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칼럼] 한 사람의 사죄로 자유케 되었습니다!

 

 

저는 50년 동안 일본을 미워하고 증오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1945년부터 1995년까지였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일본이 조선 땅을 짓밟았고 모든 자유와 권리와 경제력을 앗아갔기 때문이고 또 인권을 말살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조부께서 일본인들에게 매맞고 병들어 세상을 떠나셨던 아픔이 아버님에게로 또 저에게로 전이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아오던 저에게 1995년 5월 폴 아리가 목사님이 일본이라는 나라를 대신하여 공개적인 자리에서 사죄를 하셨습니다. 저는 그 사죄를 받아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용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서 있던 제게 하나님이 속삭이셨습니다.
“내가 용서한 사람을 너는 용서할 수 없니?”
저는 당황했습니다.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강단에 올라와 그저 사죄하고 용서하며 울고 서 있던 36명의 사람들을 바라봤습니다. 하나님이 용서한 아리가 목사를 저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아리가 목사님을 용서하는 것은 일본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용서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사죄가 저로 일본을 용서하는 자리까지 가게 이끌었습니다. 5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미움이라는 울타리 속에 갇혀 있던 저를 자유케 한 것입니다. 한 사람의 사죄가 한 사람을 자유케 한 것입니다.

 

1991년 11월 어느 날 저는 중국의 한 도시에서 체포되었습니다. 밤중에 들이닥친 경찰에 의해 수갑이 채워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 끌려갔습니다. 네 시간의 심문 후에도 저는 석방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며칠 동안 고문을 당했습니다. 전기 고문으로 인한 충격에서 비롯된 기억상실증은 약 4주 만에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나 고문 후유증은 10년 넘게 저의 육체를 괴롭혔습니다. 매일 같이 쏟아지는 하혈로 화장실에 들어가 앉는 것이 큰 고통이었습니다.

 

10년 후 하나님이 제게 다시 그 도시로 가라고 말씀하셨을 때 저는 거부했습니다. 3년 동안 계속하여 거부했습니다. 그러다 13년 후인 2004년 그 도시의 길거리에 서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알아보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 때 한 여인이 제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은 자기가 예수 믿은 지 13년이 되었다고 전해 주었습니다. 남편이 자기를 예배당에 데려갔다고 말했습니다. 그 남편이 바로 저를 고문한 사람이라고 알려주면서 저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했습니다. 그 고문한 사람으로 인해 자신이 예수를 믿게 된 것이 고마운 사건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고문한 사람이 지난 13년 동안 교회에 갔고 신앙 생활을 하며 지금은 목사가 된 것이었습니다. 여인의 감사하는 말 한 마디가 저로 하여금 그들을 용서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오히려 용서하고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한 마디 말.
한 마디로 용서와 사랑이 회복되었습니다.
비록 제가 중국에 다시 갈 수 없게 중국 정부가 막아도 저는 중국을 사랑합니다. 일본 교회가 저에게 관심을 갖지 않아도 저는 일본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저는 북한의 어용 교회 목사님을 하나님께로 이끌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나를 용서하신 하나님이 당신을 용서하실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여러 해 후에 저는 그가 용서받은 삶을 사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비록 북한 땅에 살고 있지만 자유한 몸으로 살고 계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셨습니다. 로마서 10장 4절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와 사랑을 받는 나와 여러분의 입에서 용서가 표현되고 감사의 표현이 되살아나기를 기원합니다. 북한 땅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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