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현장에서 본부 사무실을 방문한 K 선교사가 반가운 소식을 가져왔다.
“얼마전 보내주신 남북한병행성경, 꼬맹이성경, 만화성경이 현장에 잘 도착했습니다. 십여 일 내로 꼬맹이와 만화는 북한에 보내져 성도들의 손에 들릴 것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성경 배달의 문이 좁아진 상황에서 메마른 땅을 적시는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복음이 제한된 지역, 특별히 20년간 ‘기독교 박해 지수’ 부동의 1위를 차지해 온 북한으로의 성경 배달은 지극히 열악한 환경에서 부분적으로 진행돼 왔다. 기독교를 철저히 배격하고 박해하기에 성경책을 간절히 기다리는 성도들이 있음에도 그들의 목마름을 충분히 채워주지 못했는데, 이번에 소량이나마 강력한 감시와 통제망을 뚫고 하나님의 말씀이 철의 장막 안으로 들어갔다.
북한 성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보급하는 사역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보안상 구체적인 부분까지 나눌 수 없지만, 구한말 시기 한지 성경 한 장 한 장을 뜯어서 꼰 새끼줄로 짐을 묶어 국경을 통과한 다음 다시 순서에 맞춰 성경책을 제본한 것처럼 북한어 성경 배달에도 기발한 방법들이 동원되고 있다.
그중에서 30년 넘게 북한 선교를 감당해 온 K 선교사가 사역 초창기에 성경을 배달한 에피소드를 나누고자 한다. 그의 이야기는 마음 놓고 모일 예배당도, 말씀을 가르쳐줄 목사도 없는 북한에서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이 얼마나 성경을 사모하는지, 그렇기에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북한에 배달하는 사역을 계속해야 함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선생님, 지금 가지고 있는 게 성경책입니까?”
성경 공부를 하는 내내 한 마디도 하지 않던 진우가 웬일로 입을 열었다. 선생으로 불린 K 선교사는 불과 몇 시간 전 도강해서 중국으로 넘어온, 그래서 갑작스럽게 성경공부반에 합류하게 된 진우가 못 미더워 경계의 눈초리로 주시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성경책에 관한 질문을 받자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그래. 성경책이지. 그건 왜?”
책상 위 다른 교재들과 함께 놓여 있는 성경책을 보며 K 선교사가 짐짓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이 성경책은 다 있는 겁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말입니다.”
진우는 고개를 딴 데로 돌리지도 않고 성경책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물었다.
“그럼. 끝까지 있지.”
K 선교사는 ‘무슨 소리야? 성경책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있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그저 간단히 응수했다.
“선생님, 저 주십시오.”
저돌적인 진우의 요구에 K 선교사는 두 귀를 의심했다. ‘성경책을 자기에게 달라고? 나도 하나밖에 없는 이 성경책을?’ 당시 중국은 성경책을 사고 싶다고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해외에서 제작된 성경책의 경우 공안에 빼앗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K 선교사의 집에는 부부가 보는 두 권의 성경책만 있을 따름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것도 아닌 성경책을 원하는데 거절할 수는 없고 덥석 주자니 아까운 마음이 들어 망설여졌다. 갈등에 부딪힌 K 선교사는 손때 묻은 낡은 성경책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선생님, 저 주시요.”
진우가 배짱 두둑히 다시 요구했다. K 선교사는 잠시 망설이다가 두 눈 딱 감고 진우에게 성경책을 내밀었다. 성경책을 손에 넣은 진우는 얼른 표지를 열어 한 장 한 장 넘기며 내용을 꼼꼼하게 살폈다.
“진우야, 성경 찾을 줄 아니?”
K 선교사는 목차에 나온 쪽수대로 진우에게 66권 성경을 일일이 펼쳐서 보여주었다. 그러고는 성경 약어와 장, 절을 가르쳐 주었다. 진우는 한 가지씩 배울 때마다 마치 장단을 맞추는 고수처럼 “그래, 맞아. 맞았어. 안 틀렸어.”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성경책이 없는 상태에서 부모님이 일러준 것들이 맞았다는 것을 확인하며 감탄하는 듯했다.
장장 두 시간에 걸쳐 성경 찾는 법을 배운 진우는 그 뒤로 며칠간 K 선교사와 함께 말씀을 공부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그동안 K 선교사는 아내가 사용하는 것을 포함해 네 권의 성경책을 비밀리에 마련해 두었다.
“선생님, 이제 갈래요.”
중국에 온 지 나흘쯤 지난 날, 진우는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K 선교사는 준비해 놓은 성경책 네 권을 진우에게 조심스레 건네주었다. 진우는 성경책을 받아 요리조리 뜯어보더니 K 선교사가 보는 앞에서 북북 찢기 시작했다.
“야, 너 미쳤어? 어떻게 구한 건데, 이 귀한 걸 찢어? 어?”
K 선교사는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나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진우의 팔을 잡고 성경책을 못 찢게 막아 보았지만 정작 진우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왠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K 선교사는 진우가 하는 양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아무렇게나 찢는 것이 아니라, 성경별로 그것도 두께를 감안해서 찢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본인 기준에 맞춰 성경책 네 권을 갈갈이 찢더니 이번에는 별안간 옷을 벗었다.
“야, 왜 그래?”
눈이 휘둥그레진 K 선교사와 달리 진우는 침착했다.
“선생님, 좀 용서하시라요. 그리고 도와주시라요.”
진우는 K 선교사에게 성경책을 하나씩 자기 몸에 두른 다음 비닐로 감아달라고 부탁했다. 그제야 진우가 하는 행동이 이해되었다. 요령껏 성경책을 깊숙이 넣는다 해도 표시가 날 수밖에 없기에 최대한 얇게 펴서 가져가려고 한 것이었다. 팔과 다리, 몸통에 성경책을 두른 진우는 울퉁불퉁한 근육맨이 되었다.
성경책과 한 몸이 된 진우는 북한으로 돌아갔다. 그가 무탈하게 강을 건너기를 K 선교사는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두 달 후, 진우는 더 많은 성경책을 구하기 위해 중국 땅을 다시 밟았다. K 선교사는 도합 네 번에 걸쳐 진우에게 성경책을 공급해 주었고, 그 성경은 북한에서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에게 전달되었다.
진우를 통해 북한에 성경이 배달되게 하신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서 역사하고 계신다. 아무리 철통 같은 감시와 방해가 앞을 가로막는다 해도 하나님의 지혜와 방법을 따라 북한으로의 성경 배달은 멈춤 없이 계속될 것이다.
북한 성경 배달을 위한 기도
1. 북한의 닫힌 문을 활짝 열어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이 북한에 보내지게 하옵소서
2. 말씀에 목마른 북한 영혼에게 성경이 보내져 그들이 위로받게 하시고, 말씀에 굳게 선 백성을 통해 주의 나라를 충만케 하옵소서.
3. 성경을 받은 북한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고,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세상 권세를 이기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북한어 성경이 넉넉하게 준비돼 북한의 모든 가정에 한 권 이상씩 보내지게 하옵소서.
4. 북한어로 번역된 성경이 북한에 복음을 전하는 귀한 씨앗이 되게 하시며, 달라진 남북의 언어혼란을 최소화하는 데 사용되게 하옵소서.
5. 감시가 강화돼 어려운 중에도 성경 배달이 안전하게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6. 성경 배달을 감당할 신실한 일꾼들을 주께서 불러 주옵소서. 사역에 필요한 지혜와 힘을 일꾼들에게 더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