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자 편지] 거저 받은 것을 거저 주었을 뿐 입니다

동역자 여러분께!

 

오랫동안 믿음을 지켜온 시골의 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성경 한 권을 얻기 위해 기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노인의 기도에 귀 기울이셨고, 그의 손에 성경을 전하기 위해 모퉁이돌선교회를 준비시키셨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아서 보낸 헌금을 통해 성경이 번역되었습니다. 번역된 성경이 또 다른 사람의 손길에 의해 출판되고 배달되어 강을 건너고 산을 넘어 비행기와 버스를 타고 먼 산골짜기를 따라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노인의 손에 성경이 들려졌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관심사입니다. 저도 사역을 하고 나서야 ‘하나님의 관심사가 이것이구나!’ 깨닫고는 감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는 한 사람의 기도에 응답하시기 위해 여러분과 저를 불러 내셨습니다.
마가복음 10장 21절에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만, 젊은이는 재물이 많아 슬픈 기색을 하고 근심하며 떠났습니다. 여러분에게 있는 지혜, 건강, 재물, 시간 모두가 하나님의 것인데 그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하신다면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우리에게 있는 조그마한 것으로 한 영혼이 구원에 이른다면, 시골 할아버지의 기도를 이루시기 위해 당신을 부르셨다면, 며칠 동안의 여행으로 성경을 배달케 하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잠깐의 방송을 듣고 구원받게 될 한 영혼을 위해 기도할 수 있고, 메시지를 전달할 소형 컴퓨터와 작은 라디오 혹은 전화기를 구입하여 배달할 수 있고, USB 하나를 보내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다양한 분야를 통해 세워집니다. 예배당 하나를 세우는데 시멘트가 필요하고 벽돌이 필요하며 못도 있어야 합니다.

 

저는 14년, 19년, 23년 이상 감옥에서 기도한 어른들을 만났습니다. 지금도 가택연금 당하고 있는 형제가 있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감사를 표할 때마다 오히려 제 머리가 숙여집니다.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저를 훈련시키셔서 보내신 곳이 공산권선교 현장이었을 뿐이니, 제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고마움은 하나님께 전해야 합니다.

 

저는 부족함이 많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저를 공산권에 보내셨습니다. 성경을 배달하라고 하셨습니다. 한 권이 열 권이 되고, 열 권이 백 권, 천 권, 만 권이 되었습니다. 성경을 받은 분들은 수년 혹은 수십 년 간 한 권의 성경을 얻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들이 성경을 받아 들었을 때 감격하는 모습이 저로 하여금 계속해서 성경을 배달하게 했습니다. 재정이나 지식도 부족했지만 하나님 앞에 순종하며 ‘거저 받은 것을 거저 주었을 뿐’ 입니다. 여러분들의 순종과 헌신이 어우러지고 헌금이 모아져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손에 성경이 들려지고, 그들에게 방송을 보내고 그들을 가르치게 된 것뿐입니다.

 

평양에 모퉁이돌 예배당을 짓고 싶습니다.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말씀만을 가르치며, 성도들의 헌금이 선교사역을 위해서만 쓰는 예배당을 꿈꿉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모아 예루살렘으로 가서 예루살렘에서 예배하는 꿈을 꿉니다. 제가 중국으로 첫 발을 내디뎠을 때 준비되었던 것은 미국 시민권뿐이었습니다. 미국시민권을 가지고 중국, 몽골, 소련, 그리고 북한으로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향해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주려느냐?”고 물으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준비되어야 합니다.

2017년 6월 14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SNS로 공유하기:

[동역자편지] 성경 없이 지내는 이들에게 성경을 배달했을뿐입니다.

1983년, 제 중국으로의 첫 방문지가 홍콩이었습니다. 2년 후 모퉁이돌이 시작된 1985년부터 1997년까지 홍콩은 성경배달을 위한 기지가 됐습니다. 비자가 필요 없기에 서울에서 준비한 성경 등을 가지고 홍콩으로 갔습니다. 당시엔 중국으로 직접 들어갈 수 없어서 사람들과 성경을 모아 홍콩에 가서 비행기 표와 비자를 받아 중국에 가곤 했습니다. 저는 일꾼들과 함께 성경을 가지고 전쟁터인 중국으로 들어가곤 했습니다. 그렇게 일한 곳이 바로 홍콩이었습니다.

 

당시 홍콩에 도착한 저희 일행은 말이 통하지 않아 버스를 타는 일도 할 줄 몰랐습니다. 숙소가 공항에서 가까웠기에 택시를 타고 내리는 일만 겨우 해야 했고 가슴을 졸이며 중국으로 향했습니다. 싸움터로 향한 길의 출발지였습니다. 국제공항에서 국내선으로 바꿔 타고, 또다시 온 밤을 기차 타고 아침에 현장에 도착하면 하룻밤 호텔 비용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성경을 배달하고 곧바로 기차나 비행기로 국제공항인 북경을 거쳐 홍콩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홍콩만 아니라 북경도 잘 모릅니다. 저와 일행은 관광객이 아닙니다. 관광객처럼 행동할 뿐이었던 우리는 지금까지 그리스도의 병사요 일꾼으로 살아왔습니다. 성경배달을 무사히 마치고 홍콩으로 돌아와서 홀가분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먹는 음식은 최고의 맛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몇 년 후 한국에서 중국에 직접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저희는 홍콩을 들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성경배달은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홍콩에서 배달 일꾼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길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도 홍콩을 잘 모릅니다. 기독교 서점과 만나는 다른 선교 기관의 간사 사무실이 저희가 아는 전부입니다. 식사를 할 수 있는 곳도 걸어갈 수 있는 가까운 음식점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중국 식당 메뉴엔 사진이 없었습니다. 옆에 앉은 이들이 주문한 음식을 보고 손가락질을 하며 주문했습니다. 사역을 마치고 홍콩을 떠나올 때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다는 기쁨과 성경을 안전하게 배달했다는 감격이 컸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경비가 부족해 성경을 더 많이 가져오지 못한 아픔을 안고 서울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성도들의 초청에 응하고는 바로 미국으로 돌아가 안전을 위해 또 여권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성경이 준비되기를 위해 누워 있을 때나 앉아있거나, 소리를 내기도 하고 중얼거리며 기도했습니다. 1985년부터 매년 적게는 8회, 많으면 12회 태평양을 건너 다니며 만나는 이들과 성경 없이 몇십 년씩 살아간 성도들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고난 중에 믿음을 지킨 성도들의 이야기를 듣는 이들이 제 손에 헌금을 쥐어주고는 했습니다. 그 이야기가 이 사람에서 저 사람에게로,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전해진 것이 모퉁이돌선교회의 회원들이 되어 기도해 주었습니다. 카타콤 소식지는 그런 분들의 요구를 채워주려고 만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이들의 손에 쥐어진 헌금들이 모아지고, 성경을 보내달라며 눈물 어린 헌금을 맡기고 돌아가는 성도들이 오늘까지 이어집니다. 모퉁이돌선교회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가는 곳에서 “저도 모퉁이돌이에요”하고 악수하고 안아주기를 32년째입니다. 성경만 가져다 주면 어떻게 하느냐기에 강의할 수 있는 목사님들께 부탁하여 신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했고, 북한 형제들을 가르쳐야 했고 교회를 세워야 했을 뿐입니다.
성경 없이 지내는 이들에게 성경을 가져다 주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열 번이 되었습니다. 열 번이 백 번이 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이렇게 성경을 배달합니다. 한 명이 두 명이 되고, 두 명이 다섯 명이 되고 열 명, 백 명이 되었습니다. 그 후로 지하교회가 세워지기 시작했고, 설교를 들었던 젊은이들이 목사가 되고 선교사가 되더니 중국으로, 소련으로, 중동으로, 남미로 나가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하루하루 순종하며 살았을 뿐이고 떠밀려서 오늘까지 왔습니다. 하루는 “중국어 성경은 구할 수 없나요?”라고 묻는 조선족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때까지 조선족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자녀들에게 중국어 성경이 필요하고, 그 지역에 있는 한족들에게도 성경이 필요한 것을 생각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홍콩의 한 선교부에 물었더니 뜻밖에도 그분들이 중국어 성경이 필요한 만큼 얼마든지 공급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성경을 배달하려는 마음을 기쁘게 여겨 주었습니다. 주어진 백 권의 성경이 천 권으로, 만 권이 십만 권으로 수백만 권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러다가 물고기를 잡아주어 먹게 하는 방법도 좋지만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치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지도자들을 위해 중국어 주석성경을 번역해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어 주석성경을 받아든 중국 교회 지도자들은 얼마나 고마워하고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북한에 올바른 북한어 성경을 번역하여 그들의 손에 쥐어 주었을 때의 감격도 엄청났습니다.

 

이제는 북한 성도들을 위한 주석-사전이 포함된 성경을 만드는 작업과 교회 개척이 병행되고 있습니다.
저는 평양에 자유가 회복되어 진정한 의미의 교회를 세우는 일을 꿈꾸고 있습니다. 평양에서 성도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가고, 한 두 곳에 모퉁이돌선교훈련원을 세우는 꿈을 꿉니다.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다면 성경을 배달할 일꾼들과 재정적인 후원자가 필요하고, 일꾼들을 훈련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것이 꿈이지만 오늘도 저는 오늘 주어진 일을 합니다. 그러면서 같이 할 성경배달 일꾼들을 찾습니다. 배달 일꾼은 일꾼대로 할 일이 있고, 가르치는 목사는 목사로서 가르칠 수가 있고, 기도하는 이들은 기도함으로, 재정적인 후원자는 후원함으로, 어떤 기능도 다 쓸모가 있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 하나님의 나라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을 드리기를 원하시는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혹시 여러분의 시간을, 재능을, 은사를, 기도를, 헌신을 원하시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저같이 무능한 사람도 쓰실 수 있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쓰실 수 없으시겠습니까?
홍콩에서 며칠 지내면서 하나님이 저를 불러서 이곳에 오게 하시고, 성경배달 하는 이들을 만나게 하시고, 선교 지도자들을 만나게 하셨던 이유가 뭘까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늙어버린 제가 어린 시절 어머님과 했던 북한, 중국, 러시아, 몽골, 이스라엘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약속을 지키게 하시려고 이곳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1년에 한 번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메고 배달하는 복음의 당나귀가 되어 보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천국에서 만날 어느 형제나 자매가 여러분의 헌신으로 하나님의 백성 되는 기쁨을 느껴 보실 생각 없으십니까?

 

2017년 5월 15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SNS로 공유하기:

[동역자 편지] 아파도 떠날 것입니다

아파도 떠납니다.
아파도 떠나야 합니다.
아파도 떠날 것입니다.
설교를 요청한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985년 이후 지금까지, 몸에 열이 나고 기침을 하며, 코피가 쏟아지는 등의 아픈 상황에서도 설교하기 위해 초청한 교회를 찾아가 강단에 오르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후, 아픈 몸으로 차에 실려 숙소로 돌아오고는 했습니다. 그것이 제게 주어진 일이었고 요청한 분들에 대한 예의였습니다. 한번도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설교를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부족함 때문에 망설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도 부르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지, 언제라도, 한번의 설교를 위해서 경비가 많이 들어도 가야 했습니다. 한 영혼이 깨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어쩌면 바보 같은 생각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선교지에서 끌려가 고문을 당할 때, “하나님 그들을 죽이고 탈출하면 안될까요?”라고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네 차례 아니냐?”라고 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제게는 “고문당하는 그 자리가 네가 있어야 할 곳임을 모르느냐?”라고 묻는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그 후로도 육체적인 고문이 여러 번 더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픔은 육체적인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배신과 거짓말, 제 스스로 갖는 기대가 이뤄지지 않을 때 찾아 드는 아픔이 지금도 여전히 있습니다.

 

저는 20년씩 감옥에 갇혀 고문을 당한 이들이 어떻게 견딜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 감옥이 아니더라도 여러 유형의 공격을 당하게 됩니다. 부부 간의 갈등으로 사역을 그만두는 이들을 보았으며, 자녀들과의 아픔이 있는 이들도 많습니다. 자신의 성품 때문에 사역을 중단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말 실수나 행동 등으로 사역을 포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는 선교사들도 있습니다. 이런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택한 이들도 있습니다.

 

몸이 아파도 떠나야 합니다. 고통이 있어도 일어나서 움직여야 합니다. 한 영혼을 구하기 위해 보냄받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또 다시 터키와 이스라엘로 떠나야 합니다. 몸은 아파오지만 그래도 한번의 설교를 위해 가야 합니다.
가족들에게 기도를 부탁하면, 딸들은 손녀들과 함께 기도합니다. 세 살과 다섯 살 짜리 손녀도 엄마를 따라 쫑알쫑알 기도해 줍니다. 많은 기도자들이 저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런 기도 덕분에 저는 설교하러 떠날 수 있습니다. 제 몸은 이곳 저곳이 불편하지만 강단에 설 때마다 주님께서 어루만져 주시며 지난 32년을 지켜 주셨습니다. 부르는 곳마다 발걸음을 옮길 것입니다. 입을 열어 하나님의 사랑과 헌신된 주의 백성들을 소개할 것입니다. 북한의 성도들과 고난 당하는 주의 백성들을 위해 기도할 사람들을 찾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있어 북한과 중국, 이제는 아랍과 이스라엘까지 그들의 언어로 준비된 성경이 보내지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나온 백성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자 지도자들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그들을 통해 북한에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고 있습니다. 북한에 갇힌 영혼들을 위해 방송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보내지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바람이 북으로 부는 것을 이용해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진 복음풍선을 휴전선 부근에 가서 보내는 사역을 시작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기도에 동참하여 갇혀 있는 북한 성도들을 자유케 하는 사역에 함께해주십시오.

 

2017년 4월 14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SNS로 공유하기:

[동역자편지] 나는 네게 ‘증인이 되라’ 했다

어머니께서는 일곱 살이었던 저에게 북한에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여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고, 신학 공부를 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 후, 중국에 들어가고 서울에서 선교회를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1988년에 북한의 문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저는 곧 바로 북한에 들어가서 성경을 배달했습니다. 복음 전단지를 뿌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종이로 비행기를 접어 날리고, 짐 가방과 옷 속에 성경을 숨겨서 들어갔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제가 한 일에 만족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네게 ‘증인이 되라’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후 길이 막혀 더 이상 북한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북한에 들어가고자 7년을 울며 기도하던 중 마침내 1996년 북한 성도들과 접촉할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의약품을 보내주었고, 그것을 보낸 일꾼들과 북한 성도들을 만나게 되었으며, 다시 평양에 드나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비로소 저는 그들을 용서하고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두려운 마음도 있었지만, 주님은 제게 “내가 이미 용서한 그들을 네가 사랑할 수 없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증인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몇 번이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형제간의 사랑을 뛰어 넘는 신비한 하나님의 사랑이 제 마음에 쏟아 부어졌습니다.

 

그 후 저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배달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제 손에 북한 성도들에게 줄 헌금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방송 사역이 활발해지고, 성경을 배달하기 시작했습니다. 일꾼들이 모이고, 컴퓨터를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나아가 북한에 지하교회를 개척하기 위한 물밑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한편으로는 한국 내 성도들에게 기도훈련과 선교를 가르쳤습니다. 여전히 북한 땅에 들어가서 나누고, 선교사들을 들여 보냈습니다. 들키지 않고 잡히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사람들을 키우고 기도할 일꾼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지하 교회를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이렇듯 사역이 활발해지면서 북한 당국은 제게 비자를 내주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평양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고 해서, 하나님의 일이 중단되었을까요?
아닙니다. 그 후로 더 확장되었고, 여전히 확장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일꾼들이 일어나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주의 종들이 핍박을 당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그 일을 영광으로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준비한 땅에서 그들을 가르치고 안수하여 북한으로 파송하는 사역까지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럴수록 북한 성도들을 직접 만나서 위로하고, 함께 성찬식을 하고, 같이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제 안에 더욱 커져만 갑니다. 얼마 전 “언젠가 이 목사와 속 시원하게 모든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라고 하시던 중국의 한 어르신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제 북한 성도들을 보고 싶어집니다. 10년, 20년이 아닌… 70년 넘게 믿음을 지켜온 성도들을 곁에 두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지는 걸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그들이 그리워집니다.

 

북한의 지하성도들을 생각하면 바울이 편지를 쓸 때의 심정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고난 당하면서도 고난이라고 말하지 않았던 그들, 배고프면서도 ‘금식도 하는데 뭐!’ 라고 말하던 그들입니다. 나보다 더 힘들어 하는 이들에게 주라며 손에 쥐어드린 돈을 거부하던 할아버지…
모두 저의 아버지이며, 할아버지고, 형제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일꾼들입니다.
그들이 그리워 집니다. 이 애틋한 마음이 느껴지십니까?
저의 몸이 남한에 있든, 미국에 있든, 세계 어디를 가든 제 마음은 언제나 북한 성도들을 그리워합니다

 

그러하기에 저는 북한성도들이 간절히 원하는 그들의 언어로 된 성경을 배달하고,
하나님의 알기 원하는 북한성도들 가르치는 일을 멈출 수 없으며,
숨죽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성도들에게 방송으로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그 땅에 믿음을 지키는 백성들이 지하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돕고, 굶주린 백성들의 필요를 채우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합니다.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은혜 입히사 북한지하교회 성도들이 자유케 되기를 기도해 주십시오.

 

2017년 3월 15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SNS로 공유하기:

[동역자편지] “내 잔이 넘치나이다”

letter201702

일곱 살 밖에 되지 않았던 제게 어머님은 중국, 몽골, 러시아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 라고 답하기는 했지만 그 말의 의미는 몰랐습니다. 북한으로 가라고 말씀을 더 하셨지만 저는 여전 히 그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10년이라는 시간을 지나는 동안 어머님의 말씀을 조금씩 이해하기에 이르 렀습니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그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습니다. 미국에 가야 북한선교를 할 수 있다고 하신 이야기도 나누지 않았습니다. 저는 1967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1981년, 처음 동남아 여행을 했을 때도 아무에게 제가 중국선교를 해야 함을 나누지 않았습니다. 사실 목사가 된 후에도 선교에 대한 제 계 획을 누구와도 나눈 일이 없습니다. 1983년, 선교훈련을 받고도 제 뜻이나 생각을 아무에게도 나누지 않았 습니다. 그 해 저는 중국을 다녀왔지만 오랫동안 중국을 여행했던 일을 비밀로 했습니다. 그 일을 나눌 이 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저 자신에 대한 이야기들을 남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1985 년, 다시 중국을 갔지만 사실적인 내용들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했고 그들의 고통을 들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많은 경험을 했지만 저는 아무에게도 나누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실제적인 경험들은 나누지 않습니다. 이렇듯 조심하는 것은 처음 중국을 다녀와 몇 사람과 나누었던 내용 이 방송을 타고 중국으로 들어갔고, 저를 만났던 이는 모진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철저히 제 사역의 위험한 내용들을 숨겼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면 된다고 믿었고 지금도 그렇게 합니다.

 

일반적인 사진을 찍었지만 사역자들의 사진은 찍지 않았습니다. 지역과 지방 혹은 사역에 관계될 일들을 다 른 분들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오해도 받았고 미움과 질투도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은 전달되어야 했고 여전히 그 일은 진행됩니다. 저는 저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공개하고 나누는 것을 즐 겨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중국이나 북한에 들어가는 일이 제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제 가 하는 일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을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중국을 방문하는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일꾼들을 위로하는데 있습니다. 그것 뿐입니다. 저는 제게 주어진 의무만 감당하면 된다고 믿습니다. 설교와 기도, 성경연구와 동역자들을 위로하되 성경 안에서 감당할 뿐입니다.

 

저는 13년이나 걸려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고 나서야 겨우 저를 고문했던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용서하는데도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저 자신을 용서하는 데는 더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저를 괴롭힌 국내 목사님들이 많이 있습니다. 거짓말을 만들어낸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제는 아무렇지 도 않게 생각할 정도로 잊고 있습니다만 오랜 세월이 걸려서야 용서했습니다. 그 분들이 제게 용서를 빌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잊어야 했습니다. 제 마음에서 지워야 했습니다. 섭섭하기도 했지만 주님을 닮고 싶었습니다. 주님처럼 용서하고 싶었습니다.

 

일본인들과 중국인들이 미워서 침을 뱉고 싶었을 때 “내가 용서한 사람들을 너는 용서할 수 없니?”라고 주님이 물으셨습니다. 그 후에 북한에 들어갔을 때 저는 변해 있었습니다. 북한과 중국의 영혼들에게 성경 을 전해주는 동안 변한 것은 저 자신입니다.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 가시려고 32년을 선교지에 보내셔서 매 맞고, 굶주리고, 추위에 떨게 하시고, 눈길에 처박힌 차량을 끌어내며 울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못난 저를 용서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이 위대하신 분입니다. 저 같이 못난 사람을 사랑하시고, 사랑하게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내 잔이 넘치나이다”로 고백할 뿐입니다. 제게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이 크고 또 큽니다. 그래서 성경을 배달하고 기독교서적을 보급합니다. 말씀을 가르쳐 하나님의 사람들을 키웁니다. 선교사들을 훈련하여 파송하고 신학교를 배달합니다.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고 있습니다.

 

제게 부어진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북한과 중국 그리고 몽골과 러시아, 아랍과 이스라엘까지 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을 여러분 또한 전해야 하지 않을까요?

 

2017년 2월 15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SNS로 공유하기:

[동역자편지] 평양에서 예루살렘까지

노예나 종들은 일이 많아지면 싫어하지만, 신실한 종들은 일이 주어지는 것을 축복과 은혜로 받아드립니 다. 주인이 자신을 팔아버리지 않고 여전히 사용하심에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주어진 일 을 바쁘지 않게 잘 처리합니다.

 

2016년의 마지막 일꾼들의 모임을 주문도 훈련원에서 가졌습니다. 함께 모여 찬양하고 감사하며, 기도하 면서 말씀을 듣고, 사역을 보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보고를 들으며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 가 이렇게 많은 일을 하도록 하나님이 이끄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우물도 파줄 수 있게 하셨고, 석탄을 공급하도록 길을 열어주셨으며, 6,000명의 북한 어린 아이들에게 빵 을 먹일 수 있도록 도우셨고요. 김장도 하게 하셨고, 의약품과 옷가지를 보내고, 고아원의 아이들을 공부 시켜 상급 학교에 진학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하나님 말씀이 배달되도록 인도하시고 보호하셨습니다. 감시로 인해 도망 다니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일하게 하셨습니다. 북한어 성경과 만화 메시야 성경이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 및 출판되어 배달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북한에 지하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로 튼튼하게 세워지게 하셨습니다. 성경을 배달하는 중에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던 일꾼이 출소해 도리어 그 것이 훈련이었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68명의 선교사들이 13개 국의 나라, 22개 도시에서 사역하도록 이끄셨습니다.

 

미국과 국내의 기도 사역자들을 성장시켜 주셨습니다. 북한과 중국뿐 아니라 이스라엘, 파키스탄, 베트 남, 러시아, 몽골, 터키, 캄보디아, 인도, 네팔까지 사역을 감당하며 동역하고 협력할 일꾼을 보내셨습니 다. 인도하고 훈련시키신 것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의 증거일 뿐임을 알 게 하셨습니다.

 

성경 배달만이 아닌 재난 구조 훈련도 행하셨습니다. 선교사 파송을 위한 훈련과 신학교 및 현장 실습을 통한 변방 기도 훈련이 진행되도록 도우셨으며,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방송 사역도 우리말과 중국어, 아 랍어∙히브리어 방송도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지하 신학교와 평양 국제 신학교가 확장되어 가도록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감당하게 하신 이가 하나님이십니다.

 

매주 목요일 낮 12시에 모여 드리는 남북연합예배는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이니까 요. 매월 마지막 월요일에 드리는 정기 기도회를 은혜 중에 모이도록 하셨습니다. 국내와 미국, 중국, 일본 등지에서 말씀을 전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설교하기 위해 이곳 저곳으로 다니도 록 건강도 지켜 주셨습니다.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이 행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사탄의 공격이 심했음도 나누고 싶습니다. 선교사들과 간사들과 가족의 건강이 공격 당하 고 있습니다. 필요한 재정과 물품이 하나님의 시간에 공급되어야 합니다. 모든 사역을 감당하기 위한 지혜 가 필요합니다. 좋은 일꾼들을 보내주시기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차장과 적당한 크기의 사무실과 예배당이 필요합니다. 선교사들이 본부를 방문할 때 필요한 숙소가 준 비되어야 합니다. 현지에서의 사역비와 생활비, 필요한 물품이 공급되어야 합니다. 선교사들의 신분(비자 및 영주권)이 해결되어야 합니다. 브라질에서 한국어를 가르칠 선생님을 구하고 있습니다. 영어로 방송할 수 있는 일꾼을 찾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에 선교를 위한 센터가 세워지기 위해 기도 중입니다. 성경과 만 화 메시야 성경의 번역과 출판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시간에 이뤄져야 합니다.

 

2017년의 성탄 예배는 평양에서 할렐루야를 부를 수 있도록! “평양에서 예루살렘까지” 하나님의 말씀 들고 북한 성도들과 함께 가게 되도록! 하나님이 주님의 백성들의 마음을 열어 주셔서 동참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2017년 1월 13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SNS로 공유하기:

[동역자편지] 사랑받으시고 기뻐하신 자 된 여러분!

201612-letter

 

저의 청소년 시절은 모두 성탄절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성탄절이면 중·고등부의 모임이 있었지만 말더듬이였던 저는 그들과 어울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게 가장 기억에 남는 성탄절, 더 나아가 고난주일과 부활절은 잊혀질 수 없는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교회 강단에 꾸민 크리스마스 장식,
낙타를 그려서 오려내고 베들레헴 골짜기를 멀리서 바라본 그림,
동방박사들의 모습,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목자들, 양과 소와 나귀로 꾸며진 배경.
그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어머니께서 전해 주신 크리스마스 이야기였습니다.
어머니께서 들려주신 그 모든 이야기는 지나고 보니 이스라엘의 이야기였습니다.

 

성경을 읽고 설교를 하다 깜짝 놀란 사실은, 누가복음에 기록된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사건 모두가 저와 상관이 있음을 발견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2장 14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은 누구였을까요?
베두인 목자? 마리아와 요셉? 동방박사? 시므온? 안나? 당연히 그들이었지요. 하지만 여러분과 저도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하나이기에 지금 성탄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냥 넘어가지 못할 이야기라고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가 얼마나 기뻐하기를 원하셨으면,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서 그가 흘린 피로 구원에 이르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골고다 언덕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여러분과 저를 구원하시고 사랑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아멘입니다.
사랑 받으시고 기뻐하신 바 된 여러분.
이제부터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과 삶으로 2016년의 성탄절을 보내십시오.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시는 말씀이 들리십니까?

 

아직도 북녘의 성도들은 소리 내어 성탄의 기쁨을 찬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없어 성탄의 기쁜 소식을 읽지 못하는 백성이 허다합니다.
심지어 차가운 감옥에 갇혀 신음하고 있으며, 살을 에이는 추운 바람과 싸우며 먼 바다에 나가 라디오 에서 흘러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신 자 된 여러분.
이제부터라도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가십시다.
그리고 고난 중에 믿음을 지키는 북녘 성도들이 하루 빨리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성탄의 소식을 들을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성탄절에 갇힌 북녘 백성들을 기억하는 우리 되길 기도합니다.

2016년 12월 14일

무익한 종 이 삭 드림

SNS로 공유하기:

[동역자편지]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고 싶습니다.

201611-letter2몇년전, 한 선교사가 몽골어로 성경 번역을 하였습니다. 그 분이 비용이 공급되지 않아서 출판하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하는 상황을 알려왔습니다. 제게 어떻게 하였으면 좋겠냐고 물었을 때 “그걸 질문이라고 하느냐?”고 답했습니다. 저로서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 대답한 말입니다. 소련에 있던 미국인이 러시아 고어 성경 276권을 구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저는 지체하지 않고 그 성경을 찾아내 보내주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을 살린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중국의 조선족들에게 욕을 먹고, 감옥에 끌려가고, 매를 맞으면서도 성경을 배달했던 이유는 그 성경으로 인해 영혼이 구원받으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미국 대학생선교회에서 ‘예수 영화’를 중국에 배포하는 일을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을 때도 “복음만 전해진다면…”이라 생각하고 그 일을 감당했습니다. 중국성도들이 주일예배 순서를 만들기 위해 ‘등사기’ 사용하는 것을 보고 독일제 등사기를 구해 갖다 드리며 “이런 것도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방법이구나!”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처음 사역하던 1985년, 그 때에는 융판 그림 붙이기가 귀한 보물이었습니다. 저는 그걸 갖다 주느라 인대가 늘어났고 힘이 들었었습니다. 카세트 테이프를 복사하는 기계를 밀수해 갖다 주고, 인쇄기의 부속품을 뜯어 운반하는 일에 수십 명이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복음을 듣게 하려 라디오를 밀수하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현지에서 구입이 가능하고 전화기로 방송을 들을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복음방송을 할 수 있도록 방송국의 기자재를 구입하도록 헌금을 하고, 복음풍선을 뉴욕에서 인쇄해 가져온 것이 1993년이었습니다. 그 복음풍선 얼마를 평양에 가져갔습니다. 이렇게라도 누군가 복음풍선을 읽고 구원받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어거스틴은 한 어린아이의 음성을 들은 것으로 회심했습니다. 지금 러시아에서 사역중인 한 선교사님은 나이가 많아서 신학교에서 외톨이였습니다. 그래서 씁쓸히 땅을 내려다보며 혼자 길을 걷다 버려진 붉은색 종이 한 장을 보았습니다. 그 종이가 바로 모퉁이돌선교학교 1회 전단지였습니다. 그 분은 그 일로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한 권의 성경이 몇 사람을 구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본 일이 있으십니까?
한 사람의 삶이 이웃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저는 압니다.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이젠 조선족들을 위한 성경은 안 가져와도 돼”라시던 그 분은 “그런데 중국어 주석 성경은 없나? 성경은 얼마나 필요한지 헤아릴 수 없어. 하지만 설교자들에게 지도자들에게 한권씩 들려 줄 주석 성경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하셨습니다.
그 할머니는 최근 90세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사실 그 부탁을 받았을 때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 방대한 중국어 주석 성경을 누가 번역하지? 잘 할 수 있을까? 그 비용은?” 그런 걱정을 하다가 주석 성경 한 권이 중국교회 지도자들에게 들려졌을 때 많은 영혼들이 일어나서 빛을 발할 수만 있다면… 하다가 중단하는 일이 일어나더라도 한번 해 보자고 결심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번역하고 출판하기 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지금 그 주석 성경이 전 중국교회에 배포되고 있습니다.
한 권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과 주석, 한 사람을 훈련시켜 키워 영혼을 추수할 일꾼으로 보낼 수만 있다면 투자할 만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스라엘에 한 탈북 청년을 데리고 가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선교센터가 생겼고, 중국에도 수양관을 사용하라고 하고, 일본에서도 기도원을 사용하라며 젊은이들을 데리고 오라는 요청이 왔습니다.
한 사람을 키워낼 장소가 필요합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고 싶습니다. 판문각에서 생명을 걸고 “십자가의 도”를 외쳤던 일로 통일을 이루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날 그 시간에 제 말을 들었던 한 군인은 제게 악수를 청하며 “저 예수쟁이야요”라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복음풍선을 받아 든 사람들 가운데는 이런 일이 없었을까요?
있었습니다. 평양 고려호텔에서 “용서하러 왔습니다”라고 겁 없이 쏟아 놓은 말에 공산당 당원 하나는 “나도 용서 받을 수 있갔소?”라고 물으려 다음 날 저를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한 마디 말, 한 권의 성경, 한 번의 복음방송을 통해 북한에, 중국에, 소수민족에, 아랍에, 이스라엘에 전해져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한 영혼이 구원 얻도록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2016년 11월 15일4483496_4910422_stamp_issac
무익한 종 이삭 드림

SNS로 공유하기:

[동역자 편지] 그 날을 위해 함께 기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눈길에 성경을 배달하던 차량이 빠져 고생 고생 끝에 성경을 배달하고 뒷방에서 오한에 떨며 몸을 녹이던 제게 따뜻한 뭇국을 끓여 먹이던 할머니는

“이 목사님, 어서 떠나세요! 여기 머물면 안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서둘러 떠나던 제 손을 꼭 잡은 할머니의 손은 얼어터져 두터웠습니다.
“그래도 매는 안 맞았잖아!”라며 돌아서시는 할머니는 떠나는 저를 보며 흐느껴 울었습니다.
그 모습에 저도 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저 분들은 정말 어렵게 살아 남은 성자들이지요.”
저희를 공항까지 운전해 주시던 성도의 말입니다.
1920년대에 태어나서 모진 중국의 역사를 다 경험했던 성도들이었습니다.
저도 잡혀 고문을 받았습니다. 그 짧은 순간이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습니다.
집으로 돌아갔다지만 전기고문 탓으로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었고,
물고문의 후유증으로 하혈이 계속되었습니다.
감옥에서 나왔다고 해서 그 아픔이 잊혀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시간이 지나면 지나갈수록 육체와 정신적인 아픔이 더해만 갔습니다.
그것이 1991년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2001년에 제게 그곳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매 맞고 고통 당한 곳으로, 그것도 정말 가기 싫은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지난 31년은 하루 하루 창조된 나날이었고,
그 창조 속에 나그네로 도망자로 그리고 십자가의 그 길로 인도되어졌습니다.
하나님은 그 고난 속에서도 이루실 일을 종에게 맡기셨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주께로 돌아와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며 기뻐하는 그 날을 생각하게 하시는
복을 주셨습니다.

 

한 사람이 무엇을 하고,
한 선교기관이 무엇을 할 수 있기에 한 명 한 명씩 모아 불어내시어 모퉁이돌선교회를 만드시더니, 이제는 저 동토의 북한 땅을 주의 말씀과 진리로 녹여, 하나님의 나라로 회복되게 하시는 일을 맡겨주셨습니다.
북한에 핍박 받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자유로이 예배할 수 있도록 통일을 준비하는 일을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그 날을 위해 함께 기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북한 성도들과 함께 세계 열방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먼저 통일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통일을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통일을 준비하는 이 사역에 세계교회와 전문인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에벤에셀의 하나님께 지금까지 준비해 온 통일을 올려드리며
이제 통일의 문을 활짝 열어주시도록 복음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한 사람의 용사를 찾습니다.
바로 여러분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2016년 10월 14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SNS로 공유하기:

[동역자편지] 저들에게 누구든 가서 외쳐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중국의 만주지역으로 성경을 배달하기 위해 기차를 타고 떠났습니다. 여섯 개나 되는 가방을 침대 밑으로 밀어 넣고 남은 가방은 위층 침대의 빈 공간에 집어넣고 잠을 청했습니다. 이런 길을 31년 넘게 넘나들었습니다. 하루는 예배를 마치고 나서는데 한 분이 ‘성경배달비’라고 쓰인 봉투를 주셨습니다. 그 봉투를 받아 드는데 가슴이 뛰면서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약속한 날짜가 가까워 오는데 경비가 주어지지 않아 망설이고 있던 터였기 때문입니다. 그 때 감사한 마음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31년 동안 하나님께서 귀한 분들의 헌신을 통해 감당할 수 있게 하심에 고맙고 감사해서 울었던 일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성경을 갖다 주는 것이 무슨 선교냐”고 비아냥거리는 말을 많이도 들었습니다.
“네가 무슨 실력이 있어서 성경을 번역하느냐?
중국말도 모르면서 무슨 중국주석성경을 번역하느냐?”고 빈정거리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평양 사람들이 바보인 줄 아냐? 너 무슨 짓 하는지 다 알고 있어,
박사학위도 없는 주제에 무슨 신학교를 한다고 그러냐?” 묻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성경을 구할 수 없어 몇 십 년을 성경 없이 울며 극동방송을 들어야 했던 성도들을 만났고 그들에게 성경만이라도 가져다 주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가져간 성경을 받아 들고 고맙다며 우는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었습니다. 그들 중에 가져간 성경을 끌어안고 “이젠 리해가 됩네다”라며 하염없이 울던 그 아주머니는 이제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가져오는 성경에 목사님 이름을 쓰지는 마시라요. 어쩌다 잡히면 힘들어질테니 살짝 표시만 해 두라요”
하셨던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배달하며 사역지에서 제가 사용했던 ‘한사장? 이부장? 장회장…’
이름들도 이제는 가물가물합니다.

 

그런 저를 보며 “이삭 목사가 죽거든 간이 얼마나 큰지 알아보라”고 하셨던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이 분이 최근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저는 간이 큰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라도 성경을 배달하고 말씀을 선포하지 않으면 화를 당할까 봐 두려웠을 뿐입니다.
북한, 중국, 러시아, 몽골, 이스라엘의 선교는 어머님과의 약속이었고, 저로서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약속이었기에 평양을 가야 했고 말씀을 선포했을 뿐입니다. 죽기를 원한다고 죽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배웠습니다.
의인은 없습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 바로 저 자신임을 알게 하신 이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저를 불러주시고 지금까지 사역하게 하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그런데 저 쪽 북녘 땅에는 아직도 죄 사함을 받고 용서받을 수 있음을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저들에게 누구든 가서 “너 용서받아야 해, 그래야 천국에 갈 수 있어!‘라고 외쳐야 하지 않을까요?

 

예수 그리스도가 네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했고,
그 예수의 흘린 피가 너와 나를 대속했으니 너와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믿음으로 의에 이를 수 있음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 모퉁이돌선교회는 오늘도 방송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그들의 언어로 된 성경을 준비해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굶주림을 해결해 보려고 식량을 구하러 나온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말씀으로 훈련시켜서 북한으로 보내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통해 북한 땅에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고 있습니다.

201609-letter

 

 

그런데 최근 북한에 큰 홍수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순식간에 집이 떠내려갔으며, 마을이 사라져버린 일을 당했습니다. 그들 중에 믿음의 백성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당장 필요한 양식을 보내주어야 하고,
입을 옷과 의약품을 보내고, 추위가 오기 전에 무너져 내린 집을 수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창조주 이신 하나님 아버지가 만물의 찌꺼기보다 못한 우리를 위해 아들을 기꺼이 내 놓으신 그 큰 사랑을 북한의 백성들에게 전해지기를 위해 기도하며 함께 할 분들을 찾습니다.

2016년 9월 13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SNS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