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자편지] 성경 없이 지내는 이들에게 성경을 배달했을뿐입니다.

1983년, 제 중국으로의 첫 방문지가 홍콩이었습니다. 2년 후 모퉁이돌이 시작된 1985년부터 1997년까지 홍콩은 성경배달을 위한 기지가 됐습니다. 비자가 필요 없기에 서울에서 준비한 성경 등을 가지고 홍콩으로 갔습니다. 당시엔 중국으로 직접 들어갈 수 없어서 사람들과 성경을 모아 홍콩에 가서 비행기 표와 비자를 받아 중국에 가곤 했습니다. 저는 일꾼들과 함께 성경을 가지고 전쟁터인 중국으로 들어가곤 했습니다. 그렇게 일한 곳이 바로 홍콩이었습니다.

 

당시 홍콩에 도착한 저희 일행은 말이 통하지 않아 버스를 타는 일도 할 줄 몰랐습니다. 숙소가 공항에서 가까웠기에 택시를 타고 내리는 일만 겨우 해야 했고 가슴을 졸이며 중국으로 향했습니다. 싸움터로 향한 길의 출발지였습니다. 국제공항에서 국내선으로 바꿔 타고, 또다시 온 밤을 기차 타고 아침에 현장에 도착하면 하룻밤 호텔 비용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성경을 배달하고 곧바로 기차나 비행기로 국제공항인 북경을 거쳐 홍콩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홍콩만 아니라 북경도 잘 모릅니다. 저와 일행은 관광객이 아닙니다. 관광객처럼 행동할 뿐이었던 우리는 지금까지 그리스도의 병사요 일꾼으로 살아왔습니다. 성경배달을 무사히 마치고 홍콩으로 돌아와서 홀가분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먹는 음식은 최고의 맛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몇 년 후 한국에서 중국에 직접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저희는 홍콩을 들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성경배달은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홍콩에서 배달 일꾼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길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도 홍콩을 잘 모릅니다. 기독교 서점과 만나는 다른 선교 기관의 간사 사무실이 저희가 아는 전부입니다. 식사를 할 수 있는 곳도 걸어갈 수 있는 가까운 음식점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중국 식당 메뉴엔 사진이 없었습니다. 옆에 앉은 이들이 주문한 음식을 보고 손가락질을 하며 주문했습니다. 사역을 마치고 홍콩을 떠나올 때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다는 기쁨과 성경을 안전하게 배달했다는 감격이 컸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경비가 부족해 성경을 더 많이 가져오지 못한 아픔을 안고 서울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성도들의 초청에 응하고는 바로 미국으로 돌아가 안전을 위해 또 여권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성경이 준비되기를 위해 누워 있을 때나 앉아있거나, 소리를 내기도 하고 중얼거리며 기도했습니다. 1985년부터 매년 적게는 8회, 많으면 12회 태평양을 건너 다니며 만나는 이들과 성경 없이 몇십 년씩 살아간 성도들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고난 중에 믿음을 지킨 성도들의 이야기를 듣는 이들이 제 손에 헌금을 쥐어주고는 했습니다. 그 이야기가 이 사람에서 저 사람에게로,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전해진 것이 모퉁이돌선교회의 회원들이 되어 기도해 주었습니다. 카타콤 소식지는 그런 분들의 요구를 채워주려고 만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이들의 손에 쥐어진 헌금들이 모아지고, 성경을 보내달라며 눈물 어린 헌금을 맡기고 돌아가는 성도들이 오늘까지 이어집니다. 모퉁이돌선교회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가는 곳에서 “저도 모퉁이돌이에요”하고 악수하고 안아주기를 32년째입니다. 성경만 가져다 주면 어떻게 하느냐기에 강의할 수 있는 목사님들께 부탁하여 신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했고, 북한 형제들을 가르쳐야 했고 교회를 세워야 했을 뿐입니다.
성경 없이 지내는 이들에게 성경을 가져다 주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열 번이 되었습니다. 열 번이 백 번이 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이렇게 성경을 배달합니다. 한 명이 두 명이 되고, 두 명이 다섯 명이 되고 열 명, 백 명이 되었습니다. 그 후로 지하교회가 세워지기 시작했고, 설교를 들었던 젊은이들이 목사가 되고 선교사가 되더니 중국으로, 소련으로, 중동으로, 남미로 나가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하루하루 순종하며 살았을 뿐이고 떠밀려서 오늘까지 왔습니다. 하루는 “중국어 성경은 구할 수 없나요?”라고 묻는 조선족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때까지 조선족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자녀들에게 중국어 성경이 필요하고, 그 지역에 있는 한족들에게도 성경이 필요한 것을 생각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홍콩의 한 선교부에 물었더니 뜻밖에도 그분들이 중국어 성경이 필요한 만큼 얼마든지 공급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성경을 배달하려는 마음을 기쁘게 여겨 주었습니다. 주어진 백 권의 성경이 천 권으로, 만 권이 십만 권으로 수백만 권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러다가 물고기를 잡아주어 먹게 하는 방법도 좋지만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치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지도자들을 위해 중국어 주석성경을 번역해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어 주석성경을 받아든 중국 교회 지도자들은 얼마나 고마워하고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북한에 올바른 북한어 성경을 번역하여 그들의 손에 쥐어 주었을 때의 감격도 엄청났습니다.

 

이제는 북한 성도들을 위한 주석-사전이 포함된 성경을 만드는 작업과 교회 개척이 병행되고 있습니다.
저는 평양에 자유가 회복되어 진정한 의미의 교회를 세우는 일을 꿈꾸고 있습니다. 평양에서 성도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가고, 한 두 곳에 모퉁이돌선교훈련원을 세우는 꿈을 꿉니다.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다면 성경을 배달할 일꾼들과 재정적인 후원자가 필요하고, 일꾼들을 훈련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것이 꿈이지만 오늘도 저는 오늘 주어진 일을 합니다. 그러면서 같이 할 성경배달 일꾼들을 찾습니다. 배달 일꾼은 일꾼대로 할 일이 있고, 가르치는 목사는 목사로서 가르칠 수가 있고, 기도하는 이들은 기도함으로, 재정적인 후원자는 후원함으로, 어떤 기능도 다 쓸모가 있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 하나님의 나라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을 드리기를 원하시는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혹시 여러분의 시간을, 재능을, 은사를, 기도를, 헌신을 원하시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저같이 무능한 사람도 쓰실 수 있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쓰실 수 없으시겠습니까?
홍콩에서 며칠 지내면서 하나님이 저를 불러서 이곳에 오게 하시고, 성경배달 하는 이들을 만나게 하시고, 선교 지도자들을 만나게 하셨던 이유가 뭘까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늙어버린 제가 어린 시절 어머님과 했던 북한, 중국, 러시아, 몽골, 이스라엘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약속을 지키게 하시려고 이곳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1년에 한 번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메고 배달하는 복음의 당나귀가 되어 보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천국에서 만날 어느 형제나 자매가 여러분의 헌신으로 하나님의 백성 되는 기쁨을 느껴 보실 생각 없으십니까?

 

2017년 5월 15일
무익한 종 이삭 드림

SNS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