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도 “회복되어야 할 평양의 교회들”, 38x52cm
1. 광복 전 북한지역 기독교 인구
해방 전인 1941년도 남북한을 합친 개신교 인구는 33만 9천 명이었다. 이 가운데 90.5%가 장로교(75.6%)와 감리교(14.8%) 소속이다. 북한지역에서는 두 교파 신자들의 비율이 남한지역보다 더욱 높았다. 당시 북한 개신교 신자는 모두 22만 8천 명으로 이 가운데 장로교(83.8%)와 감리교(10.2%)의 신자가 북한 개신교 인구의 94%를 차지했다. 특히 북한 개신교 신자의 89.2%가 서북지역(평안도, 황해도)에 거주하고 있었다. 서북지역의 경우, 장로교(84.7%)와 감리교(10.9%)에 속한 개신교인의 비율이 무려 95.6%나 되었다.
강인철 (1992). 월남개신교, 천주교의 뿌리: 해방 후 북한에서의 혁명과 기독교. 역사비평, p.91-141.
해방 당시 남북한 전체 개신교 신자의 60%에 해당하는 약 20만 명(같은 시기 북한 인구의 2.2%)이 북한에 거주하고 있었고 그 후 한국 전쟁이 발발하기까지 5년 사이에 교세가 급속히 증가했으며, 북한 개신교 인구의 35-40% 에 해당하는 7-10만 명이 남한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산된다.
강인철 (2008). 남한의 월남 개신교인들: 반공주의와 민주주의에 미친 차별적 영향. 종교문화비평, p.131-158.
분단과 한국 전쟁으로 인해 남한으로 이주한 북한 출신을 보통 <월남민(越南民)> 이라고 불렀다. 정확한 통계 자료는 없고, 연구자들과 이북5도청의 통계가 조금씩 달라 월남민의 숫자를 확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한국 전쟁시기 월남민 숫자에 대해 1955년 인구 센서스에서는 약 44만 9천명, 권태환의 연구에서는 65만 명, 이북5도청 자료에서는 164만3천명으로 나온다. 따라서 여러 연구를 참조할 경우 월남민의 숫자는 대략 46만 명에서 74만명 사이로 추정된다.
출처: 분단 이전 북한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 주영하 저, 열린책들, 2023년 3월 10일, 5-6p.
2. 평양시의 지역적 특성과 지역 정체성
평양시는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 교육의 중심지이며 ‘혁명의 수도’이다. 평양은 2016년 기준으로 1,747km2의 면적에 행정구역상 18개 구역과 2개 군을 갖고 있다. 평양의 인구는 2014년 기준으로 342만 4천 명으로, 북한 전체 인구(2,421만 4천 명)의 14.1%에 해당한다. 북한 제2, 제3의 도시인 함흥시(2008년 기준, 약 66만 9천 명), 남포시(2008년 기준, 약 36만 7천 명)의 인구와 비교해볼 때, 다른 도시에 비해 상당히 규모가 큼을 알 수 있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평양의 인구증가율은 연 0.85% 수준으로, 북한 전체의 인구증가율(0.61%)보다 높을 뿐만 아니라 모든 도와 직할시 중 가장 높다. 인구밀도는 1,402명/km2로 북한 전국 평균(216명)의 약 6.5배 수준이다.

평양의 도시권은 중심도시권, 준위성도시권, 위성도시권의 3개 권역으로 구분된다. 중심도시권은 중구역, 모란봉구역, 선교구역, 서성구역으로, 당정기관과 외국공관들이 밀집한 정치, 행정 기능의 중심지이다.
준위성도시권은 보통강구역, 평천구역, 대성구역, 대동강구역, 낙랑구역, 사동구역, 동대원구역을 포함하며, 주거 및 경공업지구이자 평양시의 생활필수품 공급지이다.
위성도시권은 삼석구역, 용성구역, 형제산구역, 만경대구역, 역포구역, 순안구역, 은정구역의 7개 구역과 강동군, 강남군의 2개 군으로 이루어진 외곽지역으로, 주로 중공업과 농목축업이 이루어지는 지역이다.
평양시에서도 실제 시가지화된 곳은 대동강구역, 대성구역, 동대원구역, 낙랑구역, 만경대구역, 모란봉구역, 보통강구역, 서성구역, 선교구역, 중구역, 평천구역 등 총 11개 구역이며, 시가지 면적은 약 305km2 정도이다. 시가지 구역은 전체 면적의 약 17% 정도에 불과하며, 주로 중심도시권과 일부 준위성도시권이 여기에 해당한다.
평양시 중심부는 본평양, 동평양, 서평양의 세 영역으로 구분된다. 본평양은 중구역, 평천구역, 모란봉구역, 보통강구역을 포함하는 곳으로, 정치·문화의 중심지이다.
서평양은 본평양 서쪽의 만경대구역을 칭하는데, 만경대혁명사적지 조성 외에는 개발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곳이었으나, 1989년 제13차 세계청소년학생축전 개최를 준비하면서 만경대 유원지, 고층아파트, 집단체육시설이 건설되고 대규모 신시가지로 변모되었다.
동평양은 대동강, 동대원, 선교구역을 포함하는 곳으로, 이곳에서는 1960년대부터 기성시가지를 재개발하고 기반시설을 확충하여 외국인 주거지, 대학, 병원 등을 건설하였다. 이 지역 역시 1980년 이후 대동강구역을 중심으로 신시가지로 활발히 개발되었고 상업시설이 집중적으로 배치되어있다.
출처 : 평양과 혜산, 두 도시 이야기: 북한 주민의 삶의 공간, 33-34. p. 2017, 통일연구원
평양시에서도 중심지에 가깝고 교통이 편리하며 전기와 물, 온수 공급이 비교적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지역은 집값이 오르면서 신흥 부촌으로 부상했다. 예를 들면, 평천구역은 원래 노동자구역이었지만, 중구역에서 가깝고 화력발전소가 입지해 있어 난방이 잘 되어 부유층 거주 지역이 되었다.
반면에 1980년대 말에 완공된 만경대구역의 체육촌 주택단지는 초기에는 지식인들, 예술인들이 배치를 받아 비교적 좋은 동네였으나, 교통이 불편하고 중앙난방시설이 열악하여 중하급지역으로 전락했다.
선행연구에 따르면 주택 가격이 비싼 순서는 중구역, 평천구역, 모란봉구역과 보통강 구역, 대동강구역, 동대원구역, 서성구역, 대성구역 순이다. 교외 쪽으로 나갈수록 중구역과의 가격 차이는 더욱 심해진다.
출처: 평양과 혜산, 두 도시 이야기: 북한 주민의 삶의 공간, 42. p. 2017, 통일연구원
3. 평양시 구역별 주요 정보
1) 중구역
김일성 광장 :
김일성 광장 어딘가에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교회가 남문밖 교회이다.


인민대학습당 :
‘인민대학습당’ 부근은 예전 감리교 센터라 할 수 있는 곳이다.
남산현 교회를 비롯해서 (감리교)학교, 의료선교기관, 선교사 사택들이 밀집해 있던 곳이다.


북장로회는 신양리와 경창리 일대에 양촌(洋村)을 형성하고 그곳에 선교사 사택, 숭실학당, 숭실대학, 신학교, 남녀성경학교, 숭의여학교, 외국인학교, 제중원 등의 넓은 선교지부를 형성했다. 북감리회는 그 아래 대찰리, 순영리, 남산정에 걸치는 지역에 선교지부를 조성하고 선교사 사택, 기홀의원, 광혜의원, 광성학교 등의 기관을 운영했다.
출처 : ‘조선의 예루살렘 평양’ 담론의 실상, 기독교 사상 2018년 9월호, 옥성득
만수대 기념비 & 김일성 동상 :
만수대 언덕에는 최초 김일성(1994년 7월 사망) 동상만 있었다. 1972년 4월 김일성 60회 생일 기념으로 세워졌다. 그 후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4개월 여 지난 2012년 4월 15일 김일성 생일(태양절)에 김정일 동상과 함께 김일성 동상 제막식 거행. 현재 만수대 언덕의 김정일 동상은 코트가 아니라, 야간 점퍼 차림으로 2013년 2월 16일 김정일 생일(광명성절)에 인민복 위에 코트가 아닌 야간 점퍼로 교체.


모란봉 극장 & 모란봉공원 :
평양신사(1938년 9월 10일 신사참배 가결 후 참배한 신사) 터.
1948년 9월 평양에서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 1차 회의에서 김일성(당시 공식 직책: 북조선인민위원회위 원장)을 국가수반, 내각 수상으로 만장일치로 추대한 곳이 모란봉 극장이다.
모란봉(牡丹峰, Moranbong)은 평양직할시의 중심지 북쪽 모란봉구역에 있는 작은 언덕이며, 전체의 모습이 모란꽃과 같다고 하여 모란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주변 지역을 합쳐서 금수산이라고 부른다. 구릉지나 주위 일대는 현재 공원이 조성되었고, 유원지가 정비되고 있다. 금수산태양궁전, 을밀대 등이 있다.


1940년 현재, 평양지역(대동군, 중화군, 강동군) 신사 :
대동군 2곳, 중화군 1곳, 강동군 2곳
김정은 거처:
노동당 본부 청사 인근(청사에서 남남동쪽으로 250m : 출입문 기준 직선거리)
(출처 : 평양 심장부 수상한 지하도로.. 김정은 관사 확 뜯어고쳤다, 중앙일보 2021.5.12)
제1 백화점:
1906년 1월 7일 장대현교회에서 분립됐던 산정현 교회는 지금의 승리역과 평양 제일 백화점이 있는 지역으로 추정된다.


평양학생소년 궁전 :
학생소년궁전은 학생들의 과외활동(소조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건설된 북한의 과외교육기관으로 방과 후 교육기관인 셈이다. 과학·기술·체육·문화·예술 등 각 부분의 소조실과 활동실 및 각종 극장, 도서관 등 여러 분야의 활동 공간이 있고,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과학기술을 강조하면서 컴퓨터 수재반, 수학 수재반, 과학 수재반도 운영 중이다.
규모가 큰 곳은 학생소년궁전이라 부르고 규모가 작은 곳은 학생소년회관이라고 한다. 평양학생소년 궁전은 1963년에 설립되었고 장대현교회가 있었던 곳이다. 현재 북한 각지에는 140여 개의 학생소년 궁전 또는 회관이 건설되어 있고, 평양에는 평양학생소년궁전, 승호학생소년궁전, 만경대학생소년궁전이 있다. 이중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은 외국인 방문 시 북한 교육의 우수성을 선전하는 주요 방문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다.
연안군에 있는 학생 회관은 예전 교회 건물 이라고 한다.


전후의 그 어려운 형편에서도 평양시에서 제일 좋은 명당자리인 장대재에 우리 아이들의 궁전을 짓도록 하신… 그이께서는 일군들이 올린 설계도를 보아주시고 우리 아이들에게 줄 궁전을 더 크게, 더 훌륭하게 짓자고 하시면서 설계일군들이 예상한 건축면적의 6배가 넘는 5만㎡의 대건축물을 설계하도록 하시였다.
(출처 : [노동신문] 숭고한 후대관, 2021-04-13)
만수대 예술극장 · 만수대 분수공원 :
만수대예술극장·만수대 분수공원은 예전 서문밖교회가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서문밖 교회 : 1950년까지 주요 행사
1934년 9월 7일~14일 : 장로교 제 23회 총회
1935년 9월 6일~13일 : 장로교 제 24회 총회
1938년 9월 9일~15일 : 신사 참배 결정(장로교 제 27회 총회)
1942년 10월 16일~20일 : 일제 강점기 장로교 마지막 총회(장로교 제 31회)
-개회 전 대동아 공연권 건설을 지지하는 선언문 채택.
-총회에서 (일본) 전승기원 예배를 갖다. 1942년 9월 20일 해군에 헌납한 함상 전투함 명명식을 서울운동장에서 갖다. (‘조선 장로 호’라 칭함)
1946년 2월 17일 : 기독청년대회(현 : 기독청장년면려회)개최
1946년 11월 28일 : 조선기독교도련맹(현재 조선그리스도교련맹) 창립
1950년 3월 30일: 북한 모든 교회 조선기독교도연맹에 가입 결의
1950년 8월 5일 : 북한군 전승 기도회(평양시 기독교 교역자 궐기대회)
1950년 10월 29일(주) : UN-한국군 환영집회(한경직목사 설교-일어나 빛을 발하라(사 60:1))
2) 모란봉구역
개선문 :
김일성 70회 생일을 맞아 제작한 기념물, 프랑스 개선문 보다 10m 더 높고, 7.5m 더 넓다.
우의탑, 전승혁명 사적지 :
1959년 ‘한국전쟁 중 북한을 도운 중국 인민봉사단’을 기억하기 위해 건설한 30m 높이의 탑으로 중국이 참전한 10월 25일을 상징하는 의미로 1,025개의 벽돌로 축조하였다. 우의탑에서 500m 떨어진 곳에 전승혁명사적지는 한국전쟁 중 북한 지휘부가 있었던 곳으로 김일성이 1951~1953년까지 사용한 지하 동굴과 회의실이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펑더화이를 총사령관으로 하는 중국인민지원군을 결성하여 1950년 10월 19일부터 1차로 26만 명의 병력으로 압록강을 건너 한국 전쟁에 개입하였다. 최초의 전투 개시일은 10월 25일이며 이 날은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중국인민지원군의 날로 기념한다.
3) 평천구역
평양 역 :
1906년에 처음 건설된 평양역은 1958년에 재건설되었다.
미래과학자거리:
통일부 자료(영상)에는 중구역으로 소개 하고 있음.
2015년에 준공된 이 지역은 김정은의 ‘위대한 건설 프로젝트’ 중 하나로 연구소와 인근 김책공업종합대학 직원의 거주 공간을 위해 개발된 곳으로 53층의 주거용 건물인 은하 타워는 이 거리의 가장 높은 건물이다.
4) 보통강구역
푸에블로호 기념관 :
작성자 주 : 국가지식포털 북한 지역 정보넷에는 푸에블로호 위치가 평천구역 해운이동이다.
푸에블로호에 승선하면 우선 14분짜리 영상을 보고 자세한 안내를 받는데, 선실과 암호실 등을 볼수 있다. 푸에블로호는 ‘셔먼호 격침 기념비’ 옆에 있는데 기념비에는 “열렬한 애국자이신 김응우 선생을 비롯한 평양인민들이 우리나라를 침략하였던 미제침략선 샤만호를 천팔백륙십륙년 구월 이일 대동강 한사정 여울에서 격침하였다. 천구백팔십륙년 구월 이일” 이라고 되어있다. 제너럴셔먼호(General Sherman號)는 1866년 토마스 선교사가 타고 온 배이다.
증조할아버님(주: 김일성의 증조부)이신 김응우선생님께서는 미국놈들이 침략선 <셔먼>호를 타고 대동강으로 침입해 왔을때 인민들의 앞장에서 용감히 싸워 놈들의 배를 불태워 버리시였다.
(출처 :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 혁명력사, 주체92(2003), 평양: 교육도서출판사, p.6.)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
김일성의 업적을 기념하는 군사·전쟁 박물관이다. 1953년 8월 17일에 조국해방전쟁기념관으로 개관했다. 그 후 ‘승리’의 이름을 딴 1974년 4월 11일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고, 2013년 대대적으로 수리하여 현재의 외관이 되었다.
5) 서성구역
인민무력부 :
작성자 주 : 통일부 정보포털에는 인민무력부 위치가 모란봉 구역으로 표기되어 있다.
인민무력부=국방부, 총참모부=육해공군, 총정치국=軍정치 조직 총괄
정찰총국=대남공작, 보위司=軍비밀경찰, 호위司=경호대
국가안전보위부=국가정보원 · 인민보안부=일반 경찰
북한에는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보안부라는 양대 공안기관이 독재를 뒷받침하고 있다. 국가안전보위부는 우리의 [국가정보원], 인민보안부는 [경찰청]에 해당된다.
(출처 : 인민무력부, 정찰총국, 총정치국, 총참모부…북한 군부는 어떻게 구성돼 있나? 조선일보. 2010.04.27.)
사회안전성은 1972년 사회안전부로 개편되었으며, 1988년 사회안전성으로 환원되었다. 2000년 인민보안성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2010년에는 인민보안부로 개명된 후, 2016년 다시 인민보안성으로 환원되었다. 2020년 인민보안성에서 사회안전성으로 변경되었다.
(사단법인 북한인권 시민연합, 지상낙원으로 간 그들은 어디에. 18.p.)
6) 선교구역
장충 성당 : 9. 만경대구역 북한의 종교시설 현황 참조


7) 동대원구역

주체사상탑 :
세계에서 가장 높은 170m 석탑, 화강암 25,550개 사용 하여 김일성 생일 70주년에 건설하였는데 25,550개는 김일성 생존 날짜이다.
8) 대동강구역
평양제일교회 · ‘평양 제1기도처소’ :
예장(통합측)에서 청류동에 온실을 짓고, 그 옆 부지에 교회를 건축하려 했으나, 계획대로 되지 않아 온실 관리동을 짓고 2층에 30평 규모의 기도처소를 만들었다.
(출처 : 宣敎인가? 詐欺인가? 평양제일교회를 고발한다! “교회 짓는다” 억대 헌금 받아, 십자가 없는 ‘기도처소(?)’ 건립…북한 요구로 사진까지 비공개; 조갑제 닷컴, 2007.05.25)
라흐만 모스크 :
정식 명칭 아라만 모스크(Ar-Rahman Mosque)
이란에서 세운 시아파 모스크이다. 1985년 설립, 이란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 방북에 맞춰 1989년 공식 개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 창건 기념탑 :
만수대 기념비까지 거리가 2.16km이며(김정일 생일이 2월 16일이다), 조선로동당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당 창건 50주년을 맞이하여 1995년에 세워진 기념탑으로 50m(1m는 1년을 의미) 높이이다. 각각 망치, 낫, 붓을 든 주먹이 조각되어 있다.
김일성-김정일화 전시관 :
2002년에 개관한 김일성-김정일화 전시관은 지하 3층의 건물이며 본관에는 김일성과 김정일화가 전시되어 있다. 연중무휴로 운영되며 김일성, 김정일 생일 즈음에는 대규모의 축전이 진행된다.
9) 만경대구역


북한의 종교시설 현황
북한 당국은 1988년 봉수교회와 장충성당, 1989년 칠골교회를 건립하였다. 그리고 2002년 8월 김정일이 러시아 극동지역 순방 시 정교회를 방문한 이후 2003년 6월 러시아 정교회 사원 건립이 추진되어 2006년 8월 13일 평양 낙랑구역 정백동에 ‘정백사원’이 완공되었다. 2003년 4월 북한인 4명이 러시아정교 사제교육기관인 러시아 모스크바신학교에서 유학하였다.
(출처: 조선중앙방송‚ 2003.06.25. 연합뉴스‚ 2003.06.24.27.)
만경대 고향집 :
광복 거리에서 남서쪽으로 가면 용악산이, 남쪽으로 가면 만경대가 있다. 만경대는 김일성이 태어난 곳으로 만경대 고향집, 김일성 생가로 표기 되는데, 김일성이 태어난 곳으로 가족 조상묘와 만경대혁명사적관이 있다.
김일성이 태어난 곳
만경대에는 만경봉(45미터)이 있다. 예로부터 이 봉우리에 올라서면 일만 가지 경치를 볼 수 있다고 해서 만경대라고 불렀다.
만경대라고 해도 김일성이는 남리(南里)에 살았고 우리는 송산리(松山里)에 살았지요. 조그마한 고개를 사이에 두고 동네가 나눠어져 있었지요. 두 동네는 처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할 수 있지요. 일제하에서도 남리에는 안식 교회가 있었고 송산리에는 장로교회가 있어서 서로 갈라 지냈어요. 해방 직후에 김일성이가 나타나서 남리에 있던 사람들은 그와 가깝게 지냈고 송산리 사람들은 반대 입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출처 : 북한의 종교정책. 196.p.)
만경대 구역에 위치하는 용악산(龍岳山)은 예로부터 ‘평양의 금강산’ 이라 했는데, 김일성이 “창덕학교 시절 일요일이나 여름방학 때면 낡은 사상에 물들어 <<례배당>>으로 가는 동무들에게 있지도 않은 <<하느님>>을 믿으면서 머저리가 될 것이 아니라 산 좋고 물 맑은 제 나라 산천을 구경하면서 몸과 마음을 튼튼히 단련하는 것이 더 좋다고 일깨워주시면서 동무들을 데리고 룡악산에 오르시여 마음껏 즐” 겼다고 한다.
(출처 : 조선지명편람. 257.p.)
10) 대성구역
영생 탑 :
1977년에 건립되었는데, 평양 외 북한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탑으로 탑에는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라고 적혀있다.

금수산 태양 궁전 :
1977년 김일성 65회 생일에 건설되어 “금수산의사당”, “주석궁”으로 불렸고 김정일 사후 “금수산태양궁전“ 으로 개칭하였으며, 김일성과 김정일의 시신이 있다.

김일성 종합대학 :
1946년 설립된 북한 최초의 대학이자 최고 교육 기관으로 김일성의 혁명사상과 근대 과학 이론을 체득한 민족 간부의 양성을 목표로 한다.
혁명열사릉 :
1975년에 조성된 곳으로 김일성의 첫 부인이자 김정일의 어머니인 김정숙, 김일성의 어머니의 강반석, 김책 등 중요 인물이 묻혀 있다. 총 150명이 넘는 인물이 묻혀 있는데 대부분 김일성과 같이 일제에 맞서 싸워, 김일성이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도운 인물들이다
백화원 비행장 :
경비행기의 이착륙이 가능한 김정은의 전용비행장으로 추정된다.
11) 순안구역
평양순안국제공항 :
1955년 건설된 국제공항으로 순안비행장 또는 평양순안국제 공항이라고도한다.
12) 룡성구역
관저 55호 :
중앙특호주택 또는 관저 55호라고도 불리는 곳으로 김정은 주요 거처로 알려져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저택이며, 빌라와 호수, 운동시설, 전용 기차역 등 호화시설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경비가 철저하여 반경 2km 내에서도 관저의 흔적 을 찾기 힘들다.
13) 락랑구역
정백사원(러시아 정교회) : 9. 만경대구역 북한의 종교시설 현황 참조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 :
조국통일 3대 헌장이란 1972년 7·4남북공동선언에서 남북이 합의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을 의미한다.
조왕리 교회(토마스 기념 교회)
조왕리교회가 세워졌던 평양 대동군 남곳면 조왕리는 현재 평양시 낙랑구역에 해당된다. 2002년 6월 남북교류협력 일환으로 추진된 평양과학기술대 캠퍼스 부지조성 공사 중 인부들에 의해 종탑을 비롯한 교회 유물들이 발견됐다. 역사 속에서 사라진 ‘토마스 기념교회’인 조왕리교회 관련 유물이었다.
(출처 : 순복음 가족 신문 2016.06.19)
14) 사동구역
소련군 열사묘 :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 한반도 북부 지역에 있던 일본군과 전투를 벌인 소련군을 안치한 곳. 745명의 소련군이 안치되어 있다.
미림간이비행장 :
소재지 사동구역 미림동
15) 강동군
강동사저 :
김정은 여름별장
강동비행장 :
김정은 전용공항
강동비행장은 당초 군용비행장이었으나 현재 김정은 전용 비행장으로 파악되며, 2015년 초 건설된 것으로 보이는 백화원 비행장 또한 경비행기의 이착륙이 가능한 김정은의 전용비행장으로 추정된다.
평양순안국제공항 : 소재지- 순안구역 룡복리
미림간이비행장 : 소재지- 사동구역 미림동
강동비행장 : 소재지- 강동군 봉화리, 김정은 전용
백화원비행장: 소재지- 대성구역 림흥동, 김정은 전용
(출처: 연구기획 2021-90호 평양 대도시권의 발전 전망 연구, 108페이지
지은이 최대식· 김두환· 김미숙· 이승지· 성태영· 문정준, 발행처 한국토지주택공사 토지주택연구원)
단군릉 :
강동군 대박산 기슭에 있다. 무덤은 1994년 개건되었으며 화강암 1,994개를 다듬어 쌓은
9층 피라미드 구조이다. 높이 22m, 너비는 50m에 달한다.
16) 강남군
2010년 행정구역 개편에서 황해북도에 편입시켰던 강남군을 2012년 평양시에 편입하였는데, 최초 평양시 편입은 1963년 5월이며 당곡리, 류포리, 신흥리는 김일성이 현지 지도한 곳이기도 하다.
17) 삼석구역
삼석구역(三石區域)은 1959년에 승호군과 강동군의 일부를 병합해 신설한 구역이다. 승호군에는 승호 수용소가 있었으며, 승호 수용소는 1991년 국제앰네스티의 정치범수용소 폭로로 인해 1994년 김일성 사후 김정일에 의해 전격 폐지되었다.
18) 은정구역
은정구역(恩情區域)은 이곳에 위치한 과학연구기관에 근무하는 과학자들에게 북한 지도자들이 베푼 사랑과 은정을 길이 전하기 위해 명명된 사회주의식 지명이라고 한다. 과학원·리과대학·기계공학연구소·로동안전공학연구소·수학연구소·자동화연구소·지질학연구소 등 많은 과학 관련 연구기관이 들어서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정구역(恩情區域))
19) 력포구역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성왕(주몽)의 무덤이 있다.
20) 형제산구역
조선예술영화촬영소, 평양철도대학이 있다.
4. 평양의 교회(1943년)
장로교 모교회: 장대현교회-1930년 교인 1,209명
감리교 모교회: 남산현교회-1930년 교인 1,243명
장로교
장대현교회(章臺峴敎會) 평양부 관후리, 1893년 창립
동대원교회(東大院敎會) 평양부 동대원리 436의 2, 1898년 5월 29일 창립
남문외교회(南門外敎會) 평양부 남문정 21, 1903년 10월 31 창립
오촌리교회(鰲村里敎會) 평양부 오촌리 440, 1904년 1월 5일 창립
내리교회(內里敎會) 대동군 서천면 내리, 1904년 창립
창동교회(倉洞敎會) 평양부 창전리 214, 1905년 1월 22일 창립
산정현교회(山亭峴敎會) 평양부 계리 55, 1906년 1월 7일 창립
서문외교회(西門外敎會) 평양부 하수구리 109, 1909년 3월 14일 창립
능라리교회(綾羅里敎會_ 평양부 능라리, 1909년 창립
연화동교회(蓮花洞敎會) 평양부 팔천대동 40, 1911년 창립
대타령교회(大駝領敎會) 평양부 대타령리 산 40의 2, 1912년 4월 1일 창립
신암교회(新巖敎會) 평양부 신양리 176의 10, 1913년 4월 창립
경창문외교회(景昌門外敎會) 평양부 기림리 141, 1920년 창립
미산리교회(嵋山里敎會) 평양부 미산리, 1922년 8월 10일 창립
동평양교회(東平壤敎會) 평양부 선교리, 1923년 1월 창립
서성교회(西城敎會) 평양부 서성리 14, 1924년 1월 1일 창립
의암교회(衣岩敎會) 평양부 의암리, 1925년 6월 1일 창립
평강교회(平康敎會) 평양부 서성리 127, 1926년 1월 15일 창립
정오교회(貞梧敎會) 평양부 오야리 162의 1, 1930년 11월 11일 창립
도마스기념교회(도마스記念敎會) 평양부 조왕리 101, 1932년 3월 1일 창립
창광산교회(蒼光山敎會) 평양부 서성리 72, 1932년 4월 10일 창립
서신리교회(西新里敎會) 평양부 신리 176의 6, 1934년 5월 2일 창립
신현교회(新峴敎會) 평양부 장별리 48, 1934년 5월 22일 창립
고정교회(高町敎會) 평양부 기림리 56의 4, 1934년 10월 25일 창립
하선교리교회(下船橋里敎會) 평양부 하선교리 103, 1935년 4월 2일 창립
기림교회(箕林敎會) 평양부 기림리, 창립년도 미상
남신리교회(南新里敎會) 평양부 남신리 56, 창립년도 미상
상수리교회(上需里敎會) 평양부 상수리 12의 37, 창립년도 미상
명촌교회(明村敎會) 평양부 평천리 104, 창립년도 미상
북신리교회(北新里敎會) 평양부 신리 129, 창립년도 미상
인흥리교회(仁興里敎會) 평양부 인흥리 132의 2, 창립년도 미상
상흥리교회(上興里敎會) 대동군 서천면 상흥리, 창립년도 미상
가현리교회(加峴里敎會) 대동군 임원면 용흥리 21의 37, 창립년도 미상
감리교
남산현교회(南山峴敎會) 평양부 수옥리 324, 1893년 4월 창립
선교리교회(船橋里敎會) 평양부 선교리 78의 5, 1896년 창립
칠산교회(七山敎會) 대동군 율리면 칠산리 165, 1899년 창립
건지리교회(乾芝里敎會) 대동군 시족면 건지리 424, 1905년 창립
박구리교회(礴九里敎會) 평양부 박구리 20, 1906년 창립
역포교회(力浦敎會) 대동군 용연면 검포리 459의 3, 1910년 창립
신양리교회(新陽里敎會) 평양부 남산정 43의 3, 1911년 창립
채관리교회(釵貫里敎會) 평양부 채관리 86, 1911년 창립
유정교회(柳町敎會) 평양부 유정 72의 2, 1912년 창립
두로도교회(豆老島敎會) 대동군 고평면 상단리 261, 1920년 창립
신리교회(新里敎會) 평양부 신리 117의 4
외신리교회(外新里敎會) 평양부 신리
사동교회(寺洞敎會) 대동강면 의암리 산 28
유신리교회(柳新里敎會) 대동군 율리면 유신리 711
홍교동교회(紅橋洞敎會) 대동군 율리면 유신리
현교리교회(鉉橋里敎會) 대동군 율리면 현교리 188
삼정교회(三井敎會) 대동군 용연면 향목리 186의 1
사통교교회(四通橋敎會) 대동군 율리면 현교리 508
장진리교회(將進里敎會) 평양부 장진리 124
명오동교회(明梧洞敎會) 대동군 부산면 수산리 254
석양교회(石陽敎會) 중화군 양정면 고잔리 79
검암교회(儉岩敎會) 중화군 당정면 검암리 92
송오교회(松塢敎會) 중화군 당정면 양라리 468
율동교회(栗洞敎會) 중화군 중화면 진율리 196
용흥교회(龍興敎會) 중화군 신흥면 용흥리 316
후장교리교회(後長橋里敎會) 중화군 당정면 후장교리 22
중앙교회(中央敎會, 드류아펜젤러기념교회) 평양부 죽전리 142
창광산교회(蒼光山敎會) 평양부 서성리 85
성결교
평양제일교회(平壤第一敎會, 평양상수리교회) 평양부 상수리 127, 1925년 8월 30일 창립
평양제이교회(平壤第二敎會, 평양유정교회) 평양부 유정 87, 1931년 9월 5일 창립
평양제삼교회(平壤第三敎會, 평양암정교회) 평양부 암정 15의 1, 1931년 11월 2일 창립
선교리교회(船橋里敎會) 평양부 선교리 238, 1932년 6월 12일 창립
기림리교회(箕林里敎會) 평양부 기림리 180, 1932년 7월 24일 창립
(출처 : 평양의 교회들과 순교자, 북한교회 성도들의 삶과 신앙 세미나(2022. 1. 19. 수), 이용민(연세대학교 신학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