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칼럼] 감옥에 갇혀 있으며 자유하는 성도들을 여럿 만났습니다!

중국에서 류샤오보가 사망한지 1년이 지났습니다.
그의 아내 류샤는 지난 10일 9년 만에 가택연금이 풀려 독일로 출국했고
“중국의 인권은 더 악화된 상태”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육체적으로 중국을 떠났으니 자유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영혼까지 자유할까요?

 

저는 예수를 믿고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중국에서 오랜 기간 감옥에 갇혀 고난을 당했던 왕명도 목사를 개인적으로 만났고,
원상심목사와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습니다. 모세 목사, 이도성 장로도 만났습니다.
최근에 세상을 떠난 지수목사는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메이블 할머니와는 오랫동안 교제했었습니다.
조선족 어른 중에 오랫동안 교제해온 분들과 지금도 교제하고 있고,
젊은 세대의 일꾼들을 돕고 나누기도 합니다.
그들은 모두 중국에 남아 있다가 하나님 품에 안겼습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중국에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유하지 않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핍박과 아픔을 당연한 상급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감시당하고 건강과 재정의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가택연금뿐만 아니라 감옥을 드나들면서 모두 신앙을 지켜갔습니다.
저는 30년 넘게 그들을 개인적으로 만나고 교제했지만
그들에게서 불안함이나 원망하는 것을 본 일이 없습니다.
물론 행동은 조심스럽게 했습니다.
그들-믿음을 지킨 주의 사람들은 육체적인 제한으로 자유를 잃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왜일까요?

 

바울은 그 많은 고난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자유했습니다.
쫓겨 다니고 감옥에 갇히고 매 맞고 굶주리면서도 자유했고 감사했습니다.
영광스러운 자리에 있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신분문제로 사역지를 떠나기도 하고 도망하는 일이 있습니다.
추방당하기도 하고 숨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자유하는 성도와 선교사들이 있습니다.
감옥에 갇혀있는 순간에도 자유할 수 있고
도리어 감옥에서 간수로 일하는 이가 자유하지 못함을 아십니까?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은 엄연한 신앙적 현실입니다.

 

저는 30년 이상 교제하는 조선족 성도들에게서도 같은 답을 얻습니다.
‘나는 자유한가?’라고 물어야 한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감옥을 드나드는 것 같다고 말입니다. 순간 자유하고 순간 부자유합니다.
은혜를 생각하면 자유하고 욕심으로 보면 부자유하고 얽매인 삶을 살아갑니다.

북한에서도 자유하는 성도들을 여럿 만났습니다.
북한 안에 사는 성도들은 진정한 자유 속에 사는 이들이었습니다.
저는 류샤오보의 아내가 노벨상을 타는 그 감격보다 예수를 만나는 자유를 얻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시진핑이나 김정은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봅니다. 트럼프도 자유인인가를 생각하고는 합니다.
정치인들 중 자유인을 거의 찾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업인이나 성공했다고 불리는 사람들에게서 자유를 보게 될 날을 위해 기도합니다.

 

저는 지금도 저의 죄성으로 인하여 괴로워하고는 합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자유가 있음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저의 순례의 길은 복된 길입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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