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자편지] 하나님을 날마다 경험하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과 외조부의 신앙의 삶을 보며 살았습니다. 지독하게 가난했던 1950년대와 60년대를 경험하며 살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머님은 언제나 하나님이 공급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기도가 응답되어지는 것을 실천하셨고 알려주셨고 감사케 하셨습니다. 같이 기도하고 나누고 “하나님이 오늘도 응답하셨네!”, “하나님이 이렇게 기도한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더 많은 것으로 채우셨네…”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때로는 시간적으로 기다려 보자고 하나님의 때를 말씀해 주시고는 했습니다. 사실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조급한 우리의 모습 때문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때에 우리의 방법대로 원하는 것을 채우려는 모습이 우리들이 아닌가요?

 

때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있음을 깨닫게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끝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으로 이끌어 가시고는 합니다. 그런 어린 시절이 끝나고 열여덟에 어머니를 잃고 난 후 저는 제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몸은 어머님께서 하신 것처럼 교회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세상의 뜻을 따라 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12년이 넘도록 위선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교회는 떠나지 않았고, 십일조를 드렸지만 제 속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이끌림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어머님의 하나님을 저도 경험하는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그해가 바로 40년 전인 1979년입니다. 그리고는 그해 회심한 후 신학공부를 했습니다. 그러고 3년을 울면서 신학을 배우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 1982년 목사안수를 받게 되고, 1983년 선교 훈련을 받고 중국으로 선교 정탐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하나님과의 삶을 실제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저를 이끌어 줄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고 후원하게 하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개인적인 삶 속에서 직접 경험했습니다. 선교현장의 일이나 후방에서의 삶이나 가정에서나 순간 순간이 마치 드라마를 만들어 가는 영화의 한 장면같은 일들을 지난 40년간 경험했습니다.
조지 뮬러만 응답 받는 게 아니었습니다. 엘리야나 선지자들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사도들만 응답 받는 게 아니었습니다. 초대교회에서만 역사하신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 아닌 저 자신이 하나님을 날마다 경험하며 사는 삶을 지난 40년간 살아왔습니다.

 

 

이를 위하여 제가 무엇을 했느냐고요? 저는 무엇인가를 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며 하나님을 경험하고 부르심에 순종했을 뿐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골로새서 1장 22절에서 2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바울이 골로새에 편지로 보낸 첫 장의 한 부분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시작하게 하신 이에 대한 부분입니다.
그 다음 24~27절에서는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내가 교회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하노라.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는 비밀은 바로 바울의 경험에서 쏟아져 나오는 서신에서 발견됩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의 특징은 보내심을 받은 바울의 고백과 같이 불러 내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받는 괴로움까지도 기쁨으로 감당하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고백하는 데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날마다 유지하고 싶으십니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쌀이 떨어졌네요”
“알고 있다. 하나님이 주실 게야”
그렇게 이야기를 나눈 어머니와 저는 경기 도청 앞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전차를 타고 갔습니다. 전차 표를 네 장을 구입했습니다. 어머니와 제가 갈 때 필요한 두 장과 돌아올 때 두 장이었습니다.
“이게 마지막 돈이구나” 집회에 가서 헌금을 하시길래 “마지막 돈이라고 하셨잖아요?”라고 물었더니 어머니는 “우리가 쓸 돈이 마지막이고 이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구별된 돈이지…”라고 하셨습니다.
집회가 끝나고 돌아와 있을 때 집 앞에는 쌀 한가마니가 놓여 있었고 계란 한 줄과 닭 한 마리가 묶여 있었습니다. 잠시 후 교회에서 일하시던 한 분이 봉투 하나를 어머님에게 주셨습니다.
“어느 권사님이 사모님 집회 가신 다음에 계란하고 닭 한 마리 놓구 가셨어요. 이 봉투하구요. 쌀은 다른 분이 가져다 놓으면서 다른 권사님이 보내셨대요.”
“얘야!”
“예 어머니.”
“하나님이 채워 주시는 것 보렴.”
“예 어머니.”
이런 일은 어린 시절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사역을 시작해서 사역비와 생활비는 늘 모자라는 듯 보였습니다.
“9월 2일에 올게요.” 만주에 성경을 배달하기 시작한지 10개월이 되었을 때입니다. 7월에 돌아오며 “9월
2일에 오마”라고 전하고 떠났습니다. 하지만 9월 13일이 되도록 떠나야 할 준비가 되지 못했습니다. 500만원이 필요했습니다. 성경을 구입하고 비행기 표와 숙소와 현장에 넘겨 주어야 할 비용이었지만 단 한푼도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9월 13일에 박윤선박사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이번 주일에 와서 선교보고 겸 설교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은사의 말을 거절할 형편도 아니어서 마지못해 주일예배에 설교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례비로 아니 거마비로 3만원을 주셨습니다.
그날 밤이였는데 새벽 두시까지 전화가 울렸습니다. 구좌를 달라는 것입니다. 제게는 구좌가 없다니까 옆에 있는 분의 구좌로라도 보낼테니 달라고 하여 옆에 있는 분의 번호를 얻어내어 전화한 분들에게 주었습니다. 새벽에 다 합해 보니 497만 원이 들어왔습니다.

 

준비하여 중국에 들어간 날은 9월 19일이었습니다. 현장에 도착하기 까지 국제선, 국내선을 바꿔타며 일곱 개의 가방에 성경을 채웠습니다. 국내선 비행기가 어떤 이유인지 연착이 되었고 오후 2시 반에 도착할 비행기는 밤 11시 반이 되어서야 현지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한 곳은 밤이라 당연히 어두웠지만 중국인들은 당시에 짐을 가지고 다니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제 짐 7개의 가방만 컨베이어를 통해 내려왔습니다.
짐을 밖으로 내다 놓고 보니 대중교통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저를 기다리려고 차를 갖고 나온 이도 없었습니다. 저 멀리 한 구석 주차장에 택시 아닌 차량 하나가 그곳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뭔가 잘못해서 공안직원이였던 그가 쫓겨나 처음 택시를 운영하려고 나왔답니다. 다른 운전기사를 보기가 민망해서 멀찍이 차를 주차하고 앉았다가 잠이 들었답니다. 그 운전수를 설득하여 일곱 개의 가방을 겨우 실어 목적지로 가는 동안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길목으로 들어가기에는 무리여서 차를 밖에 세우고 안으로 들어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밤 12시 반이 넘었습니다. 문을 두드리는 동안 번개가 치고 천둥이 쳐서 안에서는 제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예약된 호텔에 갔지만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호텔이 문을 닫는 조그마한 도시였습니다. 비는 내리지요, 택시는 보냈지요, 호텔 문 밖에서 기다리며 “그 성경을 감춰주는 친구가 깨여 일어나서 나를 보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들으셨습니다. 그 청년이 깨어 일어나 화장실에 가는 것을 보고 제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이렇게 늦게 오면 어떻게 하냐고 묻고는 그 날 밤 잘 수 있는 방을 내어 주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어젯밤 문을 열어주지 않은 그 집을 찾아 갔습니다. 문을 열면서 밖을 확인한 주인은 작은 소리로 “어젯밤에 왔지요?”라며 방안으로 저를 재빠르게 끌어 들였습니다. 그리고는 저를 방 한가운데 앉으라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허리가 아프다며 벽에 기대 앉겠다고 했더니 또 다시 작은 소리로 “9월 2일날 온다고 하지 않았소? 왜 이제야 왔느냐?”고 다그쳤습니다. 그리고는 “그 자리! 방 한가운데 목사님이 앉은 그 자리에 9월 2일부터 30분 전까지 매일 먹고 자고 여기 머물러 있던 게 누군 줄 알아요?”라고 물었습니다. “중국 보위부 비밀 경찰이요! 왜 이제야 왔소?” 저는 그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하나님이 이걸 아셨구나!” 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헌금이 들어오지 않은 것도, 비행기가 연착된 것도,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친 것도, 성경을 감춰주던 청년이 잠에서 깨어난 것도 모두 하나님의 주권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지난 40년, 하나님을 경험하며 지내왔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날마다 경험하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2019년 2월 15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SNS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