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콤 특집] 내가 만난 북한 성도, 미처 다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 (2023. 8)

지난 7월 4일부터 7일까지 경기도 소망수양관에서 개최된 67회 선교 컨퍼런스에서 20년 넘게 북한 성도들과 연락하며 교제해 온 일꾼이 그동안 공개하지 못했던 귀한 성도들의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에 중국으로 식량을 구하러 나왔다가 복음을 들은 사람들부터 2020년대 코로나 국경 봉쇄로 심각한 경제난에 직면해서도 구제와 전도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사람들까지, 일꾼은 장시간에 걸쳐 다양한 면면의 북한 성도들을 만나왔다.
고난에 고난이 겹쳐와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에게 묵묵히 선을 행하며 예배를 드리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북한에 살고 있다. 일꾼은 주의 지팡이를 의지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는 중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그들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죄사함 받은 자의 삶이 어떠해야 함을 잘 보여주는 모본이라고 설명한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그 땅에서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는 북한 성도의 이야기를 일꾼의 증언으로 들어본다.

밤새 말씀에 밑줄을 그어가며 외웁니다

국경 지역에 살면서 중국을 드나들던 남매가 있었습니다. 저와는 세 번을 만났는데, 남동생이 먼저 중국에서 복음을 듣고 북한에 있는 누나에게 복음을 전한 경우였습니다. 초신자에 불과한 남동생이 자기 지식으로는 전도하기가 힘들자 누나를 데리고 다시 중국에 나왔습니다. 그 남동생이 참으로 귀하더군요. 밤을 세워서 성경을 읽는데, 줄을 그어가면서 말씀을 다 외우곤 했습니다.
그 형제는 북한에서는 가족끼리 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저녁에는 꼭 감사 기도를 한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너무 피곤해서 기도를 하지 않고 그냥 자려고 했는데, 일곱 살짜리 딸이 오더니 “아버지, 오늘은 왜 기도를 안 합니까?”라고 말해 줘서 그날도 빼놓지 않고 기도를 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오누이가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던 중 남동생이 황해도 쪽 지하 성도를 만나러 갔다가 누군가의 밀고로 먼저 천국에 가는 일이 생겼습니다. 참담한 사건이 벌어졌지만 누나는 동생이 천국에 갔기 때문에 자기는 걱정하지 않는다면서 이전보다 더 열심히 전도했고, 더 과감하게 주님을 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돌격대를 먹이며 불쌍한 사람을 돕습니다

본인도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집 근처 공사장을 드나드는 돌격대(건설 현장 등 주로 단기 사업에 투입할 목적으로 동원되는 조직)원에게 밥을 먹이고, 쌀과 김치를 퍼주는 북한 성도와 정말 어렵게 연락이 닿았습니다. 그런데 우리와 연결된 그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일없습니다(괜찮습니다).”였습니다.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뻔히 듣고 있는데, 힘들다는 말을 일절 하지 않는 것이 한편으로 의아하면서 한편으로는 놀라웠습니다. 저에게는 하나님과 함께 살고 있는 자의 당당한 모습으로 비쳐졌습니다.
설왕설래 끝에 그를 설득해서 생활비를 전달했습니다. 그랬더니 “불쌍한 사람과 잘 나누어 쓰겠습니다.”라며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사진 속 그의 얼굴은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였지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로움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꽃제비가 예수님 믿기를 몰래 기도합니다

작년에 중국에 있는 지인을 통해 북한에 사는 자매에게 약값을 보냈습니다. 감사하게 그 돈으로 치료를 한 자매의 병이 고쳐졌습니다. 자매는 받은 돈 중에서 남은 돈으로 먹을 것을 사서 주변 사람들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저희에게 신세 진 빚을 갚을 길은 이것밖에 없다면서요. 그런데 지금 북한은 착한 일을 하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냥 먹을 것을 주면 의심하고 밀고해서 보위부 단련을 받아야 한답니다. 그래서 그 자매는 살고 있는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강가로 죽이나 밥을 담아서 나갑니다. 꽃제비들이 대개 강가에서 살기 때문입니다.
먹을 것을 바구니에 담아 가지고 다니면서 자매는 “우리 남편이 정신병이 와서 집을 나갔는데 굶어 죽을까 봐 이렇게 먹을 것을 해서 다니니 우리 남편을 찾으면 꼭 알려 달라”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렇게 일부러 구제를 하는 겁니다.
또 어느 날은 길거리에 자판을 벌여 놓고 국수를 삶아서 꽃제비들에게 나눠 주었다고 합니다. 보는 눈들이 있으니까 일반 사람에게는 반값에 팔면서요. 그러면서 자매는 “하나님, 이 사람도 예수님 믿게 해 주세요.”라고 몰래 기도했다고 합니다.

새벽 두 시에 성경 읽고 다섯 시에 기도합니다

자식들 먹여 살리려고 중국에 돈 벌러 나온 너무나 신실하고 순수한 두 자매가 있었습니다. 선교사님 밑에서 삼 개월 동안 성경 공부를 하던 그들은 새벽 두 시면 일어나서 성경을 읽고, 다섯 시면 또 일어나서 북한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북한에 돌아가서 신앙 생활을 하다가 궁금한 점이 생기면 쪽지에 몰래 적어 가지고 나와서는 선교사님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얻어 갔습니다.
그들과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최근에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사람을 보내 찾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그들과 영상 통화를 하던 날, 분명 제가 만났던 자매들이 틀림없음에도 너무나 초췌하게 늙어버린 모습에, 저는 그만 울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아무렇지 않아 했습니다. 그야말로 꽃제비와 다를 바 없는 행색인데도 당당하고 씩씩했으며 저보다 목소리에 힘이 더 실려 있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나를 위로하며 “울지 말라”며 “왜 우냐?”고 되물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지내냐?”라고 물었더니 “달구지 끌고 다니며 하루 한 끼 버는데 우리는 이렇게라도 살아갑니다. 우리는 남의 눈치를 봐 가며 모여서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라며 입가에 미소를 띄웠습니다. 그들은 제가 “좋은 날이 올 때까지 건강하게 지내라.”는 인사말로 전화를 끊을 때까지 ”도와 달라.”는 말은커녕 어떤 부탁도 하지 않았습니다. 담담함을 넘은 성도의 당당함을 본 것 같았습니다. 그들을 안쓰럽고 불쌍하게 생각한 제가 부끄러워서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하나님이 살리신 발로 복음 전하기를 소망합니다

북한에서 나눔 사역을 하는 자매에게 새벽에 급하게 연락이 왔습니다. 사연인즉, 동네에 동상 치료를 못해 살이 문드러진 사람이 있는데, 밤마다 온 동네가 떠나갈 듯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니, 약값을 보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이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선전하지만, 요즘은 의사들도 먹고 살기 위해 비공식적으로 돈을 줘야 엑스레이를 찍어 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약국도 예전에는 국가에서 운영했는데, 지금은 개인 약국들이라, 돈을 내야 약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 돈이 없으면 죽어야 하는 것이 북한의 현실입니다.
동상으로 고생하던 사람은 다행히 저희가 보낸 돈으로 치료를 해서 지금은 건강하게 다리를 회복했습니다. 사실, 제가 봤을 때 그 다리는 회생 가능성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살리셨습니다. 자매와 통화한 이후 저는 하나님께서 살리셨으니 그 다리가 북한 땅 전역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발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자매에게도 그 사람과 함께 그렇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북한 땅에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북한에 지하교회가 있을 수 없다. 북한에 지하교회가 있다는 선교회가 있는데 모두 거짓말이고 사기극이다.” 최근 탈북자를 탈출시키는 일을 소재로 한 책을 읽거나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서 확인 차 본회로 문의하는 분들이 있다. 누가 봐도 모퉁이돌선교회를 지칭하는 것이라며 해명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염려하는 분들도 계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늘도 하나님은 북한 땅과 백성들 가운데 살아서 역사하고 계신다.

“나는 북한을 포기한 적이 없다.
그 땅에 내 백성이 살아 있다.
내가 남한 성도들의 기도를 듣고 있다.”


모퉁이돌선교회의 북한 선교는 바로 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시작되었고 지난 38년 동안 계속되어 왔다. 그동안 “북한에 지하교회가 없다”는 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던 사안이다. 그럼에도 전능하신 하나님은 코로나로 국경이 봉쇄된 지금도 여전히 북한에 하나님의 복음과 사랑이 전해지도록 역사하고 계신다. 복음을 전하는 데 수많은 저항이 있지만 그 모든 것보다 뛰어나신 하나님께서 이제 굳게 닫힌 북한의 문을 활짝 여시고 북한의 모든 영혼이 자유롭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날까지 멈춤없이 복음이 전파되게 하실 것을 믿음으로 선포하며 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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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소식] 컨퍼런스의 모든 순간이 은혜였습니다! (2023. 8)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았습니다


67회 컨퍼런스는 은혜를 듬뿍 받고 영육 간의 기쁨을 누린 혼인 잔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컨퍼런스에 참석하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1차 마감일이던 지난 6월 23일, 갑작스럽게 유산을 하게 되어 수술을 받았습니다. 안 그래도 컨퍼런스 기간이 아들 시험 기간과 딱 겹쳐서 마음이 편치 않았던 터라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참석을 결단하고 나니, 친정 엄마와 남편의 도움이 있었고, 돕는 자를 붙여 주신 주님께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모퉁이돌 선교 컨퍼런스는 이번이 네다섯 번째인 것 같습니다. 처음 참석했을 때부터 북한 지하교회를 세우는 사역에 동참하고 싶어서 늘 가슴에 품고 있었는데, 이번에 딱 맞는 액수의 물질이 생겼습니다. 그렇지만 교회 리모델링에 흘려보냈으면 좋겠다는 남편의 의견에 그렇게 하기로 어렵사리 결정하고, 친정 엄마한테 북한 지하교회 개척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너무나 흔쾌하게 헌금을 송금해 주셨습니다. 컨퍼런스 예배 시간에 저의 작은 물질을 보태서 하나님께 드렸는데 이 모든 과정에 함께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제가 그냥 전한 외마디 소리에 하나님께서는 쓰시고자 하는 사람들을 움직이셔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심을 보았습니다.
첫날 저녁 집회 이삭 목사님의 설교는 저에게 응답이었습니다. 당시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내가 쓰임받는 모습이 작게 느껴지고 먼지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의 작은 기도도 듣고 기억하신다는 말씀에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나를 도구로 사용해 어떻게 일하시는지 알려 주는 것 같았습니다. 진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전할 뿐인데 사람을 모아 주시고, 북한을 품고 기도하는 청년들이 일어나게 하심을 보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일하고 계십니다!
컨퍼런스마다 늘 만남의 축복이 있었기에 이번에 어떤 분을 만나게 하실까 기대가 생겼습니다. 저희 조에 구세군 사관님이 계셨습니다. 사관님은 컨퍼런스 셋째 날 부른 헌금송이 구세군도 함께 기를 흔들며 이 사역에 함께하자는 하나님의 메시지 같다며 너무 놀라워하셨고 저는 아멘으로 화답했습니다. 이렇게 각 사람으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보물찾기처럼 찾게 하시는 은혜가 너무 재미있고 선물 같았습니다.
또한 컨퍼런스에서 만난 한 아이를 통해 10년 가까이 미움과 용서를 반복하며 지냈던 한 자매와 회복하라고 권면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이번 컨퍼런스를 통해 주신 은혜가 너무 크고,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신 것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각자의 부르심 속에서 일을 행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부르시고 일하시고 행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박정은 사모

예배 시작과 함께 통증이 사라졌습니다


새로운 연극 작품 홍보 준비를 하던 두 달 전, 갑자기 허리가 아파서 눕지도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빨리 병원에 가야 했지만 두 달 동안 고통을 견디며 보냈습니다. 그렇게 참다가 어느 날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놓는 주사가 죽을 것처럼 아파서 “제발, 살려 주세요”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 나왔습니다. 치료를 받았음에도 통증은 지속되었고 허리와 무릎과 다리와 발바닥 한쪽이 감각이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컨퍼런스 예배가 시작되면서 통증이 다 사라졌습니다. 원래는 서 있을 수가 없었는데 계속 서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에게 믿음을 주시려고 이렇게 행하신 것 같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극단 예배자 이정은 대표

강퍅한 마음에 말씀의 빛이 임했습니다


“양심이 화인 맞지 말라”는 이삭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는 중에 제 양심에 빛이 비치면서 마치 강퍅하고 닫혔던 마음이 열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때까지 안 들어오던 말씀이 귀에 쏙쏙 잘 들어왔습니다. 이사야 목사님의 아침 성경 공부 시간에는 음행의 죄를 언급하시는데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지면서 회개가 되었습니다. 이후로도 계속된 강의 중에 성령님은 저에게 기쁨과 편안함, 담대함을 주셨습니다. 북한에서 오신 분들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분들의 강의에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마치 저를 위해 준비된 듯한 67회 선교 컨퍼런스였습니다.

김응원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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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특집] 북한 선교의 전도자, 조선족 (2023. 7)

모퉁이돌선교회를 시작한 1985년 이삭 목사가 만주에 있는 조선족 사역자들에게 성경을 배달하고 돌아서면서 받았던 부탁이다. 이것으로 본회의 북한 선교가 시작되었다.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북한과 국경이 맞닿은 중국의 길림, 요녕, 흑룡강성 등에 거주하는 조선족 교회와 성도들이야말로 북한 선교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지나면서 북한을 비롯한 선교지의 환경이 달라지고 있다. 이에 따라 본회는 2023년 ‘나라에서 민족’ 즉 국가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선교 전략의 변화를 결정했다. 이로 인한 전술의 변화 중 하나가 ‘조선족을 통한 북한 선교’이다. 본회는 조선족으로 오랫동안 중국과 북한 그리고 한국을 오가며 북한 선교를 감당해 온 일꾼 부부를 만나 지금까지 어떻게 북한에 가서 성도들을 만나고 실질적인 선교가 이루어졌는지를 듣고, 앞으로 조선족 교회와 성도들의 역할에 대해 정리하였다.

보따리 장사가
북한 선교의 시작이었습니다!

“저는 북한 돈으로 신학을 했습니다. 1987년에 신학 공부를 시작했는데 학비가 1200원이었습니다. 당시 한 달 월급이 26원이었습니다. 정말 가난했지요. 그래서 아내가 북한에 가서 보따리 장사를 했습니다. 그때는 북한에 편지 한 통만 보내면 친척 관계가 맺어졌습니다. 그렇게 친척 방문을 신청해서 북한에 들어가 한 번 장사하면 6개월 생활할 돈이 벌렸습니다. 보따리 장사가 어마어마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복음이 자연스럽게 따라서 들어갔습니다.”

조선족 사역자는 오래 전 기억의 한 조각을 꺼내들었다. 두만강에서 압록강까지 북한과 인접한 중국의 길림, 흑룡강성, 요녕성 지역은 조선족들이 살아가는 자치구이다. 중국 단동에서 압록강을 사이에 둔 북한 신의주가 건너다 보이고, 장백에서는 강가에 빨래하러 나온 북한 혜산 주민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육안으로 장마당까지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두만강 너머 중국 도문에서 다리를 건너면 바로 북한의 남양 세관에 도착한다. 그만큼 수월하게 조선족들은 북한에 친척 방문을 다닐 수 있었다.
그리고 공산주의를 채택한 북한과 중국은 혈맹 관계로 맺어져 있어서 조선족 중에는 이민자로 북한에 이주한 사람이 많았고, 외부 세계와 철저하게 차단된 북한임에도 중국 국적을 유지한 화교들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자유로이 중국에 오갈 수 있었다. 이들 가운데 일부가 경제적인 활동을 빌미 삼아 북한에 가서 복음을 전했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을 만나는 은혜를 누리게 하셨다.

믿는 지하교회 성도를 만났습니다!

중국에서 북한으로 떠나는 보따리 장사는 거의 대부분이 물물교환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우리가 만난 조선족 일꾼 역시 북한의 남양, 회령, 혜산, 신의주 등 여러 지역을 방문할 때 해산물과 중고 컬러 TV 등을 가져가서 팔고, 북한에서는 일제 중고 TV 등을 사 가지고 와서 중국에 팔았다. 먼저는 친척으로 등록된 집에 도착해서 가져간 물건을 북한 사람들에게 준 다음 그 후에 그들에게서 돈을 받았다. 그때는 물건을 가져간 사람으로부터 돈을 받는 데 한 달이 걸리기도 했다.
장사하러 북한에 들어간 일꾼의 아내는 그곳에서 믿는 할머니를 만났다고 했다. 그 할머니로부터 들었던 말씀의 감동은 지금까지를 통틀어서 최고라고 전해주었다. 당시 상황을 자세히 듣고 싶다고 일꾼에게 부탁했다.

“1993년이었습니다. 장사를 떠났던 저는 한 달 동안 북한 00시에 있는 할머니 댁에 머물렀습니다. 하루는 제가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하며 찬양을 흥얼거리는데 작은 소리로 할머니가 따라서 불렀습니다. 찬양을 마치고 나서 할머니는 제 가까이에 와서 두 손으로 귀를 가리고는 ‘네가 예수 믿는구나’라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께서는 조심스럽게 장롱 깊숙히 숨겨 놓은 사진첩을 꺼내서 보여주었습니다. 빛 바랜 사진이었는데 옛날 예배당 십자가 앞에서 찍은 주일학교 시절의 사진이었습니다. 보물처럼 간직하는 사진이라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할머니와의 믿음의 교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옛 추억을 더듬으며 회상하는 일꾼의 목소리는 점점 더 높아져 갔다. 일꾼의 아내는 할머니와 친분이 쌓이자 중국에 와서도 편지로 계속 소식을 주고받았다고 했다. 믿는 성도임을 알게 되면서 할머니에 대한 신뢰가 생긴 일꾼의 아내는 또 다른 조선족 자매를 그 할머니와 친척 관계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 일이 준비되었을 때 곧바로 일꾼의 아내는 그 자매와 함께 물건을 마련해서 북한을 방문했다.

찬송과 말씀이 생수의 강이 되어

“두 번째로 가니까 이미 마음이 많이 열려 있었습니다. 할머니와 식구들은 저와 함께 갔던 자매까지 친 가족처럼 맞아주었습니다. 저희는 장사하려고 가지고 간 물건을 다른 중개상에게 보냈는데 물건값이 돌아오기까지 28일이 걸렸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매일 할머니와 함께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숨을 죽여가면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할머님이 전해주시는 성경 말씀을 듣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찬송가를 모두 암송해서 부르셨고, 성경책 없이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마음속에 새겨진 주의 말씀이 생수의 강이 되어 흘러 나와 저와 자매의 영혼에 시원하게 스며들었습니다.”

일꾼은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자신이 지금까지 드린 예배 중에서 OO 지역에 있던 그 할머니의 집에서 몰래 드린 예배가 가장 은혜로웠고, 가장 은혜를 받았던 말씀 역시 바로 할머니를 통해 주셨던 하나님의 말씀이라며 눈가를 촉촉히 적셨다. 할머니가 들려주셨던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나는 부분을 들려 달라고 일꾼의 아내에게 요청했다.

고난은 잠깐이고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니 얼마나 좋으냐

“할머니가 반복하여 전해주신 말씀의 주제는 사람을 영원히 사는 존재로 하나님이 창조하셨는데,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아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고, 믿지 않으면 지옥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할머니에게 북조선에서 숨죽여 하나님을 믿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에 현재 받고 있는 잠시 잠깐의 고난은 영원한 세계에 비하면 한 점에 불과해. 이 짧은 고난을 믿음으로 잘 통과하면 하나님 아버지가 예비해 놓으신 천국에서 영원토록 살게 되지. 그러니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찬송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갈 수가 있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사람이 죽는 것은 정한 이치이며, 죽은 후에는 반드시 부활되어 때가 되면 모든 사람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며, 우리는 하늘나라 아버지의 집에서,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니 얼마나 좋으냐… 너희들도 믿고 나도 믿는데, 이왕이면 옛날처럼 마음 놓고 예배당에서 찬송 부르면서 예배 드리다가 세상을 떠나가면 좋으련만…’ 하고 말씀을 잇지 못하였습니다.
할머니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시고는 다시 시작하셨습니다. ‘그래도 나는 어려서부터 교회당에서 예배드리면서 성장했기에 지금도 믿음으로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고 있는데, 그렇지 못한 요즘 사람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야! 주님이 허락하시면 북조선에서도 다시 교회당이 세워질 거야!”라고 할머님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북한에 가서 들었던 말씀의 감동이
35년이 지난 오늘까지 남아

일꾼과 일꾼의 아내가 처음 북한을 방문한 것은 돈을 벌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곳에서 믿음의 성도들을 만나게 하셨다. 숨죽인 채로 지나온 50년 고난의 세월을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고, 고난은 잠깐이고 장차 천국에서 주님과 누릴 영원한 삶이 있기에 콧노래를 부르며 즐거움으로 찬송한다는 북한 할머니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의 감동이 흘러 넘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의 집에서 28일을 머물며 소리가 밖으로 들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교제하며 조용히 숨을 죽여가면서 예배를 드리던 광경을 떠올릴 때면 35년이 지난 지금도 새 힘을 얻는다고 일꾼은 말했다.
이후 신학 공부를 마친 일꾼과 아내에게 본격적인 북한 선교 확장의 길이 열렸다. 하나님은 북한에 갈 수 있는 여러 기회를 허락하셨다. 하나님은 놀랍게도 해방 전부터 믿음을 지켜왔던 그루터기 성도들을 만나도록 이끄셨는데, 북한이 공산화되고 50년을 지나는 동안 믿음을 지킨 성도들이다. 그들은 모두 성경책이나 찬송가가 없고, 암송하는 찬송과 말씀을 되새김질하며 신앙을 지켜 오고 있었기에, 말씀을 전할 때면 갈급한 심령에 위로가 되고 영혼의 생명수가 되는 것을 보았다. 또 어떤 이들은 잃어가는 믿음을 다시 일으키는 은혜를 누리는 감격을 맛보았다. 이에 대해 일꾼은 “성경에 누구를 만나든 무슨 말을 할지 염려하지 말라 성령께서 그때 할 말을 생각나게 하리라는 말씀이 북조선에 가서 성도를 만났을 때 매순간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라고 고백했다.
하나님은 이 밖에도 개인이 아닌 교회 차원에서 만주 지역의 조선족 성도들로 하여금 북한 선교에 대한 사명과 열정을 갖도록 도전하고, 북한에서 식량을 구하러 나온 수많은 백성을 돌보고 위로하며 복음을 전할 수 있게끔 역사하셨다. 그때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신실한 조선족 사역자들과 성도들을 통해 북한에서 나온 백성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굳게 세우는 사역을 오늘까지 행하도록 인도하셨다.

이제부터 전도자 빌립으로 살아가리라!

코로나 팬데믹으로 국가와 국가, 지역과 지역 간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일꾼은 다음 단계의 사역을 어떻게 할지 하나님께 물으며 기도해 왔다. 그러던 중 지난 1월, 이사야 60장의 말씀을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 하나님이 나보고 일어나라고 하시는구나. 그러면 하나님 일어나서 뭐해야 합니까?” 하고 기도하는데 “마태복음 소자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고, 사도행전 8장에서 빌립이 하는 사역을 네가 하라. 네가 이제는 전도자 빌립으로 살아라”는 말씀을 주셨다.
성경을 펼치고도 뜻을 몰라 설명이 필요했던 내시와 하나님의 말씀이 알고 싶어 몰래 찾아왔던 북한 성도들에게 말씀이 전해질 때 살아나는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이제 전도자 빌립과 같은 확실한 부활 신앙을 가진 조선족 사역자들을 일으키시어, 그들로 앞에 놓인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콧노래로 찬송하며 기뻐하는 북한의 OO 할머니와 같은 믿음의 용사들을, 조선땅 곳곳에 가득하게 하시기를 믿음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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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배달 이야기] 드디어 성경배달 단기선교가 시작되었습니다! (2023. 7)

“드르륵 드르륵”
캐리어 바퀴가 이국의 보도 블록 위를 스치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린다. 25kg족히 됨직한 캐리어를 양손에 하나씩 잡아 끌고 가는 단기팀의 발걸음도 경쾌하기는 마찬가지이다.
3년 넘게 지속된 팬데믹의 긴 터널을 지나는 동안, 선교 현장으로 직접 성경책을 가져가는 단기선교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점차적으로 이동 규제들이 풀리면서 해외 선교지로 성경을 배달하는 사역의 막이 다시금 올랐다.
기다림이 길었던지라 성경책이 가득 담긴 묵직한 여행용 가방을 끌고 갈 수 있다는 사실이 모두에게 기쁨이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성경책을 배달하기 위해 6명의 일꾼들이 모인 사역 현장에는 기분 좋은 가벼움이 넘쳐났다.

이번 여정에서 단기팀이 캐리어에 빈틈없이 꽉꽉 채워 간 것은 다름아닌 중국어 성경이었다. 아시다시피, 중국 내부에서 이제 성경책은 씨가 마른 상태라 할 수 있다. 지난해 소수의 중국 목회자 그룹에 성경책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물었을 때, 31톤 분량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가 답으로 돌아왔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행으로 해외에서 중국으로 들어가던 성경책의 유입이 끊어지고, 2018년 종교백서의 시행으로 중국 전역에 있는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판매하던 성경책이 모두 자취를 감춘 까닭이었다.
중국 교회가 요청한 31톤의 성경책을 배달하기 위해 본회는 오랜 기간 다각도로 가능한 방법을 점검하며 루트 개발에 힘써 왔다. 일꾼들이 이번에 가져간 중국어 성경은 그간 여러 번의 정탐을 통해 검증된 몇몇 지역 중 한 곳으로 배달되었다. 이로써 금번 사역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이루어진 첫 번째 성경 배달이라는 의미에 더하여, 새롭게 개척된 지역으로 수십 톤의 성경책이 필요한 중국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낼 수 있는 거점 지역의 다변화가 일어났다는 의미도 컸다.
이렇듯 생명의 말씀을 먹지 못하는 기갈이 심한 중국 대륙을 향해 일꾼들은 애 타는 마음으로 한 걸음이라도 더 가까이 가려고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들은 비행기부터 선박, 자동차, 지하철, 도보에 이르기까지 육해공을 지나가는 모든 운송 수단을 이용해서 최종 목적지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곳에 가져간 240권의 성경을 모두 풀어 놓았다. 이제 그곳에 살고 있는 성도들의 손에 성경책들이 들려 중국 가정 교회와 성도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단기 선교팀이 이번에 배달한 240권은 중국 교회가 요청한 31톤에 비하면 강물에 작은 돌 하나 던진 것 같은 아주 작은 양에 불과하다.
단기팀은 가져간 240권의 중국어 성경을 앞에 두고 앞으로 더 많은 성경이 중국 성도들에게 보내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마치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들과 맞서 싸우며 비가 오기를 기도했던 엘리야 선지자가 손바닥 만한 작은 구름 조각을 보고 큰 비가 올 것을 믿음으로 취하며 달렸던 것처럼 믿음의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드렸다.
이 기도가 있고 나서 몇 달 후, 3천 권의 중국어 성경이 중국 대륙 밖에 있는 디아스포라 성도들에게 배달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성경이 필요한 중국 성도들에게 배달한 240권의 성경을 기뻐 받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31톤 아니 그 이상의 성경책을 배달할 수 있는 길을 계속적으로 여시고, 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실 것이다. 우리 앞서서 기적의 길들을 내시고, 성경이 배달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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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성도 이야기] 북한에 성경을 가지고 가다 감옥에 갇혔습니다! (2023. 7)

북한에서 어렵게 나온 성도가 현지 일꾼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자신의 가족 중 한 명이 북한으로 성경을 가져가다가 발각되어 1주일째 감옥에 갇혀 있었다는 소식을 들려 주었습니다. 감옥에 갇힌 가족으로 인하여 두려움에 떨거나 긴장되지는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조선에 성경을 가지고 간다는 것 자체가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그래서 어려움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해야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성경을 가지고 가다가, 예수를 믿다가 어려움 당하는 것이 일상이 되는 북한성도들의 고백을 들으며, 하루속히 북한 성도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자유롭게 읽고, 가지고 다니고, 전하는 날이 일상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보내는 것이 가능한 북한어 성경이 준비되어 보내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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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성도 이야기] 동네 사람 몇을 전도해서 주일에 같이 기도합니다! (2023.6)

“하나님, 우리 은심이를 살려 주시오~~.”

봉숙은 선홍빛 피를 토하며 쓰러진 친구 은심의 어깨를 부여잡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자, 지금 무슨 죽을 소리를 하니?’
눈앞이 희뿌예지고 의식이 흐릿해지는 와중에도 은심은 봉숙의 고함 소리를 누가 들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봉숙을 말리려고 손을 뻗어 보았지만 몸이 제대로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입술을 달싹여 이름을 부르려는 시도도 허사로 돌아갔다.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드는 정신줄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칠 뿐이었다.
얼마 후, 다시 깨어난 은심의 눈앞에 자신을 근심스럽게 바라보는 봉숙의 얼굴이 보였다. 혼수 상태로 몇 시간이나 있었는지 은심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은심아, 정신이 좀 드니?”
“응…… 고마워.”
조용히 은심의 곁을 지키던 봉숙이 무언가를 결심한 듯 입을 뗐다.
“은심아, 있지… 하나님이 진짜 있다? 니 죽어서 지옥 가지 말고 하나님 믿어라.”
“봉숙아, 무슨 그런 소리를 하니?”
“나는 니 낫게 해 달라고 하나님한테 매일 기도한다.”
“기도? 기도라는 거 어떻게 하니?”
“하나님이 있는데 그 아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서 기도할 때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한테 기도하고 하나님 믿으면 우리 일이 다 잘 된다.”
“봉숙아, 그런 소리 어디서 들었니?”
“니 몸도 아픈데 하나님 믿어 봐라. 믿으면은 니 마음에 기둥이 생긴다. 아침 저녁으로 감사하다고 기도하면 사는 게 무섭지가 않다.”

봉숙은 작심한 듯 엄청난 말들을 쏟아 냈다. 그렇지만 은심은 그녀의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고개를 떨궜다. 평생을 소꿉 친구로 지내온 봉숙이가 갑자기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수십 년을 비밀 없이 허물없이 지냈건만 봉숙이의 입에서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이 튀어나오리라고는 정말이지 상상도 못했다.
봉숙은 모르긴 해도 평생 기독교인인 것을 티 내지 않고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정체성을 드러낸 데에는 은심의 병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당시 은심은 토혈이 그치지 않아 곧 송장을 칠 거라는 소문이 온 동네에 파다했었다. 명이 얼마 남지 않은 친구에게 봉숙은 영원한 생명을 소개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믿을 수 있는 친구의 말이라 해도 한순간에 고정관념을 바꿀 수는 없는 법이다. 북한에서 사실 하나님은 염두에도 없는 존재이다. 귀신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존재로 취급한다. 은심 역시 ‘그냥 내가 살면 되지 귀신, 즉 하나님에게 무슨 부탁을 하나, 무슨 귀신을 저렇게 자신 있게 믿나.’ 싶아서 실소가 나왔다.
은심의 냉담한 반응에도 이후 봉선의 전도는 계속됐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은심의 집을 찾아와 은심을 간호하며 하나님을 전했다. 어떤 날은 사람이 생긴 원리를, 어떤 날은 성경 속 인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봉선의 입에서 핵 폭탄과 같은 말이 떨어졌다.

“은심아, 몸이 아프고 무슨 일이 생기면 자꾸 속으로 말해라. ‘하나님, 이거 이렇게 해 주시오’라고.”
“봉숙아, 니는 그렇게 하니? 근데 나는 어째 그래 아이 믿어지니.”
“그러지 말고 은심아, 동네 사람 몇 명이 모여서 우리집에서 기도를 하는데 니도 같이 하자. 기도는 혼자 하는 것보다 모아서리 하면은 하나님이 잘 들어준다.”

은심은 봉숙이가 말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궁금했다. 성경책만 가지고 있어도 정치범으로 잡아가고 죄인으로 몰아서 죽이는 상황에서 대담하게 사람들을 전도하고 지하교회를 꾸린 친구가 믿는 하나님을 향해 은심은 기도하기 시작했다. “봉숙이가 믿는 하나님, 하나님께 기도하면 들어주신다고요. 저도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겠습니다.” 작은 소리로 기도하는 은심의 눈가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 눈물을 닦으며 은심은 자기도 모르게 자꾸만 하나님의 이름을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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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 특집] 재난구호가 복음을 전파하는 놀라운 현장이 되었습니다! (2023. 6)

모퉁이돌선교회는 지난 2012년부터 하나님께서 북한의 문을 여실 때를 대비하여 재난 현장에 가서 구조 활동을 할 수 있는 IDRN(International Disaster Response Network) 훈련을 매년 실시해 왔다. 훈련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재난 현장서 직접 활동할 수 있는 회원증이 발급되었다. 모퉁이돌선교회는 이들과 함께 국내외에서 발생한 다양한 재난 현장에서 구조와 구호 활동을 펼쳐왔다.
그리고 지난 4월 26일, 지진으로 신음하는 재난 현장에 8명의 IDRN 단기 선교팀이 7박 9일의 일정으로 다녀왔다. 지진의 직격탄을 맞은 카라만마라슈와 말라티야를 포함해서 가지안테프, 앙카라, 키리칼레 등의 도시들을 방문하며 피해를 입은 튀르키예인과 시리아 난민, 아프가니스탄 난민에게 구호 물자를 공급하고, 지진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복음을 제시해 수십 명의 영혼을 주께로 돌이키는 놀라운 열매를 맺었다.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여전히 진행 중인 지진

현장에 도착한 IDRN 팀이 가장 먼저 목격한 장면은 곳곳에 무너져 내린 건물이었다. 회색빛 잔해가 나뒹굴고 여진이 계속되는 가운데에도 완전히 붕괴되지 않은 건물에는 갈 곳을 잃은 지진 피해자들이 몰래 들어가 살고 있었다. 튀르키예 정부가 주거 금지령을 내렸음에도 삶의 터전을 빼앗긴 사람들은 기울고 움푹 파이고 금이 간 아파트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경우 이재민들은 아파트보다는 텐트에 거주하고 있었다. 카펫과 이불, 밥그릇 정도만 덩그러니 놓인 좁은 텐트에 10명도 넘는 가족 구성원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물리적인 주거 환경도 문제였지만 이보다 더 시급하고 심각한 문제는 정신적인 고통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지진 생존자의 십중팔구는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맨 처음 지진이 발생한 시간인 새벽 4시가 되면 눈이 저절로 떠져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붕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폐소공포증을 겪었다. 말라티야에서 만난 한 사람은 사건 당시의 아우성이 지금도 환청처럼 들린다고 했다.

“온통 건물이 흔들리고 무너지는데 여기저기에서 살려 달라는 비명 소리가 들렸어요. 할 수 있는 한 달려가서 손을 잡고 끌어당겨 봤지만 역부족이었죠. 게다가 그때도 지진이 진행되고 있어서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어요. 땅 밑에서 소리 치던 그들은 다 내 가족, 내 친구, 내 친척, 내 이웃이었는데 말입니다.”

재난당한 이웃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육체적, 정신적, 환경적으로 환난당한 튀르키예인, 시리아인, 아프가니스탄인을 직접 만나 그들의 필요를 채우고, 위로하고, 기도하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이 이번 IDRN 단기 선교팀의 핵심 사역이었다.
당장 먹을 것과 거주할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식량과 생필품을 제공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IDRN 팀은 현지 마트에서 쌀, 파스타 면, 설탕, 기름, 샴푸, 비누 등을 구입해서 구호 상자에 담았다. 기본 물품 외에도 25~50달러를 충전한 선불카드를 준비해서 생활비로 쓸 수 있게끔 했다.

IDRN 팀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너도 나도 하나라도 더 얻으려고 손을 뻗는데 일일이 다 쥐어 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고 아쉬울 지경이었다. 아이들에게는 사탕과 학용품, 풍선, 축구공 등을 나눠 주었는데, 아무래도 축구공, 폴라로이드 사진 촬영이 인기만점이었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 편에서는 한국어로 찬양을 부르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텐트 사이로 울려 퍼졌다. “주님만이 왕이십니다. 내 삶에. 이곳에. 온 땅에.” IDRN 팀의 일원인 장동진 목사가 한 소절씩 선창하면 튀르키예, 시리아 난민 아이들이 목이 터져라 따라했다. 가사의 의미는 몰라도 간접적으로나마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로 시인하고 찬양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텐트 밖에서 행복하게 뛰어노는 동안, 텐트 안에서는 정수기 설치가 진행됐다. 공동 수도에서 나오는 물은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상태가 아니어서, 깨끗한 물에 대한 요구가 정말 컸다. IDRN에서 준비한 정수 시설은 조립이 간편하면서도 물 속 세균과 불순물을 99.9% 정화하기 때문에 난민촌에서 사용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지진 피해를 입은 아프가니스탄 난민 20여 가정과는 텐트촌이 아닌 외부 식당에서 식사 교제를 하며 간단한 활동을 함께했다. 지진이 났을 때의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고통과 불안을 표출하게끔 했고, 한국어이지만 찬양을 들려줌으로 그들의 공허한 마음에 하늘의 평화와 평강을 주고자 했다.

구호 활동과 함께 생생히 증거되는 복음

일단 난민들의 애로 사항을 듣는 것으로 대화의 물꼬가 터졌다. 어떻게 지내고, 걱정과 필요가 무엇인지를 물어 보면, 마음과 몸과 생활이 힘들다는 이야기와 함께 자연스럽게 기도로 넘어가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도 괜찮냐?”라고 동의를 구해 허락하면 기도를 하는데, 치유 기도의 경우 곧바로 통증이 줄어들거나 질병에서 놓임 받는 역사가 나타났다. 강력한 기도의 능력을 직접 체험한 이재민들은 마음이 활짝 열려서 즉시로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다. 이슬람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아와 회개하고 구원받는 일이 꽤 여러 번 일어났다. 그중 몇 가지 간증을 소개한다.

“텐트에 들어갔더니, 어떤 젊은 여자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어요. 이마를 짚어 보니 열이 펄펄 끓더군요. 복음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낫는데 기도 받을래?’라고 물었어요. 여기 사람들은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하면 알라로 알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라고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어요. 다른 식구들은 약으로 치료할 거라고 반대했지만 열나는 자매가 승낙해서 선교사님이 손을 얹고 기도를 했어요. 즉시 열이 떨어지면서 가슴 통증도 사라지니까 옆에 있던 시어머니와 삼촌이 놀랐고, 밖에서 구경하던 무슬림들도 웅성웅성했어요. 기독교인에게 기도 받았다고 해코지 당할 것을 염려했는지 방금 전까지 열이 났던 자매가 벌떡 일어나서 사람들을 쫓아내더군요. 그 사이, 통증으로 허리와 무릎을 쓰지 못하던 자매의 삼촌도 기도를 받아서 나았어요. 그런데 이 모든 치유를 지켜본 목격자가 텐트 안에 또 한 명 있었는데 바로 옆집에 사는 청각장애인 여자아이였어요. 그 아이의 텐트에는 머리와 배, 발이 아픈 엄마와 오빠, 동생이 있었고 네 명 모두 기도로 치유받았어요. 복음을 제시하고 영접 기도를 하는 시간에 선교사님의 입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 아이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 아이에게 복음이 심겼을 거라고 확신해요.”

“예수를 믿은 지 2달이 된 다니엘이라는 시리아 난민을 만났어요. IS와 지진의 위협에서 극적으로 빠져나와 복음을 듣고 친구들을 전도했는데 성경 지식이 부족해서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자 선교사님에게 도움을 요청했어요. 선교사님과 IDRN 팀이 함께 두 가정을 방문했는데 첫 번째 집에는 가정 폭력에 시달린 엄마와 딸이 살고 있었어요. 말을 안 듣는 여자는 때려도 된다는 꾸란과 달리 성경은 아내를 사랑하라고 가르친다고 비교해서 복음을 설명하자, 딸이 엄마에게 ‘이게 맞는 것 같다.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겠다.’라며 믿음을 선택했어요. 두 번째 찾아간 집에서도 두 사람에게 복음을 제시했는데 그중 한 명이 믿겠다고 해서 선교사님을 따라 영접 기도를 했어요.”

“엄마와 두 딸을 위해 기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역을 했는데 큰 딸이 성경책을 읽고 싶다고 고백했어요.”

“이슬람을 믿는 튀르키예나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텐트촌에는 이맘(이슬람의 영적 리더)이 꼭 있는데, 이맘을 수종 드는 사람에게 ‘내가 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말인데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 봐라. 예수님에 대해 생각해 봐라.’ 하고 이야기했더니 저에게 ‘그렇게 이야기해 줘서 고맙다.’라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어요. 복음을 전하는 것을 내가 두려워할 뿐, 정작 그 사람들은 생각만큼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기독교 인구가 채 1%도 되지 않는 튀르키예. 영적 어둠이 짙게 깔린 그 땅이 참혹한 재난으로 흔들리고 무너졌다. 이재민의 마음도 붕괴되고 갈라졌지만 그 틈으로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고 있다. 실의에 빠진 이들이 다시 일어서도록 지원하는 IDRN 선교팀의 구호 활동을 통해 하나님을 전하는 접촉점이 마련되었고, 직접적인 복음 제시와 치유 기도 사역을 통해 결신자까지 얻게 되었다. 믿음의 기도가 병든 자를 일으켜 하나님을 증거하는 영혼 구원의 역사를 가져왔다. 생명의 열매들이 계속해서 맺히고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부어짐으로 말미암아 재 대신 기쁨이, 슬픔 대신 찬송의 옷이 입혀지는 튀르키예와 그 백성이 되기를 소망한다. 나아가 하나님께서 북한의 문을 여실 때 고통 중에 신음하는 북한 성도들을 위로하고 복음을 전하는 날이 속히 임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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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특집 1] 탈북민을 통한 북한 선교(2023.5)

북한은 코로나 방역을 명목으로 3년 이상 국경을 닫고 외부와의 차단을 공고히 해 왔다. 국경 봉쇄는 장마당 중심의 경제 활동으로 살아가는 북한 주민의 삶에 직격탄이 되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했을 뿐만 아니라 북한 선교에도 큰 어려움을 주었다. 이런 현실에서 하나님은 탈북민 성도와 사역자들을 사용하셔서 북한에 있는 성도와 가족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치고, 복음을 전하며, 지하교회를 세우는 놀라운 일을 행하고 계신다. 이에, 목숨을 걸고 한국에 왔으나 여전히 여러 문제에 겹겹이 쌓인 탈북민들을 돌아보고, 고통 가운데 신음하는 북한의 가족과 친구 그리고 믿음의 성도들을 연결해서 돕고 하나님을 알리는 사역을 감당하는 한 탈북민 사역자의 고백을 소개한다.

많은 탈북민에게 북한에서의 기억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고통입니다. 어떤 이들은 사랑하는 가족이 눈앞에서 굶어 죽고 얼어 죽고 식량을 얻으러 갔다가 길가에서 시신이 되어 돌아왔지만 그럼에도 슬퍼할 작은 시간마저 허용되지 않아 또 다시 굶어 죽지 않으려고 몸부림쳐야 했습니다. 아비와 어미였던 다른 이들은 한 줌의 식량을 얻기 위해 총칼로 무장하고 눈에 불을 켠 채 감시하는 경비대가 있는 압록강과 두만강에 주저하지 않고 발을 담그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탈북민들은 자식들이 배를 곯지 않을 수만 있다면 기꺼이 자신을 인신매매로 팔아서라도 희생하고 인권을 유린당하고 갇히고 매맞고 도망치다가 다시 끌려가 족쇄가 채워져 노예처럼 사는 것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가장 절망적이고 가장 비참한 자리에 놓였던 탈북민에게 한 줄기 소망의 빛이 비쳤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복음의 빛이었습니다. 갈 길을 몰라서 헤매며 처량하고 곤하게 다닐 때 탈북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선교사들이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쫓겨 다니며 숨을 곳만 찾던 탈북민들을 품어 주고 위로해 주는 선교사들로 인해 그들은 살 힘을 얻었습니다. 초라하고 비참하고 두려움에 떠는 탈북민에게 선교사님들이 먼저 다가가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주었고 자유의 땅 대한민국으로 인도해 주었습니다.
한국에 도착한 탈북민 대부분은 이제 인생의 모든 고통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다인 줄로 착각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보다 풍족하고 안정된 환경에서 살아가는 탈북민에게 남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큰 고통과 아픔이 남아 있었습니다. 굶주림과 고난의 슬픔으로 가득 찬 북한에 남겨진 사랑하는 부모 형제를 향한 그리움,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애통함이 탈북민의 가슴 한 편을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살아는 있는지, 풀죽이라도 먹는지, 잡혀가지는 않았는지…. 목소리라도 한 번 듣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브로커에게 거액의 수수료를 주고 생활비를 보내며 그들도 복음을 듣고 영원한 생명 얻기를 원하고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견뎌 냈습니다.

가족과 떨어져 한국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탈북민들은 동병상련의 아픔도 달랠 겸 같이 식사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모임을 종종 갖습니다. 식탁에 둘러앉아 흉금을 터놓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처음엔 기쁨으로 시작한 모임이지만 탈북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애달픈 사연에 어느새 눈물바다가 됩니다.
“도와 달라는 가족의 간절한 호소를 뿌리칠 수가 없어 돈을 마련해서 보내줬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은 여유가 없으니까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며 매정하게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러고 돌아앉으려니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흐르더라고요. 진짜로 다시 연락이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겁이 덜컥 났어요.”
“남한에 온 것도 벌써 수년이 흘렀습니다. 헤어진 지 벌써 오래되어 부모님 얼굴이 떠오르지 않고 지난 고통만 새록새록 떠올라 일부러 생각을 안 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영영 기억에서 지워질까 봐 요즘은 부모님 얼굴이 생각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수용소에 끌려간 딸이 너무 보고 싶어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딸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가슴을 두드립니다.”
“아르바이트만 5개를 하면서 돈이 모이는 대로 우리 어머니와 아들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몸이 많이 아프니까 마음도 힘들어요. 일 끝나고 늦은 밤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 찬물에 밥을 말아 먹으려니 서러워서 눈물만 펑펑 쏟곤 해요. 도대체 언제까지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하나 자꾸만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 가슴 아린 이야기들은 비단 탈북민 몇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한국에 온 3만 5천여 탈북민이 풀지 못하고 있는 숙제입니다. 한국에 정착한 지 오래되었든 얼마 되지 않았든지 간에 기간에 관계없이 탈북민들은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하며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수고의 짐을 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탈북민 각자가 가진 고달프고 애달픈 사연은 눈물로 통곡할 수밖에 없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는 예수님을 함께 모여 예배하고 기도할 때 탈북민들의 모임은 천국 잔치가 됩니다. 특히 예수님 안에서의 진정한 회복을 경험한 지체들은 삶의 무게와 아픔을 견디면서도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애를 씁니다.
“공사 현장에서 일하다가 갑자기 쓰러져서 119에 실려 갔는데 교회 권사님이 안쓰러웠는지 돈 봉투를 주셔서 눈물이 났습니다. 100만 원이나 들어 있었습니다. 그 돈을 북한에 계신 어머니에게 보내면서 ‘어머니, 하나님을 믿는 교회 권사님이 어머니 드리라고 주신 쌀값입니다. 어머니도 예수님을 믿어야만 합니다. 저도 남한에 와서 교회 분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회사를 오래 다니니까 퇴직금이라는 거를 줍디다. 너무 고마운데 갑자기 북한에서 신세진 동무가 떠올라 수소문해서 찾았습니다. 그리고 돈을 보내면서 전도를 했습니다. ‘내가 남조선에 와서 제일 잘한 일이 예수님 믿은 거더라. 너도 예수님 믿고 같이 천국 가자.’ 제가 이렇게 말하니까 ‘어떻게 하면 되니?’라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주기도문을 불러줬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하나님을 믿는 탈북민들은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복음을 더 잘 전할 수 있는 방법들을 궁리합니다. 탈북 성도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북한에 있는 가족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기회가 닿을 때마다 사랑으로 구제하고 복음을 전합니다. 북한 당국의 철통 같은 감시가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용서와 사랑을 받은 자만이 할 수 있는 믿음의 표현이기에 멈출 수가 없습니다.
많은 탈북민이 북한에 남겨진 가족이 불쌍해서 눈물 흘리고 혼자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미안해서 웁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탈북민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이 땅에서의 고단함을 마치면 주님과 영원히 살게 될 천국이 있다는 것입니다. 가족을 그리워하며 그들이 구원받아 천국 소망을 안고 살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탈북민들이 북녘 땅을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복음의 소식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안타까운 마음에 도움을 주려고 전화를 걸었어도 영원한 소망을 붙든 탈북민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북한에 확장되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는 말이 아닙니다.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때 (중국에) 같이 갔던 내 동무하고 드문드문 둘이 산꼭대기에 올라가 하늘을 보고 또 중국의 교회를 바라보다가 내려오면 마음이 좀 낫습니다. 너무 힘이 듭니다. 사람들이 진짜 불쌍합니다. 나는 쌀 장사를 하니까 그래도 죽이라도 매끼 먹는데 농촌도 식량이 떨어져서 굶어 죽는 집이 있답니다.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아버지 집(교회) 자리가 보이는데 진짜 보고 싶습니다. 우리 언제면 만날 수 있습니까? 우리를 위해 기도 좀 해 주시라요.”
“꿈인지 생시인지 따뜻한 손길을 다시 받고 보니 아버지가 우리를 기억하고 있는가 봅니다. 여기는 너무 춥습니다. 앞이 캄캄해서 주저앉아 울 때가 많습니다. 하늘을 쳐다보며 다시 일어나 봅니다. 이 도움 평생 잊지 않고 나도 나누겠습니다. 세상 끝날까지 우리 아버지만 의지하겠습니다.”
“한지(길가)에서 지내는 남자들이 수두룩한데 맨날 겨울 동복을 입고 있습니다. 밤이면 추워서 그렇게라도 입어야 됩니다. 몰래 뒤에 가서 먹을 것을 놔두고 옵니다. 며칠을 그렇게 했더니 내가 가까이 가니까 내 손부터 살피다가 ‘고맙소!’ 이렇게 말을 하는데 내가 눈물이 났습니다. 어느 날엔가는 그에게 꼭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숨어서 믿음을 지키는 북한 성도들로부터 받은 소식입니다. 앞뒤가 꽉 막힌 것 같은 흑암의 땅에서도 하나님은 주의 자녀를 향한 손을 놓지 않으시고 일하고 계십니다. 모퉁이돌선교회 탈북민 사역자를 통해서만 2022년 북한 OO 지역 9명의 일꾼들이 길가의 고아와 굶주린 가정을 포함해서 350여 명 이상의 성도와 주민을 도왔습니다. 북한 내부로 쌀 등의 구제품이 들어갈 때면 받는 일꾼들에게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이웃 사랑입니다. 이것을 반드시 주변의 어려운 이웃, 힘없는 어린이와 노인을 섬기는 데 사용해 주세요.”라고 신신당부합니다. 그렇기에 일꾼들이 사는 주변 구석구석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가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는 수많은 북한 사람들이 큰 위로를 얻고 영원한 생명에까지 이르는 구원의 도구가 됩니다.
최근 모퉁이돌선교회는 코로나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중국에서 선교사들의 양육을 받고 북한으로 돌아간 이들을 찾아서 지원하는 사역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끊어진 연락이 하나 둘 재개되는 가운데 특별히 지난해부터 하나님은 오랫동안 안부를 알 수 없었던 북한 내부에 있는 믿음의 성도들과 그들의 가족 및 친구들과 연결되는 놀라운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얼마 전에는 중국에서 5일을 함께 지내며 하나님과 성경 이야기를 나누었던 OO 자매를 찾게 하셨습니다.
금년에는 더 많은 북한 사역자들과 연결돼 더 많은 사역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지하교회로 모이는 것까지는 확인되었으나 아직 연락할 방편이 없어 돕지 못하는 다른 성도들과도 속히 접점이 마련되도록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렇듯 중국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안고 다시 돌아간 북한 성도들, 한국에서 복음을 듣고 기도하는 탈북민의 북한 가족들, 본인도 끼니 걱정을 해야 함에도 움켜쥐지 않고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어 은밀한 중에 선을 행하는 북한의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죽음이 횡행하는 저 땅이 반드시 살아날 것입니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사랑이 전달되어 얼어붙었던 북한 주민의 마음이 녹고 영적인 눈과 귀가 활짝 열리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한국에 온 탈북민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 가족에게 전하는 사랑과 복음은 멈추지 않고 전진할 것입니다. 탈북민을 복음을 전하는 통로가 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한국에 있는 3만 5천여 명의 탈북민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북한을 위한 그리스도의 군사로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나아가 하나님께서 북한의 문을 여실 때 복음의 특공대로 준비되기를 소망합니다.

박릴리(본회 탈북민사역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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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특집 2] “네가 말한 하나님, 나도 이제 믿으련다!” (2023.5)

“엄마, 내가 여기 와서 교회를 다니는데 하나님 믿으니까 너무 행복해.
돌아보면 내 힘으로 헤쳐 나온 게 아니고 다 하나님이
등 뒤에서 밀어주고 손잡아 이끌어 주셔서 고비마다 이겨낼 수 있었어.”

김영희(가명, 탈북민) 씨는 북한에 있는 어머니와 통화할 때면 하나님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한국에서 신앙 생활하는 게 너무 좋아서 어떻게든 엄마에게도 하나님을 소개해서 믿게 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비록 단속 때문에 한 번에 2~3분 하는 전화이지만 영희 씨는 나날이 쇠약해지는 어머니가 신경이 쓰여 뭐라도 한 마디씩 덧붙이곤 한다.

“엄마, 지난번에 찬송 배워준 거 안 잊어버렸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노래 부르기를 즐겨하는 엄마를 위해 영희 씨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은 찬양을 기회 있을 때마다 한 소절씩 따라 부르게 했다. 얼마 전에는 주기도문도 같은 방법으로 암송하게 했다.

“엄마가 엄청나게 기도를 해야 해. 지금 숱한 자식들이 굶어 죽게 생겼어. 자식들 잘될 수 있도록 이제부터 매일매일 하나님께 기도드려야 해.
기도하고 마지막에는 꼭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를 붙이고. 그거 없으면 기도가 안 돼. 알았지?”
“자식들 살리는 길이라면 해야지.”
“정말이야? 나랑 약속했다!
엄마, 하나님~ 하고 한 번 불러 봐.”
“하나님~ 하나님, 나도 이제 하나님 믿을랍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생전 처음 듣는 엄마의 하나님 소리에 영희 씨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이제 됐다는 안도감과 함께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이미 정해 둔 통화 시간이 훌쩍 넘었기에 영희 씨는 엄마에게 장소를 옮겨서 다시 전화하라고 일렀다. 언니가 노심초사하며 기다리고 있을 문제에 대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잠시 후 수화기가 울렸다.

“엄마, 언니한테 애들 걱정은 하지 말라고 해.
여기 교회 몇천 명이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미국에서까지 무사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어. 하나님이 모든 걸 주관하시니까 기도하면 들어주셔.
언니 옆에 있음 잠깐 바꿔 줘. 언니, 이거 하나님 말씀인데 한 마디씩 따라해.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이름으로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 네가 물을 건널 때에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강들을 통과할 때에 그것들이 너를 뒤덮지 못하리라 네가 불 가운데로 걸을 때에 네가 태워지지 않고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라(사 43:1~2)’
이렇게 힘이 있는 하나님께서 다 길을 만들고 계획하시니까 절대 안 죽어. 애들 염려하지 마.”


대답 대신 수화기 너머에서 갸날프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믿음이 없는 언니이지만 자식을 지켜 줄 수 있는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마음에 크게 와 닿은 모양이었다. 어미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상황을 하나님은 오히려 당신을 붙들 수 있는 기회로 선용하셨다.
모퉁이돌선교회 사역 중 하나인 탈북민을 통해 이뤄지는 북한 선교의 한 단면이다. 탈북민과 북한 가족들이 주고받는 모든 전화 통화가 하나님의 손에 들려 복음이 북녘 땅에 왕성히 전해지고 하나님의 이름이 아름답게 퍼져 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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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 인터뷰] 북한교회를 위해 계속 기도할 열정을 불어 넣어 주십니다. (2023.5)

북한의 문이 열려 지하교회가 지상화될 때를 대비해서, 모퉁이돌선교회는 북한 교회를 이끌어 갈 목회자를 양성하는 과정을 CIU(모퉁이돌국제대학 Cornerstone International University)에 개설했다.
올해부터 CIU 부총장으로 섬기는 데이비드 탈리, 미국 바이올라 대학 구약학 교수가 지난 2월 한국을 방문했다. 약 일주일의 방한 기간 동안 그는 ‘고난의 신학’을 주제로 강의를 진행했고, 특별히 탈북민 교회를 찾아가 설교하는 일정도 소화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Q. 이번에 가장 인상 깊었던 일정은 무엇이었나요?

북한이 보이는 철책선 근처로 간 것입니다. 북한에 그렇게 가까이 갈 수 있다는 것이,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곳이라는 사실이 저에게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느낌이 너무나 강렬해서 꽤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제가 한국말을 할 수 있다면 철책을 뛰어넘어 수영을 하고 강을 건너서 그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 충동이 일어났으니까요.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이 위로받고, 모든 북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Q. 북한 교회를 위해 어떻게 기도하시나요?

북한에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경을 가질 수 없고, 예배 모임을 갖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복음을 전하려면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엄청난 박해 가운데 있는 북한 교회는 항상 제 마음에 있습니다. 갇힌 것처럼 갇힌 자를 생각하라는 히브리서 13장 3절 말씀을 상기하며 기도합니다.

Q. “고난의 신학”을 강의 주제로 잡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훈련받은 자들이 북한에 들어갈 때 성경에서 말하는 고난이 무엇인지를 온전히 이해하고, 고난 중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상태이기를 원했습니다. 고난을 통과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권자이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 백성의 유익을 위해, 궁극적으로는 당신 자신의 영광을 위해 고난을 사용하십니다. 그러니 고난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신뢰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고난 뒤에 계시며 그분의 목적을 위해 다스리고 계십니다.

Q. CIU 부총장으로서 그리는 청사진이나 비전이 있나요?

북한 지하교회 지도자들을 훈련시키는 것이 CIU의 목적이자 저의 주된 관심사입니다. 매년 발행되는 오픈도어 박해 지수 보고서를 받고 있는데, 늘 1위를 차지하는 북한을 비롯한 여러 박해받는 국가들의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 된 그들을 위해 계속 기도하자고 독려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할 열정을 계속 저에게 불어넣고 계십니다. 이번에 모퉁이돌선교회에서 정오에 북한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돌아가면 저도 같은 시간에 여러분과 함께 기도할 것입니다.

Q.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한국에 머물면서 탈북민 교회에서 설교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버리셨나요?”라는 주제로 이사야 40장을 본문 삼아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교회의 성도들이 여기에 오기까지 겪었을 무수한 우여곡절과 북한에서 여전히 힘겹게 생존하고 있을 그들 가족의 아픔을 생각하며 성경 말씀을 나눴습니다. 먼저, 미국에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서 격려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결코 주님이 그들의 고난을 모르지 않으시며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시간 속에서 함께하시니 주님을 바라보고 기다리라고 말했습니다. 설교 마지막 부분이 제가 북한 교회에 전하고 싶은 핵심입니다. “하나님은 ‘영존하시는 분’입니다(사40:28).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영원무궁한 분입니다. 인간의 상상과 이해를 뛰어넘는 그분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우리네 삶에는 고난이 있습니다. 그것을 통과하는 가장 좋은, 그리고 유일한 방법은 여호와를 앙망하는 것입니다(사 40:31)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고 계십니다.”

여호와는 영존하시는 하나님이요 온 땅끝까지 지으신 창조자이니 그는 지치거나 피곤하지 않으시고 그의 명철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가 지친 자에게 힘을 주시고 무능한 자의 힘을 돋우시니 청년이라도 피곤하여 지치고 장정이라도 넘어지고 기진하나 오직 여호와를 바라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 같은 날개로 솟아오를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피곤하지 않고 걸어가도 지치지 않으리라
(사 40: 28~31, 남북한병행성경 북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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