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자 편지] 선교사와 현장의 필요를 위해 주님께 아룁니다

선교 훈련을 받을 때 알게 된 이야기입니다. 한국은 아주 특별한 사람들만 자가용을 타던 때였습니다. 인도네시아 선교사가 보트를 구입해야 한다고 파송한 교회에 요청했습니다. 교회의 반응은 ‘우리는 자동차도 없는데 무슨 보트를…’이었습니다. 선교사는 걸어서 갈 수 없는 섬까지 사역을 확장할 수 없었습니다.
후일 교회의 몇몇 장로님들이 선교지를 방문해서 빗물이 새는 숙소에 머물렀습니다. 보트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장로님들은 교회로 돌아와 며칠씩 비 오는 그 지역의 사진을 보여 주며 보트를 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반응은 현장에 가지 않았던 목사님과 장로님들의 반응과 같았습니다. ‘우리는 자가용도 없는데 무슨 보트를…’ 선교사님은 하나님께 계속 기도했고 몇 해가 지나서 보트가 공급되었습니다.
선교지에서는 최첨단의 장비로 적진에서의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특별히 지금 같은 경우는 더욱 그런 상황입니다. 군인이 전쟁터에서 필요한 것들이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저는 처음 모퉁이돌에서 작은 봉고 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기차와 버스로 설교나 간증하러 이동하기도 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현지 목사님이 차를 가지고 와서 데려가고는 했습니다. 교회의 한 구석에서 잔 일도 종종 있었습니다. 초청하는 교회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멀어도 아무리 작아도 초청하면 간다는 말을 듣고 저를 초청한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만난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지금 선교회의 찬양 담당 금 목사의 아내입니다. 그 학생의 아빠 목사님이 오산리기도원에 왔다가 제 설교를 듣고 카세트 테이프 하나를 사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때 저는 봉고차를 타고 오산리기도원에 설교하러 갔습니다. 기도원의 한 목사님이 “목사가 무슨 봉고차를 타고 다니느냐”라며 “그렌저는 타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 설교를 들은 참석자 중 한 분이었던 그 목사님은 10년을 선교 현장에서 사역하고 지금은 강화도훈련원에 계십니다.

1985년에 모퉁이돌선교회를 시작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부동산을 다 팔아 선교회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한국에는 친구도 선배도 후배도 아는 이도 없었습니다. 한 분 한 분의 소개로 설교를 했으니 선교회는 어려웠습니다. 유튜브나 인터넷도 없던 시대여서 북한 선교를 알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기도하면서 희생하고 헌신했던 분들이 고맙기만 합니다.
그런 형편에 봉고차는 저에게는 고마운 차량이었습니다. 서울에 오면 동생 집에 머무르며 걸어 다니거나 버스로 이동했습니다. 역에 내렸는데 아무도 마중 나오지 않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제 얼굴을 모르고 초청한 교회는 머리가 하얀 노인을 찾았다고 합니다. 카타콤 소식지에 나온 사진을 저로 생각한 모양입니다. 서로 얼굴을 알지 못하고 있다가 기차역에서 사람들이 다 사라진 후에 ‘혹시?…’ 하고 만나는 일도 자주 경험했습니다

선교지에서 중고로 구입해 10년 이상 사용한 차량을 폐차시켰습니다. 차 없이 사역하는 선교사를 위해 이동에 필요한 차량을 준비해 드려야겠습니다. 편안한 승용차보다 짐을 싣고 몇 분이 탈 수 있는 승합차가 좋겠습니다. 선교사들의 건강과 안전 유지를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선교사들의 가족을 위해 기도합니다.
북한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세워진 지하교회와 지도자들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 기도합니다. 강화도훈련원에서 훈련될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합니다.
선교사들의 활동을 위해 코로나가 중단되기를 기도합니다. 선교사들이 자유롭게 사역할 환경, 비자와 재정을 주시기 위해 기도합니다. 이스라엘과 중국 선교 현장에 승합차가 준비되기를 기도합니다. 선교사들에게 컴퓨터와 전화기를 공급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저 자신의 부족함을 인하여도 주님께 아뢰며 함께하시는 여러분에게도 기도를 부탁합니다.

2021년 2월 15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SNS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