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자편지] 그런 것도 필요한 줄 몰랐네요?

공산권에 성경을 배달하는 선교를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그것도 선교냐?”라며 비웃습니다.
성경 배달이 무슨 선교냐는 겁니다. 남들의 말보다는 사실 저 스스로가 ‘이걸 선교라고 해야 하나?’ 하는 자괴감이 들 때가 자주 있습니다. 제가 배운 선교의 정의는 하나님의 말씀을 외지에 가서 살며 말로 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들이 저를 선교사라고 부를 때 괴롭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오래 전 중국의 한 도시에서 조선족들과 함께 모여 성경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초라한 방에 누군가가 찾아왔습니다. 피곤해서 지쳐 보이던 그 여인은 머뭇거리며 여기 성경을 배달하는 미국에서 온 목사님이 계시냐고 물었습니다. 우물거릴 수가 없어서 그렇다고 했더니 여인은 성경 한 권만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7년 전 살던 동네에 선교사님이 복음을 전해주어 그 후로 예수를 믿고 교회에 다니고 있지만 성경이 없노라고 했습니다. 저에게 있는 것은 성경뿐이었기에 그 아주머니에게 기꺼이 드렸습니다. 이 행위를 선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저는 성경을 드리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가르칠 사람을 보내고, 교회를 세우고, 북한 땅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이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선교가 아니라면 저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선교는 아니고 선교의 변두리에서 주춤거리고 있는 것일까요?

 

저와 함께 일하는 간사님은 성경을 선교현장으로 보낼 때마다 기도를 부탁합니다. 저는 그 일이 끝날 때까지 기도의 끈을 놓지 못합니다. 성경이 배달되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도착할 때까지 기도를 계속합니다. ‘하나님이 또 하셨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저는 식사도 하고 잠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피를 말린다는 표현은 바로 이런 경우에 쓸 수 있는 말일 것입니다.

 

성경을 배달합니다. 성경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성경을 배운 그들을 파송합니다. 그들이 돌아가 교회를 개척하고, 지하교회가 늘고 있습니다. 이들을 위한 연장 교육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선교가 아니라면 무엇이 선교일까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 밖에 없습니다.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선교 보고를 하고 보내시는 곳에서 설교를 하고 부흥회를 인도합니다. 때로는 젊은이들을 이끌고 선교지에도 가고 지난 사역들을 나눕니다. 놀라운 것은 이동 중에 잠깐씩 나눈 이야기들을 그들이 고마워한다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들려주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줄로 알고 믿는 이들이 성경을 갖고 싶어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감격하며 그대로 살아가도록 애씁니다. 성경 배달은 지난 1983년에 시작됐습니다. 1985년 선교회를 만든 이 후로는 성경배달 사역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원하는 게 성경이라면 보내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것도 필요한 줄 몰랐네요? ‘라고 방금 카톡이 왔습니다. 이스라엘에 가 있는 선교사와 그 가족들 그리고 자원봉사하는 사역자들의 필요를 공급하는 걸 알게 된 성도가 보낸 카톡입니다. 바울 사도의 사역을 돕기 위해 뵈뵈는 로마서를 배달했고, 에바브로디도는 헌금을 배달했습니다. 어떤 이는 천막 만드는 일을 함께 했고, 어떤 이는 숙소를 제공했고, 어떤 이는 식사를 정성껏 준비해 주었습니다. 교통수단이었던 말을 제공하거나 치료를 담당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전기 드릴이 필요한 줄 몰랐다며 보내겠다고 하는 성도가 있습니다. 가는 곳마다 우리를 정성스럽게 대접하고 잠자리를 제공하고 차를 빌려주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헌신과 섬김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선교가 아닐까요?

 

오늘도 성경을 배달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사역에 헌신하는 일꾼들과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하며 헌신을 아끼지 아니하는 여러분들을 통해 북한과 중국, 아랍과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기를 기도합니다.

 

2018년 11월 16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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