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칼럼] 눈물이 있어도 좋을 그날…

1986년 3월에 모스크바와 일쿠츠의 지하교회에서 예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중국의 서부 끝 지역과 동북 끝 지역에서도 지하교회를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산동 반도와 남부 지역, 수도인 북경, 남경에서 비밀리에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 예배의 경험들이 저로 하여금 북한 선교의 가능성을 볼 수 있도록 영향을 주었습니다.
매달 중국을 드나들던 저의 눈은 북한 땅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선족으로 북한 땅이 고향이던 한 분에게 여행 경비를 제공했습니다.
6개월이 지난 후 그분의 입을 통해 들은 한 마디, “살아들 있습데다”.
성도들이 믿음을 지키며 작은 무리로 모여 예배한다는 이야기를 표현한 말이었습니다.
산 속 깊숙한 곳에서 여러 명이 성경을 공부한다는 말까지 들려주었습니다.

얼마 후 저는 평양에 들어가도록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봉수교회의 예배는 그야말로 형식적인 “어용” 모임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진정한 예배의 가능성이 지하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아니, 기대했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때는 지하 성도들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만난 사람들이 성도들인지 분별할 능력이 제게 없었겠지요.
그러기에 나름대로 속 사람의 싸움을 싸우며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상황에서 저의 손바닥에 그려진 십자가로 인해 머리를 떨구었습니다.

“살아 있었군요….”

저는 감격해서 울었습니다.
러시아 지하교회에 참석했을 때 흘린 눈물과 다른 눈물이었습니다.
중국의 지하 성도들과 함께 예배할 때 흘린 눈물과도 달랐습니다.
그 열일곱 살 청년과의 만남에서 쏟아낸 눈물과 콧물은 정말 다른 눈물이었습니다.
그 눈물이 어렸을 때부터 마음에 두고 온 북한 선교에 대한 순종의 부르짖음이었을까요?
그 땅에서 순교한 아버지에게서 흘러내려온 믿음과 어머니의 믿음의 보살핌의 결과였을까요?
저는 그 순간 그 어린 친구를 본 게 아니었습니다.
그 젊은이 뒤에 숨겨진 수많은 지하 성도들의 눈물과 고통, 그리고 믿음의 소망을 보았습니다.
그 눈물이 저로 지금까지 끊이지 않는 부르짖음으로 나가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길을 가도록 이끄셨고 순종하게 하셨습니다.
그 귀한 믿음을 지켜 간 믿음의 사람들을 만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저로 그 믿음의 사람들에게서 배우고 지켜가도록 도우셨습니다.
평양에서
소래교회에서
의주에서
더 이상 지하 성도들이 아닌 성도들을 만날 때 저는 또 울겠지요.
지금 흘리는 눈물보다 훨씬 짙은 눈물이겠지요.
울어도 울어도 시원치 않을 눈물, 뼈가 녹아내릴 듯 흘려질 눈물이 있어도 좋을 그날….
비 내리는 이 아침에
강화 선교센터에서 저 건너편 북한 땅을 바라보며 눈물 짓습니다.

무익한 종 이 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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