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북한 사역이냐고 묻습니다. 그것도 40년씩이나.
제 대답은 “어떻게 하겠어요? 제 몫인 걸요.”입니다.
몽골 소련 중공 그리고 북한에 가라고 어머님이 부탁하신 일을 위해 미국으로 특별한 방법을 동원해 이민을 가게 하셨고 준비 기간을 거쳐 1983년 중국으로의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몇 년을 정신없이 뛰어다니다 뜻밖에 비난의 소식을 접했습니다.
아버님께 그 이야기를 해 드렸더니 “나도 들었다. 하지만 네가 안 하면 누가 하겠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8선을 8번이나 넘어다니면서 6번 잡힌 경험을 하신 분입니다.
저에게 알리지 않으시고 중국에 들어가셔서 부흥회를 인도하시다 잡혀감옥에 갇히고 큰 벌금을 물고 나오셨습니다.
그런 분이 “마땅히 할 일”일 뿐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시는 게 섭섭했습니다.
하지만 그 일이 제 몫인 것은 아버님은 물론 어머님도, 아우들도, 아니 제 아내와 딸들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황해도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큰어른으로 존경받는 분에게 제 이야기를 했더니 “북한 선교의 전설”이라고 설명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제가요? 저에게 주어진 일을 하나님이 하게 하셨고 여기까지 오게 하신 것뿐입니다.
강화도 선교센터에 머물면서 하루하루 변해가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해 수고한 주의 일꾼들이 있습니다.
기도해 주신 동역자들이 있습니다.
후원해 주신 분들이 있습니다.
기도실이 준비되어 모여 기도할 자리가 만들어졌습니다.
북한에서 기도하는 이들의 모습이 전시되고 지하성도들이 보내온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방송실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북한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책임 때문입니다.
아내가 아우들이 딸들이 제 사역을 반대했더라면, 아버님이 공연한 짓 한다고 핀잔이라도 했더라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는지 모릅니다.
웬일인지 제 주변에 가까운 분들 아무도 반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아버님과 같이 평양신학교를 다니셨던 목사님 한 분이 저를 알게 되셨습니다.
그분은 주위에서 저에 대한 말을 많이 듣고 계셨던 같은 노회 소속이셨습니다.
“이 목사, 수고하네. 나는 아네. 기도할게.” 그 목사님은 세상 떠나실 때까지 꾸준히 헌금을 보내시곤 하셨습니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별의별 일들이 생각나네요.
고문을 당하고 오랫동안 잊고 있던 기억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일까요?
내일은 새벽 4시 45분에 공항으로 가야 합니다.
어쩌겠어요? 제 몫인 걸.
가서 기도해 주어야 할 일이 제 몫인 걸요.
가야지요. 마땅히 가야 할 길인데요.
제 몫인데요.
무익한 종 이 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