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자편지] 고통 중에 소리 내어 찬양하지 못하는 이웃이 있습니다!

국군 장교였던 이모부가 6.25 전쟁 중에 전사했습니다.
얼마 후 이모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어린 나이에 제주도로 피난을 가야 했습니다.
피난 중에 어머니는 북한 땅으로 복음을 들고 가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1963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시기 전, 어머니는 미국 시민권을 가지면 북한에 갈 수 있다며 다시 재촉하셨습니다.

1970년 판문점을 방문해서 그 땅을 바라보았습니다.
1983년 중국 단동에서 추위에 언 손을 들고 울며 기도했습니다.
1985년 모퉁이돌선교회를 시작하던 그해 바로 중국으로 들어갔습니다.
우선 조선족들을 위해 성경을 배달하는 게 목적이었기에 성경 밀수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족을 통해 북조선에 성경을 공급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황해도 해주까지 찢어진 쪽지 성경부터 두터운 주석 성경들이 배달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 주민의 상황을 듣게 되었습니다.
소문 내지 않고 조용히 북에서 요구되는 것들을 전달했습니다.

1988년 겨울 저는 직접 북한 땅에 발을 디디기 시작했습니다.
라디오를 가지고 가서 방송 가능성을 타진했습니다.
머무는 호텔의 도청장치를 이용했고 가져 간 짐을 뒤지도록 유도했습니다.
성경책 외에 그들이 관심 가질 만한 책과 비디오를 방 안에 전시해 놓았습니다.
풍선을 호텔 방에서 밖으로 날려 보내기도 했습니다.
전도지를 가져다가 기차 안에서 밖으로 버려 보았습니다.
톰슨 주석성경 75권을 특별 제작하여 000에게 전달했습니다.
복음을 전할 기회는 기껏해야 5-6명 정도의 동행인과 식사를 하면서 독방에서 나눌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북한 성도들이 그들의 언어로 된 성경을 보내 달라는 요청을 해 왔습니다.
신약의 헬라어 원문을 한글로 번역한 후 북한 말로 번역했습니다.
신약 성경 번역을 마친 후에는 곧 바로 구약의 히브리어 원문에서 한글로, 다시 북한 말로 번역해서 북한어 신구약합본 성경을 인쇄하였고, 북한 성도들에게 보내는 사역을 했습니다.
이 일을 위해 일꾼들을 준비해 놓으셨던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하나님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북한어와 남한어를 한 페이지에서 비교하며 볼 수 있는 《남북한 병행성경》을 출판할 수 있도록 힘과 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코로나로 인해 북한에 성경을 보내는 일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로 한국에 와 있는 탈북민들을 주목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실 복음통일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마중물로 보내신 귀한 지체들입니다.
금년 성탄절에 탈북민 교회와 성도들에게 《남북한 병행성경》을 선물로 보내려고 합니다.
오늘 여러분과 제가 해야 할 실제적인 사역입니다.
이 사역에 기꺼이 참여하시는 여러 분들이 계십니다.

지금도 고통 중에 소리 내어 찬양하지 못하는 이웃이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간절한 기도가 국경이 봉쇄되어 오갈 수 없어 애태우는 북녘의 성도들에게 전해지고,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이 저들에게 닿아 위로하는 그 일에 저와 여러분이 함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021년 11월 15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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