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칼럼] 숨어서 신앙을 지킨 그 할머니가 그립습니다!

월남전쟁이 끝나고 보트 피플이라고 불린 이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나라를 잃은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모습 속에서 고통당하는 많은 사람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1919년부터 1945년까지의 우리나라도 그런 상황이었을까요?

주권을 잃고 언어를 빼앗기고 한국인이 아니어야 했던 우리들.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에 와서 살던 사람들, 그리고 아비규환의 아프가니스탄을 가까스로 빠져나와

한국에 입국한 사람들이 갑자기 난민이 되었습니다.

낯선 땅에서 난민으로 살아야 하는 그들의 삶이 불쌍해서 마음이 아립니다.


문득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잃은 아픔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는 하늘 나라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그런 우리가 예배를 잃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기엔 너무나 힘든 현실이 되었습니다.

마음 놓고 예배하던 자유를 잃었습니다.

우리가 이럴진대 북한에서 믿음을 행사하지 못하고

하늘의 시민권을 감추고 살아야 하는 성도들은 어떨까요?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이었는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들의 하늘 시민권 회복을 도울 수 있기를 바라서 쌓아 온 사역들이

오늘은 왠지 아무런 결과가 없어 보이는 듯해서 마음이 슬퍼집니다.


2007년에 급사 상태로 판정 받은 저는 14년을 넘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지난 3월부터는 허리가 아파서 고통스러운 5개월을 지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북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의 법과 율례를 거스르는 세력들이 판을 치는 지금을 하나님께 아뢸 뿐입니다.

몸은 연약해 있지만 영은 그리스도의 진리 안에서 깨어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북한 땅이 회복되어 마음 놓고 찬양하며 기도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중국에서 만났던 그 할머니를 다시 기억합니다.

1987년에 49세였던 그분은 2004년 4월 22일까지 사셨습니다.

1960년에 북한으로 들어가 수십 가정을 그리스도 앞으로 이끌어 냈다던

공산당 노래에다 찬송가 가사를 바꿔 붙여 찬양하고 마루 바닥이 닳도록 기도하면서

주석성경을 보석이라고 부르며 그걸 갖고 용천으로 돌아가셨던 할머니.

밟혀 가며 믿음을 지켰던 그 할머니야말로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였는데…

숨어서 신앙을 지킨 그 할머니가 그립습니다.

그분을 17년 동안 꾸준히 도울 수 있었던 것은 축복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믿음 때문에 수용소와 감옥에서 죽어가는 성도들은 언제나 자유하게 될는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조금밖에 없음으로 인해 그저 괴로워하기만 해야 하는지……


때로는 너무 힘겨워서 육신의 아버지께 투정을 부렸습니다.

뜻밖에도 아버님은 “네가 그들을 조금이라도 돕지 않으면 누가 그 일을 하겠냐? 중단하지 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후로 지금까지 애써 눈물로 감당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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