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 중국에 나왔습니다. 만나고 싶습니다.”
전화를 건 여인의 목소리를 알아차린 일꾼은 깜짝 놀라 수화기를 떨어뜨릴 뻔했다. 그녀는 일꾼이 사역하는 곳에서 몇 번 성경 공부를 하고 다녀 갔는데, 여느 북한 사람 같지 않은 점들이 있어서, 일꾼은 그녀가 마지막으로 다녀간 이후 전화 번호를 모두 바꿨다. 그런데 새로운 연락처로 그녀가 전화를 한 것이었다.
“제 전화 번호를 어떻게 알았습니까?”
일꾼의 물음에 여인은 대꾸하지 않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일꾼은 혹 자신을 잡으러 나온 북한의 특무가 아닐까 하는 염려가 됐지만, 일단 만나는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약속 장소로 나갔다. 그런데 모처 모시에 모습을 드러낸 여인은 다짜고짜 책 이야기부터 꺼냈다.
“책이 급해서 나왔습니다. 조그만 책, 그거 주시라요.”
그녀가 말한 책은 성경책이었다. 성경이라는 말을 듣고 기뻐해야 했지만 일꾼은 도리어 복잡한 심경이 됐다. ‘도대체 이 여인의 정체가 뭘까? 나에게 정보를 캐내려고 수작을 부리는 거 아닐까? 아니라면 왜 갑자기 성경책을 달라고 하는 거지?’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여러 생각들을 애써 잠재우며 일꾼은 다시 여인에게 물었다.
“내 번호를 어떻게 알았습니까?”
여인은 한숨을 폭 쉬더니 놀라운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책을 가지러 저쪽(북한)에서 무작정 나왔는데 선생님과 연락은 안 되고, 뾰족한 방법은 없고, 그래서 금식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벽에 숫자가 타닥타닥 하고 찍히는 게 보이는 겁니다. 아무래도 전화번호 같아서 그 숫자대로 전화를 했습니다.”
“아… 그랬습니까?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오해를 했습니다. 자매님, 이왕에 나왔으니 며칠 성경 공부를 하십시오. 그동안 책은 내가 준비해 놓겠습니다.”
일꾼과 여인은 공부할 수 있는 은신처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그곳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려니, 갑자기 경찰차 한 대가 그들 앞에 와서 섰다. 차에서 내린 경찰은 곧장 그들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왔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일꾼과 여인은 긴장감에 몸이 굳어졌다. 그런데 그들을 향해 오는 것만 같던 경찰이 마지막 순간, 방향을 틀어서 그들 뒤에 있던 식당 안으로 쑥 들어갔다. 식사하러 가는 것을 오인한 것이었다.
가슴을 쓸어내린 일꾼과 여인은 서둘러 버스에 탑승했다. 그런데 불과 몇 분 후, 가슴을 두방망이질 치는 사건이 또 발생했다. 무장한 특수부대 경찰이 승객 검열을 시작한 것이었다. 한 명도 빠짐없이 신분을 확인하는 통에 이번에는 절대 빠져나갈 수 없겠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검열의 칼끝이 여인의 목을 겨눈 바로 그때, 버스 밖에 있던 상급자가 검열 중이던 경찰을 불렀다. 그에게서 무언가를 지시받은 경찰이 다시 버스에 올랐는데 어쩐 일인지 여인의 뒷좌석부터 검열을 재개했다. 두 눈을 질끈 감은 여인의 눈에서 조용히 눈물 자국이 번졌다.
위험한 고비를 두 번이나 넘겨 은신처에 당도한 일꾼과 여인은 성경 공부에 매진했다. 사나흘이 지났을 무렵, 여인은 이제 빨리 저쪽으로 넘어가야 하니 두꺼운 이불 한 채를 사 달라고 요청했다. 이불이 구해지자 여인은 이불 천을 뜯어서 손바닥보다 작은 성경책을 그 안에 넣고 다시 바늘로 꿰맸다. 스무 권이 넘는 성경이 이불 속에 숨겨졌다. 성경을 가져가다 발각될 경우 목숨이 달린 일이기에 일꾼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자매님, 꼭 갖고 가겠습니까? 가져 가다 다칠 수도 있습니다.”
“걱정 마시라요. 제가 몇 명을 전도했습니다. 이제 갓 믿기 시작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이 성경책이 필요합니다.”
여인의 결의에 찬 눈빛에 일꾼은 더 이상 만류할 수가 없었다. 여인이 이불에 성경을 숨겨 북한으로 떠난 이후 일꾼은 간절히 기도했다. 며칠 뒤에 잘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일 후에 여인은 몇 번을 거듭해서 같은 방식으로 성경을 배달했다.
말씀이 없어 고통당하는 북녘 땅에 하나님은 성경책을 전달하기 위해 한 여인의 지혜와 용기를 사용하셨다. 중간에 가로막힌 장애물을 뛰어넘을 넉넉한 힘도 허락하셨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당신의 백성에게 성경을 배달하고 당신의 돌보심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능하심을 찬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