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catacomb011

2025년 10월 14일

“2주 전에 에스더가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2년 전부터 괴사가 발병해 치료해 왔으나 증상이 더 심해졌습니다. 한 달을 넘게 버티다가 결국 수술에 필요한 비용을 보내주어 무릎 밑으로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했습니다.” 선교사를 통해 북한 지하교회 일꾼인 에스더의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2025년 11월 6일

“에스더가 세상을 떠나 하나님 품에 안겼습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수술받았다고 하지 않았나요?”
갑작스러운 비보에 선교사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수술하고 치료받다가 병실에서 감염되어 패혈증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병원이 형편없는 곳이었는지 벼룩이 기어다니는 열악한 환경에서 부위가 감염되어 지난 10월 25일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소식을 전해주는 선교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마지막에 에스더 자매의 곁에 누가 있었나요?”
“같이 믿음을 지키던 지하교회 성도가 돌봐주었는데 통증으로 많이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본인이 알았을 텐데 남긴 말이 있었을까요?”
‘이제 가면 아들 만나볼 수 있겠지….’라며 고통 중에도 아들을 만나 볼 수 있다는 소망에 찬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한번도 주변 사람들에게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어서 다들 아들이 있었는지 몰랐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제게 고맙다고 전해 달라고 했답니다.”
전화로 이야기하던 선교사는 끝내 말을 흐리며 울먹였다.

짧은 통화가 끝나고 오래전 에스더 자매를 만나서 들었던 담대한 믿음의 고백이 생각났다. “죽으면 죽으리다!” 꼭 그 말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갔던 에스더의 신앙행전을 떠올려 본다.

복음에 매인 하나님의 일꾼으로

2007년 12월 19일, 중국의 한 처소에서 당시 47세였던 에스더를 만났다. 자강도가 고향인 그녀는 자그마한 키에 예쁘고 복음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였다. 그녀는 1999년 남편과 아이 3명을 데리고 중국으로 건너와 교회의 도움을 받으며 처음으로 복음을 듣게 되었다. 예수를 믿고 성경을 읽는데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들려주셨던 예수님의 탄생과 십자가에 죽으심, 살아나심과 다시 오심에 대한 이야기들이 쓰여 있어서 놀랐다고 했다. 하루는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다면 우리 식구들이 머물 수 있는 집을 주세요.”라고 기도했는데 정말 집이 생겼단다. 이러한 응답의 체험을 거듭하며 그녀는 복음을 위해 살 것을 결심하였다.
그녀는 북한에서 나와 인신매매로 팔려 중국인과 결혼해 어렵게 살며 상처받은 북한 여인 12명을 사랑과 말씀으로 돌보며, 그들에게 사명을 불러 일으키는 일을 열심으로 감당했다. 12명 중 6명은 정말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믿음 생활을 했다. 그녀는 그들에게 그런 마음을 계속 갖도록 도전하고 사명을 갖도록 담금질하는 역할을 자처하였다. 교회 이름은 에스더교회로 정했으며, 조국의 복음화를 위해 죽으면 죽으리라는 일사각오로 북한에 복음 전하러 가려고 금식하며 기도하였다. 그녀는 많은 어려움과 힘든 일들이 있지만 불평하지 않고 오직 믿음과 사명으로 주님 앞에 서 있는 모습이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중국에서 예수를 믿고 1년 정도 지났을 때, 그녀의 딸과 아들이 한 여자 선교사가 사역하는 곳에 가서 성경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해서 보내주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딸이 공부하던 장소가 발각되어 북한으로 잡혀갔다. 딸이 북송될 때 마음이 무너지고 너무 아파서 자신도 북한으로 잡혀가 딸을 다시 데려오겠다고 하니 아들이 만류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하였다.
그 일이 있은 후에 아들은 중국에서 성경 공부를 마치고 “북한에 하나님 아버지 나라를 일으켜 세울 사람으로 헌신할 것이니 어머니가 기도해 달라.”라는 편지를 집으로 보내왔다. 아들의 편지를 받고 에스더는 일주일 금식을 작정하고 기도하였다. 그러고 북한에 복음을 전하러 갔던 아들은 잡혀서 감옥에 들어갔다. 2년 후에 다 죽게 되어 병 보석으로 나왔으나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자 다시 복음을 전하다가 잡혀 감옥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에스더 자매는 아들이 다시 구류됐다는 말을 듣고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였다고 한다.

“하나님, 내 아들을 살려 달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그 아이가 순교를 해야 한다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당당하게 순교할 수 있게 하시고, 살아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일이 있다면 감당하게 해 주십시오.”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에스더 자매는 그렇게 기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북한에 있는 동생에게 인편으로 성경 한 권을 보내며 다음과 같이 썼다.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을 믿어야 우리가 한 형제이다.
감사기도.
회개기도.
구할 것을 기도해라.
하나님 꼭 믿어라.
너네뿐만 아니라 동생들에게 꼭 전하라.
내 동생들이라도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내 동생들이 아니다.
암송할 정도로 읽어라. 100번 읽어라.”

얼마 후 동생에게 심부름하러 북한에 들어간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성경을 전달했느냐고 물었더니 “주지 못했습니다. 남동생도 잡혀갔는데 이것까지 주면 더 어려움을 당할 것입니다.”라며 머뭇거리길래 올케를 바꿔 달라고 했다.
“형님….”
올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울기만 하였다. 에스더가 담대하게 이야기했다.
“그 사람이 책을 줄 것이다. 거기에 필요한 것이 다 있다. 매일 아침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다 써 있다.”
“형님, 걱정 마시오. 형님이 어떤 일을 하고, 형님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무슨 뜻인지 다 압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그 책을 받을 것입니다.“
올케의 말에 에스더는 안심하고 전화를 끊었다. 딸이, 아들이, 그리고 남동생이 복음으로 인해 감옥에 갇혀서 고난받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옴에도 중국에 남아서 탈북한 여인들을 북한에 복음 전할 일꾼으로 훈련시키는 그녀의 사역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계속되었다.

옥에 갇히고 매를 맞으나 죽임을 당하지 않고

2009년 어느 날 “에스더가 잡혀 북송되었습니다. 기도해 주세요.”라는 다급한 기도 부탁이 선교사로부터 전해졌다. 북한에 복음 전하러 가겠다며 북한에서 팔려 온 여인들을 훈련시키던 에스더는 잡혀서 북송이 되었으며 감옥에 들어갔다는 것까지가 전부였다. 에스더의 소식을 더 알기 위해 수소문해 보았지만 전혀 알 길이 없었다.
11년이 지난 2020년 또 다른 북한 지하교회 지도자를 통해 그녀가 00교화소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갇혀 있는 에스더에게 선교사가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니 계속 울기만 하더라고 전해주었다. 11년이나 돌봐 주는 이 없이 정치범수용소에 있던 자그마한 여인의 생명을 하나님께서 보존하고 계셨다.
그 다음해 에스더가 숨진 소식을 듣고 그녀의 이야기들을 정리한 노트를 살펴보니 이렇게 적혀 있었다.
“2021년 11월 4일, 병 보석으로 나와 6일째 돌보고 있다. 00 지역 외곽 성도의 집에 있으며 몸조리를 하고 있다. 오랜 감옥 생활로 몸이 많이 아프고, 뼈하고 가죽밖에 없다. 너무 가슴이 아프다.”

감옥에서 나와 완전히 망가진 몸이 회복되는 과정에서도 에스더 자매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복음 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같은 지하교회 공동체 성도들이 염려할 정도로 복음 전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예수를 믿고 북한에 복음 전하러 간 아들과 딸이 감옥에서 순교하였다.
그녀가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했던 남동생도 순교하였다.
그리고 11년의 감옥 생활을 마치고 복음을 전하던 그녀도 순교하였다.
이제 에스더 자매는 죽음을 앞두고 먼저 천국에 간 아들을 만나볼 것을 소망한 그대로 주님 품에서 안식을 누릴 것이다.
죽은 자 같으나 죽임당하지 않는 복음의 능력이 오늘도 북한 땅에 채워지고 있다.
성도들의 순교의 피가 생명으로 충만하여 구원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가득하기를 기도한다.

모퉁이돌선교회는 북한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로 감옥에 갇혀 신음하는 성도들과 북한 감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 전도인들을 돕고 있다. 갇힌 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지원하는 사역에 참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