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칼럼] 빈손으로 천국 가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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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배달하는 것도 선교냐?”
묻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방송도 선교냐? 라고 묻는 이도 있었습니다. 현장에 가기 싫으니까 “기도”만 한다고 비웃는 일도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데 있어 사역의 범위는 생각보다 넓습니다. 보내는 선교사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여인들의 이야기는 별로 많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제자들의 사생활에 관한 말도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성경은 소설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일이었기에 지금의 성경내용만 기록한 것입니다.
기록하지 않았다고 해서 제자들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 3년 혹은 그 이상을 따라만 다닌 것일까요? 우리는 조금 더 마음을 넓혀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눈여겨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전쟁을 하는 군인들이 있습니다. 전방도 있고 후방도 있습니다. 전쟁하지 않는 평화의 시기에 그들은 구체적으로 훈련합니다. 그들이 전쟁을 하지 않기 때문에 군인이 아니던가요? 군인들은 전쟁 때이던 평화로운 때이던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합니다. 군인이 아닌 일반 시민들은 자기 일을 하고, 그에 합당한 세금을 내며 시민의 자리를 지켜 나갑니다. 얼마 전 3명의 아들 모두를 전쟁에 내보낸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세 아들 모두가 전쟁터에서 죽었습니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인터뷰에서 “내게 넷째 아들이 있다면 그 아들도 전쟁터에 보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나는 시민으로서 마땅히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한국이나 기타 지역에서 집회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갈 때 공항의 출입국에서 직업을 묻고는 합니다. 그들에게 선교사라고 밝히면 “미국도 당신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라고 말합니다. 그 말에 저는 “하나님이 나를 보내신 곳은 공산권 국가들”이라고 답합니다. 이민국 직원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이 당신의 할 일”이라며 자기는 미국의 주어진 자리에서 주어진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라고 말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보냄 받은 자리,
하나님이 저를 북한에서 태어나게 하신 것은 실수가 아닙니다. 제가 18세에 어머니를 잃은 것은 하나님의 고약함이 아닙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저는 12세, 7세 그리고 5일 밖에 안된 동생을 키워야 했습니다. 아버님은 제 곁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그 환경에서 저는 그 자리를 지켜야 했습니다.
그 후 미국 군대에서 여러 가지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동안 사업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신학을 하고 훌륭한 교수님들에게서 말씀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목사가 되었고, 선교사가 되어 선교 현장에 가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려진 것처럼 힘겹게 살아가는 백성들이 오히려 믿음을 지키며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성도들의 손에는 성경이 쥐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제게 “성경 한 권, 성경 한 권만요…”라고 간절히 요청했습니다. 공산권에서 믿음을 지키는 모든 성도들에게 성경 한 권씩 보내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제가 만난 성도 한 분에게 한 권을 가져다 줄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제 주위에 뜻있는 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할 일이 없느냐고 물어왔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성경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유럽인들도, 호주와 뉴질랜드, 심지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사람들이 자원했습니다.
이제는 중국인들도 동참합니다.

 

그러나 한국인들 중에 “공산당들에게 무슨 복음을 가져다 주나…”라고 말하고, 심지어 “그들의 목을 졸라 피를 말려 죽여야 한다”고 하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한국에도 할 일이 많은데 굳이 그곳에 가야 하느냐며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 분들도 있었습니다. 꼭 공짜로 주어야 하느냐고 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두 그렇게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선교사님의 셔츠 하나, 양말 하나, 안경 하나, 구두 하나를… 어떤 이들은 본부 간사들을 위해 간식비를 보내주는 이도 있었습니다. 어떤 핀란드 분은 마음 놓고 쓰라고 신용카드를 미국인 선교사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차를 주는 분들도 있습니다. 언젠가 23년 동안 교회에 강사로 오는 분들의 차량을 운전하는 일만 하는 분을 만났습니다. 꽤 큰 회사의 사장이었는데 1년에 한번 휴가를 내서 섬긴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불리움 받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동안 이방인의 수가 하나씩 하나씩 채워져 가는 것입니다.

 

저는 수십 년 동안 중단하지 않고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선교를 위한 실제적인 훈련원을 이스라엘, 미국, 평양에 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편으로는 젊은이들을 이끌고 여러 나라를 돌아보며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뜻밖에 하나님의 나라에 큰일을 하실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자녀들을 선교 현장에 보내시는 일도 좋은 훈련입니다. 선교부에 자원 사역자로 보내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데 해야 할 더 많은 일이 있습니다.

 

이제 주의 나라가 가깝습니다.
여러분은 빈손으로 천국 가시렵니까?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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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무엇을 할지 묻고 또 물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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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교회를 떠나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런 제가 신학을 시작하기 바로 한 달 전에 있었던 교회 수양회에서 회심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가슴을 치고 울며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온 것입니다. 이 일로 제가 거룩해 졌다는 말이 아닙니다. 거룩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는 뜻입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제 주변의 어른들을 통해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신학을 하는 동안 동남아 여행을 하며, 선교사들을 만나고 현지의 교회를 돌아봤습니다. 신학을 마치고 목사가 된 후에, 북한 선교를 구체적으로 하지 않던 때, 누군가 저에게 “중국과 북한에 가라”고 했던 말은 아주 오래 전 어머님에게서 듣던 말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갈 길을 알지 못했지만 어머님과의 약속 때문에 공산권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선교 현장에 가서 그곳 성도들의 신앙적 모습을 보고 저는 감격하였고 그들을 위해 아주 조그마한 일, 곧 하나님의 말씀을 배달하는 일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감격하며 성경을 배달한 지 32년째입니다.

 

“공산권 선교는 일회용이야!” 라는 말부터, “비행기타고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무슨 선교냐?” 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이 일을 중단할 수 없었던 이유는, 받아든 성경을 보석처럼 여기는 성도들의 눈물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황막하고 버려진 땅으로 알려졌던 그곳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 있음을 보았습니다. 한 권의 성경에 그들은 감격하고 감사했습니다.

 

성도들을 만나 악수할 때, 그 손에서 전해지는 기쁨을 저는 실제로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성경 배달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번역 작업은 더욱 어렵고, 은밀한 곳에서 성도들을 가르치고 일꾼으로 만드는 것은 더욱 더 힘든 일입니다. 키워진 일꾼을 현장으로 파송하는 일은 생명을 위협하는 일이 되기도 하고, 현장에서 성도들을 모아 교회를 세우는 일은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감시를 당하며 쫓겨 다니고, 투옥되어 매 맞고, 때로는 죽임을 당하고, 그 가족들을 돌봐야만 합니다.
저는 많은 일꾼들이 감옥에 갇히면서도 오히려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복음 전하는 일꾼으로 키워 파송해 교회를 세우고, 끊임없는 훈련과 기도 속에 주님을 바라보게 하는 공산권 선교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아니, 알아주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오래도록 이 사역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입니다. 저는 제가 목도한 산 증인들의 이야기를 제 가슴 속에만 묻어둘 수 없어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분들이 만난 예수. 그들이 피 흘리며 따라간 십자가의 길을 저도 따라가고 싶었고, 그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여전히 글 쓰는 일이 두렵고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이 어렵지만, 산 증인들의 이야기를 전해야만 했습니다.
어느 땐가, 하나님은 북한에 다녀온 제게 북한 주민들에게 하나님을 전하지 않았다고 크게 책망하셨습니다. 북한을 세 번 방문한 저는 한 번도 하나님의 이름과 십자가의 도를 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후, 저는 평양을 방문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와 창조주 하나님을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제게 하나님 말씀을 전해주어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주석 성경을 가져가 고기준 목사님께 전해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이 그 성경을 어떻게 사용하셨는지 알지 못했지만, 제가 해야 하는 일이라 믿으며 수천 권의 기독교 신학 서적을 배달했습니다. “당신은 왔다 가면 그만이지만, 책은 남아서 읽혀!” 라는 고기준 목사의 말 한 마디를 들었고, 그 후로도 그 일을 지속적으로 해왔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요? 북한 땅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누가 그러던가요? 그렇게 믿고 있다면 당신은 사탄의 말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북한에 성경을 배달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방송으로 말씀을 선포하고, 컴퓨터와 전화기를 이용합니다. 일꾼을 키워 보내고 그들을 통해 교회가 세워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 땅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방법을 연구하여 가르치고, 일꾼들을 키우고 후원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으신 북한 땅의 영혼들을 위해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주님께 물어봅니다. 설교하기 전에 주어진 성도들에게 무엇을 설교할까를 묻듯 북한 땅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묻고 또 물어봅니다. 하나님의 백성 된 한 사람으로, 권세를 입은 자로서 말하고 전합니다. 그래서 초청하는 곳 어디든 가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선포합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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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하나님이 기뻐하는 말씀배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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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돌선교회의 사역은 무엇인가요?
한 마디로 “하나님 말씀 배달”입니다.
성경을 현지인들의 언어로 번역하고, 그 성경을 현지인들에게 배달하고 가르치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언어로 방송하고, 그 말씀을 통해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이들을 위해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처음 시작부터 지금까지 선교회 운영에 필요한 비용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도록 의지하고, 저희는 사역만 감당해 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모든 사역을 감당함에 있어 하나님만 의지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이 채우셨고, 공급하셨고, 일하게 하셨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채우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 아뢰고 기다려야 합니다.
모퉁이돌선교회는 하나님 말씀을 배달하는 중심의 선교회입니다
“비행기 표가 아주 비싼데도 가실 거예요?” 라고 묻는 여행사가 있었습니다. 관광이 목적이라면 당연히 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지역의 젊은이들을 위해 “꼭 와서 ‘하나님이 오늘날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설교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라면 가야 합니다.
30년 전의 일입니다. 24시간이나 걸려서 찾아간 스페인의 한 섬에 250명이 모이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처음 두 번만 해 달라던 설교는 열한 번으로 늘었고, 12,500달러나 되는 헌금이 제 손에 쥐어졌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열매’는 그 헌금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모인 성도들 가운데 한 사람이 선교사가 된 것이 저의 ‘열매’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 교회에서 만난 한인들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다른 친구들에게 알려서, 저를 호주로, 미국 뉴욕으로 말씀을 전하도록 했습니다.

 

최근에 7~8명 정도 모이는 교회에서 북한 선교에 대해 전해달라는 초청이 왔습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7시간 동안을 운전해 가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문제는 다른 지역을 방문하고 가야 했기에 대단히 먼 거리였습니다.
그 모임에 교회의 성도가 아닌 한 분이 찾아오셔서 헌금을 하셨습니다. 저를 꽤 싫어하신다고 제 아내에게 말하고는, 불쑥 수표를 써서 주시고 가셨습니다. 20,000 달러였습니다. 저는 그 분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분은 과거에도 중국과 북한에 성경을 배달해 달라면서 헌금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번에도 성경을 배달하라며 헌금하신 것입니다.
31년이 지나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을 동원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백성에게 배달시키고자 모퉁이돌선교회를 통해 일하고 계심을 보았습니다. 모퉁이돌선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금을 위한 기관이 아닌 하나님을 영화롭고 기쁘시게 하려는 이들의 모임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없어도 성경은 배달되는데, 왜 우리에게 이런 기회를 주셨을까요? 성경은 모퉁이돌선교회나 일꾼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직접 배달하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불러내서 일하게 하십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복 주시려고, 우리를 불러내셔서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모퉁이돌선교회가 하나님의 말씀 배달에 관심을 갖고, 기도하고, 동참하고, 후원하는 일 자체가 축복입니다. 이 일은 채워져야 할 이방인의 숫자를 늘려가는 것이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과 지경을 확장하는 일입니다.

 

성경 배달에 관심을 가질 분들을 찾습니다.
구제는 복음과 상관없는 분들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배달은 하나님과 복음에 믿음을 가진 사람들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여러분은 복음을 받아들였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나라에 관심을 가지셔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지경을 넓히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국경을 초월합니다. 우리는 흑인이나 유대인이나 백인이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는 일꾼들입니다.
북한에 하나님의 백성이 있고, 중국에도, 심지어 일본에도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그들이 고난 당할 때 같이 아파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같은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늘 나라의 시민들이기 때문입니다.
2017년을 하나님 나라 형제들과 기쁨을 나누기 원하면서 시작합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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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차라리 죽는 것이 더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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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 갇힌 성도가 자신이 살아 나가기 위해 다른 지하 성도 한 사람을 고자질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살아남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일이 악화되었습니다. 도리어 고자질한 사람이 억류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병색이 짙어져 추방당했습니다. 대신 감옥에서 고자질 당한 사람을 몰래 도왔던 사람들이 얼마 후에 석방되었습니다.
그것으로 끝났다면 좋았겠지요. 그러나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다른 지하성도를 고자질한 그는 자신이 고발한 성도가 석방되자 또 다른 지하성도들 가정의 정보를 모두 털어놓았습니다. 아마 그렇게 다 털어놓았기에 석방되었을 것입니다.

 

오늘 북한 지하성도들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 성도를 1989년에 만났습니다. 숨죽이면서라도 살아있던 그 분과 가족은 감옥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십일조를 마음대로 하는 그 날을 기다리던, 자유롭기를 기다리던 그는 이제 수용소에 갇혀 온 가족과 함께 무참히 고문을 당할 것입니다.
어젯밤에 이 소식을 전해준 이도 저 먼 땅에서 소리 내어 울고 있었습니다. 야고보를 죽인 후 유대인들이 좋아하는 걸 보고, 베드로도 죽이려 했던 헤롯의 이야기가 오늘의 북한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우리는 무심한 태도로 듣고 있지는 않은가요?

 

1983년, 저는 중국 가정교회가 걸어온 아픔의 길을 보았습니다. 저는 기도하는 그들의 손에 떨어지던 눈물을 보았습니다. 북한성도의 아픔은 그보다 더 큼에도 우리는 남의 일처럼 바라만 보았습니다. 70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금식도 하는데 뭐…”라며 뒤돌아서서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성도들에게 쌀이나 주는 것으로 대단한 일을 하는 양 의기양양한 태도를 보이곤 합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주님은 그 백성들을 보고 민망히 여기셨건만, 우리는 미안해하지도 않았습니다. 굶주림에 죽어간 350만 명은 부르짖고 있었습니다. 아니 지금 그 가정이 예수의 이름 때문에 끌려가 채찍질을 당하는데, 저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병든 북한의 그 무리들과 밟히고 있는 백성들 그리고 지하 성도들이 있습니다.

 

“하나니~임…
저들을 정녕 버리려 하시나이까?
저 땅을 버리려 하십니까?
말씀하셨잖아요. ‘나는 그 땅을 포기하지 않았다!’라고, ‘그 땅에 내 백성이 살아 있다!’고 하셨잖아요.
제가 잘 못 들었나요? 아니면 하나님이 이제라도 포기하려 하시나이까?
하나님. 차라리 저를 버리십시오.”

 

저는 모세의 마음으로 바울의 심정으로 주님께 아룁니다.
차라리 저를 버리고라도 저들을 살려달라고… 저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이 그 곳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셨다며 그 땅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북한을 떠났다가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다시 돌아가는 저들,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으신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 저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저들의 원하는바 용서와 은혜의 소리를 그들에게 듣게 하사 예배할 날을 허락해 주옵소서. 그들은 이 추운 겨울에 이불도 가져갈 수 있도록 허락받지 못하고 끌려갔습니다. 여덟 살 아홉 살 난 딸들과 함께 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목 놓아 울어도 소용없는 저들, 차라리 죽음이 더 행복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발로 걷어차는 악한 자들의 채찍질과 저주스러운 욕지거리, 모욕과 학대…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는 당신이 택한 백성의 아픔을 어찌하시렵니까?
성도들로 찬양케 하옵소서. 저들이 부르짖을 때 하나님 들으소서. 엘리야의 하나님.

 

하나님. 종의 기도를 지금까지 들어오심을 인해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오늘 그렇게 고통스럽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성도들을 기억하사 저들을 놓아주옵소서. 아니 하나님 그 땅을 포기하지 마옵소서.
이제 여호와께서 모세의 손이 내려지지 않음을 아시듯 북녘 땅의 그리고 남녘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을 기억하옵소서.
이제 일어나 행하시옵소서. 한 사람의 기도를 기억하옵소서.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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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저 북녘 땅에 또 겨울이 다가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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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만 두 살 때 저는 고향 땅을 떠나 서울의 냉천동에 살았습니다. 그리고 1950년에는 부친께서 삽교로 파송을 받았고, 부활절을 지낸 후 곧 6·25의 피난길에 오릅니다. 짐 보따리에 돈을 싸가지고 고향을 떠났지만 소련군이 운영하는 수용소에서 모든 것을 빼앗겼고 그 밤에 다시 남한으로 넘어와야 했습니다. 그날부터 우리 가족은 거지의 삶을 살아야했습니다. 부친과 모친이 신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저는 집에서 하루 종일 울었다고 합니다. 목사 가정이 피난길에 어디서 무슨 도움을 받았겠습니까? 대여섯 살 때쯤, 제주도 성산포에 갔는데 그 당시 저는 피난민이자 거지였을 뿐입니다. 그래도 누군가가 저를 위해 쌀과 보리밥, 강냉이 죽을 공급해주었습니다. 옷은 몸에 걸치는 것 하나뿐이었고, 수용소였던 학교가 집이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전쟁이 끝나고 삽교로 돌아와 논산으로 교회를 옮겼습니다. 논산에 계신 외조부 목사님이 연약한 모친의 모습을 안쓰럽게 여겨 딸을 돌보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당시 한국 땅은 거지와 문둥병자, 상이군인으로 가득했습니다. 강경에서 부친이 목회를 하시는 동안 누군가가 자전거를 보내 주기도 했고, 양 젖을 먹이라고 양을 보내 주기도 했습니다. 가끔 보내온 옷 주머니 속에 장난감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마칠 때 부친은 서울로 파송되었고, 가는 곳마다 미국인 선교사들이 우리 집을 드나들었습니다. 모친은 그분들을 정성스럽게 대접했고, 그분들이 올 때마다 밀가루와 쌀을 가져와 교회의 성도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었습니다.
모두들 가난해서 그랬을까요? 아니요. 교회와 목사 가정인 우리는 누군가에게 나눠주는 역할을 해야만 했습니다. 우리도 어렵고 힘들었지만 찾아오는 거지들을 먹여야 했습니다. 심지어 모친은 피를 팔아 그 돈으로 거지들 먹일 쌀을 구입했습니다. 교회의 성도들은 볏짚으로 싸서 판매하는 계란을 두 줄 사서 한 줄은 목사 사택인 저의 집에 놓고 가기도 했습니다. 닭을 두세 마리 사서 한 마리는 사택에 놓고 가고, 가끔 쌀가마니가 문 앞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국회 부의장이었던 황성수 박사님은 연말이면 쌀과 사과 상자를 보내시곤 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모친은 8월과 12월이면 저를 꼭 산에 보내어 기도와 성경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중에 잊혀지지 않는 말씀이 예수님이 “민망히 여기사…”라던 오병이어 사건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너도 주님처럼 저들을 민망히 여겨… 먹이고 입힐 때가 올게다!” 라고 하셨습니다. 여전히 우리 가족은 가난했고 쌀독을 박박 긁어야 했습니다. 거지들에게는 정성스런 음식을 준비해서 나누셨지만, 우리 가족은 항상 배가 고팠습니다. 그러나 모친께서는 “그들이 먼저다”라고 한 마디 하시고는, 음식을 준비해서 먹여 보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잊지 않으시고 하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고향은 어떻게 지내는지…” 황해도 장연에서 태어나신 모친은 부농인 지주의 딸이었지만, 이 말을 하실 때는 가난한 교회 목사의 아내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나눠 주어야 했습니다. 먹여야 했습니다.

 

미국 시민권이 있으면 북한에 가서 전도할 수 있다며 저를 다독이시던 어머님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셨지만, 저에게는 22년 동안 어머니께서 남겨준 예수 중심의 삶이 있었습니다. 예수의 삶을 배워 가도록 가르치셨습니다. 나누어 주도록 가르치셨습니다. 그 후 기적적인 방법으로 미국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이민생활에 군대생활과 사회생활까지 시작한 저에게는 돌보아야 할 동생들이 있었고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워야 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신학을 하고, 목사로서 공산권 선교를 하게 되는 중에도 누군가가 저를 돌봐주었습니다. 선교기관들도 있었고 훌륭한 영적 선배들이 있었습니다.

 

1983년에 순전히 선교 정탐 여행으로 중국으로 들어갔습니다. 제 눈에 보인 중국은 거지 나라였습니다. 홍콩의 뒷골목부터 시작해서 동북 삼성의 도시와 시골 곳곳마다 거지와 배급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넘쳤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그들을 도울 능력이 없었습니다. 다만 성경 한 권을 전해주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 기간은 한국경제와 미국한인교회의 수준이 발전되고 있던 시기로 누군가가 제 손에
“그들을 위한 선교에 써달라”며 맡기는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성경을 배달했습니다. 몇십 년 동안 성경 없이, 말씀을 들을 기회도 없이, 교회도 없어 혼자 울던 그 성도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가지고 있던 모든 부동산을 다 팔아서 성경을 사고, 배달을 해야 했습니다. 한국 교회는 공산권 선교에 부정적이었고 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때였기에, 한 두 가방부터 시작해 조금 더 조금 더 배달한 것이 모퉁이돌선교회의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성경학교, 신학교, 목회자 양성, 교회개척으로 이어져 갔습니다. 저는 돈이 주어져 있지 않았고 가져다 주어야 했기에 성경을 보급하는 일에 전적으로 매달렸습니다. 구제는 다른 분들이 조금씩이라도 하는 것을 보았기에, 성경배달에만 집중하면서 주머니를 털어 그들의 필요도 채워야 했습니다.

 

2002년 1월 1일 새벽이었습니다. 꿈을 꾸었습니다. 감옥에 갇혀 덜덜 떨며 제 옷을 달라고 하시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 꿈을 꾼 날, 제 가슴은 감당할 수 없는 아픔으로 이제는 구제를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경 배달을 지속할 것이지만, 조금씩이라도 구제 사역까지 확대시켜야 했습니다. 그 일은 주님이 제게 주신 것으로, 아니 모퉁이돌의 동역자들에게 주신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모친이 세상을 떠나신 후 우리는 정말 어려운 생활을 했습니다. 빈손으로 시장에 가면 아주머니들이 시장 바닥에서 이것저것을 집어주시고, 외상으로 쌀과 먹거리를 주시던 그 손길을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손길이 있었기에 지금 제가 살아 있습니다. 그런 손길이 있었기에 미국에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 손길이 있었기에 선교를 시작하게 됐고, 그런 손길이 있었기에 성경을 배달했습니다. 그런 손길이 있었기에 북한에 교회를 세우고 지도자를 먹이고 입힐 수 있었습니다. 그런 손길이 있었기에 의약품을 보낼 수가 있었습니다.
여행을 떠나는 날 공항에서, 주님이 누군가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제게 오십만 원을 쥐어 줄 때, 저는 그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누군가의 손길이 오늘도 있다는 말입니다. 저 북녘 땅에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350만 명이 굶어 죽어갈 때 저와 여러분은 누군가의 손길이 되었습니까? 오늘 북한 땅에서 영양실조로 굶어가며 도둑질로 생명을 유지해야 하는 저들에게, 누군가가 되어 도움을 줄 수는 없을까요?

 

“엄마! 저 사람들은 여전히 거지야… 언제까지 우리가 도와주어야 해?”라고 저는 모친에게 물었습니다. 모친은 “그들이 여전히 거지로 남아 있는 것은 그들 자신의 일이지만, 너와 나의 일은 그들을 민망히 여겨서 돌보아 주는 거야!”라고 답했습니다.

 

우리가 민망히 여기는 누군가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저 북녘 땅에 또 겨울이 다가오는데… 성탄절이 가까워 오는데… 장갑 하나, 털모자 하나, 양말 하나, 따뜻한 밥 한 끼… 나눠줄 누군가 말입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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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그냥 거기에 머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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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설교를 듣고 25년이나 교회를 떠났던 한 분이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제게 어떻게 글을 쓰고 설교를 준비하는지 묻고는 합니다.
사실 저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글을 쓰면서 늘 울고는 합니다.
북한이면 북한, 중국이면 중국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그 때의 상황을 기억하고,
그러한 상황에서의 아픔과 눈물을 그대로 옮겨 놓을 뿐입니다.
놀라운 것은 성경을 읽으며 그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하나님이 돕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습니다. 구약을 읽던 신약을 읽고 있던 상관없이 늘 그렇게 인도됩니다.
소선지서를 읽을 때나 예언서나 시가를 읽을 때 제 마음은 그 땅에 가 있곤 합니다.
아마 그래서 저는 이스라엘 방문하는 것을 기뻐하는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지금 이스라엘에 머무는 순간에도 저는 수 백 년, 수 천 년 전의 모습을 그려냅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저는 성경을 더 많이 읽어야 하고 참고 서적을 늘 가까이 합니다.
그것뿐입니다.

 

오늘도 ‘광야의 소리’ 방송예배 설교를 위해 말씀을 읽다 그만 엉엉 울어야 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그 당시의 상황이 제 가슴속에 그려질 수가 있는지…
하나님의 은혜일 뿐입니다.

 

말씀 한 줄 한 줄 속에 숨겨진 상황을 찾아내며 너무 감사해서 웁니다.
그 눈물이 설교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설교를 어떻게 준비하느냐구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 말씀이 쓰인 배경을 눈여겨보십시오.
그리고 찾아가 보십시오.
애굽, 이스라엘, 소아시아, 데살로니가 어디든 찾아가십시오.
그리고 거기에 그냥 머무십시오.
그 곳에서 하나님의 종들이 부르짖던 그 음성을 들으십시오.
그리고 오늘 하나님이 당신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리고 말하십시오. 전하십시오. 선포하십시오. 축복하십시오.
그리고 함께 눈물을 흘리며 우십시오.

무익한 종이삭목사님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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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어린이사역을 차근차근 준비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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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말씀을 전하기 위해 두려움과 경외함으로 강단에 오르곤 합니다. 매번 설교하는 대상이 다릅니다. 유치원생부터 중·고등부 학생들 그리고 대학생들과 새로운 청년들이 있습니다. 연세 드신 분들도 있고, 여자분들 중심의 모임도 있으며, 남자들만의 모임도 있습니다. 교육의 정도가 다르고, 신앙의 연조에 따라, 교단과 지역마다 말씀을 듣고 받아드리는 자세도 다릅니다. 서울의 강남, 강북, 강서, 강동이 다르고, 경기도와 제주도가 다르고, 미국의 서부와 동부가 다르고, 캐나다. 일본이 다릅니다.
이렇게 각양각색의 다른 대상에게 말씀을 전하려니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러기에 강단에 오를 때 두려움이 앞섭니다. 하나님 앞에 경외함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이들을 설득시킬 수 없다는 두려움이 앞섭니다. 이렇게 31년을 설교와 선교보고를 해왔습니다.

 

저는 신학자도 아니고, 목회자나 설교가도 아닙니다. 저는 다만 선교현장에서 일어난 일을 보고하는 것 뿐입니다. 고난 받는 성도들의 이야기와 아픔을 보았고 그것을 전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글로 옮겼습니다. 그로 인해 오해를 받았고 의심 많은 사람들의 공격도 있었습니다. 현지성도들과 사역의 보호를 위해 설명이 부족해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오늘도 저는 두려움으로 강단에 오릅니다.
듣는 아이들이 있고, 젊은이들이 있으며, 헌신하는 어른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바로 그들이 있는 한 이 땅은 소망이 있습니다. 얼마 전 초등학생들 900명이 모인 곳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아이들이 말씀을 들으며 ‘아멘’으로 화답했습니다. 그들을 가르치는 기관이나 교사 혹은 교역자들이 엄청난 복을 누릴 날이 올 것입니다. 그 어린 생명들이 이 나라의 주어진 일꾼들입니다. 초롱초롱 눈빛을 반짝이며 말씀에 반응하는 초등학생들이 이 민족의 소망임을 보았습니다.
저는 일곱 살에 헌신했고 지금까지 그 헌신을 지키려고 발버둥 치며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북한에 가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공산당원 몇몇과 군인들 몇몇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니 일곱 살이 어리다고만 윽박지르지 마십시오. 그들이 곧 17살이 되고, 27살이 될 것입니다. 그중에서 목사와 선교사도 나올 것입니다. 국회의원도 대통령도 기대하고, 과학자와 기업인도 나올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 준비하고 재정적인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22살에 미국으로 이민 가서 생활하는 과정에도 일곱 살에 했던 어머니와의 약속을 잊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북한, 중국, 몽골, 소련으로 가야 했습니다.

 

오늘 저는 네팔의 한 청년을 만났습니다.
그 청년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키워 네팔을 변화시키고 싶어졌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는 미국 내에 조그마한 훈련원을 세우길 기도합니다. 함께 먹고 머물면서 네팔의 복음화를 위해 공부할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오래전 한국 땅에 왔던 선교사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한국 땅을 사랑해 복음을 전하다 이 땅에 묻혔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헌신으로 인해 복을 받은 이들입니다.
북한 땅을 위해 젊은이들과 어린이들을 키울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모퉁이돌선교회는 이미 어린이 사역을 차근차근 준비해 왔습니다.

 

깨끗한 종이 위에 하나님이 그리는 그림이 되어갈 어린이들을 위해, 이 땅의 복음화를 위해 저와 여러분은 무슨 일을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 이 어린 생명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물으십시오.
주님이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입을 크게 열어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채우시는데 주저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무익한 종이삭목사님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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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그렇게 31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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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는 재정적인 어려움을 하소연할 대상이 없었기에 주님께 아뢰었습니다.
성경을 어떻게 배달할지를 몰라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직접 대답하지 않으시고 경험 있는 이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성경을 보내라고 헌금하는 이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제게는 신학교를 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할 수 있는 분들을 붙여주셨습니다.
무식한 제가 성경을 어떻게 번역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준비된 일꾼들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중국어주석과 북한어성경이 번역되었습니다.
설교하라는 요청이 오면 가서 하나님께서 마음에 주시는 대로 설교했을 뿐입니다. 저는 말을 잘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말에 어눌한 사람입니다.
강의하라고 하면 강의를 했습니다.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고 그저 순종했을 뿐입니다.
글을 써달라고 하면 기도하고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그것 뿐입니다.

 

북한에 지하교회를 개척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개척했을 뿐입니다.
평양에 들어가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번 두번 그리고는 밀수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아군들에게 전달했을 뿐입니다.
가서 보니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었고 기도하게 하신 하나님이 방법도 주셨습니다.
사고도 있었고, 다치기도 했고, 배신도 당했습니다.
손해 본 일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세상 일이 다 그런 것 아니던가요?
저만 아무런 일이 없으라는 법이 없잖아요?
“아이구~ 목사님 댁의 지붕이 그렇게 되었다니…
하나님도 참…”이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저희 집에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하는 건가요?
세상만사가 그런 것일 뿐입니다.
제가 고문당하러 끌려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누구는 당하고 저는 당하지 말라는 법이 있나요?
바울도 고난과 핍박을 당했습니다.
그러니 저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렇게 31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이 이끌어 오셨고 저는 그 분이 이끄시는 대로 살았습니다.
모퉁이돌을 뿌리째 뽑아 버리겠다고 하던 분도 있었습니다. 저는 허허 웃었습니다. 뽑혀야 한다면 뽑혀야지…
하나님이 남아 있게 하시면 남아 있겠지…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살아왔습니다.
아이디어가 있어야 살아남는 게 아닙니다.
순종하면 아버지가 기뻐하십니다.
저는 그것 밖에 모릅니다.

무익한 종이삭목사님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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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그리스도의 군인이 가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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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서 돌아와 몇 시간 되지 않았습니다.
새로 구입해준 차량을 타고 지방에 내려가 세 시간 강의하고 돌아왔습니다. 차량구입을 위해 기도하며 후원하신 여러분께 고마운 마음입니다.
이스라엘에 함께 동행해준 여러분과 또 힘써 이스라엘 현지에 사역하는 이들을 위해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일일이 보내주고 또 운반해준 순례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정말 사랑으로 이 일을 위해 수고해 주시고 재정으로 또 시간을 내어 손수 만들어 준 선물을 대하는 이스라엘 현지의 일꾼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고마워하는 소식을 전해 듣고,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도 확인했습니다.
또 예루살렘에 필요한 이것 저것을 전해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현지 선교센터에서 실시하는 에디오피아 유대인들을 위한 언어와 기술교육, 그리고 현지선교사 사모들과 자녀들을 위한 히브리어와 영어 등의 언어교육을 실시하는데 필요한 것들이 많다는 말을 듣고 떠나 왔습니다.

 

금요일 오후에 서울에 도착한 셈입니다.
그리고 하루가 되지 않아 차량으로 몇 시간 가야 하는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돌아오니 밤 11시 반 가까웠습니다.
이 늦은 밤에 중국에서 급한 연락이 왔습니다.
중국의 조선족 한 형제를 북한에서 강을 건너온 사람들이 때려죽이고 시체를 버려둔 채 소지품 모두를 가져갔다는 것입니다.
시신의 얼굴이 많이 훼손된 모양입니다.
전화가 온 것은 밤 11시 30분이었습니다.

 

이제 마흔 아홉.
그는 그렇게 고통 없는 영원한 하늘나라에 순교의 길을 갔습니다.
감시할 사람도 없습니다.
괴롭힐 사람도 없습니다.
눈치 볼 사람도 없습니다.
그는 더 이상 육체적인 고통 없이 주님과 영원히 함께 합니다. 찬양하면서…
우리는 그의 흘린 피로 인해 많은 영혼이 주님 앞에 돌아오도록 기도할 뿐입니다.
순교한 형제에게는 아내와 아들과 어린 딸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나라에 병사일 뿐입니다.
말없이 주어진 일을 진행할 뿐입니다.
이스라엘 일을, 터키와 이집트의 일을,
이란과 이라크의 일을, 중국의 사역을,
북한의 또 다른 곳에서 진행되는 일들을 위해 갈 뿐입니다.
이것이 제가 배운 그리스도의 군인이 가는 길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리 할 것입니다.

 

무익한 종 이삭목사님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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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북한지하교회 모습입니다!

06_2016catacomb_IS눈을 뜬 채 소리 내지 않고 기도해야 했습니다.
그의 중얼거림은 분명히 찬송이었고 무엇인가 외우고 있었습니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혼자만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주여!’라고 불렀습니다. 성경은 가져본 일이 없습니다. 고정된 주파수를 맞춘 라디오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무엇인가 속으로만 웅얼거리는 할아버지의 소리를 늙은이의 노망소리로만 생각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상상해 본 일이 있습니까?
어쩌다 땅 바닥에 십자가를 그리고는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강변에 사는 친척집에 쌀을 얻으려고 떠났습니다. 그 곳에서 할머니는 강 건너편에 보이는 빨간 십자가를 가슴에 품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주일 아침마다 십자가를 마음에 그리며 혼자만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집으로 돌아간 할머니는 병이 들었습니다. 마음의 병입니다. 겨우 자리에서 일어난 할머니는 며느리에게 생명을 건 부탁을 했습니다. 며느리는 할머니의 부탁에 주변을 살피며 한마디를 했습니다.
“이제 말씀하시는 군요. 저의 집안은 대대로 예수쟁이야요…” 며느리의 말에 시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랬었구나 왠지 다르더라만…”라고 했습니다.

 

평양에 사는 아주머니는 언니를 보러 만주에 왔다 돌아가는 길에 본회 사역자를 만나 복음을 전해 듣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리고는 언니에게 전화를 해서 “나 공부하고 있다.”는 한 마디를 남기고 평양으로 돌아갔습니다. 성경공부를 공부로 말한 것입니다. 그렇게 모여진 사람들은 중국에 갔다 돌아 온 이의 선물을 받으러 모여듭니다. 아니 예수쟁이들의 손에 들려진 것은 찢어진 선물 포장입니다. 그 포장지는 성경을 한 장 두 장씩 찢어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그렇게 고백했을 때 로마시대만을 생각했던 저는 실제로 그 말씀이 북한에서도 일어남을 확인했습니다.

 

북한의 지하교회. 그 교회엔 피아노나 키보드 그리고 드럼도 없습니다. 아니 의자나 강대상도 없습니다. 물론 목사도 없습니다. 건물도 없이 만났다 헤어지고 헤어졌다 만납니다. 북한의 지하교회는 그렇게 흔적 없이 존재합니다. 화장실에 매 주간 갖다 놓은 종이쪽지도 성경 말씀이었습니다. 모이는 곳이 헛간일 수도 창고일 수도 있습니다. 지하에 들어가서 모이기도 하지만 그곳 또한 언제 만날지 모르는 예배당입니다. 복음방송과 입소문이 그들에게 유일한 말씀의 전달자가 될 뿐입니다.

 

지난 몇 십 년을 성경이 없어 방송에 의지해 하나님 말씀을 되새기고는 했습니다. 목사나 선교사 없이 살아온 70년대 초기에는 그래도 예수님을 아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중국이 유일한 복음의 전파자 역할을 감당해 주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땅바닥에 그리다 그만 깜짝 놀라 주위를 살피는 성도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소련영화의 한 장면에서 십자가를 보며 가슴이 쿵쾅거려 혼났다는 성도도 있습니다. 그 보다 시장에서 얻어 온 영화가 나사렛 예수였음을 알고 소리 내지 못하고 숨 죽이며 울었습니다. 한 두 명이 모인 지하교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27명이 모이는 곳도 있습니다. 숲 속에도 땅굴 속에도 있습니다.
오늘의 북한지하교회 모습입니다.

무익한 종이삭목사님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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