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을 위한 암호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왜 하필이면 북한을 “사마리아”라고 표현했을까요?
나중에는 “모압”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미국과 유럽의 선교 기관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기분이 몹시 언짢았습니다.
나는 이제 이렇게 노골적으로 쓰고자 합니다.
“동방의 예루살렘-평양”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동방의 예루살렘-평양”을 자유케 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를 묻고 싶습니다.
토마스 목사가 대동강변에서 죽임당한 것은 한국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는 파송한 교회로부터 후원을 중단하겠다는 통고를 받고도 조선 땅으로 향했고, 복음을 위해 순교합니다.
그 후 1907년에 평양대부흥이 일어났습니다.
평양의 벽을 무너트려 그들로 예배하며 찬양하도록 도우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북한도 복음화하라”고 외쳤던 “LOVE NORTH KOREA 1988” 국제 대회 이후 저는 극히 개인적으로 모퉁이돌선교회만의 사역을 진행해야 했습니다.
보위부가 저를 암살하려고 시도했음을 알았지만 그렇다고 중단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한 랍비가 나치의 총 앞에서 마지막으로 한 말이 있습니다.
피 흘림이 있어야 속죄함이 일어나는 것을 알고 있던 그는 이렇게 외칩니다.
“나의 피 흘린 죽음이 이스라엘을 위한 속죄물이 되게 하옵소서”
저는 그렇게 외치지 못했습니다.
평양과 판문각에서 “예수의 피 흘림과 속죄함”을 큰 소리로 외칠 기회를 놓치지는 않았습니다.
더 기회가 있기를 바랐지만 보위부는 제가 북한에 들어가는 것을 막았습니다.
그러면 일을 중단할까요?
지혜와 슬기로움을 하나님이 주신 줄로 알고 방법을 달리했습니다. 아니 확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아쉬운 것은 북한 선교를 빙자해서 사역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이 알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있기에 저와 모퉁이돌선교회는 더 숨어서 일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북한에 침투할 일꾼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죽음을 각오한 지혜롭고 슬기로우며 가정에 매이거나 건강상의 문제가 없는 병사다운 일꾼이어야 합니다.
평양의 회복을 위해서.
오늘 말씀으로 무장되어 있어야 합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곧 중국이 문을 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북한에 들어갈 길이 보입니다.
저는 “동방의 예루살렘-평양”에서의 예배를 기대하고 준비합니다.
한 사람의 피 흘림으로 이스라엘을 속죄한 것이 바로 우리 주님이 하신 일입니다.
그 주님이 바로 여러분과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북한 아니, 평양의 속죄함을 이룰 피 흘릴 한 사람을 찾습니다.
평양의 함락을 위해 피 흘림을 각오한 주의 사람을 하나님이 찾으십니다.
“동방의 예루살렘-평양”의 백성들과 함께 저 이스라엘 예루살렘까지 갈 날을 기대합니다.
중국이 문을 열어야 합니다.
북한이 문을 열게 될 날이 가깝습니다.
준비되셨습니까?
무익한 종 이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