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이루었다!” 요한복음 19장 30절의 기록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하실 일을 다 채우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와 닿습니다.
그 완전함. 그 완벽함. 빈틈이라고는 하나 보이지 않는 예수의 그 모습을 우리는 닮아갈 수 없을까요?
비단 골고다에서만의 일이 아닙니다.
시초부터 나같은 죄인 살리려고 완벽하게 일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표현된 사건이 바로 성경 전체의 기록입니다.
내가 바라고 기대하는 시간에 맞춰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시간에 행하셨고 이루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이 1800년대 후반 들어서야 한국 땅에 복음을 든 선교사들이 오게 하십니다.
우리 땅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백성들로 하나님을 찬양케 하십니다.
죄로 인하여 영원히 벌 받을 수밖에 없던 나와 우리를 위해 아들을 기꺼이 내놓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바로 나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다 이루었다.” 십자가 고통 중에서 쏟아 낸 한 마디.
끝났다고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을 텐데 굳이 그 상황에서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완벽하게 이루십니다.
우리는 그를 닮지 않았습니다. 그들 닮아야 한다는 것을 앎에도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 사랑을 본받아 닮음의 삶을 살려고 애쓰는 주의 백성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중국에서 저는 그런 이들을 만났습니다. 북한에서도 만났습니다.
심지어 미국에서도 그런 닮음을 추구하는 미국인 형제와 자매들을 만났습니다.
지독한 핍박과 학대 속에서도 여전히 ‘주님의’ 이름을 기뻐하며 매 맞는 백성들이 있습니다.
바로 주의 백성들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환영해 주실 천국을 기다립니다.
소망합니다. 더 나은 본향을 그들은 믿음의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기뻐합니다.
마땅한 일로 여깁니다. 지극히 당연한 일로 생각합니다.
어린 손녀가 당할 것을 알면서도 그 닮음을 지켜가는 북한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천국에서 우리를 만나게 되기를 소원할 것입니다. 우리는 완벽한 주님을 닮지 못하겠지요?
“목사님 닮고 싶어요.” 이런 젊은이들을 최근 자주 만납니다.
“나를 닮겠다고? 아닐세! 주님을 닮아가게!”라고 충고하고 축복하며 헤어집니다.
예수를 닮으셨습니까? 오늘 주님을 닮은 종들을 주님이 찾고 계십니다.
마지막 순간에 십자가에 달려서도 외치면서 마지막을 채우시는 예수를 닮은 일꾼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이 한반도에서 온 열방을 향해 나아갈 예수 닮은 종들을 찾고 계십니다.
이 땅의 장래는 은과 금에 있지 않습니다.
경제에 있지 않습니다. 정치에 있지 않습니다.
이 땅의 장래와 미래는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닮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무익한 종 이삭
[2019. 11. 카타콤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