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CatacombCS013

지난해에도 북한 내부의 어려운 사람들, 특별히 고난에도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을 찾아서 위로하고 돕는 사역이 은밀히 진행되었다. 비록 잠깐씩밖에 통화할 수 없고, 인편으로 모든 것을 전달하고 전달받기에 오가는 정보들이 더디고 단편적이지만, 그럼에도 북한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들은 멈추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 이 사역에 작년에만 약 2백 명의 북한 사람이 연결되었는데, 그중 두 성도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들을 통해 북한 지하교회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역동적으로 개척되고 성장하고 있으며 어려운 중에도 성도들이 주께 순종하여 믿음의 길을 걷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버지의 자손들이 많이 늘었다!

“저쪽이랑 연결됐습니다. 빨리 빨리 받아보라요.”

수화기 너머에서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거친 남자의 음성이 들렸다. 그는 얼마 전, 선교사가 사람을 찾기 위해 북한에 들여보낸 일꾼이었다.

“지금은 곤란합니다. 이따 받겠습니다.”
때마침 병원 침대에 누워있던 선교사가 힘없이 대꾸했다.
“아니 되오. 한 시간 후에는 나도 여기를 떠야 한다 말이요. 빨리 받으라요.”
일말의 여지도 주지 않고 일꾼이 선교사를 재촉했다.

“알겠습니다. … 여보세요. …(지지지직)… 제 말 들리십니까?”
“… 나요 ….”
비록 음질이 좋지 않고 툭툭 끊어졌지만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선교사는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태 전, 요한복음 말씀을 손으로 쓴 쪽지를 보내준 북한 성도였다. 중국에서 짧은 기간 동안 머물며 배운 하나님의 말씀을 앉은 자리에서 거침없이 써내려 갈 수 있을 정도로, 20여년간 마음에 간직하고 암송하며 믿음을 지켜온 그였기에 선교사에게는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성도였다. 그때 받은 감격의 물결이 되살아나 선교사는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이게 얼마 만입니까? 연락이 안 돼 얼마나 답답했는지 모릅니다.”
“이사를 했소. 그러니 예전 주소로 사람을 보내지 마오. 지난번에 동생을 도와줘서 정말 고마웠소. 그럼… (지지직)…”
북한 성도는 용건만 간단히 말하고는 총총 사라졌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애타게 불러 보았지만 더 이상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간만에 어렵게 전화가 연결되었는데 감동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끊긴 너무나 짧은 통화였다.
“방금 그 사람과 조금만 더 이야기하게 해 주십시오.”
일꾼에게 다시 전화를 건 선교사가 간청했다.
“아니 되오. 너무 위험하단 말이요. 아, 잠깐 기다려 보시오. 이게 뭐이지?”
일꾼은 주춤하는가 싶더니 선교사에게 사진 한 장을 전송했다. 언뜻 보기에 작은 글씨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게 신문에 낙서가 찍힌 것 같았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가늘고 연한 연필로 겹쳐 쓴 글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김ㅇㅇ, 박ㅇㅇ, 이ㅇㅇ. 사람들의 이름이 빽빽하게 쓰여 있었다. ‘암호인가?’ 선교사는 중얼거리며 이리 보고 저리 뜯어보았지만 무엇인지 알 재간이 없었다.

“이걸 주면서 ‘아버지의 자손들이 생각보다 많소’라고 했시오.”
일꾼의 첨언에 선교사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의문의 사진은 다름아닌 성도들의 명단이었다. 세어 보니 모두 열한 명이었다. 2년 전 연결이 되었을 때 그는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이 있다는 것을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열한 명 성도들의 이름을 통해 지하교회가 개척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그뿐인가? “아버지의 자손들이 많다. 아버지의 자손들이 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며 중국에서 들었던 한두 마디의 성경 말씀을 문자 그대로 믿고 복된 소식을 전파해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음을 증명했다.

네가 있을 때 하던 거 계속한다

“아버지, 제 친구 김 씨가 아픈 거 아시지요? 건강하게 해 주세요. 거기서 잘 살게 해 주세요.”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한 여인이 방안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기도에 집중하느라 미간까지 잔뜩 찡그렸는데, 별안간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누구세요!”
화들짝 놀라 밖으로 뛰어나간 여인의 눈앞에 생전 처음 보는 남자가 서 있었다.

“김 씨가 보내서 왔습니다.”
“네? 김 씨가요??”
방금 전까지 김 씨를 위해 기도했는데 그가 보낸 사람이 나타나니, 여인은 놀라움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나 그보다는 친구에 대한 반가움이 더 컸기에 순순히 일꾼을 집안에 들였다.

“김 씨가 아주머니에게 이걸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아주머니가 어렵게 사시고 병이 있다면서 이만저만 근심하는 게 아닙니다.”
일꾼은 고생을 많이 해서 옹이 박히고 쪼글쪼글해진 여인의 손에 김 씨의 사진과 사역비를 건네 주었다. 여인의 친구인 김 씨는 몇 해 전 심각한 질병에 걸려 생사를 오가는 몸으로 탈북을 감행했다. 김 씨는 하나님의 은혜로 한국에 무사히 도착했고, 그 후 병세가 차도를 보여 건강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김 씨와 여인은 한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이번에 일꾼을 통해 연결되었다. 예전의 병색 짙은 모습이 아닌 환하게 웃고 있는 김 씨의 사진 표면을 여인은 거듭거듭 매만지고 쓸어내렸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여인은 아까 기도할 때처럼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내가 너를 위해 매일 빈다. 우리 김 씨가 건강하기를 내가 매일 빈다. 네 일이 다 잘 되기를, 거기서 앓지 말고 일이 잘 되라고 빈다. 그거 이상 없다. 사진을 보니까 마음이 놓인다. 보고파 죽겠구나.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까 더 보고프구나….”
일꾼을 의식해서인지 여인은 기도라는 말 대신 빈다라는 표현을 썼다. 친구에 대한 그리움에 목이 메여 여인은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친구분이 얼마 전에 병이 도져 병원에 입원했었는데 지금은 회복되었습니다. 아들은 대학 다니고, 이제 직장도 좋은 데 간답니다.”
일꾼이 여인을 위로하듯 김 씨의 근황을 일러주었다. 일꾼은 마지막으로 김 씨에게 전할 말이 없는지 물었다.

“김 씨야, 난 일없다. 나 사는 거 하나도 일없다. 보내지 말라. 너희 쪽에 도와줄 사람 도와줘라. 나는 아무 일 없다. 걱정하지 말라. 내가 너를 위해 매일 빈다.”
가재도구도 변변치 않고 행색도 초라하기 짝이 없는데 여인은 일없다(괜찮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다 잠시 머뭇대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우리 네가 가기 전에 하던 거 계속한다. 한번씩 모여서 밥 먹으며 계속한다.”
여인이 말하는 ‘네가 가기 전에 하던 거’는 예배를 뜻했다. 북한에 있을 때 김 씨는 여인의 전도를 받아 여인의 집에서 모이는 주일 예배에 참석했다. 그 신앙 공동체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험한 세파와 감시에 무너지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다. 다함이 없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이 북한 지하교회와 성도들을 덮어 친히 인도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북한에 살아 계시고 성도들 안에서 오늘도 말씀으로 역사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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