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자 편지] 바로 오늘 생명을 걸고 기도할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동역자 여러분께!

 

“하나님이 한반도를 포기하시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치 문화 경제 도덕 언론 어느 구석도 희망찬 모습을 보기 힘듭니다. 한국 교회 안에서도 신선한 믿음의 행보와 언어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어느 한 교회 목사님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교계 안에 도는 가짜 정보를 아무렇지 않게 늘어놓았습니다. 특히 북한 선교에 관한 가짜 뉴스가 그의 영적 쓰레기통에 채워져 있었습니다.  또 한국 교회가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만 할 뿐 쓰레기통을 깨끗하게 하려는 의도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우에 우리가 해야 할 마땅한 말은 무엇일까요?  “그 새끼들 목을 졸라 피를 말려 죽여야 해!” 라던 35년 전 월남한 이들의 말과 “북한에 무슨 지하교회가 있습니까? 그곳에 무슨 복음을 전합니까?”라는 오늘의 질문이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그들이 목을 졸라 죽여야 하는 대상이라면 북한의 주민들은 복음을 들려 주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말인가요? 그러면 한국 땅에 150년 전에 온 선교사들은 공연히 죽어간 것이겠네요.

 

세상이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은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도 예배가 거부되고 있다면? 설교는 윤리 도덕 축복 강의로 바뀐 지 오래되었고, 찬양과 QT, 선교 여행이 예배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 중심이란 말조차도 듣기 어려운 세대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어 무덤에 머물렀던 예수는 부활하셨고 그 예수는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 예수를 믿고 계십니까? 그 예수를 보낸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을 믿으십니까? 삼위 하나님을 정말 예배하십니까? 사도신경을 외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정말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신앙 고백이 되고 있습니까?
예수를 십자가에 달아 죽인 빌라도는 실존 인물이었습니다. 예수도 실존 인물이었습니다. 그 예수는 십자가에 피 흘려 죽었다가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셨고 약속하신 대로 오실 것입니다. 죽은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의 죄악을 대신하여 죄 없으신 예수의 피를 흘리게 해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게 하심으로 은혜와 사랑을 입히셨습니다.

 

교회는 말씀 그대로 일어나서 빛을 발해야 합니다. 이 믿음의 소식을 북한 땅에도 전해야 합니다. 쌀과 의약품을 보내야 하고, 병원과 학교도 세워야 하지만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북한의 감옥에서도 여전히 피 흘리며 주님을 바라보는 성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한 권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성도가 있습니다. 북한에서 중국에서 중동에서 중앙아시아에서 이스라엘에서….

 

그 한 사람의 죽음을 위해 생명을 걸고 기도할 한 사람을 찾습니다. 한 권의 성경을 보내달라고 울고 있는 감옥의 성도를 위해 한 권의 성경을 보낼 한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바로 오늘 말입니다.

 

2019년 9월 16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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