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변명들을 쏟아내며 십자가를 뜯어내고 예배당을 불태웠습니다.
사역하던 이들이 때로는 억류당하고 추방당하고 감옥에서 고문당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더 숨겨져서 이곳저곳으로 옮겨다녔습니다.
1983년 중국으로의 첫 발걸음은 북한에 대한 저의 생각을 바꿔놓았습니다.
그 생각 때문에 2년 후인 1985년 10월 28일, 모퉁이돌선교회를 미국에 등록하고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주어진 헌금으로 성경을 구입하고 발길을 바로 만주(동북삼성)로 옮겼습니다.
250권의 성경을 가지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가 11월 중순이었습니다.
성경으로 채워진 가방을 갖고 도착한 기차역에서는 아무도 반겨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다만 받아든 분이 100권의 꼬마 성경을 요구하는 모습에서 숨겨진 하나님 나라를 보았습니다.
그 작은 성경 100권이 북한으로 보내질 것이라는 말은 충격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사역이 오늘에 이릅니다.
한 권씩 한 권씩 더해 가며 드나들던 중국은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변명들을 쏟아내며 십자가를 뜯어내고 예배당을 불태웠습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는 숨겨진 채로 배달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교회가 개척되고 일꾼들이 키워지고 이동하는 신학교가 만들어졌습니다.
사역하던 이들이 때로는 억류당하고 때로는 추방당하고 때로는 감옥에서 고문당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더 숨겨져서 이곳저곳으로 옮겨다녔습니다.
저를 슬프게 만든 것은 그런 어려움이 아니었습니다.
그토록 어려움당하는 이들을 받아주기 힘든 자유한 땅의 교회들 때문이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감옥을 드나들며 핍박을 당한 이들에게 묻고는 했습니다.
석방은 됐지만 국내에서나 국외로의 여행은 허락되지 않고 끊임없는 감시 속에 살아야 했던 이들입니다.
그들과 잠깐식 만나고 헤어지며 남겨진 보석같은 이야기들.
“핍박하고 학대하는 이들을 미워하는 게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느냐?”는 반문.
“속 시원한 이야기들을 천국에서나 해 보려나….” 라며 헤어질 때 쥐던 손.
“천국에서 만나자요!” 조용히 제 손잔등을 어루만지던 뜨거운 손.
내몽골에서도 우루무치에서도 티벳의 라사에서도 동북삼성에서도 들려졌던 그 소리가 왜 모두 합쳐져서 오늘 북한 땅을 바라보는 제 귀에 들려지고 있는 걸까요?
목사가 되어 북한에 가라고 말씀하신 어머니의 음성과 함께 들려오는 이 소리들.
북한 땅에서 밟히는 주의 백성을 위해 기도하며 후원해 주던 이들이 줄어드는 상황입니다.
그러기에 아프고 슬픈 길이지만, 결코 외로운 길은 아닙니다.
제게는 가까이할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금년에 북한인들에게 전해주어야 할 성경 6만 권이 인쇄되었습니다.
해외 선교기관과 협력해 인쇄할 6만 권의 성경 중 3만 5천 권을 모퉁이돌선교회가 배달합니다.
해외에 나와 있는 북한인들과 북한 내부로 성경이 배달되는 사역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이 채워지고, 그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복을 누리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귀에는 학대받은 종들의 음성이 들려오고 눈으로는 저 강 건너편의 북한 땅을 바라보며 입으로는 주님을 부르고 심장으로는 주님을 찬양하며 감사를 아뢰는 3월의 아침입니다.
2026년 3월 16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