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칼럼] 기뻐 눈물 흘리는 모습을 기대하며 길을 떠납니다!

 

 

16개국에서 모여 복음통일을 준비하는 북한선교전략 회의에 참석하고 모두들 떠나는 날이었습니다.
저도 그 날 아침 일찍 숙소를 떠나 부지런히 미국으로 갈 준비를 했습니다. 미국의 두 도시에서 집회가 약속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10시간의 비행시간 후 집에 도착하였습니다.
집 안은 마루바닥 공사로 인해 잠을 잘 곳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시차가 있어서 조금 쉬고 난 후 손녀들의 집에서 저녁을 간단히 했습니다.
다시 돌아와 짐을 정리하고는 잠이 들었다 깨어 다시 비행장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금요일에 도착해 토요일 오후 20년 넘게 교제하고 있는 장로님 사무실로 갔습니다.
목사님과 집사님들이 오셨기에 가지고 온 책들과 십자가를 드렸습니다.
그리고는 식사를 하는 중에 타 도시에서 오신 분들과 만났습니다.
집사님 가정으로 이동하여 늦게까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두 시간을 운전하여 오셨던 분들이 다시 두 시간 운전하고 가셔야 했습니다.
다시 장로님 댁으로 이동해 바로 잠을 청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장로님의 아들 내외와 함께 식사를 하고 교회로 가기 위해 문을 나서다 제 구두가 광이 나서 반짝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장로님과 권사님이 구두를 닦아 놓으신 것입니다. 20년이 넘었음에도 한결같은 두 분의 모습에 머리가 숙여졌습니다.

 

교회는 미국인들의 교회를 빌려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20여 명의 노숙자들을 섬기는 교회입니다. 다른 교회에서 오신 분들을 합해서 모두 50명이 되지 않았습니다.
예배는 노숙자들까지 모두 뜨거운 찬양과 능숙한 통역까지 강력한 성령의 임재 가운데 드려졌습니다. 저는 부족한 영어로 설교를 해야 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식사가 제공되었는데, 몇몇의 노숙자분들이 와서 감사하다며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장로님과 목사님은 먼 거리에 차량운행을 하러 나갔습니다.
그동안 남아 있던 몇몇 분들과 함께 설교시간에 나누지 못한 사역을 나누었습니다. 그 모임은 차량운행을 나갔던 목사님과 집사님이 돌아오고, 해가 지기까지 계속되었고 저녁 식사를 위해 자리를 옮겼습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노숙자를 섬기는 교회의 목사님이 사례비와 선교비로 헌금을 주셨습니다. 적은 액수가 아니었습니다. 11월에 미국에 올 탈북어린이들을 위해 먼 거리에서 오신 분이 1,000달러를 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저를 공항에 데려다 주시는 집사님이 액수를 알 수 없는 헌금봉투를 넘겨주었습니다. 모두 모퉁이돌선교회에 성경보급을 위한 헌금으로 쓰여질 것입니다.

노숙자를 섬기는 조그마한 교회에서 한 성도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 뿐이어서 죄송하네요”라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러나 그 헌금은 주님께서 가난한 과부가 드린 두 렙돈을 보시고 가장 많이 드렸다고 하신 귀한 헌금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청년이 악수를 청하며 “우리가 목사님 초청하면 오실 수 있으세요? 이메일 주소 주실래요?” 라고 말하고는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공항에서 돌아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제 가슴이 뛰고 있었습니다.
구두를 닦아주는 그 아름다운 손길을 기억하며, 아침을 정성스럽게 준비해 준 권사님의 20년 넘은 정성을 느끼며, 노숙자 교회의 헌금한 손길들을 생각하며, 카타콤 소식지 10권을 더 보내달라는 장로님의 요청을 들으면서, “다음에 다시 오셔요!”라는 말을 하신 분의 음성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공사로 인해 난방이 되지 않는 차가운 바닥에 잠을 자서 그런지 감기로 콧물이 흐르고 열이 오른 상태로 저는 다시 떠날 짐을 챙겼습니다.
60권의 ‘예 하나님’을 가져다 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서울서부터 챙겨온 네 개의 가방을 가지고 와야 했습니다.
시차 적응이 잘 되지 않아서 애쓰고 있습니다.
이제 또 떠난 도시로 가면 세 교회에서 5번의 설교를 해야 합니다. 15명 밖에 모이지 않는 교회에서, 기도하는 어머니들에게 설교를 하고 다시 길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날 저는 아홉 번의 설교를 하기 위해 서울로 다시 돌아갑니다.
북한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그 날을 위해 이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35년 가까이 나그네의 삶을 살아갑니다.
더 많은 성도들이 성경을 받아 들고 감격해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는 모습을 기대하면서 순례의 길을 떠납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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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 칼럼] 17년 넘게 지하교회를 이끌어 갔습니다!

 

6·25 전쟁이 일어난 1950년 6월부터 1953년 7월까지 한반도는 피바다였습니다. 1953년 7월 27일에 휴전이 되고 전쟁은 끝났지만 남한 교회는 먹고 살기에 급급하여 선교라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교는 돈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가난과 피 흘림이 있었다고 선교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닙니다. 스데반이 순교 당한 후 바울은 천막을 기워가며 자비량으로 선교했습니다.

 

최근 북한선교의 열정이 식어졌다고 이구동성으로 말들합니다. 그러나 북한선교의 열정이 식어 버린 게 아니라 교회의 열심이 식었고 선교와 전도의 열심이 식어버렸습니다. 교회에 젊은이들이 줄어들고 노인들만 앉아 있는 곳이 많습니다. 당연히 북한선교의 열정이 줄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북한선교만을 위해서 일한 지난 35년 동안 저는 통일이나 북한의 민주화를 위해서 일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저의 삶 전체를 순종했을 뿐입니다.

 

24년간 가난 속에서 북한을 드나들며 복음을 전했던 한 할머니는 12가정을 전도했습니다. 순희 할머니가 바로 그 분이십니다. 그녀는 그러고도 17년 넘게 그 땅에 살면서 지하교회를 이끌어 갔습니다. 가난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고 있던 중, 2004년 4월 22일에 용천 기차역의 폭발로 인해 온 가족이 주님께로 가야 했습니다.
배신으로 인하여 고발당한 17세의 청년이 수용소로 끌려간 것은 28년 후의 일입니다. 지하교회의 지도자였던 그는 고발당한 후 “나를 석방시키기 위해 노력하지 말라”고 알려왔습니다. 그 노력으로 북조선 땅의 십자가가 세워지기 위해 노력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공산주의에 속했던 동독의 성도들도 북한 땅에서 예배하고 전도했습니다. 일본의 제일동포들이 북한으로 북송될 때 성경을 가지고 갔습니다. 소련의 군인들 중에도 북한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었고, 중국의 한족들과 조선족들이 북한 땅에서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헝가리와 핀란드의 하나님 백성들 중에도 북한 땅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기도 했습니다.

 

북한선교를 위해 일하고 있는 이들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지금 북한선교를 위해 수고하고 있지만 그 동안 공개하지 못했던 나라들을 살펴보면 적어도 5개의 중국 소주민족이 북한선교에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시진핑에 의해 제한받지 않습니다.
아베 때문에 일본선교를 중단하지 않습니다. 베네수엘라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졌지만 그 곳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북한에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기를 위해 일합니다. 핀란드도 북한선교를 중단한 일이 없습니다. 몽골이 북한선교를 한다구요? 당연합니다. 말레이시아도 열심이고, 헝가리와 남미의 브라질이 한 몫을 단단히 하고 있습니다. 과테말라나 에콰도르가 빠질 수가 없고,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북한선교를 하는 것은 오래전부터입니다. 미국이나 영국, 독일, 프랑스, 캐나다는 소리 없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북한으로 보낼 성경과 풍선을 보내달라고 요청해 왔습니다. 그들은 부자라서 선교하는 걸까요?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증언하고, 예배하고, 예수의 사랑을 전하며 선교합니다. 피부 색깔이나 언어는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인종과 상관없고 국적과도 상관없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본분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기 때문에 명령을 따라 수행할 뿐입니다. 머물러야 했기에 머물렀고, 가라고 했기에 갔을 뿐입니다. 용서하라고 했기에 용서했고 사랑하라고 하셨기에 사랑했습니다. 주라고 했기에 퍼주었고 희생하라고 하셨기에 희생했을 뿐입니다. 병사로 보냄 받았기에 병사로서 살았고 제자의 도를 지켜야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기에 그 길을 갔을 뿐입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당신은 당신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내 형편이 좀 나아지면 선교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순종만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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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여러분은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십니까?

약속은 지켜져야 합니다. 어렸을 때의 약속이었든 나이가 든 후의 약속이든 간에 말입니다. 6·25 전쟁 중에 어머니는 일곱 살 꼬마였던 저에게 북한에 선교하러 가야 한다고 이르셨습니다. 10년이 지나 열일곱 살이 되었을 때는 제가 하나님께 바쳐진 아들이라면서 북한에 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하신 어머니는 다음 해 “아들들을 주께 맡깁니다”라는 기도를 하시6고 세상을 떠나 주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저의 북한으로의 발걸음은 마흔이 넘어서야 이뤄졌습니다. 1970년 판문점에서 북한을 바라보았고, 세월이 지난 1983년 저는 압록강 변에 울며 서 있었습니다. 5년이 지난 1988년 9월 서울에서 “북한도 복음화 하라”는 부제를 달아야 했던 Love North Korea ’88 심포지움을 열었습니다. 바로 그해 겨울, 저는 성탄절이 지나 처음으로 평양에 발을 디뎠습니다.
겉으로는 아무런 일이 없는 듯 조용했지만 북한선교가 시작되어 성경을 북한 땅으로 들여보내고 있었고, 북한성도들을 만나고 돕는 일들은 계속되었습니다. 조선족들을 통해 무엇이든 도왔습니다. 하지만 그 일들만으로는 북한선교를 한다고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의약품을 보내주고 양식을 공급하는 일, 고아원을 돕는 일은 복음이 없이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저는 복음을 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병원이나 학교 혹은 공장을 세웠습니다. 그것이 선교라고 믿어지지 않아 “내 입을 열어 하나님의 구원 역사와 말씀을 선포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 순교 당했습니다. 어머니와의 약속 중에 “살아 나오지 말고 거기서 죽어 거기서 묻혀”라신 말씀을 기억만 할 뿐 이루어 드리지 못한 저는 불효자식입니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도 책망하셨습니다. 1990년 8월 4일 비행기 안에서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너는 네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만 만나, 하고 싶은 말만을 했을 뿐 하나님 나라 복음을 말하지는 않았다”고 지적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것은 증인으로서의 말과 행동이었습니다. 물론 사영리도 전했고, 톰슨 성경 75권도 북한에 가지고 들어가 전했습니다. 여전히 북한으로 성경을 밀반입하였고, 중국에 나온 북한성도들과 만나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었습니다. 기회를 따라 말씀을 그들에게 전했고 세례를 베풀었지만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설교와 말씀을 전할 기회를 찾으려고 시도했지만 제 입을 열어 선포하지 못했습니다. “예수 천당”이라는 말조차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저를 책망하셨습니다. 분명하게 들려온 그 책망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울며 회개하고 또 울었습니다. 침상에서 소리 내어 운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1996년까지 눈물로 회개하며 기다렸습니다.

 

7년을 회개하도록 만드신 것이었을까요?
하나님께 책망을 받고 7년이 지난 후, 저는 아내와 미국의 두 형제와 함께 다시 평양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분명히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증인으로서의 자리를 지켜야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리, 목사로서의 자리를 지켜야 했습니다. 저는 목사로서 하나님과의 약속이라고 믿었기에 10명이 모인 자리에서 소리를 내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선포했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증인의 자리에서 30분동안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아내와 함께 숙소로 돌아와서도 도청 장치 앞에서 북한 땅을 축복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새벽에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가기 전, 위원장이셨던 분이 저를 불렀습니다. 그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고 뭔가 이야기를 하기 원했습니다. “이 목사! 나도 용서받을 수 있소?” 그는 밤새 울었다고 했습니다. 혹시나 용서받을 수 없을까 하여 두려웠다고 했습니다.
짧은 대화 후에 우리는 헤어졌습니다. 출국 수속을 하는 동안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습니다. 전날 밤 고려호텔의 한 방에서 선포한 일이 두려움이 되어 저를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그들이 제게 들려준 말은
“조국을 위해 그 많은 의약품을 보내주어 고맙소” 였습니다. 비행기에 탑승했지만 떠나지 않을까봐 조마조마한 마음이었습니다. 비행기가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지만 여전히 불안했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까지의 길고 긴 시간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드디어 비행기가 이륙했지만 여전히 불안했습니다.

 

북경에 도착해서야 ‘살아 돌아왔구나’라고 느꼈습니다.
아내가 “당신 지난밤 설교 정말 뜨거웠어. 살아있는 메시지였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함께 동행했던 두 미국인 형제 중 하나가 식당에서 울며 간증을 시작했습니다. 설교를 듣는 동안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이토록 위대한 것임을 처음으로 경험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 형제는 지금까지 북한선교를 위해 협력하고 있습니다. 10명중에 한 사람이었던 고위 공산당 당원이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십자가의 도를 선포한 결과는 두 사람뿐입니다. 그 감격이 제게 자주 되살아나는 것은 은혜일 뿐입니다.

 

그 후 하나님 나라를 선포할 기회가 다시 주어졌습니다. 북한 쪽 판문각에서였고 그 자리에 19명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 곳에서 복음을 전한 후 한 소좌와 뜨거운 악수를 했는데 그는 “오래 살라요, 십자가의 도를 더 전해야 될 것 아니갔소!”라고 귀엣말로 전해 주었습니다.

 

그 후 1998년 평양에서 저와 아내를 억류하려던 계획을 막아준 분이 이승만 목사님입니다. 이 목사님이 고려호텔 로비에서 큰 소리로 “여러분! 바로 이삭목사님이 북조선 사랑운동을 시작한 분이요!”라고 외쳤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조용히 평양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그분에게 왜 그렇게 큰 소리로 외쳤는지를 묻자 “사실이잖아!” 라고 한 마디만 하셨습니다. Love North Korea ’88-북한도 복음화하라고 외쳤던 1988년의 서울 영락교회에서의 일을 기억하셨던 것일까요? 올해로 30년이 되었습니다. 핍박을 당하고 고난 속에 있었던 기간이었습니다.
저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원수를 용서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십니까?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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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감옥에 갇혀 있으며 자유하는 성도들을 여럿 만났습니다!

중국에서 류샤오보가 사망한지 1년이 지났습니다.
그의 아내 류샤는 지난 10일 9년 만에 가택연금이 풀려 독일로 출국했고
“중국의 인권은 더 악화된 상태”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육체적으로 중국을 떠났으니 자유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영혼까지 자유할까요?

 

저는 예수를 믿고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중국에서 오랜 기간 감옥에 갇혀 고난을 당했던 왕명도 목사를 개인적으로 만났고,
원상심목사와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습니다. 모세 목사, 이도성 장로도 만났습니다.
최근에 세상을 떠난 지수목사는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메이블 할머니와는 오랫동안 교제했었습니다.
조선족 어른 중에 오랫동안 교제해온 분들과 지금도 교제하고 있고,
젊은 세대의 일꾼들을 돕고 나누기도 합니다.
그들은 모두 중국에 남아 있다가 하나님 품에 안겼습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중국에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유하지 않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핍박과 아픔을 당연한 상급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감시당하고 건강과 재정의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가택연금뿐만 아니라 감옥을 드나들면서 모두 신앙을 지켜갔습니다.
저는 30년 넘게 그들을 개인적으로 만나고 교제했지만
그들에게서 불안함이나 원망하는 것을 본 일이 없습니다.
물론 행동은 조심스럽게 했습니다.
그들-믿음을 지킨 주의 사람들은 육체적인 제한으로 자유를 잃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왜일까요?

 

바울은 그 많은 고난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자유했습니다.
쫓겨 다니고 감옥에 갇히고 매 맞고 굶주리면서도 자유했고 감사했습니다.
영광스러운 자리에 있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신분문제로 사역지를 떠나기도 하고 도망하는 일이 있습니다.
추방당하기도 하고 숨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자유하는 성도와 선교사들이 있습니다.
감옥에 갇혀있는 순간에도 자유할 수 있고
도리어 감옥에서 간수로 일하는 이가 자유하지 못함을 아십니까?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은 엄연한 신앙적 현실입니다.

 

저는 30년 이상 교제하는 조선족 성도들에게서도 같은 답을 얻습니다.
‘나는 자유한가?’라고 물어야 한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감옥을 드나드는 것 같다고 말입니다. 순간 자유하고 순간 부자유합니다.
은혜를 생각하면 자유하고 욕심으로 보면 부자유하고 얽매인 삶을 살아갑니다.

북한에서도 자유하는 성도들을 여럿 만났습니다.
북한 안에 사는 성도들은 진정한 자유 속에 사는 이들이었습니다.
저는 류샤오보의 아내가 노벨상을 타는 그 감격보다 예수를 만나는 자유를 얻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시진핑이나 김정은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봅니다. 트럼프도 자유인인가를 생각하고는 합니다.
정치인들 중 자유인을 거의 찾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업인이나 성공했다고 불리는 사람들에게서 자유를 보게 될 날을 위해 기도합니다.

 

저는 지금도 저의 죄성으로 인하여 괴로워하고는 합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자유가 있음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저의 순례의 길은 복된 길입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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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이 땅을 버리지 마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이 땅을 버리지 마옵소서.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한국 땅에 선교사들을 보내셨고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로 시인하여 하나님 백성되게 하셨습니다.
많은 순교자들이 피를 흘려가며 믿음을 지켰사오며 교회를 지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의 하나님 백성들 가운데 많은 헌신자들이 온 세상에 퍼져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는 선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땅을 포기하지 마옵소서.
이 땅의 하나님 백성들을 기억하옵소서.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들의 손에 이 땅을 넘기지 마옵소서.
이 땅에서 믿음을 지켜가는 백성들을 공산주의자들에게 넘기지 마옵소서.
하나님이 없다는 무법자들과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는 자들에게 넘기지 마옵소서.
지금 이 땅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기다립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권자이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왕이심을 믿습니다.
설혹 우리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하더라도
이 땅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뤄져 갈 것을 믿습니다.
감히 구하옵는 것은 이 백성을 버리지 마옵소서.
이 땅을 포기하지 마옵소서.
이 땅 하나님의 백성들이 회개하게 하사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옵소서.
저들이 게을렀사오나 이제 주께 구하오니 용서하옵소서.
하나님 영광보다 자신들의 안일과 탐욕과 우상숭배에 빠졌음을 용서하옵소서.
하나님보다 우리 자신의 바라는 바가 더 우선이었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보다 어리석은 이념에 빠져 있었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의와 선을 구분하지 못하고 악한 세력의 부추김에 빠져 있었음을 용서하옵소서.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하지만 입술로만 하는 노래였음을 용서하옵소서.
하나님께 헌신하였다고 했지만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부류였음을 용서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빙자해서 우리 자신들의 이익을 챙긴 것을 용서하옵소서.
명예와 신분을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여긴 것을 용서하옵소서.
교회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보다 분쟁과 정죄하며 추하게 살았음을 용서하옵소서.
교회가 이웃보다 자신들의 명분 쌓는 일에만 열심이었던 것을 용서하옵소서.
남한교회가 북한의 지하교회를 외면하고 있었음을 용서하옵소서.
열방을 위한 하나님의 사역보다 자신들의 명예를 자랑거리로 삼았음을 용서하옵소서.

 

한국교회가 자녀들에게 모범되는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였음을 회개합니다.
정치권, 언론과 교육계, 사법계를 하나님 원하시는 모습으로 회복되도록 기도하지 않았음을 회개합니다.
저들을 위해 대신기도 하지 않았음을 회개합니다.
이웃 교회와 교단을 정죄한 것을 회개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지 못하였음을 회개합니다.
이런 죄악들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웠음을 회개하오니 종들을 용서하옵소서.
우리는 주님을 떠나서 가야 할 길을 알지 못하고 방황했습니다.
그리고 세상과 별 다름없이 살았음을 회개하오니 용서하옵소서.
이 백성이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인해 피 흘리심으로 사함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타협했음을 회개하오니 용서하옵소서.
이제 이 백성을 용서하사 한국교회와 지도자들과 하나님의 백성들이 돌아오게 하옵소서.
이 백성을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들로 삼아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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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지금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저는 성경을 배달하는 것이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엇을 가르치기 보다는 그들로 성경을 스스로 읽게 하고 그들이 가르치게 하도록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중국의 현지인들은 좀 더 많은 것을 알기를 원합니다. 중국교회는 한국에서 중국과 소련, 아프리카와 온 세상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1억의 성도가 중국에 있기까지 뒤에서 어떤 일을 준비하고, 파송하고 여전히 훈련하고 또 돌봐주는 일을 하고 있었음을 아무도 몰랐습니다.
중국교회는 한국교회를 따라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그러나 현지에 나갔던 선교사들 대다수가 1년이 되지 않아 돌아왔습니다. 현지로 가기만 하면 되는 줄로 알았던 것입니다. 생활비를 보내 주고, 사역비를 보내야 하는 것을 몰랐습니다. 사역비가 얼마나 드는지 어떻게 관리해 주어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엄청난 사역비가 들어가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일이 중국인들에게는 없었습니다.
왜 선교사들이 국제학교에 아이들을 보내야 되는지도 생각해 본 일이 없습니다. 왜 선교편지를 써서 보내야 하는지, 왜 선교현장의 사진을 찍어서 본국에 보내는지 생각해 본 일이 없습니다. 중국교회는 선교사들이 현지에 가면 무엇을 가르치고, 그 다음 세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본국의 경제상황이 선교사들에게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서도 몰랐습니다. 선교사들이 짐을 싸고 본국으로 돌아오자 중국교회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때서야 “한국교회는 어떻게 선교를 했으며, 자신들이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런 상황을 미리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가르치지 않았다는데 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선교사를 보내면 아내가 함께 갑니다. 아이들이 따라가고 자녀들이 태어납니다. 아이들을 교육시켜야 하고 학교에 보내야 합니다. 건강도 살펴주어야 합니다. 인격훈련도 시켜야 합니다. 선교사들의 교육과 여행과 안식년 그리고 퇴직문제도 고려되어야 합니다. 사역은 확장됩니다. 그 사역비를 충당해 주어야 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보신 일이 있습니까? 필요에 따라 차량을 구입해 주어야 합니다. 도움을 청하는 현지인들에게 나누어 줄 만한 경제적 능력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때로는 쉬도록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우리도 준비하지 못했던 부분이 많습니다. 당연히 중국 현지인들에게 이런 부분을 가르쳐 주지 못했습니다. 중국교회는 헌금하는 일을 잘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선교에 있어서 재정문제가 충분히 해결되어야 함을 모르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 중국교회가 저희에게 가르쳐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더 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나누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후방에서의 준비와 훈련을 우리는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중국교회로 하여금 중국이라는 나라가 아닌 하나님 나라를 든든하게 세워가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완성시키려 수고해야 합니다.
오늘 구체적인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10년 후에 있을 하나님 나라를 지금 준비해야 하고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100년 후에 있을 하나님 나라를 지금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있음에도 중국교회가 필요로 하는 지도자들과 목회자들을 훈련하고, 중국교회 지도자들에게 선교행정을 가르치는 사역을 더 확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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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왜 그 길을 걸어가고 있을까요?

 

 

소련에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핍박과 아픔 속에서 남루한 옷을 입고 허름한 집에 살고 있음에도 얼굴과 눈빛에서 영원한 소망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가난하게 움막 같은 곳에 거하지만 소망 중에 살고 있는 성도를 만났습니다. 그들은 가진 돈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건강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지 않았으며, 세상의 일이나 소식 또는 농담하는 일에 시간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핍박이나 박해받는 일을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굶을지라도 양심을 팔지 않았고 그리스도인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의 성도들도 자신을 짓밟는 원수를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복을 빌고는 했습니다. 배고프다고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매 맞는다고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한 번의 예배를 드린 것 때문에 10년 혹은 20년을 시베리아로 유배를 당할지라도 그 길을 가겠다는 구소련 성도의 말 한마디, “차라리 문화혁명이 다시 와서 사람들의 마음이 청결해졌으면…”하며 한탄하던 중국 성도의 고백이 믿어지십니까? 고난의 행군이 지속되어서라도 북한의 성도들이 거룩할 수가 있다면 그 길을 택하겠노라는 참된 성도의 고백이 들리시나요?
메마른 성도들의 절규가 들리십니까? 집에서 쫓겨나더라도 매를 맞더라도 굶어 죽을지라도 주님만 소망하며 살겠다는 살아있는 순교자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정부의 탄압과 정통 유대인-종교인들의 신앙적 핍박 속에서도 여전히 여호와를 찬양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직업이 없어 안정되지 않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도 없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며 주님을 높여드리는 삶을 살아갑니다. 예수를 믿는 것 때문에 비참한 삶을 사는 이들이 예수님이 태어나신 그곳에도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계십니까?
왜 하나님은 제게 남한을 위해서 기도하는 자가 없다고 하셨을까요?
제 자신부터 한심한 존재였음을 회개합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머리를 숙이고 있습니까?
평안함과 부유함과 거짓됨과 위선적인 것과 불교적인 것과 유교적인 것과 기독교적인 우상숭배와 샤머니즘과 한국문화와 세상과 타협했습니다.
그리고 그 우상들에게 머리를 숙였습니다.

 

그런데 왜 소련과 중국과 이스라엘과 북한의 성도들은 타협하지 않고 죽음을 각오하고 매 맞으며 배고픈 그 길을 걸어가고 있을까요?
주님은 네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 양이 아닌 내 양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 양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저는 제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그 길이 고통스러울지라도 메마른 영혼들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가고 싶습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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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잠깐의 시간을 내어 주지 않으시렵니까?

 

한 노인의 음성이 전화기를 통해 들려왔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묻지 말라고 하던 그 분이 “북한 선교를 한다지요?”라고 물었습니다.
“예” 라고 대답하니 그는 또 다시 오래 전에 루마니아에서 풍선에 복음을 인쇄해서 보낸 일을 아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소문은 들었지만 자세히 모르겠다고 하니 보내는 방법을 자세히 알려 줄테니 북한으로 풍선을 띄워 보내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저는 다음 날 그 분의 사무실로 연락을 했습니다. 전날 제게 전화했던 노인은 바로 웜브란트 목사님이었습니다. 목사님은 루마니아 감옥에서 14년이나 고문당하면서도 끝내 주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았던 분이십니다.
저는 그 일이 있기 전 홍콩에서 한 젊은 미국인 교사를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북한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음을 나누었습니다. 그 후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자기가 후원하던 선교기관에 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었던 선교기관의 직원은 무덤덤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바로 그 다음 날 웜브란트 목사님은 전화를 받았던 그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가 풍선사역을 할 수 있도록 알려 북한선교를 도와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웜브란트 목사님의 전화를 받고 난 후, 사무실 직원은 저를 찾기 위해 연락처를 수소문했지만 알 길이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교사의 전화번호나 이름도 기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직원은 “하나님 어제 전화했던 그 교사가 오늘 제게 전화를 다시 하도록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고, 기도가 끝나기가 무섭게 그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그는 “당신들이 공산권선교를 한다면서 어떻게 북한을 외면할 수 있느냐?”고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직원은 항의했던 그 사람으로부터 저의 전화번호를 확인해 웜브란트 목사님께 알렸습니다.
모퉁이돌선교회의 복음풍선사역은 바로 이렇게 해서 시작되었습니다.

 

자신들이 비용을 들여 한국을 찾아 온 그들은 직접 복음풍선 보내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심지어는 그 선교기관에서 복음풍선을 만드는 제작비용까지 부담해 주었습니다. 웜브란트 목사님은 자신들이 그 일을 시작하고 채 1년도 되지 않아 루마니아의 독재자가 물러났다며, 남한에서 풍선을 띄우면 김일성의 생명이 채 1년 가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실제로 1994년 7월 8일에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김일성의 생명이 끝난 것입니다.
그 후로 김정일도 세상을 떠났고, 김정은의 자리도 통일 한국에 내놓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 백성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을 기뻐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복음풍선(민들레) 사역은 북한의 성도들에게 위로가 되고, 더 나아가 북한의 변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바람이 북쪽으로 부는 계절이 가까워 옵니다.
이제 여러분과 고사리 같은 손을 가진 어린 아이들의 기도가 담긴 풍선사역을 다시 시작할 시간입니다. 말씀은 생명을 살립니다. 말씀은 영혼을 주 앞으로 이끌어 냅니다. 말씀은 교회를 세웁니다. 북한 땅에도 이 풍선이 복음을 실어 나르는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손길을 통해서 말입니다. 저는 지금 루마니아 근처에서 순례 중입니다. 하나님을 사모하고 더 가까이서 주님을 섬기고 싶었던 이들이 생명을 걸고 한 세기 두 세기 걸쳐 수도원을 세웠던 그 헌신과 눈물과 고통을 보며 저는 부끄러워했습니다. “나는 정말 이 수도원의 성도들처럼 헌신했는지?”를 반복하며 물었습니다.

 

오늘 잠깐의 시간을 내어 북녘의 영혼들에게 복음풍선을 보낼 성도들을 찾습니다.
교회를 찾습니다. 북한성도들을 위로하고 생명을 살리는 사역에 잠깐의 시간을 내어 줄 한 사람이 되지 않으시렵니까?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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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저는 성경 말씀을 의심해 본 일이 없습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무릎에서 하나님께서 홍해를 마르게 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을 걸어서 건넜고, 그들을 뒤쫓던 애굽의 병정들이 바다에 들어서자 하나님께서 그들을 물속에 몰살케 하셨다고 들었던 말씀이 의심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마태복음 5장에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을 깨달아 아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핍박을 당하고 십자가 죽음에 이르고 난 후 하나님의 교회 또한 핍박을 당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습니다.

 

제게 신앙의 모범이 되어주셨던 범브란트 목사님은 고난 당하지 않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라 잡동사니가 모여진 ‘쓰레기통’이라고 까지 말씀하시고는 했습니다.
오늘 저는 러시아인 목사님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의 부친은 러시아에서 목사로서 많은 고난을 당하셨고, 그 자신도 아내와 함께 고난 중에 미국 성도들의 기도와 구체적인 요청으로 미국에 이민을 온지 25년 되신 분입니다. 그 분의 아내는 157명의 성도들이 끌려가 죽임 당하는 것을 목격한 증인이기도 합니다. 지금 10여 만 명이 넘는 러시아인들이 이 지역에 살고 있다고 하시는 그 목사님의 눈에 눈물이 젖어 있었습니다. 그런 고난을 당했기에 고난 당하는 이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루마니아의 지하 감옥에서 14년 이라는 긴긴 세월을 고난 속에서 견뎌내야 했던 범브란트 목사님은 제게 북한선교에 대해 많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중국의 가정교회 지도자와 성도들이 고난을 경험했기에 북한선교에 마음을 열고 참여합니다. 제가 만난 러시아인 목사님은 자신이 정신병자로 몰려 오랫동안 병원에 있어야 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러시아에서는 비밀 결사 조직처럼 교회가 운영되고 있었고 이렇게 이민이라도 나올 수 있었지 않았느냐면서, 북한은 그렇지도 못하지 않느냐며 눈물을 보이는데 끝내 저도 함께 울고 말았습니다.

 

“무엇이 복 있는 삶이란 말입니까?”라고 묻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저 또한 고난을 경험했고, 그 고난 당함으로 인하여 끝내 아름다운 믿음의 열매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바로 지난 주일이었습니다. 영국인이 제게 어떻게 북한의 성도를 도울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3주 전 중국에서는 북한을 위해 할 일을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오늘 러시아 목사님이 제게 “자신이 러시아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성도들이 보낸 편지 때문이었다.”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도 좀 더 적극적인 방법을 동원하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난 당하는 북한성도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북한동포들에게 성경을 보내고, 고난 중에 믿음을 지켜갈 수 있도록 기도하고, 저들의 필요를 채워주어야 합니다.

한 영혼을 구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방법은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북한성도들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힘써 전할 때 북한을 포기하지 아니한 창조자 하나님께서 굳게 닫힌 북한의 문 또한 활짝 열어주실 것입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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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칼럼] 위험할수록 더 많은 길이 있습니다!

 

“위험하니 여행을 삼가십시오.”라는 경고 문자와 전화가 옵니다. 그러한 선교지의 환경이 오히려 가장 좋은 사역환경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사역을 감당해 왔습니다. 옛날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선교는 언제나 반대하는 세력이 존재해 왔습니다. 사역지에서 해당 국가나 사회가 기독교를 거부하고, 선교사의 교회나 주위에서도 반대합니다. 이럴 때면 선교사 본인도 망설이게 됩니다. 책임져야 할 아내와 자녀가 있습니다. 건강이 어렵습니다. 재정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신분과 언어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당연히 주춤하고 머뭇거리게 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럴 경우 피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라(디모데후서 4장 2절)고 하십니다.
북한이 위험하다고 합니다. 예 위험합니다.
그렇게 위험하니 주님의 일을 중단할까요?
중국 또한 위험했고 지금도 조심스럽습니다. 새벽에 이스라엘에 가지 말라는 문자가 왔습니다. 중국 만주지역에 가지 말라고 합니다. 위험하니 가지 말라는 겁니다.

 

중국의 시진평보다 더 위대한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러시아의 푸틴보다 하나님이 훨씬 더 위대하십니다. 북한의 김정은은 하나님과 비교되지 않습니다.
그 하나님의 백성들이 말씀을 듣기 원하고, 읽으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기 원합니다. 그들에게서 물리적인 자유를 빼앗은 세력은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믿음을 지킨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백성들의 손에 들려줘야 할 성경을 배달해야 합니다.
위험합니다. 그러기에 더 배달해 주어야 합니다.
저는 성경을 원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길을 걸어왔습니다. 이 길을 걸어오는 동안 아픔도 괴로움도 외면당함도 많았습니다만 그들의 눈물이 내 눈물이 되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오늘까지…
이렇게 오기까지 하나님이 일을 앞서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을 보내주셔서 기도케 하시고 생명을 구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순종하셨기에 모퉁이돌선교회가 여전히 이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위험하면 할수록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길이 있습니다. 조심을 하는 것일 뿐 하나님의 일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방해받지 않습니다. 저는 여전히 공산권과 이슬람 지역에 사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역자들이 추방 당하는 그 빈자리에 제가 들어가 다른 모습으로 일합니다.
점점 빈자리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위험이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더 많은 훈련된 일꾼이 필요합니다. 좋은 장비와 공급되어야 할 것들이 충분히 준비되어야 합니다. 저는 또 사역지로 여행을 떠납니다. 더 자주 여행하려고 합니다.
저 같이 어리석은 사람을 쓰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하며 마땅히 순종할 것입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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