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칼럼]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발이 되지 않으시렵니까?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말하는 선교사님이 있었습니다.
10여 년의 사역이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조언을 하였습니다.

 

군인이 외롭다고 사표를 냅니까?
농부가 힘들다고 손을 놓습니까?
아버지가 무거운 짐을 지지 못하겠다고 자식들을 버립니까?
이웃이 얄밉다고 총을 겨눕니까?
인생은 그렇게 사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도 살아있습니다.
저는 집을 떠나 성경을 가지고 선교지로 갔습니다.
성경을 받아 든 성도들이 이 길을 함께 걸어온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분들은 그곳에서 몇 십 년 믿음을 지켜왔습니다.
믿음 때문에 고난을 겪은 선배들입니다.
그분들은 매번 찾아와 성경을 배달하는 제 모습을 살폈습니다.
저를 괴롭혔던 중국인들을 위해서도 주석성경을 만들어 가져다 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들이 저를 고마워했습니다.
저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 해 겨울도 눈이 내렸습니다.
성경을 배달하다 잡혀 감옥에서 온갖 고문을 당하고 나오던 그 날도 겨울 추위가 매서웠습니다.
눈이 치워진 계단에 앉아서 제 속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분노가 저를 잡아 흔들어대자 저는 분노의 사람으로 돌변했습니다.
그런 저를 하나님은 10년이나 기다려 주셨습니다.
제게 조용히 다가와
“내 마음으로 갈래? 네 마음으로 갈래?”
물으시는 주님과 3년을 싸우며 거부하다 결국은
“주님의 마음”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돌아갔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저를 훈련시키시며 32년 동안 북한과 중국선교를 하도록 이끄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북한선교를 위해서 수고한 조선족들이 있습니다.
중국선교를 위해서도 수고한 조선족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 일을 할 수 있었으니 고마운 마음입니다.
최근에 저는 조선족들에게서 초청을 받았습니다.
와서 말씀을 전해 달라는 것입니다.
추위에 떨고 있는 북한성도들의 선물을 구입하는데 동참하고 싶답니다.
여전히 이 일에 관심을 갖는 조선족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들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2018년에도 그들을 만나기 위해 가려고 합니다.
북한에서 숨죽이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도들을 위해 갈 것입니다.
중국과 소수민족 그리고 아랍의 버려진 영혼들과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갈 것입니다.
지난 32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헌신을 아끼지 않으셨던 것처럼
2018년에도 평양에서 예루살렘까지 하나님의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복된 발로 저와 함께 가지 않으시렵니까?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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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평양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이 정당하게 선포되어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컴퓨터를 켜서 메신저를 확인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를 와서 도우라!
우리에게 웃음을 되돌려 달라!
우리를 외면하지 말라!”

 

라고 말하는 시리아 난민에 관한 동영상이었습니다.
1988년, 서울 영락교회에서 “LOVE NORTH KOREA ’88”이라는 이름으로 ‘북한사랑선교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오픈도어 선교회의 브라더 앤드류와 브라더 데이빗이 후원하고, 호주와 뉴질랜드의 형제들이 참석했으며, 홍콩의 조나단 차오 박사가 동참했습니다. 당시 레이건 대통령도 그의 개인 변호사를 선교대회에 특사로 보내 주었습니다. 특별히 총신대학교 신학생들이 자원사역자로 끝까지 수고해 주었습니다. 그 외에도 몇몇 분들의 수고 또한 잊지 못합니다. 선교대회 자체가 어려운 일이기도 했지만, 방해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한국 교계지도자들 중에서 평양을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탈환하려는 뜻 있는 이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두려워하고 기피하고 무관심했습니다. 어쩌면 포기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조선족을 통해 북한사역이 이뤄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북한사람들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와 말씀을 듣고 회복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감격하며 말씀을 가지고 “그 땅을 살려야 합니다!” 라며 그 어둠의 땅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늘 아침에 본 시리아 난민 동영상은 저의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세상은 지금 마귀와의 정면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한 권의 성경과 한 권의 만화 메시야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을 거부하고 육체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떤 더러운 말도 삼가지 않습니다. 세상이 예수를 거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예수를 믿는 이들과 심지어 목사들이 세상보다 더 예수를 부인하고 살아남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세상은 그렇게 살아남은 사람을 환영하고 기뻐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복음을 전한 것으로 인해 감옥에 수십 년 갇혀야 했던 왕명도, 모세, 범브란트 목사도 바보였습니다. 지난 7월 27일에 84세의 나이로 하나님께 간 이도생 할아버지도 순교자이고 바보였습니다.

 

1990년 8월 4일, 하나님은 저에게 북한에 세 번을 무의미하게 다녀온 것을 책망하고 지적하셨고, 6년 동안 회개케 하신 후 1996년에 다시 평양에 가게 하셨습니다. 저는 그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습니다. 평양에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하기 위해 6년을, 아니 45년을 기다린 것입니다. 그렇게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처음 몇 번의 평양 방문에서 저는 복음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로 저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외치라고 하신 십자가의 도를 외쳤습니다.

 

정말 바보지요? 적당히 하고 좀 타협하면 그 후로 백 번은 더 북한에 갈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번이라도, 아니 죽음이 온다 해도 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은혜와 용서를 선포해야 했습니다. 북한을 위해 아들을 내어 놓으셨던 저의 어머니처럼, 저도 예수님께 미쳤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평양을 회복시켜 주셔서, 여러분 모두가 북한 땅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선포하기를 기도합니다. 평양은 이제 노역의 때가 끝났다고, 저들의 죄악이 사함을 받았다고, 외치는 자가 되어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고 선포했어야 합니다.

 

통일은 우리가 저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할 기회를 만들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평양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정당하게 선포되는 것입니다. 저는 평양에서 네 번의 기회를 만들어야 했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오늘, 그렇게 선포할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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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통일 후 하겠다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서울을 떠나 이틀 밤 미국 집에서 머물고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미국 동남부의 한 작은 한인 교회에서 머물렀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LA로 돌아가 기도회를 인도하고 돌아왔습니다. 이곳에서 주말 집회를 마친 후에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 근처에서 주말 집회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갑니다. 서울에서 집회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왜 이렇게 이곳 저곳으로 다녀야만 하는 걸까요?

 

32년 전 사역을 시작할 때, 저는 하나님께 ‘멀든 가깝든, 큰 교회든 작은 교회든‘ 부르는 곳엔 어디든지 가기로 약속했습니다. 어제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목사님으로부터 “30년 동안 모퉁이돌선교회를 위해 기도한 한 분이 집회에 참석하러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변함없이 기도하며 축복해온 성도들, 성경을 얻기 위해 기도하는 성도들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기도한 분들은 성경이 배달되는 이야기를 다시 듣고 싶어 합니다. 자신들의 헌금으로 배달된 성경이 그들의 가슴 속에서 어떻게 살아 역사했는지를 듣기 원합니다. 성경배달은 성경학교, 신학교, 교회개척으로, 북한사람들부터 중국의 소수민족들에게까지 확장되어 왔습니다. 중국 기독교인의 수는 남북한의 인구보다 많습니다.
모퉁이돌선교회는 그들에게 성경을 배달하여 공급하는 일을 주 사역으로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 사역은 중국뿐만 아니라 중동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복음이 전해지고,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이 선포될 수만 있다면 어디든지 이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이 일은 실패할 수가 없습니다.
때로는 핍박을 당하고, 굶기도 하고, 도망 다니며, 매도 맞고 고문을 당했습니다. 우리 형제 중에는 먼저 천국에 간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래도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기 때문에 이 일을 진행해야 합니다. 저는 그리스도의 군사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군사는 사령관의 명령에 따르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가라고 하면 가고 머물라고 하면 머물면 됩니다. 매를 맞아도 잠시 후에는 영광의 주님을 뵙게 될 것입니다. 이 일은 우리의 이웃에게 당연히 주어야 할 사랑을 전하는 일입니다. 증언자로서 자리를 지켜야 할 책임이 제게 있습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게 아닌, 명령에 순종하는 일입니다. 마음에 드니 사랑하고 마음에 안 드니 용서 못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감당하는 일로 인해 순교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사는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런 분들이 오늘도 여전히 살아서 순종하고 있습니다. 피 흘리면서 용서하는 주의 백성들이 있습니다. 저는 중국에서 살아있는 많은 이들과 교제했습니다. 북한에서도 그들을 만나 끌어안고 울었습니다. 감옥에서 나가는 것보다 순종을 더 귀히 여기는 사람들을 후원하고 위로합니다.

 

통일을 준비하는 것은
이들을 지금 기억해 주는 일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들을 품에 안고 기억해 주는 일입니다.
통일 후에 무슨 일을 하겠다는 생각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오늘, 그들을 위해 주님께 무릎을 꿇어 아뢰어야 합니다. 오늘,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어야 합니다. 오늘입니다.

 

북녘 땅의 사람들은 성경 한 권을 울부짖으며 찾고 있습니다. 양말과 장갑 한 켤레, 따뜻한 모자, 국밥 한 그릇을 그들에게 줄 수 없나요? 저 북한 땅에 잊혀진 동포들, 그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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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하나님이라 불러본 기쁨을 아십니까?

 

저는 북한에서 태어나 남한에서 자랐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평양에서 신학교를 다니시던 시절, 신학생들이 하나 둘 행방불명 되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신학교에서 청년들에게 복음을 전하시던 아버지는 공산당을 피해 1947년 어머니와 만 두 살이었던 저를 데리고 서울로 내려오셨습니다. 남한에서도 목회자인 아버지를 따라 충청도와 서울로 이사를 다녔습니다.

 

그리고 미국 시민권을 가져야 북한선교를 할 수 있다는 어머니의 뜻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북한선교를 하기 위해 미국으로 이민을 간 것입니다. 제가 일생 동안 걸어온 길은 모두 주님과 관계된 일이었습니다. 돈을 번 일도 선교를 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고, 중국과 북한을 드나들며 하나님이 제게 맡기신 일을 감당했습니다.

 

저는 북한성도들이 기도하기 위해 모은 손을 감추는 것을 보았습니다. 몰래 숨어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주여~” 라는 소리도 입밖에 내지 못했습니다. 공산당 노래의 멜로디에 가사를 바꾸어 찬양을 부르며 눈물 흘리는 성도를 알고 있습니다. 수십 년 동안 마룻바닥이 파일 정도로 기도한 성도를 만났습니다. 성찬식에 쓸 잔이 없어서 손바닥을 동그랗게 웅크려 잔을 대신하는 성도를 알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얀 장갑이나 가운, 예배당, 정해진 예배시간도 없었습니다.

 

가슴 깊은 그곳에서 나오는 소리… “주님 회복하실 날이 언제입니까?”라고 하는 기도를 저는 들었습니다. 성경을 손에 쥐어만 보겠노라며, “이 성경은 가지고 가라요. 나는 못 가지고 가니…”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던 성도의 애절함을 저는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이 애절함을 아십니까?

 

그들 중 청년 한 명이 실수로 “하나님”을 소리 내어 불렀습니다. 비록 작은 목소리였지만 하나님이라고 불러서는 안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청년은 눈에 눈물을 가득 채우고 저에게 “하나님이라고 불러본 이 기쁨을 아십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그 일로 인해 2년 동안 아내와 두 아들, 노모와 함께 교화소에 가야 했습니다.
하나님이라고 불렀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전해지는 종이 한 장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라는 말씀이 인쇄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읽어 내려가다 꺽꺽거리며, 숨을 멈출 듯이 울며 읽어 내려갔습니다. “며… 멸망치 않고 여…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러분은 이렇게 울며 요한복음 3장을 읽어내려 간 적이 있습니까? 저는 그들을 만났고, 보았고, 그들 옆에 있었습니다.

 

“나도 용서받고 천국에… 갈 수 있어?” 라고 묻는 북한 고위 당국자의 말을 들어본 일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한 권의 성경이라도, 한 장의 말씀이라도 전하려 했던 것입니다. 별 가치도 없어 보이는 찢어진 종이 한 장에 인쇄된 그 말씀이 생명을 살린다니… 해어진 종이 한 장, 그저 찢어진 종이에 적힌 말씀이 생명력을 발휘하는 그 힘!
그 말씀은, 살아서 죽은 영혼을 깨워 살리는 힘이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타락한 세대와 세속화된 교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북한 땅도 이 남한 땅에도 하나님의 말씀이라야, 구원의 길이 있습니다. 생명의 말씀 말입니다.

 

여러분과 통일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통일의 목적은 우리의 땅을 되찾는 것이 아닙니다. 선교할 지경을 넓히는 일이기에, 통일에 마음을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할 땅이 북한입니다. 그 땅이 공산주의자들의 손에 얽매인 세월이 너무 길게 느껴집니다. 이제 북한 땅에도 생명을 살리는 말씀이 전해져 살아나는 그 일을 위해 우리는 통일을 이루어야 합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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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한 분을 만나러 갑니다!

어릴 적 제 기억에 어머니는 신문 한 장을 펼쳐놓고 종일 울면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저도 신문을 보며 늘 울고는 합니다. 나라 걱정을 하며 울고, 나라와 이웃을 사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웁니다.
1967년, 미국에 살게 된 저는 신문과 라디오를 통해 조국의 소식을 접했습니다.
1970년부터 유엔군으로 한국에 와서 근무할 때도 일부러 판문점을 방문했습니다. 제 가슴 속에 한국땅과 북한땅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1983년 처음 중국으로 가서 조선족을 만나는 것이 북한선교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5년, 모퉁이돌선교회를 시작하고 3년 넘게 북한을 깊이 볼 수 있었습니다. 단둥, 하얼빈, 장춘… 어디를 가든지 그곳에 사는 조선족들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냈습니다. 저는 압록강변과 두만강변을 기도처 삼아 기도하면서 평양에 갈 날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저 혼자 무슨 일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저는 아직도 대북 라디오 방송을 꿈꾸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다른 방법으로 제가 태어난 그 땅에 살려두신 지하교회를 통해 일하십니다. 그곳으로 돌아가는 주의 백성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돌아가는 주의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할 길을 찾아내려고 하나님께 묻고는 합니다.
오늘도 저는 인터넷 신문으로 세상 소식을 접합니다. 북한 소식을 볼 때면 그 안에서 북한주민들의 함성이 들려옵니다. 마땅히 불쌍히 여겨야 할 우리의 이웃입니다.
일정한 금액만 지불하면 이곳으로 탈출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선교지에서 신실하게 선교하며, 해외에서 탈북민들을 위해 수고하는 주의 종들을 봅니다. 그들의 수고가 얼마나 큰지…
저는 여전히 북한의 지하교회와 지하성도들을 돌보며 늘 울고는 합니다. 정말 그들을 사랑하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탈북민들을 사랑하지 못해 부끄럽기도 합니다. 그들이 감사할 줄도 모르고 변명만 하면서 책임지지 않으려 한다고, 함께 일하는 이들과 함께 일할 줄 모른다고 변명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들을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울기만 하는 것으로 사랑하는 것이 될까?’ 스스로 묻고는 합니다. 병원과 학교를 세우고 구제를 하는 것만으로 사랑하는 것일까요? 성경을 가져다 주고 가르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일까요? 그리스도의 사랑이 방송하는 것만으로 만족될 수 있는 것일까요?
‘피 흘리기까지’ 라는 말에 대한 책임은 과연 어디까지일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뿐인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내어주셨습니다. 그 아들 예수는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기꺼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 사랑을 입은 우리도 북한을, 중국을, 아랍을, 이스라엘을 사랑함이 마땅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오늘도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북한성도들과 주민들에게 전하려고 길을 떠납니다.
그들을 만나 외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그 일을 위해 여러분도 함께 울어주십시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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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남들이 말리는 것을 해야만 했습니다!

 

1952년, 만 일곱 살이었던 저에게 어머님은 ‘북한에 복음을 전하러 가라.’고 하셨습니다. 1962년, 어머니께서는
“예” 라고 답했던 제게 그 일을 상기시키셨습니다. 북한에 가기 위해서는 미국에 가야 한다고 하시는 어머니께 저는 생각도 하지 않고 “예” 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해 어머니께서는 18세의 제게 12세, 7세, 그리고 태어난 지 5일된 동생들을 남기고 별세하셨습니다.
제가 태어난 북한은 저에게 영원한 선교지였습니다. 어머니의 말씀은 그렇게 제가 북한을 마음에 담고 살아가도록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하나님 품에 안긴 후 오롯이 중학생, 초등학생 그리고 핏덩어리 동생을 제 손으로 키워야 했기에 어머님과의 약속을 잊고 살았습니다. 게다가 1967년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언어를 배우고, 직장 생활을 하고, 징집을 받아 미군에 입대를 해야 하는 등 살아가는데 치열한 날들이 계속되었습니다. 다행히 제대 후 시작한 사업이 잘 되어 생활은 안정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에 도착한 때부터 우리를 도와주셨던 미국인 목사님이 제게 어린 시절 어머님과 했던 약속을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사실 저는 이웃들이나 교회에서 어머님과의 약속이나 가족들이 어떻게 미국에 오게 되었는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교회에서 주어진 일을 조용히 할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교회생활로 바삐 지내던 중, 신학교에 갈 것을 제안 받게 되었는데 결국 저는 하던 사업을 중단하고 신학교에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목사 안수를 받기 전, 선교정탐여행을 동남아로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1983년, 중국에 다녀오고 난 후에 저는 여러 곳에서 담임목사로 초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왜일까요? 2년 동안 저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모퉁이돌선교회’를 미국 연방정부에 등록하고 혼자 방송국에 가서 영어 복음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에 다녀 온 후에는 무엇인가 저를 압박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결국 1985년 9월 29일, 사표가 수리되기도 전에 저는 마지막 설교를 하고 교회를 떠났습니다.

 

한 달 후인 10월 28일, 저는 서울로 돌아와 한국 모퉁이돌선교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친척과 친구들, 저를 키워 준 교회의 어른들도 북한선교를 반대했습니다. 오히려 ‘목을 졸라 죽여야 할 북한에 무슨 선교냐’고 꾸중을 들었습니다.
사업으로 번 돈을 모두 헌금한 상태에서 적당한 수입조차 없던 저는 아홉 살된 큰 아이의 생일을 앞두고 미국을 떠나야 했습니다. 둘째는 석 달 후에 여덟 살이 될 터였습니다. 후원하는 교회도, 선교회를 인정하려는 어느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중국, 소련, 몽골 그리고 북한을 선교한다고?” 모두가 반대했습니다. 당시 소련과 몽골, 그리고 중국은 한국과 외교관계가 수립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미국 시민권이 있었고 그것으로 방문이 가능했지만 사역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게는 선교지로 가지 않으면 안 되는 큰 부담이 있었습니다. 갈급함으로 울부짖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눈물이 저를 움직이게 했습니다. 그들을 모른 체하고 제 마음에 감춰 둘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가야만 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다 주어야 했습니다. 저는 거저 받았으니, 거저 가져다 주어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성경 가져다 주는 게 무슨 선교냐.’고 비난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선교한다.’ 라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저 또한 선교지에서 선교사로 사는 것이 선교라고 배웠으니까요. 그렇지만 성경을 당장 읽어야 하겠다는 그들을 모른 체 할 수 없었기에,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달해야 했습니다.
저를 비난하는 그들과 싸우고 변명하고 이해시키려 하지 않았습니다. 성도들의 필요를 보았고, 한 권 한 권의 성경책을 가방에 넣어 그들에게 가져다 주어야 했습니다. 중국 땅에 조선족 교회가 단 두 개, 가정교회는 2,300개 정도일 때의 이야기입니다.

 

현장에서 돌아와 서울과 미국에 그들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렇게 32년 동안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남들이 하지 말라는 것을 저는 해야 했고, 그들이 위험하지 않냐고 할 때, ‘그렇다면 어떤 일이 위험하지 않는가?’ 라고 생각하고는 했습니다. 사실 저는 매도 많이 맞았고, 감옥에서 고문도 당했고, 심장에 무리가 오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랬듯 몸이 연약해서 비실비실하던 제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2007년, 의사는 제게 ‘급사’상태라고 진단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로부터 지금까지 10년 넘게 살아남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퉁이돌선교회를 통해서 저에게도, 공산권 지역의 성도들에게도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믿어준 성도들에게 복 받을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은혜일 뿐입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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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십자가에서 흘린 피는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저는 통일을 준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럴 능력도 없고 실력도 없습니다.
저는 다만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은혜를 입었기에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할 뿐입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식인 제가 무슨 선한 일을 계획하거나 뜻하는 바를 가질 수가 있겠습니까? 생각과 계획, 삶 전체가 악한 저를 버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신의 독생자 아들을 포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아들이 흘린 피로 저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만 있습니다. 구원받은 죄인에게는 다른 말이 필요치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셨을 뿐 아니라, 제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이끄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뜻하시고 기뻐하신 일들을 보고 순종했습니다.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 오직 하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여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통해 이루실 하나님 나라를 이뤄가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이런 마음과 믿음을 주신 이가 위대하십니다. 저는 그 뜻을 따라 살아오려고 발버둥쳤고 오늘도 그 일 만을 생각합니다.
오래전, 한 청년이 설교 후에 서성거리다가 용기를 내어 저에게 물었습니다.
“저 같은 사람도 중국에 선교하러 갈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저 같은 사람을 쓰신다면 당신 같은 분을 왜 못 쓰시겠소?”라고 답했습니다.

 

수년 후, 그가 중국 어느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배낭을 메고 기차를 타고 가서 조선족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교수로 있는 동안 학교에서 몰래 몰래 사람을 키웠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쓰임 받았다는 사실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적어도 수십 명의 사람들에 의해 보고를 들었습니다. 그 수십 명 중에 세 사람은 저와 함께 일하는 일꾼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본질상 진노의 자식인 제 마음 속에 이런 거룩한 뜻이 심겨졌을까요?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런 복된 생각을 심어주셨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나님은 선한 일에 동참할 주의 종들도 보내주셨습니다. 한 형제가 중국에서 오래전에 출판된 책을 다시 출판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재원을 공급하시면 감당하겠다고 했습니다.
며칠 후, 제 손에 그 책을 출판하기에 필요한 헌금이 쥐어졌고 저는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이 특별 헌금은 하나님 것이니까요. 바로 인쇄에 들어갔고 출판되었지만 저는 그 책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그 책을 인쇄하겠다던 형제는 “목사님은 중국어를 읽지도 못하면서 서재에 꽂아만 놓을 것 아니냐. 중국의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한 권이라도 더 보내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그 청년은 저에게 ‘선교할 수 있느냐’고 묻던 그 교수의 제자이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는 종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통일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 일을 위해 부름 받았으므로 그 일을 감당할 뿐입니다. 방송 1분, 성경책 한 권, 주석성경 한 권, 신학생을 위한 서적 한 질과 컴퓨터 하나, 교회 개척 비용, 교회 건축 비용… 이런 일들이 하나님 나라의 한 모퉁이에서 이뤄져 가는 것이 큰 기쁨이고, 제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여러분은 은혜를 입었습니까? 축복을 누리고 살고 계십니까?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서 흘린 피는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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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언제는 위험하지 않았나요?

 

북한에 일꾼을 보내는 일이 “위험하다.”고 할 때,
“언제는 위험하지 않았나요?”가 저의 대답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 여러 명의 영혼이 구원을 받는다면 가치가 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지금도 같은 생각입니다. 누군가 ‘북한에 지하교회가 없다.’고 했을 때, 북한에 교회를 세울 준비를 했고, ‘북한에 지하교회가 있다.’라는 말에는 지하교회를 돕기 위한 사역을 진행했습니다.

 

가능한지 아닌지의 질문은 하나님께 도발하는 것입니다. 지하교회를 개척하는데 가능 여부를 따질 수 없는 노릇입니다.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하기에 힘쓰라’라고 한 말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유효하다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말씀을 전파할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전해주는 사역, 방송을 통해 전파하는 사역, 신학생을 키우는 사역, 선교사를 후원하는 사역, 교회를 개척하는 사역, 이런 일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역, 하나님의 나라 확장에 직접 후원하는 사역, 이 모든 사역이 다 해당된다고 믿습니다. 그 사역을 하기 위해 저는 32년 이상 세상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렇게 주어진 일에만 집중하다 보니 모퉁이돌선교회 안에서 다른 뜻을가진 이들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당하게 행해야 할 자세와 모습, 하나님 앞에서 하지 말아야 할 할 것을 요구할 때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지난 번 어느 모임에서 ‘그렇게 매 맞고 고문당하고 굶주리고 어려운 상황에도 오늘날까지 이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라고 누군가 물어온 적이 있습니다. 저는 제 마음에 있는 대로 ‘하루하루 살다 보니 오늘까지 왔습니다. ‘사령관이 원하시기에 저는 제 자리를 지킬 뿐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제가 그리스도의 병사이고 군사라고 믿습니다. 군인은 자기에게 좋고 편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령관이 원하는 일을 할 뿐입니다.

 

저는 성경배달, 신학교배달, 선교사배달, 교회개척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사명이라고 믿습니다. 그렇기에 목사가 되어 모퉁이돌선교회를 시작했고, 여러분과 함께 이 길을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이 일을 원하지 않으실 때, 하나님은 제가 떠날 날과 기회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제가 매를 맞고 고문을 당하는 등의 일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뤄지는 일이고, 어려운 일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속함을 믿으며 감사로 받을 뿐입니다.

 

고문 당하는 순간은 물론 아프고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신앙 선배들은 그렇게 살았고, 오늘도 세상 구석구석에서 여전히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감사할 수 있으십니까? 이 일이 축복이라고 여겨지십니까? 그리스도의 군사로 사명을 감당하고 계십니까? 여러분과 같은 좋은 동역자들을 주신 것은 그저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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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이보다 더 큰 영광은 없습니다!

신의주를 바라보며 두 손을 높이 들고 울면서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신의주를 축복하며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저는 중국과 평양을 드나들면서 늘 울었습니다.
설교와 강의를 하면서, 글을 쓰면서 울고는 합니다. 글을 미처 다 끝내지 못하고 울고 있던 저는 아내와 눈이 마주칠 때면 쑥스러워 머리를 숙이고는 합니다.
제가 쓴 글인데도 카타콤소식의 이삭칼럼을 읽으면서 또 웁니다. 오늘도 울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저기 저 북한의 성도들을 생각하며 웁니다.
남한의 교회를 보며 회개하며 울고, 저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몸부림치면서 웁니다.
선교지의 선교사님들과 사역자들을 생각하며 감사해서, 가족들의 정성 어린 모습과 사심 없는 헌신을 보며 감사해서 웁니다. 한국과 저를 위해 기도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음을 볼 때 감사해서 웁니다.

 

‘울보 목사’ 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래! 못난이지.’ 하며 웃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하와이에 있는 한 선교 단체에서 만났던 한 분이 저를 위해 기도하면서 ‘예수님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 일을 해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십니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창 밖을 내다보며 예수님이 저 같이 부족한 자에게 고마워하시는 것이 감사하여 눈물을 흘렸습니다.
울보라도 좋습니다. 한 영혼이라도 주님 앞에 돌아오도록 쓰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다윗이 푸른 초장이라고 불렀던 땅은 정말 작았지만, 여호와를 찬양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제게 주어진 한 영혼을 위해 쓰임 받았다면, 이보다 더 큰 영광은 없습니다. 그래서 감격해서 웁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러한 감격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여러분의 기도와 헌신을 통해 한 영혼이 주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된다면, 이보다 더 큰 영광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북한과 중국 그리고 아랍과 이스라엘, 더 나아가 세계 열방의 교회들을 일으켜 한 영혼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영광스런 일을 행하고 계십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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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평양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저는 그 말을 해야 했습니다. 평양의 고려호텔 1층 별실 식당에서 공산당 당원들에게 전했습니다. 판문각 별실에서도 소좌와 19명의 북한 군인과 당원들에게, 또 한번은 한 명의 북한 안내원 앞에서 말해야 했습니다. 그들과 나눈 주제는 다름 아닌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용서의 예수 그리스도’ 였습니다. 저는 그 말을 하기 위해 북한에 보냄 받았다고 믿었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평양과 판문각, 그리고 북한의 기차 안에서 그 말을 해야 했습니다.

 

제가 목사라서 이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누구든지 예수님의 십자가로 죄를 용서받은 사실을 고백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대상이 누군지는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들을 귀 있는 자, 제가 전해야 할 대상이라면 말했을 뿐입니다. 그것뿐입니다. 누구든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에게 말을 해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그곳에 가게 하신 목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 그리고 은혜’를 전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따라서 평양이라는 이유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저도 맨 처음 평양에 방문했을 때,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말은 꺼내지도 못했습니다. 김일성의 동상이나 시체 앞에서 절을 하지는 않았지만, 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말하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만 나누고 돌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책망하셨습니다. 그 뒤로 저는 더 이상 설교를 회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복음을 전한 일로 인해 어려움이나 불이익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말해야 했습니다. 실제로 복음을 전한 뒤 저는 북한 당국으로부터 입국 거부를 당했습니다. 온갖 비난의 소리와 욕지거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렇다고 북한 선교 사역을 중단할 수는 없었습니다. 방송으로 그들에게 말씀을 전했고, 사역할 일꾼을 키워서 들여보내기도 하고 들어가는 일꾼을 통해 전도지를 살포했습니다. 그렇게 편지와 작은 책자, 성경과 전도지를 보냈습니다. 무리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영혼 구원을 위해서라면 구체적인 방법을 강구했습니다. 무엇인지 궁금해서 힐끗 힐끗 쳐다보는 그들의 눈에 띄게 할 방법도 동원하고, 훔쳐 보고 듣게도 했습니다. 기독교 서적을 잔뜩 모아 폐지 속에 함께 보내보기도 합니다. 그것을 정리하는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중국에 나와서 쌀이나 의약품을 가져가는 북한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던진 말 한마디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수 믿으라요.” 라는 말 한 마디를 들려주기 위해 온갖 정성을 들였던 조선족 할머니는 지금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할머니는 많은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했습니다. 할머니가 그 일을 하도록 모퉁이돌선교회는 소리 없이 할머니의 필요를 공급해 드렸습니다. 쌀, 밀가루, 따뜻한 양말, 속옷, 용돈… 그리고 주석 성경도… 이것들은 바로 여러분들이 믿고 보내 준 현물과 헌금으로 보내진 것들이었습니다.

 

저는 꿈을 꿉니다. 한국의 젊은이들을 키워서 북한을 지나 예루살렘까지 그리고 전 세계로 파송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꿈입니다. 지금도 젊은이들과 함께 일본, 중국, 미국, 이스라엘 등을 동행하며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이 전 세계로 나아가 전해야 할 말이 무엇일까요?
“예수 믿으라요.”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주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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