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을 받고 있대요. 제가 고난만 받고 피만 흘려서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훈련이야. 훈련은 힘들어야 해.’ 그러시더군요.”
현장에서 갓 복귀한 선교사가 이야기 풀어놓으며 뱉은 말이다. 선교사는 말 한 마디, 단어 하나를 구사함에 답답할 정도로 신중에 신중을 더했다. 혹여라도 북한 성도들의 사역이 노출될까 염려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고난받는 것이 훈련이라구요? 북한 성도들은 고난에 대해 생각하는 차원이 다르네요.”라고 대답했다. 남북이 분단된 지 어느덧 80년, 끝이 보이지 않는 고난의 긴 터널에 갇혀 “하나님, 왜입니까? 언제까지입니까?”라고 불평하거나 항의할 법한데 담담하게 고난을 훈련으로 받아들이며 믿음의 고백을 하는 성도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어떤 상황에서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그분에 대해 좀 자세하게 설명해 보세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재차 물었다.
70대, 아니 80대쯤 되신 노인분이셨습니다. 기골이 장대한 어르신이셨지요. 노동당 고위급 간부를 지내다 퇴직하셨는데 두어 번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뭐랄까, 범접하기 어려운 느낌 때문에 처음에는 어떤 말로 대화해야 하나 많이 망설이고 쭈뼛거렸습니다. 고심 끝에 평범한 인사말로 안부를 여쭈었습니다.
“어르신, 건강하셨어요? 힘드시죠?”
“훈련하는데 힘들어야 돼.”
“무슨 훈련을….”
“이사야 55장 5절 말씀을 읽어 봐.”
그렇게만 말씀하시고 입을 다무시길래 저는 성경책을 찾아봤습니다.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민족들을 네가 부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민족들이 너에게로 달려올 것은 여호와 너희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음이니 이는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셨음이라”
이 구절의 의미를 어르신이 하신 말씀에 비춰서 곱씹고 있는데 어르신이 한 마디를 덧붙이셨습니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해 준비되어지고 있어. 훈련받고 있어.”
그분의 의중을 다 알 수 없지만 제가 해석하기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깨우기 위해 그분들을 선택하고 부르셔서, 이스라엘에 복된 소식을 전하는 사명을 맡기셨다는 뜻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라고 하실 때 이스라엘에 말씀을 전하러 가기 위해 훈련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북한 성도들은 물론이거니와 북한 주민이 살아가는 환경은 아마 세계 최악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고난으로 단련된 성도들은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고 최고의 영적 호흡을 하나님께 토해내고 있습니다.
“아마 두 번째로 뵐 때였을 거예요….”
기억을 더듬는지 잠시 동안 말이 없던 선교사가 머릿속에 감긴 실타래를 풀듯 말을 이어갔다. “고난을 바라보는 관점을 전환하고 생각을 돌이키게 하는 이야기이네요. 정말 정신이 번쩍 듭니다. 북한 성도들의 상황이 그렇다면 훈련이라는 고난을 통과하고 계신 그분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까요? 그분들에게 어떤 필요가 있고, 저희가 그것을 어떻게 공급할 수 있을까요?”
핍박이 없는 편안한 환경에서 신앙 생활하는 한국과 해외의 성도들에게 큰 울림을 주는 이야기에, 북한 선교적 측면에서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그분들에게 육신적인 필요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거기까지 여력이 닿지는 않았습니다. 공급을 거의 못 했다고 봐야겠지요. 아, 그런데, 여기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일어난 일인데, 일명 비타민C 사건입니다. 제가 그분들에게 비타민C를 한참 보내주다가 지금은 안 보내는데 왜 그러냐면 그 시발점이….”
선교사는 또 다시 기억의 실타래를 꺼내들었다.
이른 새벽에 한 지하성도 부부가 강을 건너왔습니다. 저희 집에 당도했길래 문을 열어 줬는데 글쎄, 그분들 꼴이 말이 아니지 뭡니까. 어떤 험한 길을 건너온 건지, 며칠에 걸쳐서 온 건지, 얼굴과 입이 말도 못하게 터 있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일단 좀 쉬시지요.”
주변에 보는 눈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분들을 이웃집으로 안내해서 주무시게 했습니다. 그날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았을 무렵, 저희 집으로 다시 모셔왔습니다.
“이거, 꼭꼭 씹어서 드셔 보십시오.”
마침 저희 집에 있던 비타민C를 두 분 앞에 내밀었습니다. 그분들은 영양제라는 걸 본 적도, 먹은 적도 없기에 농담 삼아 씹어 먹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순진하게 비타민C를 입에 넣은 두 사람의 반응은 상이했습니다. 아내분은 “되게 맛있네요” 하시는데 남편분은 오만상을 찡그리면서도 제가 드린 열두 알을 다 씹어 드셨습니다. 저는 그분들이 하루를 더 쉬시도록 이웃집에 모셔다드리고 다음날 저녁에 건너오시게 했습니다.
“선생, 어제 준 게 뭐였어?”
“두 분 얼굴이 좋아지셨네요? 입술 튼 게 싹 사라졌어요.”
“그거 먹어서 그래.”
“가져가실래요?”
“좋지.”
먹을 것이 없고 영양이 부족한 북한에서 요긴히 쓰겠다 싶어 집에 남아 있던 비타민C를 몽땅 챙겨 보냈습니다. 그 후로 사무실에 요청해서 비타민C를 떨어지지 않게 구비해 놓았고, 오시는 북한 성도들에게 아낌없이 나눠드렸습니다. 없어서 못 드릴 만큼 비타민C의 인기는 하늘을 치솟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인가부터 비타민C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가실 때 이거 넣어 가세요. 효과가 좋습니다.”
그날도 북한에 돌아가시는 한 지하교회 지도자분께 비타민C를 권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말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우리가 우리 눈을 흐렸던 것 같아.”
“… 무슨 말씀이세요?”
“옛날에는 뭘 해도 기도밖에 없었어. 약이 다 뭐야. 아무것도 없었지. 그런데 갑자기 이걸 먹으니까 하나도 안 피곤한 거야. 기도해서가 아니라 약 때문에…. 전에는 누군가 감옥에 들어가서 고문을 받고 나오면 기도를 했지. 그러면 뼈가 붙고 상처가 아무는 기적이 일어났는데 이제는 안 일어나. ‘뭐가 문제지?’ 하고 돌아봤더니 이것 때문에 기도를 할 필요가 없었던 거야. 우리가 우리 눈을 흐린 게야.”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제가 뭐라 말할까요. 다 제 불찰인 것을요. 그때부터 비타민C는 받아가지도 보내지도 않았습니다.
선교사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났다. 비단 영양제만이 아닐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우리의 풍요를 자랑하는 영역이 넘쳐난다. 그러나 상황과 형편이 어떠하든 고난에 굴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신앙의 정도를 걸어가는 성도들이 북한에 있다. 오늘도 세계에서 기독교 핍박 1위 고수하는 북한에서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믿음의 행전을 성도들이 써가고 있다. 남한의 성도들 또한 세상과 타협하지 많고 오직 복음으로 세상에 빛이 되고 소금이 되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