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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주 과정의 북한선교훈련 강의를 들은 훈련생들이 지난 1월, 북중 접경 지역으로 현장학습을 떠났다.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에 있는 북한을 지척에서 바라보며, 황폐한 그 땅을 향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갔다. 캐리어에는 몰래 숨겨온 성경책을 넣고 1334km 국경을 따라 이동하며 긴장과 떨림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달하고, 변방의 길목에 포진해 있는 사역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도전받는 시간을 가졌다.

“나도 그들 때문에 울고 있다”는 하나님의 음성 때문에 북한을 위해 헌신한 사역자, 직접 북한에 들어갈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을 동원해 일을 이루고 계심을 고백한 선교사,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북한에 예수를 증거하려는 마음과 용기가 충만했던 성도 등 북한 선교 사역의 최전방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자리를 지키고 계신 귀한 분들이었다.

뻗으면 닿을 듯한 저곳에 북한이 있다

중국에 도착해 입국 심사대 앞에 서니 신경이 곤두섰다. 성경책이 짐 검사를 통과할는지, 곤란한 질문을 받으면 뭐라고 대답할지, 혹여라도 성경책이 발각돼 입국이 거절되지는 않을지,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그러나 최대한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며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다. 다행히 별 탈 없이 일행 모두 입국 도장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제 수화물 수취대에서 짐을 찾아가려는데 아뿔싸, 또 하나의 관문이 남아 있었다. 짐을 한 번 더 엑스레이 기계에 넣어 세관을 통관하는 절차였다.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 이번에도 무사 통과였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출국장을 빠져나온 우리는 국경 쪽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 입구로 향했다. 그런데 조금 전에 검사를 끝낸 가방을 또 엑스레이 검색대에 올려놓으라고 했다. 이 과정은 기차로 갈아탈 때도 반복됐는데, 탈북자들이 국경을 넘어 중국에 오는 데 성공한다 해도, 공공 교통 수단을 이용할 수 없고, 곳곳에 설치된 안면 인식 보안 카메라 감시망 때문에 숨을 곳이 없을 것 같았다.
장시간의 이동 끝에 북한과 국경을 맞댄 중국의 접경 도시 T에 도착했다. 그날은 최고 기온이 영하 16도인 강추위가 몰아 닥친 날이었다.

정신을 번뜩 들게 만드는 차가운 대기 속으로 하얀 입김이 흩어졌다 사라졌다. 저 멀리 북한과 중국을 잇는 대교와 철교, 그리고 희끗희끗하게 눈이 내려앉은 북한의 산야와 건물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방향으로 걷고 있는데 갑자기 제복을 입은 공안이 나타났다. 그는 우리 모두의 여권을 요구했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사진을 찍고는, 우리가 그곳을 떠날 때까지 따라다니며 기념 사진을 찍지 못하게 막았다. 우리를 안내한 현지인은 한국 관광객들이 이 도시에서 찍은 사진을 북한을 헐뜯는 글과 함께 인터넷에 올려 문제가 됐고, 비교적 최근에 이루어진 한국 대통령의 방중으로 긴장도가 높아진 탓이라고 귀띔했다.
좀 더 가까이에서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으신 그 땅을 보고자 강변으로 내려갔다. 날카로운 가시가 촘촘히 박힌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김일성·김정일의 대형 초상화와 ‘경외하는 최고지도자 김정은 동지 만세!’,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 만세!’ 같은 구호가 나붙은 건물이 보였다. 수십 년 전에 죽은 김씨 부자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현실이 서글프게 다가왔다. 북한을 지배하는 김씨 일가의 통치 이념이 무너지고 복음으로 자유케 되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하며 그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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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다란 철책이 도열한 변방의 강가에서

T시에서 충분히 머물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하나님이 이번 여정에 허락하신 하이라이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굽이굽이 난 강변 도로를 따라가는 일정이었다. 차 안에서 우리를 안내하던 현지인이 길 왼편을 가리키며 “저기가 다 북한 땅입니다.”라고 했다. 북한은 겹겹의 철조망에 가로막혀 있었다. 중국의 이중 철책, 강, 그리고 북한 쪽 철책을 지나야 비로소 북한 땅이었다.
현지인은 설명을 이어갔다. “몇 년 전 도로 쪽으로 철조망을 하나 더 세웠습니다. 북한에서는 군인들이 강변에 지뢰를 심었다는 소문이 돕니다. 이래저래 중국에서도 북한에서도 강을 건너기가 어렵게 됐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니 한층 견고해지고 높아진 중국과 북한의 철조망이 더욱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지지대로 보강한 철책 틈으로 산기슭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집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강은 허옇게 질린 듯 꽁꽁 얼어붙어 있었고, 제대로 눈이 덮이지 않은 헐벗은 산등성이들이 적막한 풍경을 연출했다. 20~30분 동안 북한 쪽을 바라봤지만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다들 말없이 차창을 응시하는데 도로 옆으로 차가 섰다. 강 너머 북한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장소였다. 앙상한 나뭇가지와 뾰족뾰족한 철조망으로 조금 가려진 것 외에는 시야가 거칠 것이 없었다. 가지런히 놓여 있는 하모니카 집들에선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렇게 추운데 연기를 피워 올리는 굴뚝 하나 없었다. 코끝이 찡하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뭐라도 땟거리가 있기를, 차디찬 그곳에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이 생명과 온기로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랐다.
하지만 감흥에 젖는 것도 잠시, 출발하기 전에 카메라 셔터를 누르려는데, 차 안에 있던 현지인이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영문을 몰라 하는 내게 일행은 손짓으로 위를 가리켰다. 손가락 끝에는 직경이 50cm는 될 법한 감시 카메라가 이리저리 눈을 굴리고 찍고 있었다. 우리가 서 있는 곳 반대 편으로 카메라가 회전해서 돌아갔을 때에야 겨우 한 장을 도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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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쉬지 않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선교 현장을 만나다

출발부터 도착까지, 현장학습 기간 내내 하나님의 큰 그림을 본 것 같다. 각국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북한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보았다. 일정 중에 만난 사역자들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뇌리에 강하게 박혀 있다. “나도 그들 때문에 울고 있다”는 하나님의 음성 때문에 북한을 위해 헌신하신 분, 본인은 직접 북한에 들어갈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을 동원해 일을 이루고 계심을 고백하신 분,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북한에 예수를 증거하려는 마음과 용기가 충만했던 그래서 너무나 부러웠던 분 등 사역의 최전방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귀한 사역자들이었다. 그들의 간증을 글로 읽은 것이 아니라 내가 듣고 만났기에 그 감동은 크고 생생했다.
그뿐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북한의 풍경과 사람, 구호 등이 그저 들은 정보가 아니라 나의 경험이 되었기에 차원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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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가까이에 있는데 왜 우리 민족은 이렇게 떨어져 있어야 하지? 소리쳐서 부르고 싶은데 왜 못 외치지? 지나가는 북한 사람의 손을 한 번이라도 잡아주고 싶은데 왜 못 잡지? 이럴 때 우리 주님의 마음은 어떠실까? 현장학습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복잡한 생각과 감정들일 것이다. 또한 북한선교훈련 강의 시간에 들은 성경 배달을 직접 해 볼 수 있는 것도 현장학습의 백미였다. 이삭 목사님이 성경을 가져 가실 때도 나처럼 이렇게 긴장하셨을까?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저 관광객으로 왔는데도 검사를 한다니 이렇게 떨리는데 목숨을 걸고 탈북한 북한 사람들은 어떨까? 그런 마음들을 만 분의 일이라도 느낄 수 있었다. 뒤돌아보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섬세한 지휘 아래 얻어진 너무나 소중한 선교 경험이었다. 김애리

국경의 끝자락, 눈이 아닌 가슴으로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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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차에 올라 강변 드라이브를 이어갔다. 차창 밖으로 중국 쪽은 녹색, 북한 쪽은 무채색의 철책이 끝 간 데 없이 흘러갔다. 쌩쌩 속도를 내던 차가 서서히 한 철책 앞에 멈춰 섰다. 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 세관과 북한 세관이 마주한 곳이었다. 이곳을 구경하려는 사람이 많은지 중국 쪽 철조망에는 “망원경 3원”이라고 적힌 팻말이 걸려 있었다.
우리는 미리 준비해 간 망원경을 철책의 날카로운 단면을 피해 최대한 붙였다. 육안으로 보이지 않던 세밀한 풍경이 렌즈를 투과해서 펼쳐졌다. 지은 지 얼마 안 된 듯한 건물 앞에 버스 한 대가 정차해 있고, 경비병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포착됐다. 10여 분 정도 관찰했지만 중국이나 북한의 세관을 통과해 진입하는 차량은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그러나 보이는 것과는 다른지 현지인은 “물자가 여기를 통해 많이 들락날락합니다. 시내에 가면 조선 물건만 취급하는 상점도 있습니다. 다 여기서 온 물건들입니다.”라고 했다.
우리는 계속 차를 몰아 P 지역으로 향했다. 도중에 초소를 통과해야 했는데 어김없이 검문을 받았다. 공안은 우리 모두의 얼굴을 안면 인식 카메라에 인식시킨 다음 신분증을 검사했다.

어스름이 내려앉는 오후 시간, 사람이 많이 몰리는 P시 유명 접경 관광지의 전망대에 올랐다. 강의 표면이 군데 군데 얼어붙어 있었다. 언뜻 아무런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그러나 엄연히 함부로 넘나들 수 없는 세 나라의 국경이 꼭지점으로 만나는 지역이었다. 이런 사실을 대변하듯 “국경 너머로 도발하거나 촬영을 하지 마시오”라거나 “변경 지역에서는 무인항공기 등 공중부양체를 띄우지 못합니다”라고 쓴 경고판이 붙어 있었다.
산기슭의 북한 마을에서 매서운 바람이 불어왔다. 관광객을 의식한 탓인지 북한 마을의 중앙에는 “새로운 승리를 향하여!”라고 적힌 붉은색 구호판이 큼지막하게 서 있었다. 카메라를 당겨 보니 국경을 연결하는 철교에서 용접하는 인부, 그리고 하얀 모래산 같은 황량한 풍경 속을 걸어가는 사람이 보였다.
코앞의 북한을 비행기와 차를 타고 멀리 돌아서 타국의 영토에서 봐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80년 분단의 아픔이 끝나고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으로 그 땅이 자유케 되기를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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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의 실제를 보고 들으며 북한을 향한
기도의 지경이 넓어지다

열방을 위한 기도를 10년 정도 이어오던 중 북한이 열려야 한반도가 준비되고 열방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북한에 대한 관심을 구체적으로 갖기 시작했다. 2024년 봄에 교회에서 하는 북한 선교 강의를 두 번 듣고, 더 알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 모퉁이돌선교회 북한선교훈련 과정을 신청하고 현장학습까지 참여했다.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시작한 현장학습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북한 땅을 최대한 눈에 많이 담아가려고 산등성이를 보고 또 봤다. 현장에서는 기독교 용어를 사용하지 못하고 나눌 때 목소리를 최대한 작게 내야 했는데 그런 것들이 나에게는 커다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아무 장소에서나 큰 소리로 찬양하고 기도하고 예배할 수 있음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체감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기도에 대한 여러 깨달음들이 있었다. 먼저 북한을 위해 기도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북한을 향해 사역하시는 분들이 많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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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내에서 북한 지하교회를 돕고 계신 분을 포함해서 국적은 다양하지만 북한 선교라는 한 목적을 위해 헌신하시는 선교사님들, 특히 북한 내 학생들에게 빵과 우유를 공급하고 계신 선교사님의 이야기는 정말 감동이었다. 또 하나의 소득은 북한을 향한 나의 기도가 확장되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안방에 걸려 있는 세계지도를 보며 북중 국경의 모든 철조망이 주님의 권세로 무너지게 해 달라는 선포 기도를 했는데, 이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내가 만난 분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더 구체적으로 기도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영적 무장의 중요성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생각해 보면, 여행 내내 나는 약간 눌린 상태로 지냈던 것 같다. 영적으로 무장되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었다. 다음에는 준비 기도를 많이 심고, 북중 접경 지역을 돌며 기도하는 일에 집중해 보고 싶다. 정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