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칼럼] 크리스마스 예배 후에

 

크리스마스라고 모두들 바쁜 요즘 제 마음은 이스라엘 갈보리 언덕에 가 있습니다. 그 언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못 박으라고 아우성쳤습니다. 우리 모두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에 이를 자가 없다는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다. 그러기에 갈보리 언덕의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보내심을 받은 세상에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시기까지 기꺼이 순종하셨습니다.

 

몇 해 전, 저는 크리스마스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한 예배당에 갔습니다. 크리스마스트리와 찬양대를 대신한 중창단, 촛불과 조명이 분위기를 돋우었습니다. 설교자는 기쁨을 주제로 설교하기 위해 야고보서 1장과 히브리서 12장 2절, 누가복음 2장 10절을 인용해서 하늘의 기쁨을 이야기했습니다. 회중은 가끔 소리 내어 웃기도 했고 미소도 지었습니다. 화려한 옷차림과 밝은 목소리와 기쁨에 찬 설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예수가 빠져 있었습니다. 십자가가 없었습니다. 정작 있어야 할 메시지는 선포되지 않았고 진정한 의미의 기쁨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그제 아침에 내린 눈은 모두 녹았고 풀밭만 하얗게 덮여 있을 뿐 숲은 초록색으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풍경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었지만 예배당 안에서는 말뿐인 임마누엘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숲과 바닷가를 지나면서 느꼈던 하나님을 향한 감사나 기쁨이 예배당 안에서는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어젯밤 저는 십자가를 묵상하기 위해 밤을 지새우며 십자가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을 찾아봤습니다. 구원 받은 강도가 있었습니다. 구원 받지 못한 강도도 있었습니다. 못 박은 사람도 거기에 있었고, 갈릴리에서 온 사람, 여인들의 이름도 있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는 십자가 곁에 있었을까요? 제자들은 모두 도망쳤습니다.
예수님의 발은 꺾이지 않은 채로 내려졌고 시체는 한 번도 사용되지 않은 무덤에 누이기 위해 빌라도의 허락을 받아 옮겨졌습니다. 몇몇 여인이 그 현장을 확인하고 향료를 준비하기 위해 떠났고, 여인들은 안식일이 지난 새벽에 무덤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빈 무덤을 발견한 후에 두 천사의 말을 듣게 된 여인들은 예수님이 갈릴리로 먼저 가실 거라는 말씀을 듣고 제자들에게로 가서 알렸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다른 제자들에게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500명의 무리가 승천 현장을 목격하고 11 제자와 120명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오순절을 경험했습니다. 이들에게 있었던 기쁨은 세상의 기쁨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 기쁨을 소유한 120명은 증인으로 온갖 핍박을 당하며 세상으로 흩어졌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유대로 사마리아로 땅끝으로…

 

하나님은 왜 그렇게 세상을 사랑하셔야 했을까요?
버리셔도 되고 포기하셔도 될 인간들을 위해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면서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라’라고 표현했습니다. 그 말 외에 다른 말로 설명이 가능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작년 모퉁이돌의 성탄예배에 모인 성도들은 하나님의 임재와 기쁨을 경험했습니다. 어떤 예배에서보다 더 깊은 확신을 갖고 돌아갔으리라 생각합니다. 올해도 성탄예배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내년 성탄예배는 평양에서 드릴 수 있을까요? 우리 모두 평양에서 성탄예배를 드리는 그 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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