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지 소식] 핍박에도 모두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전도하는지 모릅니다 (2023.4)

현재 A국의 전도훈련 사역은 남부가 활성화되고, 북부는 훈련을 시작하지 못한 곳이 꽤 있다. 하나님이 북부 지역에서 전도에 열정적인 목회자나 리더들을 찾아서 훈련시키라는 마음을 계속 주셔서 야간 버스로 7시간, 다시 차로 1시간 이상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한 소수민족 산지로 들어갔다. 전도훈련을 받은 어느 목사님의 도움으로 63개의 교회가 개척된 곳이었다. 그중 한 교회는 전도사 어머니의 집에 150여 명이 모이고 있는데 아주 낡은 나무 집에 흙바닥에 앉아서 예배함에도 교인들이 다 모일 수가 없어서 교회 건축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곳에서 5시간 반을 달려서, 우리는 또 다른 북부 산지에 있는 소수민족 교회를 방문했다. 허물어질 것 같은 낡은 건물에 80여 명의 성도가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정말 감동이었다. 또 다행인 것은 전도훈련이 아주 활성화되어서, 최근 한 명이 석 달 동안 30명을 전도하고, 두 달 동안 60명의 어린이가 전도되는 영적부흥이 일어난다는 보고를 받았다.

북부 OO족에는 7개의 교회가 개척되었다. 옥수수밖에 기를 수 없는 아주 척박하고 가난한 지역에 교회가 들어선 것은 그 부족 말을 하는 청년 한 명이 80km를 오토바이로 달려서 매주 쌀 2-30kg을 갖다 주며 금요일에서 주일까지 설교하고 복음을 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게 전도된 사람이 7개 교회의 200명 성도였다. 풍년의 신을 섬기는 그 땅 백성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졌다. 더하여 전도 훈련이 된 한 청년을 통해 복음을 전파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눈물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중부 산지의 OO족 교회는 말기암 환자인 한 사모님이 7명의 부족 사람에게 전도 훈련을 시키고 복음을 전해서 200명이 모이는 교회가 되었다. 이 사모님은 삼 개월마다 두 주 동안 항암 치료를 받기 위해 입원하는데, 자신의 주치의에게 전도폭발을 가르쳐서 전폭 강사가 되게 했다. 그뿐 아니라 병원 입원 기간 동안 암 환자들을 전도해서 병원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원래 이렇게 모이면 공안에 잡혀가야 하지만 주치의의 도움으로 주일에는 40여 명이나 모인다. 하나님께서 상상을 초월해서 역사하는 기적들이 사모님을 통해 많이 일어나고 있다.

“복음을 전파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눈물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 사모님이 개척한 OO족 교회 성도들은 자신이 사는 마을에서는 예배를 드릴 수가 없어서 50km, 90km 떨어진 교회 근처로 이주해서 신앙을 지킨다. 이들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나라의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해 아주 가난하게 산다. 화장실도 없고, 물이 오염돼 마실 물도 없고, 아이들 학교도 지역 우선 배정을 해 주지 않아서 먼 곳으로 다녀야 하고, 학비 지원이나 의료 보험 혜택도 없다. 개척 초창기에는 많은 성도들이 예배를 드린다는 이유로 공안에게 잡혀가서 감금당했다. 임신부가 맞아서 유산되는 일도 있었고 어떤 이는 끌려가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직 소식이 없다. 사모님도 복음을 전하다가 공안에게 잡혀갈 뻔했는데, 성도들이 강하게 반발해서 공안들이 철수해서 무사했다고 한다.

우리 전도훈련 리더 중 한 명이 자신의 고향에 세운 교회에도 공안이 전화해서 다시는 마을에 다니며 전도하지 말고 모임도 절대 갖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고 한다. 마침 그곳에 함께 전도하러 간 다른 리더들이 그 소식을 듣고는 교회에 앉아서 눈물로 간절히 기도했다. 교회가 세워진 마을은 가난과 마약, 폭력, 도박 문제가 정말 심각한 곳이다. 그 패역한 땅에 있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기억하시고 구원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져서 리더들은 교회 바닥을 구르며 “주여!” 하며 울부짖었다고 한다. 주님, 이런 핍박과 여러 힘든 일 가운데서도 복음을 위해 최선을 다해 헌신하는 모두의 안전과 건강을 지켜 주시며 하늘의 복으로 넘치도록 축복하여 주소서.

그래도 감사한 것은 이런 중에도 리더들이 동네의 가난한 집들을 찾아다니며 우리가 보낸 옷과 식료품을 전달하며 방문했다는 점이다. 온갖 어려움에 둘러싸여서도 어떻게든지 포기하지 않고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섬기는 리더들이 너무 존경스럽고 감사하다. 형제자매들의 눈물겨운 헌신이 있기에 이 땅과 교회는 소망이 있다. 주님, 이들이 핍박을 잘 이겨내며, 어떤 상황에서도 복음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고, 더욱 힘을 내어 전도할 수 있도록 지키시고 인도하소서. 주님의 긍휼을 구합니다.

“형제자매들의 눈물겨운 헌신이 있기에
이 땅과 교회는 소망이 있다”

A국 모 지역에는 병원 전도팀이 있다. 우리는 암 전문병원 옆에서 그들이 전도하는 2시간 반을 기도하며 기다렸다가 같이 식사했다. 팬데믹을 지나는 동안 A국의 의료체계가 붕괴되어 암 환자가 더욱 증가했고, 병원에는 외부인 접근 금지 팻말이 붙었다. 그래서 병원 전도팀은 병원 근처에 있는 싸구려 여관들을 전전하며 보호자들을 전도하고 있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그날 하루만 33명을 전도했다고 하니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님, 병원 전도팀의 헌신을 통해 더 많은 영혼이 구원되어서 주님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축복하소서.

모두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훈련하며 전도하는지 모른다. 전도를 위해 몇십 킬로씩 시동도 제대로 걸리지 않는 오토바이를 타고 사람들을 훈련시키고 전도하러 다니는 너무나 충성스러운 전도자들의 헌신에 눈물만 났다. 거의가 자비량으로 평신도와 목회자들이 어렵지만 열정적으로 사역하며 살고 있었다. 가는 곳마다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도자들을 통해 놀랍게 일하시는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하고 찬양한다.

인도차이나에서 OO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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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 특집] 2023, 변화하는 선교 전략 (2023.4)

“북한도 복음화하라”
“북한 지하성도에게 성경을 보냅니다”
“복음의 밀수꾼”
“평양함락작전”

아마 모퉁이돌선교회 회원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음 직한 친숙한 문구들일 것이다.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이 문장과 단어 뒤에는 모퉁이돌선교회의 중요한 선교 전략이 숨어 있다. 모퉁이돌선교회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선교 비전인 ‘평양에서 예루살렘까지’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잃은 양을 찾아 위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삼아 성령님과 함께 사역합니다”를 선교 전략으로 채택하여 ‘성경 배달, 신학교 배달, 선교사 배달, 교회 배달, 구제 배달’의 5가지 배달을 구체적인 선교 전술로 사용해 왔다.
지난 38년 동안 모퉁이돌선교회는 복음이 제한되고 핍박받는 지역인 북한, 중국, 아랍 국가,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말씀을 배달하는 사역에 집중했다. 코로나 상황을 지나면서는 대면으로 지도자를 양성하고 성경을 배달하던 방법을 지양하고, 온라인과 디지털을 활용해서 성경을 배달하고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에 더 치중했다.
이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시기에 하나님께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으며 기도하던 중 “나라를 넘어 민족으로”라는 말씀과 함께 선교의 비전을 넓히라는 마음을 주셨다.

#선교 전략 1

“나라가 아닌 민족으로”

요한계시록에는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이라는 표현이 여러 군데 등장한다. 특별히 요한계시록 7장 9~10절은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 중에서 나와 흰 례복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그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웨치기를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께 있도다 하니”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족속 즉, 민족이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라가 아닌 민족으로” 선교 전략을 수정하게 되면 북한이 아닌 북한인으로, 중국이 아닌 중국인으로 선교의 지경이 확장된다. 다시 말해 북한인, 중국인, 중국 소수민족인, 아랍인, 이스라엘인, 유대인이 우리의 선교의 대상이 되어 북한 안에 있는 북한 사람만이 아닌 북한인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말씀을 배달하는 것이다. 2021년 성탄절을 기해 한국에 있는 3만 5천 명의 탈북민에게 “남북한 병행성경”을 성탄 선물로 나누는 ‘마중물 성경 배달’ 사역을 진행했다. 그때 그들의 언어로 된 성경책을 받아 든 탈북민의 얼굴에 기쁨이 넘치는 것을 보았다.
“나라가 아닌 민족으로” 선교 전략을 변경할 경우 한국에 와 있는 탈북민도, 중국에 있는 탈북자도, 러시아나 몽골에 있는 탈북자도, 해외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도, 여러 이유로 북한으로 돌아가지 못한 북한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 있다.
지금까지 모퉁이돌선교회는 중국어 성경을 중국 내부로 보내왔다. 그런데 코로나 시기에 접어들면서는 중국 밖에 있는 중국인들에게 성경을 배달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을 비롯한 전 세계에 유학생과 노동자 등의 신분으로 흩어져 있는 중국인들에게 성경을 전달한 것이다. 물론 선교회의 비전에 맞춰서 평양에서 예루살렘까지의 지역 안에 있는 중국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보냈다. 이제 “나라에서 민족으로”라는 새로운 선교 전략에 의해 중국 내에 있는 중국인은 물론이고 중국 밖에 있는 중국인들에게도 성경을 보내어 중국인 복음화를 확장하게 될 것이다.

#선교 전략 2

“이주민에게도 복음을”

“나라가 아닌 민족으로”라는 선교 전략에는 한 가지 더 고려할 부분이 있다. 바로 “이주민”이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와서 살고 있는 조선족들도, 중국인들도, 베트남에서 한국에 시집온 사람들도 모두 이주민이다. 그들도 복음을 들어야 한다.
지난 몇 년간 코로나 등 여러 가지 제약으로 인해 직접 선교지에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런데 이미 한국 땅에는 해당 선교지에서 들어와 살고 있는 2백만 이상의 이주민이 있다. 우리가 가지 못하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내 주셨다. 한국에 온 이주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새로운 두 번째 선교 전략으로 삼고자 한다.
지금까지 모퉁이돌선교회는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등 인도차이나 반도에 선교사를 파송하여 사역해 왔는데 이제는 한국에 들어와 있는 베트남인, 라오스인, 미얀마인, 캄보디아인에게 복음을 전함으로써 더욱 효과적이고 적은 비용으로 이들을 훈련시켜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선교를 감당하게 될 것이다.
아랍에서 온 사람들에게 성경을 나누어 주고 복음을 전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이들이 한국어를 배우려는 열심과 노력이 정말 커서 우리가 그들의 언어를 배워서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더 빠르고 쉽다는 것이다. 또한 예전에 예멘에서 온 난민들에게 아랍어 만화 《메시야》를 전달한 적이 있다. 그들이 한국에 정착하면서 전파가 이뤄지는 것을 보면서 이주민 선교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특별히 평양에서 예루살렘까지의 선교지 대부분이 복음이 제한된 지역이기에 이주민 선교는 이들 지역으로의 선교 확장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선교 전략 3 3

“통일이 아닌 개방될 때”

지금까지 우리는 ‘통일’이라는 말에 매여서 매몰된 측면이 있었다. 마치 통일이 되면 순식간에 북한이 복음화될 것 같은 착각 속에 빠져 있었다. 물론 정치적인 통일이 되면 북한 방방곡곡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북한인들로 예수를 믿게 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거기에 방점을 두고 모퉁이돌선교회는 선교 전략적인 복음통일을 강조해 왔다. 나아가 통일이 되는 과정에서 복음으로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중요성을 가지고 모퉁이돌선교회는 기도해 왔다. 그 시간이 벌써 휴전 70년을 넘어가고 있다.
많은 교회들이 통일이 되었을 때 북한에 가서 교회를 짓겠다고 자금을 모아 놓고 기다리는 실정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통일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민족적인 차원의 통일을 북한 주민이 하나님을 자유롭게 믿는 것보다 우선 순위에 두는 경우가 많음을 보게 된다. 정치적인 통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먼저 이행되어야 하는 것은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어가는 북한 영혼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그들이 하늘나라를 누리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목적이 되어야 한다.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죽어가는 영혼들이 북한에 있다. 그들에게 복음이 필요하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통계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가 통일 시 자신들이 비용을 분담하게 될 것을 우려해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나님은 한국 성도들을 향해 “북한도 복음화하라”라고 말씀하셨다.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어가는 영혼들이 북한에 있기에 통일된 이후에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북한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전략을 따라 북한의 문이 열리도록 우리는 기도하여야 할 것이다. 통일은 복음을 전하기에 좋은 환경이 될 것이다. 그러나 통일만을 기다리지 말고 기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북한이 개방될 때까지 부지런히 복음을 전하여 북한의 모든 백성이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북한 선교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2023년부터 모퉁이돌선교회는 첫째는, 나라에서 민족으로 개념을 전환하고 둘째는, 국내에 거주하는 이주민을 향해 복음을 들고 갈 것이며 셋째는, 통일이 아닌 북한 개방의 때를 바라보고 이를 위한 선교를 실행해 나갈 것이다.

이반석 목사(본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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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온 편지] 예수님으로 인한 구원의 노래로 가득한 그날이 오기를 (2023.4)

북한 내부에서 보낸 짤막한 편지이다. 달포 전쯤 주변과 나누라고 신신당부하며 쌀값을 보냈는데 북한 성도에게 안전하게 전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OO 일꾼을 통해 북한의 많은 가족과 성도가 지난해 위로받고 생명을 연명하는 귀한 일이 일어났다. 길가를 배회하는 고아, 굶고 있는 가정, 쓰러져 가는 주변의 가정을 조건없이 도우라는 부탁에 적게는 350여 명의 인원이 혜택을 받았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은 최근까지도 검열과 감시가 심해서 일꾼들과 연락하려면 얼마나 신경을 써야 하는지 모른다. 소식을 자주 전할 수 없는 노릇인 데다 초 단위로 끊어서 통화를 해야 한다. 한 달이 지났는데 일꾼들에게서 기별이 없으면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설마 잡혀간 것은 아닌지 가슴 졸이며 전전긍긍하다가 다시 연락이 닿으면 하나님께서 이들을 눈동자같이 보호하심을 보게 된다.

전화든 문자든 어렵지만 일꾼들과 선을 댈 때면 우선적으로 복음을 전하려고 애를 쓴다. “예수님이 우리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셨어. 꼭 하나님 믿고 기도해.” 만나서 충분히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지만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저들이 구원받기를 원하는 우리의 마음이 북녘 땅에 사는 모두에게 가 닿기를 기도한다. 어둠과 고통으로 가득 차 울부짖는 저들의 신음소리가 머지않아 예수님으로 인한 구원의 노래로 가득한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2023년 올해는 북한에 지독한 가난이 몰려올 것이라는 안타까운 소식들이 넘쳐난다. 길어지는 봉쇄와 탄압, 그리고 통제와 감시도 더 심해질 것이다. 아직 봄이 채 무르익지 않았는데 벌써 굶어 죽는 사람이 늘어난다고 하니 참으로 걱정이 크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큰 일을 행하고 계심을 믿는다. 또한 작년에 이어 계속적으로 식량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금년에는 좀더 확장해서 다양하게 전하려고 기도하며 준비 중이다. 우리로 심게 하신 이 사역을 통해 연결된 북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과 얼굴을 마주할 그날이 곧 오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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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 특집1] 지금은 중국 교회와 함께 선교할 때입니다! (2023.3)

지난 30~40년간 중국 교회는 끊임없는 핍박과 탄압에 직면했지만 동시에 유례없는 부흥의 시기를 지나왔다.
오롯한 하나님의 은혜였다. 수많은 영혼이 주께로 돌아오는 놀라운 중국 부흥의 선봉에는 한족 교회가 있었다. 한족이 사는 마을과 도시마다 교회가 들어섰고, 교회가 없는 지역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복음화가 이루어졌다. 중국 교회의 폭발적인 부흥의 역사의 산증인이자 고난의 한복판에서 믿음을 지켜 온 중국의 00사역자는 이제 한족 교회가 일어나 중국 전역에 흩어진 55개의 소수민족과 열방으로까지 나아가 선교를 감당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중국 교회가 선교의 대상이 아닌 선교의 주체로서 세계 교회와 함께 빛을 발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그가 구술한 내용을 그의 간증과 함께 정리해서 나눈다.

엄정한 정치 현실에도
신앙만을 붙든
믿음의 선배들

저는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그러다가 대학에 와서 친구의 전도로 교회에 가게 됐습니다. 신기한 것은 예배당이란 곳에 처음으로 가서 앉았는데 불현듯 “앞으로 내가 전도사가 되겠구나. 내가 저 강단에 서게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때만 해도 유명한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던 터라 “세상에서 성공하고 명예를 얻어야지. 사회적 지위가 없는 전도사는 안 돼.”라며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거부했습니다.
어느덧 예배가 시작되고 난생 처음 듣는 이야기들이 귓가에 들려오는데 무슨 뜻인지는 통 모르겠으나 찬송을 하고 말씀을 듣고 기도를 하는 가운데 여태껏 살면서 느끼지 못했던 위로를 받으며 많은 눈물을 쏟았습니다. 그렇게 교회에 간 첫날 저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집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저를 교회로 인도한 친구가
“예수님을 믿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주저없이 “믿는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날 내 인생을 내가 지배하며 살겠다던 자아를 하나님께서 깨셨습니다. 철옹성처럼 단단히 문빗장을 걸어잠근 자아에 균열이 생기자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도, 보란듯이 성공하겠다는 꿈도 사라지고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며”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가난한 심령이 되어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몇 달 후 겨울방학이 되어 한국 선교사님과 함께 만주 지역을 둘러볼 기회를 가졌습니다. 곳곳을 다니며 제가 받았던 감동은 문화대혁명이라는 엄연한 정치 현실 속에서도 정말 많은 분들이 신앙을 지켜온 것에 대한 경외감이었습니다. 혼자 예배를 드리고 밤중과 새벽에 가만히 기도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믿음이 흔들리지 않은 신앙의 선배들이 무척이나 대단해 보였습니다.

천하의 겁쟁이가
용감해질 수 있는
놀라운 변화

여행에서 돌아와 일대일 제자 양육을 받으며 하나님과 신앙에 대해 계속해서 알아갔습니다. 그러던 차에 어느 날 선교사님이 제 이름을 부르시더니 “영생을 얻었습니까?”라고 물어보셨습니다. 그건 제가 알 수 없는 영역이라고 판단되어 모르겠다고 답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하고 다시 질문하셨습니다. 저는 “예,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선교사님은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이미 영생을 얻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마치 제방에서 물이 터져 나오듯 제 마음에 영생의 기쁨과 구원의 확신이 샘솟았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무서움이 많고 죽음을 무척 두려워하던 겁쟁이였습니다. 밤에는 형이나 동생 없이 밖에 나갈 엄두도 못 냈습니다. 그런데 영생을 얻었다는 확신이 들자 “나는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다. 나는 죽을 준비가 됐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사람은 사고, 질병, 노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한 번은 죽지 않습니까? 기왕에 죽을 바에야 하나님을 위해서 죽는다면 얼마나 영광스러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하의 겁쟁이가 이렇게 용감해지다니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저에게 영생이 확실한 사실로 각인됐습니다.
또 그때 느낀 점 하나는 “하나님께서는 정말 나를 선택해서 전도사로 쓰기로 작정하셨구나. 만약 내가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이 작정하신 길을 걷지 않는다면 나이 칠십이 되어도 죽을 수가 없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다는 사실이 너무나 강하게 다가왔기에 저는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하기로 결단했습니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를 하나님의 종으로, 전도사로 불러 주셔서 인생을 하나님을 위해 살게 해 주심을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할 때 성령 충만이 저에게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마음속에 가득 찼고 기쁨과 자유가 넘쳤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제 인생의 주인이 되셨다는 구원의 확신이 들었습니다.

부흥의 황금기를 지나
중국 본토에
뿌리내린 기독교

하나님이 부르신 것을 확인하자 곧바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몇 명으로 시작한 교회는 곧 천 명이 모이는 규모로 불어났습니다. 목회자 개인의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당시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중국 교회가 성장하는 시기였습니다. 농촌 교회는 1970년대 후반부터, 도시 교회는 1980년대 후반부터 부흥의 황금 계절을 맞았습니다. 중국 농촌에서부터 도시에 이르기까지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또한 각 마을마다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1989년에 발생한 천안문 사태는 중국 사회는 물론 중국 도시 교회에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 중국 지식인들이 세상적인 지식에서 빠져나오는 시간이었습니다. 대학생을 비롯한 수많은 지식인들이 미국 문화의 배후에 있는 기독교에 대해 굉장한 호감을 갖고 접근하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는 교회에 정기적인 모임이 생기는 족족 사람들이 모여드는 시기였습니다. 평생 교회의 ‘교’ 자는커녕 예수님의 ‘예’ 자도 못 들어본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합니다”는 말에 눈물을 흘리고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습니다. 대학생들은 자발적으로 기독교 모임을 만들고 그 모임이 추후에 교회로 발전했습니다. 대학생뿐만 아니라 대학 교수,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는 엘리트들이 교회에 와서 교인으로 등록했습니다.
지난 30~40년 동안 중국 교회는 하나님이 베푸시는 놀라운 부흥과 성장을 경험했습니다. 핍박 중에도 오직 하나님만을 경배한다는 신앙의 원리를 고수하며 인내했기에 몇십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은 기독교가 중국 본토에 뿌리를 박았습니다. 기독교는 더 이상 서방 종교가 아닌 중국인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중국에만 400여 미전도종족이있습니다

제 책상 앞에는 작은 중국 지도가 있습니다. 평원, 고원, 분지 같은 중국의 지형 특징이 잘 드러나는 지형도인데 중국의 복음화 현황 또한 직관적으로 잘 보여줍니다. 지형도의 동부는 주로 평야 지대로 한족이 거주하는 지역입니다.
하루는 이 지도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자니 문득 중국 동부의 교회들이 부흥했다는 사실이 눈에 띄었습니다. 중국 교회의 부흥은 사실상 한족 교회의 부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족이 사는 지역 치고 교회가 없는 곳을 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베이징, 상하이와 같은 큰 도시에만 몇백 개의 교회가 세워져 있고 시골의 경우에는 비록 마을마다는 아니어도 적어도 진이나 향 단위에 교회가 들어서 있습니다.
한족 이외에도 여러 민족이 중국의 광활한 지역에 분포해서 살아갑니다. 소수민족의 일부는 수천 또는 수만 명이지만 많게는 백만, 심지어 천만 명이 넘는 민족도 있습니다. 중국 정부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중국에는 56개의 민족이 존재합니다.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을 합쳐서 56개 민족이라고 하는데, 선교학적인 관점에서는 490여 개의 족속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들의 90%가 미전도종족입니다. 중국 소수민족은 대부분 복음을 듣지 못했고, 비록 복음을 들었다 해도 교회가 없거나 그리스도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성숙한 일꾼이 없는 곳이 태반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장에서 주님은 ‘모든 족속’에게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19절에 등장한 ‘족속’의 의미를 깊이 있게 생각할 때 한족 교회가 자국의 소수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자기 지역에서 자기 민족에게 가는 것은 지역 교회가 감당할 당연한 본분이라 할 것입니다.
부흥한 한족 교회가 미전도종족인 소수민족 선교를 책임져야 합니다. 한족이 사는 지역에는 곳곳마다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미 복음화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성장할 대로 성장한 한족 교회가 선교를 위해 일어날 시기가 무르익었습니다. 더 이상 선교를 받는 교회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선교하는 교회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중국선교가 아닌
중국 교회와 함께 선교하자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자국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동시에 “모든 민족”을 향한 선교 사역을 병행하는 것입니다. 저는 중국 교회가 첫째는 중국의 미전도종족인 소수민족을 향해, 둘째는 세계 선교를 위해 나가야 한다는 성령의 감동을 받았습니다.
현재 중국 교회가 그러한 선교를 감당할 만큼 성장하고 성숙했는가를 자문할 때 지난 3년간 ‘미션 차이나’ 선교 대회를 통해 중국 교회의 선교 의식이 강화되었습니다. 또한 최근 몇 년간 초교파 선교 기관과 선교 훈련이 늘어났으며 수백 명의 형제자매가 선교에 기꺼이 헌신하고 있습니다. 타문화 단기선교 역시 교회에서 점점 보편화되는 추세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중국 교회가 선교를 위해 준비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입니다.
중국 교회, 특별히 한족 교회가 힘을 합쳐서 “모든 민족”을 복음화할 때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새로운 종교사무조례의 시행으로 탄압받는 지금 과연 선교가 가능한가 하고 반문합니다. 중국 도시 교회와 시골 교회가 침체된 상태인 것도 이런 발언에 힘을 싣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예루살렘 교회가 박해를 받음으로 신자들이 어디에서든 말씀을 전파할 기회를 얻었다는 사도행전의 기록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권의 박해가 있는 지금이야말로 교회가 선교할 적기일 것입니다.
지금은 “중국을 선교하자”가 아닌 “중국 교회와 함께 선교하자”가 타당한 구호라고 생각합니다. 해외 선교사들과 중국 교회가 손잡고 미전도종족으로 가야 합니다. 선교는 소수민족, 즉 중국 미전도종족에게서 멈출 수 없습니다. 해외에 있는 수많은 미전도종족에게로까지 미쳐야 합니다. 열방 선교는 주님의 지상명령이기에 오랜 세월 하나님의 은혜로 성장한 중국 교회가 오늘의 책임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열방을 향한 선교의 비전에 중국 교회가 세계 교회와 동참해서 실제적인 행동으로 반응할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중국 교회를 위한 여러분의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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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특집 2] 은혜를 힘입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빛입니다! (2023.3)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주제로 진행된 제66회 선교 컨퍼런스 성경 공부 내용의 일부를 발췌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우에 떠올랐음이라
보라 어둠이 땅을 덮고 짙은 어둠이 만민을 덮을 것이나 여호와께서 네 우에 떠오르시고
그의 영광이 네 우에 나타나리니 모든 나라가 너의 빛으로 나오고 임금들이 너의 새벽 광채로 나오리라
(이사야 60:1~3, 남북한 병행성경 북한어)


흑암을 덮는 하나님의 생명의 빛

이사야 60장 1절은 “빛이 되어라 왜냐하면 너의 빛이 이미 와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영광이 내 위에 펼쳐졌다 그러므로 너는 일어나 빛을 발할 수 있다”로 의역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 스스로 “어떻게 빛을 낼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고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빛이 될 수 있도록 여호와의 영광이라는 조치를 취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영광이 어떤 상황에서 임합니까? 2절은 짙은 어둠이라고 말합니다. 이어지는 구절에서는 하나님이 캄캄함을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생명의 빛으로 감싸서 나타내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흑암 가운데를 덮듯이 주시는 생명의 빛이 우리 가운데 떠오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캄캄함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 박해받는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의 처지가 바로 이 캄캄함과 어둠이 아닐까요? 하지만 이사야서에 기록된 대로 여호와께서는 그 캄캄함과 어둠 위에 계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여호와의 영광으로 감싸서 생명의 역사를 계속해서 이뤄가고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이사야 60장은 시온의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주신 명령입니다.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이 어둠 가운데 있을 것이지만 회복될 것이고, 더 나아가서 종말에 세상은 어둠 가운데 있을 것이지만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으로 감싸고 계실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우리에게도, 또한 북한 성도에게도 이 말씀이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어두움 가운데 있는데 캄캄함에 눌리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가 고난 가운데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만 경험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 그 특권을 통해 열방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 나아오게 하십니다.


순종하여 빛으로 드러내는 하나님의 영광

잘 아시는 것처럼 핍박받는 북한 지하교회가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 일면에는 북한 성도들이 어려운 중에도 자신의 것을 나눠주는 모습이 있습니다. 외부의 손길을 통해서 구제로 받은 것을 이웃과 나누는데 이것으로써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이 열립니다. 북한 성도들이 그저 선행을 베풀었다면 그들이 고마운 마음은 가질 수 있겠지만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까지 연결되지는 못했을 겁니다. 북한 성도들이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구제를 통해서 전도가 되고 교회가 확장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룻기에서 보아스가 취한 행동을 선행 또는 구제라 할 수 있습니다. 보아스의 구제에 나타난 결정적인 특징은 하나님의 율법에 철저하게 순종했다는 점입니다. 보아스는 룻이 예뻐서라거나 룻을 탐내거나 불쌍히 여겨서가 아니라, 그 일이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규정을 따르는 것이고 가까운 친척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순종한 것입니다. 그의 순종에는 큰 손해가 따랐습니다. 죽은 친족의 아이를 낳아서 땅의 소유권을 넘겨줘야 되기에 손해를 감수해야 했지만 그는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에 순종해서 룻을 아내로 맞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빛을 발하라”, “빛이 되어라”라고 하시는 것은, 그 빛으로 사람들에게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부름 받은 은혜를 드러내는 성도의 삶을 살아야 될 뿐만 아니라 등받침 우에 놓인 등불처럼(마5:15-16)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빛을 낼 때 우리는 무엇을 조심해야 할까요?. “나의 심신을 회복시키시고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나를 바른 길로 이끄신다”는 시편 23편 3절 말씀을 꼭 기억하십시오. 순간 순간 사건 사건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구해야 합니다. 비록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다 순종할 수 없고 또 무너질 때도 있지만 내가 빛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빛의 반사체로서 주의 은혜에 힘입어 빛을 발하는 저와 여러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보아스 목사(본회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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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성도 이야기] 한 생명이 죽어 두 영혼이 구원되는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2023.3)


“성경을 배우러 가던 길에 병이 났습니다.”

2013년 6월에 두 명의 영혼을 살린 후 하나님의 품에 안긴 신실한 북한 성도이자 일꾼인 어느 형제의 이야기입니다. 그 북한 형제는 중국을 여섯 차례 왕래하며 A 선교사를 통해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2013년 초에 북한으로 돌아가 친척 형제와 이웃의 한 청년에게 예수를 소개했습니다. 그들에게 성경 공부를 시키기 위해 그 형제는 몇 달 후 그들을 데리고 중국에 나왔습니다.

북한 형제와 그의 친척과 이웃, 즉 세 사람은 압록강을 건너 버스로 3시간 거리에 있는 목적지를 향해서 부지런히 이동했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중국의 한 변방 도시를 통과해서 가려니 그곳의 경계가 무척 삼엄해서, 버스 대신 산을 타고 우회해야만 했습니다.

버스로는 3시간이지만 산길로는 15일이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방도가 없었기에 그들은 산속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걸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2일전인 13일째 되던 날 갑자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앞서 가던 북한 형제의 온 몸에 열이 난 것입니다. 그는 몹시도 괴로워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두 사람은 애가 탔지만 깊은 산중에서 약을 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저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습니다. 밤새 사경을 헤매던 일꾼은 야속하게도 몇 시간 후에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졸지에 둘만 남게 되자 일꾼의 안내를 받고 있던 그들은 정확한 목적지의 위치를 모르는 참으로 막막한 처지가 됐습니다.

“예수님처럼 영원한 생명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행여 길을 잘못 들기라도 해서 산을 지키는 중국 군인들에게 발각되면, 그대로 북한으로 잡혀가서 고초를 당할 것이 불 보듯 뻔했습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는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여기까지 안내하고 죽은 일꾼을 땅에라도 묻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한 두 사람은 삽을 빌릴 데가 없나 하고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마침 근처에 중국인 노부부가 사는 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집을 노크해서 사정을 이야기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손짓 발짓 다 동원해서 조선말과 중국어로 소통을 시도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노부부는 근처에 사는 조선족에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조선족이 달려와서 보니,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 조선족이 교회 권사님이었고, 북한에서 넘어온 사람들을 돌보고 훈련시키는 분이셨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조선족 권사님은 교회 청년을 불러서 무덤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두 형제를 데리고 가서 성경 공부를 시켰습니다. 한 달간의 성경 공부가 끝난 후, 두 형제는 죽은 일꾼을 기억하고 울부짖으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 가족이었고 이웃이었던 형제,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소개하고 돌아가신 그 형제는 바로 우리 두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이제 나 같은 죄인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신 주님을 전하며 살겠습니다. 형제님, 감사합니다. 천국에서 다시 뵈올 그날까지 주님께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겠습니다. 고향에 돌아가서 형님이 하시던 복음 전하던 일을 이제는 저희들이 감당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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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특집 1] 성탄 선물로 전해진 하나님의 사랑 (2023.2)

안녕하십니까!
저번에 큰 도움을 받을 때로부터 벌써 몇 년이 흘렀는데 또 이렇게 편지를 올리게 됩니다. 그동안 주신 도움 덕분에 밥도 굶지 않고 겨울에 나무와 석탄 마련해서 춥지 않게 지냈습니다.
그리고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야 한다던 선생님의 말씀처럼 동네 부모 없는 집에 쌀을 보태 주었습니다. 어려운 사람이 한둘이 아니지만 도와주는 것도 눈치가 보이는 세상입니다.
요즘은 겨울이 닥쳐왔지만 김장 못한 집, 땔 거 없어 한지 같은 집에서 사는 사람들, 장사를 할려 해도 심한 단속 때문에 너무 어렵습니다. 내년 봄까지만 버틸 수 있게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작년 11월경 북한에서 보내온 편지이다. 강추위가 몰아닥치는 겨울이면 북녘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연락이 부쩍 늘어난다. 이들의 간절한 기대와 호소에 응답하듯 지난해 연말에 진행된 ‘북한 성도에게 성탄 선물 보내기’ 캠페인에 많은 사랑의 손길이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북한 4인 가족의 한 달치 식량을 1,550 가정에 지원할 수 있는 큰 금액이 모였다. 그중 일부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에게 이미 전달이 되었고, 문이 열릴 때마다 한국 성도들의 따뜻한 마음을 북녘에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번에 성탄 선물을 준비해서 보내는 과정에서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던 북한 사람과 연락이 닿았다. 한 탈북 성도와 한 북한 형제에게 있었던 이야기를 통해 지금도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가 북녘 땅에 전해지고 있음을 나눈다.

하나님이라는 말에 모든 의심은 사라지고

성탄 선물을 보내기 위해 북한 성도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중의 한 사람, 20년 전 북한에서 복음을 나눴고 함께 기도했던 친구를 하나님께서 기억나게 하셔서 그곳에 있는 일꾼을 통해 수소문했다. 그러던 차에 밤 늦은 시간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둘러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시오.” 수화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00였다. 심장이 떨리다 못해 멎는 듯했지만 가까스로 “너 OO가 맞아?”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대뜸 하는 소리가 “이렇게 큰돈을 왜 보냈시요? 내가 조용히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영문 모를 돈을 보내주어 께름해서 못 받겠소.”라며 극구 사양을 했다. 그러면서 여기서 그쪽으로 간 사람들 대부분이 생활상 고난이 많고 직장 구하기도 어렵다고 하던데 이 돈을 어떻게 보냈는지 알려 달라며 집요하게 질문했다.
“OO가 알다시피 나는 하나님을 믿어. 하나님은 00도 돌보시고 돕기 원하셔서 나를 심부름시킨 것일 뿐이야. 그러니까 00도 생각날 때마다 기도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으면 좋겠다.”
이 말을 들은 OO는 의심을 거두고 더 이상 질문도 하지 않고 오히려 연신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순간, 이 친구가 옛날 우리의 교제를 기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라는 세 글자에 마음이 눈 녹듯 녹아 내린 OO와의 인연은 수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잘것없는 나를 우주의 하나님이 아신다니

고난의 행군이 북한을 강타한 시절, 친척에게 도움을 구할 목적으로 친구를 따라 중국에 잠깐 나왔지만 그야말로 쌀 한 줌 얻지 못하고 돌아가게 되었다. 그때 중국의 한 아주머니가 나에게 복음을 전했다.
처음 하나님에 대해 들은 터라 나는 겁도 나고 놀라서 뭐라고 대답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주머니에서 구긴 채로 접어 두었던 중국 돈 100원을 손목에 쥐어 주며 “예수님 믿어야 살길이 열려. 꼭 예수 믿어.”라고 하셨다. 전혀 마음에 와 닿지 않았지만 나는 돈이 탐나서 그렇게 하겠노라고 하고, 손바닥만 한 종이에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적어 가지고서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다.

아주머니가 준 돈으로 쌀을 사 먹으며 근근이 버티다가 또 굶는 시간이 길어졌다. 살길이 다시 막막해져서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에서 식량을 얻을 수도, 빌릴 수도, 일을 해서 얻을 수도 없는 사면초가의 시간에 불현듯 그 아주머니의 당부가 떠올라 기도를 한 번 해보고 싶었다.
나는 밤중에 불을 다 끄고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누가 들을까 봐 겁에 잔뜩 질려서 종이에 쓴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조심조심 읽어 내려갔다. 그러고는 “하나님, 나 배고파요. 먹을 것 좀 주세요.”라고 기도하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문을 열었을 때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1kg짜리 국수가 2개 놓여 있었던 것이다. 누가 잘못 놓고 간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고, 누가 찾으러 올까 봐 겁도 났다. 하지만 종일 찾는 사람이 없길래 아무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 국수로 끼니를 때웠다.
며칠 후 또 식량이 떨어지자 다시 기도를 하기 위해 이불을 뒤집어쓰고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외웠다. 지난번처럼 “하나님, 나 쌀 좀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는 기도도 했다. 아침이 될 때까지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다. 눈을 뜨자마자 문을 빼꼼히 열고 확인해 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 낮 시간에 내가 다니던 직장 근처에서 한 아주머니가 멀리서 손짓하는 것이 보였다. 뛰어가 보니 아주머니는 쌀자루를 제 발치에 내려놓으며 “쌀 자루가 터져서 돌이 많은데 먼저 먹고 나중에 갚을래?” 하고 물어보았다.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나는 두 말 않고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고 자루를 집으로 가져왔다.

밥상 위에 쌀을 펴 놓고 돌을 고르는데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춥고 배고파서 차디찬 냉바닥에 쭈그린 채로 서러워 울던 내가 쌀에서 돌을 골라내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아! 하나님, 내 기도를 들으셨네요. 하나님이 나를 아시는군요.” 하는 말할 수 없는 감격이 속에서부터 북받쳤다. 이렇게 작고 보잘것없고 초라하고 부모도 책임질 수 없는 나를 저 하늘의 우주를 다스리시는 크신 하나님이 아신다는 사실은 마치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것 같은 소망을 주었다.
이후로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의 든든함이 생겼다. 먹을 것이 떨어져서 기도하면 하나님은 또 누군가를 통해 음식을 대접받게 하셨고 가득 싸 주게 하셨다. 예수님의 이름을 모를 때 나는 한없이 비참했고 초라했고 아무 살 이유가 없었지만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내 삶에는 참 많은 기적과 표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초라한 단칸방에 찾아오신 예수님. 겁이 나서 떨며 작은 소리로 부르는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뤄가신 하나님은 멀리 하늘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작은 방에 함께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세상에 대고 외치고 싶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세요!”라고.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어 고민하고 있을 때 친구 OO가 자기는 이제 승진이 되어 갈 시간인데 소식이 없어서 점치는 집에 가 봐야겠다고 중얼거리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너가 승진 빨리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까?”라고 말했다. 그러자 OO는 “그게 뭔데?” 하며 호기심 어린 간절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나는 OO를 앉혀 놓고 몇 달 동안 나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하나하나 이야기해 주였다.
그러자 거부할 줄 알았던 OO가 “그렇게 좋은 방법을 왜 혼자만 알고 있었냐.”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빨리 알려 달라.”라고 재촉했다. 그래서 중국에서 아주머니에게 배운 대로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적어 주고 하나님께 소원을 말씀드린 다음 반드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고 고백하라고 일러주었다.
아무도 눈치 못 채게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OO는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그 자리에서 외우고 종이를 버렸다. OO가 정말 그 기도를 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지만 얼마 후 큰 기관에 승진되어 갔다고 들었다.
OO 외에 또 한 사람, 자녀 셋을 양육하는 아주머니에게도 조상에게 제사하지 말고 꼭 기도하라고 전해주었고, 그 아주머니와 함께 손잡고 기도하는 시간도 가졌다.

2022년 성탄예배 포토존

주의 사랑이 실제가 된 복음의 능력 안에서

이후 내가 탈북하면서 그들과는 완전히 소식이 끊겼다. 중국을 통해 한국에 안착해서 살면서 기도할 때 기도 제목에서 떠나지 않던 유일한 두 사람이었다.
북한에 작년 농사가 예년보다 안 되고 사는 형편이 극한에 달했다는 소문을 듣고서 그들을 다시 찾아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올려드리던 그 두 사람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일꾼을 통해 이번에 만나게 되었다. 그들을 위해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어둡고 캄캄한 터널에서 죽어가던 나. 사람들에게 관심 받을 만한 아무런 자격도 조건도 없던 나, 초라한 모습으로 죽을 날만 기다리던 나 같은 인생에 빛을 비추시고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저들에게도 복음의 빛을 비춰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의 날개 아래 품으시고 힘겹거나 고통이 올 때 하늘을 향하여 하나님을 찾으며 바라보는 OO가 되기를 매일 기도합니다.
나를 사랑하신 주님의 지극하신 사랑이 저들에게도 실제가 되어 복음의 능력 안에서 살기를 소망합니다.
OO가 이번 기회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을 사모함으로 찬송하게 되기를 믿음으로 선포합니다.
긴 기다림을 통해 복음의 씨앗이 심긴 영혼을 다시 만나 또 한 번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하신 뜻이 북녘 땅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북한 땅이여, 깰지어다!
북한의 영혼들아, 여호와 앞에 나와 새 노래로 찬양하고 즐거워할지어다!
그날을 우리는 보게 될 것입니다.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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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특집 2] 남쪽에 계시는 고마운 분들께 (2023.2)

성탄 선물을 받은 북녘의 성도들이 고마운 마음을 한아름 담아 편지를 보냈다.
세 장의 편지에는 도움의 손길을 뻗어온 남녘의 성도들에게 감사하고,
나아가 하늘 아버지의 사랑에 감격하며, 어려운 이웃과 쓸 것을 나눈다는 고백이 담겼다.
북한 땅 구석구석으로 흘러간 ‘북한 성도에게 성탄 선물 보내기’의 답신으로 온 편지를 첨부한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젠 살았습니다!!
이름 모를 자식이 원한다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묻지도 않고 이렇게 큰 도움을 주시니 말을 잇지 못합니다.
앞이 캄캄하여 주저앉아 벼랑 끝에 매달리는 심정으로 편지 한 장 보냈는데 이렇게 빨리 하늘에서 복이 내릴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여긴 밖이 몹시 춥고 눈이 쌓였습니다.
세상이 춥습니다.
하늘 우러러 불러봅니다. 아버지, 정말 고맙습니다!!
저는 오늘 두드리면 열린다는 걸 알았습니다.
정말 고맙다는 말 거듭 올려드립니다.
따뜻한 도움의 손길 잊지 않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눈뜨고 보면 옆집 OO네, 건너 집 OO네, 지난 여름 사망한 OO네 아들들…
다 조금씩이라도 나누어 줄 겁니다.
세상 끝날까지 아버지만 바라보며 믿고 살 겁니다.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올해에도 잘 도와주어서 힘든 고비를 넘기게 하여 정말 감사합니다.
주님께도 너무 감사하고 매일 기도도 드립니다.
지금 여기 상황은 아직도 어렵습니다.
쌀값은 여전히 6,500원에서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이 없어 쌀도 사 먹을 형편도 되지 않고 대두박도 사 먹지 못할 형편이 되여 굶어 죽는 사람이 적지 않게 나타납니다.
또한 도적과 강도들이 더 많이 생겨나고 옆 동네에서는 강도들이 한 짐을 몽땅 털고 집 사람들을 죽이고 휘발유로 집을 불태워 버렸습니다. 땔 나무가 없어 이 추운 겨울에도 산에 나무하려 갔다가 얼어 죽는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선생님께도 주님께도 정말 감사합니다.
주님 생신 25일에 우리도 많은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선생님 앓지 말고 건강하십시오.
안녕히 계십시오.

안녕하십니까? 저는 OO에 살고 있는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제가 이렇게 펜을 들게 된 것은 얼굴도 모르는 저에게 큰 도움을 주신 고마운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지금 북쪽은 코로나 비루스가 터지기 전보다 더 살기 힘들어졌습니다.
올해만 놓고 보아도 쌀, 기름, 비료, 농약, 의약품, 옷 등등의 입고 먹고 사는 데 필요한 물자들이 중국으로부터 넘어오지 못했습니다.
물자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에서도 물품을 생산하기는 하지만 수요에 따른 공급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그러다 보니 물가가 정신없이 치솟아 평민들의 목숨줄을 조이고 있습니다. 당장 하루 먹거리를 장만하기도 어렵고 하루 세 끼는 커녕 하루 한 끼도 배불리 먹기 힘듭니다.
오죽하면 제 주변에서는 하루 한 끼 먹기 투쟁하는 세대도 있습니다.
겨울이 닥쳐왔지만 땔감 장만도 어렵고 월동 나는 동안 먹을 식량도 제대로 마련 못하고 있습니다.
소금값이 여름에 비해 배로 올랐습니다.
소금 1kg에 2천 원에서 4천 원이 되었습니다. 고춧가루 1kg은 2만8천에서 4만 원으로 올랐습니다. 기름은 3배가로 올라 가마에 기름칠하기가 무섭습니다. 소금 물량도 많지 않아서 장마당에 들어오는 즉시 팔려 버립니다. 그래서 소금을 사려면 아는 장마당 친구에게 부탁하거나 장마당에 대기해서 사야 합니다. 코로나 병 이전에도 살기는 어려웠지만 밀수가 막히면서 더 힘들어졌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때에 나라에서 내라고 하는 거리도 줄여주면 좋겠는데 내라고 하는 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당장 하루 먹을 쌀도 없는 저희로서는 기가 막히고 한숨만 나옵니다.
인민반에서는 인민반대로 돌격대 지원, 기업소 지원 물자를 걷어들이고 려맹은 려맹대로 같은 명목의 지원 물자를 내라 하고 이래저래 이중 삼중으로 조여 갑니다.
또 애들 학교 보내기도 무섭습니다. 구실이 없어서 돈을 못 거둬가고 있습니다. 애는 학교에서 내라는 걸 못 가져가면 학교를 안 가겠다고 버티고 있고, 정말 속상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제가 재작년부터 아프다 보니 아이 둘을 먹이고 학교를 보내야 하는데 요즘은 일도 못 나가고 있습니다. 일해서 국수를 받아 팔아야 쌀밥도 해 먹이고 할 텐데… 조금이라도 회복되면 빨리 일하러 나가려던 참이었는데 꿈 같은 일이 제게 일어나 고마운 도움의 손길이 남쪽에서 온 겁니다.
사람이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는가 봅니다.
남쪽에서 보내온 고마운 돈은 저와 어렵게 사는 형제 순으로 조금씩 나누고, 자식들이 돌아보지 않아 혼자 힘들게 지내시는 어르신과 어려운 이웃집 순으로 쌀을 돌리겠습니다. 정말 얼어 죽고 굶어 죽을 뻔한 어려운 시기였는데 살려줘서 고맙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어떤 말로도 다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감사한 마음 항상 기억하면서 살겠습니다. 길가다 배고픈 아이를 만나면 외면하지 않고 떡 한 조각이라도 나누어 먹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온 세계가 코로나 병으로 고난을 겪는 어려운 날에 북쪽의 동포에게 따듯한 손길을 뻗어 주신 남쪽의 어려운 분들을 기억하겠습니다.
부디 몸 건강하시고 통일되어 만날 수 있는 그날이 빨리 오기 바라면서 이만 펜을 놓겠습니다.

2022년 OO에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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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최고의 복을 선언합니다! (2023.2)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은 첫째,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있어 어떻게 올바르게 살아 갈 수 있는지에 관한 완벽한 윤리체계를 보여줍니다. 두 번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땅에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고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주시는 거대한 약속이 있음을 설명합니다. 마지막으로 산상수훈은 출애굽의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율법 십계명을 받았던 언약을 선포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산상수훈은 새로운 율법이신 예수님이 출애굽기 19장의 장면처럼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취임사 하는 동시에 제자들에게 새로운 언약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 선포하는 것이 팔복입니다. 팔복은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복입니다. 팔복은 이렇게 읽어야 합니다.

1. 복이 있도다! 심령이 가난한 자여, 왜냐하면 천국이 너희 것이다 심령의 가난은 마음이 너무 가난해서 “내 힘으로는 안되는구나.” 하는 한계성을 스스로 느끼고 하나님만이 도울 분임을 인정하는 상태입니다.

2. 복이 있도다! 애통하는 자여, 왜냐하면 너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다 애통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은 불의 때문에 울고 자기 죄에 대한 영적 애통, 하나님의 의가 이 땅에 실현되지 않는 것에 대해 가슴을 부여잡고 우는 상태입니다.

3. 복이 있도다! 온유한 자여, 왜냐하면 너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다 온유한 자는 마음이 부드러워야 하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절제하고 인내하는 자로 오래 참는 상태입니다.

4. 복이 있도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여, 왜냐하면 너희가 배부를 것이다 의는 하나님의 공의이고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열망하는 상태입니다.

5. 복이 있도다! 긍휼히 여기는 자여, 왜냐하면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고통까지도 자신의 것으로 삼고 그들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돕는 상태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하셨습니다.

6. 복이 있도다! 마음이 청결한 자여,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마음이 깨끗하면 욕심이 있을 수 없고 두 마음으로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청결하면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7. 복이 있도다! 화평하게 하는 자여,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깨어진 평화를 복원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자가 진정으로 화평케 하는 자입니다.

8. 복이 있도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여, 왜냐하면 천국이 너희 것이다 하나님의 뜻과 의를 위해 수난과 고통을 당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팔복은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이 이것을 가능하도록 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는 것이며 이것을 예수님이 이루셨습니다. 곧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여 순종할 때 예수님의 모습으로 닮아가게 됩니다.

변영우 목사(본회 평양국제성경대학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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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특집 1] 순교하는 교회 선교하는 교회 (2023.1)

방방곡곡 증거되는 예수 그리스도

“정말로 예수님을 알고 난 후에 우리 마을 많은 분들이 예수님을 믿고 기도하고 성경을 보면서 모두 다 한탄한 것은 일찍이 예수님을 알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도 늦지는 않았어요. 북한 당국이 권세를 부려도 멀지 않아 새날이 다가오기를 기대합니다. <중략>
복음 통일을 위하여 우리도 많이 기도하고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고을에 예수님을 증거하고 지금은 방방곡곡에서 예수님에 대하여 말하고 있어요.”

1950년대 순교한 A 목사의 후손을 ‘지도자’로 세워서 평양과 평안남북도, 양강도, 황해북도 등지에 흩어져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북한 성도들 중 한 명이 2018년에 보내 온 편지이다.
그는 편지에서 자신의 마을에 일어난 놀라운 변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먼저 예수를 영접한 이들이 마을 사람들을 전도하고, 그들이 또 다른 마을로 건너가 예수를 증거한다는 것이다. 선교의 대상으로만 여겨지던 북한 교회가 자생하여 성장하고 있음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지난해 본회 선교연구원 세미나에서 발표한 <순교자의 터에 서 있는 북한 교회로 세계 교회를 불러 모으시는(pull) 하나님의 선교> 연구 보고서에서는 이러한 북한 지하교회의 모습을 ‘선교하는 교회’로 묘사한다. 보고서의 저자인 본회 총무 이반석 목사는 선교하는 북한 교회의 모습에 대해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하나님의 선교가 지속되고 있는 곳이 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곳인데 바로 북한이다. 특별히 북한 선교에 매진하고 있는 연구자 본인이 지켜보는 북한 교회의 상황, 특별히 극심한 박해가 이어지고 순교의 피가 계속해서 흐르고 있는 북한 지하교회가 도리어 ‘선교하는 교회’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 이 논문을 쓰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라고 설명했다. 선교학에서는 전도를 종종 선교에 포함된 개념으로 이해하므로 북한 교회를 같은 지역, 즉 북한 내부의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것으로 본 것이다. 이반석 목사는 이어 “북한이 ‘선교하는 교회’라는 사실은 오늘날 북한 지하교인의 숫자로 증명이 된다”라고 주장하며 다음의 증거들을 제시했다.

개인 전도로 넓게 확산되는 복음

지난 70여 년 동안 북한 성도들은 극심한 고난과 핍박을 견뎌야 했다.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은 교회를 적으로 인식해 한국전쟁 이후에 가시적인 교회들을 제거했다. 그리고 1953년부터 2006년까지 최소 15,657명의 성도를 처형하거나 투옥했다. 15,657명이라는 숫자에는 주목해서 보아야 할 의미 있는 몇 가지 점들이 있다.

첫째로 1995~2006년 동안 3,720명의 순교자가 발생하였는데 그중 조직체 즉, 교회로 발각되어 순교한 성도가 2,524명이 된다. 여기에서 조직이란 한 지역을 넘어 여러 지역에 걸쳐 하부 조직으로 연결된 지하교회의 모임을 일컫는다. 또한 동 기간에 집단으로 순교한 986명은 4~8명의 소규모 집단으로 모인 지하교회 성도의 일원이었다. 1995~2006년에 핍박받은 2,524명과 986명의 그리스도인들은 직전 기간인 1988~1995년의 순교자보다 4~5배가 많다. 이러한 수치는 북한 지하교회가 성장하고 있음을 알리는 지표로 볼 수 있다. <표 1>

순교자들이 어떻게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였는지, 그들의 믿음의 출처를 살펴보면 다시금 북한 지하교회가 선교하는 교회임을 확인하게 된다. 1953년부터 2006년까지 북한 내부에서 타인의 전도로 예수를 믿은 순교자들이 1,789명이다. 그중에서 1995년 이후 전도된 사람이 1,750명이라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1995년부터 2006년까지 북한에서는 가뭄과 기근을 피한 대규모 탈북이 이루어졌다. 고난의 행군 사태가 터지면서 국경을 넘어 중국에 간 많은 북한 사람들이 선교사나 그리스도인을 만나 예수를 믿었다. 중국에서 그리스도와 영생을 알게 된 북한 사람들은 다른 이들, 특별히 가족과 친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북한으로 돌아갔다. 그중 몇몇은 국경을 넘는 도중에 체포되었는데 ‘중국에서 탈북 상황 중 순교’한 항목의 338명이 여기에 해당한다. 반면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간 성도들은 그들이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했다. 중국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북한 성도들의 개인 전도를 통해 북한에 복음이 더욱 넓게 확산되었다. <표 2>

오늘도 십자가 피 흘린 그 길을 따라

북한인권정보센터에서 발간한 『북한종교자유백서2020』에도 중국에서 복음을 들은 북한 성도의 전도 이야기가 수록돼 있다.

“우리 친구가 있었어요. 꽤 친했는데 중국에서 목사한테서 성경책을 받고 돈을 받아 가지고 북한에서 종교를 퍼뜨리다가. 종교를 세게 선전하고 신자를 모으고. 비밀적으로 기도드리고 했는데 걸려서 다 잡혀갔습니다. 그게 2009년 1월이 될 거예요.
가는 그렇게 잡혀가고 가의 진술로 나온 사람들 다 잡혀갔어요. 잡아간 사람들 다 못 나왔어요. 정치범 들어갔어요. 한 달에 한 번씩 중국에 들어가서 성경을 배우고 나와서 하고 자기가 세게 그랬어요. 가가 모집한 신도들이 다 잡혀 들어갔어요.
신도들이라는 게 가가 북한에 들어와서 그 다음에 신앙을 퍼뜨렸는데 그 사람들이 잡혀갔어요. 내보고도 나오라고 했는데 나는 거기 동기 안 했어요. 형제들이 있었는데 형제들은 그냥 있어요. 비밀적으로 신앙 믿던 사람들은 다 잡혀갔어요.”

전도가 법적으로 금지된 북한에서 복음을 전하려면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그렇지만 성령의 감동을 받은 소수의 북한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 전파에 힘쓰고 있다. 그들의 순종을 통해 북한 교회가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019년에 수령한 한 북한 성도의 편지에도 중국에서 훈련을 받고 북한으로 들어가기 전, 주님의 천국 복음을 북한에 선포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해 달라고 절절하게 기도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편지에는 성경 구절과 사명이라는 단어가 포함돼 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 19-20)
사명!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이 하루도 말씀으로 은혜받게 하시고 말씀의 뜻으로 믿음을 굳세게 하여 주심이 정말 감사합니다.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이시여, 비천한 이 몸이 아버지의 택하심을 받고 주님의 품 안에서 날마다 복된 하루를 주심을 정말 감사합니다. 철없는 저에게 말씀으로 철 들게 하시고 연약한 이 몸을 말씀으로 강건하게 하시고 무식한 저에게 비유의 말씀으로 지혜를 주신 나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사랑의 아버지 오늘 주님의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님께서 걸으셨던 그 험한 골고다의 언덕을 바라봅니다. 홀로 걸으신 그 길,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시려고 험한 길 걸으신 그 길, 오늘은 그 십자가 내가 지고 주님께서 나를 위해 걷고 걸으시고 피 흘리셨던 그 길을 오늘은 저도 그 길을 따라 걸으렵니다.
지금도 주님의 사랑을 모르는 저 백성을 위해 주님의 말씀을 이 마음에 꽉 채우고 구원의 복음과 함께 구원의 십자가 지고 험하고 위험한 그 길을 주님이시여 부디 이 딸을 보내 주시옵소서.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세상을 사랑하신 주님의 그 사랑을, 주님의 천국 복음을 저 땅에 부디 선포하는 사명을 부디 제가 감당케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시여, 아버지의 택하심을 받은 저에게, 저같이 하찮은 인간까지 선택하시어 모든 죄 용서하여 주시고 오늘은 이처럼 말씀으로 은혜받게 하여 주신 주님의 사랑을 부디 저 땅에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택한 나라가 되고 주님께서 택하신 백성으로 부디 저 땅에 변화가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겸손과 순종하는 마음으로 날마다 이 마음의 성전을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시고 믿음으로 더 한층 다져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부디 저의 길을 안전하게 무사히 열어 주시길 간절히 간구하면서 이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주신 주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북한에는 지하교회의 형태로 하나님의 교회가 존재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참되게 고백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참된 성도와 교회가 형태나 크기에 상관없이, 늘 존재해 왔다. 북한 공산당은 교회 간판을 떼어내고 성도들을 모두 제거했다고 선언했지만 북한 지하교회는 70여년의 박해 속에서도 여전히 믿음이 전승되고 교회개척이 이어지고 있다.

2023년을 맞은 현재, 북한 지하교회와 성도들은 그 어느 때보다 대내외적으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그럼에도 북한 성도들의 끊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과 순종이 있기에 순교자가 나오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북한 지하교회는 성장을 멈추지 않고 있으며, 자체 전도를 통해 선교하는 교회로 확장해 가고 있다. 이 꿋꿋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새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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