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자 편지]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201512-letter

 

창조주이신 하나님,

언약을 지키신 하나님,

사랑과 용서를 베푸신 하나님,

우리의 죄악을 감당하시려고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신 하나님,

그리고 어머님의 말씀을 들으며 배웠던 하나님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일곱 살 때 성경을 만난 후 저는 그 하나님만을 알아 왔습니다.

 

성탄을 기뻐하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겨진 예수 그리스도의 이미지는 무엇일까요?

성탄절은 ‘임마누엘의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오심으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이 이루어진 절기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의미와 우리의 삶이 너무 차이가 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기쁘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에는 우리의 죄악을 버리고 변화되어 새로워져야 하는 또 다른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탄절을 지내고 나면 여전히 같은 행동을 하고, 세상과 구별됨 없이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었나요?

예수님이 태어나시고 공생애를 시작한 30년 그리고 30년이 지나고 나서도 세상은 여전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복음을 외쳤던 사도들은 순교의 피를 흘려야만 했습니다.

이런 모습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성도들에게 요구되는 진정한 의미의 삶이 아닐까요?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은 1년에 한번 오는 명절로 들떠 지내는 것이 아닌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변화가 시작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눈이 내리는 연말연시에 우리의 즐거움을 채우기 위해 선물을 주고받는 행사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속에 깊이 내재하심으로 변화된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새로워지는 성탄절이 되어야만 합니다.
북한의 한 성도는 조그마한 소리로 제게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배도 고파요. 돈도 없어요. 가난이 지긋지긋하고, 병이 들어 너무 힘이 듭니다.
선생님에게 있는 그 자유가 제게는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 나를 보고 있을지 모르는 감시 속에 하루하 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까지 그들이 감시하고 붙들어 놓을 수는 없습니다. 내래 ~ 예수쟁이입 니다. 그래서 내래 정말 자유합니다.

선생님~~ 목사님 맞디요? 목사님도 제게 있는 이 자유를 누리고 있갔디요?”

이런 자유가 저와 여러분에게 정말 있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자유케 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날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일곱 살 때 제가 꿈에서 만난 예수는 십자가를 메고 그 십자가를 메고 끌고 있었습니다.

1950년 부활절 새벽이었습니다. 1962년 성탄절 새벽에 주님을 다시 뵈웠습니다. 수천수만 마리의 양 앞에 서 계 셨던 예수님은 목자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양을 먹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너무 오랫동안 방 황했습니다. 저는 교회를 떠난 적은 없었지만 여전히 죄에 묶여 있었습니다. 그 죄 짐을 벗어버리고 조금씩 회 복하며 자유함을 누리기까지의 기간이 너무 오래 걸렸습니다. 놀랍게도 그런 저를 이끌어낸 것은 북한 성도들 이었습니다.

“저는 자유해요!”라던 북한성도의 말 한 마디가 저를 깨운 것입니다.

 

이번 성탄절에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주시는 자유와 기쁨을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또한 북한에서 믿음을 지키는 모든 성도들과 백성들 또한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자유로이 예배하는 성탄의 기 쁨을 누리길 또한 기도합니다.

 

2015년 12월 15일4483496_4910422_stamp_issac
무익한 종 이 삭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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