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칼럼] 북한 성도의 짐을 같이 져 주지 않겠습니까?

 

자유롭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자유가 무엇인지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을 믿지 못하니, 소리 내어 찬송을 부를 수도, 눈을 감고 머리를 숙여 기도할 수도 없었습니다. 믿음의 식구들이 모이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물론 성경을 가질 수도, 전도할 수도 없었습니다.
교회 건물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십자가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어떻게 사는지도 잘 모릅니다. 얼마나 참아야 하는지, 어떻게 섬기는지, 사랑이 무엇인지 배운 일이 없습니다. 막연하게나마 속으로 “주님”만 찾습니다.
풍족한 식탁을 마주해 본 일이 없습니다. 산다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한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수십 년을 숨죽이며 살았습니다. 그나마 중국에 다녀온 분들은 예배당을 보고 왔다는데 부러웠습니다. 그것도 죄지요?

 

아주 가까워진 후에야 터놓은 이야기입니다. 긴 한숨을 쉬며 눈 마주치기를 부끄러워했습니다. 죄송하기만 한 자세였고 살아있는 게 부끄러운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주어진 선물을 받아 들기 힘들어 하던 그는 북한 성도였습니다. 저는 그들을 어떻게 더 도울 수 없을까 오늘도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3개월 동안 집에만 있어야 했습니다. 식당이나 상점에 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산책을 하거나 뒤뜰에서 풀을 깎고 청소는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2주 자가격리 기간 동안 집 밖으로 일절 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여러 분들이 준비해 주신 음식도 있고, 추운 날씨도 아닙니다. 성경, 인터넷, 책도 있습니다. 밖으로 나갈 자유가 없을 뿐입니다. 감사할 조건이 이렇게나 많은데 자유가 없는 것이 이렇게나 힘들다면 북한 성도는 어땠을까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두 주도 아니고 몇 년을, 아니 수십 년을 숨죽이고 살면서 믿음을 지키다가 끌려가서 죽임을 당하는 그들.

 

갈라디아서 6장 2절은 짐을 나누어 지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법이라고 가르쳐 주셨는데, 우리는 북한 성도의 짐을 나누어 지지 못했습니다. 어쩌지요?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이제라도 기회를 주시기를 바라 봅니다.
이런 와중에 우리의 할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헌금으로 북한어 성경 만 권 이상을 인쇄했습니다. 보낼 길이 열리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몽골 성도들에게 공급하려고 성경을 보냈습니다. 미얀마 성도들에게 보낼 전도용 만화도 제작 중입니다.
이제 터키가 문을 열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문도 열릴 것을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할 기회를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짐을 나누어 지라고 하셨기에, 있는 것 중에서 나눌 것으로 짐을 지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자가격리하는 동안 사흘치 먹거리를 공급받았는데 너무 좋은 것들이었습니다. 38선이 무너지면 요긴하게 쓰일 것들이라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에는 수건이나 비누, 칫솔, 양말, 속내의, 약간의 소화제와 두통제 들도 준비되어야 하겠지요? 선교지에 들어가지 못하고 서울에 머물고 있는 선교사님들에게도 필요한 것이 많습니다.

 

저는 전염병이 퍼지기 전까지 성경을 배달할 수 있도록 모퉁이돌을 인도하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제 다시 한 번 허락하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함께 기도하시겠어요? 35년 동안 도전받은 많은 분들이 짐을 서로 나누어 지기를 기도합니다. 감옥에서 콩 하나를 반으로 쪼개 나누어 먹었다는 성도의 이야기가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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