.
북한은 복음을 철저히 배격한다. 쌀과 의약품, 각종 생필품과 사치품은 밀수를 통해 들어가도 성경은 유입되지 못하게 철통방어를 하고 있다. 하나님을 향해 철의 장막을 드리운 북한, 하나님은 그러나 여전히 그 땅의 백성을 사랑하시사 지금도 그 땅에서 일하신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방법과 알지 못하는 길을 동원해서 말씀이 없어 애태우는 성도들을 찾아가시고 위로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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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특집 2] 기도로 선교할 수 있습니다!(2019.06)

 

“여기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조선으로 돌아간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눈물로 기도하는 선생님들을 보고, ‘아 진짜로구나! 진짜 조선 땅과 조선 사람들을 사랑하는구나!’ 하는 울림이 가슴 깊이 안겨왔습니다. 정말 감동을 받았습니다.” 북한에서 온 성도를 만나 들었던 말입니다.

 

선교사들은 복음을 전하고 말씀으로 훈련시킨 성도들이 북한으로 돌아갈 때 “우리가 계속해서 당신을 위해 기도할 것이다.”라고 약속합니다. 실제로 성도들을 훈련시키는 곳에서는 새벽마다 북한으로 파송한 성도들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도는 북한 성도들뿐만 아니라 선교 현장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안타깝게도 최근 북한을 비롯한 중국과 아랍, 이스라엘에 이르기까지 선교적인 환경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움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많은 선교사들이 추방을 당하였고, 선교지에 남아 있는 선교사들도 두려움으로 활동이 위축되어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선교에 어려움이 따르는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들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에는 반드시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하는 치열한 영적 전투가 수반됩니다. 이 영적 싸움에 있어서 가장 우선하는 강력한 무기 중 하나가 기도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직접 선교지에 가지 않고도 강력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그의 능력을 힘입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견고한 진들을 파하고, 복음이 전파되게 하시고, 환난 가운데 승리하도록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북한 땅에 복음이 전파되도록, 선교사들이 추방되고 교회가 문을 닫는 핍박으로 신음하는 선교 현장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벧전 5:8~10)”는 약속을 보이시며 기도하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선교는 기도로 시작되어 기도로 이루어지고 기도로 완성됩니다. 평양에서 예루살렘까지 복음이 제한된 지역에 하나님의 말씀을 배달하는 모퉁이돌선교회의 모든 사역에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로 이렇게 선교할 수 있습니다.

 

1. 집에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북한과 선교 사역을 위한 기도 편지와 카타콤 소식지, 그리고 모퉁이돌선교회 홈페이지에 게재되는 오늘의 기도를 보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본회로 연락주시면 받아볼 수 있습니다.

 

2. 모임에 참석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매주 목요일 남북의 성도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께 드리는 연합 예배와 매월 기도 모임, 전회원 기도회(5월·10월), 본회 기도팀 중심의 사역에 참여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3. 네트워크로 연합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각 교회나 직장, 학교 등에서 진행되는 북한선교기도회나 지역연합기도회 등의 소그룹 기도 모임에 본회 선교사와 강사를 초청해서 선교 상황을 듣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필요 시 북한 기도 제목 등도 보내드립니다.

 

4. 선교지에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직접 선교지에 가서 그 땅을 밟으며 기도하는 미션 트립(변방, 중국, 동남아), 북한을 직접 눈으로 바라보며 국내 휴전선을 따라 도는 기도 여행, 국내 성경 배달 유적지를 방문하는 기도 여행에 참가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여름 방학과 휴가 기간을 구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기 원하는 개인, 단체, 교회는 본회로 연락을 주시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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